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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캠퍼스는 탈정치의 꿈을 꾸는가

“탈정치”라는 극우의 전략과 학생자치기구의 생존에 대하여

곽소현 (학생사회주의자연대)
기사입력 2026.01.15 13:51 | 조회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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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3월 11일 <윤석열 퇴진을 위한 충북대학교 학생공동행동> 결의대회에 난입한 극우세력 사진: 뉴시스

     

    지금의 캠퍼스는 확실히 병들었다. 발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점점 낮아지는 학생회와 자치기구 선거 투표율, 소극적이 되어가는 학생회 활동, ‘외부인’과 ‘학생’을 구별하며 고립을 자처하고(실제로 완전한 구별이 가능한지도 의문스럽다), 포스터와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게시판을 철거하며 흘러간 긴 시간 동안, “탈정치”라는 병이 캠퍼스를 좀먹어 왔다.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주제를 언급하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입막음 당하는 것이 최근 캠퍼스의 유행이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세력과 무관하다”는 문구가 없으면 인쇄하거나 게시할 수도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참여한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폭력적인 대응을 주도한 학생이 차기 총학생회장으로 당선하기도 했다.

     

    캠퍼스는 완전히 탈정치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 다양한 캠퍼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흐름을 기반으로 말하자면, 전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공간과 마찬가지로, 캠퍼스는 좌도 우도 아닐 수는 없다는 사실, 정치적 진공상태일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캠퍼스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입장, 캠퍼스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은 캠퍼스 내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바로 학내에서 점잖게는 ‘좌파’, 혹은 경멸 섞인 호칭으로 ‘빨갱이’라고 불리는 진보적 학생 진영을 억압하는 도구다.

     

    학생자치기구 탄압, 백래시의 끝과 시작

     

    ‘탈정치’의 이름으로 휘둘러진 탄압은 제일 먼저 학생자치기구로 향했다. 정치적인 색을 띠는 학생자치기구들을 폐지하거나 통폐합하는 등의 논의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고려대학교에서는 여학생위원회와 소수자인권위원회가 통폐합되었고, 성균관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도 중앙 동아리 재등록이 부결되어 정식 학내 단체에서 제외되었다.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이준석 강연 초청 비판 대자보를 게시했다는 이유로 폐지 논의를 거쳐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포항공과대학교 총여학생회가 국내 마지막 총여학생회로서 자취를 감추었다. 기존 기구가 총여학생회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 폐지의 근거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생활자치도서관은 12.3 비상계엄 관련 성명문에서 윤석열을 ‘내란 수괴’라고 표현했다는 이유로 특별기구로서 재인준을 받지 못해 지원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지지 금지, 정치적 사안 언급에 대한 암묵적 금지가 탈정치화 중인 캠퍼스의 주된 경향이라면, 특정 정치인 초청 강연은 허용되고, 이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특정 대통령 후보들에게만 강연 요청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비상계엄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것은 왜 정치적이고, 탄핵에 반대하는 것은 왜 정치적이지 않은가?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를 중앙 동아리로 재등록할 수 없게 저지하는 이유가 ‘정치적이기 때문’이고, 전체 회원이 36명이나 되며 매년 교지를 발간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단체의 활동과 활동 인원이 부족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캠퍼스 내 소수자, 여성, 장애인 등의 복지에 힘쓰는 것이 왜 정치적이며, 그들의 복지를 가로막고 캠퍼스에서 고립되도록 두는 것은 왜 정치적이지 않은가?

     

    허용되는 정치가 있고, 허용되지 않는 정치가 있다면, 이는 ‘탈정치’라고 할 수 없다. 현 상황은 명백하게, 그렇지 않아도 보수주의로 물든 캠퍼스에 더해진 극우화의 물살이다. 이러한 백래시의 흐름은 학생자치기구 탄압으로 시작된 듯하지만, 동시에 아주 오래 전부터 쌓여온 치우친 탈정치 담론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학은 수십 년 동안 시장화되어 왔다. 학생들은 대학과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고객처럼 다루어졌다. 학습의 공간이자 정치적 주체 형성의 공간이어야 할 대학에 대한 자본의 직·간접적 지배가 강화되었고, 이와 함께 강의와 학습, 취업과 관련된 범위 외의 모든 활동이 ‘불안 요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탈정치 담론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와 자본, 대학 당국을 비판하는 정치로부터는 ‘탈(脫)’해야 하고, 그들을 옹호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궁극적인 진리처럼 여겨지는 것이 지금의 탈정치 담론이다. 비상계엄 전까지는 이러한 탈정치 담론이 아주 견고한 것처럼보였다.

     

    그러나 12.3 계엄과 탄핵은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극우세력은 계엄에 저항했던 광장의 청년 세대가 지닌 정치적 잠재력을 실감했고, 따라서 캠퍼스를 최우선으로 선점해야 할 공간으로 판단했다. 우파 정치인 강연 초청, 진보적 교지 폐간, 인권기구 폐지 공세 등은 각각 분리된 우발적 사건들이 아니라 일종의 ‘제2의 백래시 물결’ (2018년을 전후로 전국 여러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남성혐오적’ 및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존폐 위기를 맞거나 실제로 폐지되었던 것이 제1의 백래시다) 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공격이었다. 이들은 탈정치 담론을 한 번 더 이용하여, 특정 정치인의 강연은 ‘학술 활동’으로 인정하고, 그를 비판하는 대자보는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여 금지하는 등 모순적인 행태를 보였다. 탈정치 프레임은 캠퍼스를 보수화시키는 가장 편리한 명분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캠퍼스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흔들리는 공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학생자치는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축소되었고, 대표성과 투명성, 책임성이라는 민주적 절차들도 무력화되었다. 정치적 논쟁을 피하려는 태도는 결국 인권, 성평등, 복지와 같은 의제까지 ‘민감한 정치적 주제’로 분류하여 언급할 수조차 없게 했다. 충북대학교 차기 총학생회 PRO(프로)의 당선자의 경우, 캠퍼스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표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선거 과정 전후로 규정상 금지된 선거운동을 하는 등 투명성 또한 상실된 상태였다. 특정 정치성향 학생들을 ‘빨갱이’ 등 모욕적 언사로 공격한 세력의 중심에 있었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캠퍼스 내 집회를 방해하고자 폭력과 방화를 저지른 극우 유튜버들과의 연관성도 제기되었다.

     

     

    당선자는 이러한 혐의를 부인하지만, 극우세력이 캠퍼스에서 자행한 노골적 폭력에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은채 침묵한 것은 밝혀진 정황상 결코 우연이 아니며, 당시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조차 저버린 행위다. 토론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드러난 실무적 능력 부실 또한 책임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해당 선본은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극우세력의 폭력적인 집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인권, 성평등 등 진보적 의제는 외면하는 선본의 태도는 정치적으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중립적, 내지는 탈정치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허용되는 말과 행위, 금지되는 말과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은 언제나 특정한 정치적 진영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리고 이 기준을 형성하고 통제하는 이들은 국가 및 자본과 깊숙이 결탁한 학교 당국과 우파세력이다. 이처럼 탈정치 담론의 실상은 정치적·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고 진보적 세력을 제거하는 우파의 무기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캠퍼스 내 진보진영은

     

    이렇듯 극우진영은 캠퍼스 내에서 소리 없이 세력을 확장해 왔다. 특히 박근혜 퇴진 정국에 비해 한층 심화한 탈정치 담론은 극우의 성장과 불가분하다. 박근혜 퇴진 정국, 특히 ‘정유라 사태’까지만 해도 캠퍼스 내 주된 담론은 ‘공정성’에 관한 것이었다. 정유라 사태가 캠퍼스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자가 경쟁에서 승리하고, 그에 걸맞는 사회적·경제적 보상―예컨대 대기업 정규직 등―이 주어진다는 환상이 순리인 양 여겨진 시기였다. 그러나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윤석열 정권까지, 이러한 능력주의와 경쟁주의의 환상은 점차 힘을 잃었다. 능력주의적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여겨지거나, 이미 쟁취했다고 여겨진 이들 다수도 심화하는 경쟁과 노동유연화를 피하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일부 학생들은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품고, 경쟁구조를 철폐하자고 나섰다. 경쟁구조 편입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소수자·약자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와서 싸우게 되었다.

     

    극우진영은 이들을 ‘탈정치’ 담론으로 찍어 누른다. 소수자, 약자, 차별, 체제를 언급하기만 해도 과도하게 ‘정치적’이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낙인찍는다. ‘정치’라는 단어는 이렇게 오염되어 왔다. 이들에게 이미 존재하는 구조, 체제, 이데올로기를 수호하는 것은 정치적이지 않고,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정치적이다. ‘정치적 갈등’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능력을 길러야 할 대학생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본질은 점점 붕괴하는 능력주의와 경쟁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과 도전을 봉쇄하는 억압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탈정치 담론은 ‘위’를 공격하지 않게 하고, ‘아래’는 외면하는 흐름을 형성하는 데에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점차 캠퍼스의 학생들은 자신을 경쟁하게 하는 체제, 이를 부추기는 국가와 자본을 내면화하고, 차별 등의 문제로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아예 경쟁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소수자, 약자의 싸움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력해진 우파적 흐름은 진보진영을 아직 완전히 붕괴시키지 못했다. 계엄 이후 청년들, 그리고 캠퍼스의 학생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저항력과 결집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몇몇 대학에서는 다시 학생자치를 복원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폐지 공세에서 살아남은 학생자치기구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 각자만의 능력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학생들의 지지와 동참을 기반으로 부활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경유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크고 작은 모임과 스터디가 캠퍼스 곳곳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학생자치기구가 폐지되고, 중앙 동아리가 재등록을 거부당하고, 개개인의 정치적 목소리가 억압당해도, 이를 비판하는 학생들의 성명과 연대 활동 또한 이어지고 있는 것 역시 중요한 변화이다. 이러한 흐름은 비록 미약해 보일지언정 탈정치 담론이 완성될 수 없다는 증거이자, 캠퍼스 내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능성이다.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학생회장은 개인 명의 대자보에서 문과대학 인권복지위원회를 신설한 이유로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의 ‘과도한 정치적 행위’를 언급했다. 해당 대자보는 학생자치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으며, 학생회는 단순한 ‘복지기구’로 전락했고, 이는 학생들의 학생사회에 대한 참여가 저조하며 각자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복지기구도, 정치적 활동도 학생자치의 적절한 길이 아니라면 그 중도의 길은 어디 있는가? 캠퍼스 내 모든 학생의 동의를 얻는 정치적 활동은 없다.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정치적 활동이 허용되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캠퍼스를 만드는 것이 학내 구성원들의 진정한 ‘참여’를 가능케 하는 길이다.

     

     

    정치적 활동이 가능한 대학을 향한 싸움이 학내 구성원들의 학생사회에 대한 참여와 관심을 확대할 수 있다. 탈정치 담론에, 자본주의 체제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아가 탈정치 담론과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목소리 높이고 싸워야 한다. 동아리, 학회, 학생회, 노학연대 활동, 캠퍼스 경계를 넘어서는 연대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서자. 어떤 정치적 행동이든 시도해보아야 한다.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정치적’ 행위를 더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캠퍼스에, 가까운 캠퍼스에 스피커와 확성기를 대자. 방식과 규모는 당장에는 중요하지 않다.

     

    [참조]

    - 대학가에 불어닥친 ‘급진화된 보수주의’ (시사IN, 김다은 기자)

    - 극우 집회서 마이크 잡고 윤어게인‥몇 달 뒤 충북대 학생회장? (MBC, 김은초 기자)

    - 충북대 총학 선거 후폭풍, 학생총회 소집 운동으로 확산 (충청리뷰, 최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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