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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안은 노동자 기후파업3] 기후정의 계급투쟁: 충남노동자행진과 노동자 산업통제운동Ⅰ. 그린래시의 확대와 기후정의의 위기, 돌파구가 필요하다 Ⅱ. 기후정의운동의 돌파구: 세계 속 노동자 기후파업 Ⅲ. 기후정의 계급투쟁: 충남노동자행진과 노동자 산업통제운동 들어가며: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을 앞두고, 전진은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리한 이슈페이퍼(기후위기, 노동자민중의 대안: 노동자 기후파업을 시작하자)를 발행했다. 세 차례의 기사를 통해 해당 이슈페이퍼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한국 노동자 기후파업을 위하여 현장투쟁과 기후정의운동을 연결하자 메가스트라이크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자본을 압도할 힘은 노동자계급의 조직된 힘이다. 지금 기후정의운동에 필요한 것은 각 산업 현장에서 자기 요구를 바탕으로 끈질기게 싸움을 만들어 나갈 노동자계급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정태모(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모임)는 한국에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운동이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태모는 총고용보장-비정규직 철폐-노동권보장이라는 요구를 에너지산업 국유화-재생에너지 전환이라는 기후정의운동의 요구와 접목했고, 2022년부터 발전소 안팎에서 끊임없이 활동을 전개했다. 이런 활동의 결과로 정태모는 충남노동자행진을 제안하는 등 기후정의운동의 주요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정태모 같은 사례가 여러 업종과 현장으로 확산돼야 한다. 물론 여전히 한국의 대다수 노동자계급에게 기후정의는 낯설다. 그러하기에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 모두 노동 현장의 투쟁을 기후정의운동과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산업과 현장에서 노동자 통제를 지향하는 투쟁이라면 거기서부터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노동안전보건 투쟁 영역에서 노동자 현장통제권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위험 상황 시의 노동자 작업중지권이나 휴게시간 보장, 노동강도 완화와 노동시간 단축 등이 그것이다. 기후재난 상황에서 현장통제권 투쟁은 그 자체로 기후정의운동이 될 수 있다. 기후정의는 당분간 지속될 기후재난에서 인간이 존엄하게 살 권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폭염, 혹한과 같은 기후재난에서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서는 극한기후 시 작업중지권 보장, 실내 냉난방기-옥외 노동시간 단축 및 조정이 가능해야 한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시간과 노동환경을 자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기후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현장통제권 쟁취 운동은 동시에 기후정의운동일 수밖에 없다. 기후재난,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한 노동자 현장통제권이 기후정의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해, 업종을 뛰어넘는 계급투쟁을 준비하자 발전 등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면 총노동 차원의 산업전환 대응은 무기력하다. 민주노총은 아직 기후정의운동에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금속노조의 경우 산업전환 과정에서 제대로 된 요구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산업전환법’ 통과를 위한 활동을 벌여 오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계급투쟁 대신 ‘사회적 대화’로 정의로운 산업전환이 가능하다는 환상일 뿐만 아니라, 그조차 상층기구의 논의일 뿐 현장을 조직하는 요구는 아니다. 사회적 대화기구든, 산업전환 일자리 심의위원회든, 이윤에 균열을 내지 않는 수준의 노동자 참여라면 정부와 자본이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노동자는 기후위기 주범,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계급투쟁으로 물어야 한다. 금속노동자들은 산업전환 계급투쟁을 위한 자기 요구부터 세워야 한다. 전기차-수소차 전환으로 인해 내연기관 부품사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구조조정이 예고된 지 오래다. 이는 단지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친환경 전환을 요구받는 조선-철강도 마찬가지다. 자본은 산업전환 비용을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게 전가하고자 한다. 지금 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자본가와의 대화와 거버넌스가 아니다. 자본에 맞서 자기 요구를 관철할 힘, 계급투쟁이다. 금속노동자의 기후정의, 기후위기-비정규직양산 주범 금속산업 자본에 대한 징벌이다 금속산업 재벌은 기후위기 주범이다. 그것도 다단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땀으로 이윤을 쌓아올린 기후악당이다. 금속노동자의 기후정의는 바로 금속산업 재벌을 징벌하는 것이다. 금속노동자의 요구는 △금속산업 재벌이윤 환수 △물량과 무관한 생활임금 보장 △금속산업 노동자 총고용 보장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파산부품사 공영화 △다단계 하도급 생산구조 철폐 △노조파괴-비정규직양산 총수 일가 구속처벌과 경영권 박탈 등이 되어야 한다. 물론 위 요구는 개별 사업장에서의 싸움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완성차 원청노동자, 하청노동자, 부품사 노동자의 연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업장 단위, 업종 단위를 뛰어넘는 투쟁을 준비하지 않을 때, 산업전환 대응은 자칫 ‘우리 작업장 물량 확보하기’로 전락하기 쉽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감을 정규직이 빼앗는 아귀다툼은 민주노조운동도 아니고 기후정의운동도 아니다. 충남노동자행진의 의미: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확산하자 충남노동자행진은 한국 최초로 노동자가 제안한 기후정의운동이다. 2019년 9·21 기후위기비상행동부터 2023년 9·23 기후정의행진까지, 그간 한국의 대규모 기후시위에서 노동자의 역할은 대개 집회에 하루 참여하는 것에 그쳤다. 예컨대 9·23 기후정의행진에서 민주노총 부스는 참여자들에게 대나무 칫솔과 비누 등을 나누어주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계급투쟁’이라는 노동운동의 과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면이었다. 변화는 현장에서 시작됐다. 9·24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며 탄생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모임’은 기후정의운동을 현장 투쟁으로 발전시켜 왔다. 아무리 기후정의가 중요하다고 한들 자신의 일터를 폐쇄하라는 것은 결코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발전 노동자들이 노조가 ‘발전소 폐쇄’에 동의해도 되겠냐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정태모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노동자의 총고용 보장’이 상호 대립하는 문제가 아님을 명백히 했다. 그 결과 이들이 제안한 충남노동자행진에 전국의 노동자와 기후활동가들이 화답하고 있다. 충남노동자행진은 여러 업종의 노동자들이 모여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자기 현장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1차 충남노동자행진은 발전노동자들이 제안하고 주도한 기후정의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 발전노동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산업전환을 앞둔 금속노동자, 사모펀드에 장악당한 준공영제 버스노동자, 노동자 현장통제권 쟁취를 요구하는 모든 노동자가 기후정의운동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들 모두가 충남노동자행진에 모여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자기 현장으로 가져갈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충남노동자행진을 통해 사업장-업종을 넘나드는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만들어 나가자. 2. 노동자 민중의 대안 – 기간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그렇다면 기후정의 계급투쟁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계급투쟁은 기후위기를 끝내기 위한 노동자민중의 대안을 향해야 한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노동자 민중의 대안으로 기간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를 제안한다. 기간산업 산업국유화: 자본의 소유를 그대로 둔 채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이윤생산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는 모두 개별자본이 결정한다. 개별자본은 경쟁자를 제치고 이윤만 획득할 수 있다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기후재앙을 앞두고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지 않는 일, 기후위기의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폭력적인 해고를 서슴지 않는 일, 에너지 가격을 인상해 폭리를 취하는 일 등이 그래서 벌어진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개별자본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의 근원은 단 하나다. 자본이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자기 마음대로 써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수단은 개별 자본가들이 땀 흘려 만든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노동이야말로 저들이 가진 거대한 부의 진정한 원천이었다. 더구나 대자본가들은 정경유착, 불법 탈세 등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사회적 부를 사유화해 왔으며, 경제위기를 맞을 때면 막대한 공적자금을 수혈받기도 했다. 왜 한 줌 대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전체 사회가 희생해야 하는가? 정작 공적자금을 댄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되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는데도 말이다. 기후재앙 시대에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기간산업에서 즉각적으로 자본의 소유권을 몰수하고 이를 국유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에너지산업을 국유화해 재생에너지 전환을 전면화하고 노동자 민중의 필요와 계획에 따른 에너지 생산으로 대체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기본권인 에너지의 생산마저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악용한다. 한국에서 전체 발전의 30%는 민간자본 발전사가 담당한다. 천연가스 직수입을 악용해서 엄청난 돈을 버는 SK, GS 등 재벌 발전사도 그중 일부다. 한국전력공사는 재벌 발전사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비싼 값에 전기를 구매하고, 여기서 발생한 적자를 노동자 민중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해결한다. 더욱이 저들은 안정적 이윤생산을 위해서라면 위험천만한 핵발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의 무분별한 행태를 제어하자면 에너지산업의 각종 소유권을 몰수하고 국유화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제철, 조선 등의 제조 분야, 철도, 버스 등 대중교통 분야 등 탄소 배출량이 높은 각종 기간산업 역시 국유화해야 한다. 이들 기간산업에서도 경쟁의 압력에 놓인 개별자본은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윤 획득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간산업의 재벌은 그동안 비정규직·사내하청 확대 등으로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한 것을 넘어, 중소기업, 소상인 등 광범위한 노동자 민중을 수탈하며 천문학적인 이윤을 벌어왔다. 기간산업의 국유화는 해당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 대한 재벌의 문어발식 수탈을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기간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필요에 맞춘 계획적 생산을 도모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가 기후재앙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 전제다. 노동자 산업통제를 넘어 민주적 계획경제로! 국유화된 기간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실질적 통제가 있을 때만, 해당 산업은 노동자 민중의 필요를 충족하는 계획적 생산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속의 공기업들이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해고 등 악랄한 착취와 억압을 자행하는 것을 수차례 목격해 왔다.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더라도 이것이 단지 기업의 경영권을 민간 자본가에서 국가 관료의 탈을 쓴 자본가에게 양도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국유화는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게 된다. 국유화된 기간산업은 철저하게 노동자들이 자주적·민주적으로 통제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기간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해 온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넘치게 발휘해 해당 산업의 생산체계를 사회 전체의 필요를 위해 합리적으로 재편할 것이다. 기간산업 노동자들로 구성된 산업통제위원회는 이윤 생산에만 도움이 될 뿐 기후위기 대응에는 무의미한 낭비적 생산분야를 즉각 폐지할 것이며,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수렴하여 전기, 대중교통 등 필수 공공서비스 요금을 체계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간산업의 국유화 및 노동자 통제의 경험은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수단이다. 노동자 통제를 통해 노동자계급은 민주적 계획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이것은 기생충에 불과한 한 줌 자본가계급을 완전히 청산하고, 이윤 대신 사회적 필요를 위한 합리적 경제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은 손에 쥔 것을 결단코 놓지 않으려는 자본가계급의 저항에 맞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단호한 정치적 조치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330 충남노동자행진 사전집회 참여하기: bit.ly/330기후정의계급투쟁2024-03-28 | 조회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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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안은 노동자 기후파업2] 기후정의운동의 돌파구: 세계 속 노동자 기후파업Ⅰ. 그린래시의 확대와 기후정의의 위기, 돌파구가 필요하다 Ⅱ. 기후정의운동의 돌파구: 세계 속 노동자 기후파업 Ⅲ. 기후정의 계급투쟁: 충남노동자행진과 노동자 산업통제운동 들어가며: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을 앞두고, 전진은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리한 이슈페이퍼(기후위기, 노동자민중의 대안: 노동자 기후파업을 시작하자)를 발행했다. 세 차례의 기사를 통해 해당 이슈페이퍼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 메가스트라이크에 참여한 시위자들(출처: LeftVoice) 1. 독일의 메가스트라이크: 자본이 두려워한 노동자 기후파업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만남 2020년 독일의 기후운동가들은 중대한 고민에 봉착했다. 2018년부터 시작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FFF)’ 운동이 전략적 공백과 퇴조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금요일 기후파업’ 등을 중심으로 한 기후 운동 내에서 ‘체제전환(System change)’이라는 슬로건이 유행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실제로는 시민 불복종이라는 상징적인 행동, 혹은 정치 결정권자를 향한 몇 차례 집회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운동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호응 역시 줄어들던 추세였다. 기후운동이 쇠퇴하던 중에 독일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녹색당이 연합한 소위 ‘신호등’ 연방정부가 2021년 출범해 전형적인 녹색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연방정부는 기후운동의 상승기에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조치를 약속했지만, 그 대신 기후위기의 비용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긴축 생태’ 정책을 펼쳤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후 에너지 위기가 증폭되며 재생에너지 전환은 동력을 상실했다.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과이 늘어나고 군수산업 생산이 확대되는 등 퇴보가 이어졌다. 기후정의운동이 짧은 시간이나마 쌓아온 성과들이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 기후활동가들이 새롭게 시선을 향한 곳은 바로 노동운동이었다. 이들은 기후정의운동에 더 많은 노동계급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기후 문제를 노동자들의 일터로 가져가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 첫 시도로 기후활동가들은 대중교통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버스, 철도 등 대중교통 부문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교대 근무를 하며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급여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청년층의 유입은 줄어들고 퇴직률이 높아 이미 수만 명의 운전자가 부족한 가운데, 교통요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으며, 특히 농촌 지역의 여객 운송 시스템은 점점 더 축소되고 있었다. 이는 1990년 이래 지속된 공공부문 민영화의 결과다. 1990년대 이후 연방정부는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자유화하면서 인력 감축, 업무강도 강화, 불안정한 고용, 소득 감소, 노동조합 약화 등 각종 긴축 조치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철도 공기업이었던 ‘도이체반’도 1994년에 민간 기업으로 전환되고, 철도 여객 서비스의 상당 부분도 1996년 이후 대부분 민간 공급업체로 넘어갔다. 민영화의 여파 속에서 조직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단체와 소속으로 분열되는 등 투쟁의 구심점을 모아내지 못한 채 결속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은 침체하던 두 운동에 생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2020년 지역 대중교통 단체교섭에 연대하며, 파업 당일 30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공서비스노조(Ver.di)의 투쟁을 방문하고 지원했다. FFF는 교통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자 “#wirfahrenzusammen (#WeDriveTogether) 2020”라는 캠페인을 추진하였다. 이 캠페인을 통해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은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연대를 조직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승객들로부터 연대 성명서를 수집하고, 정치인들을 만나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달했으며,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을 조직했다. 심지어 활동가들이 직접 노동자들에게 파업에 나서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물론 초창기에 기후 파업은 대다수 대중교통 노동자들에게 현실적이지 않았다. 공동의 행동을 논의하기 위한 조직이나 연대체에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였고, 대중교통 노동자들 다수는 기후 의제에 회의적이었다. 파업에 연대하는 기후활동가들은 때때로 자신들을 소위 ‘기후 끈끈이(Klimaklebern)*’ 와 동일시하는 왜곡된 시선과도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여러 지역에서 헌신적으로 이루어진 연대의 결실로 일부 운송노동자들이 기후정의운동을 자신들의 운동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2020년 파업을 계기로 여러 도시에서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동맹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의 단체들이 설립되었고, 2024년 현재 6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약 1,000명의 활동가들이 #wirfahrenzusammen 캠페인에 참여하여 대중교통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몸에 접착제를 바르고 도로를 점거하거나 미술품을 훼손하는 등의 직접행동 전술을 취하는 기후운동가들을 향한 멸칭. 주로 이러한 방식의 직접행동을 주도해온 환경단체 ‘마지막 세대(Letzte Generation)’를 가리킴. 독일 메가 스트라이크: “운송노동자 생활임금이 기후정의다” 2023년 3월 3일,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 세계 기후파업에 맞춰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공공서비스노조는 전국적으로 지역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하루 동안 행동할 것을 촉구하고 6개 연방 주에서 경고 파업을 벌였다. 그 결과 최소 30개 도시의 20만 명 이상이 파업에 참여했다. 독일 고용주 연맹(BDA)의 CEO 슈테펜 캄페터는 “노조가 정치파업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파업을 비난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은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결과다. 노동조합은 운송노동자 생활임금 보장 등 경제적 요구를 기후정의운동의 요구로 제시함으로써 폭넓은 사회적 지지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후정의운동은 노동자들의 참여를 통해 실제 파업이라는 물리적 힘을 확보하고 자본가들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3월 27일, 파업은 이제 전체 운송부문으로 확대됐다. 대중교통 종사자뿐만 아니라 항공, 철도, 수상 운송 종사자들도 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독일 최대 공항인 프랑크푸르트 공항 등 전국 공항에서 항공편 운항이 중단됐다. 전국에서 장거리 열차 운행이 멈췄고, 베를린에서는 도시고속철도 운행이 끊기고, 독일 최대 항구인 함부르크 항도 마비됐다. 한 언론의 표현처럼 독일 안의 “모든 바퀴가 멈췄다(All wheels stand still!).” 대규모 파업에 놀란 사측은 27개월 동안 5% 임금인상과 일시금 2,500 유로(약 350만 원) 지급을 제안했다. 독일 내무장관 낸시 패저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매년 14억 유로(약 1조 9천억 원)가 추가로 든다”며 난색을 표했다. 당시 독일 정부는 자가용 중심 정책의 일환으로 고속도로 건설 등 대규모 토건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운송노동자들의 파업은 기후활동가와 민중으로부터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월요일에는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버스, 트램, 지하철이 멈춰 서게 됩니다. 대중교통 노동자의 높은 임금은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하고 절박한 인력 부족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는 결국 운송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기후 파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과 다른 기후 운동가들이 이 파업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녹색당을 포함한 독일 정부는 고속도로 건설과 자동차 산업에 대한 보조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2. 프랑스 토탈(Total) 정유공장 파업 토탈의 그린워싱: 노동자 민중의 피눈물로 만든 “석유 제로” 2021년 1월 4일, 프랑스 그랑퓌 정유공장 노동자들은 석유·가스부문 거대 다국적기업인 토탈(Total)의 정유공장 폐쇄에 맞서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위원회를 통해 아래로부터 자주적으로 조직된 파업은 45일 이상 전개됐다. 정유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며 철도, 경제, 원자력발전소 노동자, 교사, 학생 등 사회 각계각층으로 이루어진 계급적 동맹이 건설됐고,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강렬한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일부 기후·환경운동 단체들도 토탈 정유공장 파업을 지지하는 데 앞장섰다. 그랑퓌 정유공장 파업의 배경에는 토탈의 “석유 제로” 전략이 있었다. 지난 수년간 토탈은 정유공장 여러 곳을 폐쇄하면서 그랑퓌에서 200개, 관련 하청업체에서 500개의 일자리 감축 계획을 제시했다. 그랑퓌 지역의 고용 대부분은 토탈 정유공장에 의존하고 있었다. 일자리가 없는 농촌 지역에서 정유공장 폐쇄는 노동자들을 실업과 노동조건이 훨씬 열악한 최저임금 일자리로 내모는 일이었다. 한편 토탈이 자국의 정유공장을 폐쇄하는 진정한 목적은 다른 국가로 정유공장을 옮기는 것이었다. 공장 이전 예정지들은 원유매장지에서 가깝고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환경기준이 느슨한 아프리카 국가 등이었다. 실제로 토탈이 추진하고 있는 우간다 틸렝가 석유 시추 프로젝트와 동아프리카 원유 송유관(EACOP) 건설 사업은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1,443㎞ 길이의 송유관이 우간다와 탄자니아의 주요 생태계 보전지역을 가로지르면서 국립공원이 파괴되고, 1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토지를 빼앗긴 채 강제 이주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토탈의 ‘석유 제로’ 전략은 기후위기의 고통을 가장 열약한 지역과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그린워싱 정책이었다. 그린워싱에 맞선 동맹과 토론: 노동자 통제만이 친환경 전환의 유일한 경로다 토탈 그랑퓌 노동자들은 토탈의 그린워싱에 맞서 일자리를 위한 투쟁과 환경을 위한 투쟁을 묶어내는 광범한 공동전선을 형성했다. 토탈 정유공장 노동자들은 수년 전 정리해고가 관철됐던 라메드 정유공장 노동자들과 만나 소통하고, ‘지구의 친구들’, ‘그린피스’ 등 기후·환경운동 단체와 10월에 접촉했다. 기후·환경운동가들은 화석연료 자본과 맞서는 투쟁에 매우 흥분했고, 이를 계기로 형성된 노동자와 기후운동의 결합은 파업의 큰 동력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도 에너지·산업 전환에 관한 토론을 이어 나가며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다국적기업의 손으로 친환경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들은 “노동자들이 공장의 통제권을 장악하면 오염을 덜 일으킬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윤 본위의 생산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이라면 생태적 한계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와 환경 문제 두 가지 모두, 그 해답은 우리 노동자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더 똑똑해서가 아니에요. 우리에겐 노하우, 즉 실질적인 경험과 지식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우리 손으로 장비들이 작동하게 만들죠. 그래서 만일 우리가 통제권을 쥔다면, 우리는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고 환경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갖고 운영할 거예요. 환경은 바로 우리에게, 우리 가족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건 토탈의 CEO, 패트릭 푸야네와 정반대 편에 있는 거죠.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윤 기계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요.” 3. 계급투쟁이 기후정의운동을 구원했다 노동운동과의 결합을 통한 기후운동의 반등 세계 기후정의운동은 자본을 강제할 힘과 실제 변화까지는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몇 차례의 대규모 시위와 직접행동에 대한 회의가 확산하며 기후정의운동은 서서히 정체했다. 한국의 기후정의운동도 마찬가지다. 앞서 소개했듯, 기후위기 주범인 SK가 오히려 9월 기후행진 참여를 독려하는 상황은 미약한 한국 기후정의운동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독일 메가스트라이크와 프랑스 토탈 노동자투쟁의 사례는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기후운동이 반등하는 방법임을 시사한다. 특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 주범인 자본과 맞서 싸울 힘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과 직접 대립하는 유일한 계급이자, 이윤 창출을 중단시킬 능력을 갖춘 유일한 계급이다. 자본가들이 대중교통 노동자들의 파업을 ‘정치파업’이라며 경계한 이유다. 기후위기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 갖는 잠재력을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계급과의 만남을 기후운동의 과제로 메가스트라이크 사례에서 기후활동가들은 노동조합 조직을 자기 과제로 삼고 파업을 준비했다. 예컨대 이들은 대중교통 노동자의 생활임금 보장과 노동시간 단축을 기후정의운동의 요구로 채택하고 노동자를 조직했다. 특히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에 기후정의라는 정당성과 사회적 지지를 부여함으로써, 기후운동을 낯설어하던 노동자들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꿔냈다. 이는 기후정의파업이 실제 노동자파업이 되도록 하는 주요한 동력이다. 한국의 노동자 기후파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기후정의운동 역시 노동자계급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FFF 독일지부 역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다년간의 조직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유기적 결합을 만들었음을 기억하자. 330 충남노동자행진 사전집회 참여하기: bit.ly/330기후정의계급투쟁2024-03-26 | 조회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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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안은 노동자 기후파업1] 그린래시 확대와 기후정의의 위기, 돌파구가 필요하다Ⅰ. 그린래시의 확대와 기후정의의 위기, 돌파구가 필요하다 Ⅱ. 기후정의운동의 돌파구: 세계 속 노동자 기후파업 Ⅲ. 기후정의 계급투쟁: 충남노동자행진과 노동자 산업통제운동 들어가며: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을 앞두고, 전진은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리한 이슈페이퍼(기후위기, 노동자민중의 대안: 노동자 기후파업을 시작하자)를 발행했다. 세 차례의 기사를 통해 해당 이슈페이퍼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해 8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초저배출구역(ULEZ) 확대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기후정의운동의 급격한 성장과 정체 우리는 2018년의 그레타 툰베리를 기억한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던 툰베리가 시작한 결석시위는 1년 만에 152개국 1,600개 지역의 동맹휴학으로 확산했다. 현실이 된 기후재난을 세계 각지의 청소년들은 피부로 느꼈고, 툰베리는 그들의 슬픔과 분노에 불을 지폈다. 툰베리와 청소년들의 결석시위는 양식 있는 자유주의자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갈수록 파괴적이고 빈번해지는 폭염, 홍수, 산불 등의 기후재난 역시 사람들을 움직였다. 2010년대 말,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시위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2020년과 함께 시작한 코로나19 위기는 기후시위를 더욱 발전시켰다. 사람들은 기후위기가 더 심각한 보건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기후위기는 단순한 생태파괴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초래한 총체적 위기의 한 축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거리의 기후시위는 더욱 커져갔다.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2021년 11월, 100여 개 나라에서 ‘기후정의 세계 행동의 날’ 시위가 열렸다. 특히 COP26 회의장 앞에만 10만 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 탈석탄과 기후정의 실현을 요구했다. 갈수록 불어나는 기후시위 앞에 국가와 자본도 ‘그린뉴딜’, ‘탄소중립’, ESG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시위가 변화를 만들어 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 각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기후정의에 역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COP28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거부했고, 폐막 이틀 뒤 의장은 “화석연료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간 한미일 등 22개국은 원자력 에너지 3배 확대 선언을 발표했고, 작년 4월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독일에서도 핵발전 회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영국은 기업 100곳에 북해 석유·가스 시추를 신규 허용했다. 프랑스는 환경규제가 유럽의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중국과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며, 유럽연합 환경규제의 일시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주요국 그린래시(greenlash) 사례> 국가 내용 그린 래시 확대 스웨덴 2030년 내연기관 판매금지에 대한 반대 여론 우세(찬성 42% 반대 47%) 독일 2024년부터 가정용 화석연료 보일러 사용금지법안 채택 후 과도한 기후대응 정책에 반대하는 독일을위한대안당(AfD) 지지율 상승(2위, 22%) 네덜란드 2019년 도입된 가축농가질소규제배출 비판 정당인 농민시민운동(BBB) 지지율 10%대로 상승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아젠다를 반대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 상승 탄소 중립 후퇴 EU ‘기업 지속가능성 주의 지침’ 대상에서 금융기업 제외 논의 시작 신규 배기가스 규제안인 ‘유로 7’을 현행 ‘유로 6’으로 유지 스웨덴 2024년 기후 대책 관련 예산(약 2.6억 크로나) 삭감, 유류세 감면 등을 통한 내연기관 자동차 이용자 부담 경감, 신규 원자로 10기 건설 계획 발표 등 탈원전 기조 철회 영국 휘발유 및 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 연기(2030년→2035년) 기타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는 석탄화력발전 규제 등 에너지전환조치 완화 2024년 「글로벌 트렌드」, 현대경제연구소, 2023.12.29. 자본의 행보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ESG의 퇴조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4분기 미국의 ESG 펀드에서 50억 달러(약 6조 6,700억 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가며 전례 없는 적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최근 기업 경영진의 ESG 언급이 전반적으로 줄었다고도 전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분기별 실적 발표에서 ‘ESG’가 언급된 횟수는 2020년 말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자본의 ‘그린워싱’을 비판했으나, 자본은 이제 거추장스러운 ‘워싱’조차 하지 않는다. 거리의 기후시위 역시 빠르게 퇴조하고 있다. 화석연료 퇴출을 거부한 지난해 COP28 회의장 앞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그러나 그 규모와 위세는 불과 2년 전의 COP26과 비교해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초창기 대규모 시위는 기후위기에 분노를 표출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분노의 표출만으로는 국가와 자본의 변화를 강제하지 못했다. 시위의 효능감과 동원력은 급격히 감소했다. 새로운 운동으로 떠올랐던 기후시위가 어느덧 낡고 진부한 것이 된 것이다. 그 빈틈으로 극우의 기후·환경운동에 대한 반발, 이른바 ‘그린래시(greenlash, green+backlash의 신조어)’가 확산하고 있다. 2023년은 관측 이래 지구가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됐다. 지구는 뜨거워지는데 기후정의운동은 식어가고 있다. 그 덕분에 국가와 자본의 그린래시는 더 빨라지고 있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2010년대 후반 이후 성장한 기후시위에 자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우선 진단해야 한다. 이제 관점을 바꿔 전지적 ‘자본’의 시점에서 기후운동의 성장을 돌이켜 보자. 기후위기와 함께 성장한 녹색자본 2018년 이후 급속도로 성장한 기후시위에 대해 국가와 자본은 ‘녹색자본 축적 전략’으로 대응했다. 단적인 예가 ‘그린뉴딜’이다. 한국, 미국 등에서 자본은 재생에너지, 전기차·수소차 전환을 내세우며 기후위기 해결사로 등장했다. 심지어 ‘좌파적’ 버전의 그린뉴딜도 마찬가지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그룹(DSA) 소속 하원의원이던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019년 2월 7일 “그린뉴딜을 위한 연방정부의 의무를 인식한다”라는 제목의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의 골자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백만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린뉴딜의 주창자들은 재생에너지 산업이 화석연료 산업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그 근거는 부실했고, 녹색자본은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린뉴딜의 공동발의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워렌을 보자. 워렌은 그린뉴딜 참여 기업에 대한 연방정부의 직접투자와 전략적 지원으로 수출을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첫째, 타국의 녹색전환을 지원하고, 둘째, 자국 녹색산업의 해외시장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공적자금으로 녹색자본을 육성해 해외시장 장악에 나서자는 것으로, 이는 일종의 ‘녹색제국주의’다. 심지어 버니 샌더스조차 화석연료 기업에 대해선 몰수 수준의 강력한 제재를 주장하지만, 재생에너지 등 녹색자본에는 별다른 제재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른바 그린워싱과 ESG 열풍은 녹색전환이 새로운 이윤 창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자본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거리의 기후시위가 성장할수록 녹색자본이 함께 성장했고 국가는 이들을 지원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은 전기·수소차 확산을 위해 5년간 20조 3천억 원 지원을 계획했다. 물론 그 수혜자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가장 많이 만든 현대차 그룹이다. 윤석열 정부 역시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기술지원’을 명목으로 삼성전자, 현대차, 한화 등 재벌에게 61조 1천억 원 지원을 약속했다. 전쟁과 에너지 위기의 교훈: 녹색은 비싸고 탄소는 싸다 그러나 녹색이윤의 꿈은 일장춘몽(一場春夢)에 그쳤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요한 계기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자본은 공급망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쟁 이후 러시아는 유럽-미국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그 결과 2022년 유럽과 미국에 ‘에너지 위기’라는 공포가 휩쓸었다. 2021년 12월 1kJ당 3.63 달러이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2022년 8월엔 9.33 달러로 세 배 가까이 급등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대중에겐 빈곤으로 나타나고, 자본에겐 생산원가 상승, 즉 이윤율 저하로 나타난다. 마침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시작됐다. 이제 자본은 ‘그린워싱’을 할 여력조차 없다. 이윤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핵과 석탄은 대수가 아니다. 비싸고 간헐적인 재생에너지 대신 값싸고 항구적인 석탄발전으로 전 세계가 회귀하기 시작했다. 가스 공급의 15%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네덜란드는 이미 2022년에 석탄발전 생산 상한선을 해제했고 이탈리아도 석탄발전 확대를 선언했다. COP28의 화석연료 퇴출 거부는 그 연장선이다. 핵발전 역시 증가 추세다. 지난 1월 31일 국제에너지기구(IAEA)에서 각국 에너지 장관들은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선택하거나 그 사용을 지원하는 국가들은 청정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의) 잠재력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석유와 가스의 비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SG가 퇴조하는 이유 역시 ESG 펀드의 수익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시가총액 상위 500개 기업(S&P500)의 주식이 20% 증가하는 동안, 글로벌 청정에너지 관련 주식은 20% 감소했다. 핀란드의 한 자산운용사 매니저는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여파,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기후 테마 펀드들이 수익률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국가와 자본은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존권 위기의 책임을 기후·환경운동에 돌리고 있다. “생태 광신주의가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2023년 7월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Vox) 정치집회에 대한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의 연대사다. 지배자들은 에너지 가격 상승에 신음하는 대중에게 “이건 값비싼 재생에너지를 요구하는 기후활동가들 때문”이라고 호도한다. “기후위기 책임을 함께 분담하자”며 대중에게 에너지 절약을 강요하는 일부 시장주의적 환경운동의 행위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그 결과 세계 각지에서 극우파는 기후·환경운동을 비난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렇듯 자본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그린래시에 나서고 있다. 안타깝지만, 지금 자본과 국가에게 거리에서 열리는 기후시위는 대수롭지 않다. 한국 기후정의운동이 마주한 갈림길 한국 역시 세계 기후정의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그레타 툰베리의 등장은 한국에서도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민중에게 큰 자극이었다. 2019년 고등학생들의 금요 결석시위에 뒤이어 같은 해 9월, 최초의 대규모 기후시위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시작됐다. 이 흐름은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으로 발전했으며, 그 내용 역시 ‘자본주의 성장체제’를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문제의식이 깊어졌다. 이는 2023년 4·14 기후정의파업에서 정부의 전기·가스요금 인상 반대를 내걸게 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기후정의행진이 자리를 잡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기후정의운동은 세계 기후정의운동과 비슷한 정체 내지 하강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히 참가자 수의 정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2023년 9·23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SK에코플랜트(건설)는 ESG 경영의 일환으로 9·23 기후정의행진을 홍보했다. 이는 기후정의행진이 정부와 자본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2019년 기후정의행동 이후 만 4년이 흐른 지금, 단순히 9월 하루 거리에 모여 요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운동이 발전할 수 없다. 거리 행진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을 넘어, 자본과 정권에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330 충남노동자행진 사전집회 참여하기: bit.ly/330기후정의계급투쟁2024-03-22 | 조회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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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페이퍼] 기후위기, 노동자민중의 대안: 노동자 기후정의파업을 시작하자!2024-03-13 | 조회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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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지는 거대한 그린워싱, 탄소배출권거래제UAE 국영석유회사 정유화학단지 사진: Getty Images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게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배출권을 매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온실가스를 감축해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배출권이 필요한 기업에게 이를 판매할 수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전 세계적 확산과 고도화 속에서, 민간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탄소배출권을 만들어 거래하는 시장, 즉 자발적 탄소시장(VCM) 및 관련 파생금융상품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탄소배출권거래제는 기후위기 해결에 무용할 뿐 아니라, 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탄소배출 ‘면죄부’로 사들인 녹지, 남한 면적의 2.4배 2023년 9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소재 기업 ‘블루카본(Blue Carbon)’은 아프리카 5개국과 2,450만 헥타르(ha) 규모 삼림 탄소배출권 협약을 맺었다. 협약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블루카본은 협약체결국에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하고, 각국은 협약 대상에 해당하는 자국의 산림을 보전한다. 블루카본은 파괴되지 않은 삼림의 탄소흡수량을 계산해 각국 정부로부터 탄소배출권을 발급받는다. 이 프로젝트는 라이베리아 전체 면적의 10%,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의 20%에 달하는 삼림을 대상으로 하며, 이는 남한 면적(약 1,000만 헥타르) 2.4배에 달한다. 2022년 8월 설립된 블루카본은 개발도상국 삼림을 직접 매입하거나 각국 삼림보전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탄소배출권 사업을 추진해왔다. 아프리카 탄소 시장에 4억 5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블루카본은 짐바브웨에만 이미 15억 달러를 "탄소배출권 사전 자금조달" 명목으로 지급했다. 이는 짐바브웨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하는 교육·아동보육 세출보다도 많은 액수다. 신생기업 블루카본의 막대한 자금력과 신속한 추진력의 배후에는 역설적으로 화석연료 자본이 존재한다. 블루카본 대표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은 두바이 토후국을 통치하는 막툼 가문으로, 현 UAE 총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친척이다. 막툼 가문은 190년간 UAE를 통치하며,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화석연료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 자신부터가 중동, 남아시아,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화석연료·인프라사업을 운영한다. 블루카본과 화석연료 자본 간의 밀접한 관계는, 블루카본의 배출권 사업이 UAE의 탄소배출 상쇄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아래, 탄소배출권을 구매한 기업은 구매량만큼 탄소배출을 줄인 셈이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미리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 3,700만 톤인데, 블루카본이 만들어내는 배출권은 최대 연 2억 5,000만 톤으로 예상된다. 블루카본이 만든 배출권을 UAE가 전부 사들이면, 아랍에미리트는 이론적으로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실제로 UAE는 2023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8) 기간 동안, 의장국 지위를 활용해 삼림 탄소배출권 사업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끊임없이 선전했다. COP28 의장단이 민간 탄소시장(자발적 탄소시장, voluntary carbon market)1) 확대를 위해 개최한 회담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미국 기후특사 등 고위 인사들은 자발적 탄소시장을 강력히 지지했다. COP28 종료 후 UAE는 탄자니아와 6개 국립공원 180만 헥타르에 달하는 삼림을 대상으로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 토지기반 탄소배출권 사업계약을 체결했으며, 라이베리아 정부는 서아프리카 전체 산림 면적 10%에 해당하는 100만 헥타르 산림에 대한 독점권을 30년 동안 블루카본에 넘겼다. 케냐, 잠비아, 짐바브웨 정부도 이와 유사한 양자 협정을 체결하였다. 1) 민간이 탄소배출권을 만들어 거래하는 탄소시장. 탄소시장은 정부가 탄소배출 허용 상한을 정하고 탄소배출권을 할당하는 '규제시장'과 '자발적 시장'으로 구분된다. 한편, COP28은 산유국과 화석연료 자본의 공세 속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을 거부하는 후퇴로 끝났다. COP28에서 화석연료 자본을 철저히 대변해온 UAE는 향후 50년간 석유 생산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UAE 국영 에너지기업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는 2030년까지 석유 생산량을 올해보다 41%, 가스 생산량을 1/3 늘릴 계획이며,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 40% 증가를 뜻한다. 화석연료 자본은 증산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하고자 대대적인 탄소배출권 사업을 벌이고 있다. 라이베리아 재무개발기획부 장관(왼쪽)과 블루카본 회장(오른쪽) 사진: Gulf News 탄소가격제, 기후위기 해결에 무용하다 탄소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 등 탄소가격제의 핵심 논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을 경제주체가 부담케하는 ‘내부화’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탄소에 가격을 매기면 기업이 탄소배출 비용을 덜고자 탄소를 배출하는 생산 방식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신기술을 도입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는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 배출권거래제는 ‘상쇄배출’, 즉 배출권 구매나 온실가스 배출 상쇄로 인정되는 조치를 제도화해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량 유지나 확대를 허용한다. 실제로 배출권거래제 도입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나날이 늘었으며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자원은 오히려 배출권거래제 시스템 구축 그 자체에 낭비되고 있다. 상쇄배출권 시장을 겨냥한 인위적인 산림·습지 보호와 재조림 사업은 자연과 토지의 상품화, 지역 생태계 파괴, 지역 민중의 공동체적 삶 붕괴 등 심각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실제 그에 맞선 저항과 투쟁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학계와 언론에 따르면, 배출권 사업이 창출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거의 없다. 자발적 탄소배출권 거래의 75%를 차지하는 탄소배출권 인증기관 ‘베라(Verra)’가 인증한 열대우림 보호사업 대부분이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없다는 조사 결과들이 대표적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베라가 인증한 열대우림보호 사업 중 10% 이하만 산림벌채 감소로 이어졌으며, 90% 이상은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2022년 6월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베라가 더 많은 탄소배출권을 발급받기 위해 사업대상 산림의 파괴 위협을 평균 400%가량 부풀려왔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베라의 탄소배출권 중 94%가 실제 탄소배출 감축 효과가 없는 ‘팬텀 크레딧’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다국적 석유기업인 셰브론이 베라로부터 구매한 탄소배출권 93%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으며, 반대로 42%는 환경이나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연구결과가 확인되었다. 애플, 구찌 등 거대자본이 탄소배출권 시장에 투자한 막대한 자금은 그저 ‘면죄부’ 발급 비용이었던 셈이다. 배출권거래제의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탄소세 역시 마찬가지다. 오염행위 자체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오염행위에 가격을 붙이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배출권거래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도 않거니와, 이는 소득이 더 낮은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불공평한 시스템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소득 대비 에너지요금 비중이 높아, 자본가 부유층과 노동자 민중 중 후자가 더 많은 비율을 탄소세로 납부하게 된다. 녹색식민주의의 도구, 탄소배출권 사업 블루카본 사례에서 드러나듯, 대자본이 주도하는 탄소배출권 사업은 기후위기 해결을 명목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종속을 강화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진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본거지인 아마존에서는 탄소배출권 창출을 위한 열대우림 보호사업 상당수가 심각한 인권침해와 토지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페루 북서부 알토마요에서는 현지 주민 수천명이 디즈니의 자금 지원을 받는 열대우림 보호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디즈니, 마이크로소프트, 유나이티드항공 등은 이 사업으로 창출한 탄소배출권을 구입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했다. 팔레스타인에서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도 산림조성 사업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체계적으로 점령해왔다. 준정부기구인 유대인민족기금(JNF)은 네게브 사막에 거주하는 베두인계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강제로 철거하고 국립공원을 조성하는 등, 식민주의 조림사업을 벌여왔으며 최근에는 이를 배출권 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블루카본의 행적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블루카본과 라이베리아 정부가 체결한 계약서 초안에 따르면, 블루카본은 지역사회와 개인 농장, 보호구역에 배정된 탄소배출권을 판매할 권리를 확보한다. 또한, 10년 동안 면세 혜택을 누리면서 해당 토지에서 나온 탄소배출권을 팔아서 얻은 수익금의 70%를 챙기게 된다. 나머지 30%는 라이베리아 정부의 몫이다. 이때 배출권 가격의 10%만큼 로열티가 발생하고, 그중 절반만이 지역사회에 돌아간다.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는 라이베리아의 경우, 블루카본의 배출권 사업으로 인해 최소 백만 명 이상이 생계에 중대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탄소배출권 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아랍에미리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탄자니아는 국립공원 보전과 확장을 명분으로 국립공원 인근 거주민들을 폭압적으로 내쫓고 있다. 공권력을 동반한 강경한 퇴거 조치로 주민들은 주거지를 잃고 가축을 압수당하는 등 생존권을 극도로 침해받고 있으며, 탄자니아 당국과의 갈등이 심화된 일부 지역에서는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살해도 확인되고 있다. 2023년 5월에는 탄자니아의 아루샤 지역에서 국립공원 당국이 어부들을 보호구역에서 낚시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하면서 어부 2명이 실종되고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탄자니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COP28에서 글로벌사우스를 위한 손실과 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조차 1,000억 달러 규모에서 8억 달러 수준으로 난도질당하는 등, 그간 기후위기를 만들어온 자본주의 열강은 노골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상쇄배출권 사업에 적극 뛰어들며 녹색 식민주의로 개발도상국의 의존성을 강화하고 있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COP28 기간 중 “자발적 상쇄가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돈을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탄소배출권 사업을 옹호하였다. ‘글로벌사우스’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의 책임은, 자본의 안정적 이윤창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을 명분으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저개발국 간 위계를 심화하고, 다국적 대자본과 개도국 정부가 함께 저개발국 민중을 억압하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유대민족기금의 '조림' 프로젝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베두인들 사진: Aljazeera 노동자계급의 기후정의운동이 절실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시장주의 기후정책과 담론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저탄소 녹색성장’과 함께 2010년대 중반에 도입된 배출권거래제는 오늘날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규제완화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세 차례2)에 걸쳐 배출권을 기업에 무상으로 할당해왔다. 정부가 기업에 지급한 무상배출권 비중은 1차에 100%, 2·3차에 각각 97%, 90%에 달한다. 해당 기간 산업부문이 판매한 배출권은 3,800만 톤에 달하며, 톤당 약 2만 원에서 2만 5천 원에 매매되었다. 기업들이 무상배출권을 판매하여 챙긴 수익은 약 8,500억 원에 이른다. 탄소배출권이 온실가스 배출 상위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활용된 셈이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최다기업인 포스코의 경우, 2022년에 받은 무상 배출권이 7,715만 톤으로 온실가스 배출량(7,019만 톤)을 넘어서고, 2017년 이래 무상 배출권 할당량은 실제 배출량을 세 번이나 넘겼다. 어떠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 없이도 탄소배출권이 남아도는 구조는 더 많은 탄소배출을 장려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2016년~2021년에 걸친 기간 동안 산업부문이 줄인 온실가스는 고작 230만 톤에 불과하다. 2) 1차(2015~2017년), 2차(2018~2020년), 3차(2021~2025년) 자본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책기조는 윤석열 정권 들어 더욱 노골화되었다. 정부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2023년 3월 확정하며 산업부문 탄소배출 허용량을 810만 톤이나 경감한 반면, 국제감축 목표치는 400만톤 늘렸다. 국제감축이란 국외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벌인 뒤 감축 실적을 인정받는 제도를 뜻한다. 여기에 더해 상쇄배출권 한도 또한 기존 5%에서 10%로 확대했다. UAE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탄소배출권으로 상쇄하려는 목적이다. 산림청은 탄소배출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산림투자를 독려하고자 기업 대상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정부는 14개국에 42개 기업이 진출해 있는 국외 조림사업을 탄소배출권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솔로몬제도 등 글로벌사우스 국가, 수몰위기국가 대상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이미 SK,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이 배출권 시장에 진출한 가운데, 2023년 2월에는 SK 계열사인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가 ‘베라’의 인증을 받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자사 윤활유 제품을 '탄소중립 윤활유’로 홍보하다 환경부의 그린워싱 제재를 받았던 촌극도 있었다. 탄소가격제를 비롯한 시장주의 기후 해법은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대신 배출량 증가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제국주의 자본의 책임은 녹색식민주의와 함께 저개발국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무분별한 자연 수탈로 이윤을 축적해온 자본은, 이전과 똑같은 방식에 그저 녹색 꼬리표를 붙였을 뿐이다. 이 모든 부조리 뒤에 이윤을 위한 생산체제가 존재한다. 자본의 이윤축적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는 체제 내 기후위기 해결책이 아니라, 자본이 축적한 막대한 생산력을 온전히 기후위기 해결에 투입할 수 있도록 강제할 힘이 필요하다. 기후정의운동에 가장 절실한 ‘자본에 대한 강제력’은 자본의 이윤을 생산하는 주체이자 그 생산을 중단할 수 있는 주체, 즉 노동자계급의 기후정의운동에 근거해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 재벌기업이 그린워싱 국제사업으로 글로벌사우스 종속을 강화하는 지금, 한국 노동자계급의 생산과 산업에 대한 통제투쟁은 세계 노동자 민중과 맞닿는다.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 속에서, 전 세계 노동자는 자본에 맞선 투쟁 속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2024-01-12 | 조회 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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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기후 레닌주의를 향하여!원문 기사 https://www.leftvoice.org/for-climate-leninism/ 나다니엘 플라킨 2023년 10월 1일 안드레아스 말름은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생태적 레닌주의”를 요구한다. 좋다. 하지만 레닌주의란 무엇보다 자본가 국가를 분쇄하는 것을 뜻한다. 거대 재앙의 위험이 … 임박했다. 모든 신문이 이것을 되풀이해 쓰고 있다. … 결의안들은 …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점, 재앙이 아주 가까워졌다는 점, 재앙에 맞서기 위해 극단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 파멸을 피하려면 민중의 “영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인정한다. 모두가 재앙을 말하고 있으며, 모두가 재앙을 인정한다.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 누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면, 재앙에 맞설 방법들이 있다는 것, 재앙에 맞서기 위한 조치들이 더없이 분명하고, 간단하며, 완벽하게 실현 가능하고, 민중의 힘이 온전히 닿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조치들이 실행되지 않는 것은, 전적(全的)으로 그 실현이 한 줌 자본가들의 막대한 이윤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란 점도 알 수 있다. - 레닌 레닌은 이 글을 1917년 10월에 썼다. 이 글에서 레닌은 러시아에서 다가오는 기근의 위험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소한 생략을 제외하고서 보면, 위 인용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묘사한다. 기후재앙이 진행 중이라는 걸 모든 사람이 안다. 지난 가을 COP27 기후 회의에서는 사실상 모든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참여한 엄숙한 선언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필요한 조치들은 간단하지만,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XR)’은 여러 나라에서 도로를 막아섰다. 독일에서는 여러 활동가 단체가 정부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해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엔데 겔란데(Ende Gelände, 길이 없음)’는 석탄 광산을 점거했다. 최근에는 ‘레츠테 게네라치온(Letzte Generation, 마지막 세대)’ 회원들이 강력 접착제로 자기 몸을 도로에 붙여 교통을 방해했다. 두 단체 모두 끔찍한 탄압을 받고 있다. ‘레츠테 게네라치온’은 “범죄 음모”로 수사받고 있으며 심지어 “기후 테러”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이들의 전술은 과격해 보이지만 놀랍게도 그 요구는 온건하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과학에 귀를 기울이고”, 아우토반에 속도 제한을 도입하며, 그밖에 소소한 조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한 시민 불복종 전략의 주요 이론가는 스웨덴 학자 안드레아스 말름이다. (1) 그의 책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사와 장편 영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 봉쇄 기간에 쓴 두 번째 책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에서 말름은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전시 공산주의”, “생태적 레닌주의”를 촉구했다. 레닌주의자로서, 우리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레닌주의란 말름이 제안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클릭을 유도하는 미끼에 불과하다. 사실 말름은 화석연료 기반 시설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말름은 왜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다. 존 랭커스터의 질문처럼 말이다. 기후변화를 강력히 체감하는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일을 하기엔 너무 착하고 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의 기후변화를 가장 강력히 체감하는 사람들조차 기후변화라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기후운동의 많은 영역에서 평화주의는 절대적인 것으로 다뤄진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가 빌 맥키벤은 마틴 루터 킹, 간디, 넬슨 만델라의 정신과 같은 비폭력주의가 유일하게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빌 맥키벤은 지구를 구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운동이 누군가의 재산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을 때만 그렇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역사상 가장 예의 바른 저항 운동으로 명성이 높다. ‘레츠테 게네라치온’은 주황색 안전조끼를 입고 도로를 막으며, 운전자들의 폭행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재미난 것은, 이런 극단적인 평화주의로도 우익 정치인들이 “폭력”, “테러리즘”이란 비난을 쏟아내는 것을 막지 못했단 것이다. 말름은 자기 책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평화주의 신화를 해체한다. 자본가 정치인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폭력”을 비난하지만, 경찰과 군대 같은 특별한 무장기관의 엄청난 폭력은 정당화한다. 진보적 변화를 향한 운동은 권력과의 폭력적 대결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예컨대 만델라는 수십 년의 옥살이를 금욕적으로 견딘 성자(聖者)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맞서 폭탄 테러를 감행한 무장조직 ‘움콘토 위 시즈웨’의 수장이었다. 지금은 만델라를 평화주의의 상징으로 떠받드는 전 세계의 정부들은 이전에는 만델라의 “테러리즘”을 비난했다. 만델라 자신도 “나는 비폭력 시위가 효과적인 한에서만 비폭력 시위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마틴 루터 킹도 마찬가지로 항상 총을 휴대했다. 다수의 유명한 “평화주의자”에게, 비폭력이란 특정한 상황에서의 전술적 선택일 뿐이었다. 평화주의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말름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해하려고 산탄총을 들고 모스크에 들어갔던 노르웨이인 나치의 사례를 예로 든다. 세 명의 노인이 범인을 제압했는데, 꼼짝 못 하게 범인을 짓누르고 머리를 가격하면서 그렇게 했다. 진정한 평화주의자라면 나치의 두개골을 멍들게 하는 “폭력”을 거부했을 것이다. 물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량 학살을 막기 위한 작은 대가로써 그런 폭력을 사용하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평화주의에 예외를 두고 있는 셈이다. 말름이 말했듯이, “예외를 인정하는 평화주의자는 ‘정의로운 전쟁론자’다.” (‘정의로운 전쟁 이론’은 어떤 전쟁이 정당한가를 다루는 군사 윤리학이다. - 옮긴이) 마르크스주의자는 결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이 정치적으로 목표한 것이 무엇인지, 폭력을 압제자가 행한 것인지 피억압자가 행한 것인지에 따라, 모든 폭력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나치 경비병에 맞서 봉기한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사용한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말름이 설득력 있게 주장하듯이,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해 달리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인간을 살해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그런 결과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의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현실적 태도가 절망적 기후위기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조나단 프랜즌 같은 부유한 자유주의자들은 지구의 파괴를 멈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수용하라고 한다. 적절하게도 말름은 이런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어떤 이들에게는 싸우는 법을 배우기보다 죽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쉽고, 전투적 저항을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의 종말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게 더 쉽다. 비록 상황이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투쟁이다. 냇 터너(1831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흑인 노예 반란을 이끌었다 – 옮긴이)와 바르샤바 게토 투사 등의 행동도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썼듯이, “모든 것을 잃었다면, 당신은 투쟁해야만 한다!” 전시 공산주의 그러나 말름이 제안하는 시민 불복종과 태업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전술이라면, 전략은 무엇인가?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2단계, 즉 폭발물이 터진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로 나아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 출신인 말름은 자기 출신을 모호하게 만든다. 말름은 책에서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와 독일의 좌파 테러리스트 울리케 마인호프(1934~1976, 독일 적군파의 창설자 - 옮긴이)를 인용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후주(後註)로 처리된다. 책에서 그들은 각각 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 “서독 칼럼니스트(!)”로 축소된다. (2) 말름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확실히 급진화 돼, 다음 책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붉은 깃발을 휘둘렀다. 책의 부제는 <21세기의 전시 공산주의>이며, 본문은 레닌, 트로츠키, 볼셰비키, 혁명에 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말름은 특히 흥미로운 비유 하나를 제시한다. 기후재앙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전시(戰時) 동원을 상상하면 통상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 전시생산국(WPB)을 떠올린다. (3) 그러나 더 나은 역사적 사례가 있다. 러시아혁명 이후 신생 소비에트연방은 21개 제국주의 국가 군대의 침략을 받았다. 볼셰비키는 노동자계급의 취약한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전시 공산주의”를 필요로 했다. 볼셰비키는 농민들로부터 곡물을 징발하기 위해 가차 없는 무력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적군(붉은군대, 赤軍)과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반동과 파시즘을 억제하기 위해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향후 불타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 투쟁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엄청난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말름은 재미난 지적을 한다. ‘트로츠키는 장갑열차를 타고 전방 지역들을 이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열차는 나무 장작, 즉 재생에너지를 연료로 했다. 적군(赤軍)은 친환경적이었다!’ (4) 전시 공산주의는 진정한 민중 혁명이 가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해방시켰다. 1789년 파리에서, 1791년 프르토프랭스에서(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도맹그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아이티 공화국을 세운 혁명을 가리킨다 – 옮긴이), 1917년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1936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에서 적군(赤軍)은 내전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 농민이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농민은 농장과 공장, 그리고 국가권력을 장악했으며, 자신들이 쟁취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했다. 이것이 전 세계 생산 시스템에 급진적이고 즉각적인 변화를 도입하는 데 필요한 혁명적 동원(動員)이다. 말름의 “전시 공산주의” 기획에는 삼림벌채 중단, 운송수단의 탄소 배출 감축, 석유 재벌에 대한 몰수와 같은 일련의 “매우 엄격한 제한과 중단”이 포함돼 있다. 화석연료 자본이 전체 사회의 통제를 받게 되면, 국가는 화석연료 추출을 중단시킬 뿐 아니라 대기 중 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새로 확보한 자원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말름의 “생태적 레닌주의”는 한계적이다. 사실 말름의 “생태적 레닌주의”는 사민주의에 대한 향수로 잘 알려진 <자코뱅>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언급되는 레닌주의다. 말름은 레닌주의란 용어를 규율 있는 정치적 운동이란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예수회, 사이언톨로지스트, 일본 제국주의 군대 등 수많은 운동이 하나의 대의를 위해 헌신해 왔다. 레닌주의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 정부를 건설한다는 특정한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규율에 관한 것이다. 레닌주의와 국가 레닌 최고의 저작은 1917년 혁명 도중의 짧은 소강기에 쓰였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국가가 사회의 중립적 관리자가 아니라는 점을 해명했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다. 자본가 국가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수호하며,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가장 민주적인 공화국조차 부르주아 독재 체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계급이 처음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한 1871년 파리 코뮌의 사례를 연구했고, 노동자계급이 단순히 기존 국가 기구를 장악하는 데 그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대신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고, 이를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자주적 조직체에 기반한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해야만 한다. 레닌은 노동자 국가가 단지 반쪽의 국가라고 덧붙였다. 코뮌 유형의 국가는 사회의 절대 다수에 기반해 있으며, 그 목적이 이전의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자권력을 수호하는 데 있다. 따라서 관료 기구적 방식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점차 스스로 모든 행정업무를 처리하게 될 것이며, 모든 형태의 국가는 불필요해지고 사멸할 것이다. (5) 말름은 레닌의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기후재앙을 멈추자면 인류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할 때 자본가 국가 스스로 “본질적 무능”을 드러냈다고 말름은 지적한다. 자본가 국가의 유일한 목표는 부르주아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와 모든 사람이 불타는 것을 뜻할지라도 말이다. 또한 말름은 특히 종말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국가권력이 하루아침에 폐지될 수 있다고 보는 무정부주의자의 환상을 거부한다. 말름은 “실제적 전환에 어느 정도의 강압적 권력이 요구된다는 것은 언제나 진실로 드러난다.”고 썼다. 말름은 레닌의 주장을 동의하며 인용한다. “우리는 (특정한 이행기에) 국가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를 무정부주의자와 구별하는 지점이다.” 이 정도는 진지한 사회주의자들 모두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 권력을, 경찰이나 감옥과 같이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기구를 분쇄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폭력이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맞서 폭력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노동자 국가다. 그러나 말름은 레닌을 인용하면서 자기 생각에 맞추기 위해 다음 문장을 누락한다. 우리는 국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르주아가 필요로 하는 국가, 즉 경찰력, 군대, 관료제(관료집단)와 같은 정부 기구가 인민에게서 분리되어 인민을 억압하는 국가는 아니다. 모든 부르주아 혁명은 단지 그러한 국가 기구를 완성했을 뿐이며, 그것을 한 정당의 손에서 다른 정당의 손으로 옮겼을 뿐이다. 반면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재 혁명의 성과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평화, 빵,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 기구,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성(旣成)”의 국가 기구를 분쇄하고, 경찰력, 군대, 관료제가 무장한 전체 인민과 통합된 새로운 국가로 대체해야만 한다. 그렇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 인류 생존을 위한 투쟁에는, 수십억 명이 자본가 권력의 마지막 흔적까지 파괴하기 위해 조직되는 이런 종류의 혁명적 동원이 필요하다. 불타오르는 세계에 적응해 나가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구하기 위해, 인류의 전체 생산수단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말름의 “레닌주의”는 국가를 분쇄한다는 사상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말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방금 자본가 국가가 이런 조치들을 취해나가는 데서 본질적 무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에트에 기반한 노동자 국가는 하룻밤 새 기적적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기구라는 이중권력은 설령 실현되더라도 조만간 실현될 것 같지 않다.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망상이고 범죄적이므로, 우리가 함께할 것은 늘 자본의 순환에 결박(結縛)돼 있는 음울한 부르주아 국가다. 이를 견디자면 대중적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이로써 국가 내에 응축된 힘의 균형이 바뀌고, (국가) 기구들이 결박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하도록 강제될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이 국가를 파괴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고전적 강령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그 강령은 레닌주의가 자신의 사망 기사를 쓰는 데 충분하게(혹은 너무도 충분하게) 보이는 여러 요소 중 하나다. 이것은 쓰리 카드 몬테(three-card monte, 세 장의 뒤집힌 카드 중에서 ‘머니 카드’를 찾기 위해 돈을 걸게 하는 속임수 게임 – 옮긴이)와 이치가 같다. 말름은 레닌의 급진적 이미지를 소환하는 걸 즐기지만, “국가의 파괴”는 거부한다. 말름은 자본가 국가에 “전시 공산주의” 수행을 요구하는 동시에, 바로 그 국가가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말름은 “소비에트에 기반한 노동자 국가”가 “하룻밤 만에 탄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구도 하룻밤 만에 노동자 국가를 탄생시키려 작정한 적은 없다. 정반대다. 레닌주의의 핵심 테제는 그러한 국가는 오로지 수많은 노동자의 의식적 노력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으며, 노동자들의 에너지는 혁명 정당을 통해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닌주의자들이 투쟁하는 목적이다. 다른 한편 말름은 개량주의(“유로코뮤니스트”) 이론가 니코스 풀란차스에 대한 충성을 드러낸다. 비록 그 이름을 각주에서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국가를 “전체 부르주아계급의 공동 업무를 관리하는 위원회”라고 주장한 반면, 풀란차스는 국가가 사실 “계급적 힘들의 응축체”라고 반박했다. (6) 다시 말해 풀란차스는 국가 기구가 여러 계급 사이 투쟁의 장이며, 노동자계급은 국가 내부에서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결국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 내부에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오래된 개량주의 이론을 쓸데없이 장황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국가에 대한 이런 관점은 “레닌주의” 이론가 말름을, ‘멸종저항’, ‘엔데 겔란데’, ‘레츠 제너레이션’ 같이 비(非) 사회주의자 활동가들의 운동과 확실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다. 이들 모두는 시민 불복종을 통해 국가가 기후재앙에 맞서 비상조치를 시행하도록 강제하려 든다. 말름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면서 대안은 없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걸 역사와 이론이 보여주었다. 결국에 이것은 프랜즌이 주장했던 기후 절망의 “사회주의자” 버전일 뿐이다. 폭탄을 든 자유주의자 트로츠키가 지적한 대로, 부르주아가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크다. (7) 말름은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반대로 주장한다. 소규모 태업, 자본가 정부가 어떻게든 우리 목표에 복무할 것이라는 환상적 희망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본가 국가가 불에 기름을 끼얹도록 놔둘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전시 공산주의” 논의의 결말 무렵에서 말름은 레닌주의자보다는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커다란 지지를 표명한다. 2019년에 제레미 코빈이 영국 총리가 되고, 2020년에 버니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지구에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말름은 브라질 룰라 정부도 마찬가지로 칭찬한다. 말름이 그런 개량주의 정부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보다 말름은 그런 정부가 민중의 압력을 받아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자본주의를 폐지하기를 희망한다. 룰라는 브라질 지도자로 이제 세 번째 임기 중에 있지만 아마존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부르주아 국가가 민중의 압력을 받아 갑자기 반자본주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는 희망이 바로 말름과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의 동료들이 시리자와 포데모스를 지지하게 된 이유다. 이로써 노동자계급이 얻은 것은 사회주의 대신, 배신과 사기 저하뿐이었다. 즉 “레닌주의자” 말름은 <자코뱅>이 지지하는 바로 그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말름에게 직접 행동의 최종 목적은 탄소 배출 감축에 진지하게 임할 개량주의 정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백여 년 전에 레닌이 지적했던 것을 다시 확인해 준다. 말름과 같이 “행동에 의한 선전”(propaganda of the deed, 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무정부주의자들의 지배계급에 대한 테러를 뜻한다. 이 전술은 1881년 런던 국제 아나키스트 대회에서 승인되었다. - 옮긴이)을 촉구하는 “혁명가들”은 “폭탄을 든 자유주의자”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크리스 마이사노는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말름에게 “파이프라인을 폭파하지 말라”는 신랄한 반응을 내놓는다. 부르주아 정부가 그린뉴딜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면, 부르주아적 전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를테면 예비선거에서 좌파 후보를 후원하고 의회 의원들에게 로비하는 것들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목표는 사회민주주의적 수단을 요구하며, 화려해 보이는 태업 행위는 단지 방해가 될 뿐이다. 자본가 국가가 전시 공산주의를 시행하게 한다는 말름의 계획에는 못돼먹은 점도 있다. 1918~21년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이 쟁취한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희생을 요구받았다. 말름은 비슷한 희생을 요구하지만, 권력 없이 희생을 요구한다. 말름이 자본가 국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매우 엄격한 제한과 중단”을 요구할 때, 이는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호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을 공격하는 것을 뜻할 뿐이다. 사실 이것은 부르주아 정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녹색” 긴축경제란, 부자들은 24시간 내내 개인 제트기를 띄워놓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보호”라는 명목으로 비행기 이용을 포기하라는 것을 뜻한다. 이런 종류의 긴축경제는 전시 공산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제대로 말하면 그건 1차 세계대전 기간 독일 제국의 정책에 더 가깝다. 크리스암트(전쟁청)의 독재 아래 정말 전 사회적 동원이 이뤄졌다. 대중은 전방의 참호에서 웅크려야만 했고, 군수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했으며, 순무 배급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전염병으로 아이들은 파리떼처럼 죽어갔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국가적 희생을 분담할 것을 요구하는 동안, 투기꾼들은 샴페인을 마시며 기록적인 이윤을 얻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에서 가장 우파적인 목소리를 냈던 일부는 이러한 국가 경제 관리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것을 “전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자본가 국가의 일시적 경제 통제는 더 큰 야만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자본가 국가를 옹호하는 말름은 사실 (러시아의) “전시 공산주의”보다는 (독일의) “전쟁 사회주의”에 훨씬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기후 레닌주의란 무엇인가? 말름이 정식화한 “생태적 레닌주의”는 놀라울 정도로 온건하다. 말름의 두 책에는 반자본주의적 전망이 빠져있다. 오히려 말름은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태업에 참여하면 기후 행동이 실현된다고 여긴다. 말름이 언급하는 구체적 사례는 SUV (8) 자동차 타이어 바람 빼기, 일시적으로 석탄발전소 점거하기 등이다. 최근에 활동가들이 월마트 상속자 한 명의 호화 요트에 주황색 페인트를 뿌린 것처럼, 의도적으로 거대 자본가를 표적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 행동에 대해, 심지어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설령 기후 운동이 파이프라인을 매일 폭파하더라도 화석연료 자본의 기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갈 것이다. <자코뱅>의 크리스 마이사노 같은 개량주의자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정치권력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옳다. 그러나 크리스 마이사노는 코빈, 샌더스, 룰라가 부르주아 국가를 맡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뜻한다고 본다. 비록 급진적 전술을 옹호하지만 말름도 여기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진정성 있는 개량주의자가 정부 수반이 되더라도 자본가 국가는 눈앞의 재앙을 다루는 데서 “본질적 무능”의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생태적 레닌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름은 세 가지 정의를 내린다. (1) “징후의 위기를 원인의 위기로 바꾸는 것”, 즉 자본주의가 일으킨 재앙을 변화의 기회로 삼는 것. (2) “속도를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 것”. (3) “국가를 이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모든 기회를 붙잡고, 요구되는 만큼 급격하게 평소의 관행과 단절하며, 재앙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경제 영역을 공공의 직접적 통제 아래로 복속시키는 것.” 정확히 이 중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말름의 레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와 거의 비슷하게 들리며, 단지 일정표가 훨씬 빠를 뿐이다. 이건 사실 “잘못된 방법이지만, 더 빠른” 최대출력(Max Power) 방식이다. 반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량과 혁명이 서로 반대되는 강령이란 점을 지적했다. 정치권력 장악 및 사회혁명에 대비(對比)하여 입법 개혁의 방법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좀 더 평온하고, 고요하고, 느리게 나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목표가 다르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지지하는 대신, 낡은 사회의 표면적 변경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를 기억하고 진정한 기후 레닌주의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견해를 추가로 살펴보자. 1. 노동자계급 중심성 우리는 세계 경제 전체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주체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개개의 파이프라인을 폭파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지하에 숨어있는 활동가들은 절대 대중의 힘을 가질 수 없다. 레닌주의는 노동자계급, 즉 자기 노동력을 판매해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회를 향한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란 점을 인식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를 분쇄하기 위해 모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과 동맹으로 연합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기후 활동가들은 노동자계급이 급진적 변혁의 주체라는 점을 거부할 것이다. (“그것은 150년 전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일 뿐이다!”) 그들은 석탄 광부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최소한의 기후 행동에도 가장 악랄하게 반대했던 독일 기후운동의 구체적 경험을 지적한다. 이와 비슷하게, 금속노동조합은 문명 전체가 그렇듯이 자신들의 일자리 또한 기후변화로 파괴될 것이란 점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저 자동차산업 조합원의 일자리만 방어해 왔다. 이것은 (제대로 된 - 옮긴이) 조직이 없으면 노동자계급이 자기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 대부분의 노동자조직은 돈 많은 관료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 관료들은 자본가들과 거래함으로써 특권을 누린다. 노동자들은 독립된 정치적 주체로서 투쟁할 때 비로소 세상을 뒤바꿀 자기 힘을 드러내게 된다. 프랑스 그랑퓌 토탈 정유공장 노동자들이 구체적 사례다. 토탈 노동자들은 다국적 기업의 “그린워싱” 행각의 일환으로 해고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그 대응으로 토탈 노동자들은 평조합원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들은 원유 정제를 계속하기 위해, 즉 지구를 계속 불태우기 위해 투쟁하지 않았으며, 또한 “녹색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거리로 내몰리는 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토탈 노동자들은 기후 활동가들과 연합하여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해, 그리고 노동자 통제 하의 에너지 산업전환을 위해 투쟁했다. 정유 노동자들이 청정에너지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노동자 자기조직화의 “마법”과 사회주의 사상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랑퓌 정유공장은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자기 작업장을 점거하고 자신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생산을 재조직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노동자들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그런 사례들은 세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 즉 한 줌 억만장자 기생충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인민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레닌주의는 혁명 정당의 지도를 받는 노동자계급이 세계를 변혁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2. 부르주아 국가를 타도하는 혁명 말름은 자본가 국가가 기후 재앙을 해결하는 데서 “본질적 무능”을 드러낸다고 올바르게 주장한다. 위에서 주장했듯이, 레닌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자본가 국가를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는 모든 혁명 과정에 등장하는 경향이 있는,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노동자계급 자기 조직화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오늘날 혁명가들은 노조 관료와 사회운동에 맞서 싸우면서 노동자 자기조직화를 추진해 나가야만 한다. 3. 혁명 정당 또한 레닌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결정적 행동을 통해서만 역사적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이를 위해 가장 의식적이고 결연한 투사들로 구성된 정당, 즉 전위 전당이 필요하다. 이 정당은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무게중심은 계급투쟁에 있을 것이다. 레닌주의는 전투적 정당을 건설하고자 한다. 4. 비계(飛階)로서의 언론 레닌주의는 혁명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비계(飛階)가 혁명적 언론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노동자들은 투쟁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들만의 매체를 만들어야 한다. 한 세기 전에 이것은 신문을 의미했다. 오늘날 혁명적 매체는 모든 기술적 가능성을 활용해야 한다. 5. 국제주의 레닌주의는 사회주의 변혁이 일국(一國) 차원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기후재앙의 시대에 “일국 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 사상은 그 어느 때보다 터무니없어졌다. 말름은 모든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무기한 존속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반면 레닌은 러시아혁명을 사회주의 세계 공화국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걸음으로 보았을 뿐이다. 레닌주의가 국제적으로 조직돼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간단히 말해 기후 레닌주의란 모든 부르주아 국가의 완전한 파괴를 요구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후재앙을 멈추기 위해 유일하게 현실적인 선택이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절망에 맞선 레닌주의 지난 몇 년간 기후 운동은 어느 정도 사기 저하를 겪고 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전 세계 수백만 젊은이들을 불러일으킨 지 수년이 지났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절박한 외침에 감동한 자본가 정치인들이 마침내 과학에 귀 기울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각 정부(政府)는 계속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부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즉 절망에 빠지기 쉽다. 핵심은 그들이 자본가 국가의 지도자들임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자국 자본가들이 자본을 늘리고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구가 불타오른다 해도, 이건 정말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자동차, 고속도로, 석탄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이 과학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과학적 보고를 받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후재앙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긴급 조치들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표현을 따르자면 “소유권의 전제적(專制的) 침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어떤 자본가 국가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 불복종으로도 그것을 바꿀 수 없으며,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 국가가 적이란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자본가 국가를 무너뜨릴 수 있고 무너뜨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세계에는 화석연료 자본의 기계를 갑자기 멈출 수 있는 수십억 명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브레히트를 다시 인용하자면, “당신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다면, 누가 당신을 막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전략이 도출된다. 레닌주의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를 제공한다. 서두에 인용한 1917년 책자에서, 레닌은 “자본가들과의 철저하고 일관된 단절”을 촉구하며 글을 맺는다. 레닌은 유일한 희망이 사회주의 혁명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멸망하느냐, 아니면 [혁명을 향해] 전력으로 나아가느냐. 이것이 역사가 제시한 선택지다.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느냐, 아니면 우리 모두 불타버릴 것이냐. 이것이 선택지다. 후주(後註) 1. 말름은 가끔 트로츠키주의자로 언급된다. 말름이 오늘날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우익을 형성하며 개량주의 입장을 가진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의 회원이기 때문이다. 2. 말름은 이렇게 썼다. “‘항의(protest)는 나는 이것이 싫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항(resistance)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끝장내는 것이다. 항의는 내가 더 이상 이것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저항은 다른 누구도 동의하지 않도록 내가 확실히 하는 것이다.’ 1968년에 한 서독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썼다.” 사실 서독 칼럼니스트는 적군파의 창설자인 마인호프다. 말름은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쓴다. “1930년대 초반, 독일이 나치의 권력 장악으로 끝날 비탈길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이 그 달에 이르러 점점 분명해졌다. ‘얼마나 귀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잃어버렸는가! 사실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가장 집요하게 위험을 경고하고 청중들에게 그 위험과 맞서 싸우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라고 촉구했던 목소리 중 하나가 외쳤다.” 그 ‘목소리’는 바로 레온 트로츠키다. 3. 우리는 <레프트보이스>에서 이런 비유를 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미국 경제는 전시생산국(WPB)의 중앙 계획에 굴복했다. 예컨대 1942년 2월 22일, 미국에서는 모든 자동차 생산이 중단됐다. 대략 하룻밤 사이에 모든 자동차산업 역량은 탱크와 비행기 생산을 위해 전환됐다. 오늘날 민간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화석연료에서 전환하자면 수십 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수십 년이란 시간이 없다. 생산은 즉시 사회적 통제 아래 급진적으로 변화돼야 한다.” 로버트 벨라노·나다니엘 플라킨, ‘그린뉴딜은 우리를 구할 수 없다. 계획경제는 가능하다’, <레프트보이스> 4호. 4. 안타깝지만, 계속해서 인용될 법한 이 비유가 잘된 것은 아니다. 나무 장작을 태우는 것은 재생 가능하지 않으며, 새로운 나무를 키워 탄소를 회수하는 것은 수십, 수백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적 의미에서 이 비유가 여전히 맘에 든다. 5. <국가와 혁명>은 훌륭한 저작이다. 간결하고 읽기에 어렵지 않다. 아직 못 보았다면 꼭 읽어보라! 6. 풀란차스는 국가를 “계급과 계급 분파 사이 힘의 관계가 물질적으로 응축된 것”으로 보았다. 독일어로 된, 풀란차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은 스테판 슈나이더가 <계급 대 계급>에 쓴 ‘국가를 파괴할 것인가, 강화할 것인가?’를 보라. 7. 1848년 혁명에 대해 쓴 글에서 트로츠키는 부르주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이탈자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쪽에서 임시 노동자정부를 세우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성숙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8. 이것은 SUV 자동차를 오로지 부유층만 보유했던 2007년 스웨덴에서 취했던 행동이다. SUV 자동차가 널리 보급된 오늘날 미국에서 이런 일을 벌이면, 주로 노동자계급에게 영향을 미친다.2024-01-09 | 조회 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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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우리는 ‘사회봉사자’가 아니라 ‘노동자’, 필수유지업무 파업 금지 명령에도 꺾이지 않고 쟁취한 임금인상1. 저출생 해결에서 ‘여성’ 지운 대통령의 신년사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구조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저출산 문제의 해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2024년 신년사에서 저출생 위기 해소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저출생의 근본 원인인 성차별과 장시간·불안정 노동 구조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저출생 위기의 원인은 성차별적 사회 구조’이며, 성평등 정책 없인 해결도 어렵다고 강조한다. 결혼·출산·양육이 일과 삶의 균형을 파괴하는 경험이 아닌,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도 강조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교육, 돌봄, 복지, 주거, 고용정책이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가 저출생 해결을 위해 교육, 주거, 고용 등의 정책을 제대로 추진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더욱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필두로 ‘여성’, ‘성평등’ 지우기에 앞장선 것도 다름 아닌 윤석열 정부였다. 이러한 정부 인식을 반영하듯 이번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여성’이나 ‘(양)성평등’ 언급은 빠졌다. 저출생의 원인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조한 신년사 발언은 대통령 자신부터 성찰하고 쇄신해야 할 지점이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880 2. 인도, 노동자의 이름과 생존을 얻기 위한 안간와디 여성 노동자의 파업투쟁 인도 정부는 6세 미만 아동과 임신·출산 여성을 위한 안간와디센터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 노동자(안간와디노동자와 보조노동자)는 여성으로, 농촌 지역 곳곳에서 여성, 아동,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기초의료 지원과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필수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사회봉사자’라 규정하고 임금 대신 매우 낮은 액수의 ‘사례금’을 지급한다. 보조노동자는 그마저도 60% 수준이다. 약 1백만 명의 안간와디 노동자들은 지난 12월 12일부터 공무원 노동자로 인정, 임금 월 11,500루피에서 26,000루피로 인상, 정년 62세로 연장 등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우리는 하루에 18시간 일한다. 정부는 우리를 노예 취급하고 있다”. “한 달에 7천 루피를 받고 집세, 학비, 공과금, 배급비 등이 지출을 다 감당해야 한다. 정부가 임금을 인상할 수 없다면 이 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안간와디 보조노동자인 벤카타 락쉬미와 나가마니는 정부를 규탄하며 싸우고 있다. “우리는 지난 20여 일 동안 도로를 누볐다. 하지만 모든 업무에 우리를 활용하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리는 한 주에 있는 약 1만 명 어린이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데, 우리는 정작 저임금으로 자녀에게 같은 수준의 음식을 해줄 수가 없다.” 이 절절한 안간와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1월 6일 드디어 정부가 답을 내놓았다. ‘필수유지업무 노동자 6개월간의 파업 금지 명령(Esma)’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해당 주 정부를 상대로 파업을 그대로 이어가며 노동자 탄압 항의 시위, 도로점거, 명령서 불태우기, 변함없는 투쟁의 상징으로 85명의 릴레이 단식 투쟁 등을 벌이고 있다. 또한 1월 6일 비하르 주 정부에서는 노사교섭을 통해 2년간의 파업 투쟁으로 해고당한 18,000여 명의 안간와디 노동자를 복직시키고 임금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newsminute.com/andhra-pradesh/ap-govt-prohibits-anganwadi-workers-from-protesting-invokes-essential-services-act https://www.thehindu.com/news/national/andhra-pradesh/anganwadi-workers-accuse-andhra-pradesh-government-of-apathy-as-their-protest-enters-20th-day/article67693059.ece 3. 영국, 주로 여성과 젊은 노동자들 0시간 파트타임 계약에 고통받아 영국에서는 노동시간 유연화, 비정규직 고용계약으로 여성과 청년 노동자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 비정규직 고용계약의 대부분은 ‘0시간 파트타임 계약’*이며, 소매업, 서비스업, 보건과 사회복지 등에 해당하는 직종이 많다. 영국 4개 대학 연구팀은 3년간 진행한 연구결과를 놓고 “비정규직-불완전 고용이 매우 우려스러운 영국 노동시장의 특징”이며, “여성, 청년, 자격 수준이 낮은, 소수민족 출신인 노동자가 비정규직 고용의 악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밝혔다. 스토크온트랜트의 소매점 직원인 44세 캐서린은 대기업인 하이스트리트 브랜드에서 일한다. “여기선 주 14시간 계약으로 일한다. 버스로 3시간씩 이동하며 다른 지점들에 가서도 일한다. 다른 노동자들도 생계 때문에 투잡을 한다. 4~6시간 일하는 곳에서는 보통 7일 연속, 가끔 9일 연속으로 일한다. 평균 12~14시간씩 집 밖에 있으니 아이들은 스스로 저녁식사 등을 챙겨야 한다. 정규직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런던의 중환자실 간호사인 리지는 예전엔 여러 간호기관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훨씬 적은 시간 일한다. 또한 “최소한 먹고살 만큼 노동시간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 고용주들은 계속 일하라는 호출을 취소한다. 지금은 일주일에 2번 일을 받기도 힘들다”고 했다. 한 25세 대졸자는 취업난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수년간 대형 슈퍼마켓에서 일했는데 주 16시간 계약만 맺을 수 있었다. 다른 이주 노동자는 4시간짜리 야간 근무를 밤 10시에 시작해서 마쳐도 첫 버스가 올 때까지 꼼짝없이 사업장 식당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금융사의 개인 비서로 일하는 클레어는 “고용주가 비용을 아끼려고 임시직을 더 많이 써서 정규직도 스트레스가 커지고 비정규직의 삶도 더 힘들어진다”면서 “고용주가 특히 돌봄의 책임이 있는 노동자를 쓰러질 때까지 쥐어짜고는 잔인하게 내쫓아버린다”고 말했다. *0시간 파트타임 계약(zero-hours contracts)이란 고용주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약정하지 않고 임시직(비정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주는 노동계약이다. 주나 월 단위로 인력 수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정하고, 일한 시간만큼 돈을 줘 고용주가 인건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4/jan/01/how-women-and-younger-uk-workers-are-being-hit-by-underemployment 4. 노동시장 차별을 개선해야 출생률도 상승할 것 지난해 3분기 국내 합계출산율은 0.70 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통계청은 지난달 장래인구 추계에서 국내 합계출산율은 내년 0.65명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발표한 ‘20~30대 여성의 고용·출산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수록 출생률도 상승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동시장 진입 시기인 20~30대를 보면 여성의 진출은 활발해지고 있지만, 불안정성이 크고 남성과 고용 및 임금에서 격차가 큰 차별적인 고용 상황을 저출생의 주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티아스 돕케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돕케 교수는 OECD 국가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에 따라 상위 그룹, 중간 그룹, 하위 그룹으로 나눴는데, 상위 그룹 국가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중심의 OECD 국가들은 출산 이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고자 가족 정책과 일·가정 양립 제도를 젠더중립적으로 재편하거나, 노동시장 차별구조를 완화하고 여성의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을 채택했고, 여성 고용률이 상승하면서 합계출산율도 비례해 지속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1022141015 5. 국민 10명 중 6명 “부양의무, 가족·정부·사회가 함께해야” 저출생‧고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한 가운데 ‘부양의무’에 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부양 의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는 ‘가족·정부·사회가 함께해야 된다’가 65.9%, ‘정부·사회가 해야 된다’가 12.0%의 수치를 보이며 77.9%가 부양 의무를 정부와 사회의 책임으로 인식했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지난 5일 한 데이터 컨설팅 기업이 전국 20~69세 남녀 3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양의무에 대한 의견’에서 확인됐다.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2년 기준 71.1%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하지만 50년 뒤에는 45.8%로 가장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한국의 총부양비는 2022년(40.6명)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2072년(118.5명)에는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2072년 노년부양비가 100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이처럼 부양의무에 대한 국민 인식은 급격한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 맞벌이 가구의 지속 등 사회변화와 함께 많이 바뀌어, 가족 중심의 돌봄체계는 더 이상 작동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했다.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적 돌봄체계에서 정부와 사회가 책임지는 공적 돌봄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참조 기사> https://www.imaeil.com/page/view/20240106103852202962024-01-08 | 조회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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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자본에 백기투항한 COP28, 파국에 맞서는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조직하자바이든도, 시진핑도 COP28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진: DPA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을 거부했다. 지난 13일 두바이에서 채택한 최종 합의문에는 ‘10년 안에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을 시작한다’고 적혀있다. 2년 전 COP26에서 합의한 석탄의 ‘단계적 감축(phase down)’보다 더 후퇴한 표현이다. 덕분에 당장 화석연료 자본이 생산을 늘려도 합의 위반이 아니다. 실제로 COP28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부터 화석연료 투자 확대를 선언했다. 그것도 COP28 폐막 이틀 만에 말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이다. COP28 의장 “화석연료에 더 많은 투자를” COP 회의장에는 언제나 석유자본과 핵자본 로비스트가 득실거렸다. 심지어 이번 COP28에는 대놓고 UAE 석유회사(ADNOC)의 최고경영자가 의장으로 선출됐다. 술탄 알 자베르(Sultan Al Jaber) COP28 의장은 개회 전 한 행사에서 “(1.5도 제한을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발언했다. 기후위기 부정론자들이나 할 법한 얘기를 할 정도로 그는 석유자본의 이해에 충실하다. 의장을 배출한 석유자본가들은 합의문에도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했다. COP26에서 석탄의 단계적 감축에 합의한 이후, COP27은 화석연료에 대해서도 단계적 퇴출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의장에 화석연료 자본을 대변하는 총 636명의 로비스트가 참석했고, 화석연료에 대한 합의는 불발됐다(전진 기사 “COP27에서 확인된 것 : 자본가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참고). 논의는 COP28로 넘어왔고, 세계 2위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국가들이 화석연료 퇴출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 결과 합의문 초안에는 ‘퇴출’ 대신 ‘소비와 생산의 감소’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얼마나, 언제까지 감소하겠다는 목표조차 없는 무기력한 문구다. 당장 수몰 위기에 놓인 태평양 국가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산유국들은 10년 내로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진다’는 문구를 최종 합의문에 넣었다. 화석연료로부터 ‘어떻게’ 멀어질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미 기후파국에 접어들었음에도 ‘10년’이나 더 기다리라고 하는 화석연료 자본에 COP28이 굴복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베르 COP28 의장은 “화석연료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7년간 1,500억 달러(한화 약 200조) 규모의 투자 계획을 COP28 폐막 불과 이틀 뒤에 발표한 것이다. COP28 의장국이 행동에 나섰으니 다른 산유국도 마음 편히 석유생산을 확대할 수 있다. COP28은 실상 기후위기 해결이 아닌, 석유자본 이윤 확대를 위해 모인 회의였던 셈이다. 기후파국으로 질주하는 COP, 이것이 자본주의의 실체다 이렇듯 COP28은 석유자본의 요구 앞에 무기력하다. 이는 비단 올해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실체다.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 전쟁, 에너지 위기, 석유자본의 이윤 앞에 ‘기후위기’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당장 이번 COP28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미국과 중국 정상, 바이든과 시진핑이 불참했다. COP는 강제력이 없고, 불참 국가에 대한 제재나 처벌도 없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올해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를 경험한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일제히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외치기 시작했다. “에너지 공급을 외국에 의존하지 마라. 자국 내에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러우 전쟁과 공급망 위기가 가져다준 교훈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자국 내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화석연료뿐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10월 한 달간 북해에 27곳의 신규 유전 개발을 허가했다. 독일의 화석연료 발전량은 2020년 302TWh에서 2022년 332TWh로 10% 이상 늘었고, 영국도 164TWh에서 176TWh로 7% 이상 늘었으며, 프랑스도 56TWh에서 69TWh로 20% 이상 증가했다. COP28에서 ‘화석연료 퇴출’이 거부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심지어 손실과 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 조차 난도질당했다. 지난해 COP27에서 기후위기 피해국을 지원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기금을 마련하자는 내용이 진통 끝에 합의되었다. 물론 구체적인 보상 범위와 규모는 논의되지 않았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위기 피해복구를 위해 연간 1천억 달러의 기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COP28에서 확인된 기금은 약 8억 달러(0.8%)에 그쳤다. 특히 미국은 겨우 1,750만 달러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전쟁과 학살 지원에는 아낌이 없지만, 기후위기 피해국을 지원할 돈은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 기후위기 해결을 맡기는 것은 이렇듯 허망하다. 지구를 구할 유일한 희망,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에 나서자 한편 COP28 회의가 열린 두바이에서는 화석연료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런데 그 규모는 최근 수년간 COP 앞에서 열린 시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UAE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인 탓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세계 기후정의운동의 정체를 반영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세계 기후정의운동은 그레타 툰베리 등장에 이은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와 함께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초기 몇 차례의 대규모 거리시위나 직접행동 외에, 자본을 힘으로 강제하거나 실제 변화를 이룬 사례는 많지 않다. 지금, 자본이 기후정의운동을 두려워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운동의 동력은 정체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 반전의 실마리가 나타났다.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기후파업이 성사된 것이다. 독일의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노동자계급의 참여가 기후정의운동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대중교통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퇴사율이 높았다. 또한 도서 지역에는 대중교통 체계가 매우 열악했다. 독일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은 2020년부터 대중교통 노동자의 생활임금이 기후정의라며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23년 3월 3일, 세계 기후파업에 맞추어 독일 최소 30개 도시, 대중교통 노동자들을 비롯해 20만 명 이상이 파업에 나섰다. 독일 고용주 연맹(BDA)의 CEO 슈테펜 캄페터는 파업에 대해 “노조가 정치파업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자본이 두려워할 만한 기후파업을 조직해 낸 것이다. 같은 달 27일에는 대중교통 노동자만이 아니라 전체 운송노동자의 파업인 메가스트라이크(Mega strike)로 확대됐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참여가 기후정의운동을 반등시킬 수 있는 경로임을 보여준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이윤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기후정의운동에 가장 절실한 ‘자본에 대한 강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물론,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에게 기후정의운동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발전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은 분명 확산하고 있다.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 이후 에너지 산업 국유화와 해고 없는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발전노동자들이 등장했다. 발전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자본의 책임을 묻고 해고 없는 산업전환을 쟁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져야 한다. 내년 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앞둔 충남 지역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열린다.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 시작된다. 이것만으로도 연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자본주의가 가속하는 기후위기, 노동자계급이 앞장서서 막아내자.2023-12-26 | 조회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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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젠더적 대안은 ‘탈성장’ 아닌 ‘노동자계급의 생산과 재생산 통제’ - 노동자계급의 페미니즘을 향하여2005년 미국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일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대피소로 이동한 여성들이 당한 강간 비율은 지역 기준보다 53.6배 높았다. 2015년 네팔 지진 이후 인신매매 피해자의 수는 15년 전보다 약 4배 증가했다. 2021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한 뒤 여성 10명 중 7명은 파트너에 의한 언어적 또는 신체적 학대가 더 흔해졌다고 밝혔으며, 10명 중 6명은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미국 남성의 실업률은 2020년 2월에서 4월 사이 355만 명에서 1,100만 명으로 증가한 반면, 여성의 실업률은 같은 기간 270만 명에서 1,150만 명으로 증가했다. 세계 성별 식량 안보 격차도 2019년 6%에서 2020년 10%로 확대됐다. 국내서도 팬데믹 이전 여성 노동자들의 자녀 돌봄 시간은 주당 43.7시간, 남성 노동자들의 자녀 돌봄 시간은 주당 41시간이었지만, 팬데믹 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자녀 돌봄 시간은 63시간으로 늘었다. 성별임금격차 역시 2020년 66.6%에서 2021년 65.8%로 더 증가했다. 기후위기가 여성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기후위기는 성 중립적이지 않고, 성차별을 강화한다. 기후위기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을 확대하고, 임신성 합병증을 비롯해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을 더욱 위협한다.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해지며, 무급 가사·돌봄 노동은 늘어난다. 즉, 기후위기는 여성억압과 같은 말이며, 이를 더 심화한다. 하지만 모든 여성이 기후위기에 더 많은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클라라 체트킨이 여성 문제는 계급에 따라 달라진다고 명징하게 지적했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후위기의 결과 역시 계급에 따라 달라지며, 그로 인해 더 악화한 젠더불평등을 경험하는 이들은 오로지 노동자계급 여성일 뿐이다. 자본가계급 여성은 기후위기가 여성에게 전가하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그들 대부분은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공간에 있거나 생계를 위협받지 않는다. 기후위기가 심화한다고 더 많은 가사·돌봄 노동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녹색자본주의를 외치며 새로운 이윤을 찾고 있을 공산이 크다. 반면, 노동자계급 여성, 특히 도시빈민이나 농어촌,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 여성의 생존권은 더 위태로워진다. 여성의 다수는 비공식부문, 병원이나 관광 서비스 등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서 노동하여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서처럼 기후위기로 인한 폐업과 실직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또 공적 자원을 이용할 기회도 적어진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4분의 1이 종사하는 농업, 임업, 어업에서는 가뭄과 불규칙한 강우를 비롯한 기후위기로 인해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이동할 권리나 독립적으로 생활할 권리를 제한당해 온 장애여성의 생존권은 더욱 위태롭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이 같은 상황에서 11월 말 COP28을 앞두고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이하 선언)’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선언은 페미니즘 관점이 기후정의 담론의 주요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제안되었으며, 특히 기후위기가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선언은 기후위기의 원인을 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 찾으면서도 그 주요 문제나 대안은 탈계급적이라는 점에서 토론이 필요하다. 선언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가 ‘남성중심의 경제 시스템’으로 ‘성장’과 ‘개발’만을 사회의 중요한 목표로 상정했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됐으며,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노동은 비가시화되고, 저평가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여성·지역민 등 사회적 소수자가 주체가 되는 탈중앙집권적 기후위기 대응책”과 함께 ‘탈성장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즉, 선언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라는 말로 기후위기에 젠더와 계급적 관점을 제기하지만, 대안에서는 젠더적 관점만 유지할 뿐 계급적 관점은 비켜간다. 아울러 대안도 ‘성장체제’에서 ‘탈성장 돌봄사회로의 전환’이라고 전제하여,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 착취를 통한 자본가의 ‘이윤’ 창출을 최대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본질을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면 과연 ‘가부장제적 자본주의’는 어떤 체제일까?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말은, ‘가부장제’라는 억압적 젠더 체계를 포함한 체제 규정이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한 줌의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계급사회라는 점을 전제하면, 가부장적 자본주의란 가부장제라는 젠더억압질서를 활용해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관철하는 자본가 중심의 계급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 야기된 기후위기가 여성에게 불균형적으로 전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여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떠맡은 노동자계급 재생산이라는 역할에 있다. 리즈 보걸에 따르면, 계급사회가 지속되려면 착취 가능한 노동력이 재생산되어야 하지만, 자본가들은 생산과 재생산을 갈라놓고 후자를 전자에 종속시킴으로써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간접적으로 이윤을 늘리는 조건을 확보한다. 임신출산하는 여성은 그 기간의 생계를 남성 부양자와 자본주의 국가에 의탁하게 됨으로써 종속적인 위치에 놓인다. 그러나 여성은 임신출산 뒤에도 가부장제 속에서 여전히 가사노동의 굴레에 얽매인 상태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노동력으로 취급되어 노동자계급의 하층으로 배치된다. 그 결과 직장을 구하더라도 고용이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며, 다양한 유형의 직장 내 성차별이 뒤따른다.* 결과적으로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여성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불완전한 성별로 존재하여 여성에 대한 폭력이 용인되고, 여성의 노동력은 저평가되며, 무급 가사·돌봄 노동을 떠안는다. 그리고 기후위기는 이 같은 조건을 더욱 심화하여 젠더폭력이나 무급 가사·돌봄 부담, 실업과 빈곤 등 기후변화로 초래되는 위기를 더 많이 떠안게 된다. *오연홍, 사회 재생산 이론과 계급 환원론, 전진 내부토론회, 2023.7.25 이를 전제하면, 기후위기에 필요한 페미니즘 관점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이 떠맡은 노동력 재생산 역할과 그에 따른 노동력 평가절하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이 여성에게 전가한 무급 가사·돌봄 노동을 사회화하고 여성의 노동권을 방어하는 것이 기후위기로부터 여성을 방어하는 핵심적 대안이 된다. 또한 궁극적으로 여성해방은 자본가들을 위한 체제인 가부장적 자본주의 변혁을 우회할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아울러 이는 남성을 포함한 모든 성별의 노동자계급이 단결투쟁해 쟁취해야 하는 과제라는 점도 누락돼선 안 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경제의 규모가 아니라 계급관계다 그러나 선언은 기후위기의 대안을 ‘탈성장 돌봄사회로의 전환’이라고 전제하여 계급적 질문을 누락한다. 선언이 말하는 탈성장 담론은 자본주의가 환경 파괴와 생태 위기를 유발했다는 관점을 취하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탈성장 담론은 계급적 관점을 누락해 자본주의 대량생산시스템의 근본 모순을 비껴간다. 즉, 경제체제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기능하는가의 문제임에도 생산의 규모에 관한 문제로 원인을 비틀어 버린다. 단적으로, 에코페미니즘을 말하는 반다나 시바는 대자본에 비판적인데, 그 맥락은 기술회의주의와 자급경제 선호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극히 한계적이다. 이는 기술을 둘러싼 계급관계를 누락함으로써, 논의를 기술 자체로 소급한다. 스페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호세피나 마르티네스가 지적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의 수중에서 과학기술 발전이 노동자를 위해 더 많은 자유시간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잉여노동을 창출할 뿐이며, 노동자에게서 노동의 짐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더욱 육중한 쇠사슬로 묶어버리고, 노동자에게 규율을 강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말했다. 또 시바는 “금융 중심의 성장 경제를 멈추고 생태 경제와 사회 경제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녹색자본주의나 민영화된 돌봄체계를 떠올리면, 무력한 주장일 뿐이다. 실비아 페데리치가 말하는 소규모 공동체의 상호부조도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누락한 복고주의에 다름 아니다. 사이토 고헤이가 말하는 탈성장 코뮌주의 역시 계급투쟁이란 이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일부 탈성장론자들도 인정하듯, 문제는 생산의 규모가 아니다. 단순히 생산의 규모를 조절하는 것으로는 현재의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도, 여성억압을 없앨 수도 없다. 단적인 사례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나타난 여성억압 심화다. 이 기간 세계는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여성은 오히려 더 큰 부담과 폭력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일수록 경제성장률은 둔화하여 왔고, 그럴수록 자본가들은 저개발 국가의 노동력 착취와 자원 수탈을 재촉해 왔다. 노동자계급의 생산과 재생산 통제 결국 자본주의가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노동을 비가시화하고, 저평가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본주의가 ‘성장’과 ‘개발’만을 추종하기 때문이 아니다. 즉, 생산과 재생산의 지배구조 문제이자 생산과 재생산의 주인이 누구인가의 문제, 즉 자본가계급인가 노동자계급인가의 문제다. 자본주의는 오로지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상품화할 수 있는 것만 개발하고 이를 위해 노동력을 위계화하고 착취하여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의 존재와 이들의 노동을 저평가하고 비가시화한다. 그러나 선언이 말하는 “여성·지역민 등 사회적 소수자가 주체가 되는 탈중앙집권적 기후위기 대응책”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은 ‘남성’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며, 피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이다. 그리고 이 노동자계급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과 지역주민, 사회적 소수자 역시 포함된다. 물론 자본가계급에도 여성과 지역주민, 사회적 소수자가 존재하지만, 그들은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당사자일 뿐이다. 이에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계급적 관점에 기초한 주체화가 필요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을 투쟁 역시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우회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후위기를 둘러싼 투쟁은 바로 계급투쟁의 문제라는 점을 누락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더욱더 잦아지고 있는 태풍이나 장마, 산불과 가뭄을 비롯한 기후재난을 생각하면 탈중앙집권적 기후위기 대응책이란 대안이 얼마나 무력할 것인지 알 수 있다. 비인간동물을 비롯한 전 지구적 생태계를 위협하는 문제 역시 ‘남성중심 경제체제’나 ‘성장체제’의 문제가 아닌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수탈’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선언이 제안하는 대로 '남성중심의 경제시스템'이 문제이거나 '탈성장' 역시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양산한 기후위기, 그리고 이에 따라 심화하는 여성억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생산과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생산과 재생산을 노동자계급이 통제하게 되면, 한편으로는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생산부문을 폐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에게 전가된 가사·돌봄 노동을 사회가 떠맡고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 현존 생산력을 계획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여성에게 더 가혹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이다.2023-11-23 | 조회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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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 사전결의대회] 기후정의 실현의 유일한 길, 노동자 민중의 권력입니다923 기후정의행진,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 923기후정의행진 학생참가단과 함께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위한 923 사전 결의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전진 국제연대위원회 양동민 동지의 발언을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국제연대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양동민입니다. 짧게 한 가지만 강조하고 내려가겠습니다. 동지들, 기후위기는 모든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죠. 기후위기는 이미 불평등한 자본주의 세상을 더욱 불평등하게 만듭니다. 지금 유럽에서는 2015년 이후 올해 난민 숫자가 가장 많습니다. 이탈리아 지중해 최남단에 있는 람페두사라는 섬이 있는데요. 북아프리카에서 올해에만 12만 명이 전쟁과 빈곤, 기후재난을 피해, 튀니지에서 보트 하나에 몸을 의지해 이 람페두사섬에 도착합니다. 많은 이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습니다. 최근에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대홍수로 2만 명 넘는 사람이 죽었다 합니다. 모로코에서도 지진으로 3천 명이 죽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진 이후 더 많은 모로코 여성들이 강제결혼과 성폭력에 더 노출되고, 리비아에서 2만 명의 임산부가 의료위기에 빠져있습니다. 이상기후로 인해 발생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중해 폭풍이라는 폭풍 다니엘의 영향 때문이라는데, 그리스, 튀르키예, 불가리아도 같은 태풍을 맞고 몇십 명이 사망하긴 했지만, 리비아처럼 2만 명이 죽지는 않았습니다. 관리가 안 되던 댐이 무너져서 벌어진 참사인데, 이는 20년 동안 댐을 보수하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알려주지도 않은 정부의 무능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능한 리비아 정부를 만든 게 누구입니까? 북아프리카 나라들은 왜 전쟁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나요? 영국, 프랑스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지금도 그들을 수탈하고, 정치적 주권을 박탈한 결과입니다. 그러고서 이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기들이 탄소를 배출해 만들어 낸 기후위기 때문에, 수탈과 억압 때문에 생존의 터를 잃어버린 난민들이 찾아오자 난민들을 돌려보내고, 섬에 상륙하지도 못하게 해 보트 위에서 죽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같은 극우파 정부만이 아니라, 이른바 좌파라는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전에 ‘포데모스’, 유명했죠? 지금 집권 중인 스페인 포데모스 정부도 이탈리아 극우파랑 이민 문제에 있어 협력할 것이라 얘기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멕시코에서, 과테말라에서, 수탈과 억압, 기후재난을 피해 오는 난민들을 죽이고, 가두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어떤가요. 방글라데시는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방글라데시의 민중들이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미 세상은 기후위기라는 말로 부족하고, 세계의 어떤 지역들은 이미 기후재난, 기후재앙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사태가 이리 될 때까지 이 자본주의 국가의 지도자란 놈들은 그저 어떻게 더 많은 개발을 하고, 아르헨티나 후후이 광산에서 리튬을 추출해 더 빠른 핸드폰을 더 많이 만들어서 경쟁국을 쓰러뜨릴까 라는 고민밖에 안 하고 있습니다. 9월 20일 유엔 기후목표정상회의에 미국도 중국도 다 불참했습니다. 한국의 윤석열도 불참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귀결점은, 역사가 보여주죠, 다시 한번 미중 간 패권대결이라는 제국주의 국가 간의 충돌이 전쟁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합의를 하고서, 소성리 주민들을 탄압하면서, 또 베트남 붕앙에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미얀마에 가스전을 개발하면서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자본주의 국가 지도자들에게 우리 미래를, 우리 세상을 맡겨둘 수 없습니다. 기후정의 실현은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무책임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이 권력을 잡고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 나가야 합니다. 그게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고, 그게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의미입니다. 구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기후정의 계급투쟁으로! 자본주의 끝장내자! 자본주의 끝장내고! 기후정의 실현하자!2023-09-29 | 조회 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