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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생운동의 정치와 전략 다시 쓰기”, 학생운동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다지난 8월 12일, 각자 캠퍼스에서 활동을 모색해오던 학생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주최의 정치캠프 1일차 “학생운동의 정치와 전략 다시 쓰기” 세션을 통해서였다. 발제자로는 조형우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학생위원회), 토론자로는 김다희 (고려대 소수자인권위원회), 이은세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공동행동) 활동가가 참여해 학생운동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응책을 제안했다. 참여 활동가들이 가장 먼저 공통의 문제점으로 꼽은 것은 조직의 재생산 비활성화였다. 조형우 활동가는 “특히 2010년대 후반을 잠식했던 각종 백래시와 청년층의 반동적 정서, 이어진 코로나19로 인한 학생사회의 단절은 학생운동의 위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조성한 비대면/비집합 문화가 학생운동의 축소를 더욱 가속화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더 이상 코로나 이전의 세계는 없다는 유명한 문구가 증명하듯 코로나19 유행으로 대학가 역시 큰 변화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 사실이다. 우선 완전 비대면 시기였던 20~22학번과 비교적 자유로운 거취를 허용받은 23학번 사이를 이을 활동가층이 무너진 탓에, 대부분의 학내 조직은 고학번이 졸업까지 유예해가며 막 운동을 시작한 저학번 활동가에게 인수인계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마저도 고학번 운동가들이 졸업을 택한 경우 이런 형식의 유지조차 어려워 그대로 사장된 조직 또한 많았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공공장소 비대면이 해제된 2023년 상반기에 들어 삼엄한 분위기는 완화되었을지언정, 학내 운동단위 가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코로나 이전과 상반된 채라는 것 역시 문제였다. 취업 스펙 쌓기에 도움을 나누는 스터디형 동아리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는 훨씬 늘어났고, 구직활동 시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운 운동권 동아리/학회의 가입률은 현저히 낮아졌다. 참여자들은 이러한 학내 사회에서의 운동조직 고립이 각 조직들의 목표를, 투쟁을 전개하기보다 단순히 조직 보존으로 바꾸게 했다고 입을 모았다. 뒤따라 문제로 제기된 것은 역시 비대면 시기 이후 더욱 강화된 학생사회 내 백래시 문화였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얼굴을 맞대 의견을 교류할 기회가 적어지자 학생들은 자연스레 온라인으로 거처를 옮겼다. 간단한 재학 정보만 입력하면 누구나 게시글을 기고할 수 있는 에브리타임 (일명 에타) 등의 어플이 학생사회의 공론장을 잠식하게 되었다. 어디서나 필요한 것을 질문할 수 있다는 점, 익명이기 때문에 실제 오프라인에 비해 부담감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온라인 교류의 장점이었지만, 반대로 이 장점들은 혐오의 간편한 전시라는 커다란 문제점을 캠퍼스 사회에 끌고 왔다. 언제 어디서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공간에서라면 큰 조명을 받지 못했을 혐오 여론이 금세 학생사회의 주류 의견으로 탈바꿈되는 현상도 일어났다. 학생운동가들의 신상이 온라인상에 노출되거나 심각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도 학생운동가들은 발 빠른 대처를 하기 어려웠다. 일단 차별과 혐오를 내세운 글이 ‘핫 게시판’으로 올라가고 나면 하루 종일 대표 게시물로 지정되어 전교 학생에게 보이는 데다, 단시간에 수많은 익명 댓글이 달리는 구조상 개인이 다수와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운영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에브리타임의 불분명한 신고 방식과 검열 역시 한몫 거들었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은 신고가 누적되어도 존치되지만, 학생운동 관련 게시물은 검열 시스템에 의해 삭제되거나 계정 정지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학내 조직에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한 혐오를 ‘견딘’ 자와 그러지 못해 ‘떠난’ 자의 그림자 두 가지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애써 폭력을 견디고 남은 활동가 역시 번아웃과 여러 심리적 어려움 같은 고난에 시달리게 된 것은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을 타개할 방안 역시 이날 세션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김다희 활동가는 “단절되지 않고 흩어져 있는 학생 단체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지속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며 조직의 경계 없는 캠퍼스 내 연대체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학생운동에서 대두되는 문제점이 인력 부족인 만큼, 서로의 투쟁에 힘을 보태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거나 고민을 나눌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김다희 활동가는 운동 네트워크 구축이 단발적인 친목 다지기에 그쳐선 안 된다는 점 또한 명시하며 “집회나 행진에 단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후속 사업을 제안 및 기획”하는 등 여러 실질적 투쟁으로까지 이어질 것을 강조했다. 이어 조형우 활동가는 보다 첨예한 정치적 실천을 제안했다. 그간 여러 학내 조직이 대중적 여론을 이유로 정치성을 약화하며 활동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조직이 지향하는 정치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그 방향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실천할 때 재생산의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앞서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에브리타임을 언급하며 “혐오 세력의 위세에 눌려 있어서 가시화되지는 않을 뿐, 다수는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우리의 지지자들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밝힌 조형우 활동가는 눈에 띄지 않는 지지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더욱 당당하고 과감하게 활동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또 거의 사장 상태에 가까운 노학연대 활동에 대해서도 지금 같은 시기일수록 ‘계급적 노학연대’에 대한 질문을 던져 학생운동이 주체적으로 노동자들과의 연대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근래 학생운동이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위기는 위기 자신을 파괴할 하나의 문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그 문을 무엇으로 열지는 온전히 현시기 학생운동의 몫이 될 것이다. 날카로운 정치성의 부각, 캠퍼스 안팎의 연대체 구성 등 어떤 실천이든 지금 당장 부딪히는 것이 절박하다. 여러 고민과 투쟁이 모이게 된다면, 현 국면의 학생운동도 반드시 위기를 넘어 “학생운동 리부트”와 변혁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2023-09-05 | 조회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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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점들이 모여 검은 바위, 검은 산, 검은 파도가 되기를!“살고 싶다. 교사로서 살고 싶다!” 고(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열린 9월 4일 전 나흘 사이 세 명의 교사가 또다시 목숨을 스스로 놓았다. 전국 많은 교사들은 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곳곳에서 고(故)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를 열었다. 서울에서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추모집회에 약 5만 명이 모였다. 교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학부모와 학생들도 함께했다.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는 지난 7월 22일 1차 집회 이후 8번째로 이어지는 집회이기도 했다. 이번 추모집회의 주된 구호는 “교권보호합의안을 지금 당장 의결하라!”였다. 그동안 교사들이 외친 구호들은 다음과 같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7월 22일 1차 집회) “교사는 가르치고 싶다! 학생은 배우고 싶다!”(7월 29일 2차 집회) “서이초교 진상규명 촉구한다!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하라!”(8월 5일 3차 집회) “수업 방해 대응책을 마련하라!”(8월 12일 4차 집회) “실효적인 민원 처리 시스템을 마련하라!”(8월 19일 5차 집회) “교사가 전문가다! 현장 요구 반영하라!”(8월 26일 6차 집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끝까지 한다!”(9월 2일 7차 집회) “교권보호합의안을 지금 당장 의결하라!”(9월 4일 8차 집회) 집회에서 외쳐진 교사들의 주장과 요구들에 대해서는 교육계, 정치계, 노동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수많은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모았지만 그 속에 색이 조금 다른 목소리도 함께 실리기도 했다. 조금 더 다른 목소리를 지녀 미처 함께 모이지 못한 교사들도 있었다. 필자 역시 ‘교권보호합의안’에 담긴 ‘정당한 생활지도 아동학대 범죄에서 제외’와 같은 요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들의 구호들에, 함께하지 못한 교사들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소리가 있다. 바로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절규다. 그리고 그 절규의 원인으로 ‘이상한 교육 현실’, ‘비정상적인 교육 현실’을 꼽는다. 학생들이, 교사들이, 학교들이, 학부모들을 경쟁으로, 또 경쟁으로 내모는 이상하고도 비정상적인 교육 현실을 규탄한다. 그리고 그 현실을 만든 시스템, 또한 그 현실을 막지 못한 시스템을 성토한다. 여덟 차례 동안 집회가 이어지며 구호의 내용들이 조금씩 바뀐 것처럼 발언 내용도 조금씩 달라졌다. 오늘 새롭게 듣게 된 발언 내용 중 하나는 “여러 교육단체들이 함께하자”는 것이었다. 추모를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나선 각각의 교사들, 각각의 검은 점들이 “모여서 검은 바위가 되고, 검은 산이 되고, 검은 파도를 만들자”고 외쳤다. 추모집회에서 발언을 한 어느 교사는 서이초 교사를 떠나보낸 지 49일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를 물었다.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지금, 죽음이 계속되는 지금, 먹먹함, 답답함, 분노를 넘어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둘러싸인 것만 같다. 그것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더 거세게 출렁이는 검은 파도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훨씬 다양한 생각이, 더 민주적이고 폭넓은 행동이 필요하다. 거대한 분노에 밀려 철회하기는 했으나, 교육부는 ‘공교육 멈춤의 날’에 모인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압박했다. 실제로 ‘평일 단체행동을 징계로 다스리겠다’는 교육부의 압박 앞에 참여를 포기한 교사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현장을 바꾸고자 분투해온 교육노동자들이 외쳐왔듯, 그래서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이 필요하다. 교육현장을 바꾸기 위해 파업으로 국가권력과 싸울 권리,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명할 권리가 필요하다. ‘파업’이 아니라 ‘조퇴’와 ‘연가’임을 애써 강조해야 하는 교육노동자 대부분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필자는 이에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민주노조운동은 세상을 바꾸고자 의사표현의 자유를 요구해왔고, 또 스스로 이를 보장함으로써 국가권력과 자본에 맞서왔다. 9월 4일을 비롯한 집회에서 보장하지 않은 바로 그 자유 말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정치적 진공상태를 추구하거나 가장해 얻어지지 않는다. 유인물과 피켓과 토론이 넘치는 집회가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의 집회다. 전진은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동어반복적이고 자기모순적인 윤석열 정부 ‘교권강화 대책’에 반대해왔으며, 교육노동자 확대와 학급당 학생 수 감축, 진보적 교육내용에 대한 부당간섭 폐지, 상품화된 교육과 사법화한 학교를 바꾸기 위한 학교공동체 회복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교육현장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 대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토론이 필요하다. 9월 4일, 교육노동자들이 외쳤던 것처럼 검은 점들이 검은 바위, 검은 산, 검은 파도가 되기 위해, 우리는 더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2023-09-05 | 조회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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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발걸음, 너르고 너르게 –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평택공장 선전전을 진행하며편집자 주 28일 오후,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회원들과 세종호텔지부, 서울교통공사 현장동지회 동지들이 함께 닛토 그룹 평택공장(한국니토옵티칼)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했습니다. 먹튀 자본 닛토 그룹에 맞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이날 선전전에 참가한 동지의 후기입니다. #장면 하나. 닛토 그룹의 또 하나의 계열사, 한국니토옵티칼(코레노) 앞에서 오후 5시 즈음. 한국니토옵티칼(코레노)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차를 몰고 퇴근하던 한 여성 노동자가 차창을 열고 퇴근 선전전을 하는 노동자들이 든 플래카드 문구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는 문구를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8월 28일 코레노 공장 정문에서 노동자들이 퇴근 선전전을 열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먹튀 자본 닛토에 맞서 싸우는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투쟁 상황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과 연대의 폭을 넓히려는 마음은 크고 넓었다. 평택에 위치한 코레노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와 마찬가지로 일본 닛토 그룹의 계열사다. 두 공장 모두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한다. 최근 코레노는 화재가 발생한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물량까지 받아서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닛토 그룹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요구는 나 몰라라 한다. 필요할 때는 손쉽게 노동자의 손을 가져다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더 손쉽게 노동자를 내팽개쳤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연 4,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도 2018년,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구조조정을 했고, 지난해 10월 화재가 발생하자 약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을 챙기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장 문을 닫았다. 그로 인해 노동자들은 일터를 빼앗기고 일상을 짓밟혔다. 조금이라도 더 수익을 얻으려는 자본의 논리와 힘으로 노동자들은 헌신짝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있다. #장면 둘. 지역을 넘어, 국가를 넘은 연대 2019년 9월.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6일 동안 일본에서 원정투쟁을 진행한다. 다섯 번째 원정투쟁이다. 2015년 7월, 아사히글라스는 하청 노동자 178명을 전원 해고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일본 미쓰비시 그룹 계열사다. 이후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 직접 가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때 일본 노동자들이, 특히 도로치바(일본 치바현 철도노조)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도로치바 노동자들은 앞서 구미 KEC 노동자들이 원정투쟁을 나섰을 때에도 연대의 힘을 모았다. 일본 노동자들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이 없을 때에도 자체적으로 모여 아사히글라스 본사 항의 집회를 이어갔다. 그 얘기를 듣고 아사히 동지들은 노동자의 연대가 어떤 것인지 더 골똘히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 경험은 나중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서울에서 농성투쟁을 하는 동안 아사히 동지들이 김천에 있는 도로공사 본사로 달려가 항의 집회를 벌일 수 있는 힘이 됐다. #장면 셋. 공장 벽을 넘어선 연대 2012년 대한문.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 분양소를 설치한다. 많은 노동자, 학생 등이 분양소를 함께 지킨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경영난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공장 점거 파업을 벌이고 투쟁을 이어갔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공장 앞에서, 평택역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서울 대한문 앞에서도 상황을 알리고 싸워나갔다. 그 와중에 정말 안타깝게도 30명의 해고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끝까지 공장 벽을 넘어 힘을 모으려 했고, 다른 노동자 투쟁에 연대했으며, 또 다른 이들이 쌍용자동차 투쟁에 함께했다. 무궁무진한 연대의 힘, 그 힘을 끌어내는 수많은 방법 노동자 한 사람의 힘으로, 한 공장 노동자들만의 힘으로 자본에 맞서 싸우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는 단결하고, 연대한다. 덩치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자본에 맞붙어 싸울 수 있고, 승부를 볼 수 있다. 연대의 폭을 넓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아사히 동지들이 일본 노동자들의 연대 소식을 듣고 배우며 그 방법을 톨게이트 투쟁 연대에 적용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그 사례에서 배우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투쟁에 연대할 수 있다.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어떨까? 다시 첫 번째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차창을 내리고 선전전 모습을 빼꼼히 바라보던 평택공장 노동자가 있다. 구미에서 노동자의 등골을 빼먹은 닛토 자본이 평택에서라고 다를 리 없다. 닛토 자본은 구미공장에서 일어난 일을 ‘남 얘기’로 여기도록 평택공장 노동자의 귀를 틀어막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목소리를 높이고 연대를 넓혀 나가야 한다. 차창으로 지긋이 바라만 보던 그 노동자가 차 문을 열고 걸어 나올 수 있도록.2023-08-29 | 조회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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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공장의 주인은 누구?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 “노동자는 하나다!”30도가 훌쩍 넘었던 지난 주말,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주)(이하 한국옵티칼) 공장에 100여 명의 동지들이 모였다. 8월 19일부터 20일까지 열린 ‘한국옵티칼 1박 2일 연대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투쟁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들과 많은 참가자들이 주고받은 연대의 마음은 40도, 50도 아니, 그 이상으로 그야말로 뜨거웠다. 또다시 우리에게 국가는 없었다! 지금도 쓰리기만 한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 등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여러 일들 앞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에게 국가가 있는지’ 절규하며 물었다. 공장 폐쇄를 마주한 한국옵티칼 조합원들도 ‘과연 노동자에게 국가가 있는지’ 처절하게 물어야 했다. 한국옵티칼은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해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업체로, 일본 닛토그룹의 계열사다. 한국옵티칼은 구미와 평택에 각각 공장을 두고 있다. 2003년에 세워진 구미 공장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50년 동안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각종 세제 혜택을 누렸다. 그러면서 한국옵티칼 구미 공장은 연 4,000억 원의 매출, 260억 원 정도의 순이익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구미 공장에서 2022년 10월 4일, 생산 설비 스파크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공장 전체에 불길이 번졌다. 한국옵티칼 사측은 약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을 받았다. 그런데 사측은 화재 발생 한 달 후 화재를 이유로 공장 청산을 노동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런 반면 평택 공장에서는 신규 채용을 진행하기도 했다. ‘먹튀 기업’의 행태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길게는 20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던 노동자들은 한순간에 해고자가 되어 버렸다. 공장 청산에 반대하는 조합원 13명은 현재 공장을 지키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은 사측에 구미 공장 재건과 평택공장 고용승계 의견을 밝히기도 하고, 법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구미시도, 경찰도, 국가도 사측을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자본과 정권은 공장을 사수하며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공권력을 휘두르며 침탈 기회만을 엿보고 있으며 손배가압류로 협박하며 자본의 힘으로 누르려 하고 있다. 노동자의 단물만 빼먹는 자본 이번 <한국옵티칼 1박 2일 연대 투쟁> 첫 순서는 ‘단결과 연대의 결의’ 시간으로 꾸며졌다. 이 시간은 한국옵티칼 투쟁 상황에 대한 설명과 참가자 동지들이 각각 소개와 한국옵티칼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 조합원 동지들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참가자 동지들은 진심이 가득한 응원과 지지의 이야기들을 전했다. 조합원 중 이희은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2차 희망퇴직 때 당연히 회사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회사가 어렵다니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있다 재입사하라는 문자가 왔죠. 다시 일할 수 있게 해 주고, 나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웠어요. 그런데 불이 나고 공장 문을 닫는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회사는 우리를 필요할 땐 쉽게 쓰고 아닐 땐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구나 문자 하나 달랑 보내면서요. 회사는 우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데 나만 애사심을 갖고 있었다 싶었어요. 투쟁을 이어가는 데에 가족들의 반대가 엄청 심해요. 하지만 저는 회사에게서 꼭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이 투쟁을 끝까지 이어가야 (복직을 못 하더라도) 회사에 대한 제 마음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화재 이전에 사측은 2018년,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이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노동자들에게서 단물만 쏙 빼먹고 ‘토낄’ 계획을 진작부터 세우고 실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불이 나자 마침 잘됐다는 식으로 청산을 시도한 것이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외로움 한국옵티칼이 위치한 곳은 공단 지역이라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공장 주변에서 선전전을 진행해도 내용을 들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넓은 공장을 단 13명이 사수하는 것 또한 녹록지 않다. 그로 인해 조합원들은 고립감과 외로움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조합원 발언 시간에 나형주 조합원은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2003년 가을쯤 공장 부지의 컨테이너에서 면접을 보고 2004년 봄에 입사해 공장에 화재가 나기까지 만 18년 6개월 동안 일했어요. 그런데 화재를 이유로 공장 문을 닫는다니 너무 화가 나서 투쟁을 결심했어요. 투쟁하면서 두려운 것은 회사도, 경찰도, 부지를 사측에 내준 한국산업단지공단도 아니었어요. 바로 외로움이었죠. 조합원 13명 만의 힘겨운 싸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조합원 동지들보다 더 강력하게 투쟁하는 연대 동지들을 보면서, 연대의 힘을 느끼며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마 우리가 승리하면 여기 오신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실 것 같아요. 우리도 앞으로 다른 투쟁에 연대하려 하고 있어요.” 연대의 소중함을 또 한번 품게 한 연대 투쟁 ‘단결과 연대의 결의’ 시간 이후에는 공장을 견학하고 행진을 하고 선전전을 진행한 후 저녁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연대문화제가 열렸다. 연대문화제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는 대형 현수막에 참가자들이 연대 메시지를 적고 현수막을 설치했다. 연대문화제 시간 중 한국옵티칼 조합원 이지영 동지는 투쟁 과정 중 겪은 여러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연대해 준 여러 동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같은 지역에서 투쟁 중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동지들과 KEC지회 동지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평생 싸움 한번 해 보지 못한 터라 당혹스럽고 힘들기만 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KEC지회 동지들은 그동안 여러 투쟁에 연대하고 힘을 보태왔지만, 한국옵티칼 동지들의 투쟁을 계급투쟁이자 민주노조투쟁으로 설 수 있도록 정말이지 물심양면으로 발 벗고 나섰다. 이지영 동지뿐 아니라 이번 연대 투쟁에 참가한 많은 동지들이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KEC지회 동지들에게 감동을 받았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서 이번 1박 2일 연대 투쟁을 추진한 ‘현장투쟁 복원과 계급적 연대 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 소집권자 오지환 동지가 발언했다. 오지환 동지는 “우리 노동이 연결되어 있듯 우리 투쟁도 모든 사업장에 걸쳐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옵티칼 투쟁의 모습은 20년 전 금강화섬, 한국합섬의 투쟁과 겹쳐 보입니다. 여전히 자본은 책임지지 않고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폐업하려 하고 있습니다. 공장은 우리의 것입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연대해 싸운다면 위장폐업과 청산에 맞선 투쟁을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도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20년 동안 피땀 흘리며 일한 노동자를 무슨 쓰레기 버리듯 문자로 해고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저 역시 이번 투쟁이 구미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조를 깨우는 소리 호각에서 활동하는 고태은 동지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김현제 지회장은 울산에서 이곳 연대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버스를 대절해서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투사로 변하는 한국옵티칼 동지들을 보면서 경이롭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옵티칼 동지들의 투쟁이 전국적인 연대를 불러일으키리라 봅니다. 언젠가부터 노동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내 공장 밖에서 일어나는 소식은 잘 듣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면서 하루 전에 주변 동지들에게 한국옵티칼 상황을 전하자 모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저는 사실 이런 것이 민주노조운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노동자라는 계급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서로가 서로를 단절시키는 듯합니다. 좀 더 계급의식을 갖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옵티칼 동지들의 경이로운 투쟁이 계급투쟁, 민주노조투쟁을 깨우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연대 투쟁이 내내 진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연대문화제 시간에는 가수 맥박, 가수 정진석 가수 최도은, 박경화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고 한국옵티칼지회 이열균 동지의 노래도 함께하며 같이 즐거워했고, 이어진 뒤풀이 시간에는 훈훈한 정을 쌓아 갈 수 있었다. 이튿날에는 약식 결의대회인 ‘우리의 약속’을 진행하며 1박 2일의 일정을 마쳤다. 자본가가 자본으로 공장 혹은 회사를 만들면 그것은 오롯이 자본가의 것일까? 직접 피땀 흘려 일하며 공장과 회사를 일군 노동자는 어떠한 권리도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는 것일까? 이번 연대 투쟁에서 여러 플래카드나 발언을 통해 많이 이야기된 부분이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연대의 소중함, 연대의 힘’이었다. 각 개인의 노동자나 단사 차원에만 머무르는 노동자들은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대하고 힘을 합하면 그것이 지닌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뿜을 수 있다. 연대는 그 자체로 서로를 더 강하게 단결시키고 자신감을 북돋는다. 한국옵티칼 점거 투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동지들이 한국옵티칼 구미 공장이 있는 구미시 4공단로 7길 53-29로 연대의 발걸음을 옮기시길 권한다.2023-08-21 | 조회 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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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사진: 교육노동자현장실천 빗나간 해결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8월 18일 “모두를 위협하는 윤석열 정권의 ‘교권’ 대책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포함해 16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였다. 토론회 장소인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은 참가자로 가득했고, 준비된 자료집은 금방 동이 났다. 무엇보다도 현시점에 이런 토론회가 개최됐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교육 현장에 쌓여 온 숱한 갈등과 모순이 폭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주말마다 수천에서 수만 명의 교사가 모여 분노를 표출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과 보수 우익세력은 이 분위기를 활용해 학생인권조례 폐지와 교권 강화라는 권위주의적 퇴행을 일으키려 한다. 불행하게도 교사 상당수가 교권 강화와 아동학대 면책권 같은 빗나간 대안에 이끌리고 있고, 이 점에서 전교조 역시 중대한 한계를 보인다. 이날 토론회는 이 같은 흐름에 명백하게 반대하면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과 행동이 절실함을 보여줬다. “학교가 전쟁터가 됐다” 토론회 발제는 “학교가 전쟁터가 됐다”는 진단으로 시작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교사와 학생, 양육자를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정책일 따름이며, 교사의 면책권을 얘기하는 아동학대 관련 법률 개정안으로 실제 면책되는 건 “정부일 뿐”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예컨대 발제자와 여러 토론자가 이구동성으로 인원 확충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인권조례에 비난이 쏟아지는 동안 교사 정원은 계속 줄었다. 내년도 전국 공립학교 교사 선발 인원은 올해 선발된 인원보다 13~30% 줄어든다고 한다. 충북에선 무려 58.7%나 감축된다. 교육과 생활 관리를 위해 그 어떤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이를 실행할 인원이 부족하다면 결국 또 다른 폭탄 돌리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적 비용절감 논리를 내세우는 정부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인원확충 책임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이래서는 교육노동자의 노동권이 절대 지켜질 수 없다. 교육부가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도 딱 그런 수준이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 투쟁의 범위를 확대하기 인원 확충은 예산 문제와 떼놓을 수 없다. 이날 토론에서도 정부가 “총정원제와 총액인건비제라는 경제적 관점에 메여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부문에서 총액인건비제는 노동자의 분열을 강제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2년 전 건강보험고객센터 투쟁 때에도 총액인건비제를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는 정서가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나돌았다. 정부 예산안이 신성불가침의 가이드라인으로 여겨지는 꼴이다. 이런 현실은 2011년 칠레를 뒤흔든 학생들의 대투쟁 장면과 날카롭게 대비된다. 학생들은 보편적 무상교육을 비롯한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칠레 최대 산업인 구리산업을 국유화해 재원을 마련하라고 외쳤다. 한국으로 치면 현대기아차를 국유화해 교육예산을 확보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투쟁의 시야를 학교 울타리 안으로 가두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장하면서 해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다. 이 투쟁은 이후 수년간 이어지면서 무상교육 확대 성과를 만들어냈으며, 그 운동의 저력은 2019년 칠레 항쟁으로도 연결됐다. 지금 칠레에서는 구리뿐만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 광산 국유화 논의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 경험을 우리 현실에 접목하려면 더 구체적인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시야를 학교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을 때 비로소 교사와 학생, 양육자를 대결 구도로 몰아넣는 윤석열 정권의 ‘대책’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할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사회 전체가 엉망진창인데 그 속에서 학교만 아름답고 조화로운 공간으로 만든다는 게 될 법한 얘기인가. “파업을 할 수 있었더라면…” ‘파업을 할 수 있었더라면’이라는 발제자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가 보장됐다면, 단체행동권을 누릴 수 있었다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교육 현장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주장에 모든 토론회 참가자가 공감했으리라. 정부나 국회에 기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경험해 온 일이다. 누군가 먼저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퇴행의 물결을 거스르는 다른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예정된 시간을 30분가량 넘겨 진행된 토론회를 마치며 논의의 성과를 계속 이어가자는 공감대도 확인했다. 저마다의 지역에서 이런 토론회를 열어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날 토론회는 그렇게 실천을 이어가자고 뜻을 모은 소중한 첫 발걸음이었다. 죽음의 그림자에 뒤덮인 교육 현장을 뒤바꾸기 위해, 교육노동자의 노동권과 정치활동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자.2023-08-19 | 조회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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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을 사수하며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옵티칼 동지들을 만나러 달려와 주십시오.동지들 반갑습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 최현환입니다. 투쟁! 8월 3일부터 자본과 공권력의 침탈에 맞서 공장을 사수하며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옵티칼 동지들을 만나러 달려와 주십시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니토 자본이 100% 지분을 가진 외투기업입니다. 작년 10월 화재로 공장동이 전소되었습니다. 회사는 곧바로 청산을 결정하고 공장을 떠났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공장 재건과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공장을 지킨 것은 우리 조합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8월 4일 ‘공장에서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손배가압류를 하겠다’고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자본에 굴복하여 공장에서 나갈 것인지, 아니면 고용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전부를 걸고 싸울 것인지. 우리는 지금까지 지켜온 공장을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외투기업의 먹튀 행각에 대해 책임을 묻고 함께 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투쟁은 시작부터 전면전이었습니다. 8월 7일 철거업체를 앞장세워 자본은 공장 침탈을 시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온몸으로 막았고, 고용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그 누구도 공장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 저희 생각입니다. 태풍이 예고된 날, 구미시는 경찰병력을 끌고 소방서와 크레인과 렉카차를 동원해 공장 울타리를 에워싸고 공장 철거를 위한 장비 반입을 공권력이 직접 자행하였습니다. 낮부터 시작된 폭력적 도발은 새벽 1시쯤 끝이 났습니다. 동지들!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싶습니다. 외투기업들의 먹튀행각에 책임을 묻는 투쟁에 꼭 승리하고 싶습니다. 자본과 공권력의 침탈을 막고 기필코 공장을 지키겠습니다. 동지들이 함께 지켜주십시오. 8월 25일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투쟁승리 결의대회가 있습니다. 멀리 구미에서 온 몸을 던져 싸우고 있는 저희 조합원을 만나러 와 주십시오. 동지들과 함께라면 자본을 두렵게 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당당하게 싸우겠습니다. 투쟁!2023-08-19 | 조회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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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 교육현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치투쟁을 확대하자사진: 뉴시스 지난 7월 18일 서이초 초임교사가 교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왔으며, 학교폭력 사건에 관련된 학부모의 과도한 연락과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당국도, 학교장도 교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죽음 이후 정부·여당 주도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장관, 경기도교육감, 서울시의회의장 등은 서이초 사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로 돌렸고, 24일 윤석열 대통령은 “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서이초 사건은 학생인권조례와 아무 관련이 없다. 현 상황은 교육의 상품화, 학교의 사법화, 학교공동체 붕괴에 기인하며 학생에 대한 통제 강화는 상황을 해결하기는커녕 악화할 뿐이다. 이 글은 서이초 사건을 둘러싼 쟁점을 짚고, 교육현장을 바꾸기 위한 실천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살피고자 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운동이라는 희극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격은 현 사태를 호도하는 가장 저열하고 무능한 방법이다. 7개 시도 학생인권조례 어디에도 교사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조항은 없다. 서울학생인권조례 4조는 “학생은 교사 및 다른 학생 등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며, 전북학생인권조례 4조는 “학생이 교사, 학생 등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에는 관련 법령과 학칙에 따른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다. 최근 보도된 통계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시도에서 교사의 노동권 침해가 더 적었으며, 이는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가 충돌하지 않음을 말한다. 당장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 해 평균 164명의 초·중·고교생이 자살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인권이 과하다’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파렴치한 거짓 선동이다. 결국 정부·여당과 교육관료 세력은, BC 1700년 수메르 점토판에도 적혀있다는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한탄과 함께 쓸모없는 퇴행적 조치에 골몰할 뿐이다. 지배계급이 문제인 이유는 그들이 파렴치할 뿐만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무능해서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세력과 교사의 권리를 공격하는 세력은 같은 집단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현재와 마찬가지로 교육부장관이던 이주호는 ‘학교장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명분으로 ‘서울교권보호조례’를 무력화시켰다. 이들에게는 교육에 대한 관료적 통제가 중요할 뿐,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권리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다. 상품화한 교육, 사법화된 학교, 유명무실해진 공동체 학생인권조례가 비난 대상으로 놓이며 ‘교권’ 강화 여론이 힘을 얻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교권 침해행위 생활기록부 기재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범죄에서 제외하는 초·중등교육법과 아동학대범죄처벌법 개정 등이 요구·추진되고 있다. 우선, ‘교권’이라는 단어부터 짚자. 과거 ‘교사의 권위’, 혹은 ‘교사가 학생을 통제할 권한’으로 통용된 이 단어는 현 상황을 교사와 학생의 권리분쟁으로 바라보게 한다. ‘교권’이라는 관점은 교사의 노동권과 학생인권을 대립항으로 놓으며 ‘말 안 듣는 학생들을 다스릴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퇴행적 주장으로, 심지어 체벌을 포함한 학생억압 조치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연결된다. 교권이라는 단어는 사태의 진실을 가리며 사태에 대한 반사적 정서에 편승한다. 우리는 ‘교사의 노동권’이라는 단어로 사태를 규정해야 한다. 교사 노동권 침해는 심각하다. 서이초 사건에서 드러나듯 교사는 과중한 업무, 학교폭력을 둘러싼 민원과 압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교육청과 학교의 대응체계는 없거나 작동하지 않는다. 모두 교사 개인 책임으로 돌렸을 뿐, 교육노동자의 고통을 경감하고 문제를 해결할 실질 조치는 없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교사의 노동권은 심각하게 침해당한다. 교사는 명목상으로는 교육과정의 주체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주체적으로 해결할 여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 없이 보호자-학생과의 이전투구가 반복된다. 이렇게 교사는 교육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린다. 교사의 고통을 가중하는 것은 갈등 해결뿐만이 아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명분으로 한 수업에 대한 억압, 특히 진보적 가치에 대한 억압도 같은 궤에 있는 억압이다. 분명 가르치는 주체이나, 교사를 둘러싼 제반 조건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규정을 빌려 말하자면,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사의 노동권을 보장할 것인가? 체벌을 포함해 학생들을 통제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방향은 상품화된 교육, 사법화한 학교를 바꾸고 교육현장에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누구도 ‘메가스터디’에 인성·생활교육 기능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교육 자본이 판매하는 것과 수요자가 사교육 자본에 바라는 것은 교육 ‘상품’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어떤가. 교육기본법 2조 상 학교의 목적은 ‘민주시민’ 양성이다. 즉, 명목상 공교육은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학교는 자신이 내건 목표를 이루는 데 실패한다. 교육을 둘러싼 모든 것이 입시를 위해 상품화된 상황은 학교를 일종의 상품서비스 판매기관으로 인식하고 취급하게 한다. 상품을 두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흥정을 벌이듯, 교사-학생-학부모는 교육 내용과 성적 산출의 제반 과정을 두고 분쟁한다. 그리고 그 분쟁의 조율과 해결은 사법기관, 혹은 사법기관과 유사한 처리 기구에 맡겨진다. 학교의 사법화다.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 사이 갈등 해결이 사법기관을 통하는 빈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토론과 합의 여지를 좁혀 교육활동을 위축시키고, 교사의 고통을 더 무겁게 한다. 고인이 된 서이초 교사를 괴롭힌 반복적 민원이 드러내는 것처럼 학교는 사법적 갈등의 장이다. 각종 위원회 등 학교를 둘러싼 공동체는 행정장치일 뿐 ‘자치’와 거리가 멀다. 이런 ‘학교붕괴’ 진단은 1990년대 후반부터 나왔으나 정부와 교육당국은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교육노동자의 목소리를 묵살해왔다. 사진: 뉴시스 이런 대책으로는 교육현장을 바꿀 수 없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교권 침해행위 생활기록부 기재’ 조치는 학교의 사법화를 가속할 것이다. 생활기록부 기재를 둘러싼 사법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생활기록부 기록에 따르는 책임은 더욱 교사 개인에게 떨어질 것이다. 이는 제2, 제3의 서이초 사건을 만들자는 말과 다름없다. 이는 교육현장의 근본적 개선을 막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최근 부각되는 ‘정당한 생활지도 아동학대범죄에서 제외’ 요구를 보자. 현행 아동학대처벌법 10조에 따라 교사의 아동학대 민원이 발생하면 학교장은 즉시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하고, 가해 의심 교사는 해당 아동으로부터 즉시 분리된다. 실제로, 이는 교사의 교육적 지도행위를 제약하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교사의 지도행위는 아동학대로부터 면책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서이초 사건과 마찬가지로 생활교육을 둘러싼 갈등은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자주 발생하며, 저학년 학생에 대한 교사의 영향력은 일종의 권력자만큼이나 크다. 불균등한 권력관계라는 조건에서, 교사의 행위가 학생의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런 조건에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범죄에서 제외하는 것은, 생활지도라는 이름으로 학대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판단 자체를 막는다. 나아가 정당한 생활지도라면 아동학대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범죄에서 제외하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이미 판례에 의해 '정당한 생활지도'는 처벌 대상이 아니기도 하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에 대한 무고 사례, 교사의 피해사례가 입에 오르내린다. 그렇다면 반대 사례는 어떤가. 마찬가지다.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교사의 아동학대 사례가 유포되며 교사들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대된다. ‘교사 노동권 보호’와 ‘아동학대 방지’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선택을 강요하는 관점은 교육현장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교사의 노동과정에서는 주체와 주체가 만난다. 어느 주체의 권리를 우선할 것인가로 논의를 끌고가서는 안 된다. 학교는 왜 붕괴하는가 - 교련이 사라진 자리에 수행평가가 도입되는 과정을 돌아보며 학교의 실패는 결국 ‘학교를 졸업하면 어엿한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의 실패, 체제의 실패다. ‘학교붕괴’ 진단이 1990년대 후반까지 올라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계급과 신분에 따른 학업성취도 격차가 심화하고 있었고, 이는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의 고리가 공고해짐을 뜻했다. 이는 한편에서 교육과정의 일정한 자유화와 다양화를 동반했는데, 이는 학생이 유년기부터 체득한 문화적 자원을 평가과정의 주요 요소로 편입하는 과정을 동반했다. 학교 밖에서는 IMF 구제금융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교육 재편은 교육을 망치는 만악의 근원으로 규정되던 ‘주입식 교육’의 상대적 완화를 뜻했으나, 재편을 설계한 집단도, 이익을 얻은 집단도 지배계급과 중산계급이었다.1) 교련이 사라진 자리에 수행평가가 도입되는 과정은 극히 계급적이었다. 다양해진 선택의 폭과 평가기제에 조응해 다양한 교육상품이 쏟아졌고, ‘계급’과 ‘성적’의 연결고리는 촘촘히 강화되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졌으나, 노동운동과 향후 노동자로서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교육은 여전히 배제되었다. 과거,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극도로 억압적인 공교육을 지탱하던 기둥은 ‘교육을 통한 계급이동’이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야만적 학교를 지탱했던 것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였던 셈이다. 이 신화의 해체과정은 곧 지배계급과 중산계급 주도의 전면적 교육상품화였다. 그 정도가 어떠한지, 또한 얼마나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 바로 ‘조국 사태’다. 한국 자본주의는 ‘교육을 통한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고 약속하나, 그 약속을 극소수에게만 이행한다. 학생들도 이를 잘 안다. 그렇기에 학생은 그 극소수에 들기 위한 경쟁으로 내몰린다. 다수 학생이 구조적으로 낙오하며, 일부는 이탈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교실붕괴가 벌어진다. 특목고와 자사고에서 교실붕괴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특목고와 자사고 학생들이 천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해당 교육과정 이수가 계급재생산의 핵심 고리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에 불황이 없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근본적 대안으로 교육현장을 바로 세우는 운동에 나서자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방법은 교육현장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선, 당면조치로써 다음이 필요하다. 첫째,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거나 개악하려는 모든 흐름에 반대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격은 그 어떤 개선도 없이 교육현장을 방치하자는 선동일 뿐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은 학생을 교육현장의 주체로 세우는 운동이며, 교육현장의 주체로 선 학생은 교사의 노동권 침해에 맞서 연대해왔다. 교사충원과 교육예산 확대를 요구하는 교육노동자들의 연가투쟁에 대한 청소년들의 지지와 연대를 기억하자.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폐지 세력의 교사 노동3권 탄압을 기억하자. 정부와 교육관료들은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땅에 떨어뜨렸다고 개탄하면서도, 교사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노동3권 행사를 억압해왔을 뿐이다. 둘째, 교육노동자 확대와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 보장, 진보적 교육내용에 대한 부당 간섭 폐지가 시급하다. 모든 교육노동자의 노동권을 확대하는 싸움에 교육노동자, 학생, 학부모가 함께 나서야 한다. 유명을 달리한 서이초 교사는 초임이었음에도 담임과 네이스 업무를 맡아야 했다. 인력이 부족한 결과 상대적 약자에게 기피업무가 맡겨진 것이다. 학교폭력 담당 업무도 마찬가지다. 2023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학교폭력 등 민원담당 교사 중 33%가 10년 미만 저년차 교사로 나타났다. 이 중 355명은 신규임용 첫 해 학교폭력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내용에 대한 부당한 간섭은 어떠한가. ‘교원의 정치중립’을 명분으로 정작 진보적 교육활동만 탄압 대상이 된다. 6월 28일, 교육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서명을 독려한 전교조 교사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성평등 수업, 기후위기 수업 등에 대한 억압도 마찬가지다. 노동3권과 정치기본권이 있어야 이런 억압에 맞설 수 있고,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싸울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셋째, 허울만 남은 학교공동체를 회복할 실질 조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지금도 학교운영위원회 등 법적 심의기구가 있으며 이는 학부모위원, 교원위원, 지역위원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는 구색에 불과할 뿐이다. 현실의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장의 의사를 관철하는 기구에 불과해, 형식과 절차만 남거나, 유력인사가 각자 이익을 관철하는 장으로 전락한다. 문제는 실제로 자치를 가능케 할 주체들의 힘을 조직하는 것이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교육노동자의 의견을 추동하고 반영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교사에게 힘이 있어야 한다. 교무회의 의결기구화는 필수적이며, 학교 운영과 자치업무를 맡은 교육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주어져야 한다. 또한, 학교 내 학생 자치회, 학부모 자치회를 활성화하고, 교육노동자와의 소통과 협의를 가능케 해야 한다. 다수 학부모는 먹고살기 바쁜 노동자 민중이다. 노동자 민중의 실제 의사를 반영하려면 주체에게 참여할 여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유급 노동시간 인정 등 학교운영에 참여를 가능케 할 실질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또한 학생을 학교운영의 한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앞서 강조했듯, 이는 학생의 권리뿐만 아니라 교사의 노동권도 강화한다. 넷째, 무너지는 교육현장을 지켜온 민주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이초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부당한 민원에 대한 조직적 대응은 확인되지 않는다. 만약 교사 옆에 민주노조가 있고, 민주노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운영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상황을 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갈가리 찢긴 교육현장을 바꾸는 민주노조의 역할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동어반복적, 자기모순적 요구가 아니라 학생과 교육노동자의 권리를 함께 확대할 조치, 학교 내 차별과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한 비정규직노동자와의 연대, 학교공동체를 회복할 조치다. 학교를 바꾸는 근본적 대안을 제기하며, 민주노조가 왜 존재하는지를 실천으로 증명할 때다. 더 많은 교육노동자의 정치투쟁이 필요하다 - 다시, 억압받는 자를 위한 교육을 위하여 일각은 ‘교권 회복을 위한 비정치적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며 ‘전교조의 정치투쟁’을 비난한다. 사태를 바로 보자. 교육의 상품화에 맞서, 교육현장 내 차별과 비정규직 확대에 맞서, 전교조는 더 많은 정치투쟁을 벌였어야 했다. 교육의 상품화와 학교의 사법화, 그리고 학교공동체의 붕괴라는 현실 앞에, 교육노동자운동은 ‘교권’을 내걸며 학교 내부로 파고드는 운동이 아니라 학교와 학교 밖을 잇는 운동이어야 한다. 교육의 상품화는 학생도, 교사도 낙오자로 만든다. 교육사상가 프레이리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이야 말로 ‘억압받는 자가 왜 억압받는지’를 함께 인식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정부와 교육당국,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학교를 폐허로 만들고 있음을 함께 들여다보며 더 나은 교육을 향한 교사, 학생, 학부모의 단결을 추동하자. 길고 험해도, 그 길 이외에는 답이 없다. 다시 한번 서이초 교사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친다. 1) 특히 중산계급이야말로 교육과정 이수가 계급재생산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 이해관계는 더 크다.2023-08-04 | 조회 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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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간착취 전문업체의 ‘전문성’에 대하여=효성ITX 홈페이지 회사소개 '경영이념' 갈무리 ‘혁신’ - 가치 없는 모든 일을 제거, 긍정의 마인드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 ‘책임’ -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 몇 번이든 시도하여 악착같이 해내고자 하는 의지 콜센터 업무 아웃소싱 전문업체 효성ITX㈜는 자사의 ‘핵심가치’에 대해 홈페이지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효성ITX가 말하는 이 핵심가치들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효성ITX 본사 건물 앞에서 이 업체의 본모습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에서 근무해 온 상담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차려져 있다. 효성ITX는 지난해 말 저축은행중앙회가 콜센터 업무위탁계약을 새로 맺은 업체다. 이전에 저축은행중앙회 콜센터 업무를 수행한 곳은 KS한국고용정보라는 또 다른 용역업체다. 당시 업체 변경 과정에서 효성ITX는 공개입찰 제안요청서에 ‘전 직원 100% 고용승계’를 약속한 바 있는데, 결국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실상 해고된 상담노동자들이 재고용을 촉구하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이하나 해고노동자가 효성ITX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콜센터 '시장' 효성ITX는 업계 1위의 대형 콜센터 외주업체다. 이 업체는 원청의 콜센터 업무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가리지 않고 위탁 운영해 왔다. (참고로 효성ITX는 하루 평균 120콜을 처리해야 할 만큼 극단적인 성과 경쟁으로 악명 높은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의 11개 용역업체 중 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효성ITX와 KT 계열사(KTis, KTcs) 두 곳 등 콜센터 외주업체 상위 3개 업체는 지난 5년간 124개 공공기관 콜센터 민간위탁의 51.4%를 점유해 업계의 포식자로 군림 중이다. 더욱이 대형 콜센터 외주업체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공공기관과 금융 및 보험업, 유통업 등 고객 상담과 안내가 빈번히 이뤄지는 곳에서 콜센터 업무를 꾸준히 외주화한 결과다. 원청 자본은 외주화의 근거로 콜센터 업무가 이른바 ‘비핵심 업무’이거나 단순 노동이라는 이유를 댔다. 효성ITX의 경우 지난해 연매출 5,113억원, 영업이익 223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업체는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컨택센터 사업부문은 안정적인 Cash Cow 역할을 수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콜센터 시장은 많은 자본가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널리 인식되고 있으며, 그중 효성ITX는 독점적 사업 지위와 안정적 고수익 등 탄탄한 성장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금융자본가들도 평가하고 있다. 비용절감 논리가 불러 온 외주화 그런데 콜센터 사업은 사무실 임대 등 초기 투자 비용을 제외하면 통신비와 인건비가 운영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시설 투자 정도를 빼면 상담노동자에게 지불하는 노동의 대가가 장부상에 지출로 처리되는 ‘비용’인 셈이다. 그러니 원청은 이 비용을 절감하는 데 안간힘을 쏟을 뿐이고,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하청 역시 극심한 중간착취를 통해 수익을 남기려 혈안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효성ITX가 어마어마한 실적을 기록한 밑바탕에는 ‘감정노동의 극단’에 서 있는 상담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깊게 배어 있다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결국 효성ITX가 표방하는 ‘핵심가치’라는 것도 원청 자본이 비핵심 업무로 간주해 외주화한 콜센터 업무에서 ‘가치 없는 일은 모두 제거’하겠다는 효율화 전략을 ‘악착같이 해내고자 하는 의지’라는 성과 경쟁으로 관철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는 효성ITX 같은 대형 콜센터 외주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금융과 통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콜센터는 급격하게 도급화되었다. 이렇게 도급의 형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원청이 인원 관리를 하고 시험을 관장하고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 등 사실상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콜센터 노동 자체가 원청의 업무를 이해해야만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0년대부터 급격하게 확산된 금융권의 콜센터 외주화를 보자. 은행이나 보험, 신용카드 회사 같은 금융권 콜센터는 초기부터 원청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업무 처리를 목표로 구축되었고,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전산망이 발달하자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의 많은 부분이 콜센터로 이관되었다. 당연히 상담노동자들은 이러한 업무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해야만 고객의 질문이나 요구에 정확하게 응답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금융권 콜센터는 고객 응대 등 업무 처리 과정에서 고객의 금융거래내역, 거주지, 자산 및 소득 규모 등 각종 개인정보를 취급할 수밖에 없다. 고객들이 자신의 중요한 개인정보를 금융권에 제공하는 이유는 애초 계약을 맺은 원청 금융사가 개인정보를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콜센터 노동을 비핵심 업무라거나 단순 노동으로 간주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저비용 고효율'을 노리는 원하청 자본 이처럼 콜센터 업무는 기업(원청)과 고객을 연결하는 중요한 업무다. 그런데도 콜센터 용역업체들은 상담노동자들을 언제든지 쓰다 버릴 수 있는 일회용품으로 취급한다. 동시에 이들 용역업체들은 오랜 기간 노동 경험을 통해 숙련을 쌓은 상담노동자의 ‘품질’ 높은 상담서비스를 원한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콜센터 시장이 도급 형태의 외주화로 재편된 이유를 말해준다. 파견법 제정 이후 2년 이상 상담노동자를 계속고용할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원청 자본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청 자본은 상담노동자의 업무가 지속적으로 수행 가능하면서도 간접고용의 이점도 취할 수 있는 도급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도급을 주는 업체가 바뀌더라도 노동자들은 고용이 승계되어 계속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전문성'은 누구에게 있는가 도급화가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일터에서 상담노동자들은 본인이 원한다면 계속 한 곳에 머물며 숙련과 경력을 쌓을 기회를 그나마 가질 수 있었다. 포괄적인 업무지식과 고도의 집중성, 숙련을 요구하는 콜센터 노동에서 이들의 존재는 노동통제기법 말고는 아무런 전문성도, 고유 기술도 없는 용역업체들이 천문학적인 이윤을 거둬들인 유일한 원천이었다. 이들 용역업체들은 내용적 전문성은 고사하고, 오로지 성과 목표 달성을 위한 콜 수 올리기 압박, 이석체크 등 과도한 통제와 실적 경쟁에만 자신의 전문성을 뽐낼 뿐이다. 결국 전문성은 상담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지, 용역업체들은 단지 중간착취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도 무엇 하나 다를 게 없다. 원하청 자본이 고용승계를 거부해 사실상 해고된 상담노동자들은 이전 용역업체인 KS한국고용정보 시절 새롭게 바뀌는 업무 내용에 대한 숙지를 위해 직접 매뉴얼을 만들어 동료들과 공유한 경험이 있다. 용역업체는 업무 내용에 있어서 무지한 데다가 실은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이하나 해고노동자가 연대자들과 함께 투쟁을 외치고 있다. 상담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야 할 이유 그렇게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는 온전히 상담노동자들의 노력으로 가꿔 온 일터였다. 비록 차별과 멸시가 들어찬 공간일지라도 이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더 나은 일터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런데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업무의 내용이 아니라 그 업무 수행을 통해 얻은 수익에만 관심을 가진 자들이 상담노동자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세상이라니. 끔찍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심지어 효성ITX 인사 담당자가 지난해 말 상담노동자들과 면담한 시간은 기껏해야 5분 남짓이었다. 당시 사측이 통보한 계약불가 사유는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과 맞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상담노동자들이 수년 동안 현장에서 갈고 닦은 경험과 역량에 대해 과연 저들이 판단할 자격이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사 홈페이지에 자랑스레 내건 핵심가치부터 효성ITX는 스스로 곱씹어 보기를 권한다. 열악하고 존중 없는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마인드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한 것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도 다름 아닌 해고된 상담노동자들이었다. 더 이상 억지 부리지 말라! “원청업체로서 하청업체의 채용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저축은행중앙회나 “저희에게 고용된 적이 없기에 ‘해고’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효성ITX 둘 다 공동사용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2023년 7월 28일, 해고 208일차(농성 57일차), 효성TIX 본사 앞에서 복직을 촉구하는 필리버스터가 진행됐다.2023-08-02 | 조회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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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언니들과 흩어지고 싶지 않아요"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 박영임 조합원의 이야기편집자 주: 지난 2023년 4월 18일, 희망연대본부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 소속 2명의 노동자가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신용보증재단 건물의 캐노피 위에 올라갔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 박영임 조합원을 성공회대학교 학생인 이훈씨가 인터뷰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나고 자란 영임씨는 성격이 순했다. 어른들 말씀,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하고 바른 학생이었다. 학교 숙제 한 번 빼먹는 일이 없었고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어찌나 성격이 말랑말랑한지 고등학생 때 미술 전공을 준비하던 영임씨에게 학원 선생님이 “영임이는 데생을 잘해서 똑같이 그리는 건 잘하는데 예술적인 감각이 약간 없는 편이야. 혹시 건축쪽으로 진학하면 어때?”라고 권하자, 영임씨는 선생님 말씀대로 했다. 영임씨는 이후 건축회사, 홈쇼핑과 카드사의 고객센터, 프랜차이즈 카페 매니저 등으로 일하며 지냈다. 직업은 다양했으나 그때마다 주말에도 출근하거나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지 않거나 일이 심각하게 많은 등 어려움이 컸다. 2014년 12월, 구직사이트를 바라보면서 영임씨는 ‘부디 남들 다 쉬는 ‘빨간 날’에 나도 좀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퇴근도 규칙적이길 바랐다. 그런데 마침 구직사이트에 나온 곳이 ‘서울신용보증재단 고객센터’였다. 공공기관이라 남들처럼 출퇴근이 일정하고 주말과 공휴일에 쉬는 곳이었다. 영임씨는 그 장점에 매료됐다. 얼른 지원했고 약 한 달의 수습기간을 거쳐 12월 29일, 정식 입사했다. 입사 후 영임씨는 회사에 딱히 불만을 가진 적이 없다.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엔 연차를 못 쓰게 하는 것도, 9시가 출근 시간이면서 8시 45분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지각 처리하는 것도, 한 달에 한 번 시험을 보고 점수가 인센티브 평가 기준이 되는 것도, 콜이 길어져서 점심 식사를 늦게 하러 가도 1시엔 반드시 돌아와서 대기해야 하는 것도, 연차를 쓸 때 연차를 써야 한다는 증명 서류를 내게 하는 것도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괜찮았다. 콜센터란 곳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 관리자들의 말도 일리 있게 들렸으니까 다 괜찮았다. 연차가 몰리는 날엔 알아서 눈치껏 연차를 안 쓰면 되었다. 시험은 싫었지만 홈쇼핑과 카드사에서 직원들이 시험보는 걸 봤기에 시험은 ‘원래’ 보는 거니까 괜찮았다. 그렇게 영임씨는 관리자 입장에서 참 착하고 순했다. 2018년 11월 18일, 재단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갑자기 찾아와선 전원 회의실로 모이라고 했다. 25명의 상담사와 5명의 관리자 모두 모였다. 재단 사람들은 정규직화에 대한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당시 서울시장이 공공기관 콜센터의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임씨와 동료들은 그 사실을 잘 몰랐고 재단 직원들은 노동자들의 무지를 이용했다. ‘정규직으로 모두가 입사하는 건 아닐 수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일부는 해고될 수 있다며 겁을 줬다. 영임씨는 실직자보단 비정규직이 낫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해고 위협에 겁먹은 노동자들은 얼떨결에 그냥 하청업체 소속으로 남겠다고 했다. 2020년 9월, 희망연대노동조합이 찾아왔다. 상담노동자의 권리가 적힌 팜플렛을 나눠주었다. 그걸 본 언니들은 우리가 그동안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도 못 누렸다며 조금씩 모여서 수군거렸다. 한 명, 두 명씩 희망연대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얼떨결에 영임씨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2020년 10월 21일, 총 25명의 상담노동자 중 24명이 가입한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가 출범했다. 노동조합은 꾸준히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9시 출근시간에 맞춰서 출근할 수 있었고 가위바위보와 증명서류 없이 연차를 쓸 수 있었고 화장실 가기도 빠듯한 10분짜리 휴식시간은 20분으로 늘어났다. 모두 노동조합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큰 산이 남아있었다. 월급이었다. 당시 서울신용보증재단 고객센터의 임금은 서울시 생활임금 및 이를 기준으로 한다던 서울신용보증재단의 답변과 달리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만큼 터무니없이 낮았다. 월급을 올려야 했다. 요구는 역시 소박했다. 서울시가 정한 생활임금이었다. 그러나 2021년 여름이 다되도록 월급은 오를 기미가 없었고 교섭은 진전이 없다가 결국 파투났다. 하반기부터 부분파업, 태업에 이어 노숙 투쟁과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 건물 앞과 서울시청 앞에서 피켓팅, 농성을 이어갔다. 영임씨는 한겨울에 피켓을 잡고 서서 생각했다. ‘그동안 우리는 이렇게 취급받아도 되는 사람이었던 거야. 우리가 이렇게 취급받아도 되는 사람이라서 회사가 이런 식으로 취급했던 거야.’ 영임씨는 자신과 동료들이 이렇게 취급받은 이유를 깨달은 시원함과 이제야 깨달았다는 자괴감이 동시에 들었다. 자괴감을 느끼며 피켓을 잡은 한겨울이 참 추웠다. 파업 5일차, 사측은 생활임금을 지급하겠다며 파업을 멈추라 했다. 승리였다. 하지만 승리의 짜릿함보단 1년이나 했던 임금교섭의 시간이 떠올랐다.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었나.’ 이겨놓고도 드는 자괴감은 참 복잡했다. ▲ 2022년 1월 파업 투쟁 중 노래에 맞춰 손을 흔드는 박영임 조합원 투쟁이 일단락되었으니 당분간은 조용히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3년 3월, 서울시의원 한 분이 서류를 하나 노조에 건네주었다. 서울신용보증재단과 하청업체 사이에 오간 인원감축 계획이었다. 노조는 곧바로 재단과 하청업체에 이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사측은 ‘아직 인원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다’며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4월, 노조가 입수했던 자료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해고 공지가 나왔다. 최근 입사자 순서대로 8명을 구조조정하겠다는 거였다. 영임씨는 연차가 높았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었지만 만약 이번에 해고가 이뤄진다면, 다음엔 김민정(초대 지부장) 언니나 임지연(현 지부장) 언니같은 사람들도 해고될 거 같았다. 강하게 주장하는 언니들이 해고된다면 남은 조합원들이 해고되는 건 순식간일 게 뻔했다. 영임씨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후배, 언니들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동참했다. 그러나 영임씨는 투쟁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료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아이가 어리거나 편찮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투쟁을 결의하는 총회에서 지부장이 여러 투쟁 방식을 브리핑하는 걸 들으며 영임씨는 생각했다. ‘언니들이 밤에 천막에서 자고, 굶고, 머리 깎을 수 있을까? 만약 해고를 막아내기 위해 그런 투쟁이 필요해진다면, 내가 하는 게 좋겠다.’ 실제로 영임씨는 약 한 달간 진행한 천막농성 중 대부분의 밤을 책임졌다. 투쟁을 이끌겠다는 뜨거운 다짐 같은 게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적합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 자신뿐이니 하는 거였다. ▲고공농성을 시작하고 찾아온 밤의 풍경 노동조합은 파업에 돌입하며 해고 철회 투쟁을 시작했지만 사측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18일 새벽, 영임씨는 진기숙 조직부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대로 ‘욱’했다. 핫팩과 사다리를 챙겼고 함께 다음날 순식간에 재단 정문 캐노피에 올라갔다. 아침이 되자, 만나주지도 않던 재단 직원들, 하청업체 직원들이 다 몰려왔고 정치인들과 소방차, 경찰차까지 잔뜩 왔다. 연대자들도 몇백 명씩 와서 힘을 보태주었다. 그때 영임씨는 다시 느꼈다. ‘아,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우리는 그동안 그렇게 취급받아도 되는 사람이라서 만나주지도 않았던 거구나.’ 익숙한 깨달음과 자괴감이었다. ▲고공에 올라간 박영임 정책부장의 시선. 조합원과 연대자가 함께 피켓팅을 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조합원들이 애타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보였다. 사측과 만나고 온 지부장의 실망한 어깨가 보였다. 열 받아서 올라오긴 했는데, 막상 올라오니 괜히 조합원들을 더 힘들게 한 거 같아서 미안했다. 조합원들이 간단한 간식과 김밥을 올려주었지만 입맛이 없어서 기숙 언니랑 한 알씩 겨우 나눠 먹었다. 캐노피에서 하루를 보낸 후 사측은 노사전협의체를 꾸리고 해고를 다시 고민해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영임씨와 기숙씨는 캐노피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하루만에 사측은 태도를 바꿨고 해고를 유지하겠노라 뻔뻔히도 말했다. 결국 8명의 조합원은 단식을 결의했다. 영임씨도 함께였다. 영임씨는 고공과 단식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뇨 제가 지구력이 좋아요”라고 간단히 답했다. 영임씨는 해고를 막아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는 사람이었다. 영임씨는 해고 철회를 위해 해야 하는 투쟁이 있다면 누군가는 해야 하고, 그게 누구일지 고민할 땐 ‘내가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면 내가 안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단식 3일차인 박영임 정책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영임씨를 인터뷰하면서 느껴지는 건 마음이 하얀 사람이란 거다. 어렸을 적 모범상 좀 받았을 사람, 노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상사에게 쭉 예쁨받으며 살았을 사람이다. 누군가 뉴스에서 본 ‘폭력적인’ 노동조합의 이미지와 정반대인 사람을 떠올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를 법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하는 사람은 ‘이기적’이라서 노조 가입 후 이것저것 따진다고 말하곤 한다. 혹은 마르크스와 계급투쟁 같은 어려운 말에 푹 빠진 ‘빨갱이’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임씨는 노동조합을 왜 하냐는 질문에 ‘언니들과 흩어지고 싶지 않아요. 언니들이 되게 좋아요’라고 답했다. 약 10년간 옆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하면서 동료들과 친해졌다. 성격 좋고 잘 맞는 언니들이 해고당해서 실직자가 되도록 놔두고 싶지 않다. 이리로 저리로 강제 전보 당해서 흩어지는 것도 싫다. 자신을 지키고 언니들을 지키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차근차근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을 지키기 위해 굶어야 한다면 굶고 길바닥에서 자야 한다면 잔다. 언니들과 흩어지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 ▲노사 합의 후 천막을 정리한 조합원들이 서울신용보증재단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2023-07-13 | 조회 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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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 연속기고] 모든 노동자의 연대투쟁으로 손배가압류 철폐하자원청을 상대로 싸울 권리가 없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 철폐는 더욱 절박하다 간접고용 하청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에게 손배가압류 철폐가 더욱 절박한 이유 손배가압류의 목적은 분명하다. 바로 투쟁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지옥 같은 지경으로 내몰아, 손과 발을 묶는 것이다. 쟁의행위는 자본의 이윤 창출을 멈추어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 보고서마저도 지적하듯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다. 결국 손배가압류는 쟁의행위를 봉쇄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장치일 뿐이다. 이 장치는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막론하고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를 위협한다. 2014년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47억원의 손해배상, 2019년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에 맞선 파업에 대한 92억원 손해배상 등 정규직 노조도 비껴가지 못했다. 물론 손배가압류의 본질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는 바로 하청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를 겨눌 때이다. 2022년 여름 뜨겁게 전개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이 마무리된 이후, 대우조선 원청은 하청노동자 5명에게 470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사용자가 아닌 대우조선 원청을 향한 파업으로 손해를 끼쳤으니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조가 전개한 파업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행태다. 바지사장 뒤에 숨은 진짜 사장에 맞서 투쟁할 권리,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결과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애초부터 손배가압류 융단폭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역으로, 손배가압류는 원청사용자성을 인정받고자 싸우는 하청노동자의 손발을 묶는 강력한 족쇄로 작동한다. ‘하청노조 탈퇴나 불법파견 소송 철회’를 조건으로 손배소 취하를 제안하는 원하청 자본의 작태는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플랫폼노동자들의 원청사용자성 인정 투쟁 역시 하청노동자 투쟁과 다르지 않다. 플랫폼 자본은 스스로를 ‘중개자’일 뿐이라고 한다. 플랫폼노동자들은 독립적인 사업자이고 플랫폼 기업에 고용된 것이 아닌바, 애초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책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플랫폼노동자에게 일을 배정하고, 노동과정을 감시하고, 수락률과 평점 등으로 통제하는 주체는 플랫폼 자본이다. 따라서 플랫폼 자본을 진짜 사장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투쟁과 손배가압류의 사슬을 끊어내는 투쟁은 플랫폼노동자들에게도 뗄 수 없는 하나다. 특수고용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가령 화물연대의 경우,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든 쟁위행위가 불법이 된다. 화물연대의 성명서처럼, “화물노동자의 투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각종 손배 청구서가 휘날린다.” 사진: 연합뉴스 노동3권은 거래대상이 아니다 - 손배가압류 철폐투쟁, 모든 노동자가 나서자 손배가압류로 자본이 얻는 이익이 막대한 만큼, 자본과 국가권력은 손배가압류를 유지하고 집행하고자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든 지금이든 180석에 달하는 국회 의석을 가지고도 손배가압류 법안을 유지해 왔다. 이제는 심지어 각 조합원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손해배상 부담액을 개별 산정’하는 개악안을 들이밀며 통과시키려 한다. 민주당이 노조법 2조 개정안을 일부 수용했으니, 손배가압류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양보하라는 투다. 그러나 손해배상 개별책임은 투쟁에 앞장서는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행위이며, 비정규불안정 노동자의 노동3권은 거래대상이 아니다. 단위노동조합의 힘만으로 손배가압류 철폐투쟁을 전면화할 수 없다. 원청사용자성을 부정함으로써 하청·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노동3권을 봉쇄하려는, 나아가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을 제약하려는 자본 모두를 무릎 꿇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에 의존할 수도 없고, 의존해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배가압류 철폐는 노동3권을 실질화하는 계급투쟁이며, 간접고용 하청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모두의 단결과 공동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노동조합의 핵심권리인 쟁의권을 사수하기 위해 손배가압류 철폐투쟁에 나서야 한다. ‘원청사용자성 쟁취,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손배가압류 철폐’를 내건 민주노총 총파업에 원하청노동자 모두가 결집해야 한다.2023-07-06 | 조회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