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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대만해협 위기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Vincent Kolo
기사입력 2022.11.06 09:22 | 조회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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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옮긴이 주: 지난 10월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는 자신의 총서기 3연임을 결정하는 제20차 당 대회 개막식에서 대만 정책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평화통일을 쟁취할 것”이지만 “무력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지난 8월초에는 미국 하원의장 펠로시의 대만방문 이후 중국군이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려한다면, 향후 몇 년 안에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더 이상 정세 전망에서 배제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만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은, 동북아시아에서 제국주의 패권대결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를 건설해 나가는 데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 됐다고 할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대만·홍콩·중국에 지부를 갖고 있는 국제사회주의대안(ISA) 그룹이 9월 초에 발행한 이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https://internationalsocialist.net/en/2022/09/new-cold-war

     

    8월 2~3일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은 두 번째 냉전(미국과 중국 간의 제국주의 권력투쟁)이 더욱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상대로 펠로시의 방북은 시진핑 정권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사격 훈련이 벌어졌다. 중국군은 일주일 동안 대만 해역에 200여 대의 항공기와 50여 척의 군함을 배치해서 최신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대만봉쇄 가상훈련을 진행했다. 이후 훈련 규모는 상당히 축소됐지만, 중국공산당은 군사태세 “신기준”에 따라 매일 군사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수많은 논평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이 무력행사는 180km에 달하는 대만해협에서 “현상을 바꾸었다.” 이제 대만과 그 주요 군사동맹국인 미국과 일본이 미래에 있을 중국의 대만공격을 저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중국과 미국 사이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새로운 그리고 훨씬 더 파괴적일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전 세계에 퍼졌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나리오는 단기적으로는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위기로 내몰린 자본주의 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취약하고 늘 위험한 ‘현상 유지’뿐이다.

     

    오늘날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두 자본주의 초강대국들 사이의 제국주의 권력 투쟁은 세계적인 사건들의 주요 동인이다. 또한 최근 대만해협의 위기는 미국도 중국도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 양 정권의 군사적·외교적 행보는 각기 자국 내 위기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불안정한 정권들

     

    미국 대통령 바이든과 국방부는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대만에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현 시점에서 긴장의 고조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냉전을 고조시키는 사이클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게 양측 모두에게 적합했을 것이다.

     

    바이든에게는, 미국 경제의 암울한 상황 때문에 민주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의회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험과,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장기간의 대리전을 치르기 위해 유럽 동맹국들을 묶어놓아야 한다는 압력이 있었다.

     

    시진핑의 어려움은 더욱 컸다. 여기에는 일본식 자산붕괴, 인구감소, 제로-코로나 정책이 자초한 혼란, 푸틴과의 ‘연합’이 주는 시기적 부담 등이 포함됐다. 따라서 중국 정권은 대만에 대한 통제를 자신의 역사적 사명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긴장을 고조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펠로시의 방문이 공개되자, 미국 정부는 그녀의 방문을 뒷받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중국의 위협에 굴복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진핑도 마찬가지로 궁지에 몰려 강경대응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종신 집권자로의 상승을 불과 두어 달 앞둔 결정적인 순간에 ‘허약한’ 인물로 비쳐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사훈련은 2,300만 대만 인민 사이에서 중국과의 통일에 대한 대중적 반대를 강화함으로써 역효과를 낼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 인구의 73%가 중국의 침공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대만의 친미 민주진보당 정부는 내년도 국방예산을 약 14%나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대만 무기의 4분의 3을 공급하는 미국의 무기산업은 기대감에 입술을 핥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민족해방 열망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결정적인 오판을 하고 그에 따라 러시아가 참담한 군사적 실패를 보여준 것처럼, 시진핑의 공격적인 ‘늑대전사’ 태세는 대만 인민들로부터 훨씬 더 큰 반대를 불러올 것임이 틀림없다.

     

    미국 정책의 변화

     

    미국 하원의장 펠로시는 대통령 바이든과 부통령 해리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고위 관리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미국 제국주의가 대만에 대해 오랫동안 취해 온 공식 입장(대만의 독립을 반대하지만 중국의 무력사용도 반대)으로부터 점점 이동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중대한 추가 조치로 간주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자신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견지해 온 외교 공식인 ‘하나의 중국’ 정책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같지 않다. ‘하나의 중국’ 정책 아래서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그 정부만을 인정하되, 대만(공식 명칭은 중화민국)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튼튼한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 본토와 대만, 홍콩, 마카오가 절대 나누어질 수 없고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로지 하나”임을 뜻한다. -옮긴이)

     

    대만과의 관계를 둘러싼 혼란스런 외교 수칙은 1970년대에 당시 중국의 스탈린주의 정권과 미국 제국주의 사이에 맺어진 거래로부터 비롯됐다. 이 거래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회복을 가능케 했고, 중국이 냉전 와중에 서방 진영으로 돌아서게 했다. 대만을 통치하던 독재정권은 소련에 맞서 스탈린주의 중국과 동맹을 맺는다는 훨씬 더 큰 전략적 성과를 추구한 서방 동맹국들에 의해 외교적으로 강등되고 유엔에서 추방당했다. 이러한 미국-중국 동맹은 1980년대 후반 스탈린주의 일당독재 국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몰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 정부와 대만 정부 모두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만해협의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대만관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이 중국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도울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해야 한다. 이 정책은 미군이 직접 개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답하지 않은 채 남겨둔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에 입각한 정책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미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외교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나 “약소국의 권리”에 대한 어떤 관심도 작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중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대만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싸고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제 미국 지배계급 내 일부 집단은 미래에 중국을 고립시키고 중국 체제의 자원을 고갈시키기 위해 중국에 맞서 벌일 대리전의 본보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약화된” 러시아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대만 대중들의 민주적 권리는 중요한 문제지만, 노동자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성과가 여전히 취약하다. 언론의 자유는 어느 지점까지만 인정된다. 투표할 권리가 있지만 오로지 자본가 정치인들만을 지지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파업권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계산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40년 동안 대만의 잔인한 독재를 지지했던 것처럼 말이다.

     

    큰 이해관계가 걸린 갈등

     

    미국 정부와 중국 정부 모두에게 있어서 이 갈등에 걸린 이해관계는 거대하다. 무엇보다 이 갈등은 양 진영 간의 기술 전쟁에서 대만의 결정적 역할과 관련된다. 대만이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 칩의 65%를 생산하는데, 특히 최첨단 칩의 경우 92%를 생산한다. 8월 25일, 바이든은 2,8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반도체 과학법’에 서명했는데, 미국의 반도체 생산을 부활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 법은 미국 대 중국의 기술 전쟁에서 하나의 “획기적 사건”으로 묘사돼 왔다.

     

    하지만 대만의 중요성은 기술 그 이상이다. 중국의 어떤 자본가 정부도 대만의 독립을 묵인할 수 없을 것이다. 대만의 독립은 홍콩, 신장, 티벳 등에서 베이징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압력을 증대시키면서 변방의 원심력을 가진 국가를 통치하는 중국 정부의 능력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몇 달 동안 중국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인 상하이가 봉쇄되는 동안, 소셜 미디어에서는 “상하이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표면화되었다. 상대적으로 더 널리 퍼진 현상은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뒤늦게 쏟아진 것이다. 중국의 경제 불안이 깊어질수록 변방들과 중심 사이의 긴장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사태전개는 불가피할 것인데, 이른바 경제기적이 끝나고 ‘일본식’ 저성장 또는 제로성장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 제국주의에게 있어서 대만 문제는 중국 국가와 자본주의 지배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며, 내부 모순에 대한 억압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다.

     

    미국에게도 이 갈등은 실존적 성격을 갖는다. 현 시기 미국의 냉전 전략은 (21세기 세계 자본주의에서 결정적 지역인)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1945년 이후 유지해 온 지배를 더욱 강화하는 데 목표를 둔다. 미국 제국주의에게 있어서 대만의 상실은 (다시 말해 베이징 정권의 대만 지배는) 베트남 전쟁에서 겪었던 굴욕보다 훨씬 더 큰 후과와 함께 역사적 패배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한 결과는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에서 국가들의 세력관계가 중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극적으로 재편되도록 강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지위는 (세계 패권국에서 -옮긴이) 대륙 강대국 수준으로 격하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 제국주의는, 한편으로 1970년대부터의 모호한 ‘하나의 중국’ 정책과 기타 외교 의례들을 말로는 여전히 준수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만의 분리된 지위를 ‘정상화’하는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펠로시의 방문이 의도한 바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왜 바이든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임을 강조해서 말하고 미국 관리들이 다시 이를 부정하는 일련의 ‘실수들’을 거듭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기존의 ‘전략적 모호’ 정책을 ‘전략적 혼동’ 정책으로 대체한 것이다.

     

    미국의 우파 세력들은 더 나아가 대만을 독립국가로 공식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의회와 공화당의 여러 목소리들이 함께한다. 트럼프는 펠로시를 “트러블 메이커”라고 비난했지만, 펠로시의 여행을 지지한 공화당원들도 여럿 있었으며, 여기에는 악명 높은 매파인 존 볼튼도 포함된다. 볼튼은 미국이 “대만을 외교적으로 완전히 승인하면서 대사관을 비롯해 모든 것을 교환해야 하며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입장

     

    시진핑 정권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취소되게 하려고 몇 달 동안 노력했다. 원래 펠로시는 4월에 대만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취소됐다. 펠로시의 8월 방문 일정이 알려진 7월에 중국 정부는 미국에게 “심각한 후과”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대만 관련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가 그런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 메시지가 더 강했다. 중국은 “전례 없는” 대응을 경고했다.

     

    중국 정부의 격렬함은 펠로시의 직급 등 여러 요인 때문이었지만, 주된 요인은 경제적·사회적 위기가 펼쳐지고 시진핑을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방문이 진행된다는 점에 있었다. 펠로시의 방문 전후로 미국과 다른 나라 고위 관리들도 대만을 줄줄이 방문했다. 가장 최근에는 일본과 리투아니아에서 대표단이 방문해서 타이베이를 냉전 셀카를 찍는 무대로 활용했다. 중국 정부는 종종 이들의 방문을 무시했다. 어쩌면 펠로시의 방문도 무시하는 쪽을 선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위기가 전개되고 그에 따라 시진핑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그런 선택은 불가능해졌다.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다음날인 8월 4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일주일 내내 계속된 중국의 전쟁놀이는 그 규모라는 점만이 아니라 대만해역에 대한 근접성이라는 점에서도 전례가 없었다. 여섯 개의 훈련구역은 대만을 사실상 모든 방향에서 포위했다. 이것은 대만과 대만해협 봉쇄를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대만 봉쇄는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로서, 중국공산당이 자신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대만을 강제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이번 훈련에서 기술과 조정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군사적 힘을 크게 과시했다. 그런데 이번 훈련에서 실제로 성취한 것은 무엇인가? 중국 정부가 보내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제 인민해방군이 우위를 갖고 있으며 언제라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거의 절반이 지나가는) 대만해협을 봉쇄함으로써 대만과 나머지 세계의 연결을 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략을 보완하기 위해, 7월 13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은 중국 정부가 볼 때 “국제해역” 규정은 대만해협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은 이 성명을 일축했다. 이 성명은 중국공산당이 베트남·필리핀 등과 분쟁 상태에 있는 남중국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장하기 위해 전개했던 “회색지대 전술”을 복제한 것이다.

     

    회색지대 전술

     

    회색지대 전술이란 주어진 갈등 상황에서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은 피하면서 현상변화를 도모하는 도발적인 행동이나 정책을 말한다. 남중국해에서 인민해방군은 인공섬들을 건설한 뒤 그 중 일부에 전투기와 대공·대함 미사일을 배치했다. 분쟁상대를 저지하고 주변 해역에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 정부는 (인도보다 넓은) 350만 평방킬로미터 수역에 대한 배타적 영유권을 주장한다. 중국 정부는 분쟁상대 국가들과 일대일 방식의 교섭만을 고집한다. 힘의 불균등에서 오는 이점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당시 중국 외교부 장관이던 양제츠는 아세안(ASEAN) 외교장관 회담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중국은 큰 나라이고 여러분들은 작은 나라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펠로시 방문 이후 대만을 에워싸고 인민해방군이 벌인 훈련은 비슷한 전술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대만해협 ‘중간선’을 반복해서 넘어섰는데, 이는 전체 해로에 대해 중국이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이 중간선은 개념적이고 비공식적인 경계선이지만, 수십 년 동안 중국과 대만 양측이 대체로 존중해 왔다. 이런 식으로 점진적인 또는 ‘살라미 자르기식’ 접근을 채택하면서 중국의 군사행동은 세력관계를 바꿀 새로운 ‘기정사실’을 수립하려 한다. 물론 미국 제국주의 또한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비슷한 전술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상황인지는 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것보다는 덜 분명해 보인다.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이다. 중국공산당은 미국과 외국 군대를 상대로 대만해협 내 ‘통행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쟁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 점은 8월 28일 미국의 유도미사일 순양함 두 척이 대만해협을 통제하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부정하며 (미국 해군의 표현에 따르자면) “통상적인 대만해협 통과”를 실행했을 때 드러났다.

     

    미국의 작전은 의도적으로 펠로시의 대만 방문 시점보다 거의 3주 뒤로 연기됐으며, 1996년 위기 때 항공모함 전단 두 개를 대만해협에 배치했던 대응보다 훨씬 작았다. 갈등을 더 상승시키지는 않을 정도로 대응을 조정한 것이다. 중국 측도 미국의 작전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족주의 신문 <환구신보>는 미국 순양함 두 척으로는 “중국 안보에 아무런 실제 위협을 안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선전의 주된 초점이 이 이슈를 진정시키고 민족주의 분위기가 끓어 넘치지 않도록 막는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만일 중국 정부가 예행연습을 넘어 실제로 타이완을 강제 봉쇄하려 했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 특히 일본으로부터 강력한 반격에 직면했을 것이다. 일본은 중국이 군사훈련 도중 발사한 11개의 탄도미사일 가운데 5개가 오키나와 남서쪽 일본 해역에 떨어진 것에 대해 항의했다.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5개의 미사일에 대해 환호했지만, 이 미사일들은 실제로는 목표를 빗나가면서 실수로 일본 해역에 떨어졌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 아시아판은 아세안 정상회담에 참석 중이던 중국 외교부 장관 왕이가 그 미사일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눈에 띄게 놀랐다고 보도했다.

     

    그 진실이 무엇이든, 미사일 사고는 일본 기시다 정부가 자신의 군사화 목표를 추구하는 데서 선전에 활용할 수 있는 선물이 됐다. 8월 21일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제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천 킬로미터 이상의 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자신의 미사일 역량을 현행 1백 킬로미터에서 1천 킬로미터로 상향시킨다면, 중국의 연안 지역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군사적 근육을 풀고 30년간 경제침체에 따른 상대적 허약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근의 세계적 긴장 고조를 탐욕스럽게 활용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은 현행 세계 9위인 군사비 지출 순위가 내년에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물론 일본의 군사력 증강 가속화는 여러 나라들이 보여주는 비슷한 추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미국, 호주, 영국을 포괄하는 오커스(AUKUS) 협약은 특히 중국의 대만 해상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국과 오랜 국경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는 처음으로 “대만해협의 군사화”를 이유로 중국을 비난했다. 이것은 모디 정권이 쿼드(QUAD) 등을 통해 미국 제국주의와 점점 더 행보를 같이하는 과정의 일부다. 다만 모디 정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10월에는 인도군과 미군이 중국과 분쟁중인 국경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대만에 대한 장기 봉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상하이를 비롯한 동부 연안 주요 항구로의 운송을 방해함으로써 중국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힐 것이다. 세계적으로 파급효과를 미치기 이전에 중국이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만해협에 대한 인민해방군의 봉쇄는 “전쟁행위”로 간주될 것이고 서방 자본주의로부터 맹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금 러시아에게 가해진 규모를 넘어서는 경제제재나 외교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다. 다르게 말해서, 대만을 봉쇄할 경우 중국정부가 지게 될 위험부담은 전면적인 대만침공을 시도하는 경우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높을 것이다.

     

    실제 의도와 인지된 의도

     

    그러므로 펠로시 방문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시끌벅적한 반응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머지않아 침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지만, 실제 중국의 반응이 그걸 뜻하는 건 아니다. 대만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거나 차단하는 것과 관련해 중국이 모든 카드를 갖고 있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시진핑 정권은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갈등이 미국과 직접적 갈등을 뜻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의 군사력이 발전했다 해도 세계 최대 군사력을 가진 미국과 지금 당장 대결하기는 버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엉망진창이 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 정부가 그와 같은 전쟁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조심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게다가 바다를 통한 대만 침공은 러시아의 육지를 통한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해 군사적으로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한 작전이 될 것이다.

     

    세력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양측의 엄포와 선전을 실제 의도와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미래에는 세력관계가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무엇보다도 군사적으로 실패할 경우 뒤따를 정치적 파장과 러시아 유형의 제제가 부과될 경우 초래될 경제적 파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시진핑 정권은 대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

     

    게다가 현재 중국의 경제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시진핑은 8월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 훈련은 미국 측에도 새로운 전략적 문제들을 안기지만, 중국공산당에게도 심각한 난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인민해방군의 군사적 시위는 반중국 연합을 결집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주도력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G7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군사훈련에 대한 전례없는 규탄성명을 채택한 데서 보여주듯이 미국은 유럽을 비롯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을 성공적으로 묶어세웠다. 반중국 연합으로의 결집은 미중경쟁의 핵심 지역인 동남아시아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지역에서 미국은 이번 사건을 재빠르게 활용하면서도 최근의 대만해협 위기를 둘러싸고 중국의 “함포 외교”에 반대한다는 다소 제한된 메시지로 대응했다.

     

    지금의 대치가 가져올 또 다른 큰 대가는 경제적 탈동조화의 가속일 것이다. ‘중국+1’ 전략에 입각해 중국 투자분 가운데 일부라도 다른 나라로 이전함으로써 장차 대만해협의 군사적 갈등에 대비하라는 압력이 서방 기업들에게 증대하고 있다. 이건 단기적으로는 러시아가 겪은 정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지만, 중국과 세계경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호전적인 소음들이 현재로서는 진지한 전쟁준비의 신호는 아님을 말해준다. 7월 28일 시진핑과 바이든의 통화에서, 시진핑은 펠로시의 방문에 대해 다시 한 번 바이든에게 압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8월 1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이 대화에서 더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시진핑은 바이든에게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불특정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또한 미국과 전쟁으로 치달을 의사가 없음을 알렸고, 양측이 ‘평화와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신뢰성은 실제 사건들에 의해 뒷받침됐다. 핵심을 말하자면, 시진핑은 미국이 중국의 반응을 잘못 해석하거나 너무 놀라지 않도록 미국에 미리 귀띔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중국 지도자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지금 매우 위협적으로 보일 무언가를 하려 한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나의 과잉반응에 과잉반응하지 말고 사태가 통제불능으로 치닫지 않게 해 달라.

     

    중국 민족주의

     

    중국의 자본주의적 부상을 과도평가하는, 좌파 일부를 포함한, 많은 평론가들은 현 위기의 핵심 특징을 놓치고 있다. 시진핑의 반응을 결정한 것은 국내 전선에서의 위기 심화라는 점이다. 미국 제국주의에게 경고를 보내야 할 필요 또한 하나의 요소이긴 했지만 지배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펠로시의 대만방문 이전 몇 주 동안 외교적 대치가 고조됐을 때, 중국공산당의 여러 선전매체들은 펠로시가 맞이할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며 서로 경쟁했다. 시진핑은 그동안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동적인 중국 민족주의가 성장하도록 조장해 왔다. 이는 시진핑의 지배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되고 점점 더 경제성장을 산출해 낼 수 없게 된 것과 궤를 같이 했다.

     

    하지만 중국의 민족주의 우파는 이제 창조주의 통제를 벗어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발전하고 있다. 그들은 점점 더 정부 정책에 지장을 주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이 필요에 따라 정책을 조정할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이 트럼프주의 성장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과 일정하게 비슷하다.

     

    펠로시의 방문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고조된 민족주의 감정은 중국 정부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광범한 기대를 만들어 냈다. 시진핑으로서는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진 셈이었다. 그러므로 중국 정부가 벌인 일련의 군사훈련은 경제적 불황, 급증하는 실업, 끝없는 ‘제로 코로나’ 봉쇄에 지친 이들에게 오락거리로 제공한, 또한 펠로시의 비행기가 대만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실망하면서 믿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 민족주의자들을 다독이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구경거리”였다.

     

    8월 2일 저녁, 중국 본토에서 2억 명 이상이 펠로시의 대만 도착을 인터넷 생중계로 시청했다. 이것은 펠로시가 탄 비행기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의해서든 후시진의 주장 이후 널리 리포스트된 것처럼 격추를 당해서든, 어떤 형태로든 중국의 군사적 개입에 의해 대만에 도착하지 못하리라고 정말로 기대했던 뉴스플랫폼들 덕택이었다. 후시진은 중국공산당이 운영하는 <환구시보>의 전 편집인으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실망스런 결말 앞에서 중국 민족주의 집단들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평소 민족주의 우파에게는 공간을 제공하지만 반대 내용은 차단해온 소셜미디어들은 “민족적 수치”라고 비난하고 중국을 “종이호랑이”로 묘사하는 게시물들로 가득 찼다.

     

    8월 11일, <니혼게이자이> 아시아판의 보도에 따르면, “실망과 분노가 블로그 세상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이 책상을 치고 의자를 던지는 영상들이 널리 퍼졌다. 다음날 아침, 많은 중국인들이 좌절감이 끓어 넘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분위기는 곧 중국공산당에 대한 힐난으로 이어졌고, 민족주의가 어떻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시진핑 정권을 “거짓말을 했다”거나 “빈말만 가득하다”고 비난했다. 그동안 중국 민족주의 우파들 사이에서는 중국공산당 공식 선전매체들에 힘입어 푸틴에 대한 추종이 확산돼 왔는데, 일부는 펠로시를 차단하지 못한 시진핑 정권의 무능함을 러시아 독재자 푸틴의 “단호함”과 비교했다.

     

    중국공산당 내 권력투쟁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내 반시진핑 파벌에 맞서 치열한 권력투쟁에 휩싸여 있다. 권력투쟁은 중국공산당만이 아니라 과거 제국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중국 체제에서 고질적이었다. 펠로시의 대만방문 시점은 시진핑의 핵심 일정과 겹쳤는데, 마침 중국공산당 내 각 파벌의 원로들이 베이다이허에서 여는 연례 비밀회의가 시작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8월 14일 끝났다고 추정되는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10월에 열릴 제20차 당 대회에서 명목상 선출될 최상위 직책에 대한 파벌간 할당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시진핑으로서는 펠로시 방문에 허약하게 대응한 상태로 베이다이허로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진핑의 지위는 지난 몇 년 동안 실제로는 취약해져 왔는데, 이 때문에 그는 민족주의, 반미 수사, ‘대만카드’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도 점점 더 활용해 왔다. 시진핑의 지배 자체가 10월 당 대회에서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고 총서기 3연임에는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라는 중국공산당 내 최상위 기구 안에서 경쟁 파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강제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 제20차 당 대회의 결과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시진핑과 그 충성파들로만 채워졌다. -옮긴이)

     

    그럴 경우 총리 리커창을 중심으로 한 반시진핑 파벌들은 특히 경제정책에서 시진핑의 권력을 제한해 보려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시진핑 파벌들 역시 시진핑 못지않게 중국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당연히 그들 누구도 대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 시진핑에 대한 반대는 주로 그의 가중된 권력집중과 (중국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하고 경제위기를 악화시킨) 과도한 민족주의에 기반한다. 중국공산당 내 모든 파벌들은 다가오는 거대한 격변을 진동으로 느끼고 있지만, 그들의 독재국가가 어떻게 생존할지를 둘러싸고는 분열돼 있다.

     

    대만의 독립

     

    대만에서도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1995~96년 대만해협 위기 때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의 군사훈련은 대만의 대중의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역효과를 낳았다, 이것은 군사무장과 (반민주적 법률의 확장을 포함해서) “강력한” 정부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는 반사적 반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진핑은 홍콩에서 대중시위를 진압하고 자치를 제한해 낸 성과를 되풀이해서 떠들고 있다. 이는 미국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자신의 민족주의 권력기반을 달래기 위한 힘의 과시다. 하지만 대만에서 그 영향은 독립 감정에 더 기름을 붓는 것이며, 홍콩식 “일국양제”에 기초해서 통일과정을 협상해 나가려던 중국공산당의 기존 전략을 허물어뜨린다.

     

    대만에서 독립을 향한 태도는 복잡하다. 다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82% 이상이) ‘현재 상태’ 다시 말해 사실상 그러나 비공식적인 독립을 유지하길 선호한다. 공식적인 독립 선언은 중국과의 전쟁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인들 가운데 1.3%만이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한다. 대만인들의 민족정체성 강화는 차이잉원이 이끄는 친미 민주진보당 정부나 대만 자본가들의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다.

     

    1990년대 중반 첫 번째 대만해협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25%의 대만 주민들만이 스스로를 대만인이라고 인식했다. 오늘날에는 그 수치가 약 68%로 상승했다. 스스로를 중국인이자 대만인으로 인식하는 수는 1995년 47%에서 27.8%로 하락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침공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했다. 하지만 다수는 여전히 그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미국의 군사력이 막아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대만의 국민당은 과거 집권당으로서 미국 지원 아래 독재정권을 유지하다가 지금은 주요 야당이 돼 있는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17%라는 역대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당은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할 때까지 20년 동안 중국공산당과 긴밀하게 결탁했다고 비난받고 있다. 국민당의 새 지도부가 이전의 친중 입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더 친미적인 노선을 채택하고 있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차이잉원을 잇는 대선후보가 누가 되든 민주진보당이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11월 지방선거는 다른 문제다. 대만해협 갈등이 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국민당의 시장 후보들이 전국적인 당 지지율보다는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300명 이상의 대만 노동자들이 캄보디아에서 운영되는 중국계 카지노 산업의 가짜 일자리 제안에 속아 인신매매를 당한 사건에 잘 대응하지 못했다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

     

    사회주의자들은, 민족 문제에 대한 레닌과 마르크스주의 입장에 따라, 독립할 권리를 포함한 대만 인민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한다. 우리는 대만이 중국의 “양도할 수 없는” 일부라는 중국공산당과 중국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한다. 레닌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기존 러시아 제국에서 억압받던 민족들을 해방시켰으며, 그들에게 독립국가를 건설하든지 아니면 사회주의 연방에 자유롭게 결합하든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권리를 부여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타도할 필요성이고, 이는 민족이나 다른 이유에 따른 분할을 극복하여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투쟁을 실현함으로써만 성취할 수 있다. 만일 한 국가나 지역의 노동자들이 그들 지배계급의 민족주의 사상이나 목표를 채택하면서 다른 노동자들에 맞선다면, 이러한 단결은 건설될 수 없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부와 국가의 창설은 (1949년 중국에서 건설된 것처럼 왜곡된 스탈린주의 모델이 아니라면) 경제를 노동자계급의 민주적 통제와 관리 아래 둠으로써 사회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부는 국경이나 소수민족·소수종파의 권리 같은 모든 민족문제들을 세심함과 진정한 국제주의 정신에 입각해 다뤄나갈 것이다. 경제적·정치적으로 가능한 최대의 응집을 실현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강제나 민족적 특권, 국수주의를 배격한 가운데, 사회주의 연방 건설에 합류해 달라는 호소를 통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기초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만과 중국본토 그리고 더 넓은 지역 전반에서 자본주의·제국주의·전제통치에 맞선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주장한다. 또한 이 투쟁을 조직하고 진정한 지도력을 제공할 사회주의 당들의 건설을 주장한다. 만일 대만 인민들이 독립을 원한다면, 그리고 이는 오늘날 명확한 사실인데, 노동자운동은 이를 지지할 의무가 있다. 구경꾼처럼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투쟁에 뛰어드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민족독립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아래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대만의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데), 사회주의 세력은 대만 민족주의를 이끄는 자본가들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독립”이란 사실상 한 쪽의 제국주의에 맞서 다른 쪽의 제국주의 주인을 지지하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의 미래 노동자운동은, (지금은 독재 치하에서 진정한 노동자조직들이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대만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에 맞선, 그리고 독립할 권리를 포함한 민주적 권리들을 향한 대만 노동자들의 투쟁은 중국과 미국 양자의 제국주의자들과 자본가들에 맞선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면서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반 위에서, 냉전의 고조와 군사주의, 경제 침체와 후퇴, 기후 재앙과 파괴적인 전쟁들의 위험 같은 새로운 참상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국제사회주의대안(ISA) 대만·홍콩·중국 지부는 확신한다. 독립적인 사회주의 대만을 위한 투쟁을 통해서만 평화와 안전이 보장될 수 있으며,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끝없이 악화되는 갈등과 충돌을 종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투쟁은 미국과 중국 모두의 제국주의를 쓸어버리고 국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지역 전반의 나아가 세계적인 혁명투쟁의 일부이다.

     

    (옮긴이) 양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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