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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자에겐 퇴직금 안 준다는 헌재, 구조적 성차별 못 박다소위 ‘집안일’로 불리는 가사노동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가사노동은 그 양과 종류도 엄청나다. 가전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모친이나 아는 여성에게 의존하거나 사람을 부른다. 이런 일자리는 과거 가정부, 파출부란 이름으로 불렸고 여성노동자는 하녀처럼 일했다. 1990년대부터는 인력업체나 플랫폼자본을 통해 가사노동자가 공급된다. 그렇게 고용된 가사노동자의 규모는 약 60만 명이며, 그중 여성 비율은 98.4%다. 이러한 가사노동은 수많은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생계가 달린 일자리다. 각종 가사노동 플랫폼 그런데 11월 2일 헌법재판소는 한 가사노동자가 ‘퇴직급여법 적용대상에서 가사노동자를 제외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3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가사노동자 역시 다른 노동자들처럼 고용주에게 노동력을 파는 임금노동자고, 그러면 응당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가사노동자의 퇴직금은 꿍쳐도 상관없다는 이상한 법이 합헌이라고? 자본가계급의 엘리트인 사법부 헌재 재판관들은 가사노동이 사적 공간에서 하는 노동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한다. 법도 이상한데, 이를 합헌으로 본 헌재의 사유 역시 이상하다. 그러면 한번 따져 보자. 과연 헌재의 판단 근거대로라면 ‘사적’이지 않은 일터가 있는가?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그로부터 나오는 경영권을 신성시한다. 대부분의 일터는 개별자본가가 사적으로 소유한 공간이며 노동자는 그 공간에서 일한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노동이라는 본질은 같다. 그런데 왜 가사노동자의 퇴직금만 차별해 이들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법이 합헌이란 말인가? 여성의 가사노동과 여성 가사노동자 자본가계급은 노동력 재생산에 꼭 필요한 가사노동을 노동계급 여성에 내맡겨 노동착취도를 높여왔다. 여성은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주부, 아내, 어머니로서 다시 가사노동을 도맡아 이중삼중의 착취와 억압을 당한다. 자본은 성별 노동분업을 고착해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성차별을 강요했고,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철저히 외면했다. 가사노동이 사회의 일자리로 만들어져도 이 자리는 다시 여성노동자로 채워졌다. 그리고 여기에 ‘성차별’은 당연한 듯 뒤를 따랐다. 더구나 가사노동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차별과 착취를 당해왔다. 근로기준법은 제11조(적용 범위)에서 가사노동자를 제외한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도 제3조(적용범위)에서 가사노동자를 제외한다. 근로기준법 제정 69년 만인 올해 6월 16일부터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노동자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가사노동자의 권리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가사노동자에게 적용한 방식도 아닐뿐더러, 고용노동부장관의 인증을 받은 플랫폼 자본, 개별자본에 고용된 가사노동자 일부만 법적 보호를 받게 했을 뿐이다. 구조적 성차별 못 박은 헌재 결정 사법부는 이번 판결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법·제도의 형식적 평등조차 스스로 걷어찼다. 헌법 32조4항에도 ‘여자의 근로는 …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은 노동법 적용도 받을 수 없는 온전하지 못한, 하등의 노동이라니. 헌재는 가사노동에 대한 차별을 깨뜨려서는 안 될 전통과 원칙으로 삼았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의 행보에 발맞추어, 보란 듯이 구조적 성차별을 공고히 한 것이다. 헌재는 수많은 가사노동자에게 빼앗긴 노동권을 되돌려줄 생각이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대부분의 가사노동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노동자 착취를 증대해 자본에 더 큰 이윤을 선사하는 결정이다. 또 저들은 ‘가사노동=여성노동’이란 등식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저평가하는 성별 분업을 더욱 고착화했다. 가부장제적 억압을 꾀하고 남성우월주의의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행태이다. 사진: 민주노총 초과착취에 고통받는 여성노동자와 단결하자 이번 결정을 ‘몇 년 집안일 봐주던 도우미 여사님이 퇴직금을 날렸다’고 읽거나 ‘집에 오는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퇴직금을 안 줘도 돼서 다행’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을 바라고 성차별을 포함한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노동자라면,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위해 나서자.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 필수적인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이 차별적인 구조에 맞선 싸움의 주체가 되자. 가사노동이 이 사회구조로부터 차별당하고, 여성노동이 차별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 남성우월주의를 내면화할 것을 강요하면서 성별로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데 휘둘리지 말고 우리가 빼앗긴 몫, 권리를 함께 되찾자. 자본가계급과 국가기구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써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재생산한다. 그러나 사회적 가사노동을 책임져야 할 국가, 자본가계급의 책임 회피와 노동자의 분열, 성차별 강화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도 허락하지 않는 체제에 분노하고 초과착취에 수없이 고통받아온 여성노동자와 단결하자.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라. 가사노동을 국가가 책임지고 사회화하도록 요구하자. 성별 노동분업, 여성 차별과 억압을 촘촘히 살피며 단결투쟁으로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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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에서 이제 레카비 차례인가!이란 시위에 연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모임 소통방에서 10월 18일 오전 긴박한 소식이 공유됐다. 서울에서 열린 2022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이란 선수가 히잡을 벗고 결승전에 출전했는데, 여권과 핸드폰을 압수당한 채 납치당했다는 페르시아어 버전 비비시(BBC) 기자의 트윗이었다. 어찌 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정의를 위해 행동한 선수가 납치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Breaking via BBC Persian Iranian sport climber Elnaz Rekabi who competed without the Islamic headscarf at the International Federation of Sport Climbing's Asian Championships in Seoul on Sunday has gone missing. https://t.co/GlIMasCVAN — Megha Mohan (@meghamohan) October 17, 2022 [BBC 기자 Megha Mohan이 레카비 선수의 실종에 대해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10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클라이밍 대회에 이란 선수 엘나즈 레카비(Elnaz Rekabi)는 히잡 착용을 거부하고 결승전에 출전했다. 목숨을 걸고 히잡 착용을 거부한 선수의 영상은 이를 지지하는 세계인들의 손에 의해 퍼져나갔다. 이란 민중은 애초 레카비 선수가 도착할 예정일이었던 수요일에 맞춰 그가 공항에서 체포당하지 않도록 집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18일 새벽 난데없이 “SOS”가 타전되었다. 결승전을 마친 레카비 선수가 강제실종되었고, 여권과 핸드폰을 압수당했다는 것이다. 이란와이어(Iranwire)는 단독 보도로 그녀가 이란의 공항에서 곧바로 에빈교도소로 보내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법무부와 출입국은 상황을 확인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주한이란대사관은 트위터에 공지글을 올려 현재 레카비 선수는 무사귀환했으며, 납치되었다는 소식은 모두 가짜 뉴스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현재 레카비 선수의 행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란의 지지자들은 그의 소식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Ms. Elnaz REKABI, departed from Seoul to Iran, early morning of October 18, 2022, along with the other members of the Team. The Embassy of the Islamic Republic of Iran in South Korea strongly denies all the fake, false news and disinformation regarding Ms. Elnaz REKABI. pic.twitter.com/053pFWs96m — Iran embassy in Seoul (@IraninSKorea) October 18, 2022 [이란 대사관이 레카비 선수의 실종에 대해 '모두 가짜 뉴스'라고 부인하는 트윗을 올렸다] 우리는 이란 정부의 만행에 분노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방관과 선수를 보호하지 않은 대처를 규탄한다. 히잡 때문에 이란 정부는 마흐사 아미니를 살해했다. 분노한 여성으로부터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여성억압에 맞서, 부당한 권력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한 달간 시위에서 최소 200여 명이 살해당했지만, 시위는 파업으로, 항쟁으로 커지고 있다. 15일 정부가 체포한 시위대를 구금한 에빈교도소에서는 정부의 방화로 의심되는 불이 나 8명이 죽고 60여 명이 다쳤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엘나즈 레카비가 히잡을 벗어 던진 것이다. 목숨을 건 저항이 세계로 방송되었다. 분명 이란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이란 시위의 정당성과 연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자 이란 정부가 한국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납치해 끌고 가는 강경탄압을 자행했다. 그가 갇힌다면 그의 생명 역시 위험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한국 정부가 모를 리 없다. 한국 정부는 국제인권협약 대부분에 가입했고 윤석열은 ‘인권’을 강조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국제대회 개최국으로서 모든 상황을 소상히 살피고 있었는데도 국제사회를 향해 강력한 저항의 성명을 타전한 레카비 선수를 보호하지 않았다. 심지어 출국까지 방관했다. 정말이지 자본가 정부에게 인권은 권력 앞의 티끌과 같다. 우리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한 명의 여성이 죽임당하도록 둘 수 없다. 이란의 여성억압과 부당한 권력, 가로막힌 자유는 한국의 노동자 민중의 처지와 다를 게 없다. 이란 정부와 한국 정부를 규탄한다. 이란 여성과 민중의 시위에 연대하자! 이란 노동자민중의 시위를 주위에 전하고, 이란 시위 소식뉴스에 지지한다는 댓글을 달자. 온라인 인증샷 등 다양한 연대행동에 참여하고 주위를 조직하자. 여성억압에 맞선 국제연대는 이란 민중과 함께 우리의 권리 역시 키워나갈 것이다. [레카비 선수의 행동을 지지하는 예술 작품들이 이란 현지에서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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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재벌의 병원에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싸우고 있다현중 재벌의 병원 현대중공업 재벌은 재단을 달리하는 9개의 대형병원을 운영해 배를 불리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강릉·보령·영덕 등 지방 도시의 아산병원, 울산대학교병원 등이다.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서울아산병원(보건의료노조), 울산대학교병원(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두 곳뿐이다. 해당 사업장에는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노동조합도 있는데 서울아산병원은 복수노조고, 울산대병원은 단일노조다.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울산대학교병원은 공공병원이 하나도 없는 울산광역시에서 지역거점병원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환자도 많고 국가와 울산시의 지원금도 많다. 작년에는 코로나19지원금 등을 보태 무려 500억 원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울산대병원은 모든 인력을 최소한으로 운영하고 고강도 노동, 낮은 임금을 강요하기로 유명하다.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갑질은 더하다. 장례식장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기 전, 병원 관리자는 당연한 듯 ‘해장라면 좀 끓여와라’, ‘체육행사 때 수육 삶아라’ 등 부당한 업무를 시켰다. 자본 대 노동조합 자본은 장례식장이 직영이라고 홍보하지만, 식당과 청소업무를 용역업체로 운영해왔다. 청소, 장례식장 식당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 울산대학교병원 민들레분회로 단결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외쳤다. 자본에게는 노조가 눈엣가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단결을 방해하고, 양보를 종용해 민주노조를 종이호랑이로 만들려 애쓰고 있다. 올해 3월 1일, 자본은 결국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8명에게 해고의 칼날을 휘둘렀다. ‘장례식장 식당에 입찰하려는 용역업체가 없다. 기존 업체와 계약이 종료되고 새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으니 나가라’며 출입을 금지했다. 용역업체의 무입찰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등 해고와 함께 민주노조를 파괴하려는 공격이었다. 십 수년간 일해온 일터, 병원의 필수업무에서 노동자들이 정말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해고에 맞선 투쟁 봄에 시작한 투쟁이 여름을 지나, 이제 아침저녁 찬바람을 가르며 여성 노동자 4명이 8개월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동지들이 울고 웃으며 말한다. “사측은 ‘아줌마들이 뭘 하겠어?’ 했겠지. 우리뿐이었다면 그 말이 맞았을 수 있겠지만, 아니다! 우리는 연대하고 또 투쟁한다.”, “투쟁 과정에서 열사들에 대한 교육을 받고, 여러 사업장에 연대하며 부끄러웠다. 왜냐면 우리 투쟁이 제일 큰 줄 알았고, 우리가 제일 힘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대를 몸소 겪으며 배웠기 때문에 끝까지 연대할 거다.” 같은 현대중공업 자본에게 해고당한 현중사내하청지회 서진노동자들이 울산대병원 장례식장 노동자들과 한 몸처럼 연대하며 투쟁하고 있다. 연대의 한 끼를 위해 써내려간 글 장례식장 해고노동자들의 눈에 번쩍 띈 게 있었다. 바로 ‘노동조합체험수기 공모전’이었다. 시나 생활글을 출품해 당선되면 상금을 주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행사였다. 해고노동자들은 글을 써서 상금을 받으면 연대한 동지들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자, 계속 싸울 테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꼭 밥 한 끼를 사겠다는 목표로 글을 썼다. 소중한 마음, 뜨거운 투쟁의 글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하게도 ‘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도 글을 보내주셨다. ‘아줌마’가 아니라 당당한 노동자로 싸우는 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연대하자. ----------------------- 희망의 다른 이름 연대투쟁 _ 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민들레분회 해고자 황미정 늘 평범하고 별다를 게 없던 소소한 일상에서 어느 날 우리에게 던져진 자본의 돌팔매질은 잔잔한 호수 같은 삶의 파장이 되어 투쟁이라는 낯선 세상 속으로 걸어가게 되는 통로로 험한 길을 걸어가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장난으로 던지는 돌팔매질에 개구리는 목숨을 잃는다고 했던가요? 사측의 치졸한 계획으로 인한 집단해고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022년 3월 1일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야속한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삼일절 공휴일이면서 창립기념일이었습니다. 휴무 날임에도 우리는 평소대로 출근했고, 활기찬 발걸음은 출입문 앞에 붙은 출입금지 딱지 한 장으로 우리가 바라던 평범함은 무참히 깨져버렸습니다. 몇 년을 출입하던 문이 그처럼 높게 보인 적이 있었는가 싶었습니다. 소지품 한 점도 챙기지 못한 채 쫓겨난 그곳은 더 이상 나의 직장도 땀으로 일궈낸 내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사전에 어떠한 해고통지도 없었고 누구도 우리에게 해고를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닥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덤덤했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루어 짐작도 할 수 없으므로 불안감이나 주저함은 없었고, 펼쳐진 상황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우스운 코미디를 보는 양 웃음마저 나왔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해고를 인지 못 한 무지함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우리의 투쟁의 첫날은 시작되었습니다. 장례식장 로비에 깔고 앉은 돗자리 한 개가 농성장의 시작이 되었고, 2주일이면 해결될 거라는 지나가는 말을 믿고 싶었는지 사뭇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는 험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고된 투쟁의 시간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마음만 앞서고 요령은 부족하니 일단은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보았습니다. 하루 8시간의 투쟁의 시간은 서툴고 초보인 우리에게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피켓을 들고 서 있어서 다리는 퉁퉁 붓고 집에 가면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으니 가족들마저 피폐해졌습니다. 그런 생활의 연속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충돌이 되고 울타리 없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투쟁으로 지친 육체와 정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면서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이탈자가 생기면 서로 질책하고 원망하다 보니 투쟁의 시간보다는 내부 트러블의 고통으로 힘들어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강요하거나 지시한 적 없지만 급한 마음과 요령 부족으로 멀리 보는 안목도 없이 지친 심신을 달랠 줄도 몰랐습니다. 돌이켜보니 이 또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간부님들의 조언과 격려는 숨을 쉬게 하는 숨구멍이 되었고 숙련되고 노련한 대처는 투쟁을 계속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질 무렵 사측에게 업무방해와 퇴거불응 그리고 소음 관련으로 고소를 당하고 5시간이 넘게 받은 경찰 조사는 자존감마저 무너지게 했습니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서 생각도 안 나는 질문에 조사를 받으며 이 길이 옳은 길인가 생각도 해봤습니다. 살면서 죄짓고 살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고소를 당할 일이 생길 줄 어찌 예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무너질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워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힘을 줄 계기가 절실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수요집회. 매주 수요일 5시에는 본관 앞에서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 서울에서, 대구에서, 구미에서, 거제에서 전국 여러 곳에서 오로지 우리만을 위해 연대를 오는 동지들이 목청껏 외쳐줍니다. ‘해고를 철회하고 직접 고용하라’ 울분에 찬 부르짖음은 투쟁의 힘이 되고 동지애의 뜨거움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그 감사함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쏟아져 내리는 눈물도 지금은 사치라고 여깁니다. 해고 투쟁 초기에 쑥스러움으로, ‘투쟁’ 소리도 못 할 때 붉어진 낯빛으로, 고개 못 들던 수줍음은 발언문을 줄줄 읽고 목청껏 노동가요를 부르는 다부짐으로 성장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다섯 시는 우리를 충전하는 선물 같은 시간으로 집회의 벅찬 감동은 일주일을 버티는 힘이 되어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줍니다. 동지들의 연대는 무한 감동이고, 무한에너지로 투쟁 의지에 불을 붙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주춤할 때도, 구사대의 탄압과 억압 앞에 무너질 때도, 세상의 끝에 홀로 선 것 같은 외로움 앞에서도 동지들의 연대투쟁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했던가요? 일류는 아니더라도 삼류는 되지 말자는 심경으로 오늘의 투쟁에 최선을 다합니다. 오늘 아파해도 우리는 내일 또 일어설 것이라 믿기에 비빌 언덕 같은 동지들 염원으로 투쟁의 시간은 계속됩니다. 우리는 장례식장 조리사입니다 _ 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해고자 박선옥 우리는 장례식장 조리사입니다 다녀갈 사람들이 너무 슬프지는 않게 혹은 마음껏 울 수 있게 따뜻한 밥과 국을 내어놓습니다 밥 한술에 망자(亡者)의 길을 비추고 국 한 그릇에 남은 이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우리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떠나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변한 것 또한 없습니다 우리는 장례식장 조리사이고 싶습니다 페이스북에 의견 남기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