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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26 청년학생 순회투쟁을 돌아보며

김지윤 (연세대 비정규노동문제를고민하는학생모임 살맛)
기사입력 2026.08.20 13:55 | 조회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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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2026 청년학생 노동해방 순회투쟁단>은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 · KEC지회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 성서공단지역지회 ·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 · 동희오토분회 ·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방문해 연대활동을 진행했다. 이 글은 순회투쟁의 소회를 담은 후기다.

     

     

    노학연대 활동을 하며 투쟁 사업장에 연대하다 보면,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일관적인 태도에 신물이 난다. 적자를 명분으로 조합원들을 표적해고하고, 민주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교섭 자리에서 복직은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는 기업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알고도 못 본 척 침묵하거나, 심지어 기업 편을 드는 자칭 ‘노동 친화’ 정부. 안 그래도 막막한 상황에 최근 젊은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이 점점 줄어든다는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생각해 보면 우리 권리를 지키자는 말에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나 또한, 아르바이트 월급이 제때 들어오지 않자 자연스럽게 일터에서 도망치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 구직 끝에 들어간 직장이 나를 혹독히 착취할 때, ‘노조’보다는 ‘이직’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청년 세대로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투쟁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것이 내가 청년학생 순회투쟁단에 참여한 이유다.

     

    순회투쟁단이 방문한 사업장들은 모두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40도에 육박하는 울산의 더위 속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니, 일 년 넘게 농성 중인 이수기업 해고자 동지들, 백 일 넘게 고공에서 버티고 계신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고영기 동지의 절박함이 피부에 와닿았다. 동시에 잠시 농성장에 다녀가며 한두 시간의 선전전으로만 함께할 수 있는 나의 역량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함께 식사하던 중, 한 이수기업 해고자 동지께서 내 얼굴이 기억난다며 말을 걸어 주셨다. 이수기업 직접 방문은 처음이라 어디서 보셨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A학교 투쟁 선전전에서 연대발언을 하던 나를 보고 기억해주신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의 부족한 연대가 이분들에게 의미가 있긴 할까’ 하며 회의했던 시간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만났던 동지들과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또 있다. 순회투쟁에서는 최근 화제가 된 스리랑카·베트남 노동자들을 비롯한 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의 집회에 연대하고자 노조 간부들과의 간담회, 출퇴근 선전전을 진행하고 이주노동자 집회에도 참여하였다. 현장 조직의 어려움에 대한 투쟁단의 질문에, 한 조합원 동지는 ‘현장에는 노조 가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겁이 났다. 하지만 나는 회사가 이 상황이 될 동안 뭐라도 했다고 말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불의에 저항한다’, ‘세상을 바꾸겠다’ 같은 커다란 이유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말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뭐라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 - 내가 처음 노학연대 활동을 시작한 계기 또한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저녁 이주노동자 집회에서 그 조합원 동지와 다시 마주쳤다. 이주노동자 숙소로 이어지는 계단을 사이에 두고 나와 손 흔들며 인사하던 동지는, 집회에 나온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어느 노동자의 아이일 6-7살 남짓 베트남 소년이 나와 동지가 흔들던 적기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그 아이가 자기 몸만한 적기를 건네받아 신나게 휘두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가 ‘사탕 좋아해?’라 묻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방에 들어있던 마지막 사탕을 꺼내줬다. 익숙하지 않은 상대와 말을 붙이고 가까워지는 일은 분명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우리는 그렇게 했다. 집회라는 자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연대가 이토록 좋구나, 라고 오랜만에 진심으로 생각했다.

     

    울산을 떠나 구미에서 만난 금속노조 KEC지회와의 간담회에서는 2010년 노조파괴로 시작된 민주노조 투쟁의 과정에 관한 발제를 들었다. 간담회 내내 투쟁에 함께한 조합원들에 대한 김성훈 사무장 동지의 자부심과 사랑이 느껴졌다. 이어진 아사히글라스지회 간담회에서는 부지회장 자리를 맡을 자신이 없었으나, 오랜 시간 몸을 갈아가며 복직을 위해 싸운 지회장을 위해 결심했다는 오수일 전 수석부지회장, 현 지회장 동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삶을 건 싸움에서 조합원들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냐는 나의 질문에, 조합원 동지들은 웃으며 “9년간 엄청나게 싸웠다”고, KEC 조합원들의 연대가 긴 투쟁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단숨에 단결하고, 자본의 폭력 앞에 한 치 흔들림 없이 버티다 끝내 승리하는 노조가 존재한다고는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순회투쟁에서 느낀 것은, 싸우는 이들은 흔들리기도 하고, 다투고 상처받기도 하고, 부끄럽거나 나약한 자신을 마주하기도 하며, 그 모습은 생각보다 더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이었기에,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연대’나 ‘투쟁’, ‘노동해방’ 같은 단어가 어느 때보다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투쟁이 대단한 사람들만의 일이었다면, 김성훈 사무장 동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녹아 있는 KEC 조합원들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감동적이었을까? 나는 왜 그날 울산에서 적기를 든 소년과 조합원 동지의 곁을 좀처럼 뜨지 못했을까? 문득 그동안 산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인터넷 기사나 들려오는 소식, 머릿속으로만 나와 나의 세대에 관해 비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윗 세대가 유독 강해서 자본의 탄압을 이겨냈던 것이 아니다. 지금은 운동의 허무함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형태는 다르더라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할 일이 있다. 그들이 그러했듯, 우리 또한 더 용기를 내 한껏 헤매고 실패하더라도, 서로 연대의 발길을 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순회투쟁에 참가한 목적을 이루었다고 느꼈다.

     

    순회투쟁에서 돌아온 뒤 나의 운동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내 곁에는 여전히 어렵거나 멀게 느껴지는 일들이 존재하며, 청년학생으로서 분명하게 느끼는 한계도 여전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청년 노동자 조직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명확한 타계책이 떠오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순회투쟁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대한 ‘해상도’가 활자를 통해서나 집회 연대자로서만 바라보던 시절보다 높아졌다고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이번의 경험을 발판 삼아 내가 투쟁해야 할 청년학생 세대의 노동현장으로 조금 더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뛰어들 수 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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