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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시대, 더욱 필요한 노동자 현장통제권
올여름 폭염은 한풀 꺾였지만, 폭염이 남긴 죽음과 질병, 일터의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기후재난 시대, 노동자에게는 작업환경과 노동강도를 스스로 통제하고, 불이익과 임금 손실 없이 작업을 멈출 권리가 있어야 한다. 작업중지권을 노동과정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보편적 권리로 확장할 때다.
사진: 노동과 세계
올여름 한반도를 덮친 폭염은 한 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폭염이 남긴 죽음과 질병, 일터의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후위기가 정말 심각하며 그 피해가 불평등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이제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가 초래한 재난과 위험으로 인해 일터와 일상이 위협받는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2024년, ILO는 심화하는 폭염·자외선 노출·공기오염·감염병·이상기후 등이 일터 유해·위험요인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로 인해 매년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역시 2025년에만 폭염으로 29명의 사망자와 4,460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한파로 14명의 사망자와 364명의 한랭질환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기록적 폭염을 마주한 2026년, 현재까지 3,351명의 온열질환자와 2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8월 10일 기준). 기후재난도, 그 피해 규모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2025년 7월,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3도 이상 폭염 작업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내용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포함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일터에서 노동자들은 기후재난 속에서도 작업을 강요받는다. 비정규직이라서, 작업의 멈춤이 수입과 연동되어 있어서, 관리자와 고객의 눈치가 보여서 등 여러 이유가 그 기저에 놓여 있다.
현상 중심의 대응을 넘어 현장통제권으로
이미 체감하는 것처럼, 폭염·한파·낙뢰·폭우 등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일터의 위험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맞선 현장 활동이 더 다양하게 기획될 필요가 있다. 갈수록 심화하고 예측 불가능해지는 이들 요인이 각 현장에 끼치는 구체적인 영향을 파악하는 것, 발생할 수 있는 사고나 질환을 예측하고 예방조치하는 것, 피해 발생 시 해당 노동자에게 충분한 치료와 휴식을 보장하는 것 등이 그 예시다. 이러한 활동은 현상에 대한 대응을 넘어 ‘노동자의 현장통제권 확보’라는 원칙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일터와 현장의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주체, 위험작업을 거부하며 현장을 바꿔왔던 주체가 현장 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각 사업장 특성에 맞는 관리 책임을 사업주에게 지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사업주에게 사업장 온도·습도 등 작업환경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의무, 온열질환 예방 규정을 만들 의무,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보장할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의 의견 적용이 필수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폭염·한파·낙뢰·폭우 등 ‘현상’에 초점을 둔 논의를 경계해야 한다. 폭염이나 한파는 기후위기의 ‘극적인 결과’일 뿐이며, 폭염을 넘어 다양한 안전보건 사안과 다양한 업종에 대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가리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장 노동자가 느끼는 사업장 체감온도는 ‘기상청 혹은 사업장 온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열-스트레스(Heat-stress) 위험성을 평가하는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체크리스트에는 기온, 복사열, 환기 수준, 습도, 작업복, 노동강도, 개인보호구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점수화해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한 해당 체크리스트는 이러한 요인들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잘 안내되는지, 노동자들이 현재 어떻게 느끼는지를 주되게 평가해야 하며, 무엇부터 개선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도 명시한다. 이렇게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라는 것은, 천차만별인 작업 환경에 대해 ‘온도’라는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주체적 판단으로 작업을 멈추고 쉬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폭염 등 기후재난은 일터에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동하기에,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생산량과 노동강도는 이전보다 낮춰 설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이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장의 조치는 이에 역행한다. 필자는 올해 7월에 한 야외사업장을 현장 조사했다. 당시 기상청이 발표한 기온은 오전 11시 기준 온도 30도, 습도 54%였다. 하지만 같은 시간 지면 온도는 35도를 훌쩍 넘었고, 40도를 넘은 장소도 있었다. 그늘이 없는 환경과 햇빛의 복사열 등이 작동한 결과였다.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당장의 휴식과 작업중지가 필요했지만, 현장에서는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는 명분이 더 크게 작동했다. 자본은 고객을 유치하고자 해당 시간대에 할인행사를 진행했고, 노동자들은 고객과 함께 야외에 나가야 했다. 올해도 쿠팡 물류센터에서 수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졌다. 노동자들의 온도 측정 활동조차 방해해 온 쿠팡 자본은, 폭염 시기 주문량을 늘리면서 배송 마감 기준은 유지했다. 노동자들은 40도를 훌쩍 넘는 실내 공간에서, 폭염 시기 더욱 강해진 노동강도를 감내하며 일하다 쓰러졌다.
사진: 노동과 세계
작업중지권, 위험 대응을 넘어 현장통제권 확보의 매개로
기후위기 시대이기에 더더욱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 천천히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확보가 필요하다. 앞으로 더 많아지고 예측 불가능해질 위험 상황에 노동자가 즉각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집단적·개별적 노동자 참여의 권리로서 이야기되고 있는 작업중지권은, 그것이 위험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것이든 예방을 위한 작업중지든, 현장 노동자들의 판단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담고 있다.
작업중지권은 중대재해에만 적용되는 권리가 아니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재해가 현실화되기 전에 행사하는 사전적·예방적 권리다. 작업중지권은 그동안 작업 ‘안전’을 위한 수단뿐만 아니라 높은 노동강도에 항의하고, 위험작업을 거부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회사가 라인 가동 속도를 일방적으로 높이자 이에 항의해 라인을 멈춘 한국GM 노동조합의 사례, 강풍이 불거나 현장 안전통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위험 상황에서 작업을 거부한 건설노동조합의 사례 등이 그 예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작업중지권이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다. 올해 8월 전국건설노동조합이 건설노동자 2,5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0%가 체감온도 38도에도 작업을 중지하지 못하고 일했다. 응답자의 82.2%는 작업중단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주된 이유는 작업중지가 곧 소득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산라인을 멈추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 해고하겠다고 위협하는 기업들도 여전히 많다. ‘위험하면 작업을 멈추고 쉴 수 있다’는 점 자체를 안내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등 불안정노동자들의 사례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골프장 캐디들은 폭염, 폭우 상황에서도 고객이 계속 치겠다면 멈출 수 없다. 안전보건 확보와 관련한 사측 의무와 책임이 빠진 채, 작업중지가 개인의 행위와 책임으로 떠넘겨지는 사업장들도 있다.
마주한 과제들이 많다. 작업중지가 징계, 해고나 손해배상 청구 등 불이익과 연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을 완화하고, 행사 사례를 확대해야 한다. 작업중지권은 노동자가 기후재난이라는 위험을 마주한 피해자, 개별 행위자로서 ‘대응’하는 정도를 넘어, 집단적으로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권리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속화될 폭염에서 적절한 쉬는 시간이 제공되지 않을 때, 스스로 업무를 중단하고 쉬는 행위를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야외에서 일하는 독일 지붕수공업자들은 단체협약으로 작업중지권을 보장받았다. 노동자는 기후에 따라 작업을 멈출 수 있고, 시간당 임금의 75%를 보전하는 휴무수당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폭염이나 혹한 등 ‘정말로’ 재난 직전을 마주하는 상황을 포함해, 일터의 위험을 예방적으로 통제하고 현장의 기준을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에 맞출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작업중지권이란 폭넓은 권리 발휘가 필요하다. 이는 자본이 설정한 속도와 시간, 작업환경 등을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중심으로 재조직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기후재난 시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구축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를 구체화하고 실물화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조직적 힘이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긴다. 함께 더 많은 작업중지 사례를 발굴하고, 현장통제권을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 정착시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