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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2부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자본주의는 그 출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끝없는 착취에 기반해 왔다. 또한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착취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여성과 성 소수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 이주민과 장애인 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지속해 왔다. 나아가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만을 절대시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나 도시와 농촌의 조화 같은 인간 생존의 필수적인 환경들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해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늘 같은 모습을 띄었던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한평생을 거치며 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의 모습을 거쳐 가는 것처럼, 자본주의 또한 그동안 자본 간의 관계, 자본과 국가 간의 관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그리고 계급투쟁의 양상에서 상당히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시대들을 거쳐 왔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크게 다섯 개의 시대들을 거쳐 온 것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776년부터 1871년까지 ‘자유경쟁과 부르주아혁명의 시대’다. 두 번째는 1871년부터 1914년까지 ‘독점과 제국주의 전면화의 시대’다. 세 번째는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전쟁과 대공황과 노동자혁명의 시대’다. 네 번째는 1945년부터 1980년까지 ‘전후호황과 개량주의의 시대’다. 다섯 번째는 1980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다. 이윤율 저하 경향의 장기적 관철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이나 행복 또는 사회적 필요가 아니다. 자본의 자기증식, 다시 말해 이윤을 덧붙여 자본을 끊임없이 불려 나가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에 복무하려는 자본가들의 탐욕과 열망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다.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에 복무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고 승리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술혁신을 통해 특별이윤을 선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에서 뒤처진 자본가들에게 필사적으로 요구되는 것 또한 선발자의 기술혁신을 따라잡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자본가의 기술혁신은 오래지 않아 전체 자본가계급의 기술혁신으로 일반화하고, 특정 자본가의 특별이윤이 전체 자본가계급의 상대적 이윤으로 일반화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술혁신의 지속적인 전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다시 말해 자본가의 임금(가변자본) 투자액 대비 생산수단(불변자본) 투자액의 비중을 점점 높인다. 나아가 자본의 평균이윤율이 점점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본의 이윤이란 결국 노동자가 수행하는 살아있는 노동에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인데, 기술혁신이 지속될수록 살아있는 노동 대비 생산수단에 투자된 비중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윤율 저하 경향을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하나의 자명한 필연성”이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불변자본에 비해 가변자본을 점점 더 감소시킴과 함께 총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점점 더 고도화시키는데, 이것의 직접적인 결과로 [잉여가치율(노동착취도)이 불변이거나 심하게는 증대하는 경우에도] 일반적 이윤율은 계속 하락한다. (이 하락이 왜 이와 같은 절대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점진적인 하락의 경향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 경향은 사회적 노동생산성의 점진적인 발달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특유하게 표현되는 방식에 불과하다. 물론 이윤율이 기타의 이유 때문에 일시적으로 저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달함에 따라 일반적인 평균잉여가치율이 일반적 이윤율의 하락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하나의 자명한 필연성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 제3편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 제13장 법칙 그 자체) 그런데 이윤율 저하 경향은 말 그대로 ‘경향적으로’ 관철된다. 상쇄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그 상쇄요인으로 ‘노동착취도(잉여가치율)의 증대,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 저하, 불변자본 요소들의 저렴화, 상대적 과잉인구, 대외무역, 주식자본의 증가’(제14장)를 든다. 상쇄요인의 원리는 간단하다. 이윤율 공식{잉여가치/(생산수단+임금)}에서 분모는 줄이고 분자는 늘리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가 지적하는 상쇄요인의 대부분은 자본가들이 이윤을 늘리기 위해 (또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그렇다면 실제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은 어떻게 실현됐을까? 2014년 아르헨티나의 에스떼반 에쎄끼엘 마이또는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869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네덜란드 여섯 개 핵심 국가의 이윤율 평균치를 실제로 계산한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1870년 무렵 40%대에서 출발했던 이윤율은 경향적으로 하락을 거듭한 결과 2010년 무렵 10% 근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짧은 기간을 놓고 보자면 등락을 거듭했지만, 긴 시간을 놓고 보자면 이윤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그대로 이윤율 저하는 ‘경향적으로’ 관철됐다.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이윤율이 큰 폭으로 하락해 왔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결코 영원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탄생-성장-만개-노화-소멸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로 이 점이 자본주의 안에서 서로 구분되는 시대들이 나타나게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려는 필사적인 분투 자본주의적 생산은 ‘더 많은 이윤 확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데, 개별 자본가들이 이윤을 늘리려고 기술혁신을 전개할수록 사회 전체적으로는 평균이윤율의 저하 압력을 더 강하게 받는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끝없는 분투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필사적인 분투는 자본주의가 전개되는 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첫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은 여러 측면에서 생산의 과잉을 심화시킴으로써, 이윤율 저하 그 자체와 함께 공황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 돼 왔다. 이를테면 잉여가치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기술혁신에 더욱 매달리게 함으로써 과잉축적을 불러온다.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을 저하시키려는 시도는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비 능력을 저하시킴으로써 과잉생산을 불러온다.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 또는 생산의 과잉은 가장 취약한 자본들부터 연쇄적인 파산으로 내몰면서 공황을 불러온다. 둘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은 공황을 거칠 때마다 독점이 빠르게 심화하도록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돼 왔다. 공황 때 파산한 기업들의 생산수단을 저렴하게 인수하는 것은 전체 생산수단(불변자본) 투자액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실제로 독점체들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보면, 자기 자본을 확장하는 ‘집적’보다 다른 자본을 흡수하는 ‘집중’이 훨씬 더 큰 역할을 수행해 왔다. 셋째, 자본주의 국가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특정 시기마다 특정 방향의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 점은 1870년대 독점자본주의 등장 이후 거대하게 성장한 독점체들이 국가기구를 직접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면서 뚜렷한 추세가 되었다. (반면 자유경쟁 시대에는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은 채 체제수호 역할만을 수행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가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 정책은 일정한 시기마다 달라져 왔다. 이를테면 1871~1914년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정책은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이었고, 1914~1945년 핵심 정책은 ‘전쟁’이었다. 1945~1980년 핵심 정책은 ‘유효수요 확장’이었으며, 1980년부터 최근까지 핵심 정책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였다. 일정한 시기마다 핵심 정책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적된 모순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역효과가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필사적인 분투에 나선다는 점, 특히 국가를 동원해 특정 정책을 추진하는데 그 핵심 정책이 일정한 시기마다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은 자본주의 안에서 서로 구분되는 시대가 나타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이다.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 마르크스가 1867년 <자본론> 제1권을 쓸 때까지 목격할 수 있었던 공황은 ‘거의 10년 주기의 전면적 공황’이었다. 그런데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필사적인 분투는 공황의 전개 양상을 바꾸었다. 1870년대 독점자본주의 등장과 함께, 주기적인 전면적 공황 대신 만성적인 장기불황이 들어섰다. 독점자본은 규모와 시장지배력 때문에 쉽사리 파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데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국가를 대대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엥겔스는 이렇게 포착했다. “1825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정체-번영-과잉생산-공황이라는 10년 주기의 순환은 확실히 그 진행을 마쳐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우리들을 영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이라는 절망의 수렁으로 빠뜨리기 위해서일 뿐이다.” (엥겔스가 1886년 <자본론> 제1권 영어판을 발간하며 붙인 서문) “종전의 10년 주기의 급격한 형태의 순환은, 상대적으로 짧고 약한 경기회복과 상대적으로 길고 격렬하지 않은 불황이 교체되는 형태로 전환한 것 같다. 이는 더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성격을 가지며, 각각의 공업국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펼쳐진다. … 지금 우리는 들어보지도 못한 정도로 격렬한 새로운 세계공황의 준비기에 있는가? 많은 점에서 그런 것 같다. … 유럽의 과잉자본을 위한 무제한의 각종 투자영역이 세계 각지에 열려 있으며, 이리하여 그 과잉자본은 더 광범히 분산되며, 국지적인 과잉투기는 더 쉽게 극복된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의해 공황 발생의 종전의 온상이나 계기가 대부분 제거되었거나 매우 약화되었다. 이와 함께 국내시장의 경쟁은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출현에 의해 후퇴하고 있으며, 해외시장의 경쟁은 보호관세[영국 이외의 모든 주요 공업국들은 보호관세 장벽을 치고 있다]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보호관세 자체는 세계시장의 지배권을 결정할 최후의 전면적 산업전쟁을 위한 무기일 따름이다. 이와 같이 종래의 공황의 재현을 상쇄하는 요인들 각각은 훨씬 더 격렬한 장래의 공황의 싹을 내포하고 있다.” (엥겔스가 1894년 <자본론> 제3권을 발간하며 제5편 제30장에 붙인 주석) 엥겔스가 예견한 것처럼, 만성불황은 공황의 종말을 뜻하지 않았다. 만성불황은 (과거의 전면적 공황이 주기적으로 모순을 해소해 냈던 것과 달리)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모순을 고스란히 축적하는 과정이었고, 그럼으로써 “훨씬 더 격렬한 장래의 공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실제로 1870년대 초부터 1890년대 말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됐던 만성불황은 1900~1903년 세계적인 공황을 향해 모순을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만성불황이 지배하는 시기는, 다시 말해 전면적 공황이 외견상 사라진 시기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자본주의 국가의 정책이 일정 기간 효과를 발휘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 정책은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또는 역효과가 극심해지는) 지점에 봉착했고 결국에는 누적된 모순이 더욱 격렬한 형태의 공황으로 폭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순의 누적은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사회적·정치적·국제적 측면에서도 모순은 누적되었으며, 그러한 영역에서 모순의 폭발 또한 기존의 축적체제 또는 자본주의 자체에 존폐가 걸린 위기를 불러왔다. 이를테면 1871~1914 시기에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핵심 수단이었던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은 식민지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갈등을 고조시킨 끝에 마침내 1914~1918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 왔다. 그리고 그 시기에 누적된 경제적 모순은 끝내 1929~1939 세계대공황으로 폭발했으며, 대공황이 불러일으킨 사회적·정치적·국제적 모순은 다시 1939~1945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이는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처음에는 활력을 갖고 성장하는 시기가 펼쳐지다가, 이어서 외견상 평화와 안정을 누리지만 모순이 누적되는 시기가 펼쳐진 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누적된 모순이 폭발하면서 모든 것이 전면적으로 요동치고 충돌하여 체제 자체가 사활적 위기에 빠지는 시기로 나아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는 자본주의 안에서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착취(exploitation)는 자본주의 생산과정 안에서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가로채는 것을 뜻한다. 반면 수탈(expropriation)은 잉여가치 생산과정 바깥에서 누군가의 소유물을 빼앗거나 훔치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중심은 사회적 생산을 조직하고 그 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데 있다. 거대하게 발전한 사회적 생산은 그 규모만큼 거대한 잉여가치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거두는 이윤의 중심은 착취를 기초로 한다. 하지만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이를 상쇄하기 위해 수탈에 기초한 추가수익 또한 끊임없이 갈구하게 만든다. 실제로 자본주의 역사에서 착취와 수탈은 그 출발부터 지금까지 늘 결합돼 왔다. 18~19세기 유럽과 북미에서 산업혁명에 투입된 자본은 기본적으로 16~18세기 식민지와 노예노동에 대한 어마어마한 강탈을 통해 조성됐다.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을 지급해도 되는 저렴한 노동력을 풍부하게 확보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 식민지·종속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을 지속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착취와 수탈이 결합되는 비중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자본가들이 원활하게 이윤을 획득할 수 있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잉여가치 착취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윤율 저하로 고통당할 때에는, 줄어든 이윤을 보충하기 위해 (또는 추가적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잉여가치 생산과정 바깥에서 수탈을 병행했다. 수탈의 집중점도 변화해 왔다. 이를테면, 20세기 전반까지는 식민지에 대한 총체적 약탈이 중심에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금융수탈이 중심에 있다. 그런데 수탈에는 ‘파멸로 나아가는’ 속성이 있다.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노동 없이는 착취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착취에는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한계선이 있다. 그러나 수탈에는 그런 한계선이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탈은 자주 피수탈자를 파멸로 내몬다. 피수탈자가 파멸하면, 더 이상 수탈을 할 수 없게 된 수탈자도 몰락한다. 실제로 그동안 수탈이 가진 파멸적 속성은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서 사회적·정치적·국제적 측면에서 매우 큰 후과를 낳았다. 수세기에 걸친 식민지 약탈은 끝내 제국주의 세계전쟁과 지구를 뒤덮은 민족해방운동이라는 후과를 낳으며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중대한 위기에 빠뜨렸다. 거대한 부동산 거품을 활용한 금융수탈은 미국에서 수많은 주택담보대출자들을 파산시킨 뒤 그 후과로 금융기관들을 연쇄 파산시키며 세계경제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자본가들이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얼마나 강하게 또 주로 어떤 방법으로 수탈을 병행하는지, 그래서 그 후과를 어떻게 치르는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그래서 이 점이 자본주의 아래서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량의 성숙 정도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자체의 산물이다. 특정 시기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누적된 모순의 성격 등 자본주의의 전개 양상은 노동자운동의 전개 양상을 큰 틀에서 규정한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은 자본주의의 단순한 반영물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 그리고 특히 혁명적 역량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가는, 국가가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와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 더욱 중요하게는 마침내 모순이 폭발하게 된 자본주의가 노동자·민중을 혹독하게 희생시켜 자신의 모순을 상당 정도 털어냄으로써 청춘의 몸으로 소생하여 또 다른 시대를 열어낼 수 있느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이윤율 저하 경향의 장기적 관철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주의 체제에는 모순이 누적된다. 이에 맞서 국가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한다. 그 정책들은 일정 기간 효과를 내지만, 내재하는 모순들 때문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거나 역효과가 극심해져 지속할 수 없게 된다. 누적된 모순은 마침내 전쟁과 대공황으로 폭발한다. 위기와 전쟁의 시대는 혁명의 시대를 낳는다. 전쟁과 대공황의 참혹한 파국은 노동자혁명을 향한 절박한 필요와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혁명이 저절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량을 건설해 낼 때만, 이미 역사적 소명을 다한 자본주의가 끔찍한 야만을 통해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희생시키면서 그 피를 머금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걸 막을 수 있다.2023-01-05 | 조회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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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1부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 2022년의 세계를 상징하는 이 두 사건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새로 진입하는 시대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성격은 분명하다. 다시 한 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가 ‘상대적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한 것은 (신자유주의와 결합된) 이른바 ‘세계화’와 ‘금융화’였다. 그런데 세계화와 금융화가 스스로 내재한 모순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또는 내재한 모순을 너무나 거대하게 축적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는 심각한 균열과 파열로 점철되는 새로운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던 이러한 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을 통해 마침내 누구나 알 수 있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모두 알다시피 미국·유럽 제국주의 진영과 러시아 제국주의 간의 긴장과 갈등이 폭발하면서 터졌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세계화가 필연적으로 야기한 미·중 패권대결의 본격화가 깔려 있다. 전쟁이 터지기까지 미국·유럽 진영이 러시아를 향해 끝없이 지정학적 포위수준을 높이며 도발해 간 배경에는 경제적 유일 패권의 약화를 군사적 패권의 강화로 보완하려는 오늘날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이 놓여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게 된 것은 중국의 부상과 함께 미국의 유일 패권이 약화되고 있는 만큼 이제 러시아도 수세를 벗어나 공세적으로 자신의 영향력 확대에 나서야겠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였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대결이 이제 대리전과 국지전을 통한 군사적 충돌로도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리 오래지 않은 미래에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벌일 가능성을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사로 올려놓았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운명적인 패권대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위험성은 점점 높아져 갈 것이다. 한반도가 또 다른 제국주의 대리전의 공간으로 전락할 위험성 또한 마찬가지다. 기록적 인플레이션 미국과 유럽에서 10%를 전후한 인플레이션을 기록한 것, 그리고 수많은 제3세계 국가에서 수십%대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한 것은 1970년대를 휩쓴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40여 년 만이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놓고 말들이 많지만, 이번 인플레이션은 △공급가격 인상에 따른 상품의 실질가치 인상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상품의 명목가격 인상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위기가 야기한 에너지·식품가격 인상 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초기 ‘공급가격 인상’은 주로 코로나19 팬데믹 봉쇄에서 비롯된 공급망 교란 때문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구조적인 다른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세계화를 역행하는 ‘역세계화’의 흐름이 누적되면서 세계화가 가져다주던 ‘최저단가 공급’의 이점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 하락을 금융화에 의존해 대응하는 추세가 강화되면서 필수소재들에 대한 산업투자마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피해 온 결과라는 점이 지적된다. 양쪽 모두 세계화와 금융화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결과 또는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 낸 결과 이번 인플레이션이 촉발됐음을 말해준다. 화폐량 확대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 또한 이번 인플레이션의 원인인가를 놓고서는 논란이 많다. 특히 2008년 이후 미국·유럽·일본 등이 10년 이상 장기간의 양적완화를 실행했는데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반대 논거로 제시된다. 공급된 화폐량이 많더라도 상품유통에 필요하지 않은 화폐는 사용되지 않은 채 축장됨으로써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는 가설도 제시된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화폐량 확대가 인플레이션에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 여러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달은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세계를 휩쓴 인플레이션에서도 단순히 오일쇼크만이 아니라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치르기 위해 달러를 살포하면서 초래된 기축통화 달러의 가치 하락 효과 또한 (금태환제 폐지로 더욱 증폭되면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화폐량 확대가 언제나 (또 확대된 양에 비례해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실제 상품유통에 사용되는 화폐량을 늘림으로써 화폐가치를 하락시켜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인 가설일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며 과거 10년간의 양적완화를 더한 것 이상의 막대한 화폐가 일시에 투입된 점, 과거에는 채권시장에 화폐를 공급함으로써 양적완화 효과가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집중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상당량의 화폐가 일반 주민들에게 지급됨으로써 곧바로 상품유통에 투입된 점, 공급 측의 원인이 함께 작용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의 시동을 막는 저항력이 약화된 점 등이 ‘임계점’을 넘어서게 한 요인으로 상정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위기가 야기한 ‘에너지·식품가격 인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기후 재난으로 타격받은 특정 지역의 곡물생산이 회복되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다른 전략적 요충지에서 또 전쟁이 (이를테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서)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점점 심화되는 기후위기 때문에 매년 점점 더 많은 지역에서 곡물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에너지·식품가격 인상’은 단순한 일시적 요인이 아닐 수도 있다. 구조적인 인플레이션과 세계 자본주의의 향방 지금 전개되는 인플레이션이 많은 부분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인플레이션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정책이 느슨해지면 꺼진 불 다시 살아나듯 인플레이션이 다시 솟구치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은 구매력을 삭감시킴으로써 노동자·민중에게 큰 고통을 안긴다. 지속되는 인플레이션은 노동자·민중으로 하여금 생존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등을 떠민다. 지배계급에게도 인플레이션이 큰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지속되는 인플레이션은 앞으로 자본주의 세계 경제 전반의 향방에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뒤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2008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에게 구세주와도 같았던 초저금리·양적완화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만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한동안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앞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전개되는 양상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말해준다. 2008년 이후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거품은 체제 전반의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인 은행들은 산업투자보다 부동산·주식투자 관련 대출로 더 많은 수익을 챙겼다. 실물경제와 한껏 괴리된 자산시장 가격은 당연하게도 급격한 하락 조짐을 주기적으로 보여 왔는데, 그 때마다 금리인하와 양적완화가 자산거품을 다시 부양하며 해결사 역할을 해 냈다. 그런데 지금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한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전례없는 규모로 누적된 가계부채·기업부채·국가부채의 상환부담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부동산·주식 가격 하락과 채권시장 경색으로 이어진다. 만일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인상만을 고수함으로써 한동안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편으로 부동산·주식 가격의 대폭락과 함께 가계파산이 속출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만연하는 채권만기연장 실패와 함께 기업파산이 속출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부실대출을 폭증시켜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나아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을 마냥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라도 꺾이는 조짐을 보이면, 서둘러 금리인상을 중단할 뿐만 아니라 다시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에 나섬으로써 자산가격 상승과 부채 확대를 도모할 것이다. 그래야 금융화에 의존하며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침몰하지 않고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얌전히 수그러들 것이냐는 점이다. 만일 지금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다양한 구조적 원인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라면,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데,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는 인플레이션에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하며 미쳐 날뛰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인상으로 선회해야 할 텐데, 이는 자산시장 거품파열과 금융위기 발생 위험을 한껏 높일 것이다. 결국 또 얼마 못 가 거품파열과 금융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로 다시 선회하겠지만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한 번 두 번은 요행히 파국적 상황을 면할 수 있을지라도, 이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금융위기의 폭발성과 인플레이션의 파고는 점점 더 높아져 갈 것이다. 결국 세계 자본주의는 금융대공황과 하이퍼인플레이션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부르주아 경제분석가들의 전망 자본주의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 세계 경제가 매우 파국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일부 부르주아 경제분석가들의 전망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표현되고 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신문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10월 6일자 ‘지금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거시경제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 경제에 새로운 체제가 고통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스주의 부상이나 1990년대 자유시장과 세계화로의 전환에 견줄 만한 중대한 전환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부유한 나라들이 2010년대의 저성장 덫에서 빠져나오거나 고령화나 기후변화 같은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대일 수도 있지만, 금융적 혼란에서부터 중앙은행 파산이나 통제불능 공공지출 같은 심각한 위험들을 현실화하는 시대일 수도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매체 <CNBC>의 11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대규모 헤지펀드 ‘엘리엇 메니지먼트’는 그 무렵 자사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세계 경제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는데도 연준이 통화긴축을 펴고 있는데 이는 경기침체를 초래하고 향후 더 큰 규모의 재정부양책을 촉발시킬 것”이며, “이런 악순환” 때문에 “현재 세계경제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길로 가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사회붕괴와 내전, 국제분쟁으로 귀결될 수 있다”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길을 밟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국제통화기금은 2022년 7월치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우울하고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 있다면서 “최악의 경제위기를 앞에 두고 있다”고 전망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이후 ‘닥터 둠’으로 불려온 누리엘 루비니는 2022년 8월 9일 지난 40년 동안 유지돼 온 ‘거대한 평온(Great Moderation)’의 시대가 가고 ‘거대한 스태그플레이션(Great Stagflation)’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발표했다. 위기와 전쟁과 혁명의 시대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영국·프랑스·독일 등 패권을 경쟁하던 선·후발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1900년대 초반 강력한 세계공황으로 타격을 받은 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더욱 맹렬히 몰두하던 끝에 발생했다. 1939년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패권을 겨루던 열강들이 10년을 끌어도 해결되지 않는 세계대공황에 대한 해법을 마침내 대대적인 군비확장과 전쟁경제, 심지어 대량파괴와 대량학살에서 찾은 결과였다. 만일 앞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금융대공황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향해 점점 다가간다면, 이는 이미 대리전과 국지전의 단계에 이른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 강도를 더욱 빠르게 높일 것이다. 그 구체적인 추이까지 지금 예견할 수는 없지만, 그러므로 다가오는 시대가 위기와 전쟁으로 점철된 시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파산과 실업과 빈곤과 전쟁으로 가득한 시대, 거기에 기후재난까지 겹쳐질 이 시대에 세계 노동자계급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파업과 시위와 혁명으로 떨쳐 일어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위와 같이 요약될 수 있는 새 시대의 성격과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전반적인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지금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2023-01-03 | 조회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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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흔드는 에너지 위기, ‘사유화’가 낳은 비극(출처: marketwatch) 난방도 일자리도 없는 겨울이 온다 유럽에서 에너지 위기가 현실이 됐다. 9월 2일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 노르트스트림 1호 작동을 무기한 중단한 데 이어 이달 말에만 3차례의 가스관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천연가스 공급의 41%를 러시아에 의존했던 유럽이 공포에 휘감기고 있다.* 통상 겨울철에 가스 수요가 폭증하는데, 올해는 라니냐로 인해 유럽 대륙에 엄혹한 겨울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난방 없이 올 겨울을 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설사 온난한 겨울을 맞이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천연가스는 산업용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 EU 국가들의 올 3분기 산업용 가스 소비량은 전년 대비 25%나 감소했으며, 10월 소비량은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 상공회의소(DIHK)가 2만4,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최근 과중한 에너지 비용 부담으로 인해 생산을 축소하고 있다.** 화학부문 기업의 25% 이상, 자동차부문 기업의 16%가 감산을 검토・실시했으며, 자동차부문 기업의 17%가 일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할 계획이다. 특히 다량의 가스 소비가 불가피한 업종의 경우 천연가스가 비교적 저렴한 북미 대륙(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유럽의 1/6 수준이다) 등으로 생산시설 이전을 추진 중이다. 즉 유럽 민중들은 난방도 일자리도 없는 겨울을 보내야 한다. 초유의 위기 앞에, 극우파와 자국 우선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 에너지 위기를 직격으로 맞는 독일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개전 초기만 해도 독일 민중들은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고 보고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가스 공급 중단을 전후로 과격한 언사가 힘을 얻고 있다. 기민당(CDU) 당수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가 TV에 나와 “우크라이나 난민이 독일에서 사회보장관광을 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난민을 비난하는가 하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조국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러시아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 참석자는 약 1만 정도로, 반대 시위 참석자 1,500명의 6배를 넘는 규모다.**** 위기 속 분열하는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15개 국가는 EU 가스 가격 상한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 네덜란드, 헝가리 등이 반대하고 나섰다. 독일의 명분은 에너지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가격 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유럽으로 오는 가스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르반 빅토르(Orban Viktor) 헝가리 총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러시아가 가스 가격 상한선이 도입되면 헝가리에 가스를 보내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어, EU가 가격 상한선을 적용한다면 헝가리를 위한 특별 모델이나 면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헝가리는 러시아와 직접 연결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가진 국가다. 즉, 각국의 에너지 안보와 EU 전체의 에너지 위기 대응이 충돌하는 셈이다. 지난 10월 EU 회원국 정상회담에서도 가스 가격 상한제를 둘러싸고 독일과 프랑스가 격돌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독일은 자국 에너지 산업 보조금으로 2천억 유로(한화 약 280조)를 편성했다. 독일 최대 가스 기업(Uniper) 국유화에 나설 뿐 아니라 내년 초부터 독일 내에서 가격 상한제도 도입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U 회원국들은 일제히 독일을 비난하고 나섰다. 자국의 에너지기업을 지원할 재원을 EU 전체의 에너지 위기 대응에 써야 한다는 논리인데, 실상은 독일의 에너지기업 지원으로 자국의 에너지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EU 회원국간 갈등요소는 이 밖에도 많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5월 “러시아의 협박에서 벗어나고 EU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스페인을 연결하는 ‘미드캣’ 가스관이 필요하다”고 하자 마크롱은 “왜 미드캣이 가스 위기를 해결할 것처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기저에는 미드캣 가스관이 자국의 에너지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마크롱의 판단이 깔려 있다. EU 회원국의 공통된 기치가 있다면 그것은 ‘조국이 먼저다’ 일 것이다. 각자도생 속 흔들리는 기후정의 이렇듯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의 교훈을 세계는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째, 에너지를 러시아 같은 ‘잠재적 적대 국가가 될 수 있는 인접국(potentially hostile neighbours)’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둘째, 재생에너지 전환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므로, 당면한 에너지 위기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국 중심으로 에너지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하며, 화석 연료와 핵발전이 에너지 위기를 타개할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스 공급의 15%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네덜란드는 석탄발전 생산 상한선을 해제했고 이탈리아도 석탄발전 확대를 선언했다. 각국에서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 재가동, 폐쇄 지연을 추진하자 주요 석탄 생산국인 폴란드는 아예 석탄 생산량을 늘렸다. 폴란드는 1분기 석탄 생산량이 1,900만톤이라 밝혔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5만톤 늘어난 수준이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던 국가들의 기후정의는 에너지 위기 앞에 이렇듯 무력했다. 실제 올해 전세계 이산화물(dioxide) 배출량은 전년 대비 0.8% 증가한 40.5기가톤으로, 2019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다 배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온실가스 배출은 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기온 상승을 억제하자고 합의했으나, 이 추세라면 이번 세기말에 기온이 2.8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출처 : Pixabay) 에너지 위기, 원인은 ‘사유화’ 이쯤에서 에너지 위기의 원인을 진단해 보자. 가장 흔한 진단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이 위기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 이전부터 에너지 가격은 상승 추세였다. 코로나19 이후 한동안 낮아졌던 화석연료 가격이 등귀하면서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대한 저투자가 에너지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하지만,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찰할 가치가 없는 진단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의 에너지 위기가 사실 예고된 위기였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리라 예측한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와 서방의 긴장 고조는 누구나 직감하고 있었으며, 에너지 자원이 무기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상당수 제기된 바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한 대책을 강구했어야 하나, 유럽 어느 국가도 실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에너지가 사유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기업은 그때그때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했을 뿐이었고, 그에 따른 위험부담은 정부와 민중이 떠안았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LNG를 직수입하는 SK 등 에너지 재벌이 단기적인 이윤을 위해 LNG 공급량을 자의적으로 조절하면서 가스공사가 수급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와 각국 정부는 에너지기업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도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한 사회적 통제는 가하지 않았다. 도리어 에너지기업에 초과이윤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유럽의 전력시장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유화가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전력 도매시장을 보면, 계통한계가격(SMP)에 따라 도매가격이 책정된다. 계통한계가격이란 가장 저렴한 방식부터 사용해 최종 수요를 충족시킬 때의 한계 비용을 전체 가격으로 책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발전 원가가 판매 가격보다 훨씬 저렴할 수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가스 가격 급등에 따라 계통한계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다수 에너지기업에 ‘횡재이윤’ 내지 초과이윤이 발생하고 있다. ‘횡재’라는 단어로 인해 마치 외부적인 행운에 따라 이윤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윤의 원천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력시장 그 자체에 있다. 그나마 한국은 전력 소매를 한국전력공사가 담당하고 있어 가정용, 산업용 전기요금이 크게 인상되지는 않았다. 대신 한국전력이 적자를 떠안고 에너지 재벌이 흑자를 남기는 상황이다. 반면 유럽에는 한국전력과 같이 ‘쿠션’ 역할을 해줄 주체도 없어서 에너지 위기가 그대로 가정으로 전가된다. 결국 전력시장은 이윤을 에너지기업으로 사유화하고, 손실을 철저히 민중에게 사회화하는 전장이다. 유럽에서도 ‘횡재세’와 초과이윤 환수가 일부 도입되고 있으나, 그 자체로 에너지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횡재이윤이 실은 에너지 사유화에 따른 ‘특혜이윤’임을 주장하며 사유화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공공이 에너지 생산과 수급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가정과 필수유지시설 등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도록 분배를 책임져야 한다. 전력시장 폐지와 발전 국유화를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에너지 사회화운동, 지금 여기서 시작하자 한국 노동자민중에게 에너지 위기는 아직 체감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앞서 적었듯이 한전이 위기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전의 역대 최대 적자를 근거로 올겨울 전기와 가스 가격을 인상했고, 발전 민영화와 핵발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4대 정유사의 영업이익이 한국전력의 적자와 맞먹는다는 사실(올 상반기 한전의 영업손실은 14조인데, 4대 정유사의 영업이익은 12조 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LNG를 직수입하는 에너지 재벌로 인해 한국가스공사가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더구나 “탄소감축 목표 산업계 부담”이라며 2030년 탄소배출 40% 감축에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기후정의에도, 에너지 공공성에도 역행할 의사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윤석열의 기후부정의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발전의 국유화와 공공적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 ‘국유화’는 더 이상 진부한 구호가 아니다. 4년 전 김용균이 죽은 원인이 발전의 민영화다. 에너지 재벌이 발전을 지속하는 한 한전의 적자를 만회하긴 커녕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도 담보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후정의를 위한 에너지 공적 소유와 통제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에너지기업을 국유화하고, 6개로 쪼개진 발전공기업을 재생에너지 공기업으로 통합해야 한다. 지난 9월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태안화력 노동자들이 공공적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의 선언을 모든 노동자의 요구로 확산시켜야 할 때다. * https://www.visualcapitalist.com/visualizing-the-eus-energy-dependency/ ** Reuters, Energy crisis putting most German firms under duress –survey, 2022.11.02. *** https://www.dw.com/en/german-opposition-leader-sorry-for-ukraine-welfare-tourism-jibe/a-63253255 **** https://www.dw.com/en/germany-far-right-demo-protests-russia-sanctions-energy-policy/a-63380291 ***** Reuters, Hungary will not agree to EU gas price cap, will need exemption, 2022.10.21. ****** Euractive, Macron adamant no need for MidCat gas pipeline, 2022.09.06. ******* Financial Times, Food and energy crises threaten to distract from climate talks, 2022.10.10. ******** 에너지데일리, “EU, 천연가스 공급 위기… 석탄발전 가동 늘리고 있다”, 2022.07.19.2022-11-24 | 조회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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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파시즘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편집자 주> 11월 초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트럼프가 주도하는 공화당의 ‘붉은 바람’은 예상보다는 덜했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민주당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거뒀고 하원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며 트럼프는 2024년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여기에 그동안 트럼프의 후광 아래서 소수자 억압 정책을 주도했고 이번에 플로리다 주지사로 재선된 디샌티스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트럼프주의가 트럼프 개인을 넘어서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주의는 파시즘인가? 트럼프주의를 격퇴하는 길은 자유주의 민주당의 선거 승리에 있는가? 2021년에 작성된 <레프트보이스>의 이 글은 그 질문에 답한다. 파시즘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매덜린 프리먼, 2021년 3월 7일 “제이슨 스탠리의 책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파시즘에 대한 자유주의적 접근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과 국제 지형 모두에서 분수령이 됐다. 그것은 2008년 이후 미 제국의 가파른 쇠퇴와 위기에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미국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신자유주의 지도자들은 미국을 다각적인 위기로 몰아갔고,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가 인기를 끌고 자본가계급 일부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이 우익 쪽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국제적으로 볼 때 미국은 제국주의 헤게모니의 쇠퇴와 중국 같은 강대국의 성장에 직면했다. 국내에서는 커져가는 불평등,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은행과 기업들을 구제하는 동안 생활 형편이 극도로 나빠진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의 불만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뻔뻔한 태도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같은 약속을 내뱉으며 불만에 찬 일부 소부르주아들에게 우익 포퓰리즘의 목소리를 내게 해줬다. 그들 대부분은 백인이고, 대체로 대도시 바깥에 살고 있으며, 우익이 줄곧 그래왔듯이 이주민이나 주변화된 사람들, 좌파 등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안달이 난 사람들이다. 정치와 경제에서 혼란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이데올로기적 기구에서도 표현이 된다. 자유주의 이론가와 학자들은 자유 민주주의로서 미국이 계급 간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들의 관점에 매달린 채, 트럼프의 부상과 미국의 전통적 지도자들에 대한 반발을 해명하려고 허둥댄다. 그들은 아무 데서나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쏟아내고 말과 행동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위선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하는 우익 포퓰리스트(트럼프)에게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고심한다. 그들은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민주주의를 파괴해서 권력을 쥐려는 예비 독재자라고 불렀다. ‘폭정을 막아내기’를 바라는 ‘깨어있는 시민’을 겨냥한 안내서가 큰 인기를 끌었다. 티모시 스나이더가 쓴 책 <압제에 대하여: 20세기의 20가지 교훈>이 대표적이다. 이런 자유주의적 선전은 무엇보다 트럼프의 등장을 낳은 비민주적인 제도와 사회경제적 관계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키려고 애쓴다. 2018년에 나온 제이슨 스탠리의 책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의 정치와 그들의 정치>는 대학가와 자유주의 매체들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스탠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가 어떻게 트럼프 같은 인물을 등장시킬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적인 우익 정치인들이 어떻게 권력을 손에 넣고 있는지에 대한 자유주의자의 답변을 내놓는다. 불행한 사태가 어떻게 초래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미국에서 완전한 면모를 갖춘 파시즘의 진군에 맞서자고 경고하며, 트럼프의 우익 정치가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을 막고 민주적 규범을 지켜내자고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2020년, 그러니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이면서 대통령선거 직전이던 시기에 자신의 책을 문고판으로 재출간하면서 스탠리는 2018년에 정식화한 현상이 전 세계에서, 특히 트럼프 임기 동안 미국에서 더욱 심화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차악론’을 정당화하는 자유주의 철학을 제시한다. 그것은 트럼프와 공화당을 파시즘적 권위주의 진영으로 놓고, 정확히 반대편에 조 바이든과 민주당(이름이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을 민주주의와 자유의 진영으로 놓는다. ‘선전’에 대한 스탠리 자신의 규정 즉, “다른 반대되는 목표 아래로 사람들을 통합하기 위해 고상한 이상을 담은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적 도구라는 관점을 따르자면,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자유주의적 선전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이 책은 트럼프에 반대해 투표하는 것,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적이며 착취에 기반한 미국 정치제도를 거듭 정당화하는 것이 전 세계 우익 운동의 고양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내려야 할 유일한 이성적 결론인 것처럼 색칠한다.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바이든은 ‘평등’과 ‘공감’에 대한 자유주의적 가치를 들먹였다. 스탠리는 이와 똑같은 호소를 하면서, 트럼프의 등장을 초래했으며 수백 년간 압도 다수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보장해온 바로 그 전통적인 민주주의 제도와 사회경제적 관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재확인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미국, 미얀마, 헝가리, 러시아의 현시기 우익 운동을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등 교과서적인 사례와 비교하면서, 그리고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격하며 정치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인종차별과 변화하는 사회 조건에 대한 불안을 이용하는지 설명하면서, 스탠리는 특정한 일국적 환경에 적용되는 파시즘의 일련의 ‘전술’을 보편적인 것으로 끌어 올리려 한다. 1월 6일 국회의사당 습격과 두 번째로 실패한 트럼프 탄핵 시도에 뒤이어, 스탠리는 계속 존재하는 파시즘 정치의 위협에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하며 극우의 등장에 맞서 미국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고 개혁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대한 끝없는 헌신을 다짐“해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경고하면서 언론 매체에서 대결을 이어가려 한다. 트럼프가 권좌에서 내려왔지만, 스탠리의 이론은 바이든 정권이 대표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거듭 정당화하는, 그리고 바이든 정권을 향한 아래로부터의 투쟁 가능성을 차단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 여전히 의미가 있다. 스탠리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우익 운동이 주변화된 사람들의 안전과 자주권을 어떻게 실제로 위협하는지 적절하게 지적한다. 하지만 우익 정치의 모든 사례를 이런저런 형태의 ‘파시즘’으로 격상시키면서, 스탠리는 약간 더 친절한 가면을 쓴 부르주아 정치인들을 언제나 ‘차악’으로 정당화할 ‘파시즘’의 항구적인 위협을 창조해낸다. 달리 말하면, 스탠리는 본래의 위상에 맞게 정확히 작동하는 부르주아 국가의 구조에 ‘파시즘’이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뿐만 아니라 ‘파시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잘못된 성격 규정을 내린다. 그는 추상적으로 파시즘을 ‘민주주의’의 대립물로 간주하고는, 이 이분법을 관념의 세계로 끌고 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탠리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놓쳐버린다. 파시즘과 자본가 민주주의는 계급적인 속성이 전혀 없는 ‘중립적’인 체제가 아니라는 점 말이다. 둘 다 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지속시키고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강제하기 위해 활용하는 체제일 뿐이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권력’ ‘파시즘’을 둘러싼 자유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스탠리가 제시한 의견의 핵심은 파시즘 체제와 ‘파시즘 정치’를 구분하는 것이다. 파시즘 체제란 완전하게 모습을 갖춘 정치적 현상으로서, ”권위주의 지도자가 대변하는 민족과 더불어 (종족, 종교, 문화 등) 다양한 특성을 나타내는 극단적 민족주의“로 구성된다. 파시즘 정치란 반지성주의, 성적인 갈망, 신화적인 과거에 대한 호소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권위주의 전술로서, 특정한 국가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채택된다. 트럼프 정권과 폴란드 대통령 안제이 두다 같은 지도자들을 동일한 수준으로 간주하면서, 스탠리는 전 세계 우익 정치인들의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성차별, 그 밖의 편견에 찬 수사와 정책들을 ‘파시즘’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의 큐어넌이나 헝가리의 ‘소로스 반대’ 캠페인* 같은 사례처럼, 국내 정치 수준에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을 예비 파시즘 독재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반동적인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정치인들은 진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하면서 과학과 부르주아 세계질서에 맞서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전통적인’(흔히 ‘반동적인’ 또는 ‘편견에 찬’이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 사회구조의 수호자로 포장한다. [*소로스 반대 캠페인: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금융자본가 조지 소로스가 글로벌리즘을 앞세워 헝가리를 해체하려 한다며 헝가리 내에서 그와 연관된 단체들의 활동을 금지시킨 극우 민족주의 운동. 이 캠페인을 주도한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애초에 소로스 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스탠리의 설명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파시즘이란 분열의 정치다. 그것은 공감과 다원주의라는 자유주의적 이상과는 대조적으로, 다수 집단이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타자들’에 의해 침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한 인물이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봉사한다. 스탠리는, 파시즘 정치가 항상 파시즘 체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파시즘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자본가 민주주의 사회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실제로 그는 과거의 흑인 차별정책에서 대규모의 격리와 강제 추방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제도 안에서 파시즘 정치가 오랜 기간 지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한다. 역사 속에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두 개의 지배적인 세력으로 간주하는 고전적인 구분법을 사용하면서, 스탠리는 파시즘의 구체적인 현상을 이른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표방하는 자본가 민주주의의 반정립인 것처럼 초역사적으로 규정한다. 미국의 트럼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인도의 모디 같은 정권으로 구현된 전 세계 우익 포퓰리즘의 아주 구체적인 현상들을 건드리면서도, 그는 이 우익 운동의 원천과 그들에 맞선 투쟁을 이데올로기의 영역으로 밀어내버린다. 거기에서는 반동과 혐오 진영이 한쪽에 서 있고 자유주의 진영이 반대쪽에 서서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적인 이분법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유’를 이용할 권리를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사적으로 파시스트들과 그 지도자들 역시 권력을 손에 쥐고 유지하기 위한 방식으로 ‘자유’라는 그리고 ‘압제’에 반대한다는 추상적인 미사여구를 사용했다. 현시기 네오나치 단체나 다른 맹아적인 파시스트 조직의 강령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분명히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쟁취하기 위해 싸워온 모든 민주주의적 구조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자유’를 외쳤다. 모두를 위한 ‘자유’란 없다는 것, 바로 이 지점이 스탠리의 관점이 넘지 못하는 한계다. 잘 알려져 있듯이 레닌은 우리가 자유를 말할 때 항상 그 자유가 ‘누구의 자유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인지’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시스트들은 소수의 선택된 인종, 종족, 또는 종교 집단의 자유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는 압도 다수의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자유를 부정하고, 자본가들에게 가능한 최대치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유주의자들은 일련의 다양한 정체성을 위한 자유를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다른 일련의 역사적 조건 아래서 자본가들에게 가능한 최대치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스탠리는 노동자계급 운동과 혁명적 사태 전개를 저지하는 방법으로서 파시즘이 등장하는 데에서 전 세계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적 위기가 수행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과소평가한다. 파시즘은 추상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안정을 되찾고 자본가계급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자본가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스탠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완전히 면모를 갖춘 파시즘 체제가 아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현시기 자유 민주주의 속에서 그가 포착하는 파시즘의 전조이며, 이를 바탕으로 그는 자유주의와 파시즘 사이에 뚜렷하게 선을 긋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작동하는 ‘파시즘 정치’의 요소들을 뽑아냄으로써, 스탠리는 이 현상을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민주주의로부터의 일탈이라고 추상적으로 채색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시각의 한계는 미국의 맥락에서 파시즘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서 특히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와 미국 자본주의의 토대 자체에 내포돼 있는 체계적인 인종차별을, 권력을 다투는 반동적인 개인들의 ‘파시즘 정치’라는 일탈 때문으로 잘못 인식한다. 인종차별과 파시즘 인종차별과 극단적인 편견은 파시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스탠리의 견해에서 가장 중요하다. 아마도 이것이 ‘파시즘 정치’에 대한 그의 관점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장 잘못 파악된 요소일 것이다. 스탠리는 인종차별을 우익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추진력이라고 적절하게 규정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체계화된 인종차별을 묘사하기 위해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럴싸하다. 우익 운동이 역사적으로 억압받고 주변화된 사람들에게 가하는 위험성이 얼마나 긴급한지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그는 이 파시즘 정치를 중립적이고 모든 사람의 이해를 위해 작동하도록 개선해나갈 수 있는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와 대립시킨다. 계급적 이해에 복무하는 무기로서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상으로 인종차별을 바라보는 대신, 스탠리는 인종차별의 근본 원인을 ‘위계’와 ‘권위주의’라는 공허한 관념으로 환원한다. 미국의 맥락에서 볼 때, 이런 관점을 취함으로써 그는 미국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데에서 그리고 미국이 세계적인 제국주의 열강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가 수행한 역할을 상당히 과소평가하며, 현시기 미국 국가와 양대 정당이 인종차별과 유색인에 대한 초과 착취로 얼마나 이득을 보는지도 간과한다. 구조적 인종차별은 인종차별적인 정치인들이 만든 몇몇 나쁜 정책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토대 자체에 내포돼 있다. 미국에 대해 다루면서 스탠리는 W. E. B. 두보이스와 안젤라 데이비스 같은 급진적인 흑인 운동가의 작업에 종종 의지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의 구조적 성격에 대한 이들의 관점을 미국 파시즘이라는 그림에 결부시킨다(심지어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정치에 내포된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측면들을 지워 없애기까지 한다). 그는 남북전쟁 후 재건 시대가 노예제에서 해방된 흑인 노동자계급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그래서 남부와 북부 자본가들의 이해에 계속 복무시켰는지 살펴본다. 그는 미국의 감옥 시스템에 흑인이 대량 감금되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것을 명백한 ‘파시즘’ 또는 맹아적인 파시즘 현상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인종차별을 오직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확립하고 기성의 위계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수단이라고만 설명한다. 그와는 달리, 인종차별의 실체는 자본주의가 광범한 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착취하고 노동자들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미국 민주주의와 인종차별의 깊은 연관을 간과하며, 그 결과 그의 관점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데에서 아무런 전망도 보여주지 못한다. 미국 민주주의는 인종차별과 온갖 종류의 극단적 편견 위에서 번영하는 자본가들의 이해에 복종하고 있으며, 이것이 인종차별을 가능케 했다. 스탠리에 따르면 지금의 공화당은 트럼프의 등장을 초래한 사회 현상에 적응하면서 ”이러한 전략을 더욱더 빈번하게 채택한다.“ 스탠리는 정치인들이 가부장적 고정관념을 이용하거나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적 선거구 개편이 이뤄져 왔다는 것을 사례로 든다. 하지만 이것은 파시즘이 아니다. 이것은 정확히 본래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자본가 민주주의일 뿐이다. 그리고 공화당과 민주당 둘 다 이로부터 이득을 얻으면서 이런 관행과 정책을 영속화한다. 궁극적으로 스탠리는 인종차별 정책으로 썩어빠진 민주주의 국가를 중립적인 기구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가 체계화된 인종차별의 해결책으로 내놓는 유일한 방안은 인종차별적이며 뿌리까지 썩어있는 제도를 개혁하는 것뿐이다. 이로써 그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써 자본가 민주주의 국가가 유색인과 그 밖의 주변화된 사람들을 어떻게 표적으로 삼는지를 지워버린다. 인종차별은 오직 파시즘만이 지배하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다. 파시즘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스탠리의 시각과는 달리, 파시즘은 자유 민주주의가 낳은 정치에서의 형식적인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반동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도전을 받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다. 파시즘은 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스탠리의 설명과는 반대로, 파시즘은 단지 광란하는 독재자가 선택된 소수의 민족, 인종, 종족의 권력과 지배를 추구하며 애쓴 결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무솔리니는 어떻게 승리했는가>에서 트로츠키가 설명했듯이, 파시즘은 ”의회라는 가림막과 더불어 경찰과 군대라는 자본가 독재의 ‘통상적인’ 자원이 더 이상 사회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그 순간에 등장한다. 파시즘 정권의 순서가 도래한다. 파시즘이라는 대행인을 통해 자본주의는 광란하는 소부르주아 대중과 몰락하고 절망에 빠진 룸펜프롤레타리아 무리를 움직이게 한다. 바로 금융자본이 이 무수한 인간들을 절망과 광기로 몰아넣었다.“ 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이 만든 제도와 조직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다. 20세기에 파시즘은 인종적·민족적·정치적 집단학살 형태를 취하면서, 자본주의가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운동에 맞서 자신의 안정성을 지킬 수 있는 여지를 더 넓히기 위해 노동자계급 내에 심어놓은 분열을 더욱 악화시켰다. 자국 자본가들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 단일정당 체제를 바탕으로 단호하게 통치하려는 우두머리가 정치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이 과정이 촉진됐다.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 뒤 처음으로 한 일은 오랜 역사를 지닌 독일 노동자들의 조직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노동조합 회관을 봉쇄했고 노조 지도자들을 체포했으며,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나치당과 자본가들이 직접 통제하는 ‘독일노동전선’*으로 갈아치웠다. [*공식적으로 노동조합은 아니었지만 어용노조 역할을 했고, 회원 수는 1938년에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설사 스탠리가 파시즘을 전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무언가로 간주하더라도, 그는 파시즘이 표적으로 삼는 것은 노동자계급 조직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역시 분명히 논의 과정에서 파시스트 정치인들의 노동조합 공격을 다뤘다. 그러나 스탠리는 이런 인식의 위아래를 뒤집는다. 노동자계급 조직들에 대한 공격은 독재자의 끓어오르는 권력욕 앞에서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분열 정책에 저항하는 데에서 이런 연대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조합을 해체하려고 한다. 파시즘 정치는 ‘특권층’을 비난하면서도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최소화하려 한다.“ 스탠리는 파시즘이 노동조합을 해체하려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을 묶기 위해 사회가 찾아낸 주된 구조이기 때문“이며, ”파시즘 정치에 따르면, 세계 자본주의라는 바다에서 노동자들 각자가 자신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로 방치되고 그 결과 지도자 집단에 대한 종속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은 반드시 분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탠리는 노동조합을 자본주의가 강요한 분열에 맞서는 단결의 장으로서 올바르게 규정한다. 비록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추상적인 인류 전체의 통합을 위한 것으로 미끄러뜨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단지 경제 영역에서 큰 피해를 유발해 사람들을 전능한 지도자에게 더 강하게 결속시키려는 목표로만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의 자주성을 억누르고,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극심한 폭력과 탄압을 동반하며 노동조합을 표적으로 삼는다. 파시즘은 인간의 공감 능력을 해치는 이데올로기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적인 사회관계에서 방향성을 갖는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다.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파시즘이 승리를 거둔 뒤에, 금융자본은 곧바로 통치를 위한 모든 기관과 제도, 행정부, 국가 교육기관을 마치 바이스로 꽉 물듯이 자신의 수중에 직접 끌어모은다. 군대, 지자체, 대학, 학교, 언론,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과 함께 국가기구 전체가 여기에 포괄된다. 국가가 파시즘 체제로 바뀐다는 것은 무솔리니가 만들어놓은 패턴에 따라 통치의 형태와 방식이 바뀐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런 차원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소소한 역할을 할 뿐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중요한 점은 노동자 조직들이 궤멸된다는 데 있다. 노동자계급은 모래 같은 상태가 된다. 대중 속으로 깊게 파고들며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조직화를 가로막는 행정체계가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서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에 거대한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와 운동에 맞서는 자본가계급의 반동이다.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의 대립물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가 계급 적대를 억제하는 데 실패한 결과다. 파시즘은 국가를 움직이는 데에서 기업과 경제활동을 최우선으로 두는 또 다른 지도자가 이끄는 자본주의다. 그러나 파시즘은 애초에 불안정한 형태의 통치체제이고, 자본가들이 선호하는 방식도 아니다. 트로츠키의 유명한 문구처럼 ”어떤 사람이 어금니에 치통이 있다고 해서 그 이를 뽑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듯이, 대자본가들도 파시즘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스탠리는 자본가계급을 위해 경고해준다 다른 자유주의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탠리는 대중이 우익에 맞서 싸우려면 부르주아 제도를 지지하며 자본가 민주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바로 이 점이 자유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오류다. 투표함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위대한 중재자’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도외시하면서, 자신을 억압하는 조건에 동의하게 만드는 자본가계급의 수단이다. 사실 부르주아 제도를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으로 나아가려는 미래의 파시스트들을 위해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스탠리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호소하고,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기획을 지속해온“ 사회운동과 공감력을 키우는 자유주의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호소하고 있지만, 파시즘이라는 문제에 대한 그의 진짜 ‘해결책’은 훨씬 간단하다. ”적나라한 경제적 불평등이 파시즘의 악선동에 아주 좋은 조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파시즘의 사회적 토대를 놓는 계급 적대를 완화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가당착에 이용당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항상적인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공통의 인류라는 감각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자들과 손을 잡는 수준으로 추락한다. 그의 책 마지막 장에서 스탠리는 단지 암시하는 수준에서일지라도 자신의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적 구상을 넘어선다. 그리고 실제로 파시즘을 낳는 것은 계급투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민주적인 정치체제와 위계질서로 작동하는 사적 기업들의 경제로 구성된 사회에는 진정한 긴장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독하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스탠리의 말에는 진실의 핵심이 담겨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스스로 위기와 모순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위기에 대한 대응이나, 위기를 해결하려는 자본주의의 몸부림이 모든 종류의 반동적이거나 진보적인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스탠리는 정치체제의 형태를 그것이 작동하는 경제체제와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서 이해한다. 그래서 그의 해결책도 입법 활동이나 국가의 규제를 이용해 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시도로 국한된다. 스탠리는 책을 끝맺으면서 우리가 경제, 정치, 생태적 균열이 중첩된 복합적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불의에 맞선 계급투쟁과 반란을 낳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글에 따르면 ”우리는 곧 빼앗긴 사람들의 국제적인 운동을 보게 될 것이며, 그것은 앞선 시대의 운동이 왜소해 보이게 만들 것이다.“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그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재생산하고 보호하는 국가의 안정성을 흔드는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자본주의 위기가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반란을 야기할 것이며, 그 반란은 결국 파시스트 반동 세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배계급에게 경고해주는 것이다. 사실 불만에 찬 소부르주아들이 노동자계급에 대항해서 날뛰게 만드는 것은 자본가계급일 것이다. 계급 화해라는 환상에 매달리는 스탠리 같은 자유주의자에게 이런 일은 피해야 할 일이다. 비록 그가 파시즘의 부상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 전체를 펼쳐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우리 공통의 인류애를 교육하는 것과 더불어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위한 기금을 마련해야 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과감하게 줄여나가야 한다고 넌지시 제안한다.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다른 길 파시즘에 관한 스탠리의 시각과, 파시즘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유물론적 분석을 구분하는 것은 단순히 단어의 뜻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와 전 세계 우익 운동이 어떤 지점에서 자본주의 위기라는 큰 그림과 맞아떨어지는지, 그리고 그들에 맞선 투쟁에서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이것이 중요하다. 명백히 ‘중립적’인 스탠리의 자유주의적 구상, 즉 파시즘이 발생하는 그 지점에서 실제로 맞서 싸우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그의 구상에서 도출되는 강령은 계급 화해를 추구한다. 스탠리는 우익 정책이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파시즘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을 끊임없는 위협으로 묘사하고, 이에 대항해 싸우려면 자본가 민주주의 제도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런 구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자본가 민주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가하는 실질적인 위협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에 맞선 투쟁에서 누가 우리의 동맹자인지 잘못 판단하도록 내몰릴 것이다. 스탠리의 책은 전형적인 자유주의 사고방식을 보여주지만, 그의 논리가 반자본주의 좌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탈린 공포정치를 거치며 소련이 퇴보한 결과, 많은 좌파 조직이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떠받치는 전체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이분법을 받아들이면서, 파시즘을 제대로 규정하고 그것에 맞서 싸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급 관계에 대한 분석을 포기했다.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이 세계적으로 고조되는 우익 운동의 위협에 맞서려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분열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단결된 투쟁을 벌여야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에 타격을 가하고 반동 세력을 무릎 꿇릴 수 있는 노동자계급이 온 힘을 기울여 인종차별에 맞서, 또 종교적이거나 민족적인 소수자에 대한 박해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 투쟁을 위해서는 노조 관료제에 맞서 현장 조합원들이 주도하는 강력한 노동조합 운동이라는 토대와, 자신의 이해를 위해 투쟁할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가 필요하다. 이 투쟁의 한복판에서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을 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파시즘이나 파시즘적 억압의 일부 요소에 의지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순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닥친다 해도, 누가 우리의 동맹자이고 누가 아닌지 헷갈리면 안 된다. 자유 민주주의를 관장하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 탓에 히틀러, 프랑코, 무솔리니 등이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자본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세계 곳곳에서 참주선동을 일삼는 자들이 노동자와 빈민의 압도 다수를 억누르고 탄압할 수 있게 된 것과 꼭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시즘이 언제라도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스탠리가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시즘에 맞서 싸우려면 그것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자본가계급을 수탈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본가계급은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우익의 폭력과 증오에 기댈 것이다. 파시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에 있다. 자본주의의 지배로부터 자신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단결된 행동이 그 길이다. 번역: 오연홍 원문 https://www.leftvoice.org/thats-not-how-fascism-works/2022-11-23 | 조회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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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보우소나루 아래의 브라질을 이해하기<편집자 주> 지난 10월말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노동자당의 룰라가 보우소나루에게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이번 브라질 대선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으며,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보우소나루주의는 ‘파시즘’인가? 보우소나루주의를 격퇴하는 길은 노동자당과 룰라의 선거 승리에 있는가? 이에 대해 10월 9일 브라질의 ‘혁명적 노동자운동’(MRT)이 발표한 글을 미국 <레프트보이스>의 영역을 거쳐 옮겨 싣는다. 파시즘인가 보나파르티즘인가? 보우소나루 아래의 브라질을 이해하기 위한 트로츠키의 교훈 진정한 의미의 파시즘이 브라질에서 부상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주의는 보우소나루 정부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극우에 맞설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193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 마르크스주의는 운동의 이정표이며, 동시에 우리를 집단화하는 사고의 지침이자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현상을 구분할 수 있도록 만든다. 브라질에서는 극우에 맞서는 결단력 있는 투쟁의 조직이 절실하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과 그의 협력자들이 전체 체제 안에서 입지를 강화한 대선 1차 선거 결과는 이를 재확인했다. 반면 노동자당(PT, Partido dos Trabalhadores)과 룰라(1)의 선거 캠페인은 우리가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선언한다. - 이 선언은 극우와 맞서는 거리의 모든 풀뿌리 운동을 방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파시즘 규정은 보우소나루와의 그 어떤 진지한 대립도 방해하는 노동자당의 정책을 가리는 유용한 역할을 한다. 보우소나루의 실제 파시스트적 면모를 바탕으로, 이 공작은 극우파에 대한 거부를 룰라-알크민 선거운동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기 위해 “파시즘 대 민주주의”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대중들 사이에 공포를 주입하려고 한다.(2) 이는 트럼프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보우소나루와 대치한다면서, 우파, 대규모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그리고 미제국주의 민주당 분파와의 계급적 화해로 나아가는 행위다. - 이들 모두가 오늘날의 반동적 상황에 우리를 몰아넣은 2016년의 제도적 쿠데타에 책임이 있는데도 말이다.(3) 헤지스땡시아(Resistência, 사회주의자유당(4) 내 분파) 같은 특정 좌파 그룹들은 이러한 노동자당의 노선을 복창해 왔다. 헤지스땡시아의 리더인 발레리오 알카리(Valério Arcary)는 에미르 사데르(Emir Sader,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의 정치학자)의 주장이나 “파시즘 대 민주주의” 이분법 같은 노동자당(PT)의 선전을 되풀이한다. 정치적 개념들을 혼란스럽게 뒤섞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알카리는 브라질의 “네오파시스트들” 때로는 “파시스트들”을 물리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즘을 물리치기 위해 “선거일에 전국을 붉게 만들 것”을 요구한다. 룰라-알크민의 계급화해 정치에 대한 열렬한 헌신으로, 이 조직은 보우소나루가 첫 번째 임기 때는 파시스트 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던 것과 관계없이 이번에는 꼭 파시스트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희한한 “두 번째 임기 파시즘” 주장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이 파시즘이고 무엇이 파시즘이 아닌지, 그리고 오늘날 브라질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헤지스땡시아와 마르크스주의 간의 결정적인 단절–오늘날 브라질이 파시스트 지배 아래에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는-에 대해 살펴보자.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어떻게 파시즘과 맞서 싸웠는가? 친보우소나루 극우파들은 노동계급, 여성, 흑인, 원주민, LGBTQ+ 대중들의 적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보우소나루와 그의 협력자들은 눈에 띄는 초기 파시스트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러한 개별적인 초기 파시스트적 특성이 대중적 현상이 된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브라질에서 파시즘의 발흥을 목격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런 현상은 혁명이냐 반혁명이냐를 가르는 격돌이 예고된 가운데 노동자계급이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만 현실화 될 수 있다. 만일 실제 파시스트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알카리의 조직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헤지스땡시아는 알크민, 상파울루주산업연맹, 브라질은행연맹, 미국 민주당 등 2016년 쿠데타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세력들과 함께하는 캠페인에 기꺼이 뛰어들고자 한다. 헤지스땡시아는 투표함 안에서, 노동자당과 우파의 동맹에 던지는 투표를 통해서 파시즘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믿는다. “선거일에 파시즘을 물리치자”는 헤지스땡시아의 기치다. 알카리와 다른 대변인들을 통해,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스트와 맞설 유용한 무기로 선거를 활용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적인 결론은 계급 간의 물리적 투쟁 공간에서 파시즘에 맞서는 대신, “평화로운” 시기 “통상적인” 부르주아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의 임무는 “반-파시스트” 세력(또는 사회주의자유당내 좌파사회주의운동(MES) 소속, 루씨아나 젱호의 표현에 따르면 “민주세력”(5))의 가장 광범위한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바로 체제 내 많은 인사들이 페르시오 아리다, 알미노 프라가, 페드로 말란 등 199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 신봉자들의 복귀를 환영하면서(6) 룰라-알크민의 광범한 전선을 가리키며 사용한 성격규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파시스트 현상에 맞서는 방법일까?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의 정치적 논리는 정반대다. 파시즘에 맞선 투쟁은 부르주아계급의 모든 부문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노동계급 헤게모니에 기반을 둔 강령과 함께,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에 맞선 노동계급의 단결을 바탕으로 여성, 흑인, 청년 그리고 억압받는 모든 민중과 연대해 나아가야 한다고 제기한다. 이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코민테른에서 정교하게 다듬었던 노동자공동전선의 목표다. 1921년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발표된 노동자공동전선 전술(카프 폭동이라고 불리는 1920년 3월 볼프강 카프와 발터 폰 뤼트비츠의 쿠데타 시도에 맞서, 독일 노동자계급이 성공적 투쟁을 전개한 데서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은 전략을 강조하던 당대 마르크스주의의 무기고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가운데 일부다. 노동자공동전선 전술은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전술적 측면으로는 민주적 권리를 향한 극우파의 공격에 대항하는 것을 포함해 최소한의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자 대열을 단결시키기 위한 개량주의자들과의 일시적 합의를 포함한다. 동시에, 전략적 측면으로는 -이것이 주된 목적인데- 대중들의 공통된 경험의 산물을 통해 (그리고 단결된 행동에 대한 개량주의 지도부의 거부를 통해) 혁명 정당들의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권력 쟁취의 전망으로 다수의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전술은 항상 부르주아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한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의 승리는 많은 부분 노동자공동전선에 입각한 접근에 대한 스탈린의 경멸에서 비롯되었다. 스탈린의 전술은 파시스트 집단을 물리치기 위한 공산당 계열과 사회민주노동당 계열 노동자들 간의 단결을 방해하고 계급투쟁을 저해했다. 이후 대응방식을 정반대로 뒤바꾼 스탈린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인민전선을 활용했는데 이는 계급투쟁을 연기시켰고 그 결과 혁명을 방해하고 파시스트들에게 승리를 내줬다. 히틀러가 독일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 트로츠키주의 좌익반대파들은 파시스트들의 부상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고, 공장과 노동자 거주지를 방어하는 등)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단결을 이뤄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노동계급의 자주적 단결이라는 방침은, 스탈린의 지시 아래 “제3기” 지침에 따라 코민테른 독일지부와 오스트리아지부에 의해 고의적으로 방해받았다. “제3기” 지침이 적용되는 동안 공산당 조직과 개량주의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노동자 운동의 지도력을 갖기 위해 서로 싸웠는데, 이는 양측 모두에게 유해한 갈등이었다. 이러한 행보는 영국과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기회주의가 재앙을 불러온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탈린주의의 파국적이고 종파적인 정책의 결과로 나치가 승리를 거두자 코민테른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스스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동맹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합의 기간에는 개량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것을 포함) 제국주의 부르주아 정당들 가운데 “민주적” 분파와도 손을 잡았다. 스탈린과 프랑스 외무장관 라발의 공동선언은 프랑스 공산당의 “사회적 평화”에 대한 약속과 함께 소련과 프랑스 간 군사협정을 얻어냈다. 이는 전 세계 ‘반파시스트’ 인민전선들의 모델이 되었다. 트로츠키는 노동자공동전선을 제기했다. 노동자공동전선은 계급화해주의 인민전선을 세우려는 기회주의 정책과 맞서 싸우고 계급투쟁의 실질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단결된 운동을 (모든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핵심에 두었다. 1930년대 내내 트로츠키는 "반파시즘 전선"이라는 미명 아래 부르주아의 이른바 민주적-공화적 분파-항상 이러한 선거 구호를 내세웠던-와 타협하는 정책에 격렬하게 맞서 싸웠다. 이는 스탈린주의가 스페인과 프랑스에 인민전선을 건설하여 수많은 혁명적 과정들을 파괴하고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도록 하는 길을 닦은 기치였다. 20세기 후반 브라질에서는 이 정책을 되풀이한 결과 일련의 패배로 이어졌다. 브라질 공산당이 주도한 계급화해 정책은 노동자농민 운동의 패배로 이어졌으며 1964년 군사독재 정권의 대대적인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군사독재 이후 시기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화해는 1988년 헌법에서 군부의 후견인역 확립으로 이어졌고, 1990년대 신자유주의로 향하는 길을 수월하게 했다. 동일한 결말을 맞은 역사적 사례들은 넘쳐난다. 진정한 파시즘의 부상을 마주한 트로츠키는 1936년 7월 오스트리아 노동자들과의 대담에서 해당 문제를 조명했다. 트로츠키는 히틀러에 맞서 "반파시스트" 세력과의 동맹을 요구한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들의 모든 정책은 다음과 같은 사고에서 나온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노동자들의 주적은 히틀러다. 따라서 그들의 당면 임무는 히틀러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스트리아 안팎의 “민주적” 부르주아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이 포함된 모든 “반파시스트 세력”과 프롤레타리아가 동맹을 맺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 동맹은 계급투쟁을 완전히 유예해야만 가능하다. 다른 어떤 근거를 대더라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계급의 동맹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방금 우리가 보여주려 했듯, 이 정책은 나치의 승리를 부추긴다. 간결한 반증을 통해, 트로츠키는 부르주아(반파시스트 세력의 일부로 간주되는)와의 동맹은 계급투쟁을 미루고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조직을 무력화하면서 극우와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파시스트의 위협에 직면해,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무기를 내다 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분석을 브라질의 상황에 적용하면 계급투쟁을 유예하는 것이 노동자당의 전형적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일례로, 국립대학들을 향한 보우소나루의 공격에 직면했을 때, 노동자당과 연계된 노동조합 관료들은 투쟁을 조직하는 대신 기를 쓰고 도망쳤다. 룰라는 알크민으로 대표되는 재계 리더들에게 어떤 불안정의 신호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10월 2일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통해 -보우소나루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표를 얻어 결선 투표가 열리게 됨- 이러한 정책이 극우파를 더 강력하게 만들 뿐이라는 게 드러났음에도 이들의 해결책은 “파시즘과 맞서기 위해” 선거에서 부르주아계급과 화해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스페인 좌익반대파 안드레우 닌과 그밖에 전 세계 다른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와의 이러한 동맹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 동맹들을 “반파시즘 전선”이라 부르든지, “확장된 전선”이라 부르든지, 아니면 소설가이자 프랑스 공산당원인 앙리 바르뷔스, 소설가 로맹 롤랑, 스탈린주의 코민테른 지도자들 같은 이들이 1930년대에 그런 것처럼 “대중들의 통일전선”이라 부르든지 간에 말이다. 트로츠키는 1935년 4월에 쓴 글에서, 노동자 공동전선의 기본 개념이 “부르주아 개인, 평화주의자, 민주적 작가들 등”과 연결되면서 의미를 상실한다고 말한다. 트로츠키의 결론은 이랬다. “이 모든 블록, 회의, 위원회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핵심을 구성하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서 수동성, 비겁함, 무능력을 감추는 게 자신의 과업이다.” 트로츠키의 예상은 정확했다. 선거를 통해 파시스트 문제를 해결하길 원했던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1930년대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로 이끌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스탈린주의자, 그리고 민족 자본가 사이의 동맹은 “반파시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계급투쟁을 가라앉혔다. 노동자들의 사기가 저하된 틈을 이용해 돌푸스 정부는 사건을 일으키기 위한 일련의 도발을 감행했고, 결국 1934년 성공을 거둬 오스트리아군(軍)이 노동자들을 학살하도록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는 공산당, 사회당이 공화주의 자본가(급진당)와 결성한 동맹이 1936년 인민전선의 창설로 이어졌다. 1934년부터 힘을 키워온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공장 점거 물결이 일어나고 있던 계급투쟁에 제동을 걸었으며, 혁명적 봉기가 패배하는 길을 예비했다. 이것은 차례로 패탱 원수(元帥)의 비시 정부와 나치의 점령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스페인에서는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스탈린주의자가 마누엘 아사냐와 디에고 마르티네스 바리오가 이끄는 공화주의 부르주아와 함께한 인민전선(안드레아 닌과 통합마르크스주의노동자당(7)의 지지를 받았다)이,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의 수호와 자본의 지배를 인정했다. 영웅적인 스페인혁명을 파괴하면서 말이다. 점차적으로,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 조직들은 파괴되었으며, 노동자 민병대는 무장 해제되었고, 공장은 이전의 소유주들에게 도로 넘어갔다. 프랑코 파시스트 정부를 향한 길을 닦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각각의 역사적 실례에서 명백한 것은, 파시즘을 패퇴시키는 게 헤지스땡시아가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주장한 것처럼 투표를 통해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진짜 파시즘 현상과 진지하게 맞서는 방법은 무엇인가? 파시즘에 맞선 투쟁은 선거가 아니라 물리적 투쟁을 포함한 계급투쟁을 통해서 해결된다. 그 시작점은 모든 자본가 정당들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이다. 스페인의 예를 보자.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에 반대해, 대토지 소유를 폐지하고 농촌 대지주들을 수탈해 소농에게 토지를 즉각적으로 재분배하며, 자본가들을 수탈해 공장을 즉각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넘겨주는 투쟁을 주장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민전선의 입장과는 반대로 트로츠키가 마드리드 정부의 통치로부터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을 수호하면서 모로코에서 스페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할 것을 강조한 점이다. 그것은 프랑코세력 군부에 대한 정면 공격이었다. 이 정책은 “반파시즘 세력들”의 동맹 논리와 정확히 정반대였다. 그것은 기초적인 민주적 요구의 방어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조직을 기반으로 하여, 반자본주의 사회적 경제적 요구를 건설한다. 이는 공동전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다시 말해 (소위 민주적 자본가들을 포함해) 자본가들에 맞선 계급투쟁 속에서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내건 노동자들의 단결된 행동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이것이 극우파와 파시스트들에 맞서 싸우는 정확한 정책이다. 나치가 승리하기 이전 독일에서의 상황을 두고 스탈린주의자들과 논쟁하면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사회민주당 또는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과의 공동의 연단(演壇)도 없으며, 공동의 출판물, 깃발, 현수막도 없다! 따로 행진하되, 단결해서 파업하라! 오로지 어떻게 파업할 것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파업할 것인지, 언제 파업할 것인지만 합의하라!”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트로츠키가 사회민주당과 같은 개량주의 노동자 조직과의 선거 협정이라는 의회주의적 수단을 계급투쟁에 유해(有害)한 것으로 문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심지어 인민전선의 시대 이전부터 그러했다.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우파, 대자본, 그리고 미제국주의의 민주당 분파와 함께하면서 룰라의 대통령 선거운동 속으로 자신을 용해시킨 헤지스땡시아의 기회주의적 적응이다. (어떻게 파업할 것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파업할 것인지, 언제 파업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에 기초한) 노동자 공동전선이라는 트로츠키의 방법은 실제로 성공을 거두었는가? 그랬다. 다양한 역사적 순간에서 말이다. 1917년 코르닐로프 장군(러시아혁명에 반대한 파시스트 세력)의 반란 시도에 맞선 투쟁에서, 볼셰비키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케렌스키 임시정부 기간 소비에트를 이끌었던 개량주의 정당들)에 공동전선 전술을 제안했다. 이 공동전선은 노동자들을 단결시켰고 케렌스키와 동맹을 맺은 장군들이 이끄는 공격을 분쇄했다. 이 정책은 볼셰비키의 지위를 강화한 반면 계급화해주의자들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코르닐로프에 맞선 투쟁은 케렌스키에 대한 어떠한 지지도 없이, 그리고 선거 수단들이 아니라 손에 쥔 무기를 가지고 수행됐다. 1920년 독일 노동조합들의 공동전선은 카프 폭동을 물리치는 데서 결정적 요인이었다. 뒤이어 독일에서 히틀러에 맞선 투쟁에서, 브르후잘과 클링엔탈 지역에 노동자 공동전선이 건설됐다. 공동전선에는 공산주의자 노동자들, 브란들러-발처가 이끄는 사회주의노동자당(SAP)의 중도주의자들(이전에는 우익 반대파의 일부였다), 그리고 지도부에 저항하는 조합원들이 지역의 나치 세력을 패퇴시키기 위해 함께했다. 1936년 7월 스페인혁명에서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자들이 파시스트들의 반동을 분쇄하기 위해 단결했다. (그러나 인민전선 군대가 이들을 억누르고 무장 해제했다.)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심지어 브라질에서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1934년 갈리나스 베르데스 반란에서 다양한 정치적 그룹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의 공동전선을 이끌었고, 쎄 광장(Praça da Sé) 전투에서 통합주의자들(8)을 물리쳤다.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발전된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은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풍부한 무기들의 일부이며, 오늘날 필수적이다. 공동전선은 전술적 측면과 전략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전술로서 공동전선은 노동자 대열을 단결시켜 공동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위급한 동맹으로서 개량주의자들과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전략적으로 공동전선의 주요 목표는 대중들과 공동의 경험을 거침으로써 혁명정당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다. 대중들이 개량주의자들의 지도를 거부하도록 도와,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 다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모든 단계에서, 공동전선은 지배계급 내 어떤 분파와도 독립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반복하지만 독일에서 1933년 히틀러의 승리는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에 대한 스탈린주의자들의 경멸, 즉 계급투쟁을 외면하고, 공산주의자 노동자들이 파시스트 집단에 맞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어떤 형태의 연합도 못 하게 막은 데서 비롯됐다. 뒤이은 유턴에서, 스탈린은 인민전선을 이용해 혁명적 운동을 패퇴시켰다. 그것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파시즘의 승리를 가져왔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자 공동전선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책이 아니라, 반마르크스주의 인민전선 정책의 변종을 채택했다. 이 정책은 “반파시스트” 우파부터 상파울루주산업연맹(FIESP), 알크민, 바이든과 함께 하는 선거연합을 지지한다. “함께 행진하되 절대 파업하지 말라!”가 그 공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보우소나루주의를 패배시키는 데는 무능력하지만 강화시키는 데는 충분히 유용한 룰라-알크민 후보의 계급화해주의 정책‧강령을 고수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압제자들과 단결한다며 계급투쟁을 미루는 수치스러운 정책이다. 브라질에서 파시스트 봉기가 일어난다면, 헤지스땡시아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치명적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절대적으로 동떨어진 것이다. 파시즘이 아닌 것을 왜 파시즘으로 규정하는가? 브라질의 실제 상황은 무엇일까?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즘”에 관한 노동자당(PT)의 선전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그것은 브라질의 정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보우소나루주의 극우파의 반동적 행태를 정치이론적 범주로서의 파시즘과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에서 배우기 위해, 이론적으로 일반화된 경험을 적용한다. 그러한 전통에 입각해, 우리는 파시즘의 핵심이 모든 노동자 조직을 완전히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원자화를 통해서 그 재건을 막는 것이라 이해한다. 트로츠키는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목표는 오로지 경찰력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그를 위한 단 한 가지 수단이 있는데, 절망에 빠진 소부르주아 대중의 압력을 이용해, (프롤레타리아가 약해진 순간에) 프롤레타리아의 압력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것이다.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자본주의적 반동의 바로 이 특정한 체계다.” 파시즘은 절망에 빠진 중간계급과 거대 금융자본의 테러주의 정치가 결합한 산물이다. 파시즘은 소부르주아의 몰락한 부문들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야말로 자신이 겪는 역경의 이유라고 믿게 만든다. 파시즘은 노동자와 자본가들 사이의 공공연한 충돌이 발생할 때 반혁명 진영의 선제적이거나 후속적인 직접적 대응으로 나타난다. 보우소나루는 트럼프주의 극우파의 야만성을 대표한다. 우리는 모든 차원에서 보우소나루 정치의 매우 반동적인 특성을 이해해야만 하며, 노동자계급이 가진 가장 훌륭한 역사적 수단을 활용하여 그에 맞선 엄중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브라질리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자 불꽃(Faísca) 회원인 루이자 이네끼가 말한 대로다. “우리는 노동자당(PT)이 하는 것처럼 자본이나 우파와 동맹을 맺지 않은 채, 교육에서의 긴축, 보우소나루주의, 혐오스러운 극우파와 싸우기 위해 단결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조금만 이론적 엄밀성을 갖더라도 브라질에는 파시즘도 없고 파시스트의 발흥도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특정한 선거적인 환상들에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타락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몇 가지 중간 단계가 있는데, 이 중 어느 것도 중대한 격변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정부의 기본 기능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인 보나파르티즘의 다양한 단계들도 포함된다. 트로츠키는 보나파르티즘을 이렇게 정의했다. 의회를 약화시키면서 좀 더 직접적으로 군사력에 의존하며, 언제나 자본주의적 소유를 보호하고 질서를 강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투쟁하는 계급들 위에 있으려 하는 정부형태. 좀 더 결정적인 물리적 충돌에 대해서는 아직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보나파르티즘은 “질서”의 도구다. 그것은 현존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소환된다. 정치적으로 계급들 위에 올라선 보나파르티즘은, 이전의 카이사르주의처럼, 사회적 의미에서 언제나 그리고 모든 시대마다 착취자들의 가장 강력하고 확고한 부분의 정부를 대표한다.“ (트로츠키, 1934년, <보나파르티즘과 파시즘>) 유럽 국가들을 위해 작성된 이 정의는, “[국가] 관료체계의 정점들을 지시하고, 고무하고, 부패시키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결정적 권력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반식민지 종속 지역에 적용했을 때는, 무엇보다 외국 금융자본에 대한 지역 대표자들의 굴종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보우소나루는 제국주의에 대한 가장 절대적인 굴종의 상징이다. 게다가 그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에 유리한 공격을 벌이기 위해 정부의 장군들과 사법적 권위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몇 가지는 의회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는 다양한 위기를 피해 나가기 위해 의회 내 자기 기반에 체계적으로 의존해왔다. 보우소나루표 보나파르티즘은 사회의 가장 진보된 부문에 오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결국 금융자본의 목적을 추구하는 “민주적” 수단을 방어하는, 또 다른 보나파르티스트 세력인 사법부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공공질서가 어지럽혀질 경우” 군부에게 정치개입 권한을 주는 제142조와 같이, 독재정부가 만든 헌법 조항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금융자본과 대중들의 이해를 조화시키겠다는 이 헛된 시도는, 또한 자본과 노동의 동맹이라는 노동자당(PT)의 고전적인 개념을 부활시킨다.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정치적 단계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만들며, 이것은 극우파에 맞서 더 나은 싸움을 벌이는 데서 필수적이다. 브라질에서는 혁명과 반혁명이 서로 충돌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계급의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 곧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자본가들이 노동자와 민중에 대항해 내전의 방법을 사용할 준비를 요구받는 수준의 계급투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우소나루는 의회 기반을 포기할 수 없으며, 그것 없이는 취약해질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극우파를 흡수해 그를 “정상화”하려는 정권의 입법 및 사법 기관(예를 들어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수개월 간 영향을 받아왔다. 파시스트 운동이 출현하기 위한 조건은 리더 개인의 열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계급의 객관적 요구에 달려 있다. 이 분석은 브라질에서 우익 요소의 중요성을 깎아내리자는 것이 아니며, 쿠데타 위협, 선거 절차에 대한 공격, 그밖에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에게 전형적인 행위들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분석의 목적은 사회적 갈등의 현 단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올바른 방침을 발전시켜 내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만일 우리가 파시즘에 실제 직면한 것이 아니라면, 이 지도자들은 “파시스트 위협”에 대한 경고를 통해 무엇을 얻길 바라는가? 그들의 목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체제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모하는 것을 막고 “파시스트의 광란”을 멈출 유일한 길은 “룰라의 지도력”(룰라의 선거 승리)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다. 발레리오 알카리와 헤지스땡시아는 룰라-알크민 선거운동의 저렴한 옹호자가 되었다. 이 선거운동이 교회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보여주려 애쓰고,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옹호하지 않겠다고 홍보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노동자당(PT)이 선거에서 내놓은 입장들을 충실히 지지하고 있는데, 심지어 노동개악에 대한 공식 입장마저 복창하고 있다. 알카리에 따르면, 노동개악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즉 그는 초자유주의 노동개악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대자본의 이익에 복무한다. 화해에는 결과가 따른다. 이 경우에는 여성과 노동자계급에게 관건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강령이 후퇴하는 결과가 뒤따랐다. 최근 브라질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중운동이 실제 파시즘 위협에 대비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당(PT)의 정책과 사회-자유주의 연합(명목상 사회[민주]주의를 내건 세력과 신자유주의 세력의 연합 –옮긴이)을 정당화한다. 그것은 극우파가 강요하는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공격에 맞선 대중 결집을 억제하는 것이다. 트로츠키가 지적한 대로, “반파시즘 세력”과의 동맹은 오로지 계급투쟁을 미루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부르주아와의 화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평화”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2016년의 제도적 쿠데타 이후 노동자당(PT)이 해온 일이다. 테메르의 노동개악에 맞선 2017년 4월 28일 총파업이, 노동자당(PT)과 연계된 노총들에 의해 결국 봉쇄되었음을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아무런 반대 없이 통과됐던 2019년의 범죄적 연금개악을 잊을 수 있나? 둘 다 2018년에 있었던 마리엘 프랑코와 카포에이라(브라질 전통무술) 사범 모아 살해 사건, 2022년 환경운동가 브루노 페레이라와 돔 필립스 살해 사건은 어떤가? 노총들이 무시했던 이들의 죽음은 극우파에 맞선 대결이 되어 나라를 마비시켰어야 하지 않았나?(9) 그리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축소하는, 경제장관 파울로 게데의 ‘그린 앤 엘로우 카드 프로그램’(브라질 국기 색인 녹색, 황색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고용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노동권 공격 정책 -옮긴이)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어떤 투쟁도 없이 통과됐던 것은 어떤가? 공교육에 대한 수많은 공격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극우파가 가장 사악한 긴축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당(PT)이 통합노총(CUT), 브라질노총(CTB), 전국학생연합(UNE) 지도부를 통해 보여준 대응은 대중운동의 무장 해제였다. 우익의 전진이 공공연한 계급투쟁의 시나리오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렸다. 이 생각은 2020년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에서 거짓으로 증명된 바 있다. 지도력이 수행하는 역할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서 필수적이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자당(PT) 지도부가 알크민, 바이든, 대법원, 대자본과의 동맹으로 계급투쟁을 억제하는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헤지스땡시아는 스스로 “파시즘”이라 부르는 것과 맞서 싸우는 과제를 브라질 자본가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는 룰라-알크민 정부 수준으로 강등시킨다. 그것이 노동자 투쟁의 조건을 “개선”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자본가국가가 파시스트에 맞선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알카리의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이라는 긴 사슬에서 마지막 고리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을 “구출”할 수 있다고 보는 알카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가국가를 대자본이 하위 계급을 억누르는 도구로 본다. 자본가국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한다. 그것은 “민주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계급투쟁이 요구할 때는 파시즘일 수도 있다.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우익 보나파르티즘(또는 선(先)보나파르티즘)의 변종을 포함하기도 한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조합을 국가 통제 아래 두거나, 국가와 연결된 노조 관료가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조직과 투쟁을 막을 수 있는 권력을 갖게 하는 정책들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 중 하나를 깨뜨린 것이다. 노동조합 관료제는 자본가 민주주의의 주요 기둥 가운데 하나이며, 그것 없이 지배계급은 대중의 빈곤 속에서 최소한의 안정도 얻을 수 없다. 헤지스땡시아는 역병을 피하듯 계급투쟁을 피하면서, “진보 정부”가 어떻게든 흉악한 극우에 맞서는 “국가 차원의 안전장치”가 되리라는 노동자당(PT)의 환상을 부채질한다. 그러나 극우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의 주먹으로, 그리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모든 경제적, 사회적 공격에 대해 “수정”이 아니라 폐지를 내걸고 투쟁하는 노동자 강령으로 분쇄돼야 한다. 6년 전, ‘혁명적 노동자운동’(MRT. FT그룹의 브라질지부)이 지우마 호세프 정부에 대한 우파의 제도적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동안, 발레리오 알카리는 제도적 우익 쿠데타를 지지할 것인지와 같은 기초적 문제를 두고 통합사회주의노동자당(PSTU)의 내부 논쟁에 참여했다. 유감스럽게도, PSTU는 ‘세차 작전’의 결과로 노동자당(PT)이 권력에서 제거된 것을 전진으로 보아, 쿠데타에 적응하는 입장을 채택했다. 이 심각한 오류에 대응하여, 당시 알카리 분파는 앞으로 나아가 제도적 쿠데타에 반대했다. 그것은 기초적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의 ABC에 기초한 입장이었고, PTSU의 굴복 때문에 그렇게 비쳐졌지만 어떤 거대한 진보는 아니었다. 상황은 비극이었다. 그 후 알카리 분파는 쿠데타에 맞선 시위에는 기권하면서 “즐거운 미래를 건설하자”라고 이름 붙인 축제를 조직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을 심화시켰는데, 오늘날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역할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알카리 분파가 가장 열광적인 선거주의에 기반해 있는 노동자당(PT)으로 용해된 것은, 이미 그 분파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그 분파는 알크민과 바이든은 말할 것도 없고, 쿠데타실행자들, 신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대법원, 상파울루주산업연맹, 브라질은행연맹, 그밖에 비슷한 종류의 반동들과 손잡고 “즐거움”을 선언한다. 헤지스땡시아는 과연 저항할 것인가? 오직 시간만이 답할 것인데, 시간은 무자비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일반화했을 때 브라질 역사와 세계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큰 교훈을 준다. 부르주아와의 동맹을 통해서는 극우와 싸우는 것도, 노동자계급에게 유리한 세력관계를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청년의 불꽃’은 브라질리아의 UnB, 캄피나스의 Unicamp, 상파울로의 USP와 같은 전국의 대학들에서 펼치진 상황에 개입할 때 바로 이 점을 보여주었다. 회원들은 현 상황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룰라-알크민 후보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없이 보우소나루주의에 맞선 직접적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자고 주장했다. USP의 마리아나 두아르테가 말한 대로, “지금 당장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극우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현장 조직화, 집회, 파업 같은 우리 고유의 투쟁방식을 통해서 가능하다.” Unicamp에서 줄리아나 베지아또는 이러한 토론들에 힘을 불어넣는 투쟁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다마리스, 무로오, 히까르도 살레스 같은 혐오스러운 인물들이 당선되면서, 보우소나루주의는 브라질에서 계속 사회적 세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파와 동맹을 맺지 않은 채, 투쟁하고 결집해서 반동적인 보우소나루주의에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 사장이나 사업가들과의 계급 화해라는 노동자당(PT)의 정책으로는 보우소나루주의를 물리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파를 물리쳐야 한다. 노총들과 전국학생연합이 각 현장마다 집회를 조직할 것을 요구하자. 그 집회에서는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자기조직화를 할 수 있고, 우리에게 행해지는 모든 공격에 맞서 투쟁할 계획을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영역자 주> 1. 룰라로 잘 알려진 룰라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노동자당(PT)의 대통령 후보이다. 룰라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브라질 대통령이었으며, 노동자당(PT)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노동자당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좌파 정당으로, 오늘날 이념적으로는 대략 사회민주주의에 해당한다. 룰라의 후임은 역시 노동자당(PT) 소속인 지우마 호세프였다. 2. 룰라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는 브라질사회당(PSB)의 제랄도 알크민이다. 그는 상파울루 주의 전 주지사였다. 3. 2015년 12월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부패”를 이유로 탄핵하는 절차가 시작됐다. 탄핵소추는 ‘세차 작전’(브라질리아의 한 세차장에서 처음 “적발”됐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됐다)에 기반해 있었는데, 그것은 2013년 호세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중에 시작된 브라질 연방경찰의 부패 범죄 수사로 처음에는 브라질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에 집중돼 있었다. 이후 이 범죄 수사는 룰라를 감옥에 가두는 데 활용됐는데, 이는 노동자당(PT)이 2018년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으며, 미 제국주의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2016년 8월 브라질 상원은 지우마 대통령의 예산법 위반을 찾아내 지우마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국가기관을 활용한 무혈 쿠데타를 일으켰다. 4. 사회주의자유당(PSOL)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하는 브라질의 좌파 정당으로 규모가 꽤 있다. PSOL은 노동자당(PT)에서 축출당한 당원들이 만들었다. 5. 좌파사회주의운동(MES)은 PSOL의 가장 큰 분파다. 6. 페르시우 아리다는 브라질 개발은행의 전 총재다. 아르미니우 프라가는 브라질 중앙은행의 전 총재다. 페드루 말란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브라질 재무장관이었다. 7. 통합마르크스주의노동자당(POUM)은 스페인에서 ‘트로츠키주의 공산주의 좌파’와, 코민테른 내 우익반대파와 연계된 ‘노동자와 농민’ 블록이 연합하며 결성됐다. 트로츠키는 결성을 반대했다. 8. 브라질의 통합주의는 1930년대 초반의 운동으로, 당시 유럽의 대중적 파시즘 운동과 유사하다. 9. 리우데자네이루 시의원이자 LGBTQ+ 활동가인 마리엘 프랑코는 2018년 3월 자신의 차에서 암살당했다. 모아 두 카텐데는 63세의 아프리카-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의 사범으로, 사랑받는 문화인이자 흑인 권리 옹호자였는데, 스스로를 보우소나루 지지자라고 밝힌 자에게 2018년 10월 7일 살해당했다. 그날은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승리한 날이다. 브루노 페레이라는 브라질 원주민 전문가로, 아마존 원주민의 토지에 대한 불법 침략에 맞서 서류 작성, 고소 등 아마존 원주민을 지원해왔던 활동가다. 돔 필립스는 2022년 6월 기습 살해됐을 때, <아마존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책을 쓰기 위해 페레이라와 함께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의 서부 지역으로 연구 여행 중이었던 영국 저널리스트다. 살해범들은 아마도 불법 어업 네트워크 두목들 중 한 명에게 지시를 받아 행동했을 것이다. 번역: 윤종훈, 김요한 원문 https://www.leftvoice.org/fascism-or-bonapartism-lessons-from-trotsky-for-understanding-brazil-under-bolsonaro/2022-11-22 | 조회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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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우익이 페미니즘을 이용하는 방법사진: 로이터 통신 세계의 정치 무대에 조르자 멜로니와 같은 우익 여성 지도자의 존재가 부상하고 있다. 이는 우파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떻게 ‘페미니즘’을 부당하게 이용하는지 보여준다. 지난 9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조르자 멜로니 우파연합이 승리하자 유럽 전역이 크게 우려했다. 멜로니의 집권은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토대로 한 극우세력 확대, 그 새 국면을 뜻한다. 그러나 멜로니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의 앞에는 리즈 트러스 영국 전 총리와 같은 ‘고전적인’ 우익 지도자들이나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나 독일대안당의 알리체 바이델과 같은 ‘복원자들’이 있다. 이러한 광범한 우려를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미국 전 국무장관이자 유리천장 페미니즘의 아이콘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는 멜로니의 승리에 “한 나라에서 첫 번째 여성 총리의 선출은 항상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그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라고 반응했다. 그는 멜로니가 극우정당 소속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선출은 클린턴에게 좋은 소식처럼 보인다. 클린턴의 진술은 가장 최근의 역설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여성이 고위직을 맡을 때마다, 국가를 관리하는 이들의 젠더가 정책과 질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젠더 워싱(Gender washing), 즉 권력의 자리에 있는 여성의 존재를 긍정적인 어떤 것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이는 여성들이 타고난 양육자, 조정자, 공감자로 간주되어, (이러한 특성이) ‘여성적인’ 자질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들이 공식적인 연설이나 선거 운동, 광고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유이다. 동시에 팬데믹이나 다른 위기의 시기에, 권력의 자리에 있는 여성들의 존재는, 실비나 바타키스 아르헨티나 경제부 장관의 짧은 재임과 같이, ‘유리절벽’이라는 또 다른 오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여성들은 격동의 시기에, 단지 빨리 버려지기 위해 요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인가? 이상하지만 효과적인 혼합 멜로니의 선거운동 슬로건은 ‘신과 조국, 가정’이었고 2019년에는 한 연설에서 “나는 여성이고, 엄마이며, 이탈리아인이자 기독교 신자”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연적인 가족을 지지하며, 게이의 로비에 반대하여”) 공개적으로 페미니즘과 LGBTQ+ 운동을 반대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선거운동 이슈 중 하나는 반동적인 ‘민족 대체’ 이론에 따라 이탈리아 출생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다른 우파 여성 지도자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 어머니, 가족’이라는 프로필을 쉽게 사용한다. 멜로니와 이러한 정치인들은 연구자 사라 패리스(Sara Farris)가 칭한 ‘페모내셔널리즘(femonationalism)’으로 수렴된다. 이는 반동적인 정책들을 지지하기 위해 페미니스트의 필요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패리스와 다른 연구자들은 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점점 더 이슬람 혐오적으로 변해 가는지 뿐만 아니라 유럽 우파정당이 페미니즘 이슈를 받아들이는 이유를 알고자 했다. 많은 우파와 심지어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지지하는 머리 스카프 금지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현상의 한 예이며, 마흐사 아미니의 살해에 대한 이란의 시위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었다. 억압에 맞선 투쟁을 국가의 반동적인 금지정책에 대한 지지와 혼동하는 것은 우익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성의 권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이들 우익 부문은 성별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킨다. 남성 이민자, 특히 아랍이나 무슬림 출신 이민자들은 성적 위협이자 안보와 경제상의 위협으로 묘사된다. 여성들은 억압적인 문화로부터 구해져야 할 희생자로서 묘사된다. 동시에, 이 그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주민들이 노동시장과 일반적으로 유럽 복지 부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적절한 복지와 사회 서비스 제공에서 물러나면서 이민자들은 특히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문제에서 그 격차를 점점 더 메우고 있다. ‘문화적 위협’이라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이민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 들면, 스페인 극우 복스당 마드리드지부 지도자인 리치오 모나스테리오는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스페인에서 여성의 평등을 끝내고자 하는 이민자들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르펜은 2017년 “이주민 위기가 여성 인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가 될까 두렵다”고 기록했다. 멜로니가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에 대한 성폭행 동영상을 유포하면서 가해자가 아프리카 이민자라고 강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성을 안아 달라. 나는 우리 도시의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멜로니는 마땅하게도 그 여성을 다시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외국인 혐오적인 태도는 별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지아 세루게티(Giorgia Serughetti)에 따르면, 극우는 가해자가 이탈리아인이 아닌 여성혐오 폭력만을 겨냥한다.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이탈리아인인데도 말이다. 그는 또한 여성이 전통적인 우익의 수사학을 동원하여 여성의 권리 침해에 항의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이민에 적대적인 여론에 호소하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KKK단의 여성들 우파가 젠더 워싱을 이용하거나 반동적 논리를 페미니즘의 외관과 결합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난동은 종종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된 ‘해로운 남성성’의 표현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트럼프는 많은 여성 지지자들을 보유했으며, 큐어넌 운동의 대열은 여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일반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여성의 참여는 과소평가된다. 아마도 그러한 반동적 현상이 불평등과 억압의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남성적 본질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UC 버클리 역사가인 스테파니 존스-로저스(Stephanie Jones-Rogers)가 지적하듯이, 백인 우월주의에 연루된 여성들의 역사는 노예 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반대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백인 여성들을 늘 희생당하는 동질적인 집단으로 위치시키는 경향이 식민시대부터 있었다.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여성의 참여는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KKK단의 회원 수가 150만으로 성장했는데, 그들이 벌인 일의 대부분은 백인, 개신교 교외 주택가에서의 집단적 활동에 집중되었다. 언론인 에밀리 카타네오(Emily Cataneo)는 참정권 운동의 다양한 진영에 반인종차별주의적 비판이 부재했고, 투표할 권리가 획득된 뒤 이른바 페미니즘과 인종차별주의의 혼합을 가능하게 하는 시나리오가 열렸다는 것을 지적한다. 엘리자베스 타일러(Elizabeth Tyler)와 같은 선동가들은 KKK단의 부흥을 도왔고, 여성 KKK단(WKKK)을 설립하여 조직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카타네오가 설명하듯이, 여성 KKK단은 참정권 운동 기간 획득한 권리들의 “수호자로 자신을 위치지었다.” 존스-로거스는 백인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자, 백인 우월주의를 정치화하는 데 필요한 동맹이자 그들 나름대로의 선거 블록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성폭력을 이용하는 것 또한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흑인 남성에 대한 린치를 합법화하기 위해 강간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후 여성들은 아동 복지에 대한 권위 있는 목소리로서 학교의 인종 차별 금지법에 대한 반발의 핵심이기도 했다. 큐어넌 운동도 마찬가지로 여성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부당하게 이용했다. 대부분 여성인 이 그룹의 회원과 지지자들은 아동 인신매매 반대 캠페인 #SaveTheChildren(#어린이들을 구하라)을 주도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을 소아성애자라고 비난하는 ‘피자게이트’ 음모를 증폭시켰다. 더욱이 이러한 캠페인에는 복지와 돌봄에 대한 담론이 기묘하게 교차한다. <증오의 자매들: 백인 민족주의의 최전선(Sisters in Hate: Front Lines of White Nationalism)>의 저자인 시워드 다비(Seyward Darby)가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과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의 문제들을 정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성을 겨냥하여 큐어넌 같은 그룹이 만든 호소들에 매우 공통적이다. 여성이 더 잘 통치하는가? 다시 힐러리 클린턴으로 돌아가 보자. 여성이 권력을 잡는 것이 본질적으로 좋은 일일까? 이탈리아 사회학자 엘리아 아르피니(Elia Arfini)는 우파와 페미니즘 사이의 교차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더 이른 출발점으로 비욘세, 이방카 트럼프, 도브와 같은 브랜드가 그들의 마케팅 담론에 페미니즘을 포함시켰을 때를 주시했다(‘진보적 신자유주의’라고 들어봤는가?). 아르피니는 “배제, 억압, 불평등을 조장하는 영역에서 체계적인 사회 정의의 페미니스트 목표를 추구하면, 페미니스트 메시지의 세계적 확장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찬다”고 지적한다. 극소수의 영향력 있는 여성만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가? 그렇다. 하지만 성차별을 비판하는 것은 더 많은 여성 총리와 대통령을 갖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둥을 개선하거나 방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이글은 원래 Ideas de Izquierda에서 10월 23일 스페인어로 출판되었다(Otto Fors 번역). * 원문 : https://www.leftvoice.org/how-the-right-wing-uses-feminism-for-its-own-purposes/ (번역) 정은희2022-11-07 | 조회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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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대만해협 위기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옮긴이 주: 지난 10월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는 자신의 총서기 3연임을 결정하는 제20차 당 대회 개막식에서 대만 정책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평화통일을 쟁취할 것”이지만 “무력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지난 8월초에는 미국 하원의장 펠로시의 대만방문 이후 중국군이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려한다면, 향후 몇 년 안에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더 이상 정세 전망에서 배제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만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은, 동북아시아에서 제국주의 패권대결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를 건설해 나가는 데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 됐다고 할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대만·홍콩·중국에 지부를 갖고 있는 국제사회주의대안(ISA) 그룹이 9월 초에 발행한 이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https://internationalsocialist.net/en/2022/09/new-cold-war 8월 2~3일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은 두 번째 냉전(미국과 중국 간의 제국주의 권력투쟁)이 더욱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상대로 펠로시의 방북은 시진핑 정권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사격 훈련이 벌어졌다. 중국군은 일주일 동안 대만 해역에 200여 대의 항공기와 50여 척의 군함을 배치해서 최신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대만봉쇄 가상훈련을 진행했다. 이후 훈련 규모는 상당히 축소됐지만, 중국공산당은 군사태세 “신기준”에 따라 매일 군사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수많은 논평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이 무력행사는 180km에 달하는 대만해협에서 “현상을 바꾸었다.” 이제 대만과 그 주요 군사동맹국인 미국과 일본이 미래에 있을 중국의 대만공격을 저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중국과 미국 사이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새로운 그리고 훨씬 더 파괴적일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전 세계에 퍼졌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나리오는 단기적으로는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위기로 내몰린 자본주의 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취약하고 늘 위험한 ‘현상 유지’뿐이다. 오늘날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두 자본주의 초강대국들 사이의 제국주의 권력 투쟁은 세계적인 사건들의 주요 동인이다. 또한 최근 대만해협의 위기는 미국도 중국도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 양 정권의 군사적·외교적 행보는 각기 자국 내 위기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불안정한 정권들 미국 대통령 바이든과 국방부는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대만에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현 시점에서 긴장의 고조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냉전을 고조시키는 사이클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게 양측 모두에게 적합했을 것이다. 바이든에게는, 미국 경제의 암울한 상황 때문에 민주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의회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험과,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장기간의 대리전을 치르기 위해 유럽 동맹국들을 묶어놓아야 한다는 압력이 있었다. 시진핑의 어려움은 더욱 컸다. 여기에는 일본식 자산붕괴, 인구감소, 제로-코로나 정책이 자초한 혼란, 푸틴과의 ‘연합’이 주는 시기적 부담 등이 포함됐다. 따라서 중국 정권은 대만에 대한 통제를 자신의 역사적 사명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긴장을 고조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펠로시의 방문이 공개되자, 미국 정부는 그녀의 방문을 뒷받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중국의 위협에 굴복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진핑도 마찬가지로 궁지에 몰려 강경대응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종신 집권자로의 상승을 불과 두어 달 앞둔 결정적인 순간에 ‘허약한’ 인물로 비쳐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사훈련은 2,300만 대만 인민 사이에서 중국과의 통일에 대한 대중적 반대를 강화함으로써 역효과를 낼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 인구의 73%가 중국의 침공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대만의 친미 민주진보당 정부는 내년도 국방예산을 약 14%나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대만 무기의 4분의 3을 공급하는 미국의 무기산업은 기대감에 입술을 핥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민족해방 열망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결정적인 오판을 하고 그에 따라 러시아가 참담한 군사적 실패를 보여준 것처럼, 시진핑의 공격적인 ‘늑대전사’ 태세는 대만 인민들로부터 훨씬 더 큰 반대를 불러올 것임이 틀림없다. 미국 정책의 변화 미국 하원의장 펠로시는 대통령 바이든과 부통령 해리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고위 관리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미국 제국주의가 대만에 대해 오랫동안 취해 온 공식 입장(대만의 독립을 반대하지만 중국의 무력사용도 반대)으로부터 점점 이동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중대한 추가 조치로 간주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자신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견지해 온 외교 공식인 ‘하나의 중국’ 정책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같지 않다. ‘하나의 중국’ 정책 아래서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그 정부만을 인정하되, 대만(공식 명칭은 중화민국)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튼튼한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 본토와 대만, 홍콩, 마카오가 절대 나누어질 수 없고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로지 하나”임을 뜻한다. -옮긴이) 대만과의 관계를 둘러싼 혼란스런 외교 수칙은 1970년대에 당시 중국의 스탈린주의 정권과 미국 제국주의 사이에 맺어진 거래로부터 비롯됐다. 이 거래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회복을 가능케 했고, 중국이 냉전 와중에 서방 진영으로 돌아서게 했다. 대만을 통치하던 독재정권은 소련에 맞서 스탈린주의 중국과 동맹을 맺는다는 훨씬 더 큰 전략적 성과를 추구한 서방 동맹국들에 의해 외교적으로 강등되고 유엔에서 추방당했다. 이러한 미국-중국 동맹은 1980년대 후반 스탈린주의 일당독재 국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몰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 정부와 대만 정부 모두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만해협의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대만관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이 중국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도울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해야 한다. 이 정책은 미군이 직접 개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답하지 않은 채 남겨둔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에 입각한 정책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미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외교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나 “약소국의 권리”에 대한 어떤 관심도 작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중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대만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싸고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제 미국 지배계급 내 일부 집단은 미래에 중국을 고립시키고 중국 체제의 자원을 고갈시키기 위해 중국에 맞서 벌일 대리전의 본보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약화된” 러시아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대만 대중들의 민주적 권리는 중요한 문제지만, 노동자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성과가 여전히 취약하다. 언론의 자유는 어느 지점까지만 인정된다. 투표할 권리가 있지만 오로지 자본가 정치인들만을 지지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파업권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계산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40년 동안 대만의 잔인한 독재를 지지했던 것처럼 말이다. 큰 이해관계가 걸린 갈등 미국 정부와 중국 정부 모두에게 있어서 이 갈등에 걸린 이해관계는 거대하다. 무엇보다 이 갈등은 양 진영 간의 기술 전쟁에서 대만의 결정적 역할과 관련된다. 대만이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 칩의 65%를 생산하는데, 특히 최첨단 칩의 경우 92%를 생산한다. 8월 25일, 바이든은 2,8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반도체 과학법’에 서명했는데, 미국의 반도체 생산을 부활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 법은 미국 대 중국의 기술 전쟁에서 하나의 “획기적 사건”으로 묘사돼 왔다. 하지만 대만의 중요성은 기술 그 이상이다. 중국의 어떤 자본가 정부도 대만의 독립을 묵인할 수 없을 것이다. 대만의 독립은 홍콩, 신장, 티벳 등에서 베이징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압력을 증대시키면서 변방의 원심력을 가진 국가를 통치하는 중국 정부의 능력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몇 달 동안 중국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인 상하이가 봉쇄되는 동안, 소셜 미디어에서는 “상하이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표면화되었다. 상대적으로 더 널리 퍼진 현상은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뒤늦게 쏟아진 것이다. 중국의 경제 불안이 깊어질수록 변방들과 중심 사이의 긴장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사태전개는 불가피할 것인데, 이른바 경제기적이 끝나고 ‘일본식’ 저성장 또는 제로성장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 제국주의에게 있어서 대만 문제는 중국 국가와 자본주의 지배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며, 내부 모순에 대한 억압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다. 미국에게도 이 갈등은 실존적 성격을 갖는다. 현 시기 미국의 냉전 전략은 (21세기 세계 자본주의에서 결정적 지역인)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1945년 이후 유지해 온 지배를 더욱 강화하는 데 목표를 둔다. 미국 제국주의에게 있어서 대만의 상실은 (다시 말해 베이징 정권의 대만 지배는) 베트남 전쟁에서 겪었던 굴욕보다 훨씬 더 큰 후과와 함께 역사적 패배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한 결과는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에서 국가들의 세력관계가 중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극적으로 재편되도록 강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지위는 (세계 패권국에서 -옮긴이) 대륙 강대국 수준으로 격하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 제국주의는, 한편으로 1970년대부터의 모호한 ‘하나의 중국’ 정책과 기타 외교 의례들을 말로는 여전히 준수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만의 분리된 지위를 ‘정상화’하는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펠로시의 방문이 의도한 바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왜 바이든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임을 강조해서 말하고 미국 관리들이 다시 이를 부정하는 일련의 ‘실수들’을 거듭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기존의 ‘전략적 모호’ 정책을 ‘전략적 혼동’ 정책으로 대체한 것이다. 미국의 우파 세력들은 더 나아가 대만을 독립국가로 공식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의회와 공화당의 여러 목소리들이 함께한다. 트럼프는 펠로시를 “트러블 메이커”라고 비난했지만, 펠로시의 여행을 지지한 공화당원들도 여럿 있었으며, 여기에는 악명 높은 매파인 존 볼튼도 포함된다. 볼튼은 미국이 “대만을 외교적으로 완전히 승인하면서 대사관을 비롯해 모든 것을 교환해야 하며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입장 시진핑 정권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취소되게 하려고 몇 달 동안 노력했다. 원래 펠로시는 4월에 대만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취소됐다. 펠로시의 8월 방문 일정이 알려진 7월에 중국 정부는 미국에게 “심각한 후과”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대만 관련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가 그런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 메시지가 더 강했다. 중국은 “전례 없는” 대응을 경고했다. 중국 정부의 격렬함은 펠로시의 직급 등 여러 요인 때문이었지만, 주된 요인은 경제적·사회적 위기가 펼쳐지고 시진핑을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방문이 진행된다는 점에 있었다. 펠로시의 방문 전후로 미국과 다른 나라 고위 관리들도 대만을 줄줄이 방문했다. 가장 최근에는 일본과 리투아니아에서 대표단이 방문해서 타이베이를 냉전 셀카를 찍는 무대로 활용했다. 중국 정부는 종종 이들의 방문을 무시했다. 어쩌면 펠로시의 방문도 무시하는 쪽을 선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위기가 전개되고 그에 따라 시진핑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그런 선택은 불가능해졌다.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다음날인 8월 4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일주일 내내 계속된 중국의 전쟁놀이는 그 규모라는 점만이 아니라 대만해역에 대한 근접성이라는 점에서도 전례가 없었다. 여섯 개의 훈련구역은 대만을 사실상 모든 방향에서 포위했다. 이것은 대만과 대만해협 봉쇄를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대만 봉쇄는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로서, 중국공산당이 자신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대만을 강제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이번 훈련에서 기술과 조정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군사적 힘을 크게 과시했다. 그런데 이번 훈련에서 실제로 성취한 것은 무엇인가? 중국 정부가 보내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제 인민해방군이 우위를 갖고 있으며 언제라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거의 절반이 지나가는) 대만해협을 봉쇄함으로써 대만과 나머지 세계의 연결을 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략을 보완하기 위해, 7월 13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은 중국 정부가 볼 때 “국제해역” 규정은 대만해협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은 이 성명을 일축했다. 이 성명은 중국공산당이 베트남·필리핀 등과 분쟁 상태에 있는 남중국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장하기 위해 전개했던 “회색지대 전술”을 복제한 것이다. 회색지대 전술 회색지대 전술이란 주어진 갈등 상황에서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은 피하면서 현상변화를 도모하는 도발적인 행동이나 정책을 말한다. 남중국해에서 인민해방군은 인공섬들을 건설한 뒤 그 중 일부에 전투기와 대공·대함 미사일을 배치했다. 분쟁상대를 저지하고 주변 해역에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 정부는 (인도보다 넓은) 350만 평방킬로미터 수역에 대한 배타적 영유권을 주장한다. 중국 정부는 분쟁상대 국가들과 일대일 방식의 교섭만을 고집한다. 힘의 불균등에서 오는 이점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당시 중국 외교부 장관이던 양제츠는 아세안(ASEAN) 외교장관 회담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중국은 큰 나라이고 여러분들은 작은 나라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펠로시 방문 이후 대만을 에워싸고 인민해방군이 벌인 훈련은 비슷한 전술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대만해협 ‘중간선’을 반복해서 넘어섰는데, 이는 전체 해로에 대해 중국이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이 중간선은 개념적이고 비공식적인 경계선이지만, 수십 년 동안 중국과 대만 양측이 대체로 존중해 왔다. 이런 식으로 점진적인 또는 ‘살라미 자르기식’ 접근을 채택하면서 중국의 군사행동은 세력관계를 바꿀 새로운 ‘기정사실’을 수립하려 한다. 물론 미국 제국주의 또한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비슷한 전술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상황인지는 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것보다는 덜 분명해 보인다.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이다. 중국공산당은 미국과 외국 군대를 상대로 대만해협 내 ‘통행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쟁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 점은 8월 28일 미국의 유도미사일 순양함 두 척이 대만해협을 통제하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부정하며 (미국 해군의 표현에 따르자면) “통상적인 대만해협 통과”를 실행했을 때 드러났다. 미국의 작전은 의도적으로 펠로시의 대만 방문 시점보다 거의 3주 뒤로 연기됐으며, 1996년 위기 때 항공모함 전단 두 개를 대만해협에 배치했던 대응보다 훨씬 작았다. 갈등을 더 상승시키지는 않을 정도로 대응을 조정한 것이다. 중국 측도 미국의 작전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족주의 신문 <환구신보>는 미국 순양함 두 척으로는 “중국 안보에 아무런 실제 위협을 안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선전의 주된 초점이 이 이슈를 진정시키고 민족주의 분위기가 끓어 넘치지 않도록 막는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만일 중국 정부가 예행연습을 넘어 실제로 타이완을 강제 봉쇄하려 했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 특히 일본으로부터 강력한 반격에 직면했을 것이다. 일본은 중국이 군사훈련 도중 발사한 11개의 탄도미사일 가운데 5개가 오키나와 남서쪽 일본 해역에 떨어진 것에 대해 항의했다.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5개의 미사일에 대해 환호했지만, 이 미사일들은 실제로는 목표를 빗나가면서 실수로 일본 해역에 떨어졌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 아시아판은 아세안 정상회담에 참석 중이던 중국 외교부 장관 왕이가 그 미사일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눈에 띄게 놀랐다고 보도했다. 그 진실이 무엇이든, 미사일 사고는 일본 기시다 정부가 자신의 군사화 목표를 추구하는 데서 선전에 활용할 수 있는 선물이 됐다. 8월 21일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제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천 킬로미터 이상의 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자신의 미사일 역량을 현행 1백 킬로미터에서 1천 킬로미터로 상향시킨다면, 중국의 연안 지역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군사적 근육을 풀고 30년간 경제침체에 따른 상대적 허약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근의 세계적 긴장 고조를 탐욕스럽게 활용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은 현행 세계 9위인 군사비 지출 순위가 내년에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물론 일본의 군사력 증강 가속화는 여러 나라들이 보여주는 비슷한 추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미국, 호주, 영국을 포괄하는 오커스(AUKUS) 협약은 특히 중국의 대만 해상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국과 오랜 국경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는 처음으로 “대만해협의 군사화”를 이유로 중국을 비난했다. 이것은 모디 정권이 쿼드(QUAD) 등을 통해 미국 제국주의와 점점 더 행보를 같이하는 과정의 일부다. 다만 모디 정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10월에는 인도군과 미군이 중국과 분쟁중인 국경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대만에 대한 장기 봉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상하이를 비롯한 동부 연안 주요 항구로의 운송을 방해함으로써 중국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힐 것이다. 세계적으로 파급효과를 미치기 이전에 중국이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만해협에 대한 인민해방군의 봉쇄는 “전쟁행위”로 간주될 것이고 서방 자본주의로부터 맹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금 러시아에게 가해진 규모를 넘어서는 경제제재나 외교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다. 다르게 말해서, 대만을 봉쇄할 경우 중국정부가 지게 될 위험부담은 전면적인 대만침공을 시도하는 경우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높을 것이다. 실제 의도와 인지된 의도 그러므로 펠로시 방문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시끌벅적한 반응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머지않아 침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지만, 실제 중국의 반응이 그걸 뜻하는 건 아니다. 대만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거나 차단하는 것과 관련해 중국이 모든 카드를 갖고 있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시진핑 정권은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갈등이 미국과 직접적 갈등을 뜻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의 군사력이 발전했다 해도 세계 최대 군사력을 가진 미국과 지금 당장 대결하기는 버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엉망진창이 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 정부가 그와 같은 전쟁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조심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게다가 바다를 통한 대만 침공은 러시아의 육지를 통한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해 군사적으로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한 작전이 될 것이다. 세력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양측의 엄포와 선전을 실제 의도와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미래에는 세력관계가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무엇보다도 군사적으로 실패할 경우 뒤따를 정치적 파장과 러시아 유형의 제제가 부과될 경우 초래될 경제적 파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시진핑 정권은 대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 게다가 현재 중국의 경제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시진핑은 8월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 훈련은 미국 측에도 새로운 전략적 문제들을 안기지만, 중국공산당에게도 심각한 난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인민해방군의 군사적 시위는 반중국 연합을 결집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주도력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G7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군사훈련에 대한 전례없는 규탄성명을 채택한 데서 보여주듯이 미국은 유럽을 비롯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을 성공적으로 묶어세웠다. 반중국 연합으로의 결집은 미중경쟁의 핵심 지역인 동남아시아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지역에서 미국은 이번 사건을 재빠르게 활용하면서도 최근의 대만해협 위기를 둘러싸고 중국의 “함포 외교”에 반대한다는 다소 제한된 메시지로 대응했다. 지금의 대치가 가져올 또 다른 큰 대가는 경제적 탈동조화의 가속일 것이다. ‘중국+1’ 전략에 입각해 중국 투자분 가운데 일부라도 다른 나라로 이전함으로써 장차 대만해협의 군사적 갈등에 대비하라는 압력이 서방 기업들에게 증대하고 있다. 이건 단기적으로는 러시아가 겪은 정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지만, 중국과 세계경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호전적인 소음들이 현재로서는 진지한 전쟁준비의 신호는 아님을 말해준다. 7월 28일 시진핑과 바이든의 통화에서, 시진핑은 펠로시의 방문에 대해 다시 한 번 바이든에게 압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8월 1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이 대화에서 더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시진핑은 바이든에게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불특정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또한 미국과 전쟁으로 치달을 의사가 없음을 알렸고, 양측이 ‘평화와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신뢰성은 실제 사건들에 의해 뒷받침됐다. 핵심을 말하자면, 시진핑은 미국이 중국의 반응을 잘못 해석하거나 너무 놀라지 않도록 미국에 미리 귀띔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중국 지도자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지금 매우 위협적으로 보일 무언가를 하려 한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나의 과잉반응에 과잉반응하지 말고 사태가 통제불능으로 치닫지 않게 해 달라. 중국 민족주의 중국의 자본주의적 부상을 과도평가하는, 좌파 일부를 포함한, 많은 평론가들은 현 위기의 핵심 특징을 놓치고 있다. 시진핑의 반응을 결정한 것은 국내 전선에서의 위기 심화라는 점이다. 미국 제국주의에게 경고를 보내야 할 필요 또한 하나의 요소이긴 했지만 지배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펠로시의 대만방문 이전 몇 주 동안 외교적 대치가 고조됐을 때, 중국공산당의 여러 선전매체들은 펠로시가 맞이할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며 서로 경쟁했다. 시진핑은 그동안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동적인 중국 민족주의가 성장하도록 조장해 왔다. 이는 시진핑의 지배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되고 점점 더 경제성장을 산출해 낼 수 없게 된 것과 궤를 같이 했다. 하지만 중국의 민족주의 우파는 이제 창조주의 통제를 벗어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발전하고 있다. 그들은 점점 더 정부 정책에 지장을 주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이 필요에 따라 정책을 조정할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이 트럼프주의 성장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과 일정하게 비슷하다. 펠로시의 방문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고조된 민족주의 감정은 중국 정부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광범한 기대를 만들어 냈다. 시진핑으로서는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진 셈이었다. 그러므로 중국 정부가 벌인 일련의 군사훈련은 경제적 불황, 급증하는 실업, 끝없는 ‘제로 코로나’ 봉쇄에 지친 이들에게 오락거리로 제공한, 또한 펠로시의 비행기가 대만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실망하면서 믿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 민족주의자들을 다독이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구경거리”였다. 8월 2일 저녁, 중국 본토에서 2억 명 이상이 펠로시의 대만 도착을 인터넷 생중계로 시청했다. 이것은 펠로시가 탄 비행기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의해서든 후시진의 주장 이후 널리 리포스트된 것처럼 격추를 당해서든, 어떤 형태로든 중국의 군사적 개입에 의해 대만에 도착하지 못하리라고 정말로 기대했던 뉴스플랫폼들 덕택이었다. 후시진은 중국공산당이 운영하는 <환구시보>의 전 편집인으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실망스런 결말 앞에서 중국 민족주의 집단들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평소 민족주의 우파에게는 공간을 제공하지만 반대 내용은 차단해온 소셜미디어들은 “민족적 수치”라고 비난하고 중국을 “종이호랑이”로 묘사하는 게시물들로 가득 찼다. 8월 11일, <니혼게이자이> 아시아판의 보도에 따르면, “실망과 분노가 블로그 세상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이 책상을 치고 의자를 던지는 영상들이 널리 퍼졌다. 다음날 아침, 많은 중국인들이 좌절감이 끓어 넘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분위기는 곧 중국공산당에 대한 힐난으로 이어졌고, 민족주의가 어떻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시진핑 정권을 “거짓말을 했다”거나 “빈말만 가득하다”고 비난했다. 그동안 중국 민족주의 우파들 사이에서는 중국공산당 공식 선전매체들에 힘입어 푸틴에 대한 추종이 확산돼 왔는데, 일부는 펠로시를 차단하지 못한 시진핑 정권의 무능함을 러시아 독재자 푸틴의 “단호함”과 비교했다. 중국공산당 내 권력투쟁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내 반시진핑 파벌에 맞서 치열한 권력투쟁에 휩싸여 있다. 권력투쟁은 중국공산당만이 아니라 과거 제국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중국 체제에서 고질적이었다. 펠로시의 대만방문 시점은 시진핑의 핵심 일정과 겹쳤는데, 마침 중국공산당 내 각 파벌의 원로들이 베이다이허에서 여는 연례 비밀회의가 시작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8월 14일 끝났다고 추정되는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10월에 열릴 제20차 당 대회에서 명목상 선출될 최상위 직책에 대한 파벌간 할당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시진핑으로서는 펠로시 방문에 허약하게 대응한 상태로 베이다이허로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진핑의 지위는 지난 몇 년 동안 실제로는 취약해져 왔는데, 이 때문에 그는 민족주의, 반미 수사, ‘대만카드’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도 점점 더 활용해 왔다. 시진핑의 지배 자체가 10월 당 대회에서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고 총서기 3연임에는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라는 중국공산당 내 최상위 기구 안에서 경쟁 파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강제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 제20차 당 대회의 결과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시진핑과 그 충성파들로만 채워졌다. -옮긴이) 그럴 경우 총리 리커창을 중심으로 한 반시진핑 파벌들은 특히 경제정책에서 시진핑의 권력을 제한해 보려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시진핑 파벌들 역시 시진핑 못지않게 중국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당연히 그들 누구도 대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 시진핑에 대한 반대는 주로 그의 가중된 권력집중과 (중국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하고 경제위기를 악화시킨) 과도한 민족주의에 기반한다. 중국공산당 내 모든 파벌들은 다가오는 거대한 격변을 진동으로 느끼고 있지만, 그들의 독재국가가 어떻게 생존할지를 둘러싸고는 분열돼 있다. 대만의 독립 대만에서도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1995~96년 대만해협 위기 때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의 군사훈련은 대만의 대중의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역효과를 낳았다, 이것은 군사무장과 (반민주적 법률의 확장을 포함해서) “강력한” 정부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는 반사적 반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진핑은 홍콩에서 대중시위를 진압하고 자치를 제한해 낸 성과를 되풀이해서 떠들고 있다. 이는 미국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자신의 민족주의 권력기반을 달래기 위한 힘의 과시다. 하지만 대만에서 그 영향은 독립 감정에 더 기름을 붓는 것이며, 홍콩식 “일국양제”에 기초해서 통일과정을 협상해 나가려던 중국공산당의 기존 전략을 허물어뜨린다. 대만에서 독립을 향한 태도는 복잡하다. 다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82% 이상이) ‘현재 상태’ 다시 말해 사실상 그러나 비공식적인 독립을 유지하길 선호한다. 공식적인 독립 선언은 중국과의 전쟁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인들 가운데 1.3%만이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한다. 대만인들의 민족정체성 강화는 차이잉원이 이끄는 친미 민주진보당 정부나 대만 자본가들의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다. 1990년대 중반 첫 번째 대만해협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25%의 대만 주민들만이 스스로를 대만인이라고 인식했다. 오늘날에는 그 수치가 약 68%로 상승했다. 스스로를 중국인이자 대만인으로 인식하는 수는 1995년 47%에서 27.8%로 하락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침공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했다. 하지만 다수는 여전히 그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미국의 군사력이 막아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대만의 국민당은 과거 집권당으로서 미국 지원 아래 독재정권을 유지하다가 지금은 주요 야당이 돼 있는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17%라는 역대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당은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할 때까지 20년 동안 중국공산당과 긴밀하게 결탁했다고 비난받고 있다. 국민당의 새 지도부가 이전의 친중 입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더 친미적인 노선을 채택하고 있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차이잉원을 잇는 대선후보가 누가 되든 민주진보당이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11월 지방선거는 다른 문제다. 대만해협 갈등이 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국민당의 시장 후보들이 전국적인 당 지지율보다는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300명 이상의 대만 노동자들이 캄보디아에서 운영되는 중국계 카지노 산업의 가짜 일자리 제안에 속아 인신매매를 당한 사건에 잘 대응하지 못했다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 사회주의자들은, 민족 문제에 대한 레닌과 마르크스주의 입장에 따라, 독립할 권리를 포함한 대만 인민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한다. 우리는 대만이 중국의 “양도할 수 없는” 일부라는 중국공산당과 중국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한다. 레닌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기존 러시아 제국에서 억압받던 민족들을 해방시켰으며, 그들에게 독립국가를 건설하든지 아니면 사회주의 연방에 자유롭게 결합하든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권리를 부여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타도할 필요성이고, 이는 민족이나 다른 이유에 따른 분할을 극복하여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투쟁을 실현함으로써만 성취할 수 있다. 만일 한 국가나 지역의 노동자들이 그들 지배계급의 민족주의 사상이나 목표를 채택하면서 다른 노동자들에 맞선다면, 이러한 단결은 건설될 수 없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부와 국가의 창설은 (1949년 중국에서 건설된 것처럼 왜곡된 스탈린주의 모델이 아니라면) 경제를 노동자계급의 민주적 통제와 관리 아래 둠으로써 사회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부는 국경이나 소수민족·소수종파의 권리 같은 모든 민족문제들을 세심함과 진정한 국제주의 정신에 입각해 다뤄나갈 것이다. 경제적·정치적으로 가능한 최대의 응집을 실현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강제나 민족적 특권, 국수주의를 배격한 가운데, 사회주의 연방 건설에 합류해 달라는 호소를 통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기초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만과 중국본토 그리고 더 넓은 지역 전반에서 자본주의·제국주의·전제통치에 맞선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주장한다. 또한 이 투쟁을 조직하고 진정한 지도력을 제공할 사회주의 당들의 건설을 주장한다. 만일 대만 인민들이 독립을 원한다면, 그리고 이는 오늘날 명확한 사실인데, 노동자운동은 이를 지지할 의무가 있다. 구경꾼처럼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투쟁에 뛰어드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민족독립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아래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대만의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데), 사회주의 세력은 대만 민족주의를 이끄는 자본가들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독립”이란 사실상 한 쪽의 제국주의에 맞서 다른 쪽의 제국주의 주인을 지지하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의 미래 노동자운동은, (지금은 독재 치하에서 진정한 노동자조직들이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대만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에 맞선, 그리고 독립할 권리를 포함한 민주적 권리들을 향한 대만 노동자들의 투쟁은 중국과 미국 양자의 제국주의자들과 자본가들에 맞선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면서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반 위에서, 냉전의 고조와 군사주의, 경제 침체와 후퇴, 기후 재앙과 파괴적인 전쟁들의 위험 같은 새로운 참상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국제사회주의대안(ISA) 대만·홍콩·중국 지부는 확신한다. 독립적인 사회주의 대만을 위한 투쟁을 통해서만 평화와 안전이 보장될 수 있으며,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끝없이 악화되는 갈등과 충돌을 종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투쟁은 미국과 중국 모두의 제국주의를 쓸어버리고 국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지역 전반의 나아가 세계적인 혁명투쟁의 일부이다. (옮긴이) 양준석2022-11-06 | 조회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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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억압받는 여성에게 국경은 없습니다 | 10월 19일 이란 대사관 앞 기자회견에서편집자주) 지난 10월 19일, '이란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시민모임'에서 이란 레카비 선수의 실종 소식에 그녀의 신변안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전진 정은희 동지의 발언을 공유합니다. 이란 정권의 여성 억압은 단지 히잡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란의 공식 결혼 연령은 13세이며, 아버지의 허락이 있으면 더 어린 나이에도 결혼할 수 있습니다. 2021년 3월까지 한해 동안 10-14세 소녀 31,379명이 결혼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전환요법이 여전히 만연하고, 이들은 채찍에서 사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벌을 받습니다. 임신중지의 권리 역시 사실상 전면 금지돼 있습니다. 2014년에는 히잡 착용을 거부했다가 9천 명이 구금됐고, 더구나 여전히 많은 여성 인권운동가들이 수감돼 있습니다. 의무 복장 규정은 1980년대 지배계급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사회 계층을 동원하여 문화 정책을 지원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근본주의화된 이슬람 정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이란 패션업계는 미디어를 통해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가부장적인 이미지를 강요해 왔습니다. 여성의 몸에 특정한 의복 패턴을 상품으로 강요하는 것은 이란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도'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실체는 이란에서 수십 년 동안 여성의 신체를 지배하고, 굴욕하고, 상품화하고, 젠더 갈등을 심화하고, 계급적 요구를 주변화하는 지배계급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이란을 인권의 이름으로 비판하지만, 이란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지원했던 것은 다름아닌 미국의 제국주의였습니다. 이란 세속화 팔레비 정권 시절 미국은 그들의 석유자원을 탐욕하며 그들을 지지했으며, 지금은 인권의 이름으로 이란을 제재하지만 그의 피해는 고스란히 이란 여성과 민중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50여 년 전 이란 팔레비 2세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 학생들은 이에 저항했고 나아가 68운동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연대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우리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한 명의 여성이 죽임당하도록 둘 수 없습니다. 이란의 여성억압과 부당한 권력, 가로막힌 자유는 지구적인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억압되는 여성들의 처지와 다를 게 없습니다. 이란 정부와 한국 정부를 규탄합니다. 전진은 어제 배예주 동지께서 기사로 이번 문제를 규탄했는데요, 그는 여성억압에 맞선 국제연대는 이란 민중과 함께 우리의 권리 역시 키워나갈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맞습니다. 마흐사 아미니외 신당역에서 살해된 여성노동자와 블랙 라이브즈 매터를 외치는 수많은 흑인여성들, 팔레스타인에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히잡을 쓰건 쓰지 않건 그것은 여성 자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이란 정부와 함께 레카비 선수의 신변을 지키지 못한 한국 정부를 규탄합니다.2022-10-29 | 조회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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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는 혁명을 원합니다" 이란 시위에 참여한 어느 청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필자는 지난 10월 8일,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익명의 20세 이란 청년으로부터 이란 시위의 배경과 상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보고 거리에 나왔고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히잡을 벗어던졌다. 그러나 이란 정권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을 죽이고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고 있다. 지금의 이란 시위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이란 정권의 억압적인 정치에 맞선 13년 간의 투쟁의 연장선에 있었다. 익명의 이란 청년은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싶을 뿐이고, 우리의 행복은 우리 손으로 쟁취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혁명을 원한다"고 전했다. 필자가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투쟁의 미디어 '스튜디오 알'에서 발행한 영상을 공유하며, 해당 인터뷰 전문을 윤문하여 전한다. (*경찰의 폭력진압 장면으로 인해 영상이 유튜브에서 '성인용 영상'으로 분류되어, 유튜브에서 성인인증을 한 뒤에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필자)먼저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 이후에 이란의 상황이 어떤지 저에게 얘기해주세요 9월 18일에 테헤란에 살지 않는 마흐사 아미니가 그녀의 가족과 남매와 함께 테헤란에 놀러왔어요.그녀가 테헤란 지하철로 걸어들어갈 때, 도덕경찰이 그녀를 체포했습니다. 그녀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경찰들은 그녀를 체포했고 심지어 경찰과 마흐사 아미니의 오빠 간에 싸움도 있었어요. 마흐사의 오빠는 동생을 경찰이 데려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은 아미니를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여러차례 머리를 구타당했는지, 또는 머리를 어디에 부딪혔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경찰서에서 실신했고, 병원에 갔고, 혼수 상태에 빠졌고, 그리고 그녀는 죽었습니다. 그 뒤에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고 질문을 던지며 저항했습니다. "왜 여성을 죽이는가?" "겨우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왜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가?" 겨우 히잡 때문에. 시위대는 히잡과 싸웠고 정부의 중심부와 싸웠습니다. 시위대는 "우리는 정부가 필요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우리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있었던 아이디어입니다. 시위가 시작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저항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대를 구타하기 시작했고, 총을 쐈습니다. 그리고 '니카 샤카라미'란 이름의 16살 소녀가 시위를 위해 거리에 나와서 그녀의 머리 스카프(히잡)를 불태웠습니다. 그녀는 히잡을 더 이상 쓰길 원치 않는다는 걸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행동은 그날 밤에 매우 많은 이란 사람들이 같이 했던 행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장경찰, 특수부대가 후미진 골목에서 그녀를 뒤쫒았고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경찰이 나를 쫒고 있어" "날 체포하려 해" "날 때리려고 해" 그리고 그 뒤에 그녀의 핸드폰이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은 그녀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10일 동안 가족들은 그녀를 찾기 위해 병원, 감옥, 심지어 테헤란의 모든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경찰들은 죄다 말했습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일 뒤에, 경찰은 가족들을 불러서 “당신의 딸과 비슷하게 생긴 시신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와서 딸인지 아닌지 확인하라고요. 그리고 그날 밤, 그러니까 니카 샤카라미가 사라지고 10일 뒤 시신을 양도한 바로 그날은 그녀가 17살이 되는 생일날이었습니다. 그게 그날 밤이었어요. 그건 가족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죽은 시신을 봤는데 코가 깨져있었고, 두개골은 큰 상처와 함께 부서져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죽어있었죠. 누구도 그녀가 체포된 뒤에 1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게 아미니와 샤카라미가 죽게 된 과정입니다.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나요? 매우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있습니다. 9월 20일에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현재 2주가 넘게 지났고,(*인터뷰는 10월 8일에 진행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시위를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플라스틱 총알이 든 특별한 총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진짜 총도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을 구타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니카 샤카라미의 죽음에 대해 듣고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서, 토요일에 우리가 거리로 나와서(이란에선 목,금이 휴일이기 때문에) 샤카라미를 위한 정의를 요구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녀는 겨우 17살 소녀였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머리스카프를 불태웠을 뿐이고 시위를 했을 뿐입니다. 그녀는 죽어선 안 됐습니다. 그래서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란의 40개가 넘는 도시에서요. 그리고 경찰은 다시 실탄으로 사람들을 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쏘는 영상을 공유드리겠습니다. (영상 속의) 젊은 소년이 차에 앉아있다가 죽었습니다. 경적을 울렸다는 이유만으로요. 시위에 동의하는 의미로 경적을 울렸다고 말이죠. 경찰이 머리에 총을 쏴서 그를 죽였습니다. 테헤란, 사난다지, 이스파한, 수많은 도시가 지금 전쟁중이나 다름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강제 히잡착용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나요? 맞아요. 우리는 죽은 이들을 위한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마흐사 아미니, 니카 샤카라미, …(그는 또 다른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말했다.) 너무 많은 여성들이 죽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18세 미만입니다. 한 가지 주요한 요구는 이 죽은 소년소녀들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히잡을 벗고 살길 원하고 평범한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길 원합니다. 예를 들어, 테헤란에는 여성들과 심지어 남성들도 체포하는 도덕경찰이 있습니다. 옷을 제대로 안 입었다고요. 히잡 문제로 여성을 체포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 너무 머리카락이 많이 보인다. 둘, 살이 너무 많이 보인다. 셋, 또는 예쁘다는 이유로요. 여성이 너무 아름다우면, 도덕경찰은 "너무 많은 화장을 했으니 당신을 체포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우린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공격적으로, 나쁘게 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정부와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을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화적인 시위를 하고 싶은데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고 총을 쏘고 구타합니다. 우린 이런 정부를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40년 간 우리를 괴롭혀왔어요. 이것들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요구입니다. 이란의 경제적 위기도 큰 문제라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높은 물가상승률이요. 밀 가격이 13배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분노가 경제적 상황과 연결돼 있나요? 맞습니다. 지난 8년 간, 가장 값싼 가격이 8년 전보다 4배 증가했습니다.(물가가 400% 올랐다는 의미) 지금 상황은...모든 사람들이 '토만'(이란 통화)으로 임금을 받는데 비용은 모두 달러로 청구됩니다. 달러와 우리 통화 사이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재정적으로 충분한 돈이 없어서요. 왜냐하면 소득이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우 큰 어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실제가격보다 3배 더 비싸게 사야합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스스로를 위해 돈을 가져가기 때문이죠. 그리고 모든 상품의 가격이 올랐습니다, 빵이나 달걀, 고기나 닭 같은...너무 많은 사람들이 단백질이 부족합니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말이죠. 사람들은 고기를 충분히 먹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건 가족의 기본적인 생필품입니다. 그들은 가족을 돌볼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정부가 혁명되길 원합니다. 민주적이고 우리 스스로에 의해 결정되는 정부로요. 우리는 어떤 나라하고도 전쟁을 원치않습니다. 우리는 평화롭고 자유롭게 높은 임금을 받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고 싶어요. 그것뿐입니다. (순간 인터뷰이의 온라인 연결이 끊겨 10분 정도 인터뷰가 중단되었다.) 죄송합니다 연결이 끊겼네요. 지금 일어난 문제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란 정부가 인터넷을 전부 끊어버렸습니다. 지난 2주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텔레그램 등 모든 소셜미디어에 접속하지 못했습니다. 뉴스를 퍼나르고,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이 차단됐죠.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VPN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로 연결되고 묻기 위해서요. 어디서 우리가 만날지 그리고 다들 무사한지를 묻습니다. 정부는 우리가 세계의 다른 절반과 단절되길 원합니다.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어떤 나라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정말 힘든 상황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기사에 따르면, 이란에선 2018년과 2019년에도 큰 시위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상황은 그 당시 시위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는지요? 그렇게 보는 게 맞을까요? 맞습니다. 3,4년 전에 정부가 가솔린 가격을 올렸습니다. 가스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차가 많습니다. 먼 곳을 자주 돌아다녀야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름값을 세 배나 올려버렸어요. 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필품 가격을 다 올렸어요. 쌀, 빵, 가스 이런 것들…그래서 3년 전에도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했고 당시에도 정부는 1개월 간 인터넷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실탄으로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시위에 몇몇 경찰들은 플라스틱 총알을 쓰는데, 3년 전 시위 때는 모두 실탄이 든 진짜 총이었어요. 국제기구들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당시 1500명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확한 통계와 사망자를 말하지 않았고 너무 많은 아이들과 소년 소녀들이 사라졌는데 정부는 그들이 어디 갔는지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파묻혔는지, 살아있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그 뒤 제 기억에 1~2년 뒤에 이란 정부는 PS752 여객기를 격추시켰습니다. 우크라이나 여객기였는데, 이란정부가 잘못 격추시켰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한 실수'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200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평범한 비행기에다 미사일을 발사해서요. (*당시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객은 대부분 이란인과 이란계 캐나다인이었다. 미사일 격추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격추 사건 이후 또 다른 시위가 발생했는데, 그때도 경찰이 나와서 사람들을 구타하고 체포했고, 그 사건은 그렇게 지나가버렸습니다. 하지만 혁명이란 생각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친구들이 체포되는 걸 봤고, 우리 친구들이 죽는 걸 봤고, 우리는 모든 '좋은 것'들과 싸우는 걸 봤습니다. 우리 권리에 대해 말하고 스스로를 지키려하는 모든 순간에 경찰이 나와 우리를 체포하고 때리고 심지어 우리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정부를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자유도 없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기에 평화도 없고. 이란은 모든 나라와 전쟁을 하죠. 경제적 문제도 있고, 자유도 없고, 모든 게 없어요. 그래서 우린 이 정부를 원치 않습니다. 즉 시위대는 지금 이란혁명수비대(IRGC)에 맞서는 거군요 맞습니다. 이란혁명수비대는 심지어 군대보다 잘 준비돼있습니다. 이란혁명수비대는 정부와 직접 연결된 이란의 주요 군대입니다. 정부를 지키기 위한 군대요. 그들은 재정적으로 준비돼있고, 군사적으로 준비돼있습니다. 전쟁 시에도 싸우지만, 시위가 있을 때도 그들이 나옵니다. 이번 시위가 시작한지 3~4일이 지났을 때까진 평범한 경찰이 나왔습니다. 경찰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집으로 가라"고 했고 가끔 사람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때도 이미 사람들을 구타했을 수도 있어요.어쨌든 하지만 그 뒤부터는 이란혁명수비대가 거리로 나왔고, 무기와 함께, 제 말은 중장비와 함께 사람들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총을 사용하면서요. 사람들을 체포했습니다. 경찰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때렸고 앰뷸런스가 다친 시위대를 위해 왔습니다. 병원으로 부상자를 이송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하루 뒤에 우리는 알게 됐습니다. 앰뷸런스가 부상자들을 경찰서와 감옥으로 데려갔다는 걸요. 그래서 사람들이 앰뷸런스를 불태웠습니다. 그 짓을 그만두라 말하기 위해서요 앰뷸런스는 사람들을 도와야합니다.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감옥에 보내거나 실종되게 만드는 게 아니라요. 정말 끔찍하네요. … 제 생각에 많은 여성들이 시위에 참여할 거 같아요. 그리고 여성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더 어려운 조건일 거 같아요. 시위에서 여성들은 어떠합니까? 시위가 처음 시작된 날, 먼저 집에서 거리로 나온 것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습니다. 남자들은 그저 지켜보거나 거리로 나오라고 여성들을 설득하거나 했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경찰이 여성들을 구타하고 체포하고 모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한계점을 넘었습니다. 그 뒤 남자들과 소년들도 거리로 나왔고 그들은 여성들 앞에 서서 여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원하는 걸 뭐든 외치세요. 당신의 권리를 요구하세요. 우리가 물리적으로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 경찰이 와서 당신을 구타하려 한다면, 우리가 여기 있고 맞서 싸울 겁니다. 원하는 걸 외치세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던 그 순간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왜냐하면 공교육이 시작될 때부터, 남성과 여성은 나뉩니다. 우린 남학교와 여학교가 따로 있습니다. 여고, 남고. 여대, 남대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던 그 순간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성별 분리가 그렇게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여대 남대가 따로 있고... 맞습니다. 다른 나라와 다르죠. 그래서 남성과 여성이 거리에서 만나서 함께 시위하고 소통했다는 게 매우 감동적입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시위대는 미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13년 전에, 새 정부가 혁명으로 들어선 이후 첫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거의 50년 동안 이 정부가 집권중인데요. 첫 시위가 13년 전에 있었던 거죠. 그 시위는 '녹색혁명'이라 불렸습니다. 그건 이란 대선 이후에 일어났는데요. 정부는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해 선거부정을 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게 첫 시위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시위를 해야하는지, 어떻게 모이는지 어떻게 말해야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당시에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서 많은 걸 기대했고 그의 도움과 많은 걸 요청했습니다. 사람들은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는 이란에 대해 몇 마디 했을 뿐 그 뒤에 이란 사람들을 버렸습니다. 시위대를 보호하지도, 이란 정부에 뭘 요구하지도 않았고, 어떤 측면으로도 우리를 지지하고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사람들은 자주적으로 서야함을 배웠습니다. 누구에게도 대신 요청할 수 없다는 걸요. 어떤 국가에게도요. 캐나다든 영국이든 미국이든. 처음에 우리는 그들이 우리편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알았습니다. '그들은 혁명을 하려는 어떤 나라도 돕지 않는구나'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혁명'을 원한다고 말했는데요. 정권에 맞서서요. 정권에 맞서 어떤 종류의 혁명을 사람들이 요구하고 있습니까? 제 생각에 이건 특별한 종류의 혁명입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요. 첫 번째 측면은, 이번 혁명이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혁명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페미니즘과 연결돼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여성들을 지키고 싶고 우리 여성들의 자유를 원합니다. 이란에서 역사적으로 이런 혁명은 처음입니다. 두 번째 측면은 이번 혁명이 지도부가 없는 혁명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하려하지만 어떤 지도부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저 자유를 요구할 뿐입니다. 우린 그저 이 정부가 사라지길 바랍니다. 이 정부는 그저 이슬람의 권위 뒤에 숨어서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입니다. 경찰은 여성들을 강간하고 돈을 나라 밖으로 빼돌려 쓰고 싶은 대로 소비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경제는 안 좋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고, 평화를 원합니다. 우린 그저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이란 사람들은 30년 넘게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정부는 그저 2천년 전에 존재했던 어떤 종교적인 인물을 애도하는 것만 하고 있습니다. 우린 원치 않습니다. 우린 파티를 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90%의 학생들은 끊임없이 공부합니다. 이란을 떠나기 위해서요. 이란에선 모든 게 엉망이니까요. 경제, 자유, 경찰... 사회적 문제들까지도요. 우린 너무 많은 사회문제가 있어요. 사람들의 태도도 그렇고 사람들은 서로를 괴롭힙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하고요. 우린 그런 끔찍한 땅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시위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생각을 바꿨습니다. 더 이상 학생들은 이란을 떠나길 원치 않아요. 대신 이란에 남아서 나라를 세우고 그들 스스로를 위한 좋은 미래를 만들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시위가 꼭 성공하고 정권을 무너뜨리길 바랍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말했듯이 연결이 차단돼있거든요. 이란 외에 다른 어떤 나라하고도 연결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무도 우릴 돕지 못하고 있고, 우린 보호를 원합니다. 당신같은 좋은 사람이 우리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퍼뜨려주세요. 그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저도 거리로 나가서 시위를 하려했습니다. 그때 제가 보안경찰을 밀었는데, 전 그저 지나가려 했을 뿐입니다. 그는 "안 돼, 돌아가" "거리는 폐쇄됐어" 그런 말을 했는데 제가 한 발 앞으로 내딛자마자 그는 샷건을 꺼내 장전하더니 쐈습니다. 저에게 쐈습니다. 다행히 그는 절 맞추지 못했어요. 그가 총을 쏠거라 생각 못 했어요. 총을 쏠 줄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전 그에게 친절하고 평범하게 말했거든요. 그때 그가 날 죽이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행히 그는 절 맞추지 못했지만, 그 행동 자체가 저를 괴롭게 합니다. 저는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전 그저 시위를 하고 싶었고,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여성들과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죽길 바랍니다. 우리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있길 원하지 않아요. '우리'는 젊은 사람들입니다. 시위대는 다 저처럼 젊습니다. 우린 죽고 싶지 않아요. 우린 그저 우리 권리에 대해 말하고 외치고 싶을 뿐입니다. 이미 알 수도 있습니다만, 유럽과 캐나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이란 독재정권에 맞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당신과 시위대에게 연대를 보내기 위해서요.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란 사람들이 이란대사관에 맞서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다른 사람들을 포함한 한국 사람들도 이란 사람들과 연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이란 사람들과 함께요. 이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 그리고 당신의 인터뷰를 빠르게 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유럽, 캐나다, 미국에서 우리를 지키고 우리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시위를 한다는 건 알았지만 한국에서도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나와 이란 사람들을 지지하는 당신과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안전하길 정말로 바라고…제발, 안전하세요. 인터뷰를 해주셔서 감사하고 목소리가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한국처럼 우리나라가 자유롭고 행복하고 즐거운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2022-10-28 | 조회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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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홍콩 푸드판다 라이더에게 보내는 연대의 인사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이 지난 18일 라이더유니온 파업 후 그 전날인 16,17일 파업을 했던 홍콩 푸드판다 노동자들에게 국제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2022-10-26 | 조회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