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신문 뉴스목록
-
[우리의 투쟁] 생활임금 쟁취! 노동조건 개선! 해고없는 소속기관 전환 쟁취!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가 투쟁하는 이유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2023-11-21 | 조회 1,152
-
[우리의 투쟁] 방영환 열사 영면 42일, 모든 택시현장에서 사납금제를 근절하기 위한 싸움을 결의합니다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2023-11-18 | 조회 197
-
[우리의 투쟁] 노동자 죽음으로 지어진 e편한세상 거부한다! 디엘이앤씨 8명 산재사망 책임자를 처벌하라!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2023-11-17 | 조회 167
-
[우리의 투쟁] 열사정신 계승하여 노동해방 쟁취하자 - 전태일열사 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 비정규직 전야제전태일 열사 53주기를 맞이하여 11월 10일 비정규직이제그만 주최로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진행되었다.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는 택시노동자 방영환열사 분향소 집단참배로 시작되었다. 한강성심병원 앞 방영환열사 분향소에 모인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5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살라야 하는 현실을 규탄하며 투쟁을 결의하였다. 전태일과 방영환을 비롯한 무수한 열사들의 정신을 기리며 시작된 일정은 서울고용노동청 앞으로 이동하여 진행되었다.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모인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의 영정과 각종 차별의 이유를 담은 피켓을 들며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이후 문화제 개최 장소인 디엘이앤씨 산재사망 하청노동자 강보경 님 분향소가 있는 서대문역 디타워 앞으로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행진 시작과 동시에 참여자들을 방패로 밀쳐내며 폭력적으로 행진을 제지하고자 했다. 이후 재개된 행진이 진행되던 중에도 17시가 넘자마자 경찰은 퇴근시간 교통혼잡을 이유로 도로를 봉쇄하고 행진을 차단하였다. 문화제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행진단은 인도로 행진을 지속하였지만, 경찰의 방해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올해 벌어지고 있는 노동탄압, 노동개악, 집회·시위의 자유 등 각종 기본권 말살 시도에 맞선 투쟁은 전태일부터 방영환까지 수많은 열사가 염원한 노동해방 세상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투쟁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일터에서 죽어가고 차별받고 있는 택시노동자들,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사납금제 철폐, 택시 완전월급제 쟁취, 비정규직 철폐를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전태일 열사 53주기인 지금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투쟁해야 하는 이유이다.2023-11-12 | 조회 143
-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8 투쟁 11일차, 이슬 씨의 마음사진: 11월 1일 발언하는 고이슬 조합원 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 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11일 차는 부산2센터 소속이며 누가 권하기 전, 노조에 가입하려 먼저 찾아왔다는 고이슬 조합원을 인터뷰했다. 2022년 5월 17일, 이슬 씨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입사했다. 수습기간에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슬 씨는 깜짝 놀랐다. 점심시간, 육아 휴직, 쉬는 시간 모두 노동조합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다. 가장 놀란 건 관리자와 노조의 관계였다. ‘노동조합이 생긴 후로 관리자는 조합원 상담사한테 함부로 말할 수 없어’라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이슬 씨는 이전에 카드사와 홈쇼핑의 고객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두 곳 모두 관리자가 소리 지르며 상담사를 혼내는 건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만 하면 관리자가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슬 씨는 잠시 고민했지만, 노동조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신이 ‘감히’ 가입해도 되는 건지 망설였다. 며칠 후, 관리자는 이슬 씨와 옆자리 동료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냈고 이슬 씨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오열하듯 울었다. 수습기간이 끝나는 8월 1일, 이슬 씨는 바로 노동조합을 찾아가 가입했다. 2023년 9월, 이슬 씨는 파업하고 원주로 투쟁하러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이슬 씨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열의가 불탔다. 하루라도 빨리 원주에 가고 싶었다. 얼른 가서 잘 싸우고 싶었다. 2년 전 선배 상담사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고 있었다. 이번엔 자신도 함께하고 싶었다. 11월 1일, 부산지회가 도착했을 땐 이미 펜스를 뚫고 동료들이 들어간 상태였다. 동료들이 경찰과 대치했고 물품을 들여오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슬 씨는 많이 떨렸다. 경찰과 싸워야 할지, 물품을 날라야 할지, 무서워하는 조합원들 손을 잡고 있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긴장했다. 11월 4일, 이슬 씨는 집에 있었다. 3일 밤에 부산으로 돌아와서 6일에 원주로 다시 가는 일정이었다. 핸드폰이 마구 울렸다. 경찰이 들어와서 대치하고 있다고 했다. 쓰러진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게 부산지회장이라고 했다. 이슬 씨는 안절부절못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야 할까’, ‘부지회장님이 결정해주면 지금이라도 갈 텐데 어쩌지’ 고민했다. 자신이 지금 원주로 가는 것과 일정대로 하는 것 중 무엇이 맞는지 몰라서 발만 동동거렸다. 6일에 일정대로 가기로 결정이 나왔고 이슬 씨는 한숨 돌렸다. 짐을 챙겼다. 더 따뜻하고 두꺼운 옷을 챙겼다. 필요할 것 같은 물품은 다 가방에 넣었다. 꼼꼼하게 챙기며 단단히 무장한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현타’가 오기도 했다. ‘내가 왜? 우리가 왜 이래야 하는 거지?’ 하지만 이슬 씨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짐을 싸는 데에 집중했다. 11월 11일, 이슬 씨가 원주에 온 세 번째 날이었다. 주말이라 조합원은 다소 적었고 농성장은 조용했다. 조용하니까 좋기도 했지만 다른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조용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마치 우리가 공단 앞마당의 조형물처럼 자리 잡은 거 같아서 걱정됐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날 밤, 이슬 씨는 잠시 천막을 나왔다. 밤하늘을 봤다. 농성장을 쭉 둘러보니 천막에서 불빛이 새어나왔고 말소리도 들렸다. 조합원 숫자는 조금 적었다. 하지만 여기 없는 조합원도 다들 마음은 여기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여기 있을 텐데.’ 이슬 씨는 총파업 투쟁 11일차를 ‘머물지 않지만 머무는 날’이라고 정리했다. 밤에 천막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오늘은 여기 머물지 않는 조합원도 마음으로 머무는 날이네’라고 생각했다. 이슬 씨는 이 투쟁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가끔 현장이 버거울 때면, 모든 상담사가 다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다만 예전에 지부장님이 한 말을 떠올린다. “옛날 독립운동도 전 국민이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첫 발언에서 “저는 아직 노조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집행부에서 키를 잘 잡아주시면 저는 때를 맞춰 노를 젓고 돛을 올리는 조합원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던 약속을 떠올린다. 이슬 씨는 지부장의 조언과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 한다. 온전한 소속기관 전환을 위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조합 총파업 11일차, 농성장을 지키는 조합원과 떨어져 있는 조합원이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 날이다. 약속하는 과거의 자신과 그 약속을 지키는 현재의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 날이다. 사진: 공단을 향해 아침 선전전을 하는 조합원들2023-11-12 | 조회 476
-
[우리의 투쟁] 일하다 죽지않게, 차별받지 않게, 비정규직 철폐하자! 비정규직 이제그만 전태일열사 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우리의 투쟁] 일하다 죽지않게, 차별받지 않게, 비정규직 철폐하자! 비정규직 이제그만 전태일열사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전태일열사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비정규직이제그만 주관으로 열렸다. 2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행진을 시작해 서대문 디엘이앤씨 고 강보경 노동자 산재사망 농성장 앞 문화제를 이어가며 '일터에서 죽지않게, 차별받지 않게,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도 함께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자동차판매연대지회, 디엘이앤씨 고 강보경 노동자 유가족, 택시지부, 파리바게트지회, 코레일네트웍스지부, 현중사내하청지회, 웹툰작가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 세종호텔지부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소개한 저마다의 상황은 달랐지만, 오로지 이윤만을 위해 노동자를 고용불안과 저임금, 산재로 내모는 자본과 정부를 향한 분노와 규탄의 목소리는 똑같았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변주현 노동자는 힘없는 노동자만 당하는 현실을 해고된 4년동안 줄곧 목도하고 있다고 했다. 성서공단지역지회 로미 노동자는 이주노동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같은 노동자임을 강조하며 전태일 열사정신을 계승하여 싸울 것이라 말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안진석 노동자는 노동해방을 투쟁으로 쟁취하자고도 외쳤다. 거부권을 거부한다. 노조법 2,3조 개정하라! 일하다 죽지않게 비정규직 철폐하자! 일하다 차별받지않게 비정규직 철폐하자! 차별없는 세상 우리가 만들자!2023-11-12 | 조회 62
-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7 투쟁 열흘 차, 기연 씨의 마음사진: 2021년 여름 투쟁당시 김기연 동지 투쟁 열흘 차, 기연 씨의 마음 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 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열흘 차는 부산1센터 지회장인 김기연 지회장을 통해 돌아보았다. 2023년 봄, 쟁의대책위원회는 다시 한번 파업을 결정했다. 쟁대위원들이 집단 단식도 하기로 결의했다. 부산지회장인 기연 씨도 조금 고민했으나 단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단식은 고민이 많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공단이 말하는 소속기관 전환 방식은 노조가 결코 받을 수 없는 안이었다. 입사 시기에 따라 ‘제한 경쟁 대상자’와 ‘공개채용 대상자’를 나눠서 여러 시험을 통과해야 소속기관으로 입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연 씨는 연차가 높아서 시험을 보지 않아도 소속기관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노조 부산지회 부장들은 시험을 봐야 한다. 다른 지회까진 몰라도 당장 내 옆에서 일하는 동료가 해고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인간으로서 모른 척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연 씨는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행동은 언젠가 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는다. 기연 씨는 단식으로 자신과 동료를 지키기로 결의했다. 2023년 11월 1일, 노동조합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본부 앞마당을 점거했고 기연 씨를 포함한 11명의 쟁의대책위원이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이틀 차 오후까지만 해도 기연 씨는 괜찮았다. 그런데 밤이 되면서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 원래 기연 씨는 귀에 지병이 있다. 단식으로 몸이 약해지면서 원래 아픈 곳부터 안 좋아지기 시작한 거였다. 귀가 먹먹하고 욱신거렸다. 머리가 울리고 토할 거 같았다. 단식 나흘 차, 고개만 돌려도 구역질이 나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경찰이 차 벽을 친다며 텐트에 손을 대고 갑자기 밀고 들어왔다. 조합원, 연대자가 다 같이 달려들어 대치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은 기연 씨를 더 힘들게 했고 저혈당 쇼크가 왔다. 구급차와 구급대원이 왔으나 경찰이 못 들어오도록 막아섰다. 기연 씨는 심각한 통증 속에서도 비참함을 느꼈다. ‘내 목숨이 이렇게 가벼워?’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겨우 간 병원에서 진통제와 영양제를 맞았다. 하지만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연 씨는 ‘집에 가야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죽어도 집에서 죽고 싶었다. 데리러 온 남편 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면서도 계속 아팠다. 게워내고 게워내도 머리는 울리고 속은 아팠다. 그렇게 이틀간 꼬박 화장실과 이불만 오갔다. 11월 8일, 기연 씨는 몸이 조금 나아졌다. 당장 원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몸 상태는 불안정했고 혹여나 원주에서 다시 아프면 동지들에게 피해만 끼칠 거 같았다. 11월 10일, 기연 씨는 ‘이젠 진짜 괜찮아’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원주로 향했다. 아파서 회복한 시간이었지만 기연 씨는 그동안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죄스러웠다. 다 나아서 동지들한테 오니 친정에 온 거 같았다. 마음이 편해졌다. 단식자들부터 찾았다. 남은 단식자는 4명이었다.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초췌하고 초라한 그들의 얼굴은 기연 씨가 마음을 단단히 먹게 했다. 기연 씨는 단식을 중단한 쟁대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우리 얼른 나아서 다시 원주에서 보자. 단식자들 뒤에 단단하고 강한 동지들이 있음을 공단에 보여주자.” 기연 씨는 투쟁 열흘 차인 오늘을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든 날’이라고 정리했다. 온전한 소속기관 전환을 위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조합 총파업 10일 차, 단식을 중단한 사람과 이어나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한 날이 아닐까. 남은 사람은 중단한 사람의 몫까지 무겁게 짐을 지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짐을 지우는 게 아니다. 새로운 관계가 생기는 거다. 단식을 이어나가는 동지와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동지가 단단히 엄호하는 관계로.2023-11-11 | 조회 516
-
[우리의투쟁]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재벌 눈치 그만 보고 하루속히 불법파견 선고하라!11월 10일 10시, 울산지방법원 앞에서 이유도 없이 무기한 선고를 연기한 형사8단독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26명의 서진ENG 불법파견 당사자와 현중지부, 민주노총울산본부, 현중사내하청지회, 이주민센터, 울산산추련, 진보당울산시당,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울산지역위원회의 많은 동지들이 규탄 기자회견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서진해고자들은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직접고용 시정지시 명령을 받는데 5개월, 검찰의 정식기소에 1년 6개월, 1심 재판 선고일까지 1년 4개월의 세월을 피눈물로 지새며 이날을 기다려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불법파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울산고용노동지청 앞에서 2개월간 농성, 검찰청 정문에서 6개월간 출근선전전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장기간의 법정투쟁에도 성심성의껏 응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서진해고자를 기만하고 우롱하고 있습니다. 민사재판부는 형사재판부 판결을 보고 선고하겠다고 하고, 형사재판부는 사유도 없이 선고를 연기해 서진해고자를 두번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중공업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면, 사유도 없이, 그리고 선고기일 확정도 없이 연기될 리 없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부가 현중 자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책임회피하지 말고 불법파견 선고에 나서야 합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울산지역위원회는 서진ENG 불법파견 당사자들이 당당하게 현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함께 투쟁할 것입니다.2023-11-11 | 조회 54
-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6 투쟁 아홉째 날 지혜 씨의 마음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아홉째 날은 경인2센터 소속이며 반년 전에 입사한 신입 조합원, 송지혜 조합원을 인터뷰했다. 2023년 4월 3일, 지혜 씨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입사했다. 센터로 출근하는 문 앞에 게시판이 있다. 그곳엔 노동조합이 활동해서 무엇을 바꿔냈는지 쓰여 있었다. 지혜 씨는 그걸 보면서도 ‘그런가 보다’ 싶었다.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조장 언니가 다가왔다. “지혜 씨, 노동조합이 있는데 가입해 보면 어때요?” 건네받은 종이는 노동조합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적힌 가입서였다. 지혜 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입서에 이름을 적었다. 대단히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느낀 건 아니었다. 원해서 쓴 것도, 억지로 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동료가 권하니까 별다른 생각 없이 썼다. 아침마다 조합원들은 다 같이 ‘투쟁!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외치고 업무에 들어갔다. 투쟁이란 말도, 팔뚝질도 어색했지만 가장 이상한 건 ‘비정규직 철폐’라는 말이었다. ‘내가 비정규직인가? 나 정규직 아닌가?’ 생각했다. 곧 조별 모임에서 내가 왜 비정규직인지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하청업체와 공단이 거짓말했다는 배신감도 느꼈다. 2023년 10월, 노동조합은 곧 원주로 투쟁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지혜 씨는 이 또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노동조합이 간다니 나도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투쟁하러 간다는 말도 와닿지 않았다. 2023년 11월 1일, 펜스를 넘어서 공단으로 들어갔다. 지혜 씨는 조합원들과 함께 모여 있는 내내 울 거 같았다. 무서웠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옆에 있던 동료 언니는 지혜 씨의 손을 잡고 ‘별거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해 주었지만 지혜 씨는 계속 겁이 났다. 원주에서 투쟁한 지 9일이 되었다. 지혜 씨는 아직도 현실 감각이 별로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에 있을 거 같은데, 아침밥 먹고 출근하면 될 거 같은데, 자신은 원주에 있고 노조 투쟁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지혜 씨는 ‘아, 보초 서러 가야겠네’라고 생각했다. 지혜 씨는 군대에 가본 적은 없지만 선전전이 마치 군대에서 보초를 서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추운 날 서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비슷한 거 같다. 지혜 씨는 선전전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공단이 생각하는 정규직이랑 우리가 생각하는 정규직은 많이 다른가 봐.’ 지혜 씨는 정규직이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사해서 수습 기간을 거치면 자연스레 되는 게 정규직인데, 얼마나 대단한 벼슬이라고 저러나 싶다. 필기, 면접, 인성검사까지 다 통과해야 소속기관으로 받아주겠다는 공단의 제안도 참 어이가 없다. ‘정규직이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이래? 이런 걸로 투쟁까지 해야 해? 그냥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되잖아. 심지어 약속했던 거잖아. 이전 이사장은 누구야? 거짓말쟁이였네.’ 지혜 씨는 공단 건물을 바라보며 속으로 온갖 나쁜 말을 했다. 오후 2시, 결의대회 발언 중 한 조합원이 이사장이 2023년 7월에 입사했다는 걸 말했다. 지혜 씨는 놀랐다. ‘이사장이 나보다도 늦게 들어왔다니.’ 어쩌면 이사장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상황을 잘 몰라서 아직 전환을 안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지혜 씨는 약간 힘이 빠져 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조합원은 모두 함께하는 줄 알았는데 몇몇 조합원은 원주에서 보이지 않았다. ‘다 같이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지혜 씨는 밤에 누워서 생각했다. ‘투쟁이 언제 끝날까? 끝날 땐 잘 끝날 수 있을까?’ 지혜 씨는 총파업 투쟁 9일 차를 ‘투쟁이 빨리, 잘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이라고 정리했다. 온전한 소속기관 전환을 위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총파업 투쟁 9일 차, 하루 일상은 다소 무난했을지 몰라도 조합원들의 마음은 매일 소용돌이치는 걸 확인한 날이었다.2023-11-10 | 조회 555
-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5 투쟁 여덟째 날, 용석 씨의 마음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 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여덟째 날은 서울1센터 소속이며 직접고용을 절박한 마음으로 바라는 최용석 조합원을 통해 돌아보았다. 2006년 3월 2일, 용석 씨는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1기 상담사로 입사했다. 첫 이사장은 상담사들에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소속이 다르지만 우린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린 하나의 일을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게 용석 씨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다. 그땐 서울에 있는 센터 3개가 건보고객센터의 전부였다. 용석 씨는 세 곳의 하청업체가 머지않아 하나로 합쳐지고 가까운 미래엔 직고용이 될 거라고 믿었다. 이사장이 말한 대로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새로 생기는 고객센터는 모두 새로운 하청업체가 맡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졌고 제도가 바뀜에 따라 상담 내용은 복잡해졌다. 한 곳의 하청으로 모인 후 직고용이 될 거란 용석 씨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주변 동료들은 버거워하다가 욕을 하면서 떠나기도 했다. 용석 씨는 그때마다 ‘언젠가 나도 참지 못하면 혼자 욕하거나 사직서를 던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9년 12월, 노동조합이 생겼고 용석 씨는 바로 가입했다. 2021년 초, 노조 집행부는 원주로 투쟁하러 가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용석 씨는 ‘어쩌면 원주 투쟁을 다녀오면 잘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용석 씨는 절박했다. 고객센터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약 14년간 지켜봤다. 직고용은 꼭 필요했다. 용석 씨는 망설임 없이 원주행을 택했다. 만약 자신이 잘린다고 해도 이 투쟁은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잘리면, 그 또한 투쟁으로 돌파해야 하는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겨울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용석 씨는 투쟁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노사는 소속기관 전환을 합의했고 용석 씨는 솔직히 실망했다. ‘더 싸울 수 있는데’, ‘우리의 투쟁이 여기서 멈추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용석 씨는 대학을 다닐 때 노동조합과 투쟁에 대해서 배웠다. 한 발 물러선 요구가 다시 나아가기까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2023년 11월 8일, 용석 씨는 세 번째 원주 투쟁 8일째를 맞았다. 서울지회는 잠시 집으로 돌아갔다가 원주로 다시 오는 날이었다. 용석 씨는 아침에 조합원들과 버스를 타고 원주로 왔다. 단식자들의 건강이 걱정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용석 씨는 평온했다. 도착 후 약 700명이 넘는 인원이 민주노총 콜센터 노동자 결의대회를 했다. 한국에 있는 콜센터 조합원은 거의 다 온 거 같았다. 들어본 곳도, 처음 들어보는 곳도 많았다. 결의대회와 행진을 하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투쟁이 콜센터 노동조합 활동을 확장하는 데 물꼬를 틀지도 몰라. 우리가 이기면 콜센터 노동조합과 회사의 모습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어.’ 용석 씨는 이번 결의대회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행진까지 다 끝난 후, 용석 씨는 바로 다음 투쟁을 생각했다. ‘결의대회는 결의대회고, 다음 투쟁이 중요하지.’ 용석 씨는 사실 단식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언젠가는 단식이 끝날 텐데, 그때를 대비한 플랜 B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을까.’ 용석 씨는 현재의 투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중요한 건 ‘다음’이다. 용석 씨는 2021년의 간절함을 지금도 갖고 있다. 우리의 일터가 달라져야 한다고,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용석 씨는 투쟁 여덟째 날인 오늘을 ‘나의 싸움이 나만의 싸움이 아니고 고객센터의 싸움이며 그 시작점이 우리일 수 있음을 확인한 날’이라고 정리했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을 향한 총파업 투쟁 여덟째 날, 대규모 결의대회라는 투쟁을 하면서도 다음 투쟁을 고민하는, 지금과 미래를 분석한 날이다.2023-11-09 | 조회 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