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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ubc울산방송은 노동탄압 중단하고, 이산하/손민정 노동자와 방송비정규직의 온전한 노동권을 보장하라!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ubc울산방송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탄압에 맞선 투쟁이 이어지며 지난 5월 17일에는 지역대책위원회 주최의 도심 선전전과 ubc울산방송 규탄집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비정규직이제그만 부산울산경남 모임과 방송을만드는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 현대차 원하청노동자, 현중사내하청노동자, 현대글로비스지회, 울산지역시민사회단체 등 22개의 연대 단위는 ubc울산방송에서 9년을 일하고도 아직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 한 장을 쓰지 못한 채 부당전보, 초단시간 노동강요, 직장내 괴롭힘 등 사측의 갑질에 맞서 싸우는 이산하 아나운서, 손민정 CG 동지와 함께했다. 전진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방송 노동자만 할 수 있는 희망찬 공연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듣고 싶은 뉴스’진행이었다. 9년간 일하면 온갖 뉴스, 날씨방송, 라디오 진행, 행사 진행, 취재 등으로 잔뼈가 굵은 이산하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았다. ‘편집요원’으로 부당전보 당한 후 “올해 처음으로 하는 뉴스”라고 말한 이산하 동지는 ‘방송국은 방송국 뒤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해주지 않는다’며’ “진짜 뉴스”를 직접 전해주겠다고 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듣고 싶은 뉴습니다. ubc울산방송이 개인을 상대로 수년째 괴롭힘과 보복 갑질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마침내 ubc울산방송은 부당전보를 철회하고, 온전한 노동자성을 인정한 8시간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며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정환 사장은 결국 모든 책임을 지고 사과했으며, 다시는 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ubc울산방송의 결정이 방송 현장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뒤를 이어 수만 명의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노동권을 쟁취한 뉴스와 드라마-영화-OTT노동자들이 공동투쟁을 벌이고 여기에 작년에 파업했던 미국 할리우드 배우, 작가, 스태프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소식까지 이어졌다. 집회에서 아나운서 동지가 생방송으로 전한 ‘우리가 듣고 싶은 뉴스’에 참가자들은 연신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무대막에는 아나운서 이산하, CG 손민정이라는 엔딩크레딧이 선명하게 쓰여있었다. 우리는 하루빨리 ubc울산방송 스튜디오에서 직접 이산하, 손민정 노동자가 현실에 된 ‘우리가 듣고 싶은’ 뉴스를 진행하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함께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이 투쟁에 연대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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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노동자들 ‘무늬만 프리랜서’, ubc울산방송의 여성 청년노동자와 함께 싸운다!국제여성의날을 이틀 앞둔 3월 6일, 울산에서는 지역민영방송사인 ‘ubc울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ubc울산방송에서 9년째 아나운서, CG디자이너로 일하는 이산하, 손민정 여성 청년노동자는 새벽 2시간 초단시간 노동 강요, 채용시 직종과 전혀 다른 업무로 강제 전보,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 거부 등 ubc울산방송의 착취와 괴롭힘,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들과 손잡기 싸우기 위해 지역의 노동자들이 모여 투쟁을 선포했다. 지역대책위위원회에는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본부,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서영호양봉수열사정신계승사업회, 울산지역해고자협의회, 방송을만드는사람들의이름 엔딩크레딧, 민주노총법률원울산사무소, 노동당울산시당, 울산인권운동연대, 울산이주민센터, 울산북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울산노동인권센터,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등이 참여했다. 대책위 출범은 울산에서 방송 비정규직 투쟁이 처음으로 일어난 점, 그리고 ubc울산방송지부가 노조가입 거부, 사측과 괴롭힘 공조 등으로 이들의 투쟁을 가로막은 상황에서 지역적 연대투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뜻깊다. 얼마전 언론노조가 ubc울산방송지부의 반노동자적 행태에 사과했지만, 아직 현장에서 변한 것은 없으므로 우리는 앞으로 계급적 단결투쟁을 실천할 계획이다. 9년차 아나운서 이산하 노동자는 “무늬만 프리랜서일 때는 정규직처럼 온갖 방송 업무를 다 시키더니 근로자로 인정받은 지금은 ‘너 자리는 없다’고만 말합니다.”, “3년이 넘는 시간을 회사를 상대로 싸우며 혼자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심경을 표현했다. 9년차 CG 손민정 노동자는 “1년 넘게 하루 2시간씩만 새벽에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며 “울산방송의 문제는 현재 전국의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는 부정당하고 현재와 미래는 빼앗긴 기분이 듭니다.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저도 제 자리에서 싸우겠습니다”라고 결의를 밝혔다. ubc울산방송은 괴롭힘, 갑질을 당장 중단하라! ubc울산방송은 온전한 노동권을 보장하라! 울산시는 청년노동자 탄압하는 ubc울산방송 지원 중단하라!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 비정규직 없애고 노동권을 쟁취하자! 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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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울산방송은 이산하 아나운서 노동자성 온전히 보장하라!2024년 1월 18일 오전 11시 울산 민영방송사인 UBC울산방송 앞에서, 프리랜서였던 이산하 아나운서가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한 후 3년간 자행된 사측의 탄압과 갑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산하 아나운서 노동자가 1월 15일부터 1인시위를 시작하면서 급하게 잡힌 일정이었지만, 울산에서 처음으로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선언하는 자리에 당사자 노동자들과 ‘엔딩크레딧’,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민주노총법률원울산사무소, 노동당울산시당, 노동자혁명당(준), 울산비정규직센터, 사회주의를향한전진울산지역위원회 동지들이 참여했다. UBC울산방송은 다른 방송미디어 자본과 마찬가지로 아나운서, CG, 카메라, 음향, 작가, 기자 등 모든 방송노동자를 계약서도 없이 프리랜서나 용역, 파견 등 비정규직으로 소모품처럼 쓰고 버려왔다. 2015년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산하 노동자는 정규직과 다를 바 없이 일하다 2021년 4월 갑자기 해고당했다. 지노위와 중노위가 이산하 아나운서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나서야, 즉 이산하는 UBC울산방송이 고용한 정규직이라고 인정하며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정해 연말에 복직하고서야, 이산하는 ‘노동자’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행정법원도 부당해고라 판정했다. 하지만 UBC울산방송 사측은 이후 3년간 막말은 기본이고, 다른 정규직 노동자와 다른 차별계약서를 내밀고, 프로그램 폐지, 업무축소와 임금삭감, 편집요원으로 부당전보 등 견디기 힘든 괴롭힘과 따돌림, 갑질을 해댔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이산하 아나운서가 용기를 내며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과 함께 연대를 타전했고, 울산 몇 개 단체가 급히 기자회견을 꾸리며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산하 아나운서는 “무늬만 프리랜서일 때는 정규직처럼 온갖 방송업무를 다 시키더니 근로자로 인정받은 지금, 제 자리는 없다고만 말합니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당한 일을 겪어도 말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부당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오히려 보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은 정의를 말하는 곳이고, 저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 보장뿐 아니라, “모두가 온전한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차별 없이 일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정말 바랍니다”라고 외쳤다. 이산하 아나운서 승소 이후, UBC울산방송은 계약서 없이 오랫동안 부려 먹은 프리랜서 중 10명 정도만 무기계약직으로, 그것도 노동조건을 개악해 전환했다. 그리고 무기계약직 전환자 중 CG업무를 하는 손민정 노동자가 부당한 근로계약을 거부하자 또 탄압을 시작했다. UBC울산방송은 업무축소와 임금삭감 등을 자행하며 새벽 2시간 노동만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노동자 역시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너무 억울해서 법으로라도 노동자임을 인정받으려고 했지만, 소송을 한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보복 갑질을 합니다. (중략) 이산하 아나운서의 문제와 제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울산방송의 문제는 현재 전국의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는 부정당하고 현재와 미래는 빼앗긴 기분이 듭니다.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저도 제자리에서 싸우겠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UBC울산방송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백화점이라 불리는 방송계 노동권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이라는 보호막을 갖지 못한 채 소송 등으로 저항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며, 방송사들이 ‘프리랜서’로 사용해온 아나운서, 작가 등 방송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최근 수년간 쌓이고 있다. 방송미디어 자본은, ‘정론직필’은 고사하고 ‘이윤’과 ‘권력’만을 탐하며 법원 판결조차 인정하지 않은 채 정규직과 비정규직 분열을 조장하며 착취와 노동탄압에 열을 올린다. 이산하 아나운서와의 연대투쟁은 방송미디어 자본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이자,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지역 노동자 투쟁 과제로 세우는 소중한 싸움이다. 언론노조 산하 정규직노조는 외롭게 싸우는 이산하 노동자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러나 당사자 노동자들과 엔딩크레딧 등, 1월 18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투쟁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이산하 노동자의 투쟁은 전체 방송노동자 문제, 전체 비정규직노동자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에, 기자회견 참여 단위는 앞으로 지지모임 구성을 확대해 제안하며 1인시위 연대 등 다양한 투쟁을 모색하자고 결의했다. UBC울산방송은 부당전보 철회하고, 온전한 노동자성을 인정하라! 노동탄압 중단하고,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투쟁에 민주노조가 같이 나서자. [기자회견문] UBC 울산방송은 이산하 아나운서 부당 전보 철회하고 노동자성을 온전히 인정하라! 이산하 아나운서는 2015년 울산방송에서 일을 시작해 기상 캐스터, 아나운서, 라디오 진행, 취재기자, 행사 진행 등의 업무를 했고, 2021년 해고되었다. 일하는 동안 계약서를 한번도 쓰지 않은 울산방송은 해고할 때도 해고통지서조차 주지 않았고, 일할 때는 직원처럼 부리더니 자를 때는 프리랜서라며 모든 권리를 부정했다. 또한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소송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복직한 이산하 아나운서에게 3년째 단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프로그램을 폐지했으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편집 업무를 하도록 부당인사발령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이산하 아나운서는 회사가 퍼뜨리는 악의적인 소문과 괴롭힘으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본인의 동의 없이 아나운서를 편집요원으로 업무 변경한 것은 소송으로 인한 보복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매우 부당한 처사이며,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퇴사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국의 수 많은 방송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해고 후 노동위원회와 법원으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있다. 얼마전에도 대법원이 KBS에서 일했던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정규직으로 채용되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방송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방송사들은 경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업무에서 배제시키거나,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 차별하는 등 온갖 꼼수로 법을 어기고 있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ubc울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은 울산방송이 하루빨리 이산하 아나운서의 부당전보를 철회하고, 노동자성을 온전히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산하 아나운서와의 협의를 통해 기존에 담당했던 업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울산방송의 통상근무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주 40시간 일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보장하며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여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조치할 것을 촉구한다. 울산방송은 더 이상 지역사회를 실망시키지 말고 이산하 아나운서 사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더 넓고 깊은 연대를 통해 방송계 비정규직의 실태와 현황을 밝히고, 더 많은 방송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싸워 나갈 것이다. 2024년 1월 18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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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권리의 전진과 후퇴, 2023년에 벌어진 일들스타벅스노조 자긍심 파업. 출처: 레프트보이스 자본가계급은 경제위기와 사회 재생산 위기에 대응하며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다양한 계급 분열책을 구사한다. 그중 하나가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며 성소수자의 권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자본은 세계 곳곳에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며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노골화하거나, 때로는 대중적 저항에 부딪혀 ‘핑크워싱’을 구사하기도 했다. 인간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있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하며, 자본 자신이 나눈 성별 이분법, 정상 가족 잣대로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야만적 탄압이다. 이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분열에 맞서고,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며 민주적 권리를 위해 투쟁할 때만 강해질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2023년 한해 성소수자의 권리 쟁취를 위한 세계 곳곳의 싸움을 돌아보고자 한다. 미국, 500개가 넘는 성소수자 LGBTQ+ 권리 공격 법안 2023년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에 맞선 가장 심각한 전투가 벌어진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보고에 따르면, 발의된 反(반) 성소수자 법안은 무려 508개다. ‘트랜스 입법 추적기(tracktranslegislation.com)’에 따르면 49개 주에서 589개 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집계됐다. 노스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미주리, 텍사스주 등에서는 LGBTQ+,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더 억압적인 법안 중에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에 맞는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법안에 따라 경찰 체포 위협을 받음), 트랜스 여성의 '여성 전용' 공간 출입을 금지하는 법안, 미성년자에 대한 성별확정 치료(호르몬 치료)를 금지하는 13개 이상의 주 법안 등이 있다. 미국 자본가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성소수자와 그 커뮤니티를 수익성 높은 시장으로 삼는 소위 ‘무지개 자본주의’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리고 현재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우파는 트럼프 당선 시 백인 노동자와 유색인종 노동자를 분열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의 권리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공격하며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민주적 권리를 후퇴시키고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이슈를 의도적으로 멀리한다. 이에 맞선 최전선에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와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며 싸우는 노동자 민중이 있다. 이들은 미국 전역의 의회, 학교, 거리 등 곳곳에서 투쟁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커밍아웃을 했고, 특히 Z세대(19세~26세)에서 많이 증가했다. 특히 ‘U세대(유니온 세대)’ 대표주자 중 하나인 스타벅스노조(SBWU)는 성소수자 지지 장식물 금지에 맞서, 또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자긍심 파업(Strike with Pride)’을 벌여 150여 매장을 멈췄다. 이 파업은 자본의 이윤을 타격했을 뿐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독립적으로 노동자계급 단결을 강화할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곳곳에서 매주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노동자들과 많은 성소수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동성애 비범죄화와 가족구성권 아프리카 남동부의 섬나라인 모리셔스(Mauritius)와 남태평양 쿡 제도(Cook Islands) 정부는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비범죄화했다. 모리셔스는 과거 식민지 시대 영국이 도입한 법에 따라 동성 간 애정관계를 범죄로 규정, 최대 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 대법원도 지난 5월 동성애 비범죄화를 승인했다. 나미비아 대법원도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반면 우간다 무세베니 정부는 동성애 금지법안을 제정하고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활동가들은 시위를 이어가고, 일명 ‘게이살해법’에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 67개국은 여전히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한다. 안도라(Andorra)가 동성 결합을 합법화하면서 수백만 명이 평등한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에스토니아에서는 혼인평등 법안이 통과되어 2024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인도 대법원은 동성결혼에 대한 인정을 거부하며, 관련 법을 만드는 것은 의회 몫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도 성소수자들과 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이들은 평등을 위해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다. 일본은 동성결혼을 여전히 합법화하지 않음으로써 성소수자에게 혼인평등권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G7 국가로 남았다. 태국은 동성결혼 합법화 등을 담은 혼인평등법이 12월 22일 하원에서 압도적 찬성(출석 의원 371명 중 360명)으로 통과되어 제정을 눈앞에 두었다. 네팔에서는 LGBTQ+ 커플이 남아시아 최초로 합법적으로 결혼했다. 이탈리아 멜로니 우파 정부는 아이를 직접 출산하지 않은 레즈비언 엄마들의 존재를 자녀의 출생증명서에서 완전히 삭제시키려 한다. 정부는 임신중지권 폐지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백래시에 이탈리아 민중은 거리로 나와 저항하고 있다.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 출전자격이 태어난 성별(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으로만 제한되자, 항의의 표시로 트랜스남성 100여 명이 출전을 신청하기도 했다. 트랜스젠더의 권리와 성소수자(LGBTQ+) 활동의 자유 스페인, 독일, 핀란드, 키프로스와 아이슬란드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소위 ‘전환 요법’ 포괄적 금지조치가 시행되었다. 영국 정부는 성소수자 권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5년 전 약속한 전환치료 금지 입장을 연말에도 내지 않았다. 보수당과 노동당 역시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에 관한 모든 약속을 내던져버렸다. 그러는 사이 우익 언론들은 혐오 조장을 강화하고 특히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을 대립시키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응답자 중 거의 3명 중 2명(60%)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소셜 플랫폼 활동을 접었다고 답했다. 러시아 정부는 성소수자 활동 자체를 ‘극단주의’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따라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개인과 단체 모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튀르키예에서는 정부의 자긍심 행진(Pride Parade) 금지령과 경찰의 연행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권리를 요구하는 행진을 펼쳤다. 독일 의회가 홀로코스트 추모일에 처음으로 퀴어 희생자를 추모했다. 칠레 정부는 동성 부모의 육아휴직에 대한 평등한 접근, 간성 자녀에 대한 불필요한 수술 금지, 전환치료를 수행하는 의료전문가 금지 등을 도입했다. 브라질 정부는 전환치료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의료종사자들에 의해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에서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는 여전히 심각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를 배척해 온 기준을 뒤집고 가톨릭 사제의 동성 커플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출교하고 재판비용 2,860만 원도 청구했다. 동성 부부가 처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는 판결도 있었다. 대구시장은 퀴어 퍼레이드에 행정대집행을 발동했고 서울시장은 광장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성소수자와 그 권리를 옹호하는 노동자 민중의 행진은 2023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2024년에는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더욱 단결하여 전진하는 노동자계급의 걸음을 내디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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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성파업 1] 아이슬란드 -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조직위원회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로라와 화산,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여행을 간 사람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면적의 아이슬란드는 천혜의 자연이 있고 1인당 GDP가 세계 8위인 부유한 나라다. 이보다 더 유명한 점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라는 것이다. 2006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 젠더 격차 보고서’를 보면 아이슬란드는 2023년까지 14년 연속 성평등 국가 세계 1위1)를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여성과 관련해 아이슬란드에 붙는 ‘세계 최초’의 수식어가 한둘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성 대통령(1980년)’, ‘세계 최초로 의석을 얻은 여성정당(1983년)’, ‘세계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대통령(2009년)’ 등이 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27년째 여성의 저임금으로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 견주어 보면 아이슬란드는 마치 다른 행성인 듯하다. 1) Global Gender Gap Report. 남성과 여성의 권익을 비교하는 통계로 임금, 교육, 의료 등 분야를 기준으로 남성의 권익을 1로 두고 여성의 권익을 계산한 지수. 조사대상 146개국 중 0.9를 넘는 나라는 0.912를 기록한 아이슬란드 하나뿐이었다. 한국은 105위로 0.680. 이러한 나라에서 최근 국제적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있었다. 2023년 10월 24일, 성인 여성의 90%가 온종일 ‘여성파업’을 벌인 일이다. 성평등 모범 국가로 국제적 부러움을 사는 아이슬란드에서 거의 모든 여성이 파업했다니 놀라운 뉴스다. 무엇 때문일까?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파라다이스라 불리지 않는가? 파업 참가 여성들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여성파업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차별과 억압, 저항의 역사를 살펴보자. 사회를 뒤흔든 1975년 10월 24일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2023년 현재 인구 약 39만 명인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무인도였던 시기를 지나 870년경 바이킹이 세운 나라다. 과거부터 남성이 바다에 한참 동안 나가 고기를 잡고 여성은 사냥부터 농사일, 모든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 정치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달리 보수 우파(우파 연정)가 정권을 잡아 왔다. 경제는 척박한 환경 탓에 비교적 더디게 성장했다. 여성들이 다닐 수 있는 일터는 생선 공장 정도였다. 아이슬란드에서는 1915년부터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고, 1931년에는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 임신중지가 합법화됐다. 국제노동기구(ILO)의 8대 기본협약 중 하나인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근로자의 동일보수에 관한 협약(1951년)’을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58년에 비준했다. 1961년에는 평등임금법(Equal Pay Act)을 제정했다. 겉으로 보면 여성의 권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고 그만큼 차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1915년부터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지만 60년간 의회에 진출한 여성은 단 9명에 불과했다2). 무엇보다 생산과 재생산 노동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1960년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 대비 60% 미만으로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에 시달렸다. 특히 여성이 많은 직종의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했다. 가사와 돌봄 노동은 순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34%에 수준에 그쳤다. 여성은 집 안에서 온갖 무급 재생산 노동을 하느라 직장에서 일할 수 없었고, 일해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과 나쁜 노동조건에서 차별당하며 일하다 퇴근해서 다시 가사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게 대부분 여성의 일상이었다. 여성은 법과 다른 현실에서 살아갔다. 2) 1975년 기준 여성 하원의원은 전체 의석의 5%인 3명이었다. 그러다 68혁명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국제적 저항 운동의 물결이 아이슬란드의 여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여성들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거대한 노동자 투쟁, 학생운동, 사회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의 성장과 여성해방 사상 등에 영향을 받으며 여성운동을 성장시켜 갔다. 여성 차별과 억압의 현실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문제의식을 갖고 저항을 통한 변화를 꾀했다. 1970년대가 되자 5대 여성단체의 회원 수가 전체 여성의 3분의 1에 이르렀다. ‘레드스타킹스(Redstockings)’는 여성단체 중 하나였다. 레드스타킹스는 1970년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단체로 노동절인 5월 1일 빨간 스타킹을 신고 ‘인간이다! 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행진하며 대중 앞에 등장했다. 레드스타킹스는 20~30대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었으며 자본주의에 맞서는 계급투쟁과 여성해방의 과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정치적 입장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들은 성별 임금 격차 해소, 직장 내 젠더평등 등 노동의 권리와 임신중지권, 유치원 돌봄의 확장 등 재생산권을 위해 투쟁했다. 1970년 첫 총회에서부터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을 안건으로 제출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여성의 주체적 파업투쟁으로 깨뜨리자는 정치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5년 후 그 목표는 현실이 되었다. UN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3)로 지정했다. 이를 준비하는 1974년 6월 여성단체 간담회에 초대받은 레드스타킹스는 그 자리에서 ‘여성파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거절당했고 그 후 이들은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1975년 1월에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을 찾았다. “여성이 일터에서의 노동력과 가정에서의 재생산 노동의 힘을 세상에 보여 주기 위해 1년에 하루, 모든 여성이 파업을 벌이자!” 레드스타킹스의 제안에 여성 노동자들이 열광했다. 3) 유엔은 1975년 '세계 여성의 해' 기간의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레드스타킹스와 노동조합은 더 많은 여성 노동자를 만나며 여성파업을 조직했고 아래로부터 긍정적이고 상당한 여론과 지지를 만들어 갔다. 5월 총리실 주관으로 열린 세계 여성의 해 운영위원회는 그 구성에 노동조합과 레드스타킹스를 포함시켰다. 이 기구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 정치적 입장의 참여와 합의를 우선해 여성파업 제안을 수용하면서 그룹별 대표자, 교사 노동자, 미혼모 등 8명의 이름으로 여성파업을 정식 상정했다. 노동자는 일터에서 일손을 놓거나 휴가를 쓰고, 자영업자는 문을 닫거나 가게에서 나서고, 전업주부는 집안일에 손을 떼기로 했다. 그러자 일부 우파 여성과 여성단체가 반발했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 행동으로 사업주에게 해고될까 봐 걱정된다는 핑계를 대며 ‘파업’의 급진성에 반대했고 결국 위원회는 ‘파업(Strike)’ 대신 ‘휴일(Day Off)’로 변경해 합의에 이르렀다. 모든 노동조합이 협력해 날짜를 10월 24일로 정했다.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열린 여성회의에서 아이슬란드 말로 '크베나프리(Kvennafri)'라고 부르는 10월 24일의 선언문4)을 채택하며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파업이 결정됐다. 이날을 주도한 세력이 모두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급진적이지도 않았지만, 모든 세력이 결집하면서 더 많은 여성이 이날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홍보물에 실린 ‘여성 휴일(Women's Day Off)’을 ‘여성파업(Women's Strike)’이라고 불렀다. 4) [전문] 1975년 10월 24일 선언문 1975년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여성 회의(Women's Congress)는 여성이 해온 일의 중요함을 보여주기 위해, 다가오는 유엔의 날인 10월 24일 하루 '데이 오프'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왜 이러한 제안이 모든 연령의 여성들과 정당들이 모인 의회에서 발의되고 가결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많지만 여기에 먼저 몇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 누군가가 형편없을 정도로 보수가 적은 직업을 필요로 할 때, 그 구직 광고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통상과 무역에서 여성의 평균 임금은 같은 직종의 일을 하는 남성의 평균 임금의 7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아이슬란드 노총(Icelandic Trades Union Congress) 산하의 주요 노동조합에는 여성 대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 차이가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30,000(한화 약 270,000원)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부의 아내들은 농부 노조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인 여성들에게 흔히 "가사노동은 일이 아니라 그저 하우스키핑(가사유지)에 불과"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보육원이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권위 있는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장에서 농부 부인의 노동 기여도는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1년에 175,000(한화 약 1,600,000원) 이상으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취업지원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개인의 교육 수준이나 역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의 가사노동 경력은 노동 시장에서 그 어떠한 가치로도 고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지역사회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10월 24일에 '데이 오프'함으로써 여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국제 여성의 해에 이 '데이 오프'의 날을 기념할 만한 날로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합시다. 평등, 발전, 평화 1975년 10월 24일, 직장에서 집에서 여성들이 일제히 일손을 놓았다. 여성의 90%가 파업에 참여했다. 여성이 멈추자 사회가 멈췄다. 거의 모든 교사가 여성인 보육원이 문을 닫았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65%가 여성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휴교했다. 주로 아이들이 이용하는 기관도 문을 닫았다. 각종 상점과 가게가 문을 닫았다. 생산가공 공장이 멈췄다. 전화 서비스가 중단됐다. 우체국 업무가 멈췄다. 남성 항공기 조종사는 있었지만, 승무원이 없어 항공사 여객기 운항이 중단됐다. 은행원이 없어 임원들이 커피를 직접 끓이고 창구업무를 봤다. 조판공이 대부분 여성이라 신문이 발행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는 남성 아나운서와 스태프가 남아 여성파업을 보도했다. 남성 디제이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는 여성이 작곡했거나 여성을 위한 음악 사이로 어린아이가 노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농촌의 여성파업 상황을 묻기 위해 디제이가 시골 마을 청취자의 집에 전화를 걸자 아이를 돌보던 남성들이 전화를 받았다. 여성 공연자가 없어 공연도 줄줄이 취소됐다. 여성이 멈추자 세상이 멈췄다. [사진: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집에서도 여성이 일을 멈추니 남성들이 집안일과 육아, 가족 돌보기를 해야 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거나 아예 직장에 나가지 못했다. 고용주들은 아이들에게 제공할 과자와 사탕, 연필과 종이를 사다 날랐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남성들은 문을 연 가게를 찾아다녔다. 마트에는 조리가 편리한 소시지와 과자가 일찌감치 품절됐다. 저녁이 되자 주택가 거리마다 연기와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남성들이 식사를 준비하며 음식을 태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첫 여성파업 집회는 오후 2시 5분에 시작됐다. 2시 5분은 당시 일터에서 남성과의 임금 격차를 비교해 여성 노동자의 유급노동이 끝나는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다. 여성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수도 레이캬비크에 있는 렉자르토르그 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여성 인파로 가득 찼다. 광장 인근 거리와 골목까지 여성들이 가득 메웠다. 처음 열린 여성파업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2만 5,000명에서 3만 명으로 당시 인구의 무려 10%가 넘는 규모였다.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많은 여성이 같은 시간에 여성파업 집회를 열었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유치원을 늘려라”,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라”, “성폭력을 멈춰라” 등 여성들은 사회를 향해 누구보다도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어 올렸다. 여성단체 활동가, 여성 노동자, 전업주부 등이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 억눌려 온 현실과 권리를 주장했다. 마지막 연사는 54세의 비정규직 가사 노동자 아달헤이두르 비얀프레드스도티르(Aðalheiður Bjarnfreðsdóttir)였다. 그는“여성들이 깨어나고 있다. 여성은 먼 옛날부터 남성이 세상을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세상은 어땠을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긴밀하게 협력해 여성 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때 세상은 바뀔 것이다5)”라는 연설에 수많은 사람이 감명받았다. 참가자들은 여성 노동의 거대한 힘을 공감하며 여성 차별과 억압을 없애기 위한 평등과 권리를 당당히 외쳤다. 파업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남성들은 이날이 하도 길게 느껴져 ‘긴 금요일’이라고 불렀다. 5) https://kvennasogusafn.is/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역사기록보관소 여성파업이 일으킨 물결 단 하루였지만 여성파업은 여성 노동이 얼마나 크고 강력한 것인지를 사회에 선명히 각인시켰다. 남성의 눈을 뜨게 했다. 특히 여성파업의 조직 과정에서부터 여성 노동자가 중심 역할을 하며 힘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기업의 자본가들이 휴가나 파업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할 수 없었다. 사회 구성원의 절반인 여성이 노동을 멈추자 사회가 덜커덕 멈추는 장면을 보면서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느꼈을 감격과 자신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여성들은 파업을 통해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와 힘을 스스로 발견했고 여성이 직접 나서서 차별과 억압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여성파업의 대오를 함께 이룬 세력들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연대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같이 싸워 갈 힘을 얻었다. 사회는 여성파업에 응답해야만 했다. 여성파업이 있기 전 정치인들은 여성 노동자가 요구하는 하루 8시간 공공보육 시스템에 대해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여성파업의 힘을 경험한 후 정부는 2세부터 미취학 아동의 보육을 8시간 담당하는 유치원법을 제정했다. 1976년에는 직장과 학교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최초의 성평등법(Gender Equality Act)6)이 제정됐고 성평등위원회가 구성됐다. 법 조항 중 하나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 가치의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유급 출산휴가가 보장되고, 제한적이던 임신중지권이 확대됐다. 6) 아이슬란드정부 자료 https://www.government.is/ 8시간 공공보육이 시작되자 육아를 떠맡던 여성이 유치원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고 가사도 남성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여성이 집안에서 벗어나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났고 다양한 사회진출이 가능했다. 단 하루 파업으로 여성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 찬 사회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었지만, 젠더평등으로 나아가는 ‘분수령’이 된 것임은 틀림없었다. 여성파업의 파장은 아이슬란드 국경 밖으로도 퍼져 나갔다. 북미와 유럽의 언론들은 스포츠 중계를 하듯 10월 24일 여성파업을 보도했는데 수많은 여성이 이 소식에 감격했다.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파업이라는 방식으로 폭로하고 저항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국제 여성운동에 큰 영감을 주었다. 미국에서 1975년 10월 29일, 전미여성기구가 주도한 미국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일본에서도 1975년 11월 3일, 여성들이 파업위원회를 조직했다. 1991년 6월 14일, 스위스에서는 여성들이 불평등에 항의하며 첫 여성파업을 벌였다. 폴란드에서 2016년 10월 3일,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막기 위해 ‘검은 월요일’이란 이름으로 파업에 나섰고 노동조합과 남성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아르헨티나에서 10월 19일 임신중지권 보장과 페미사이드에 맞서는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2017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약 50개 국가 여성들이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에 영감을 얻은 국제 여성파업을 개최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 분위기가 강했던 탓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심했다. 유명한 가수가 커밍아웃한 후에 이민을 떠나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여성파업 운동 이후 변화한 젠더평등 인식을 따라 성소수자 운동도 성장했다. 사회적으로 점차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대신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더 크게 여겨졌다. 사회 제도적 변화도 가져왔다. 1996년 동성 간 결혼과 권리에 대한 법이 제정되어 동성 파트너의 제반 권리가 인정됐고 2006년 자녀양육 등에 이성결혼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했다. 2010년 6월 27일에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며 모든 결혼법에 성 중립성을 확대했다. 2009년에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를 총리로 선출하기도 했으며 아이슬란드 도시 곳곳에 성소수자의 인권 존중과 평등을 의미하는 무지개 거리가 조성됐다. 2019년에는 ‘성적자율성법’을 제정해 제3의 성으로 ‘간성’을 인정했고,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하나씩 오르는 ‘젠더평등’의 계단과 정체된 일터 여성파업은 여성의 시선을 정치로 이끌었다.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성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여성이 정치 참여의 평등한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1980년에는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Vigdís Finnbogadóttir)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1981년 창당한 우먼스리스트당(여성의당)은 1983년 선거에서 지지율 5.5%를 기록하고 국회의원 의석 3석을 차지하며 여성정당으로 의회에 처음 진출할 수 있게 했다. 1980년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65.2%로 1960년대 34.3%이었던 것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돌봄 노동 사회화의 일부로서 공공 유치원이 확대하면서 만들어진 급진적 효과였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 여성의 임금 차별은 나아진 게 없었다. 오일쇼크 영향으로 발생한 심각한 인플레이션7)으로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하락한 상태여서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첫 여성파업이 10년째를 맞았던 1985년 10월 24일, 다시 파업을 벌여야 했다. 7)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주요 소비재와 산업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아이슬란드의 인플레이션이 심화됨. 1983년 84%를 기록 성별 임금 격차를 나타내는 파업 돌입 시간은 2시 5분으로 10년 전과 같았다. 1983년 기준으로 여성의 연간 평균임금은 전체 평균 임금의 65%에 그쳤다. 다시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들은 성별 임금 격차와 성차별 해소를 강력히 요구했다. 정부는 10년 만에 다시 거대한 여성파업에 직면하면서 1985년부터 5년 단위의 ‘젠더평등실행계획’을 세워 집행했다. 정부는 아이슬란드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관리,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젠더평등’노선을 실행해 갔다. [이미지: 여성파업 연도별 임금 격차]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육아휴직 사용이 여전히 여성 노동자에게 편중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이 일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75%대로 높아진 가운데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가사·돌봄 노동을 해야 했다. 특히 0세부터 1세의 자녀를 돌보는 육아휴직은 대부분 여성이 사용하고 있었다. 1997년부터 남성에게 유급 육아휴직 2주간의 사용 권리가 생겼지만 2000년대 초까지 남성의 실제 육아휴직 사용은 3%대에 불과했다. 1999년 국회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여성이었는데, 이들이 여성 대중의 요구를 대변했다. 그로 인해 2000년에는 아이 돌봄 노동의 성별 편중을 해결하기 위해 양육자 남성에 대해서도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는 유급 육아휴직 할당제가 도입됐다. 단계적으로 범위를 늘리다 2003년에는 전면화됐다. 총 9개월의 육아휴직 기간 중 남녀가 3개월씩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3개월은 서로가 자유롭게 나눠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임금은 80%의 평균임금이 보장됐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남성의 90%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이 약 45%까지 높아졌다. 남성의 가사 분담률도 동반 상승했다. 남성의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참여와 책임감이 커지면서 아이와의 유대감도 전보다 커졌다. 기업에서의 자본의 통제와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남성의 육아휴직이 쉽지 않았던 현실에 맞서, 투쟁으로 사회적 압력을 조성하고 제도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바꿔 낸 결과였다. 여성의 독박육아 해소는 기업 자본가들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 노동의 착취량이 증가하고 경력단절 없이 높아진 여성 노동의 생산성 또한 자본이 착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슬란드 경제는 자본의 성장과 거품, 노동조합의 양보로 표현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 초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아이슬란드 정부와 자본은 시장 자유화 정책과 각종 규제 완화, 민영화, 구조조정, 부유층 감세 등을 빠르게 시행했다. 금융업이 크게 활성화됐고 2006년 1인당 GDP가 세계 5위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금융 부문을 포함해 자본가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전례 없는 성장과 이윤 축적을 누렸다. 여기에 노동조합은 1990년대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전제로 낮은 임금인상을 수용했다. 생활비보다 높은 임금이 유지되면 기꺼이 만족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예를 들면 전기기술 노동자의 임금은 실질임금 수준이 물가상승에 비례해 충분하다는 이유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연간 1.4%씩만 증가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차별받는 여성 노동자의 입장은 달랐다. 최초의 여성파업에서 30년이 지난 2005년 10월 24일, 여성들은 세 번째 여성파업에 나서야 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여성파업을 시작한 시간은 2시 8분. 30년간 임금 차별은 단 3분밖에 단축되지 않았다. 2시 8분 이후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은 여전히 공짜였다. 여성들은 임금 격차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후 인플레이션이 점차 상승하며 노동조합은 물가를 따라잡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해야 했다. [사진: 200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항쟁, 사회를 바꾼 두 번째 계기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며 금융과 부동산 거품으로 아이슬란드 경제가 일시 호황을 누렸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해외투자자들이 자본금을 회수하면서 금융거품이 붕괴하고 말았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10월 6일 국가 부도를 선언하고 IMF 구제금융 시기를 맞이했다. 70%에 이르는 기업이 법적 파산 상태에 처하고 실업률이 10%로 껑충 뛰어올랐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채무가 약 5억 원 규모나 됐다.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 책임을 스스럼없이 노동자에게 전가했고, 성난 노동자 민중은 가만있지 않았다. 16주간의 ‘프라이팬혁명’이라고도 불리는 항쟁이 일어났다. 항쟁은 매주 토요일 국회 앞에서 연속 16주간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이는 방식이었다. 노동자의 90%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었는데, 이들은 적극적으로 항쟁에 참여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성난 노동자 민중은 국회를 포위하고 요구르트 통과 돌을 던졌으며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큰 소리로 두들겼다. 경찰은 처음으로 시위 진압용 최루탄과 최루액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행자가 속출해도 계속 싸웠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들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투기를 벌여서 만든 부채를 우리가 대신 갚을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래세대를 제물로 삼지 마라”고 외쳤다. 이들은 파산 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여 금지, 정부 총리 사임과 새로운 총선, 모든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타협하지 않고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아이슬란드 사회는 투기 자본가들이 스스로 위기의 책임을 지도록 결정했고 대중 투쟁으로 정부를 몰아내고 자본가들을 구속시켰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구속된 자본가와 총리 등 경제위기 책임자는 총 90명에 이르렀다. 이후 출범한 중도좌파 연정은 항쟁의 압력에 밀려 대중의 요구를 이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부는 저소득층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예산을 전년 대비 36%를 더 사용하고 청년 일자리 제공과 직장 내 성평등 정책을 강화했다. 민영화했던 모든 은행과 공기업을 다시 국유화했다. 주택 가격의 110%가 넘는 가계부채는 모두 탕감했다. 부유세가 인상됐다. 국회 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해 금융위기의 원인 진단과 해법을 도출했다. “당시 금융위기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이 기간 동안 특정 성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담론과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시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큰 규모의 경제 관련 프로젝트 중에서 산업 프로젝트, 감세 정책, 그리고 주택 단지 개발 등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애초에 금융 부문이 소수의 남성에 의해 운영됐고, 성 고정관념과 남성들의 문화에 기반한 사업 계획과 운영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수 집단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주요 기업들을 체계적으로 감시해야 하고, 성인지 예산과 성인지 조세정책(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반영하여 국가 예산을 배분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노동 및 지역 정책을 개발할 때 성 주류화8)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2012년 국회 특별조사위원회)” 8) 성주류화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함에 있어 성인지 관점을 통합하여 정책을 재구조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 아이슬란드 정부는 경제위기 원인 중 하나로 ‘남성 중심 경영’을 지목했다. 소수 상층 남성들의 이윤 추구와 그들 사이의 부정부패, 정경유착이라는 권력자 남성의 카르텔이 문제라 지적하고 이를 깨뜨리기 위한 경제, 노동시장 분야의 ‘젠더평등’을 해법으로 제출했다. 1975년 여성파업이 정치 분야에서 여성을 평등한 참여자로 만들었다면,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항쟁은 경제 분야에서 여성 참여를 강화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50인 이상 기업임원 40% 여성할당제(2013년 시행)와 같이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환을 주되게 시행했다. 이렇게 2008년 항쟁은 1975년 여성파업 이후 아이슬란드 사회를 다시 한 번 뒤흔든 두 번째 계기가 됐다. 이 계기를 거치며 ‘젠더평등’이 더욱 강력한 국가 정책으로 등장했는데, 사실 이는 아이슬란드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했다. 2010년대 이후 여성파업 2시 25분, 38분, 55분 2009년부터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 순위에서 젠더평등 수준 1위를 차지했다. 금융위기에 맞선 항쟁 이후 복지와 조세제도가 노동자에게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바뀌면서 성별 임금 격차의 완충 역할도 했다. 의회가 2008년 통과시킨 법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 노동에 대하여 동일 임금을 받는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항쟁 이후 첫 선거에서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42.9%로 급증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사회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2010년 10월 24일, 여성의 절반이 모여 공짜 노동이 시작되는 2시 25분 여성파업에 참여해야 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공식 노동자의 45.5%가 여성이었고, 동일 수준의 남녀 노동자를 비교한 성별 임금 격차는 17.5%였다. 그러나 노동시간, 고용형태, 산업과 학력 등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의 임금을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32.9%9)나 됐다. 2008년을 기준으로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남성은 90%인데 반해 여성은 65%에 그쳤다. 여성 노동자는 더 유연하고, 더 불안정하고, 더 임금이 낮은 노동조건에 처해 있었다. 9) 아이슬란드 통계청 https://www.statice.is/ [사진: 2010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2015년은 계급투쟁의 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노동조합이 임금인상과 인력 충원 등을 위한 투쟁에 나서 곳곳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커다란 빈부격차, 그리고 낮은 임금인상률로 노동자의 삶이 제대로 나아지지 않은 채 노동조합 지도부는 낮은 임금인상률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 왔다. 아래로부터 분노가 커지면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분 노동조합은 실질최저임금 50%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준비했다. 4월 말에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국민의 90% 이상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지지했다. 당시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 인구의 73%가 노동자로 일했는데, 여성 노동자가 많은 의료, 교육, 청소 등 직종이 속한 노동조합이나 여러 산업 부문의 여성 노동자도 주요한 파업 대오였다. 총파업을 거치며 여성운동 진영과 노동운동 진영이 함께 다시 여성파업을 준비했다. 2016년 의무할당제를 적용받는 상장기업 이사회의 거의 절반이 여성이고, 국회의원 41%가 여성이었는데 일부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정치와 경제의 상층 요직에 올라가는 것으로 줄인 성별 임금 격차는 시간으로 계산할 때 6년간 단 13분이었다. 성별 임금 격차 27.5%, 자본의 통치가 강력한 기업 안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상대적 차별은 굳건했다. 2016년 10월 24일 2시 38분, 여성들은 다섯 번째 여성파업을 힘차게 펼쳤다. 정부는 앞으로 2022년까지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듬해 2017년 6월 1일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동일임금인증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 1961년 처음으로 제정한 평등임금법이 남녀 임금 차별 금지를 ‘권고’하는 내용이었고, 1976년 성평등법 도입, 2008년 남녀평등지위권익법은 노동자가 성별로 인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도입한 법은 기업이 성별 임금 격차가 없음을 입증해야 하고 이를 정부가 관리하는 내용이었다. 이유 없는 임금 차별이 있을 경우에는 약 50만 원씩 시정될 때까지 누적되는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의 임금평등법 개정안이 제출된 것은 2010년이었는데 사회적 합의에 이르고 적용 기준을 정해 2018년 본격적 시행에 이르기까지 무려 8년이 넘게 소요됐다. 이제까지 자본가들은 줄곧 여성의 저임금에 대하여 법 위반이나 초과 착취를 반성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이 임금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면서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려 왔다. 그런 상황에서 동일임금제가 시행되면 ‘남성들의 임금이 깎일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돌며 백래시 분위기가 생기기도 했다. 자본가연합단체와 노동조합연합단체가 합의에 이르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유럽 전반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관철해 왔는데 아이슬란드의 경우 2018년 기준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44.4시간으로 유럽에서는 긴 편이었다. 노동조합은 오랜 요구인 노동시간 단축을 전면에 내세우며 2015년부터 주4일제 도입 실험을 시작했다. 변화된 상황에서 2018년 10월 24일 여성들은 여섯 번째 여성파업에 나섰다.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 노동 착취, 여성 노동에 가중된 초과 착취가 사라질 리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상대적 고용불안, 성별 직종 분리,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 가사돌봄 노동의 차별에 분노했다.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보다 28%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그에 따라 2시 55분에 다시 파업의 광장에 모인 여성들은 “여성을 바꾸려 하지 말고 세상을 바꿔라”, “모든 여성이 직장에서의 정의와 평등한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고 외쳤다. 2023년까지 여성파업이 만들어 낸 성과 2023년 국제 사회의 시선이 다시 아이슬란드의 여성에게 향했다.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가 91.2%인 아이슬란드에서 다시 48년 만에 여성의 90%가 참여하는 24시간 여성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성별이분법에 따른 여성만이 아니라 성소수자(non-binary)가 함께 참여했다. 여성파업이 진행된 하루 동안 사람들은 남성들만 보도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잠을 깼고 대중교통이 지연되는 하루를 맞았다.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았다. 공공시설과 많은 상점,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은행은 한 곳만 문을 열었고, 병원은 응급실만 열렸다. 방송사들은 프로그램을 줄였다. 국영항공사는 항공편을 취소했다. 사무실과 호텔 객실 등은 청소되지 않았다. 총리인 카트린 야콥스도티르도 여성 공무원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 [사진: 2023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이날 여성파업은 성별 임금 격차와 여성 직종 저임금, 성에 기반한 젠더폭력의 현실을 규탄하며 평등을 요구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만 명이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집회에 모였다. 후사비크, 아쿠레이리, 사우다르크로쿠르 등 10개의 도시에서 파업 집회가 개최됐다. 친구, 가족, 동료들과 함께 참석한 여성과 성소수자들은 ‘여성의 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21%나 낮다! 이게 평등이라고?’, ‘1975년부터 2023년 여성의 투쟁’ 등이 쓰인 피켓, 플래카드 등을 들고 파업의 요구를 힘껏 소리쳤다. 레드스타킹스가 불러 1975년부터 여성파업의 노래가 된 ‘여성이여, 앞으로!(Onward Girls, 아이슬란드어로 Áfram Stelpur)’, 칠레의 여성투쟁가 ‘강간범은 바로 너다! (A Rapist in your Path, Un Violador en Tu Camino)’ 등을 힘차게 불렀다. 발언자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젠더폭력의 현실을 규탄하며 물었다. “이것을 평등이라고 부를 것인가?” 참가자들은 “아니다”라고 외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번 파업은 노동조합이 최대의 조직자였는데 공공노조의 프레야 스테인그림스도티르(Freyja Steingrimsdottir)는 “우리는 평등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아이슬란드에 여전히 성별 격차가 존재하고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의료 서비스나 보육과 같이 여성이 주도하는 직업은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고 임금도 훨씬 낮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여한 유치원 노동자 스타눈 시구르게르스도티르는 “아이슬란드에는 여성에게 여성이 최고라는 속담이 있다”며 “여성이 함께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유치원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고 했다. 여성파업집회에 참가한 호피(Hófí)는“ 나는 아이슬란드 여성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 아이슬란드는 천국처럼 이야기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 노동시장에는 여성만 일하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가 많이 있다. 이 나라는 충분히 부유한 나라이고, 더 낫게 분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업 참가자들은 여성이 주로 하는 무급 재생산 노동도 강조했다. 주최 측은 캠페인을 통해 미리 남성들에게 ‘하루 동안 남편, 아버지, 형제, 삼촌들이 아침과 점심 도시락 준비, 친척 생일 기억하기, 시어머니 선물 사드리기, 자녀 치과 예약하기 등 가족과 가정에 관련된 일을 책임감을 갖고 맡아달라’고 전했다. 수많은 여성이 유급 휴가를 얻으며 파업에 참여했지만, 응급 구조와 의료 업무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많은 직종, 저임금 직종의 여성 노동자는 이번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자본가들은 빼먹지 않고 2023년 여성파업에 특별한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슬란드기업연합(SA)을 이끄는 최초의 여성인 시그리두르 마그레트 오드스도티르는 말로는 여성파업의 대의를 지지한다면서 여성파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여성들이 사용자와 합의 없이 모든 일터에서 파업하면 아이슬란드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그는 여성CEO로서 여성파업 대신 사용자와 대화로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파업 이후 11월에 열린 ‘레이캬비크 글로벌 포럼’에서 외교부 장관 비야르니 베네딕손은 “의사 결정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젠더평등을 실현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48년간의 오랜 여성파업의 역사는 여성 차별과 억압을 거대한 대중적 운동으로 돌파하며 큰 변화를 만들어 냈다. 첫째, 사회 전체와 모든 이들에게 세상의 절반을 떠받치는 여성 노동의 힘을 보여주는 계기를 거듭 제공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시에 여성 노동자 민중 사이에서 페미니즘운동을 부상시켰고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둘째, 1975년 여성파업에서부터 유치원을 늘리라는 공공 돌봄 요구를 이뤄냈다. 돌봄 비용의 85% 정부 지원, 교사 1명당 아동 5명 보육 등으로 안전한 공공 돌봄을 강화시키며 여성이 무급 재생산 노동에서 점차 벗어나 사회적 생산 노동의 주체로 정체성을 확립하게 했다. 남성이 돈 버는 일을 하고 여성이 집안일을 한다는 근본적 성별 역할 구분을 깨뜨리며 여성이 과거보다 사회를 향해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셋째, 노동자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가입10)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사회진출, 노동인구 증가가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 증가로 이어졌다. 여성 노동자도 노동조합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활동함으로써 사용자와 정부를 상대로 저항하고, 노동조합의 경제적 요구와 젠더적 요구를 결합하면서 노동조건을 향상해 나가게 됐다. 국제노총(ITUC)이 평가하는 글로벌 권리 지수(Global Right Index)에서 아이슬란드는 1등급인데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확장된 보장이 없다면 최고 등급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10) 1938년 노동법이 발효된 이래 노동조합 가입은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의무화됐다. 1980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모든 단체협약은 조합원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는 '에르고 옴니스 원칙(모든 사람을 향하여, 모든 사람에게 적용 원칙)'이 적용되어 노동시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게 됐다. 넷째, 여성파업은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걷어 내야 한다는 정치의식을 성장시켰다. 여성 총리와 여성 의원의 등장, 여성의 높은 투표율 등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 사회 작동 원리에서 벗어난 게 아니지만 그러한 표현의 하나다. 여성의 90%가 파업으로 사회를 멈추며 주체적 정치 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 높이 발전한 정치 인식을 보여 준다. 다섯째, 여성파업은 사회의 정세 변화에 조응하며 노동권을 중심으로 여성의 생존권과 다양한 삶의 권리를 위한 요구와 저항력을 확장했다. 이는 여성의 권리뿐만 아니라 동성결혼 합법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성별 정정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포함해 소수자 인권을 신장시켰다. 여섯째, 여성에게 맡겨진 독박 가사·돌봄 역할에 순응하지 않고 투쟁함으로써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정도를 증가시켰다. 보육, 의료 서비스 등 공적 돌봄이 강화됐다. 2000년부터 시행한 육아휴직 의무할당제와 같이 보육 돌봄에 관한 기업의 휴가나 휴직제도의 변화를 촉진하면서 정부와 자본이 책임져야 할 몫을 명확히 했으며, 가정 내의 무급 재생산 노동을 배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일곱째, 성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강화됐다. 여성과 연인들에게 결혼, 임신, 출산이 사회적 통제와 압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변모했다. 전체 출산 아동 10명 중 약 7명(69.4%)이 비혼 출산 아동일 정도로 여성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을 수 있게 됐다. 여덟째, 국제 여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계급의 파업과 같이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영역을 마비시키는 여성 노동의 파업이 여성의 요구와 투쟁의 힘을 드러내는 효과적이고 높은 수준의 저항 방법임을 각인시켰다. 이 밖에도 여성파업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여성에게는 여전히 여성 차별과 억압을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여성의 눈물 저항이 만든 사회적 변화에도 자본이 통제하는 기업에서는 여성 차별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 문제가 바로 임금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가는 기본 동력인 임노동관계에서 성별 임금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은 일터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여성 차별과 억압이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아이슬란드 남성과 여성의 노동소득에서 노동시간, 고용형태, 산업과 교육 수준 등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2010년 32.9%, 2019년에는 25.5%로 여성이 더 낮다. 그 이유는 시간제 노동, 비정규직 노동에 여성의 비중이 높고, 여성이 다수인 직종의 임금이 남성 노동자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금이 낮은 직종의 75%는 여성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교육, 보건, 돌봄, 청소와 식당, 마트 등 서비스와 관광 분야 등이다. 여성 노동자는 보건의료와 사회복지사의 75%, 교육 분야의 73%, 서비스와 판매의 57%를 차지한다. 여성의 노동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면서 소득과 연동되는 노후 연금도 여성이 더 낮을 수밖에 없어 여성의 상대적 빈곤은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뿐 아니라 집에서 이뤄지는 무급 재생산 노동 역시도 아직은 여성이 더 많이 부담해 더 나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에 장해물로 작용한다. 여성이 절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하며 생산 영역에서의 착취와 재생산 영역에서 무급 가사노동이라는 이중 굴레에 고통받는 현실은 다른 자본주의 사회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성의 저임금에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이 하나 더 붙으면 임금이 더 하락해 버린다.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이중임금제를 적용받고, 노동권을 침해받는 경우11)도 많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관광업 등에 이주노동자 취업이 증가했고 정부가 노동력 부족을 적극적 이주노동자 수용으로 보완하면서 2023년에는 이주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6.2% 규모가 될 만큼 증가했다. 전체 여성 노동인구의 약 22%가 이주노동자다. 그런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은 그 수를 따라가지 못한다. 2018년 아쿠레이리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72만 1,000ISK(크로나)였는데 이주노동자의 60%는 40만 ISK 이하였다. 이주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보다 훨씬 더 낮고 이주 남성 노동자보다 낮았다. 한부모 이주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더 취약한 처지에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정주 남성 노동자 > 정주 여성 노동자 > 이주 남성 노동자 > 이주 여성 노동자’의 서열화된 임금 차별을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다. 11) 에플링노동조합(Efling union)은 2017년에 발생한 부당노동행위의 60%가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2023년 여성파업이 제기한 중요 사항 중 하나는 여성에게 가하는 성에 기반한 폭력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살인 사건이 적은 편이지만 젠더폭력 사건만큼은 그렇지 않다. 전체 여성의 40%가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전체 여성의 4분의 1은 강간 또는 강간 미수 등의 심각한 젠더폭력을 경험했다.12) 2022년에는 여성 노동자의 3분의 1이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에 기반한 폭력13)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젠더폭력은 공연예술이나 언론 등에서 알려진 여성인 경우나 관광, 법조, 보안, 제조, 수리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가장 높았고, 교대근무나 불규칙적이고 장시간 일하는 직종에서 흔하게 발생했다. 12) 2018년 아이슬란드대학교의 연구, 공중보건전문가이자 역학자인 우누르 안나 발디마르스도티르와 아르나 훅스도티르의 연구팀 13) Risk factors for workplace sexual harassment and violence among a national cohort of women in Iceland: a cross-sectional study, The Lancet Public Health, volume7, september 2022. 2022년 다른 통계는 젠더폭력 피해자의 62% 이상이 18세 미만이고, 92% 이상이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여성 쉼터는 정원이 꽉 찬 경우가 많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정폭력 범죄도 급증했다. 이주민 여성은 젠더와 인종문제가 겹치며 젠더폭력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젠더폭력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디지털 젠더폭력의 피해자도 늘고 있다. 이러한 폭력 가해자의 절대적 다수는 남성이며, 95.6%가 18세부터 29세 사이의 청년 남성이다. 아이슬란드는 여성파업에 힘입은 젠더평등의 문화가 있고, 2011년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는 모든 교육기관에서 젠더평등 수업을 시행하는 나라다. 여성에게 동등한 정치적, 경제적 권리가 있고 국회의원과 기업 이사회 임원의 절반이 여성인 나라에서 여성과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젠더폭력이 매우 심각한 실상은 ‘북유럽(노르딕)의 역설’이라고 불릴 정도다. 젠더폭력의 참상 앞에서 여성들은 2017년 10월부터 #미투(#MeToo)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권, 온갖 산업의 재계 고위직, 미디어와 스포츠, 예술계 등 여러 사회 분야에서 일어난 추악한 폭력이 끊임없이 폭로됐다. 미투운동이 확산하며 장애 여성, 이주노동자,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와 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닌 저임금 불안정 고용상태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증언도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 잇따랐다. 서비스 분야 일터에서의 젠더폭력 가해자는 사업장 내 남성이나 남성 고객이었는데 노동조합 간부인 드리파 스내달은 “남성 고객은 여성 노동자에게 젠더폭력을 행사할 비용도 지불했다고 여긴다. 젊은 여성이 위계적 계층구조의 맨 아래 있다”는 현실을 전하기도 했다. 미투운동은 2022년까지도 이어졌다. 미투운동이 가시화되면서 피해생존자와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와 백래시14)가 심각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전에도 백래시는 젠더 차별을 줄이는 진보한 정책이 생길 때마다 퍼져나간 바 있다. 젠더폭력 사건의 미투운동에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살해 협박이 가해지는 경우마저 종종 일어났다. 피해생존자를 향한 그나마 낮은 수준의 혐오인 ‘그걸 왜 지금 와서 말하냐’는 광범위한 백래시는 오히려 여성들이 꾸준히 비판해 온 경찰과 사법부의 문제점을 가시화하기도 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을 당한 여성의 10%만이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는데 그 이유는 사법부와 경찰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슬란드 역시 경찰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 대다수가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고 재판에서 유죄판결도 드물었다.15) 2018년부터 3년간 성폭행 사건 항소심 중에서 형량을 줄이거나 무죄를 선고한 경우는 40%나 됐다. 14) '세계 최고의 남성 페미니스트' 중 1명으로 뽑힌 적이 있는 시그뮌 뒤르 다비드 귄로이그손 전 총리가 술집에서 정치인들과 함께 미투운동을 비난하고 여성 혐오를 쏟아낸 일도 있었다. 15) 2022년 랜싯 공중보건(The Lancet Public Health)에 실린 연구 전문가들은 사법 시스템에서 남성 중심적 사고가 지배적16)이라 지적하며, 성별 격차 해소만으로 젠더폭력 범죄를 줄일 수 없어 사법 체계를 개혁17)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젠더평등으로의 발전이 남성의 분노를 자극하는 기제가 되어 남성이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고 한다며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젠더 교육이 열악한 탓에 권력 구조를 함께 가르치는 젠더 교육이 대안18)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16)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17) 성폭행 생존자들과 함께 일해 온 변호사이자 사회민주당 의원인 헬가 발라 헬가도티르(Helga Vala Helgadóttir) 18) 아이슬란드대학교 교육대학의 역사학자이자 조교수인 이리스 엘렌버거 여성들은 사회가 젠더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인권법원에 아이슬란드 정부를 집단 제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2023년 여성파업의 광장에서 여성들은 “사법부도 공범이다”라고 외치고 ‘강간범은 바로 너!(A Rapist in your Path, 원제 Un Violador en Tu Camino)’라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여성에게 파라다이스는 없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기 전까지 브루클린대학 정치학과 교수 재닛 존슨은 아이슬란드 사회가 여성운동이 강하고 표면상으로 훌륭한 변화와 공식적 평등의 수준이 높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남성이라며 그것이 공식적 젠더평등을 상쇄한다고 비판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여성에게 파라다이스인 사회가 가능할까? 2021년 9월 아이슬란드 총리실 산하 성별 임금 격차 TF는 2년여에 걸친 조사를 통해 ‘여성의 일 가치 재평가(Verðmætamat kvennastarfa)’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정부는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남성적 직업’과 ‘여성적 직업’을 나누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전제하며 지난 10년 동안 관련 교육을 진행했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결론으로는 법과 제도로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제시했다. 2023년 여성파업에 참여한 총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젠더평등에 도달하는 데 30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과 제도가 있다면 성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한다. 마치 그동안 법과 제도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정부가 누누이 강조하는 ‘젠더평등이 경제 발전에 이롭다’는 입장은 분명한 자본주의 논리다. 페미니즘으로 표현하면 매우 익숙한 자유주의 페미니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아이슬란드 사회가 젠더평등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 것은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아니라 여성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다. 여성운동 세력들은 1975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달려가 파업의 전망을 제시한 레드스타킹스와 가장 열악한 처지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운동에 힘입어 여성파업을 성사함으로써 주요한 사회세력으로 자리를 잡았고 꾸준히 여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해 나갔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과 함께한다. 노동조합운동 역시 여성파업의 주요한 주체로 역할을 해 왔다. 1975년부터 여성파업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이후 2023년까지 노동조합은 여성파업의 준비부터 참가자 대다수를 조직하는 일까지 꾸준히 활동해 왔다. 사업장과 각 산업 부문에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운동은 아이슬란드 정부와 지배계급을 향해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성별 역할 분리, 성별 임금 격차, 성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이다. 북유럽식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가운데 이들 운동 역시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를 추구한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 중 하나인 노동조합운동은 노사 윈윈(win-win)을 우선하는 조합주의, 노사협조주의 노선을 취한다. 청년-중년층 여성은 ‘선택에 자유가 있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스며든 신념으로 젠더평등을 요구한다. 최근 10월 24일 여성파업 기념 시위들과 2023년 여성파업에 참여한 여성들의 인터뷰에서도 정부를 신뢰한다는 표현이나 분배의 평등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반면 여성 노동자 민중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장 내를 포함한 심각한 젠더폭력 수치는 가부장적 여성 혐오 정서의 민낯을 보여 주고 있다. 동일 임금인증제가 시행된 후에도 성별 임금 격차는 2019년 25.5%에서 2022년 21%로 4.5%를 좁혔을 뿐이다. 첫 여성파업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났어도 전통적 여성 노동은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다. 또 이전에는 모든 계급 여성이 무급으로 수행하던 많은 일이 이제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 가정에서는 가난한 노동자계급 여성과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아웃소싱되고 있다. 게다가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모든 일자리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무엇보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와 경제위기가 있다. 2023년 2월 인플레이션은 10.2%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점을 찍은 2009년 9월 인플레이션 10.8% 이후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후 낮아지긴 했지만 세계 경제의 대불황과 기후위기, 전쟁 속에서 언제든 경제위기가 닥칠 위험성이 높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여성과 노동자가 일군 지금의 권리를 언제 걷어찰지 모른다. 그래도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 민중에게는 1975년부터 여성파업으로 저항해 온 소중한 역사와 저력이 있지 않은가. 저임금 일자리의 여성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모든 성을 넘어서 단결한 노동자 투쟁이 국제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변혁적 여성운동과 노동자계급 운동을 만난다면 아마도 1975년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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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일하다 죽지않게, 차별받지 않게, 비정규직 철폐하자! 비정규직 이제그만 전태일열사 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우리의 투쟁] 일하다 죽지않게, 차별받지 않게, 비정규직 철폐하자! 비정규직 이제그만 전태일열사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전태일열사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비정규직이제그만 주관으로 열렸다. 2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행진을 시작해 서대문 디엘이앤씨 고 강보경 노동자 산재사망 농성장 앞 문화제를 이어가며 '일터에서 죽지않게, 차별받지 않게,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도 함께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자동차판매연대지회, 디엘이앤씨 고 강보경 노동자 유가족, 택시지부, 파리바게트지회, 코레일네트웍스지부, 현중사내하청지회, 웹툰작가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 세종호텔지부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소개한 저마다의 상황은 달랐지만, 오로지 이윤만을 위해 노동자를 고용불안과 저임금, 산재로 내모는 자본과 정부를 향한 분노와 규탄의 목소리는 똑같았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변주현 노동자는 힘없는 노동자만 당하는 현실을 해고된 4년동안 줄곧 목도하고 있다고 했다. 성서공단지역지회 로미 노동자는 이주노동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같은 노동자임을 강조하며 전태일 열사정신을 계승하여 싸울 것이라 말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안진석 노동자는 노동해방을 투쟁으로 쟁취하자고도 외쳤다. 거부권을 거부한다. 노조법 2,3조 개정하라! 일하다 죽지않게 비정규직 철폐하자! 일하다 차별받지않게 비정규직 철폐하자! 차별없는 세상 우리가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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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아동과 청소년의 성인권, 성평등 교육 금지? - 저들이 지울수록 우리는 더욱 뚜렷한 투쟁을 조직할 것이다구조적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기본 요소 중 하나는 인권과 평등에 기초한 성교육일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 인권 교육을 없애는 일을 저질렀다. 며칠 전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의 올바른 성 인권 형성과 가치관 형성을 위해 진행해 온 ‘성 인권 교육’ 사업을 내년에 폐지하기로 하고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올해 배정된 예산은 5억 5,600만 원이었다. 성 인권 교육 사업은 지난 10년간 초·중·고 장애·비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었고, 장애인 비중이 더 높은 사업이었다. 아동과 청소년에게 허락하지 않는 ‘성 인권’, ‘성평등’ ‘성 인권’이란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성폭력 피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말한다. 성 인권 교육 사업은 청소년 스스로 성적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가르치는 내용이다. 아동과 청소년이 성장 과정에 맞춰 제대로 된 성 관련 정보를 습득하고, 학교 안팎에서 마주치고 경험하는 성을 통한 자연·역사·사회관계를 토론하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성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다양한 성정체성과 입장을 존중받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여성가족부는 “보건복지부도 발달장애인 성 인권 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사업을 폐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5년간 성 인권 교육에 참여한 인원은 1만 7~8천 명 대였고, 발달장애 외 시각, 청각 등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라 변별력 있는 교육을 해 왔다는데 정부는 이를 무작정 없애버렸다. 발달장애 외 장애를 가진 아동과 청소년에게 적절한 방식의 성교육을 공교육에서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따로 없다. 오로지 아동과 청소년에게 ‘성 인권’을 불온한 것으로 취급해 빼앗고 대신 ‘성평등’을 지운 교육과정만 강요할 작정이다. 이미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기조를 세운 데 이어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심의하면서 성교육에서 ‘성’을 지운 바 있다. 교육부는 ‘성평등’, ‘재생산권’, ‘성소수자’ 용어와 ‘섹슈얼리티’ 용어를 삭제해 의결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되 그것은 ‘평등’해서는 안 된단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생명과 다양한 인간 정체성을 부정하며, 인간과 사회재생산의 권리를 빼앗아야 한단다. 성적인 모든 범주가 자연, 과학, 사회, 역사, 문화, 예술에 있지만 이를 인정하는 단어를 말해선 안 된단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게 하려면 알아서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라는 말인가? 윤석열 정부는 반동적이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제로 주입하고, 성 인권과 성평등을 빼앗기 위해 아동과 청소년의 성교육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 강화하는 성교육 통제 성평등과 존중의 가치는 인간 정체성의 일부이자 인간 사회의 기본요소로 자본주의 사회의 현 수준에서도 부정되지 않는다. 이는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배계급의 노동착취와 차별·억압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근본적 평등과 무관한 형식적 성평등만 주창할 뿐이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젠더와 섹슈얼리티, 성적 권리와 성교육은 국제사회의 상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유네스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등은 지속적으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 Education)의 개념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성평등,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재생산권, HIV/AIDS 등에 관하여 연령에 따라 적합한 교육과정들을 마련할 것을 권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2020년 한국 정부에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을 적절히 포괄하여 각 연령에 적합한 성교육을 제공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강한 한국에서 ‘성교육’과 ‘성 인권 교육’은 지금도 부족하다. 게다가 자본의 민주주의와 형식적 성평등의 수준 역시 단연 꼴찌다.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한국의 현실을 개선하려면 지금 수준보다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는 성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자신과 타인의 성 정체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관점과 과학과 사회, 윤리적 소양을 제공받을 권리가 아동과 청소년에게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국제 표준’을 강조하면서도 아동과 청소년의 ‘성평등’과 ‘성 인권’ 교육에 관한 국제사회의 합의는 모두 무시했다. 아동과 청소년에게 ‘성’을 지운 성교육, ‘인권’과 ‘평등’ 없는 성적 존재와 가치, 양성과 이성애만 인정하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후세에게 지배계급이 인정한 가치와 방식만을 습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존중과 함께 배려받아야 하는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권과 존엄성마저 해치는 행위이자, 구조적 성차별을 강화하고 노동자 민중이 지향하는 평등과 권리, 자유의 가치를 차별과 가부장적 통제로 굴절시키며 저항을 사장시키는 행위다. 성범죄와 성차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성교육에서 평등과 인권을 지우는 것은 아동·청소년 시기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인간의 존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함으로써 성에 기반한 폭력을 줄일 예방적 수단을 없애는 행위다. 2022년에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해바라기센터(성폭력피해자종합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 중 미성년자는 12,311명(전체의 49.4%)이었다. 피해 미성년자 절반 이상인 7,594명이 13세 미만이다. 성폭력 피해의 86.4%(14,839명)는 강간·강제추행·디지털 성폭력이었다. 특히 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평균보다 높은 78.4%(2,038명 중 1,597명)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성범죄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피해자의 평균연령은 14.1세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여성폭력통계’를 보면 한국 여성 4명 중 1명은 평생 1회 이상 성폭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성범죄는 피해자가 가난할수록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쉽게 노출된다고 보고된다. 이뿐인가. 성소수자 청년 10명 중 4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고 셋 중 하나가 ‘차별’을 경험할 만큼, 있는 그대로의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은 존중받지 못한다. 낙태죄가 없어지고도 유산유도제는 도입되지 않았다. 영아살해는 처벌만 강화되었을 뿐, 내가 살려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여전하다. 넘길 일이 아니다 0.7명 저출생이라는 사회 절멸의 위기 속에 소중한 아동과 청소년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과 존엄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점과 힘을 길러주는 것이 사회에서 없애야 할 영역이란 말인가! 아이들이 성적이 아니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고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정부가 성교육의 단어들을 없앤 것은 우리 노동자 민중과 아동·청소년들이 살아갈 사회에서 ‘성평등’, ‘성소수자’, ‘재생산’, ‘성 인권’을 지우는 일과 같다. 저들이 단어를 지울수록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성평등과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존중하고 재생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공격을 규탄하는 목소리에서부터 혐오와 차별, 억압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으로 미래세대에 성평등한 산 교육을 제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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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첫 번째 프라이드가 ‘항쟁’이었다면 이번 프라이드는 ‘파업’이다레바 랜더스(Reba Landers) 2023년 7월 1일 올 6월, 스타벅스는 노동자들에게 프라이드(퀴어문화축제)에 맞춘 매장 꾸미기를 금지하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했다. 노동자들은 성소수자 친화적 기업이라고 자처해 온 스타벅스의 위선을 받아들이는 대신, 노동조합이 있는 150여 개 매장에서 파업을 벌였다. 스타벅스는 고객과 노동자 모두에게 성소수자 친화적 기업으로 스스로를 내세워 온 오랜 역사가 있다. 프라이드의 달(6월, 성소수자 축제기간)을 맞아 매장 꾸미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프라이드 상품을 판매했으며, 심지어 노동자들에게 제한적인 트랜스젠더 의료 혜택도 제공했다. 그러나 이번 6월, 스타벅스는 프라이드의 달을 기념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탄압했으며, 프라이드의 달이 시작되자마자 매장 내 성소수자(LGBTQ+) 장식에 대한 정책을 변경했다. 스타벅스노동조합(SBWU)은 이러한 반퀴어 정책 변경이 성소수자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며, 노조와의 교섭이 아닌 사용자가 위에서 강제적으로 지시한 부당노동행위라는 이유로 고용주를 전미노동위원회(NLRB)에 고발했다. 스타벅스 본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노조가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고 제기하면서 노조가 스타벅스의 명예를 훼손하고 프라이드를 지지해온 스타벅스의 ‘오랜 역사’를 지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노동자들은 국가기관을 신뢰하며 전미노동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통상 수개월이 걸리고 객관적이지 않으며, 전미노동위원회는 종종 사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 그래서 스타벅스 노동자들은 오클라호마에서 필라델피아, 뉴욕에 이르기까지 전국 150여 개 지점에서 파업에 나서는 전투적인 방식을 택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역사상 최악의 입법 공격이 벌어지는 와중에, 스타벅스의 반성소수자 행보는 놀랄 일이 아니다. 선거 시기가 다가오면서 성소수자 이슈는 아마도 투표에 가장 논쟁적인 사안이 될 것이다. 극우파는 유권자 기반을 결집하고 중도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공격하고 있다. 민주당은 더 많은 중도파 유권자를 잃을까 봐 의미 있는 조치는 취하지 않으면서, 그저 성소수자 친화적으로 보이는 적당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업들도 비슷하다. 과거 스타벅스는 성소수자 노동자와 고객을 말로는 지지했지만, 이는 단지 그 지지로 이익을 얻을 때나, 성소수자 이슈가 덜 분열적일 때, 그들이 더 좋은 기업으로 보일 수 있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타겟’, ‘버드라이트’ 등 대기업들이 성소수자 커뮤니티 지원을 이유로 비난받은 올해 프라이드 분위기에서 스타벅스의 무지개 장식은 끔찍한 홍보 실패작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쁘게는 이윤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기업에 중요한 것은 이윤이기에, 올해 스타벅스가 강력한 탄압에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무지개 깃발을 휘날렸든 간에 기업들은 결코 돈 몇 푼보다 특별히 억압받는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행동과 말 사이의 이러한 위선적 차이는 기업과 정치인들이 자신의 부와 권력에만 관심이 있을 뿐 노동자계급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가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장들과 정치인들은 노동자를 배려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집단 파업은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스타벅스 노동자들은 전미노동위원회가 내리는 솜방망이 처벌을 바라며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고, 길고 지루한 교섭 과정을 통해 미미한 이득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으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공격을 방치하지 않았다. 시카고의 한 스타벅스 조합원은 인터뷰에서 “결국 기업에 중요한 것은 자본뿐이다. (…) 우리는 이 아름답고 활기찬 커뮤니티가 돈벌이 수단이나 교환권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사장들이 자신의 요구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노동자로서 자신의 힘을 이해했으며, 자신의 일을 중단했다. 모든 분야, 모든 지역 노동자가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노동자계급이나 특별히 억압받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으며, 기업은 오직 이윤을 보호할 뿐이라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졌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동자들은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인 노동력과 다수로서 노동자의 규모를 활용해야 한다. 우리가 일터에 출근하지 않으면 전 세계가 멈추고 기업의 이윤도 멈춘다. 스타벅스 노동자 파업과 같은 대중파업은 사측의 이윤축적을 중단시킴은 물론,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구축한다. 또한 민주당이나 공화당과 독립적으로 노동자를 조직해 노동자의 요구를 쟁취하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정치인들의 악의적 공격에 맞서 싸울 수 있음을 입증한다. 우리는 이러한 투쟁의 기세를 유지해야 한다. 스타벅스노동조합 파업은 노동운동이 성소수자 해방에 있어 전략적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노조만 이런 투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성소수자 동료를 위해 작업거부와 작업중지를 조직해야 하고, 학교 내 성소수자 동맹은 휴업을 조직해야 하며, 독립적인 지역조직들은 민주당이나 기업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계급적 독립성과 전투성으로 이러한 공격에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 제도나 정치인, 기업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성소수자 해방을 위한 노동자계급 운동이 필요하며, 우리가 함께 조직해 이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첫 번째 프라이드는 항쟁이었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성소수자 해방을 위해, 그리고 모든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위해 함께 항쟁하고, 파업하고, 조직하자. 스타벅스 노동자처럼 싸움을 조직하자. 노동자계급의 힘과 반자본주의적 전망으로, 억압으로 이윤을 쌓는 이 체제 전체를 무너뜨리는 투쟁을 조직하자. [원문] https://www.leftvoice.org/the-first-pride-was-a-riot-this-pride-is-a-strike-starbucks-workers-shut-down-over-150-st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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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가사도우미’, 국경을 넘는 돌봄 여성 노동자 초과착취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저출생 대책이라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고용허가제 아래 E9 비전문취업비자에 ‘가사근로’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 노동자를 가사돌봄 일자리에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가사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는 법을 만들자더니, 5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강하게 나가달라”고 지시했다. 고용노동부는 서울시와 올해 하반기 시범운영으로 동남아시아 여성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정하고, 25일 각계 의견수렴 명목으로 ‘외국인가사근로자관련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아찔한 소식이다. ‘가사도우미’라는 노동은 개별 가정에서 행하는 가사와 돌봄노동이 섞여 있다. 지금도 한국에서 차별과 착취를 당하는 이주노동자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얼마나 참담할까.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된 플랫폼 호출 가사노동자와 성차별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에게 참담한 소식이다. 그리고 모든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주 여성 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하려는 저들의 계획은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이 기울어진 운동장, 여성과 이주노동이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본은 노동자계급의 분할전략으로 착취를 가중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과 이주노동자 차별을 노동자 단결투쟁으로 헤쳐가지 못한 상황에서 저들은 저평가된 여성의 가사돌봄노동으로부터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더 혹독한 차별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공격하고 있다. 뭐가 저출생 해법이라는 건가? 노동자들은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가사돌봄노동을 하도록 하는 게 어떻게 저출생 해법이라는 건지, 한국말인데도 알아듣기 어렵다. 작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주40시간)은 월 1,914,440원, 비혼노동자가 혼자 먹고사는 데 든 생계비는 월 241만 원. 누군가를 고용해 가사돌봄노동을 맡기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도대체 저들은 뭐라는 건가? 사진: 가사노동자 채용사이트 캡쳐 윤석열 정부는 작년 5월 110대 국정과제에서 농업부문에 외국인 인력공급 다양화를 제출했다. 2022년 6월 16일에는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노동관계 법령을 적용하지 않는 현행법을 유지한 채 가사노동자법(가사근로의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을 도입했다. 이마저도 플랫폼 자본에 대한 규제를 배제하고, 적용범위를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 등에 한정해 모든 가사노동자가 적용받을 수도 없다. 그러고는 2022년 7월 21일 ‘국민제안 TOP 10’ 항목에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을 기어이 밀어 넣었다. 정부의 신호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먼저 나서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원~76만원 수준”이라며 9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육아도우미 도입을 제안했다.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 공급 부족 때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저임금 여성 일자리던 돌봄노동이 사회에 필수노동임이 드러났음에도 이는 싼값의 노동이며 이주 여성노동자는 더 싸게 착취하는 게 정주민에게 반가운 일이라 떠벌렸다. 2023년 3월 21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가사노동자법 개정안을 민주당,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발의했다. “대한민국은 최악의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다. 맞벌이가 기본인 청년세대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국내법과 국제협약을 위반하면서 “월 100만원 수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로 가사돌봄노동자 저평가와 이주노동자 착취강화를 법으로 못 박자고 했다. 이는 저출생 원인이 곧 돌봄노동의 비용 문제이니, 과거 ‘식모’를 가정에 두고 부려먹던 때보다 세련되게 가사돌봄노동을 평가절하해 여성노동 차별과 인종차별을 ‘가사 노예’라는 법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다음 날 철회하는가 했지만, 공동발의자였던 민주당 2명을 국민의힘 2명으로 바꿔 재발의한 상태다. 시범운영부터 밀어붙이는 정부 밑밥이 충분히 깔렸다고 판단한 정부는 5월, 광폭 행보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사돌봄노동자 수급정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부 관계자는 ‘조정훈 의원 안처럼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조항이 그대로고 가사노동법 자체가 허점투성이다. 조정훈 의원 발의안에 최저임금 차등적용까지 추진하는 정부로서는 뻔뻔한 변명이다. 그러면서 ‘출산을 강요할 수 없으니, 이들의 육아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가사도우미 제도가 저출산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5월 25일 고용노동부 토론회 안팎에서 사회 각계각층 연구자와 노동시민사회의 지적이 이어졌다. 토론회에서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예로 든 싱가포르를 포함해 홍콩, 대만, 일본 등 아시아 4개국이 외국인 가사노동자제도를 도입했지만, 합계출생률 증가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제기했다. 이들 나라 출생률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다른 전문가들도 ‘정부가 돌봄의 가치와 공공성을 높이려는 고민 없이 개인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점(김현미 교수), 가사와 돌봄이 여성의 몫이라는 편견을 강화하는 점(조혁진 연구원),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주노동자가 겪을 수 있는 인권침해, 착취, 성폭력 우려점(이규용 연구원), 특권 계층만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일 것이라는 점(이은영 YMCA부회장)을 지적했다. “저출산 해결과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 사이의 인과관계가 별로 없다(강정향 교수)”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뿐만 아니다. 사태의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수많은 여성단체, 이주인권과 사회단체 등이 오세훈 시장, 조정훈 의원의 발언, 윤석열 정부의 사업추진안이 나올 때마다 졸속행정임을 지적했고, 여성과 이주노동에 대한 성차별과 인종차별 노동착취 계획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대신 돌봄노동의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자가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현실적인 저출생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저출산 대응 및 여성 경력단절 방지”를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다양한 실태조사와 여론조사를 거쳐 구체적 안을 확정하겠다고 못 박았다. 저들이 다하고 싶은 국가의 책임은 확장되는 돌봄시장에서 자본이 싼값으로 노동을 착취하고, 성차별과 이주노동자 차별 속에 노동자를 갈수록 쪼개 단결된 저항의 힘을 잃게 만드는 역할일 뿐이다. 0.78명 저출생이 가사돌봄비용 문제인가? 한국은 이미 1998년 IMF를 경과한 2000년부터 저출생 상태에 진입했다. 정부가 꾸준히 대책을 내놓고 예산을 썼지만, 청년들은 갈수록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지난 20여 년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 수치를 OECD 수치로 비교해 보면 2000년 41.7%에서 2021년 31.1%로 약 10% 줄었다. 합계출산율은 2000년 1.48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해외언론이 한국어로 알린 단어 중에 ‘Kwarosa(과로사)’가 있다. 한국 노동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보다 39일 더 일하는 장시간 노동구조는 자본에 철저히 장악당한 노동의 권리를 의미한다. 일자리는 적고, 있어 봤자 비정규직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의 나쁜 일자리다. 높은 집값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동자의 임금은 제자리인데 공공요금과 물가 인상으로 실질임금은 하락한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73년이 지났지만, 모든 노동자가 아직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착취도는 높아가고 노동개악은 거듭된다. 여성 노동자의 권리는 어떤가? 한국은 OECD 가입 원년인 1996년부터 27년째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1위 국가다. 여성은 여성 노동에 대한 저평가와 생애를 관통하는 저임금, 차별과 혐오, 무급가사노동, 경력단절, 높은 성범죄와 솜방망이 처벌, 성역할 고정관념 등의 여성차별에 시달린다. 가사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일로 치부한다. 2022년 통계를 보면 부부 5명 중 1명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한다고 생각했고 나머지는 여성이 주도한다고 답변했다. 가사돌봄노동 사회화는 국가책임이 아닌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을 여성 노동자가 전담하는 ‘민간시장화’로 이어졌다(아래 표 참조). 상대적 저임금 일자리, 불안정 일자리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모든 국가기구에서 ‘여성’을 지웠고, 미약하게나마 돌봄노동을 공공 영역으로 만든 사회서비스원을 쪼그라뜨리고 있다. 지난 5월 베이징의 위와인구연구소는 한국이 세계에서 양육비가 가장 비싼 나라라는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자녀 1명을 18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양육 비용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인 3억 6,500만원에 달한다는 분석이었다. 올해 3월 민주노동연구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남성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339만 원, 여성 노동자는 남성의 65%인 220만 원이었다. 5월 22일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발표한 ‘나의 최저임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노동자는 8년의 노동경력 중 57.0%의 기간 동안 최저임금 이하를 받았다.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이성애 가족만을 상정해 아이 양육에 드는 비용을 찔끔 지원해 주는 방식이었다. 국가의 책임을 각자에게 떠넘겼다. 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아이를 낳으면 가정이냐 직장이냐 선택을 강요받았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출산휴가를 꿈도 꾸지 못해왔다. 정부는 자본의 노동착취·여성차별을 규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거들뿐이었다. 정부의 일 가정 양립 정책은 여전히 일 가정 양자택일 정책일 뿐이다. 공공주거와 의료·연금, 생명안전 존중, 자본 규제 강화와 복지사회서비스영역에서 국가책임은 갈수록 줄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어제도 오늘도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당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단속 추방 등 인권침해에 시달린다. 혐오와 차별이 지속되고 있다. 농촌의 할머니가 젊은 시절 따던 깻잎을 지금은 이주 여성 노동자가 딴다. 냉난방과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숙소비로 몇십만 원씩 뜯겨도 되는 게 한국법이고, 사업주의 임금체불, 노동법 위반, 성범죄가 비일비재해도 정부는 이를 방치한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해외 가정의 가사돌봄노동자 취업 사례는 숱한 노동착취와 성착취를 당한 고통이 가득하다. 지금도 이러한 국제적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유엔 9대 핵심인권조약 중 ‘이주노동자권리협약’ 비준을 2006년부터 권고받았으나 아직도 비준하지 않은 나라다. 한국의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꾸준히 재생산하고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결국 청년들은 자녀에게 이생을 물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다. 올해 2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합계출산율 0.78명은 청년 노동자 민중의 비명이자, 동시에 한국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낳은 결과다. 노동자의 단결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은 자본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틀어쥔 채 여성의 돌봄노동 저평가를 넘어 국경을 넘는 노동착취, 돌봄 여성노동자 착취의 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조치다. 이주노동자 도입과 그 시도는 정주노동자를 포함해 돌봄노동을 더욱 저평가하고 노동권을 소외시킬 것이다. 자본은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며 뒤에서 웃음 지을 것이다. 이 앞에선 노동자의 단결이 요구된다. 청년의 비명소리에 응답하자. 여성 노동자,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마주하자. 4월 21일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에 속한 노동자와 영남권 이주단체, 사회단체 활동가, 이주노동자 등이 모여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집회’를 열었다. 정주·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폐지 등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이주민 가사노동자법 반대를 함께 외쳤다. 더 큰 단결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 정원현) 가사돌봄노동의 외주화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화’가 답이다. 성차별 폐지 투쟁!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라!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하라! 그동안 소홀했던 성차별,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투쟁을 계속 미룬다면, 여성에서 이주노동자로, 이주 여성 노동자로 노동자를 분할시켜 노동자의 단결을 파괴하려는 자본의 공격에 더 당하게 될 것이다. 성별, 성정체성, 국적, 인종, 장애, 직종, 고용형태 등 모든 차별 앞에 평등을 외치며 단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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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산업전환에 여성 노동자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지난 2월 김미옥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 사무장이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 발언하고 있다. 4월 11일 기후정의파업에 나서는 금속 여성 노동자 김미옥. 그는 지난해 이란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일어난 여성들의 시위에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냈던 노동자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난 2월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 사무장이자 대의원으로 참여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그는 울산지역본부가 4.14 기후정의파업 참가를 조직하자고 제안했다. 울산 노동자들이 앞장서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현대그룹 일가의 조선, 자동차를 비롯한 금속산업과 크고 작은 화학공장, 그리고 온갖 하청공장이 밀집한 울산은 쉴 새 없이 탄소를 뿜어내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굴뚝이자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공장들에서 거대한 이윤을 뽑아내는 자본의 ‘글로리’다. 울산은 서울 다음으로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이면서도 산재 사망률 1위에 지역별 근로소득 양극화 1위인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기와 건설 예정인 2기 외에도 부산, 월성, 신월성에 위치한 총 12기의 원전이 울산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고, 이 원전은 현대자본을 위해 오늘도 맹렬히 핵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울산이기에 김미옥 사무장은 노동자들이 기후위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면, 기후정의운동이란 곧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를 잡아먹고 울산의 하늘과 바다와 개울을 더럽혔지만, 그 가장 밑바닥에는 성별임금격차 역시 1위라는 울산의 현실만큼이나 여성 노동자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김미옥 노동자의 삶과 노동이 말하는 이야기다. 김미옥 노동자는 여러 직종에서 일했다. 미포조선에서는 충분한 보호장비가 지급되지 않는 조건에서 도장 일을 했고, 화장실이 없어 일하다 간혹 노동자들이 보는 소변 등을 치워야 하기도 했다. 또 자동차 부품사 하청공장과 현대글로비스 하청공장에서는 조선업종과는 달리 여성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배려 받고 임금 등에서 차별이 없는 상태여서 때로는 오히려 남성 노동자가 역차별 받고 있다고 말하는 환경에서 일했다. 이러한 경험과 삶이 현대자본이 그에게 내어준 자리였다. “그러니 몸이 휘어지는 것이다” 처음 김미옥 노동자가 미포조선에 입사했을 때는 일 자체가 너무 험악해서 달리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고 한다. 일만 미친 듯이 했다. 6시 반에 출근해 7시 20분 회사 조회를 마친 뒤 각 배의 자기 공정으로 옮겨가 체조를 하고 8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일정이었다. 30~40분은 공짜 노동을 해주는 셈이었다. 거기서는 특수도장(페인트 등 외관 작업)이라고 해서 탱크 안에서 일했다. 배 하나에 6~7개의 족장(비계)이 있는데, 따라다니며 일하는 것이었다. 도장하는 사람들은 까만 봉지 여유분을 많이 넣고 다녔다. 화장실이 급하면 비닐 2개를 놓고 볼일 보고 묶어 나오는 것이다. 놔뒀다가 까먹기도 했지만, 족장반 남성 노동자들은 소변을 그냥 봤다. 그러면 도장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일을 하기 위해 다 치웠다. 늦게까지 잔업을 해야 하는 날이면 차가운 도시락을 까먹었다. 임금은 최저임금보다 많기는 했지만, 점차 그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 환경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잔인했다. 안전화나 보호장구부터 충분히 지급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요즘은 천국 만난 거다’라는 언니들이 많았다. 조선소 언니들이 오래 일하신 분들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흔히 여성이 맡는 도장작업을 하면 자세가 비틀어진다. 단순히 페인트만 칠하는 것이 아니라 까고 ‘빼빠’치고, 깨끗이 닦아내야 하는 일인데, 양손을 다 쓰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불균형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러니 몸이 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리 수술을 하고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을 시작해 재발한 언니도 있었다. 특수도장은 여성 노동자들이 주되게 일하기도 했지만, 연이은 스프레이 작업은 남성 인원이 없으면 여성이 배치되곤 했다. 여성들은 줄잡이를 하고 싶지 않아도 찍소리 못하고 소장이 오더 주는 대로 해야 했다. 줄잡이는 남성 노동자가 스프레이를 하면 따라 들어가 커버링이라고 해서 신나로 닦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그러면 강렬한 냄새 때문에 눈물 콧물이 다 쏟아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아무도 줄잡이를 하지 않으려고 해 대개 여성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진다. 김미옥 노동자 역시 줄잡이를 한 적이 많다. 일이 힘들어도 가장인 여성 노동자들도 많고, 돈벌이가 좀 되니까 떠날 생각들을 하지 못했다. 그 같은 노동조건에서 해마다 수많은 노동자가 다치고 때로는 목숨까지 잃었다. 여성 노동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미옥 노동자도 당시 허리 때문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10킬로그램짜리 페인트도 부지기수로 들고 다녔다. 덕분에 목, 어깨, 허리 마디마디는 늘 파스 신세였다. 더구나 남성 노동자들이 족장을 다 치우고 나면 엄청난 공포감 속에서 일해야 했다. 사다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바로 미끄러질 수 있었다. 항상 긴장 상태에 있어서 일이 더 험했다. 김미옥 노동자는 이후 미포조선을 그만두고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는 현대중공업으로 이전했는데, 이곳에서 그라인드(연삭 작업) 공정 다음 순서인 청소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철가루가 눈에 들어가 치료받았고, 미끄럼에 넘어지면서 심하게 다쳐 수술도 받아야 했다. 중형선박부문 세계 1위 조선소로 발전한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에서의 이야기다. 그렇게 힘들게 일했지만, 여성 노동자는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 대부분 ‘이모님’이 되거나 ‘아줌마’가 된다. 그래도 여성 노동자들끼리는 재미있게 일했다. 끝나고 모임도 만들어 같이 저녁도 먹고, 힘든 일을 함께하기도 했고, 같이 어우러져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서로 알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이지’ 하면서 함께 버텼다. 이후 김미옥 노동자는 자동차 부품서열업체인 동진오토텍으로 이직해 잠시 피딩업무를 했다. 맨손으로 화물 상하차와 서열을 연계하는 공정인데, 누구나 기피하는 일이다. 차가 들어오면 무조건 움직여야 해 자기 시간을 가지기 어렵고 여름에는 많이 움직이니까 덥고 겨울에는 춥다. 하지만 김미옥 노동자는 조합원들과 같이 일하게 되어 재미가 났다. 한 공정의 노동자가 결근이라도 하면 가서 때워줘야 해 각 공정의 일을 다 배우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사내 조합원뿐 아니라 화물 상하차 운수 노동자와도 돈독해졌다. 그렇지만 업체가 폐업하면서 이에 맞선 공장 정상화 투쟁이 벌어졌고, 또 이후 노조 사무장을 맡으면서 실제 현장의 조합원들을 많이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여성 노동자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울산에도 여유가 있는 여성이 있지만, 대부분은 힘들다. 남편이 게임이나 노름에 빠져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여성 또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 키우면서 사는 여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금속사업장이 그렇다. 그나마 조선소에서는 여성 업무가 정해져 있어 여성을 모집하지만, 현재 일하고 있는 자동차 부문에서는 여성 비율이 낮거나 아예 없다. 실제로 금속사업장에는 여성 고용률이 극히 낮다. 단적으로, 창사 이래 현대차의 기술직군 여성 공채는 0명이며, 그나마 사내하청 업체 소속이었다가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 나면서 정규직이 된 여성 300여 명이 일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아 여성 노동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금속산업의 여성 배제는 해당 산업뿐 아니라 국내 성별 일자리 격차 전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금속산업 일자리 규모가 전 산업 총량의 12.3%를 차지하는 데 반해 여성 고용률은 5~10%에 그쳐, 여성 고용률이 하락하는 결정적 원인의 하나가 된다. 입직을 하더라도 업무는 성별화되어 있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문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화장실 수부터 극히 적다. 그러나 정규직 일자리에 여성은 한 줌일 뿐이지만, 하청 비정규직 일자리에는 많다. 여성 금속 노동자 조직률 또한 6%로 현저히 낮다. 울산지역의 젠더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자동차, 조선, 화학 등이 몰려 울산 전 산업 중 제조업 비중은 61%나 되지만, 울산의 여성 고용률은 47.1%로 전국 최하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지역별 성별 임금 격차 현황 및 시사점(2022)’ 연구에 따르면 2021년 울산지역 내 시간당 평균 성별 임금 격차는 34.2%로 전국에서도 가장 높았다. 대표적인 여성 다수 일자리인 보건복지서비스업 임금 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울산이 88.3%로 가장 높았다.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울산이 56.2%로 가장 높았고, 근속년수 성 격차는 여성이 남성보다 4.8년 짧아 전국에서 가장 컸다. 한편으로 울산은 경력단절된 기간이 9.9년으로 전국에서 가장 길고 20년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도 15.9%로 가장 높았다. 그만큼 울산은 자본이 구조화한 성적 불평등이 그 어느 지역에서보다도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 노동자가 나서야 그래서 김미옥 사무장은 여성 노동자들이 스스로 성적 계급적 현실과 권리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성을 기준으로 짜인 설비설계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도 성평등하게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바꿔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더불어 여성 노동자들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들도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삼고 공동투쟁할 때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2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진행된 4.14 기후정의파업 선전전 지금 노조에서는 최소한 여성이 그만둔 자리에 여성을 채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데, 남성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대부분 여성도 할 수 있고, 여성 노동자에게 힘든 일은 남성 노동자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더구나 자본이 산업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특히 여성 노동자를 일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업장 중심이 아닌 모든 노동자를 위한 단결된 요구로 민주노조가 모두의 노동권을 위해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민주노조가 더 적극적으로 청년과 여성 노동자의 고민을 자기 의제로 세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대안 역시 금속 노동자들의 고민과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노동자와 분리된 것만 같은 노동조합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기후위기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이 산업을 통제해야 하며, 그것은 성평등한 산업통제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면, 기후정의운동이란 곧 계급투쟁이며 이의 목적이 ‘다양한 성별’의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김미옥 사무장은 울산지역본부가 4.14 기후정의파업 참가를 조직하고 그에 앞서 기후위기에 관한 강연회를 열어 노동자들이 기후 문제에 관심 갖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울산지역은 처음으로 현장 노동자, 노동당, 사회주의 조직들이 힘을 합해 4.14 기후정의파업 노동자 참가단을 구성해 세종시 집회에 참여한다.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는 울산지역본부 기후특위장을 맡고 있는 지회장의 제안과 운영위 논의를 거쳐 22명의 간부가 4.14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