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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자본에 투자하는 소로스 펀드는 집단학살에서 자유롭지 않다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열린사회재단(Open Society Foundation)’으로부터 사업기금을 지원받을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이를 결정하기 위한 26일 전체회의를 앞두고, 차제연 집행위는 “자금의 출처가 중대한 인권 침해에 직접 연루된 경우, 기금 수령 조건이 특정 집단·의제에 대한 침묵을 요구하는 경우, 기금의 운용방식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라는 차제연의 목적에 명백하게 반하거나 해가 되는 경우에는 연대체 차원의 최소 기준선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여야”하며,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볼 때 OSF가 차제연 차원의 최소 기준선을 위배하는 기금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OSF 기금신청 제안을 반대하는 연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조지 소로스라는 국제 금융자본가와 그 자선사업기구인 열린사회재단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포함해, 빅테크 자본들이 세계를 파괴하고 노동자민중을 위기로 몰아넣는 자본주의 체제 지배계급의 불가분한 일부임을 말하고 싶다. 2025년 4분기,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열린사회재단의 시초축적은 금융수탈이다 열린사회재단(OSF)의 기금의 원천은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로부터 나온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는 금융자본이다. 금융자본은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가? 금융자본의 이윤은 노동자민중이 창출한 부를 자본이 착취해 강탈한 결과의 일부다. 특히 금융자본은 단지 산업자본의 착취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시세차익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고유의 수탈적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금융수탈’이라 부른다. 금융자본이 천문학적인 이윤을 벌어들이는 만큼, 노동자민중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 소로스 펀드는 실제로 어떻게 이윤을 획득해왔는가? 예컨대 그는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방산기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 예측하며 방위산업체 주식을 쓸어담아 수익을 냈다. 마치 오늘날 이란 침략전쟁으로 한국 방산주들이 뛰고 있는걸 보고, 여기에 투자해 돈을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자민중이 군축과 평화를 요구로 내걸고 투쟁할 때, 그는 전쟁산업의 성장에 투자하는 댓가로 돈을 벌었다. 소로스 펀드의 가장 유명한 수익창출 일화는 외환투자와 공매도다. 소로스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를 통해 한 달만에 1조 2천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그가 벌어들인 천문학적 이윤은 땅에서 솟았는가? 아니다, 영국노동자민중이 노동으로 만들어낸 부를 수탈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외환위기 때, 태국, 말레이시아 등 위기에 내몰린 저개발국의 통화를 공격해 돈을 벌었다. 헤지펀드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돈을 번다. 위기가 발생할 것처럼 보이면 위기에 ‘베팅’함으로써,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돈을 번다. 금융투기꾼들이 좋아하는 말처럼 세상에 ‘공짜는 없고’, 그가 수탈한 부 만큼의 손실을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이 경제위기로 감당해야한다. 그 과정이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복잡한 연쇄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소로스 펀드의 이윤은 노동자민중의 피땀을 강탈한 것”이라는 명제가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그가 천문학적 부를 거머쥔 것은, 천문학적인 수탈의 결과다. 노동자민중의 사회적 생산물을 수탈하는 것, 그것 외에 금융자본의 이윤에 다른 원천은 없다. 빅테크 자본의 돈줄인 소로스 펀드, 오늘날 집단학살에서 자유로운가? 이것이 소로스가 ‘자선사업’을 할 수 있게된 과거의 축적에 관한 이야기라면, 오늘날은 어떨까. 2025년 4분기, 소로스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소위 AI, 빅테크 기업들이다. 포트폴리오 1위는 아마존, 2위는 구글, 5위는 마이크로소프트 등이다. 소로스 금융자본이 투자하여 이익을 분배받는 이 빅테크 자본들은 어떤 자본들인가? 자연과의 대사를 고려하지 않는 데이터센터의 과잉건설로 지역환경을 파괴하고, 물과 전기를 낭비하며, 천연가스와 원자력 사용을 부활시키는데 앞장서는 기업들이다. 소로스 펀드가 AI를 넘어 ‘우주’ 산업에 투자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주에서 추출산업을 지속하겠다는 허황된 기술절대주의로 세계가 공멸을 향해 나아가는 현실을 덮으려는 게 스페이스X, 아마존, 구글 등 우주 탐사기업이 하고있는 역할이다. 더욱이 소로스 펀드의 투자를 받는 빅테크 자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클라우드 서비스와 AI기술 등 집단학살을 위한 군사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대표로 소로스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많은 지분(7.30%)을 차지하는 아마존을 보자. BDS운동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아마존은 프로젝트 님부스를 통해 구글과 함께 이스라엘 정부와 군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와 인프라를 제공한다. 아마존이 제공하는 클라우드는 수만 개의 표적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표적 데이터베이스’로 사용된다. 기존에 이스라엘은 자체 클라우드를 운영해왔는데, 2023년 10월 가자지구 침공 이후 ‘전례없는 컴퓨팅 성능’이 필요해 아마존으로부터 클라우드를 구매했다고 한다. 즉 집단학살을 가속할 ‘필요성’이 생겼는데, 아마존이 이를 현실화할 클라우드 기술을 제공해준 덕택에 AI의 지원을 받는 신속한 집단학살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이 라벤더, where’s daddy 등 AI시스템을 활용해 가자지구 주민들의 ‘살해 목록’을 작성하고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가자지구 언론인 무함마드 알 므하위시는 빅테크가 제공하는 기술이 어떻게 그의 삶의 모든 부분을 감시해왔으며, 학살에 사용되고 있는지, 아래와 같이 증언한다. +972 매거진과 로컬 콜(Local Call)의 보도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추측되는 위험도에 따라 분류했다. 분류 점수 한 점 차이로 사람의 생사가 갈릴 수 있었다. 정보기관 관련인들은 기자들에게 이러한 시스템 중 하나는 개인을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와의 연관성에 따라 점수를 매겼으며, 수만 명의 이름을 다루었다. 폭격 승인 명령은 빠르게는 30초 이내에 떨어질 수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은 건물을 유형과 수용 인원에 따라 분류하여 폭격 대상을 선정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8200부대의 현역병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및 메타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예비군들의 협력으로 제작된 AI 도구들이 아랍어로 작성된 문자 메시지와 SNS 게시글을 분석했다. 그러한 분류 시스템이 무장 단체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시스템과 협력하면, 단지 이들과 인접한 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일가족이 멸절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 전쟁이 시작되고부터, 나는 알자지라, The Nation, 그리고 +972 매거진과 같은 언론을 통해 가자지구에 대해 보도해 왔다. 2023년 10월 말 무렵, 내 핸드폰은 내가 작성한 기사를 인용하며 살해 협박을 하는 문자들로 가득했다. … 12월 6일, 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집에 들렀다. 내가 걸어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아랍어로 말하며 자신을 데이비드로 소개했다. 이스라엘 군 소속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하비비(아랍어로 “자기야/얘야” 정도의 뜻)로 부르며, 내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들로 가득한 삼 층 건물을 대피시킬 시간이 이십 분 정도 있다고 했다. … 달리 갈 곳도 없는 우리들을 억지로 이동시키려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머무르기를 택했다. 이튿날 오전 7시 30분, 나는 찻잔으로 손을 가져가며 내 아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도드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굉음은 경고 없이 날아왔다. 집은 그대로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쪼개지거나 벽이 무너지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갑작스러운 무게, 콘크리트와 쇠가 나를 납작하게 눌렀다. 내 두 팔이 붙박혔고, 두 다리가 갇혔고, 내 입과 폐로 먼지가 들어찼다. 내 아내와 아들을, 부모님을 불렀다. 처음에는,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때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들이 살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리멍덩해졌다. 어딘가 위에서 돌들이 움직였다. 흐린 음성들. 나는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구조자들이 마침내 잔해를 깨고 들어왔을 때, 빛이 파고들어 왔다. 손들이 잔해를 긁어냈다. 그들은 내가 의식을 되찾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끄집어냈다. 그들은 내 아내와 아들을 꺼냈다. 네 사람이 죽었다. 사촌 둘과 이웃 둘. 이웃 하나는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 집 문 앞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내 집에 있음을 알았다. 아마도 내 핸드폰으로 나를 거기까지 추적했다. 시스템은 내 동선을 먼저 특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를 기준으로 그 반경 내 모두를 이스라엘군 기준 감수할 만한 부차적 희생으로 집계했다. ... 그는 내 삶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학적, 일, 그리고 내가 기사를 작성한 장소들. 앗-쉬파, 알-아우다, 앗-다라즈. 이를 순서대로 읊었다. 그는 내 친척에 관해 물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가 대신 내 사촌들의 이름을 읊었다. 내 가족들이 피신 중인 대피소가 있는 지역을 특정했다. 내가 답하든 얼버무리든 그의 노트는 이를 모두 기록했다. 심문은 수 시간 이어졌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던 그 시간 중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 심문관 눈앞에 있는 스크린에는 내 삶의 사본이 담겨있었다. 쉼 없는 감시, 수집한 전화 통화, 카메라, 그리고 위성 좌표로 쌓아 올린 판본이. 그리고 그는 내 아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라픽은 아직 잘 있습니까? 가슴은 좀 괜찮고?” 그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건 내 집안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려진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나를 2022년으로 돌려보냈다. 라픽은 고작 산후 11달이었고, 우리는 아랍에미리트공화국에 있었다. 라픽은 폐렴에 걸려 두바이 병원에서 이틀을 보내야 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에, 나는 글에서 다루지도 않았고 언론에 내보내지도 않은 내 삶의 내밀한 사항이, 나타났다. 심문관은 그걸 체크 박스 짚고 넘어가듯 입에 올렸다. 내 아들의 짧은 병원 신세에 대해 어딘가에서 들었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공화국 병원 기록에서? 내 통화 기록에서? 내 이메일 사본에서? 그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무함마드 알 므하위시의 글 전문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빅테크 자본들은 가자주민들에 대한 완전한 감시, 추적, 학살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한다. 소로스 펀드는 바로 그 빅테크 자본에 투자해 수익을 내고 있다. 한편 열린사회재단(OSF)은 10월 7일 이후 자행된 집단학살에 대해 언급할 때, ‘하마스의 잔혹한 공격을 규탄‘하고, ‘이스라엘에게는 자위권이 있다’라는 문장을 삽입한 다음, ‘이스라엘이 지나친 복수를 하며 가자의 인도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휴전과 두 국가 해법 등등에 대해 얘기한다. 열린사회재단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해 발행한 성명 전반에서 식민지배의 현실을 지우는 양비론적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관이 어떻게 식민점령의 현실을 가리고 집단학살을 용인하는지, 그래서 조지 소로스가 거액을 후원한 바이든 정부가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유지하며 ‘학살자 조’라 불리게 되었는지 지난 몇년 간 목격했다. 양 당사자 간의 문제로 보게 되면 양비론을 피할 수 없다. 양비론은 어느 순간, 이스라엘이 지나치긴 하지만 팔레스타인도 일정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키는 밑그림으로 작용한다. 팔레스타인이 저항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식민화를 멈출 것이라는 기이한 논리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틀린 사고지만, 지금은 특히 발화자의 의도와 무관하게도 집단학살 정당화 논리와 일치하기 때문에 한층 위험한 관점이다. 상기하였듯 소로스 펀드는 빅테크 자본에 투자해 돈을 번다. 빅테크 자본은 지구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을 파괴한다. 한편 소로스 펀드의 돈에 의해 운영되는 열린 사회 재단은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를 우려하고, 이스라엘에게 자제를 촉구한다. 그리고 인종정의에, 여성의 권리에, LGBT의 권리에 후원한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여성과 성소수자가 빅테크 자본의 공모에 의해 감시, 추적당해 죽어가는 동안 말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OSF 자선사업은 조지 소로스의 손에 묻힌 피를 닦아내는 손수건이다”는 말 외에 나는 이 현실을 이해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총체적 진실이다. 빅테크 자본을 포트폴리오에 담아 돈을 버는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와 열린사회재단은 동일한 체제의 앞뒷면이다. 만약 조지 소로스와 유사하게, ‘자선사업’을 많이 해온 빌게이츠가 운영하는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자는 논의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빌게이츠는 앱스타인과 직접 연루돼 여성들을 착취했고, 이스라엘과 공모하는 핵심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이다. 그의 자선단체로부터 돈을 받자는 결정은 훨씬 더 쉽게 반대에 부딪혔으리라 상상한다. 그런데 단지 좀 더 교묘하고, 좀 더 연루의 사슬이 길 뿐, 소로스 재단과 빌게이츠 재단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삼성대자본이 비슷한 방식으로 삼성인권재단을 운영한다면 어떨까. (그런 자선사업을 삼성이 하는지는 모르지만 상상해보는 것이다) 삼성이 한편에선 고 김치엽 님을 포함한 반도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베트남으로 노조파괴를 수출하고 오염, 산재를 외주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권을 말하며 시민단체를 후원한다면 우리는 이를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삼성은 가깝고 소로스는 멀게 느껴진다 하여 소로스 재단의 후원을 받을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 노동자운동에 나서자 이 글을 통해 해당 ‘자금의 출처가 중대한 인권 침해에 직접 연루된 경우’인지에 대한 판단을 재고해주실 것을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 참여하는 동지들에게 요청드린다. 이 세계에 착취와 차별과 억압이 오늘도 유지될 수 있는 것, 학살과 전쟁이 벌어지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조지 소로스를 포함한 한 줌의 자본가들이 이 세상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선사업이라고 내놓는 그의 부는 금융수탈을 통해 노동자민중에게서 강탈해간 부이며, 노동자민중의 운동은 그런 시혜와 동정을 거부하며 여기까지 왔다. 단지 과거의 축적과정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날에도, 이 금융자본가가 자선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부의 원천은 지구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는 과정에 적극 연루돼 있으며, 그로부터 수익을 얻고 있다. 사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함께하는 동지들, 차별과 억압에 맞서 함께 싸워온 동지들이 이 정도 사실을 모를 동지들이 아님을 알고 있다. 동지들에게 OSF의 후원을 받지 말자고 호소하는 걸 넘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 노동자운동을 현실로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필자 또한 크나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운동이 금융투기자본의 후원을 받는 길로 가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뒤집을 수는 없다. “상당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중요 과제로 여기지 않았거나, 중요 과제로 여기는 경우에도 이를 지역으로, 현장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재정이 부족하다면, 바로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OSF 기금을 받는 대신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과 함께 더 넓은 운동을 조직하자고 제안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동투쟁을, 재정지원을 모든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요구합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인 노동자 운동을, 사회적 총파업을 조직합시다. 이를 통해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관철해냅시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는 오래된 구절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비판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인권운동과 노동자민중운동의 굳건한 연대를 통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쟁취해 냅시다. 그 길에 사력을 다해 연대하겠습니다.”라는 반대 연명 제안문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본다. 나 또한 사력을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 3월 26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세집담회] 차별금지법 쟁취 노동자 투쟁, 이렇게 하자!’를 진행한다. 해당 정세집담회를 계기로 더 큰 차별금지법 쟁취 노동자 운동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3-24 | 조회 15,462 -
여성대회 축사한 원민경 성평등부장관, 그는 살해된 이란 여아들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여성대회 부스에는 ‘1366서울센터’가, 대회에는 원청 사용자 원민경 성평등가족부장관이 참가했지만, 그 사측에 맞서 1년째 싸우고 있는 ‘1366서울센터분회’는 부분파업을 하고 3.8 여성파업에 참가했다. 성평등한 임금과 승급 체계를 위해 투쟁해 온 KEC지회는 간부파업을 하고 참가했다. 여성억압과 착취에 맞선다면, 분명 어깨를 걸어야 할 이는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며 여성운동이라 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계급 페미니즘이며, 계급투쟁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 3월 7일 열린 제41회 한국여성대회 장면 2026년 3·8 국제여성의날을 기념하는 제41회 한국여성대회가 7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개최됐다. 참가자들은 ‘빛의 혁명을 완수하라!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는 슬로건 하에 성평등, 젠더 폭력 근절, 정치적 성별 균형 등을 촉구했다. 50여 개의 시민참여부스가 마련되고, 수천 명의 참여자와 수백 개의 깃발이 대회장을 가득 메웠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이날 대회에는 전국 여성단체들이 총집결했고, 부스를 비롯해 다양한 성소수자 인권 단체도 참여했다. 팔레스타인긴급행동도 집회를 앞당겨 진행하고 여성대회로 행진했다. 그만큼 이번 여성대회는 구조적 성차별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발언대가 되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윤석열은 감옥에 갔지만, 구조적 성차별은 여전하며 성평등을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시 표명했고, 이에 참가자들은 기꺼이 동참했다. 그런데 52개의 부스 운영 주체 중에는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와 조국혁신당 성평등위원회도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한 진보당, 기본소득당도 있었고, 기후운동 판이었다면 다시 논란이 됐을 만하지만, 이 얘기는 꺼내지도 못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주한캐나다대사관에, 대회에는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의 축사도 이어졌다. 이 외에도 유한킴벌리, 아모레 퍼시픽, KPX전력거래소와 같은 기업도 후원 주체로 등장했다.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교대근무제 등을 문제로 현재 투쟁하고 있는 1366센터도 부스를 차렸다. 그런데 과연 3.8 국제여성의날을 기념하는 여성대회에 이들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 맞았을까? 제41회 한국여성대회 후원에 성평등가족부, 협찬에 여러 기업명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은 3.8 국제여성의날을 기념할 자격이 없다 물론 그렇지 않다. 민주당이나 자본은 3.8 국제여성의날을 기념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 정부는 국내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여성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가장 먼저 밀어낸 장본인이자, 국제적으로는 해외 여성과 어린이의 목숨을 가장 먼저 빼앗고 짓밟은 미국 제국주의의 동맹으로 과거 이라크 전쟁부터 최근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까지 후원하고 있는 살인마 정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김대중 민주당 정부가 밀어붙인 정리해고제와 파견제에 거리로 밀려난 다수 노동자의 성별은 여성이었고, 이때부터 구조화된 비정규직 제도로 인하여 여성은 단기계약제, 시간제,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등 각종 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비정규직법(기간제법)을 도입했고, 문재인 정부는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했다. 그 결과 현재 여성 비정규직은 남성보다 131만 명이나 많은 처지가 됐다. 그리고 이 비정규직이란 신분은 여성에게 납덩이처럼 들러붙어 임금과 노동조건 전반에 걸쳐 구조적 성차별을 더욱 공고히 한다. 가령, 여성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만 해도 남성 정규직의 40% 수준일 뿐이다. 이재명 정부 역시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한 2년에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등 노동유연화 드라이브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가 무슨 자격으로 여성대회에 참석할 수 있단 말인가. 미 제국주의 패권 전략에 한반도 편입시킨 민주당 민주당 정권은 국제적으로는 직접 손에 피를 묻혔다. 노무현 정권은 2004년 이라크 침략 전쟁에 3천6백 병력을 파병해 참수 사건까지 빚었다. 나아가 2006년에는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을 뒷받침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의 작전 상대는 북한에서 동아시아로 확대되어 한반도 전쟁위기도 가중했다. 촛불시위의 여파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몰래 도입한 사드를 소성리에서 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와는 다르게 사드 체계를 고착했고, 한미군사동맹 기조 속에서 대미군사협력을 강화했다. 물론 민주당 정부가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 전략에 편입되어 있던 바로 그때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한해에도 수백억 달러씩의 군사지원금을 받으며 팔레스타인을 침략했다. 특히 문재인 정권 때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 공격을 심화했지만, 그런 이스라엘과 오히려 경제, 군사 협력을 확대했다. 예컨대, 문재인 정권은 2021년에는 한-이스라엘FTA를 체결하고, 과학기술, 스타트업 협력 등 방산 협력을 확대했다. 결국 그 사이 한국은 유엔 특별보고관도 인정한 ‘가자 학살 공모국’이 됐다. 한국에서는 매년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가 이스라엘로 팔려 갔고, 한국이 판 부품으로 조립된 F-35기는 팔레스타인 가자 상공을 날며 민중을 학살했다. 그렇게 학살된 사망자 중 여성과 아동·청소년이 70%에 달한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수출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이란을 침략한 후 사드를 비롯해 주한미군 일부 전력이 중동으로 차출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당시 노무현이 맺은 협약 덕택이다. 이재명 정부는 입 뻥긋도 못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허락하는 ‘페미니즘’ 이 같은 민주당에서 전국여성위원회가 ‘여성’들의 위원회라고 해서 유별난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현 체제를 아낌없는 지원하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이를테면, 이수진 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은 대기업 특혜지원과 노동시간 규제 완화, 기후 위기 심화로 논란을 빚은 반도체특별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여성대회 무대에 올라간 원민경 장관은 또 어떤가? 그는 여성 인권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과연 이 이력을 현 정부에도 이어가고 있는가? 원 장관이 여성의날, 기지촌 피해 여성들에게 정부의 사과를 전했지만, 지금도 여성빈곤을 야기해 성노동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는 아무런 말이 없다. 오히려 그는 비동의 강간죄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민주당의 기존 태도인 ‘사회적 합의’를 다시 읊으며 면죄부를 주고 있다. 여성 노동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이재명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그에게는 타 부처 소관 정책일 뿐이다. 결국 원민경 장관은 이재명 정부가 ‘허락’하는 ‘페미니즘’만 할 수 있다. 원 장관 역시 아무런 갈등 없이 민주당의 노선을 추종한다. 결과적으로 현 성평등가족부의 정책이란 자본가 편에서 선 이재명 정부의,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 패권을 추종하는 이재명 정부가 허락하는 여성 정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현 성평등가족부는 여성들이 투잡, 쓰리잡을 전전하도록 하는 비정규직을 줄일 수도, 팔레스타인 여아의 머리에 꽂힐 무기 판매를 막을 수도 없다. 물론 지금도 이재명 정부가 미국이 이란을 타격하며 무자비하게 살해한 여성 아동들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 원민경 장관 역시 그러하다. 실패한 성주류화 정책 그러면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왜 이 같은 인물과 조직에 부스를 허락하고 무대에 올린 것일까? 주류 여성운동에 국회나 정부는 ‘성평등’ 관점에서 개입/협력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여성운동은 ‘성주류화’ 전략을 채택하고 국회와 정부에 진출했다. 공공기관 단체장을 맡고, 잘되면 국회의원까지 될 수 있었다. 정부의 각종 사업을 민간위탁해 진행하고도 있다. 즉, ‘성주류화 정책’ 하에 ‘거버넌스’(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하여 의사결정한다는 지배 구조) 체제를 구성해 왔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 때 최초로 설립된 여성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관행이다. 물론 기존 권력에 대한 개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거버넌스’ 체제는 전체 노동자계급운동과는 유리된 채 부문운동만의 창구로 기능했다. 결국 각종 시민단체가 아무리 ‘진보적’ 전문성을 토대로 정부에 개입한들 그것은 현 정부가 그려놓은 선을 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거버넌스’란 자본가정부가 계급운동으로부터 여성, 시민운동을 갈라치고 포섭하는 수단이 되었다. 1366서울센터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교대근무제를 바꾸기 위해 1년 가까이 투쟁하는데도 여성대회에 1366서울센터 부스가 설치될 수 있던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런데도 주류 여성운동이 거버넌스 체제의 일 주체로서 기능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자유, 평등, 정의라는 자유주의 가치에 근거하여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지만, 이들이 성차별을 폐지하려는 이유는 남성과 공정하게 경쟁하려는 데 있을 뿐이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가부장제만이 문제지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들이 지향하는 체제는 ‘성평등한 자본주의’ 또는 ‘성인지적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애초 여성억압적이기 때문에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희망 사항이다. 주류 여성운동이 지지하는 ‘정체성 정치’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기초하여 여성을 약자화할 뿐, 계급적 당파성과는 무관하다. 스튜디오 알 | 3월 6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3.8 여성파업대회 장면. 전국학습지산업노동자, KEC지회, 톨게이트지부, 1366서울센터분회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참가해 구조적 성차별, 여성억압과 착취에 맞선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페미니즘, 3.8 여성파업 운동을 조직하자 그런데 3.8 국제여성의날이 과연 어떤 날인가? 자본주의 초기 살인적인 노동조건에 떨쳐 일어난 여성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혁명적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제안한 날이다. 자본주의 여성억압에 맞서 여성 노동자들의 선구적인 투쟁을 지지하며 기념하고 다시 싸우겠다고 다짐하는 날이다. 그런 자리에 자본가 정부의 관료를 세운 것은 역사를 우롱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3.8 국제여성의날은 노동자계급의 날이다. 그리고 우리가 3.8 여성파업을 조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조적 성차별에 맞서, 여성 억압과 착취에 맞서 생산과 재생산을 중단하는 정치총파업으로서의 여성파업 조직은 여성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과 뼈로 만들어진 3.8 국제여성의날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한 운동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여성대회 부스에는 ‘1366서울센터’가, 대회에는 원청 사용자 원민경 성평등가족부장관이 참가지만, 그 사측에 맞서 1년째 싸우고 있는 ‘1366서울센터분회’는 부분파업을 하고 3.8 여성파업에 참가했다. 성평등한 임금과 승급 체계를 위해 투쟁해 온 KEC지회는 간부파업을 하고 참가했다. 여성억압과 착취에 맞선다면, 분명 어깨를 걸어야 할 이는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며 여성운동이라 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계급 페미니즘이며, 계급투쟁이다.2026-03-12 | 조회 2,519 -
[기고]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들어본 반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반올림·빵과장미의 ‘찾아가는 집담회’ 현장 스케치 2026년 2월 21일. 여성의 날을 앞둔 토요일 오후, 설 연휴의 들뜬 기운이 가시지 않은 거리와 달리 내가 향한 곳에는 조금 특별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우리는 분노와 결의를 다지곤 하지만, 올해 내 마음 한구석은 유독 무거웠다. 초부터 화려한 AI 호황과 반도체 산업의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지만, 그 화려함 뒤에 더욱 잔혹하게 가려진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작년 9월 27일, 기후정의행진 현장에서 반올림 부스를 도우며 마주했던 영정사진 속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 생생한 모습들을 기억하며 묻고 싶었다. 모두가 찬양하는 반도체 산업의 그늘 아래, 여성 노동자들의 '오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진짜 목소리를 세상에 꺼내 놓기 위한 우리의 간절한 시도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반도체 자본과 성장을 강조하는 정부, 이들은 현장에서 일하고 퇴근해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여성 노동자의 이중굴레를 걷어내고 있을까? 더는 일터에서 아프지 않고 죽지 않는 노동안전의 성장이 찾아온다는 것일까? 오히려 경제, 전쟁, 체제 위기가 더해져 잘나가는 때에 저들은 여성 노동자의 이중굴레를 더 옥죄고 있기에,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투쟁으로 일어서는 것 아닐까. 1부: 왜 ‘여성파업’을 고민할까? 집담회는 '빵과장미’의 정은희 동지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사전 신청을 한 동지들이 하나둘 도착하며 반올림 사무실을 채웠다. 1부, 나는 발제자로서 사람들 앞에 섰다. 준비한 원고를 넘기며 내가 가장 깊게 고민하고 함께 나누고 싶었던 지점은 바로 ‘여성파업을 조직해야 하는 이유’를 되짚어 보는 것이었다. 다크램 인형권익위원회 동지의 발표 장면 빵과장미의 활동명 '광고판' 동지가 준비해 준 슬라이드를 보며 발제문을 준비할 때, 나는 밀려오는 분노로 마음이 힘들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노동 탄압의 칼날은 멈추지 않았고, 그 칼날은 늘 가장 약한 곳부터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지 않는 반도체특별법은 지난 1월 본회의를 통과했고, 2월 2일에는 세종호텔에서 농성하던 동지들이 폭력적으로 연행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여전히 노동자를 탄압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더욱 깊은 소외로 내몰리고 있었다. 나는 이 비참한 현실을 단순히 '힘들다'는 하소연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겪는 이 부당함을 하나로 모아, 세상을 멈추는 강력한 힘인 ‘여성파업’으로 조직해 보자는 제안을 던졌다. 2부: 화려한 AI 호황 속 더욱 숨겨지는 노동자들의 현실 2부가 시작되기 전, 동지들이 함께 만든 반올림 마스코트 ‘진복이’ 영상을 보았다. 인형 진복이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현실을 간결하면서도 날카롭게 짚어주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모두에게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어 반올림의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슬라이드에는 그동안 외면당했던 산재 피해자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지나갔고, 이종란 노무사님은 눈물을 참으며 AI 산업의 화려한 전망이나 반도체 특별법 같은 이야기들이 정작 현장 노동자들의 생명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이종란 노무사의 발표 장면 [이종란 노무사 발제문 발췌] “조혈기, 생식기, 정신질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이미 2020년 정부실태조사로 밝혀졌음에도 예방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생식독성 피해로 인한 2세 질환 피해자들이 용기내어 산재신청을 했지만 정부와 국회의 외면속에 자녀산재법 개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고, 우울, 수면장애, 아파도 출근하는 프리젠티즘 등의 정신건강 악화의 문제도 지속되거나 악화되었다. 2025년 3월 26일 삼성반도체 연구개발노동자 고 김치엽 님은 인력부족 속에 성과를 내기 위한 프로젝트팀에서 우울, 수면장애를 견디며 일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국가가 경제 성장을 말할 때, 그 성장의 밑바탕이 된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은 철저히 지워졌다. 특히 반도체 고등학교까지 만들며 아이들을 현장으로 밀어 넣으려는 정부가 정작 그 아이들이 마주할 위험은 감추고 있다는 사실에 주먹이 쥐어졌다. 발제 내용 중 반도체 산업에 여성 노동자가 유독 많은 이유가 기억에 남는다. 아시아의 기업주들이 여성 노동자를 선호해온 이유는 ‘손이 날래고 참을성이 있어 단순 조립 업무에 적합하다’는 성별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고 통제가 쉽다는 이유로 젊은 여성들을 채용해왔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짓밟고 일어선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어서 전 삼성전자 노동자이자 산재 피해 당사자인 정향숙 활동가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활동가님이 직접 겪은 현장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별적이고 참담했다. 정향숙 활동가의 발표 장면 [정향숙 활동가 발제문 발췌] “개인적으로는 한 번의 계류 유산*을 경험했습니다. 당시에는 유산을 하게 되면 개인 월차를 사용해서 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 일을 일과 연결해서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유산이나 여성 질환을 겪는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일과 연결해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물질을 다루고 있었는지, 그것이 몸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깊이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산재라는 개념 자체가 저희가 일하는 곳엔 없었습니다. 저 역시 나중에 중재 협약에 유산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신청을 했고 보상을 받긴 했으나, ‘이러한 것도 보상을 해주는구나’였지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어떠한 문제 때문에 이런 걸 보상해 주지?’라는 생각은 못 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가 많았던 곳이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하는 여사원들이 많았습니다. 관리자였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복직 계획까지 관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했던 ‘산재’는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삶 그 자체였다. 발제 중 “왜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개인의 문제로만 남았는지, 왜 그때는 질문하지 않았는지” 라는 발언에 특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남성 엔지니어들이 가진 ‘환경수첩’조차 지급받지 못했다고 한다. 사측은 이미 알고 있는 위험 속에 뻔뻔하게도 노동자들을 갈아 넣고 있었다. 3부: 남아있는 이야기 모든 발제가 끝나고, 3부는 참가자들의 소감과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미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온 참가자들이었음에도, 생생한 증언 앞에서 더욱 뜨겁게 끓어오르는 분노가 느껴졌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겪는 차별을 묻는 한 참가자의 질문을 들으며, 우리가 가진 연대의 마음이 얼마나 더 넓어져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아픈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너머의 아픔까지 먼저 들여다보고 힘을 합쳐 차별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가 아닐까. 집담회는 마무리되었지만, 현장의 열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3월 6일 3.8 여성파업대회와 고 황유미 님의 19주기 추모제에 이어 이 불꽃이 세상으로 나와 더욱 타오르기를 기대하며, 다시 한번 여성의 날의 의미를 가슴 깊이 되새겨본다. *임신 20주 이내에 태아가 사망하고, 자궁 경부가 닫힌 채로 사망한 태아가 자중 내에 수일에서 수주 동안 배출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한다.2026-03-08 | 조회 1,688 -
2026년 3.8 여성파업의 요구와 의미2026년, 우리에게는 노동자민중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2026년은 격동하는 세계정세가 전쟁과 위기의 시대로 명확한 다음 발을 내딛는 해였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쇠퇴하는 자신을 연명하기 위해 유사한 위기마다 반복해 온 필승의 카드, 즉 전쟁을 꺼냈다. 어느 나라의 어떤 노동자민중도 이 거대한 체제의 리듬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졌다. 1985년 출간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발행 이후 숱한 세월 동안 제국주의의 가부장적 성격을 폭로하며 여성 운동의 주요한 관용구로 쓰였다. 그러나 작금의 세계를 둘러보자. 독일에서 누구보다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극우 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의 당수 앨리스 바이델은 레즈비언 여성이다. 유색인종 동성 파트너를 둔 레즈비언 여성 정치인에 의해 독일의 수많은 이주민 여성들은 길거리로, 더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자리로, 때로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극우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 당수이며 우익 학생 운동가로 활동했던 19살부터 인터뷰지에 “무솔리니를 존경한다”고 답해 논란을 빚었던 조르자 멜로니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다. “난민을 막기 위해 군대로 해상을 봉쇄하겠다”, “동성애자와 악수를 하든 토사물에 키스를 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토사물에 키스를 하겠다”, “이슬람 광신도와 테러리스트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시민에게 훈장을 수여할 것”이라는 발언 모두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가 공식 석방에서 발언한 말이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원내대표 마린 르펜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퍼스트’를 핵심 정신으로 내세운 마린 르펜은 누구보다 우익적 민족주의의 전면에 서서 프랑스 전역을 극우화의 파랑에 내던지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목격된다. 당선 후 초기에 일본 의회의 여남동수 내각 의지를 밝혀 한국 여성의당으로부터 환영사를 듣기도 했던 다카이치 사나에는 “유사시 대만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발언으로 아슬아슬하던 동아시아 정세를 제3차 세계대전 위기의 복판에 못 박았다. 뿐만 아니라 2026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며 방위비 국내총생산(GDP) 2% 이상 증액, 장거리 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 도입, 자위대의 사실상 군대화 등과 같은 다카이치식 안보 청사진은 더욱 전면화하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억압과 차별은 노동자계급 여성을 더욱 가혹하게 강타하기 시작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세계에 전쟁을 다시 호출했을 때 가장 먼저, 가장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은 태반이 민간인 여성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학살당한 수만 명의 민간인 사망자 중 2024년 UN 집계 기준 여성과 어린이는 무려 70%다. 학살이 1년 더 지속된 2026년 2월에는 얼마나 많은 여성이 가자지구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전쟁 범죄에 의해 살해당했을지 차마 헤아릴 수도 없다. 일자리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한국 국가데이터처 보고에 따르면 2025년 3/4분기 기준 국내 노동시장에서 남성 일자리가 4만개 감소한 반면, 여성 일자리는 17만9000개 증가했다.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에서 22만 3천개가 증가하며 가장 큰 폭의 상승을 보인 데 반해 20대 이하(20대 포함)에서는 고작 12만 7천개, 30대는 8만 5천개였다. 왜 경제가 어려워졌는데. 노동자민중을 향한 자본주의의 착취가 심화하고만 있는데 여성 일자리는 늘어났을까? 지난 2월 26일 옥스팜코리아가 발표한 '2026 옥스팜 도넛 리포트'는 국내 여성 일자리의 확대가 임금 상승으로 직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여성은 남성과 같은 연봉을 벌기 위해 130일을 더 일해야 한다는 사실. 결혼 후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보다 평균 8.9% 감소했고 첫 자녀 출산 후 10년이 지나면 임금 격차가 33.4%까지 확대됐다는 사실을 담은 이 보고는 짐짓 섬뜩하기까지 하다. 한국 자본주의는 위기를 전가할 대상으로 청년보다는 중/장년의, 남성보다는 여성의 노동자를 선택했다. 지난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리벳공 로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전례 없는 헐값의 장시간 노동으로 군수, 농업, 운송 산업 등에 대거 인입했던 방식과 하나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2026 3.8 여성파업 요구안, 무엇을 다루는가 일터의 성차별 금지, 진짜 사장 책임 강화 : 세계1위 K-성별임금격차, 진짜 사장이 책임지고 채용부터 임금/업무/고용형태 등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의 일터의 성차별 금지 : 저임금/비정규직노동자에게 고용불안 및 임금격차 ‘보상수당’ 지급 : 성인지적 노동환경 조성과 노동재해 기준 개선 : 국제노동기구(ILO)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190호 협약 즉각 비준 한국의 성별임금 격차는 집계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OECD 평균 하위권이었다. 한국의 끈질긴 노동자 투쟁으로 개정된 노조법 2·3조가 3월부터 실 시행에 들어간다. 2026년에는 임금 수준과 업무 내용,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원청 사장이 우리의 노동을 책임져야 한다. 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을 원청 사장이 책임지라는 구호가 무엇보다 여성 의제의 요구여야만 할까? 여성 노동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저임금 고용 관계에 얽매여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 2025년 8월 기준으로는 임금노동자 2241만 명 중 여성 비정규직(530만 명·50.7%)은 정규직(516만 명·49.3%)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2022~2023년 49.7%에서 2024~2025년 50.7%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보고는 아예 기간을 정한 일자리와 단시간 일자리가 여성 노동을 흡수하는 주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의미로 이 현상을 진단하기도 했다. 임금 격차 역시 어마어마했다.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볼 때 남성 비정규직은 60.5%, 여성 정규직은 75.1%, 여성 비정규직은 39.0% 수준에 그쳤다. 여성의 노동은 한국에서 가장 밑바닥 노동 취급을 받고 있다. 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인 지배·결정권이 있는 자(원청)를 사용자로 인정하여 교섭 의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노조법 2조가 개정된 지금, 필요한 것은 일터의 성차별 금지로 평등한 노동 환경을 조성할 의무와 고용불안 및 성별 임금 격차 등의 억압을 진짜 사장 원청이 해결할 책임을 부과하는 일이다. 가사사용인/특수고용/프리랜서/플랫폼/장애인/이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전면 쟁취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 여성노동자의 이름을 빼앗긴 가사사용인,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5인미만 사업장, 장애인에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돌봄 공공성, 돌봄 일자리 확대 : 모든 가사돌봄 분야 국가 책임, 공공성 강화, 돌봄 일자리 대폭 창출 : 임금삭감/업무과중/야간노동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청년 일자리 확충하고 저녁있는 삶 보장 한국 사회에서 가사사용인·특수고용·프리랜서·플랫폼·장애인·이주 노동자는 여전히 ‘노동자’로 불리지 못한 채 법의 바깥에 방치돼 있다. 여성노동자의 이름을 빼앗긴 채 계약서 한 장으로, 사업자등록증 하나로, 플랫폼 앱 하나로 권리를 박탈당했다. 가사사용인과 돌봄 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다수는 여성이다. 5인 미만 사업장, 호출형 플랫폼, 개인 위탁 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무권리 상태가 구조화되어 왔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제외는 곧 여성 노동을 ‘보조적’, ‘부차적’ 노동으로 취급해 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라는 요구는 단지 법 조항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에 따라 위계화된 노동구조를 해체하라는 요구다. 가사사용인·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장애인·이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전면 쟁취는 여성 의제의 중심이어야 한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유급 노동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다. 그 위에 가사와 돌봄이라는 무급 노동이 겹겹이 얹힌다. 쓰레기를 대신 분리수거해 주는 서비스, 새벽 배송, 세탁 대행, 방문 돌봄 서비스가 ‘라이징 산업’으로 성장했지만, 이는 여성의 이중 노동을 시장으로 전가한 결과일 뿐이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는 원치 않는 소비를 감내해야 하고, 그 산업에서 일하는 또 다른 여성 노동자는 플랫폼에 종속되어 헐값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다. 무급이던 가사·돌봄 노동은 값싼 외주 노동으로 전환되었을 뿐, 억압의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제 필요한 가사 및 돌봄 노동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노동이라면, 그것은 개인 여성의 희생이 아니라 공적 책임이어야 한다. 공공 돌봄 인프라의 대폭 확충, 가사·돌봄 노동자의 직접 고용과 안정적 임금 보장, 플랫폼 종속 구조의 규제와 노동자성 인정이 즉각 시행되어야 한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가사와 돌봄이 필요하다면, 그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될 것이 아니라 자본과 정부에 부과되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라. 가사사용인·특수고용·프리랜서·플랫폼·장애인·이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전면 보장하라. 가사와 돌봄을 시장에 떠넘기지 말고 국가가 책임져라. 여성 노동을 가장 밑바닥으로 밀어 넣는 구조를 해체하는 것, 그것이 올해 여성파업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정의 중 하나이다. 최저임금 확대 적용과 대폭 인상 :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가사사용인 장애인 등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법 적용 : 최저임금 ‘비혼단신노동자실태생계비’의 100%로 최저금액 적용, 물가연동제 시행 : 최저임금법 위반 사용자에게는 노동자에게 체불/위반임금 30배 보상 지급 및 벌금 부과 2025년 3월 30일 한국노동연구원의 ‘고령 저소득 노동 실태와 정책 대응’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는 55살 이상 고령 임금노동자 가운데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019년 30.9%, 2021년 30.2%, 2023년 33.0%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령 노동자 10명이 있으면 3명 조금 넘게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인 셈이다. 개중에서도 성별로는 55살 이상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 비중은 남성보다 2배 더 높았다고 보고는 나타낸다. 여성 고령 노동자 중 저임금 비중은 2019년 44.4%, 2021년 44.5%, 2023년 47.6%로 40%대를 유지했다. 한국의 여성 고령 노동자 10명이 있다고 다시 가정할 때, 그중 네 명은 무조건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라는 뜻이다. 고령 여성이 과거 결혼 또는 임신,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어 현행 연금 제도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임을 고려할 때, 이들은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이재명 정부의 핑계 이면에서 죽어가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 여성 역시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등 고용 형태의 불안정 속에서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2024년 10월 발표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병의원 종사자를 제외한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소위 ‘비임금 노동자’는 2018년 604만2천288명에서 2022년 837만7천56명으로 233만4천768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도 성별로 보면 전체 31.3%라는 적지 않은 수가 여성이었으나, 2022년 기준 남성 비임금 노동자의 연봉은 평균 1천312만원, 여성 비임금 노동자의 연봉은 평균 944만원이었다. 2021년 발표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연구는 이와 같은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의 증가세 속에서 여성 노동자에게 어떤 억압과 차별이 가해지는지를 빠르게 직관했다. 총 1015명을 대답으로 한 2021년 연구에서부터 이미 프리랜서 계약 미체결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절반(49.2%) 정도였고, 그중 노동시장에서 저소득 여성 노동자일수록 계약 체결 확률이 낮았다고 밝혔다. 여성에게는 최저임금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의 저임금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에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대신 사업장별로 적정임금을 받도록”하겠다며 “정부가 제도적으로 (적정임금 지급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변명했지만.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더 이상 그 변명을 들어줄 여유조차 없다. 한국의 여성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확대 고용과 인상은 표현 그대로 생존의 문제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강제단속/추방 금지 : 속헹와 뚜완에게 정의를! Free Job Change(프리 잡 체인지,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금지, 미등록 강제단속 및 추방 금지 한국의 이주노동 정책은 오랫동안 통제와 단속을 중심에 두어 왔다. 노동은 필요로 하면서도, 그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의 권리는 체류 자격과 고용주에게 종속시켰다. 사용자를 떠날 자유가 없는 고용 구조는 사실상 복종을 강제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선택권과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임금체불과 폭언,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임노동 관계는 계약이 아니라 구속에 불과하다. 저임금·고위험 업종에 집중된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체류 불안을 빌미로 한 위협에 특히 더 취약하다. 신고하지 못하고, 옮기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구조 속에서 권리는 공백이 된다. 이동의 자유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인권의 최소선이다. 최근 이재명 정부 주도 아래 APEC 맞이 이주민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고 뚜완의 사망은 결코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제도의 귀결이다. 강제 단속과 추방을 전면에 세운 정책은 노동자를 지하로 밀어 넣고, 그 결과 더 위험한 현장과 더 긴 노동시간, 더 낮은 임금으로 내몬다. 반이민 담론은 ‘치안’과 ‘보호’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국가 폭력의 전면에 세운다. 그 과정에서 이주 여성들은 생계와 안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요구는 분명하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자유화. 고용주에 종속된 허가 구조 개편. 체류 자격을 이유로 한 강제단속과 추방의 중단. 강제노동을 낳는 제도적 장치의 폐기. 미등록 여부와 무관한 기본적 노동권 보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정부의 의무가 됐다. 국제적으로 극우는 이주민 남성이 정주민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적극 선전한다. 하지만 그들의 선전은 그 이주민 추방의 과정 속에서 이주민 여성들이 죽음과 공포로 내몰린다는 사실, 국가 폭력에 적극적으로 노출된다는 사실, 탄압을 피하기 위해 더 불안하고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린다는 사실을 철저히 배제한다. 국적과 성별은 권리의 조건이 될 수 없다. 일할 권리, 부당한 일터를 떠날 권리, 폭력과 공포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모두에게 동일해야 한다. 통제가 아니라 권리로, 추방이 아니라 존엄으로 정책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제기하는 요구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과 젠더차별 금지 :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 장애, 국적과 인종 등 차별 금지 : 성별정정수술 건강 보험 적용 : 비수술 성별정정 제도화 세계 곳곳에서 성별을 둘로만 고정하려는 정치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의 “내 정부가 인정하는 성별은 두 가지뿐”이라는 선언 이후 그 여파 속에서 트랜스 혐오는 국제 정세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한국 사회 역시 그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차별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 장애, 국적과 인종을 이유로 한 차별을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배제를 제도화하는 일이다. 일터와 학교, 의료와 주거에서 반복되는 배제는 개인의 ‘선택’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선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정부와 국회가 책임지고 제정해야 하고, 나아가 아래로부터 조직한 우리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그들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조금도 더 미룰 수 없다.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고용·의료·교육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실효성 있는 구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삶을 가로막는 의료·법적 장벽을 제거하고, 성별정정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과도한 비용이 개인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것. 무엇보다 트랜스젠더의 의료 접근성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비수술 성별정정 제도의 도입 역시 같다. 경제적 사정, 건강 상태, 개인적 신념 등 다양한 이유로 수술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특정한 의료 행위를 거쳐야만 법적 성별을 인정받는 구조는 또 다른 강제다. 누구나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로 호명되고 기록될 권리를 가져야 한다. 2026 3.8 여성파업의 요구는 분명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즉각 제정하라.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 장애, 국적과 인종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전면 금지하라. 성별정정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라. 비수술 성별정정 제도를 제도화하라. 존재를 부정하는 정치에 맞서,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토대를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한다. 비동의강간죄 도입/포괄적 성교육 의무화/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 비동의강간죄 도입 : 학교와 일터, 군대 등 모든 사회기관에 포괄적 성교육 의무 도입 :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해마다 반복되는 성폭력 통계는 이 사회가 무엇을 외면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2024년 한 해에만 3만 건이 넘는 성범죄가 접수되었고, 피해자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폭행과 협박’의 존재를 중심에 두고 판단한다. 저항의 흔적이 없으면 의심받고, 관계가 있었으면 축소 해석된다.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피해자가 얼마나 버텼는지가 더 크게 다뤄지는 구조는 정의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비동의강간죄다. 핵심은 단순하다. 상대방의 명시적이고 자발적인 동의가 없는 성적 행위는 범죄라는 원칙을 법에 분명히 새기는 것이다. 관계의 지속 여부, 사적 공간인지 공적 공간인지, 이전의 친밀성 여부와 무관하게 동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왜 저항하지 못했는가”를 설명해야 하는 현실을 끝내야 한다. 동의의 부재를 중심에 두는 법 개정은 피해자를 의심하는 문화를 바꾸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2024년 3월 총선 과정에서 비동의강간죄를 공약으로 제시했다가 당원의 항의가 제기되자 슬그머니 철회한 민주당의 태도는 이 문제가 얼마나 가볍게 취급되어 왔는지를 드러낸다. 성폭력은 선거용 문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2024년 한 해에만 3만 명으로 매해 늘어가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안 입법마저 민주당은 고작 실무적 실수로 압축하는 실정이다. 법 개정과 함께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과제는 포괄적 성교육의 제도화다. 동의의 의미, 성적 자기결정권, 젠더 권력 구조에 대한 이해를 학교에서부터 직장, 군대 등 모든 사회 영역에서 체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성교육을 단편적인 생물학 지식 전달로 축소하는 한, 왜곡된 성 인식은 유지된다. 성폭력 가해 이후 엄벌만이 아니라 인식 형성 단계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젠더 평등은 시작되어야 한다. 또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지 7년이 지났는데도, 정부나 국회가 대체입법을 외면하며 권리공백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직접적인 권리 침해로 인하여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고, 영아살해로도 내몰리고 있다. 최근에는 후기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살인죄로 기소된 권모씨가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이유로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의 처벌을 받았을 만큼 입법공백 속에서 사법적 제재까지 받고 있고 있다. 그러나 임신중지는보편적 권리다. 정부는 더 이상 임신중지를 외면하지 말고 건강보험을 받을 수 있도록 적용하고 유산유도제를 도입하라. 팔레스타인 학살 지원 중단, 제국주의 전쟁 반대 : 한국석유공사, HD건설기계, 한화 등 정부와 기업의 전쟁 산업과 협력 반대 : 국방비 예산 축소 가자 지구에서 이어지는 파괴와 학살은 단지 한 지역의 분쟁이 아니다. 무장한 하마스 전사들의 잔혹함을 매일같이 떠들어대는 이스라엘 매체들과 달리, 실상 팔레스타인 여성과 아이들이 가자지구 및 팔레스타인 일대 희생자의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전쟁범죄의 파렴치한 민낯을 드러낸다. 이스라엘의 허약한 핑크워싱과 제반 논리들이 가리지 못하는 것은 무고한 팔레스타인 노동자민중의 죽음과 삶의 터전이 제국주의에 의해 짓밟힌 현실이다. 한국은 더 이상 중립적 관찰자가 아니다. 폐허가 된 땅을 사업 구상으로 바라보는 것도 모자라 아예 적극적으로 고통 위에 이윤을 설계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상에 이재명 정부는 관찰이 아닌 동조를 택했다. 전쟁 범죄의 책임이 제대로 규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평화’의 이름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질서 재편에 동참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 또한 군수·에너지·건설 부문에서 전쟁 경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석유공사, HD현대건설기계, 한화 등은 글로벌 방산·중장비·에너지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노동자민중을 살해할 때 쓰는 무기가 생산되고, 팔레스타인 노동자민중의 밭을 불태우고 집을 무너뜨릴 장비가 수출되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였다. 수익의 전제는 파괴였다. 한국석유공사, HD현대건설기계, 한화 모두 학살의 동조자였다. 여성파업의 정신은 제국주의자들의 총칼로 노동자민중의 삶을 파괴한 뒤 자본가계급이 그 위에 부를 쌓는 질서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쟁 경제에 복무하지 않겠다는 선언, 군사적 팽창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우선에 두겠다는 선택. 그것이 지금 2026 여성파업이 내놓는 분명한 입장이다. 싸우는 여성 노동자가 세상을 바꾼다! 2026 3.8 여성파업으로 모이자 2026년의 상황은 몇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한다. 정확히는, 전쟁은 자본가계급을 지키고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의 얼굴이라도 불사한다. 여성, 남성, 노인, 중년, 청년, 백인, 비백인 유색인종,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에이 스펙트럼, 젠더퀴어 등 누구라도 적극적으로 파시스트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외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에게는 노동자민중의 페미니즘이 필요해졌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내세운 일본 의원의 여남동수 내각 선언이나 마린 르펜이 내세운 '내셔널 페미니즘'(자국의 여성 보호 및 권리 증진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기조)는 마치 가부장적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모든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차별의 경험이 단일하며, 심지어는 자본가계급의 여성과도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자계급 여성과 정치적/실천적 연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처럼 꼬드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 구미의 반도체 공장 KEC에서 수십 년을 근속하고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승진이 가로막혀야 했던 여성 노동자가 살아온 삶과 다카이치 사나에가 살아온 삶은 당연히 다르다. 현장에서의 안정이 보장되고 업무 중 성별/적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리고, 심지어는 통계로 세어지지도 않는 죽음의 위기에 노출되어야 했던 한국의 2030 여성-성소수자 청년들과 앨리스 바이델의 경험은 당연히 다르다. 핵심은 결국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다. 저들의 목숨을, 저들의 배를 불리는 체제를 하루 더 연명하기 위해 노동자민중을 갖가지 조건으로 세분화해 다양한 굴레를 매기는 시대. 우리는 그렇기에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무거운 쇠사슬 중 하나를 차고 있는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름으로 뭉쳐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노동자계급 여성과 성소수자의 이름으로 이 가혹한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고, 전쟁 위기의 복판으로 우리의 목숨을 갈아 넣으려 하는 자본가들과 싸워야 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가장 근원적 작동. 유급 노동(임노동)과 무급 노동(가사, 돌봄, 재생산 등)을 모두 멈춰 세우는 여성파업으로 말이다. 2026년의 여성파업의 수많은 의미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를 고르자면. 아마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참조자료] 『급부상 중인 독일 AFD 총리 후보 알리체 바이델은 누구?』, 주간조선, 김택환, 25년 1월 26일. 『이탈리아 첫 여성 총리, 멜로니가 연 극우의 시대』, 한겨레, 김도훈, 24년 6월 22일. 『멜로니·르펜 이어 다카이치…'우파 스트롱우먼' 열풍 왜』, 중앙일보, 위문희, 25년 10월 9일. 『다카이치 ‘보통국가 일본’ 가속 페달…역대급 압승이 여는 군사대국의 문』, 아시아투데이, 구필현, 26년 2월 10일. 『2025년 3분기 임금근로 일자리 2,092만개…전년 대비 13만9천개 증가, 보건·사회복지 견인』, 데일리365, 김형근, 26년 2월 24일. 『'165년' 일해야 상위 0.1%의 연봉 번다…여성은 남성보다 '130일' 더 일해야』, 뉴시스, 정우영, 26년 2월 26일. 『프리랜서 노동실태와 특징Ⅱ - 일의 형태와 불안정성 -』, 김종진, 박관성, 21년 9월 15일. 『"특수고용·프리랜서 5년간 233만명↑…청·노년 증가율 커"』, 연합뉴스, 김치연, 24년 10월 1일. 『55살 이상 노동자, 열 중 셋은 최저임금도 못 받아…여성은 더 열악』, 한겨레, 김혜정, 25년 3월 30일. 『여성 비정규직 530만명… 남성보다 131만명 더 많아』, 서울EN, 이현정, 25년 12월 1일. 『경찰청_성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 경찰청, 25년 11월 03일 갱신 자료 기준 참조하였음.2026-03-08 | 조회 3,102 -
3.8 여성파업 정세와 투쟁방향, 윤석열에 이은 이재명 정부의 구조적 착취와 억압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불평등의 기울기가 작아졌는가? 이재명 정부의 구조적 착취와 억압, 싸우는 여성 노동자의 힘이 필요하다!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친 평등, 차별 철폐, 권리, 노동,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은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높은 국가이자, 노인빈곤률과 고령여성 빈곤률 모두 가장 높은 국가다. 자살률은 가장 높고 출생률은 가장 낮은 국가다. 성소수자 권리는 최하위권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젠더 불평등과 노동자 민중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나아가졌는가? 기울어진 운동장, 불평등의 기울기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는가? 세계적으로 경제, 사회, 정치, 재생산, 기후 등 위기의 시대,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전략산업 육성과 노동개악, 사회적 대화-노사협조주의 강화, 남성 역차별을 해소하는 성평등, K-방산 등 성장 정책을 표방하며 2026년 성장하는 자본주의를 말하고 있다. 자본의 몫을 키우면, CEO가 아닌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줄어든다고? 이재명 정부와 자본의 이러한 행보는 노동과 권리, 여성과 성소수자, 평등을 지우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성장주의 정책의 핵심은 체제의 위기, 그 책임을 노동자 민중에게 더 노골적으로 전가하는 자본가 살리기다. 구조적 성차별을 없애려는 대책도 없다. 젠더평등의 기반을 허무는 이러한 행보는 윤석열을 비롯해 역대 정부 정책의 연장선이다. 평등은 정부와 자본에 맞서지 않고 진전될 수 없다. 정부, 자본과의 상생이나 기존 정당에 대한 투표하는 것으로 구조적 성차별, 여성의 이중굴레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수사에 현혹되지 않고 격화되는 위기와 책임 전가에 맞서고자 한다. 지금 바로 여기에 실질적 성평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싸우는 여성 노동자의 투쟁으로 쟁취하려 한다. 3월 8일 국제여성의날, 여성파업을 일으키는 투쟁. 절실한 요구로 절박한 투쟁에 나선다. 구조적 성차별 타파,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일소, 노동권 보장, 젠더 평등, 전쟁 종식, 노동자 민중의 단결을 위해 여성 노동자가 앞장선다. 함께 싸우자! 1. 불평등을 향한 투쟁에 힘입어 등장한 이재명 정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윤석열 정부는 광장에 나선 노동자 민중, 특히 여성과 성소수자의 힘으로 탄핵당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및 노동정책의 핵심은 ‘전략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성장’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효율성 제고’ 두 축이었다. 그리고 ‘여성가족부 폐지’로 상징되듯 젠더갈등과 백래시를 부추겼다. 반노동, 반여성, 반성소수자, 반공과 극우 이데올로기를 조장했다. 이를 통해 빈익빈 부익부, 비정규직, 성별임금격차, 일자리, 경력단절, 가난과 차별 등 불평등 사회에 가득 찬 분노와 저항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노동자 민중의 단결을 가로막고 저항을 무력화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이에 대한 반영으로 내란 광장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 민중은 ‘평등’, ‘민주주의’, ‘차별 철폐’, ‘노동’, ‘권리’ 등을 강조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빼앗긴 노동자로, 여성으로, 성소수자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는 평등사회를 간절히 외쳤다. 비록 조직된 노동자의 조직인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나서지 못했지만, 4개월 동안의 투쟁이 윤석열을 탄핵시켰다. 이에 힘입어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현재까지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패권적 전쟁 위기 심화에 ‘도약과 성장’, ‘실용과 국익, 친기업’을 내세운다. 자본이 돈을 많이 벌어 성장하는 것으로 사회의 불평등과 빈곤, 비정규직, 실업, 차별과 혐오, 착취와 억압이 어떻게 해소된다는 것일까? 이전의 정부들과 무엇이 다른 걸까? 이재명 정부는 선거공약에서부터 ‘성평등’에 침묵했다. 취임 후 여성가족부 장관 잡음 끝에 원민경 여성인권 변호사 임명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에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임명하여 이전 정부와 차별성을 보여주려 하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후 10월 14일 국무회의에서는 ‘특정 영역 남성 역차별’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성평등가족부의 업무로 남성 역차별 해소를 주문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실종되었다. 광장의 노동자민중이 사회대개혁의 첫 번째 요구로 꼽은 것이 차별금지법 제정이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2025년 12월 11~23일 이뤄진 부처별 ‘2026년도 업무계획 보고’에서도 차별금지법은 거론되지 않았다. 한 언론사가 차별금지법 입법 계획을 질문하자 성평등가족부는 “법무부가 주관 부처”라고 말했고, 법무부는 “입법할 계획 없다”고 답변했다. 내란 광장에도 고공농성을 한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부의 약속에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A학교 투쟁, 현대자동차비정규직 이수기업, 서면시장 번영회, 기아차 청소노동자 부당징계 등 여러 투쟁사업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윤석열, 이재명 정부에 이르기까지 6년을 싸웠다. 그러나 이전 정부가 약속한 소속기관 정규직 전환이 여태 지켜지지 않아 김금영 지부장의 청와대 앞 단식농성이 진행 중이다. 노조법 2조, 3조가 개정되었다지만 진짜 사장인 정부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장애인·이주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이재명 정부의 민낯이라 부르기엔 지나친가? 2. 격화하는 미·중 제국주의 패권 경쟁 속에 한국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 본격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정세를 살피기 전, 격화하는 제국주의, 미·중 패권 경쟁 속에 한국이 있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2022년 2월 러시아와 나토가 우크라이나에서 출구 없는 대리전을 시작하면서 세계자본주의는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들어섰다.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의 팔레스타인 민중을 집단학살하면서 동시에 중동 곳곳으로 전쟁을 확산시켰다. 2025년 1월 이후 트럼프는 관세를 앞세워 세계 곳곳을 약탈하고 미국의 대도시들을 사실상의 계엄 상태로 몰아넣으면서 마치 조폭 깡패가 힘자랑하듯 제국주의 최강국의 힘을 휘둘렀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약화하는 세계 패권을 복원하려 베네수엘라 침공과 마두로 대통령 부부 납치, 그린란드 식민 지배와 캐나다 합병 주장, 이란에 대한 폭격 협박, 시리아 정부의 쿠르드족 집단 학살 지지, 쿠바 에너지 봉쇄, 가자 평화위원회 출범과 이사회 소집 등을 벌였다.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나라에서는 중국 정부의 경제 및 자원 수탈이 이어지고 있다. 미·중 패권 대결이 격화되면서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무차별적 시도들이 국제 노동자 민중을 비탄과 고통 속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가깝게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멀게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지돼 오던 국제질서의 ‘규범’들이 하나둘 흔들리면서 세계는 점점 더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대국 간의 충돌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고, 전쟁과 학살은 점점 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쇠퇴기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제국주의 패권 대결은 극우세력과 손잡으며 각 나라의 노동자 민중을 분열시키면서 저항을 약화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1]고 말한 한 교수의 표현이 요즘 세태의 정의가 되었다. 미·중 패권대결은 자본주의 만성적 축적 위기의 산물이자 축적의 위기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2018년 미·중 패권대결이 본격화한 이후 미국은 우세한 힘을 갖고 중국을 압박하여 추가적인 성장을 차단하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현재 달러 패권과 군사 패권이라는 결정적인 양 측면에서 미국이 분명한 우위를 갖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패권 대결은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렸다. 쇠퇴기 자본주의가 경제, 사회, 재생산, 기후 위기에서 전쟁 위기로 빠져들며 미국의 해양세력과 중국의 대륙세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팽팽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지역, 한국이 위치한 동아시아의 긴장도가 매우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의 한복판에 한국이 있다. 3. 전략산업 육성과 노동개악으로 ‘성장, 도약의 자본주의’ 표방한 이재명 정부 =코스피는 6000을 찍었는데, 내 지갑은?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에 이재명 정부의 경제는 최근 잘 나가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살림살이는 나빠졌다. 제국주의 열강 투쟁이 무역장벽을 확대하면서 한편에서는 한국 자본의 위기로, 다른 한편에서는 거대한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2026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1.8%(한국은행)~2%(정부)로, 2025년 0.97%에 비해 회복세다[2]. 내수 개선과 반도체산업 호조 등이 상승 전망의 근거다. 2026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영입이익 전망이 각각 170조 원 이상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6월 이후 코스피 지수 상승률은 글로벌 증시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건설, 석유화학, 철강 등 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부 첨단산업 대자본이 심화하는 전쟁 위기 등을 기회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하는 것이다. 전반적 이윤축적 위기의 지속 가운데 일부 대자본의 약진이 이어지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해마다 경제는 성장하고 시중 유동성(M2)은 7~8%씩 늘어난다. 한국 상위 10% 자산 점유율은 전체 자산의 65%를 독식하고 있다. 하위 50%는 1%대다. 계급이 대물림되고 있다. 다주택자 상위 20%는 전체 주택 자산의 약 78%를 보유하고 있다. 급여생활자 중에 연봉이 1억 원이 넘는 사람이 140만 명을 넘었다. 소득이 올라 한국 임금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4500만 원이 됐다. 성장은 자본의 이야기다. 실제 노동자들을 소득순으로 나열해 제일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인 중위 연봉은 3417만 원(월 284만 원)으로 확 줄어든다. ‘284만원’. 임금노동자는 사실은 한 달에 '284'만 원[3]을 번다. 불평등은 고착화되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본을 위한 도약과 성장, 노동개악 말은 “국민 행복”인데, 성장 정책은 자본을 향한다. 힘없고 돈 없는 노동자 민중은 먹고살기가 힘들다. 제대로 된 일자리도 없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2026년 1월 2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도약과 성장’을 강조하며 2026년을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주요 정책은 △반도체특별법 등 노골적 전략산업 지원과 전략산업 노동권 억압 △노동구조개혁TF 출범 등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개악 실행 △지역소멸에 대응 명분으로 자본 특혜를 확대하는 ‘5극 3특 국가균형성장전략’ 추진 △대중의 불만을 달래는 상법개정 등 대대적 주식시장 부양,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6대 핵심 분야에서 구조개악 등이다. 이중 전략산업 지원과 노동개악의 주요 내용은 △AI·반도체 등 전략산업 자본에 대한 노골적 특혜 지원과 규제완화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등 노동권 억압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간 3년 이상으로 확대 △직무급제 확대 등 평생 저임금 구조화, 서열 고착화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더해 △일자리는 벤처기업 창업으로 만들고 △저출생과 고령화는 일부 지원 재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직접 챙기겠다고 한다. =정부, 자본과의 대화로? 특별법으로?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노동개악을 사회적 대화, 노사정 합의를 통해 관철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대가로 ‘5인 미만 사업장 근기법 적용확대’ 등 일부 노동권 확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첫 노동정책 사업이었던 노조법 2조·3조 개정은 권리를 축소하는 시행령 탄압과 함께 집행되었다. 이뿐 아니라 노동자이나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에 대하여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최저임금법 확대 적용이 아닌 ‘특별법’을 들고나왔다. 김영훈 장관이 올해 노동절(5.1) 이전 입법을 함께 완료하겠다는 ‘근로자 추정제’는 "근로자 개념을 넓히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4] 있다. 정부는 자본의 요구에 응답해 특고·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제외, 노동3권 박탈을 영구화하는 가짜 노동권 확대 정책을 펼쳐 열악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통제하고자 한다. =윤석열에 이은 이재명 이재명 정부와 자본은 역대 정부, 자본가계급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생산영역에서 노동자를 더 많이 착취하기 위하여 친자본 정책과 더불어 기존 노동법 개악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회피할 수 있는 지침과 시행령 정치로, 특별법으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며 노동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사회 재생산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책임을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기고, 특히 여성에게 일터와 집에서의 이중굴레를 여전히 강요하고 있다. 탐욕으로 심화한 지역의 불균등성을 저출생, 지방소멸 대책은 자본에게 특혜를 주며 노동권과 노동자민중의 제반 권리를 침해하는 각종 규제 완화 특구 조성이다. 불평등의 구조를 강화하고 저항을 무력화하는 정책에 한국노총뿐 아니라 민주노총이 손잡고 있다. 자본가계급과 상층의 노조 관료가 손잡고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후퇴시키게 되면,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여성의 권리는 더 후퇴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가 기울어진 운동장의 바깥으로 더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4. 여성 노동자의 이중굴레, 차별과 억압을 외면하는 이재명 정부 =깊은 구조적 성차별, 여성이 겪는 차별과 고통의 무게 한국의 구조적 성차별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국의 여성 노동자는 1,300만 명이 넘는다. 임금노동자는 1천만 명 수준이고 노동자의 이름을 빼앗긴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가사사용인 노동자가 최소 3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노동자 민중으로 살아가는 여성은 한 줌 자본가계급을 제외하고 세상의 절반이다. 그러나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에게 일터에서는 더 적은 임금의 초과 착취를, 집에서는 무급 가사돌봄 노동을 강요함으로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서 더 차별받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2024년을 기준으로 33년째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 격차 1위다. 성별임금격차는 OECD 평균이 11%인 반면 한국은 30% 수준이다. 비유하자면, 남성 노동자가 284만 원(중위소득)을 벌 때, 여성 노동자는 199만 원(최저임금)을 버는 것이다[5]. 저임금노동자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2배나 많다[6]. 남성 노동자는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고, 여성은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7]이다. 소위 ‘여성이 하는 일’, 여성 다수 직종은 저임금이다. 노동자 2명 중 1명은 직장에서 성차별 경험[8]했다. 여성 노동자의 76% “직장 내 승진·배치 차별 있다”고 답했다. 경력단절을 보여주는 M자 곡선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성 10명 중 6명 경력단절 경험했고, 결혼·출산을 주요 원인[9]으로 꼽았다. 맞벌이 부부라도 여성이 남성보다 집안일을 112분 더 한다. 여성은 노인이 되어서도 남성보다 40% 가난하다. 개인의 소득격차 원인 1위는 “성별”[10]이었다. 여성 3명 중 1명은 살면서 1번 이상의 여성폭력을[11] 겪는다. 딥페이크 성착취 등 사이버 성범죄는 전년대비 50%나 급증했다. 2021년에 낙태죄가 비범죄화되었는데도 아직 안전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임신중지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OECD 국가 중 아직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두 나라 중 한 곳이다. 이러한 실상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이 얼마나 깊고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하는 통계가 또 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사망통계 등을 분석한 연구의 의하면 한국 20~39세 여성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면서 극우세력의 동시 성장으로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이주민과 장애인 혐오도 부추겨지고 있다. 여성이 겪는 고통은 숫자로 다 표현되지 않는다. 전쟁 때보다 낮은 한국의 출생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별 임금격차, 청년 N포 세대의 절망에 이재명 정부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여성에게 착취와 억압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구조를 고치기는커녕 고착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남성 역차별 해소가 ‘이재명’표 성평등 민주주의? 이재명 정부의 젠더정책 1호는 ‘남성 역차별 해소’를 성평등가족부의 업무로 주문한 것이다. 윤석열이 ‘여성가족부 해체’하겠다는 논리나 여가부를 존속시켰지만, ‘남성 역차별 해소’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일언반구도 없다. 사회의 차별을 인정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가치조차 법으로 명시하기를 외면하고 있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차이만 해도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성소수자의 97.1%가 한국 사회를 살기 좋지 않다고 느낀다. 성소수자 노동자는 4명 중 1명이 ‘일터 내 차별’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이는 평균보다 4배나 높은 수치다. 성소수자는 노인이 되어서도 빈곤·질병·고독에 돌봄의 소외까지 일생을 차별받는다. ‘남성 역차별’ 언급부터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선동을 부채질하는 이재명 정부는 AI는 강조하면서 날로 늘어나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는 이를 막기 위한 지원책이 턱없이 부족하다. ‘디지털성범죄 피해 통합지원단’ 운영 예산은 쥐꼬리만 하다. 스토킹 범죄는 전년보다 12.3%나 증가했고 여성 10명 중 2명이 친밀한 관계의 폭력피해를 겪고 있다. ‘국민 행복과 안전’을 말하면서 비동의강간죄 도입, 포괄적 성교육 의무는 도입되지 않고 있다. A학교 지혜복 교육노동자가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현실은 정부가 젠더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일터와 거리, 학교, 온라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터의 성차별 해소 ‘하는 척’만 하는 정부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500인 이상 민간기업에 2027년부터 도입한다고 밝혔다. 여성 노동자 2명 중 1명은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한다. 정부는 성차별 임금 실태를 드러내는 것조차 제한한다. 일터의 성차별은 임금뿐 아니라 채용, 승진, 직무, 노동안전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나 이러한 현실을 감추려 한다. 고용노동부의 여성 일자리 등 성평등한 노동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인 여성고용정책과를 폐지했다. 일터의 성차별에 대해 다룰 유일한 부서를 정부가 없앤 것은 일터의 성평등을 노력할 의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여성·노동단체들이 노동부 내 전담부서 마련을 촉구하는데도 변화는 없었다. 일터의 성차별에 대한 고용노동부 정책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약간의 지원 제도인데 현장에는 이러한 제도도 사용할 수 없는 노동자가 더 많다.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지난 1월 통과되었다. 많은 여성노동자가 폐암으로 죽고 나서야 마련된 법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업장의 급식노동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은 산재신청 신청과 보장 강화, 생리휴가 유급화, 산업안전의 성평등 기준 적용, 상병휴가와 수당 도입, 노조할 권리 보장 등으로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 정책은 없다. 성평등가족부는 폐지되지 않았으나, 다른 부처에 비해 예산과 권한이 빈약한 건 그대로다. 예산은 전체 정부 예산의 0.2% 내외(2026년 2조 87억 원으로 0.27%)다. 그조차도 대부분(80% 이상)이 아이돌봄, 한부모 가족 지원, 청소년 등 '가족 및 청소년 정책'에 사용된다. 그러니 실제로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보장 등 여성 정책사업 비중이 작다. 성차별/성희롱 사건에 대한 부처의 실체적 조사권이 없다. 이제는 ‘남성 역차별’ 업무까지 떠맡았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거나 한부모 가정 등 더 열악한 여성에게 일시적 지원 정책 등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ILO 190조 괴롭힘 협약’ 비준하겠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190호 협약은 근로자의 계약 형태와 관계없이 일터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신체적ㆍ정신적ㆍ성적ㆍ경제적 해를 끼치는 행위와 관행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가사사용인,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여성 노동자를 포함해 일터에서 차별당하거나 괴롭힘 피해를 겪는 사안을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법 개정 투쟁과 노조할 권리 보장과도 연결되니 정부는 이를 회피하고 일터법 제정 등으로 법적 실효성을 무력화하려 한다. 정부는 일터의 성차별에 대해 자본을 규제하거나 어떠한 책임도 지우지 않으려 한다. =이재명 정부의 돌봄은 ‘윤석열 정부의 돌봄산업화 AI 버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가사돌봄을 개인에게 떠맡기고 시장화하여 국가의 일정한 지원과 정책으로 이용 비용을 낮추는 방안만 찾고 있다. 노인이나 질환자 돌봄의 요양보호사에 저임금 이주노동을 투입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가사사용인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계속 제외되어 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재설립되지 못하였다. 정부는 가사돌봄에 대한 공공성, 사회적 책임 강화와 공적 일자리를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 공공병원 설립과 공공 의료와 돌봄 강화,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대 정책과 예산이 없다. 노인과 장애인으로 축소한 돌봄통합지원법을 4월부터 시행하는데 그마저도 국가 돌봄 책임 강화와 거리가 멀다. 국고 예산[12]과 지원인력이 빈약하여 말뿐인 정책이 되고 있다. 장애인은 시민으로 이동하는 권리를 외면당하고 있고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7조는 바뀌지 않았다. 정부는 장애인건강권법 2017년 시행 이후 9년만에 최근 장애인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했으나 구체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종합할 체계가 없는 나열식 수사라는 평가다. 장애인의 삶과 노동, 돌봄을 연결하는 구상은 없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한국의 초저출생, 국가 소멸 예고에 이재명 정부는 인구 컨트롤타워 신설하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기구(인구미래부)를 신설했다. 노동력 제공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 이성애 정상가족 중심으로 출산과 육아에 일정한 경제적, 제도적 지원을 추가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전히 구조적 성차별의 원인은 손대지 않고 있다. 일터의 성차별 해소,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공공 돌봄 일자리 확충 등은 정책에도 예산에도 없다. 그저 주로 여성이 전담하는 무급노동이자 개인이 시장에서 거래하는 가사돌봄 정책, 저임금-무권리 저평가 정책이 유지될 뿐이다. 그러니 이재명 정부의 돌봄 정책이 ‘돌봄 로봇’이 추가된 걸 빼면 윤석열 정부 정책과 똑같다는 비판은 과할 게 없다. 로봇을 도입해 ‘공공 로봇 개’가 장애인이나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지원하고, ‘공공 아틀라스’가 아이들의 통학길을 도와주겠다는 구상이 아니다. =전쟁과 기후위기 등의 반동적 정책으로 성차별 강화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세계 5위 수준이다.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3.4%)에 이어 2.8%를 차지한다. 이는 영국, 중국, 일본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는 2026년 국방비를 전년 대비 8.2% 증가 더 증액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협력하고, 가자 평화위원회 참가까지 저울질하면서 이재명 정부는 ‘실리 외교’를 내세워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가담하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전쟁은 구조적 폭력으로 노동자민중에게, 특히 여성에게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 전쟁 무기로 돈을 더 벌어 한국의 GDP가 올라가면 젠더차별이 해소된다고 주장하는 건가. 이재명 정부는 기후정의를 내던졌다. 2025년 11월 11일 2035년 온실가스 53% 감축을 결정했다. 신규 핵발전소 2기 건설 추진을 발표했다. 이는 기후위기 완화와 온실가스 고배출 국가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이미 시작된 석탈발전소 폐쇄에 노동자들의 고용과 지역의 생존권 보장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석탄발전소에 일하는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고용 문제는 대두되나, 급식과 청소일을 해온 여성 노동자의 고용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경제적 불평등을 더 심화하고 공공 서비스 축소로 인한 돌봄의 위기로 이어진다. 난민과 이주민 등에 인종화된 폭력, 기후위기 부정론을 선동하고 사회적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세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기, 강제 이주와 분쟁으로 인한 폭력과 성폭력 증가 등을 낳는다. 여성과 성소수자가 빈곤과 혐오에 가장 취약해지는 것이다. 자본가 살리기를 위한 탐욕의 기후부정의 정책은 구조적 성차별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5. 지금 바로 여기에 실질적 성평등을! 싸우는 여성 노동자가 세상을 바꾼다! 2023년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준비했던 최저임금 30%인상을 위한 여성 노동자 파업 시동은 2024년 3월 8일 국제여성의날, KEC지회와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여성 노동자의 선도적 파업과 많은 여성 노동자, 여성 활동가, 성소수자 동지들의 단결로 한국에서 첫 여성파업을 이뤄냈다. 이후 내란 광장의 한복판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 미조직 청년 노동자의 윤석열 몰아내고 평등 세상을 만들자는 열망으로 2025년 여성파업을 일으켰다. 아직 여성파업의 힘은 작고, 노동자 민중의 구조적 성차별에 깨부수고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뒤엎기 위한 투쟁도 부족하다. 여성 노동자에게 권리, 민주주의, 평등은 여전히 멀리 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매일매일 우리는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여성 억압의 가해자다. 이에 우리는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다수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의 목소리로 저항한다. 모든 착취와 억압,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 절박한 우리의 삶은 선거로, 시혜로, 대화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이 사그라들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증거다. 지금 바로 여기에, 실질적 성평등을! 착취와 억압으로 얼룩진 세상, 싸우는 여성 노동자가 세상을 바꾼다! 비록 작은 힘이더라도, 여성파업으로 이재명 정부와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함께 맞서자. 3월 8일, 단결의 힘을 보여주자. 여성 노동자가 앞장서서 2026년 정부와 자본에 맞선 투쟁의 포문을 열자. 평등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자! [토론회 다시 보기] https://www.youtube.com/live/544nk3bGaFw [1]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이문영 교수 [2] 2025년 달러 기준 GDP는 0.9% 감소 예상 [3] 국세청, 2024년 귀속 근로소득 신고 자료 [4] 오민규, 노동자 개념 안 다룬 'K-근로자 추정제'…알맹이 빠진 제도 개혁의 함정([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유럽의 고용관계 추정제 vs 한국식 모방 입법, 프레시안26.02.20) [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 정규직 여성의 중위소득은 남성보다 29.0% 낮다. [6]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별 임금 격차 관련 성인지 통계(2025.08.31.) 한국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지난해 여성 23.8%, 남성 11.1%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저임금 노동에 2배 이상 더 많이 종사한다. [7]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 2025-16호(2025.12.01.)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25.8)를 분석한 결과, 남자는 정규직이 796만 명(66.6%), 비정규직이 399만 명(33.4%)으로 정규직이 2배 많다. 여자는 정규직이 516만 명(49.3%), 비정규직이 530만 명(50.7%)으로 비정규직이 조금 많다. 남성 비정규직보다 여성 비정규직이 131만 명 많다. [8] 직장갑질119, 직장인 1000명 조사(2025.05.18) [9] 민주노동연구원, ‘고용상 성차별 경험과 성별 임금 격차 인식 관련 설문조사’(2025년4월) [10] 경제개발협력기구 OECD,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기회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 보고서(2025.09.22.) 가계소득에서 기회 불평등의 60% 이상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비롯되었고, 개인 소득 차이를 설명하는 가장 큰 요인은 성별이었다. [11] 성평등가족부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2025.04.24) [12] 사업비가 91억 원(529억→620억)으로 최종 증액되었고 모든 지자체에 나누도록 결정됨. 지자체당 사업비(국고기준)는 평균 2억 9천만 원에서 2억 7천만 원으로 2천만 원이 줄어드는 꼴이 되었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2026-03-01 | 조회 17,357 -
[번역]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아직 더 발전되고 논의돼야 할 이론적 논쟁의 방대한 영역을 열어놓은 엥겔스의 저서는 분명히 비판적으로 읽혀야 한다. 그 내용 중 낡거나 흐릿해진 부분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서로 상반되는 해석들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엥겔스의 시각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어떤 본질주의에서도 벗어나 있으며, 정치적 함의를 지닌 결론을 내린다: 역사적으로 발생한 모든 사회적 과정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도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유언을 집행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1]. 이렇게 엥겔스는 1884년에 발행한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을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전년도에 사망했고, 그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엥겔스는 이후 상당 부분 미완성되거나 미발표된 상태로 남아 있던 (종종 엥겔스와 공동으로 수행된) 마르크스의 작업들을 복원하고 정리하며 발전시키려 했다. 엥겔스의 이 책은 루이스 모건의 인류학 연구서 『고대 사회』(Ancient society)에 대한 독해에서 비롯되었다. 7년 전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엥겔스에게 있어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 이론을 “모건 만의 방식으로” 재발견한 것을 의미했다. 엥겔스는 자신의 작업이 “고인이 된 친구가 쓰지 못한 것을 그저 어느정도 대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여기지만, 마르크스가 모건의 책에 남긴 주석을 활용하여 자신의 작업에 녹여낸다. (마르크스의 주석은 20세기에 『카를 마르크스의 인류학 노트』의 일부로 출판되었다.) 엥겔스는 당대의 여러 인류학적 이론들을 반박한 모건의 연구에 의지했다. 비판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엥겔스는 원시 사회와 현대 사회를 가로지르며 생산양식과 가족 조직 형태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역사 유물론”의 관점에서 접근한 여성 억압 문제를 핵심 주제로 부각시켰다. 그 이후로 엥겔스의 저서는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여성 문제를 다룬 다양한 연구에서 - 항상 동의하기보다는 논쟁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 필수적인 참고 자료가 되어왔다. 또한 비非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이론들 역시, 적어도 논쟁을 위해서라도, 이를 이론적 이정표로 삼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150년이 지난 오늘날의 적실성 > “아내의 정조를 보장하고, 따라서 그 자녀들이 아버지의 혈통을 확실히 잇도록 하기 위해 아내는 남편의 권력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남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것에 불과하다.”[2] 엥겔스가 여성의 상황에 대해 제기한 비판 중 일부는, 당시에도 급진적이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소름끼칠 정도로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로 저자에게 있어 오늘날까지도 지배적인 일부일처제 가족의 확립은 “전 세계 여성의 역사적 대패배”였다: > “… 여자는 자기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한 산아도구로 전락했다. 여성의 이와 같은 굴욕적인 처지는 특히 영웅시대의, 특히 고전시대의 그리스 인들 사이에서 노골적이었는데, 나중에 점차 경감되어 그럴듯하게 꾸며졌으며, 때로는 조금 완화된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처지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3]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계급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종속적 지위를 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당시 사회의 이중 도덕에 맞선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당시 사회는 여성들을 공장에서 초과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대열에 편입시키면서도, 그들을 편리하게 무성적 존재인 어머니로 묘사하거나, 또는 상업적으로 성적 대상화된 창녀로 묘사했다. 이미 『공산당 선언』에서 그들은(마르크스와 엥겔스는 - 역자) ‘공산주의자들이 ‘부인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비난하는 부르주아적 가치의 옹호자들에게 이렇게 답한 바 있다: > “부르주아는 자신의 아내를 단순한 생산 도구로만 본다. 당연히 부르주아는 생산 도구들이 공동으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여성들도 똑같이 이 공동성의 운명에 빠질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단순한 생산 도구들로서의 여성들의 지위를 폐기하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4]” 엥겔스의 주장은 당시 다른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수행한 연구들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베벨은 1883년 저서에서, 카우츠키는 1882-1883년 사이에 발표된 신문 기사에서, 여성 억압이 인류 최초의 사회 조직 형태부터 지속되어 왔다고 주장했다[5]. 엥겔스는 모건과 당시 다른 인류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러한 종속 관계가 특정 역사적 기원, 즉 사적 소유권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출현에서 비롯되었다는 관점을 제시해 이들을 반박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공동체 조직 형태가 여성 억압을 전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평등주의적이며 심지어 모계 중심인 사회 조직이 선행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엥겔스는 스위스 인류학자 바호펜을 인용하며 “모계법”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한 사회에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를 규제하는 법도 없었기에 이것이 문제적인 명칭임을 분명히 하면서 말이다). 그는 또한 책 말미에서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의 사상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분명히 밝힌다. 푸리에는 이미 일부일처제와 사유재산을 “문명”의 특징으로 지목했으며, 이를 “부자들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전쟁”이라 불렀다. 엥겔스는 이렇게 자신의 역사적 전제를 제시한다: > “유물론의 관점에 따르면, 역사를 규정하는 결정적 계기는 궁극적으로 직접적 생활의 생산 및 재생산이다. … 그 하나는 생활수단, 즉 의식주의 대상과 이에 필요한 도구의 생산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 그 자체의 생산, 즉 종족의 번식이다.”[6] 이후 많은 이들이 “경제주의적”이라고 비판한(엥겔스의 관점이 문제를 제한한다는 점을 입증하기보다는,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비판이다) 이 접근법이 바로 엥겔스 분석의 참신함이다. 이는 여성 억압 문제를 사회적 생산의 이론적 차원으로, 즉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축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엥겔스에 따르면, 여성 억압은 사적 소유와 계급 분열을 사회 조직의 근간으로 정립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에서 비롯된다. 이 과정은 축적된 부를 어떻게 상속할지 분명히 하려는 가족 형태, 그리고 새로운 계급 분열 및 소유 계급이 비소유 계급을 착취할 권리를 영속화하려는 국가 형태를, 수반하는 제도로서 형성한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다른 사회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에 걸친 여성 억압에는 ‘자연스러운’ 요소가 전혀 없다. 비평과 발전 사회주의적 관점을 공유하는 여러 저자들은 이 책이 몇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읽혀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이 책에서 제시한 문제가 이미 새로운 인류학적 연구에 의해 극복되었다거나, 원시 모계 사회의 존재와 같이 역사적 과정의 일부 이정표를 단순화하거나 이상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영국 SWP의 이론가 크리스 하먼은, 농업 사회 초기 단계의 성별과 혈통 조직은, 엥겔스가 제시한 “순진한” 관점보다, (실제로는 - 역자) 훨씬 복잡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되기 시작할 때, 수세기 동안 그러지 않았던 남성들이 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재산권을 장악하고 상속권을 분명히 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덧붙인다[7]. 스페인 페미니스트 셀리아 아모로스는 동일한 비판을 확장하며, 이러한 공백이 엥겔스의 “일정한 자연주의(cierto naturalismo)” 위험을 제기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사유화된” 가사 노동 형태와 유사하게, 여성에게 귀속된다고 충분한 설명 없이 간주되는 업무들의 사회적 가치 평가절하를 전제한다[8]. 반면 만델은 계급 출현 이전의 이 초기 성별 노동 분업이, 사회의 재생산 능력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을 특정 사회적 행위에 가두어둘 필요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후 새로운 세대가 잠재적인 이익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이는 결국 여성을 경제적 탐욕의 대상물로 전락시켰다[9]. 엥겔스가 원시 사회에 대해 제시한 이러한 설명들은 새로운 인류학적 발견을 기다리며 여전히 논쟁에 열려있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아모로스 자신이 인정하듯, 여성의 종속성이 더 심한 사회는 사적 소유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이를 지적한 것은 엥겔스의 기여이며, 노동 계약과 결혼 계약 사이의 유사점을 규명한 것 역시 그러하다. 이 두 계약 모두 법적으로 동등한 두 당사자를 전제로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두 사람은 전혀 동등하지 않다. 이 책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차용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이에 확립된 관계에 대해 다루며, 이 책과 마르크스의 『자본론』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아모로스는 여성 노동자가 짊어지는 이중 노동 시간 문제를 지적한 엥겔스의 예민함을 옹호한다. 비록 해결 가능성에 대해선 순진한 낙관주의를 보인다고 평가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모로스는 자본주의가 누구를 착취할지에 대한 선호를 갖고있지 않으며, 필요할 때엔 여성과 아동을 거대한 노동자의 대열에 통합시켰음을 강조한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성별 분업이 이윤 축적을 위해 더 이상 기능하지 않으므로 의미를 상실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많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맞서 주장하듯이, 그(성별 분업의 - 역주) 지속이 남성 노동자들이 아내와 딸들에 대한 억압을 대가로 노동력을 저평가하여 착취 계급과 공모한다는 증거일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으로 알려진 비판을 덧붙일 수 있다. 이 비판에 따르면, 생산과 재생산의 구분을 제시한 엥겔스로부터 시작된 정의는 현실에서 분리되지 않는 '어머니'와 '여성노동자'를 이원론적으로 다루는 문을 열어놓는다[10]. 반대로,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엥겔스가 사회주의가 계급을 해체함으로써 성별 억압도 종식시킬 것이라고 내다보는 만큼,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해석들이 성별 문제를 계급 문제에 종속시켜 그 특수성을 흐리고 위계를 낮추었다고 비판해왔다[11]. 그러나 어떤 경우든, 엥겔스의 작업이 가진 가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구체적 관계를 탐구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온 성별 억압의 역사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사회적 부의 점유 형태라는 관점에서 설명함으로써, (고대의 가부장적 편견이 - 역자) 수많은 이전의 제도들 사이에서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왜 자본주의가 재생산/생산 이분법을 구축한 고대의 가부장적 편견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마르크스의 주석이 이 길을 함께한다: > “이름을 바꿈으로써 사물을 바꾸려는 것은, 그리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충분한 동기를 제공했을 때 전통의 틀 안에서 전통을 타파하기 위한 출구를 찾으려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도학자적 근성이다!”[12] 아직 더 발전되고 논의돼야 할 이론적 논쟁의 방대한 영역을 열어놓은 엥겔스의 저서는 분명히 비판적으로 읽혀야 한다. 그 내용 중 낡거나 흐릿해진 부분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서로 상반되는 해석들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엥겔스의 시각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어떤 본질주의에서도 벗어나 있으며, 정치적 함의를 지닌 결론을 내린다: 역사적으로 발생한 모든 사회적 과정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도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17년 5월 1일 La izquierda diario에 발행된 기사를 번역함 글쓴이: Ariane Díaz [1]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1884, 김대웅 역, 도서출판 두레, 2012, 7p. [2]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1884, 김대웅 역, 도서출판 두레, 2012, 97p. [3]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1884, 김대웅 역, 도서출판 두레, 2012, 94p. [4]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1848, 『칼맑스 프리드리히엥겔스 저작선집 제 1권』, 1991, 417p [5] Hunt, Marx´s general, New York, Metropolitan Books, 2009, pp. 303-5. [6]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1884, 김대웅 역, 도서출판 두레, 2012, 8p [7] “Engels and the origins of human society”, International Socialism 65, 2nd series, 1994. [8] “Origen de la familia, origen de un malentendido”, Hacia una crítica de la razón patriarcal, Barcelona, Anthropos, 1991. [9] Tratado de economía marxista, Tomo I, México, Era, 1969. [10] 이 비판은 리즈 보겔의 것으로, ‘Moore, Antropología y feminismo, Madrid, Cátedra, 2009, p. 66.’에서 인용됐다. 이 경향에 대해서는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 제24권 제2호, 2016년 특별호를 참조하라. [11] 엘사 드루카로프(Elsa Drucaroff)의 최근 저서 Otro logos(Bs. As., Edhasa, 2016)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의 이러한 논의들을 다수 검토한다. [12]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1884, 김대웅 역, 도서출판 두레, 2012, 94p.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2026-02-21 | 조회 14,278 -
“스리랑카·베트남 처녀 수입하자”는 막말, 진도군수만의 문제는 아니다!김희수 진도군수 김희수 진도군수가 생방송 도중 농촌 인구 소멸에 관해 “외국 처녀를 수입하자”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방송 3사에 생중계된 2월 4일 전남 해남군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광주·전남 행정통합 찾아가는 타운홀미팅’에서 나왔다. “광주·전남이 통합할 때 인구 소멸에 대한 것을 법제화해서, 정 뭣하면 스리랑카나 베트남이나 그쪽 젊은 처녀들 좀 수입해갖고 농촌 총각 장가도 보내고, 이런 특별 대책을 해야 한다. 사람도 없는데 산업만 밤낮 살리면 그게 제대로 되겠냐”라는 발언이었다. 이주여성 노동자가 혼인과 출산 대행 상품인가! 진도군수의 발언은 이주 여성을 한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존중하지 않고, 혼인과 출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한 발언이다. 그것도 사람을 사고 파는, '수입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한 노골적인 인권 침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진도군수의 말은 ‘처녀’라는 표현이 ‘결혼하지 아니한 성년 여자’, ‘남자와 성적 관계가 한 번도 없는 여자’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문제다. 그리고 사용 맥락 역시 여성을 가부장제적 인식에 기반해 젠더차별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또 ‘수입하자’는 발언은 인간을 상품과 동일시하는 극단적인 비인간화다. 이는 단순히 ‘부적절한 표현’, ‘신중하지 못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노동자 민중, 특히 평균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을 하위의 존재로 규정하는 위계의식에 기반한 혐오발언을 공적 자리에서 내뱉은 사건이다. 진도군수의 발언은 이주민의 인권과 존엄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이 발언은 여성을 노동력 재생산, 무급돌봄노동 도구로 규정하며, 특정 국적의 여성은 더 쉽게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재생산한다. 계급구조의 폭력성을 바탕으로 성차별·인종차별을 뒤섞은 억압을 정당화하는 발언이다. 가뜩이나 도시와 농촌의 사회적 격차로 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에다 다양한 공적 서비스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에서 이러한 가부장적이고 반동적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이주여성에 대한 통제와 폭력, 경제적 착취를 구조적으로 은폐한다.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열악한 노동조건, 생계와 송금 등 경제적 압박 속에서 폭력과 차별을 감내하는 결혼 이주민 여성을 보호하기는커녕 차별과 혐오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군수 하나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 그런데 이 발언이 진도군수 공인 한 사람의 문제일까? 전국 25개 지방자치단체는 2025년 상반기가 되어서야 소위 “국제결혼 지원 조례”에 근거해 세금으로 ‘농촌 총각을 이주 여성에게 장가보내’는 결혼 비용 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그동안 이는 농촌 인구감소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외국 여성을 사온다는 ‘매매혼’이자, 이주여성을 출산과 무급돌봄노동 도구로 취급하는 인권침해 정책이라는 여러 비판에도 거의 10년간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이주여성 정착지원금’ 등으로 제도를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주여성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인구대책 수단이자 상품, 농촌 총각 매매혼의 도구로 생각하고 동시에 농촌 비혼 남성을 이주여성 매입자(구매자)로 규정하는 관점은 한국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기인한다. 노동자 민중을 존엄한 인간이 아닌 도구로 여기는 체제, 가부장적 젠더차별, 성별분업 구조,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유지되는 자본주의적 농촌 구조, 그리고 이주민을 ‘노동력’이나 ‘인구 대책’ 수단으로 활용해 온 국가의 반동적 이주정책이 결합한 결과다. 다시 말해 여성, 그 중에서도 더 열악한 처지인 아시아 이주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이번 발언을 가능하게 한 토대다. 젠더차별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단결이 필요하다 이주 여성은 ‘수입’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다. 여성과 이주민을 억압하는 구조를 철폐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평등도 존재할 수 없다. 여성 노동자가 출산과 무급돌봄노동 도구가 아니듯, 이주여성 노동자는 농촌 인구감소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국적과 인종, 젠더,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우리는 같은 노동자이자 존엄한 삶과 노동을 영위해야 할 주체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의로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확대재생산하는 인종차별에 맞서자. 한국 자본주의가 만든 지역 사회의 위기를 이주여성에게 떠안기고 이주여성의 존엄을 파괴하는 폭력을 중단하라! 이주민을 '값싼 노동력'으로 사고하는 관점이나 이주여성을 결혼과 출산의 도구로 사고하는 관점을 다르지 않다. 이미 한국 인구 20명 중 1명이 이주민이다. 국내 신혼부부 10쌍 중 1쌍은 다문화 가정*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자본과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분열시키며 착취와 수탈을 강화한다. 진도군수의 발언을 비판한다면, 국적과 젠더를 활용한 차별에 맞서 노동자 단결을 확대하자. 그것이 노동자 내부를 가르는 저들에 맞서는 우리의 전략이다. *국가데이터처 ‘2024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 지난해 다문화 혼인은 2만 1450건으로 1년 전보다 1019건(5.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6년 1월 6일 발표)2026-02-05 | 조회 10,455 -
[번역] 엥겔스, 여성 노동자,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역자: 김요한 글쓴이: 호세피나 마르티네스(Josefina L. Martínez) 친구의 죽음에 여전히 영향을 깊게 받고 있던 1883년,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런던에 있는 마르크스의 집에서 마르크스가 미완성으로 남겨둔 편지, 원고, 메모 더미를 살펴보고 있었다. 자료들 속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미국 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의 저작에 관해 남긴 일련의 메모를 발견했다. 모건의 마지막 책 <고대사회>가 바로 몇 해 전 출판된 터였다. 두 친구는 이 주제에 관해 여러 차례 의견을 교환했고, 엥겔스는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들떴다. 마르크스의 인류학 메모를 기초로, 엥겔스는 친족, 가부장제 가족, 결혼제도, 일부일처제 형태의 변화와 특히 연관된 사회 조직들에 대한 역사유물론적 분석을 전개했다.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이라는 엥겔스의 책이 1884년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출판 이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에게 필독서가 되었다. 나는 아래에서 이 책의 근본적인 공헌뿐만 아니라 이 책이 야기한 논쟁 몇 가지에 관해서도 지적할 것이다. 그에 앞서 먼저 여성해방에 관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으로 내놓은 입장의 전체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엥겔스는 1845년 출판된 <잉글랜드 노동자계급의 처지>란 책에서 처음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이중 억압에 관해 기술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영국 노동자계급의 생활, 노동조건, 도시의 과밀상태, 거대한 고난을 직접 보여줬다. 엥겔스는 이것들을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주의 운동이 출현하게 된 토대로 보았다. 엥겔스는 당시 24세였는데, 엥겔스가 1892년 독일어판 서문에서 설명했듯이 그가 훗날 마르크스와의 협력을 통해 발전시키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관점은 그 책에서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잉글랜드 노동자계급의 처지>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훌륭한 시각적 비유로 시작된다. 엥겔스는 템즈강을 거슬러 올라가 런던에 입성할 때 경험하는 충격에 대해 기술한다. 여행자는 도시의 놀라운 발전, 건물의 숫자, 선박들, 번영하는 문명의 모든 상징에 매혹된다. 그러나 그곳을 떠나 “슬럼(빈민가)”으로 이어지는 좁은 거리를 걸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런던 사람들이 그들의 도시를 가득 채우는 문명의 온갖 경이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 본성의 가장 뛰어난 자질을 희생하도록 강요당해왔다는 것,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더 완전하게 계발하고 다른 이들과 연합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 안에 가만히 잠들어 있는 백 가지 능력을 억눌러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1] 즉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잔혹한 불평등에 대해 언급하는데, “문명의 온갖 경이”는 사회의 거대한 부문, 즉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짓밟아 성취한 것이다. 엥겔스의 시선은 이제 노동자계급 이웃 속으로 한층 더 파고든다. 더럽고 비좁은 거리, 난방이 되지 않는 집, 식량 부족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이어 엥겔스는 섬유산업 종사자의 다수인 여성 노동자를 특별히 언급한다. 그들은 남성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10~12시간을 일하고 있었지만,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또 위기가 닥치면 여성 노동자들은 제일 먼저 해고됐다. 여성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요리, 세탁, 육아 등의 돌봄을 해야만 했다. 비록 엥겔스가 이 책에서 자본주의 사회 내 노동자계급 여성의 역할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반복해서 특히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현상을 강조했다. 엥겔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 질서는 노동자계급 가족의 해체를 초래하고 있었다. 그 존재 조건을 불가능하게 해서 말이다. “이런 사회질서 때문에 노동자가 가정생활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불편하고 더러워서 밤새 쉬기도 어렵고, 세간도 변변치 않고, 대개 지붕에서 물이 샐 뿐더러 따뜻하지도 않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탁한 공기가 방을 가득 채우는 집에서 안락하게 지내기란 불가능하다. 남편은 온종일 일을 하고, 형편에 따라 부인과 나이 많은 자식들까지 일을 한다. 일하는 장소는 모두 다르다. 그들은 밤과 아침에만 만나고, 모두 음주의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이런 마당에 어떤 가정생활이 가능하겠는가? 그럼에도 노동자는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없고 가족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 그 결과 부모와 자식 모두의 도덕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가족 간 갈등과 가정 불화가 끊임없이 잇따르게 된다.”[2] 15세~20세 사이의 여성들은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많은 수의 아동들도 그러했다. 엥겔스는 여성 노동자들이 매우 자주 “출산 후 3~4일 만에 공장으로 돌아가야” 했으며, 휴식 시간에 신생아 수유를 위해 일터에서 집으로 달려갔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12시간 혹은 13시간을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친척이나 이웃들이 돌봐주든지, 아니면 맨발로 주변을 헤매고 있었다. 게다가 작업장에서의 성적 학대가 만연했다. 엥겔스에 따르면 “공장에서의 종속관계가 다른 종속관계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그보다 더한 정도로 제조업자에게 초야권(初夜權, 중세 영주가 신랑보다 먼저 신부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는 권리 – 옮긴이)을 부여한다는 것도 당연히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용주는 피고용인들의 인신과 아리따운 용모를 지배하는 군주이기도 하다.”[3] 이런 이유에서 엥겔스는 “아내의 고용은 완전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가족을 해체시키며, 가족에 기반한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가족의 해체는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4] 오늘날의 사회는 가족에 기반해 있지만, 동시에 가족을 해체하기도 한다. 가족의 존재가 불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서 말이다. 이러한 파괴적 모순은 여성 노동자들과 전체 노동자계급이 살아가고 투쟁하는 조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는 못했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생각을 계속 이어나갔다. 두 사람은 이 문제로 돌아와, 여성해방을 향한 투쟁의 필요성에 대한 정의, 가부장적 억압의 기원에 대한 분석, 가부장제 가족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내놓는다. <신성 가족>이란 책에서 그들은 공상적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푸리에는 “사회의 진보와 시대의 변화는 자유를 향한 여성의 진보라는 미덕을 통해 이루어지며, 사회의 퇴보는 여성의 자유가 줄어든 결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수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이전부터 여성 억압의 문제를 다뤄왔다.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이런 전통에서 가사노동의 사회화, 일부일처제의 종식, 자유로운 사랑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소규모 공산주의 사회의 청사진을 그리면서 개별 주택의 구조를 개조할 필요와 같은 문제들이 검토됐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고안했던 이러한 개요는 꽤 모호했다. 그들은 그 목적에 어떻게 다다를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힘으로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미국에서 오언주의 공동체의 경험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엥겔스가 이후 저작에서 지적했듯이, 오언의 글을 통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미래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씨앗을 뿌렸다.[5]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선구자인 플로라 트리스탄의 작업은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중간에 있었다. 그의 책 <노동자 연합>(1843년)에서, 그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정치적 조직에 대한 제안을 개괄했으며, 처음으로 계급과 젠더의 관계를 다뤘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은 전적으로 여성들에게 할애되었는데, 그는 여성들을 프랑스 사회의 “마지막 노예들”이라고 불렀다. 그는 책을 통해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숙고할 것을 요구했고,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해방의 과업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6]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거듭 주장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 가족 구성원 모두를 동등하게 착취하고, 많은 여성과 아이들을 작업장 안으로 밀어 넣어 노동자계급의 전통적 가족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들의 “이중 잣대”를 비난했다. 즉 부르주아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부인 공유제”를 도입하기를 원한다고 비난하지만, 여성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면서 (사회적으로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간통이나 성매매를 통해 이를 실제 실현한 것은 부르주아들이었다. <자본>도 수차례에 걸쳐 여성 노동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산업예비군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과 아동노동에 대한 잔혹한 착취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러나 가족 제도와 여성 억압의 원인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분석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엥겔스의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에서 전개됐다. 가족, 여성 노동자, 그리고 공산주의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은 여전히 필수 저작이다. 비록 모건의 연구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고, 이 책이 역사 시기에 대해 다소 도식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그 책은 무엇보다도 여성 억압의 역사적 기원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필수적이다. 여성 억압이 항상 존재했거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인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엥겔스는 베벨과 같은 다른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저작에 관해서도 논쟁을 벌였다.[7] 엥겔스의 책이 출판된 이후, 베벨은 모건에 대한 엥겔스의 참조를 포괄하며 자신의 저작을 수정했다. 카우츠키는 직전에 이 주제에 관한 저작을 출판했는데, 여성의 종속은 인류사회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마치 여성 억압이 언제나 존재했던 것처럼 말이다. 엥겔스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 대신 엥겔스는 좀 더 평등하고 심지어 모권(母權)에 기반한 “원시 사회”가 있다고 보았으며, 그 역사를 강조하고자 했다. 엥겔스는 사적 소유의 등장, 사회의 계급 분할, 그리고 여성이 종속적 역할을 하는 가족 제도의 정립 사이의 관계를 입증했다. 결혼과 일부일처제의 성립을 통해, 여성과 아이들은 “남성의 사적 소유물”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남자는 집안에서도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여자는 지위가 하락하여 예속적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단순한 산아 도구로 전락하였다. … 아내의 정조, 따라서 자녀들 아버지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내는 남편의 무조건적 권력 하에 놓인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의 권리를 행사한 것에 불과하다.”[8] 게다가 이 책 초판 서문에는 엥겔스가 가족 문제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고찰한 중심점으로서,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 중요한 구절이 있다. “유물론적 파악에 따르면, 다음의 요인들이 역사를 종국적으로 규정한다. 직접적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 그런데 이것 자체는 다시 두 측면으로 나누어진다. 한편으로 그것은 생활 수단들의 생산, 즉 의식주의 대상들과 그것에 필요한 도구들의 생산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인간 자체의 생산, 즉 종의 번식이다. 특정한 역사 시기와 특정한 지역의 인간들이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회적 제도는 두 종류의 생산에 의해 규정된다. 한편으로 노동의 발전 단계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 가족의 발전 단계에 의해.”[9] 이 구절은 여러 차례 인용됐으며, 다양한 이론적 입장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엥겔스가 아직 생존해있을 동안, 여성해방을 향한 투쟁을 사회주의 강령의 근본 요소로 방어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받아들이기 꺼리는 사회민주당 내 보수적인 부문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예를 들어 1886년 10월 고타에서 열린 독일 사회민주당 대회에서 클라라 체트킨은 여성 노동자와 사회주의 문제에 대해 중요한 연설을 했다. 그는 여성해방을 향한 투쟁은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과 연결돼 있으며, 따라서 여성들 속에서의 사회주의 선동과 노동조합 내의 여성조직을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혐오적인 입장으로 유명한 영국 사회주의자 벨포트 백스는 그 연설을 거세게 비판했다.[10] 벨포트 백스는 클라라 체트킨에 맞선 논쟁 과정에서 엥겔스의 권위에 호소하려고 했다. 그 문제에 대한 엥겔스의 관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칼 마르크스의 막내딸 엘리노어 마르크스(엥겔스와 매우 친밀했다)는 벨포트 백스에게 공개적으로 답변했는데, 이 문제에 관해 엥겔스와 체트킨이 일치해 있다는 것을 재차 단언했다. 엘리노어 마르크스는 가사노동 문제와 여성 노동자가 감당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강조했다. 그는 여러 유럽 국가들의 여성 노동자 수를 지적했다. 영국에서 약 450만 명, 프랑스에서 370만 명, 이탈리아에서 350만 명, 독일에서 500만 명 이상,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350만 명. 이처럼 주요 유럽 국가에서 여성 노동자 수가 2천만 명 이상이며, 많은 경우 이들은 노인, 아동, 또는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생계비를 버는 사람들이다. 엘리노어 마르크스는 한때 집에서 행해지는 많은 작업들이 현대적 생산 작업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양의 일들이 개별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 모순에 대해 그는 이렇게 썼다. “공장노동과 기타 임금노동 외에도, 여성들은 가사노동 또한 수행해야 한다. 나는 벨포트 백스나 그의 의견을 따르는 누군가가 자본주의 산업화가 여성을 가정주부의 의무였던 여러 중요한 역할들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집에서 양말을 뜨개질하거나, 아마포를 바느질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으며, 다른 가사노동 일거리도 최소한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 세탁, 요리 등 해야 할 가사노동이 남아있다. 자본주의는 아직 가사노동 기계를 발명하지도 못했고, 동시에 실직한 남편이 집과 아이들을 돌보는 수준으로, 그러니까 자신의 아내가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게 “가정적”이 되도록 하지도 못했다. 그렇다, 벨포트 백스 동지. 클라라 체트킨은 엥겔스와 함께 여성은 “가정의 프롤레타리아”라고 말할 완전한 권리가 있다. 클라라 체트킨은 이보다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 여성은 이중의 프롤레타리아라고 말했어야 했다. 여성은 두 종류의 해야 할 일이 있다. 공장에서 생산자로서의 일과 가정에서 주부, 아내, 어머니로서의 일 말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근육과 혈액은 한편으로는 자본가의 즉각적인 이윤을 위해 소모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가의 미래 이윤을 위해 소모된다.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세대를 낳고 키우기 때문이다. 거기서도 일하고, 여기서도 일해라!“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이, 엘리노어 마르크스의 단호한 대답에서 엥겔스가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엘리노어 마르크스와 클라라 체트킨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주의 지도자들도 이후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여성의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데 집중했다. 가정에서 수행되는 가사노동의 이중 부담을 규탄하면서 말이다. 수십 년 후 러시아혁명은 이런 사상을 실제 현실로 만들려 시도했다. 러시아혁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 조치들을 가능하게 했다. 임신중절과 이혼의 합법화, 혼외자녀에 대한 인정, 여성에 대한 동등한 임금,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조치로서 유아원‧급식소‧어린이집‧세탁소의 설립. 나중에 특히 1930년대에 이 분야에서 나타난 후퇴는 내부 반혁명의 맥락에서 일어났다. 스탈린의 억압적 독재가 공고해지는 동안, 여성을 전통적 가족 내 “가정의 수호자”로 여기는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공산당들이 여성들의 투쟁이 마치 노동자계급 투쟁보다 부차적인 것처럼 계급투쟁과 분리하는 정책을 폈던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애초부터 이 문제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료적 입장과 계급 문제에 대한 경제주의적 해석을 정당화하려는 목표로 이뤄진 마르크스주의의 보수적 수정에서 비롯된 것이다.[11] 가부장제, 생산과 재생산 1960~70년대에 2세대 페미니즘과 함께 엥겔스의 책에 대한 또 다른 논쟁이 등장했다. 한편으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과 케이트 밀럿 같은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가족 제도를 당연시하지 않고 여성 억압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개념화한 것은 엥겔스의 공헌이라고 썼다. 동시에 그들은 역사적 유물론 일반이 일종의 “경제주의”인 것처럼 비판했다. 일례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별 계급투쟁을 기반으로 새로운 역사적 유물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하는 데까지 나아갔다.[12] 파이어스톤은 경제주의 버전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를 섹슈얼리티 문제에 초점을 맞춰 뒤집는다. 그러나 파이어스톤은 사회적 관계의 물질적‧경제적 현상의 중요성을 삭제하거나 줄이면서 관념적 개념으로 나아가는데, 그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은 문화 운동으로 국한된다. 이런 바탕 위에서 그 후 몇 년간 급진주의 페미니즘 운동 안에서 생겨난 분리주의 경향들은 사회에서 억압받는 다양한 부문들 사이의 어떠한 공동 투쟁에도 반동적인 방식으로 반대했다. 앞에서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으로부터 인용한 바로 그 구절은 생산 영역을 삶의 재생산 영역으로부터 과도할 정도로 분리하는 계속되는 오류의 근원이라고 다양한 관점으로부터 비판받았다. 엥겔스가 생산 영역을 재생산 영역과 “이원론적으로” 분리했다는 생각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리즈 보걸이 1983년 발간한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 단일 이론을 향하여>에서 내놓았다.[13] 이 비판은 좀 더 최근에는 수잔 퍼거슨과 같은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재생산 이론으로 정의한 이론을 발전시켰다.[14] 퍼거슨이 보기에 엥겔스의 저작이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근본적 공헌을 했다 하더라도, 엥겔스 저작이 제공한 관점은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공산당들이 여성들의 “특별한” 투쟁은 노동자계급 투쟁과 분리될 수 있다거나 심지어 혁명 이후로 “연기”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관점에서는, 자주 인용되는 엥겔스의 구절은 그런 분리를 상정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그것은 두 영역 사이의 관계를 수립하는데, 아리아네 디아스가 지적하듯이 이것은 “엥겔스의 분석에서 정확히 새로운 것이다. 엥겔스는 여성 억압의 문제를 사회적 생산이라는 이론적 수준으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관심사의 일부로 끌어올렸다.”[15] 그리고 여성 억압을 사회적 현상 및 생산과 재생산과 연관시켜, 여성의 종속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어떤 형태의 생물학적 결정론에서도 이 문제를 해방시킨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새로운 기고가 이뤄진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수많은 전체 논쟁을 여기서 다룰 생각은 없다. 이 주제에 관한 자세한 분석을 위해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러 기사를 참조할 수 있다.[16]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 아래 재생산이 생산에 종속된 것을 강조하는 것은 투쟁의 전략을 세우는 데 필수적”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17] 가족 안에서 여성들이 수행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체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화가 1960~70년대(다양한 이론적 입장들과 정치적 전략들이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논쟁을 벌였다) 2세대 페미니즘 논쟁의 맥락 속에서야 나타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전에는 여성 문제를 중요한 주제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 억압에 맞선 투쟁이 민주적 권리 획득과 (여성들이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더 평등한 노동시장에의 참여로 제한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뜻도 아니다. 이는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 여성 억압은 근본적인 주제였고,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향한 투쟁 역시 그러했는데, 여성들은 또한 “가정의 프롤레타리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투쟁들은 자본주의를 끝장낼 사회주의 전략과 연결돼 있었다. 엥겔스는 이런 관점을 1885년에 쓴 편지에서 드러냈다. “남성과 여성의 진정한 평등은 남녀 쌍방에 대한 자본의 착취가 폐지되고 사적인 가사 노동이 공적인 산업으로 전화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18] 엥겔스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남긴 유산과 관련해서, 가부장제 가족과 결혼제도에 대한 엥겔스의 날카로운 비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우 강력하게 유효함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전통적(가부장제적) 가족의 역할을 무조건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적이고 “가족주의”적인 입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특히 그러하다. 엥겔스는 가족 제도가 “자연적”이지도 않고 폭풍 한복판의 “오아시스”도 아니며, 경제적 의존에 기반해 있고 가부장적 위계 관계가 스며들어 있으며 그 안에서 사회적 모순들이 재생산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 가부장적 제도와 남편이 여성을 “소유”한다는 관념에 대한 비판을 중심에 두지 않고서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동시에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자본주의는 노동자 가족의 생활 조건을 저하시키는데(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집과 직업 같은 권리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을 이 사회의 기둥 중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그렇게 한다. 이것은 엄청난 모순을 만들어낸다. 엥겔스의 관점에서는 가족과 결혼이 강제적인 경제적 의존의 단위로 존재하기를 그쳤을 때, 그리고 재생산 노동이 사회화되었을 때, 더 나아가 “아동에 대한 돌봄과 교육이 공적인 업무”가 되었을 때만 여성들이 가부장제의 억압을 극복할 것이었다.[19] 엥겔스가 이렇게 썼을 때 세계의 많은 곳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집에서 자기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때는 보편적 공교육이나 유치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부르주아 여성들만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역사적 차이를 넘어 이것은 여전히 핵심적 의제로 계속되고 있다. 유치원, 아동의 생애 최초 몇 개월간 무상보육을 보장하지 않는 자본가 정부의 정책이 시행된 결과로 교육과 공중 보건에서 일어난 퇴보를 고려하면 말이다. 좀 더 최근에는 팬데믹 기간 아이들의 온라인 교육을 도와야 했던 많은 수의 여성 노동자들이 삼중 부담을 감당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인간 사이의 감정적‧성적 관계를 규제하고 제약을 가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은, 이런 장애물들이 극복된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사적 소유와 인류 대다수에 대한 착취로 지배되는 사회가 강제하는 제약으로부터 개인적 관계가 해방될 수 있는 사회, 따라서 사랑, 섹슈얼리티, 우정이 새로운 기반 위에 재건될 수 있을 사회를 떠올리도록 한다. 2022년 1월 2일 노동해방투쟁연대(준)에 게재되었던 기사를 재발행 [후주] [1] ‘대도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64쪽 [2] ‘결과’,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179쪽 [3] ‘산업의 단일 부문들: 공장노동자’,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200쪽 [4] 같은 책 [5]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중앙기관지 <전진>에 1876~1878년 처음 연재되었다. 책으로는 1880년 폴 라파르그의 프랑스 번역으로 처음 출판되었다. [6] “플로라 트리스탄: 망치와 장미”, 2019년 3월 4일자 <일간좌파(La Izquierda Diario)> 기사 [7] 베벨의 책 <여성과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자 탄압법의 검열 아래 라이프치히에서 비밀리에 인쇄돼 몇 년간 비합법적으로 유통되었다. 이 책은 1895년까지 독일에서 25차례 인쇄됐고, 이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폴란드어, 플랑드르어, 그리스어, 불가리아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체코어로도 출판됐다. 이 책은 분명히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8] 엥겔스, ‘대우혼 가족’,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옮긴이 - ‘대우혼(對偶婚)’이란 한 혈족의 형제자매와 다른 혈족의 형제자매가 교차하여서 짝을 짓는 혼인 형식을 말한다. [9] 엥겔스, 같은 책 초판 서문 [10] 벨포트 백스는 <여성의 종속(1869)>(존 스튜어트 밀이 쓴 책으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출발점이라고 평가 받는다 – 옮긴이)을 두고 여성운동에 맞선 모든 종류의 주장이 담긴 <남성의 법적 종속(1908)>이라는 자극적 제목의 책을 썼다. 여성들은 결혼을 통해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11] 엘리노어 마르크스, <가정의 프롤레타리아(1896)> [12]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 페미니즘 혁명을 위하여> [13] 리즈 보걸,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 단일 이론을 향하여> [14] 수잔 퍼거슨, <여성과 일 : 페미니즘, 노동, 그리고 사회적 재생산(2019년)> [15] 아리아네 디아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16] 안드레아 다트리‧셀레스테 무리쇼, “우리, 프롤레타리아트” / 아리아네 디아스, “사회적 재생산의 정치경제학 I : 노동과 자본” / 파울라 바렐라, “현재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존재하는가? 오늘날 여성운동, 노동자계급,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메모” [17] 호세피아 마르티네스·신티아 루스 부르게뇨,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페미니즘, 계급, 그리고 다양성> [18] ‘엥겔스가 보이텐의 게르트루트 기욤-샤크에게’, <저작 선집 6>, 박종철출판사, 473쪽 [19] 엥겔스, ‘가족’,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2026-01-22 | 조회 6,217 -
직장 내 성희롱 호소하자 출근 통제, 거제 조선하청 이주여성 노동자 인권침해 논란1. 직장 내 성희롱 호소하자 출근 통제, 거제 조선하청 이주여성 노동자 인권침해 논란 거제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던 이주여성 노동자가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을 호소한 뒤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출근 통제와 계약종료 통보 등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불이익 처분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주여성 노동자 A씨는 업체 관리자로부터 야간 시간대 사적 전화와 사생활을 캐묻는 발언 등 지속적인 성희롱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이후 A씨는 가해자의 욕설과 공개적인 모욕, 부당한 지시에 수개월간 시달렸다고 한다. 이에 또 다른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됐고, 지난해 12월 외부기관을 찾아 상담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면서 ‘출근하지 말라’는 지시와 함께 계약 종료를 통보받은 것이다. A씨는 반복된 괴롭힘 속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다 작업 현장에서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돼 현재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외국인노동자들은 언어 장벽과 비자 문제, 위계적인 작업장 문화가 겹치면서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겪어도 문제를 제기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특히 하청 구조에서는 관리자와의 관계가 고용 유지와 직결돼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노동단체 활동가도 “조선소 현장 내 외국인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괴롭힘 실태를 점검하고, 그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개별 사건을 넘어 구조적인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참조 기사> https://www.geoj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321 2. 22대 국회 개원 1년6개월 만에 차별금지법 발의 [사진] 노동과세계 9일 22대 국회 개원 1년6개월 만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차별금지법은 진보당 손솔의원이 대표발의했으며, 10명의 의원이 발의에 참가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출신국가, 혼인여부, 성적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고용과 교육 분야에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19년 동안 13차례나 발의됐지만 제대로 심의되지 못한 채 폐기돼 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2일 입장을 내고 “혐오선동을 일삼는 세력들이 극우세력으로 확장되고 그 힘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계엄선포와 내란이라는 심각한 결과로 경험한 것이 바로 22대 국회였기에 더더욱 책임 있는 입법부의 역할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22대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 역사의 마지막 국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이 그 역사적인 입법과정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 해 겨울 광장에 선 시민들이 수없이 외쳤던 사회대개혁을 위한 첫 번째 과제 역시 차별금지법”이었고 이는 “모든 사람의 존엄이 보장되는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과제”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239242.html 3. 울산지역사회, 사립학교 부장교사의 기간제 교사 성폭력 규탄 전교조 울산지부와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울산지역 여성사회단체가 12일 울산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한 사립고 기간제 교사들에 대한 부장교사의 성폭력 사건을 규탄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성폭력이라고 지적하며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했다. 지난해 9월 한 사립학교 교장과 일부 교원의 저녁 자리 후 기간제 교사 ㄴ씨는 교장과 친인척 관계인 부장교사 ㄱ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그는 곧바로 성폭력 피해 상담소와 경찰을 찾았다. 또 다른 기간제 교사 ㄷ씨도 ㄱ씨로부터 지난해 말부터 4차례에 걸쳐 성추행 피해를 겪었음을 호소하고 경찰에 고소했다. 학교 측은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소문내지 마라’, ‘여자 중 이런 일 안 당하는 사람 없다’며 2차 가해”를 일삼았다. 피해자들은 불안정한 계약직 신분과 폐쇄적 학교 문화에 고통을 견뎌야 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그 사람(ㄱ씨)은 공식적인 인사권자가 아니었지만, 사립학교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가진 위치에 있었고, 마치 내 미래와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고 토로했다. 또 “사건 이후 학교는 조직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대응했고, 내 고통은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취급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와 여성사회단체는 기자회견에서 “사건이 4개월 가까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처벌이 없다”, “성폭력 가해 교사를 즉각 파면하고 교육계 복귀를 원천 차단하라”라고 요구했다. 또 강압적인 회식 문화를 비롯해 학교의 “잘못된 조직문화 전면 개혁”을 촉구했다. 교사 노동자를 비롯한 기간제 교사나 방과후 강사, 교육공무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인사권을 가진 관리자로부터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현실은 여러 번 지적되었다. 사립학교의 위계는 더 심각하다. 성폭력 피해학생 편에 섰다가 해고당한 A학교 지혜복 교사도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학교는 성인지 감수성과 젠더평등을 교육하는 산실이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교육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교육 현장을 혁신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준다. 4. 노동자들이 지켜온 카라, 더불어숨센터 매각 저지 투쟁 동물권 행동 카라(KARA)가 시민 후원으로 조성된 자산인 서울 마포구 소재 ‘더불어숨센터’의 매각을 독단적으로 재추진하면서 노동조합의 투쟁이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카라의 비리와 전횡, 노동권 침해, 공익성 훼손과 동물학대에 맞서 노동자들은 집회와 검찰 고소,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전진경 대표 사퇴와 더불어숨센터 매각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일반노조 카라지회는 7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진경 카라 대표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노조는 “카라의 복합동물공간 더불어숨센터 매각은 중대한 업무상 배임 행위”라며, “시민 후원으로 조성된 자산을 헐값에 처분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동물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매각을 추진하며 사무공간과 화장실 상당 부분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노동자들이 입양, 교육, 구조, 홍보 업무를 하는 일터를 강제로 봉쇄한 것이다. 더불어숨센터는 마포구에 위치한 카라의 상징적 거점으로, 2014년 성악가 조수미씨의 기부를 포함한 시민 후원금으로 조성됐다. 센터 안에는 도심형 입양시설 ‘아름품’과 동물 전문 도서관 ‘킁킁도서관’이 운영돼왔다. 카라는 현재 매각가를 45억으로 책정했지만 주변 시세는 65억~68억 원대다. 노조는 카라 사측의 매각 홍보글에 “30% 이상 저평가된 급매 빌딩”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며 “이로 인해 발생할 손해는 단체의 재정 악화, 구조조정, 노동조건 후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날인 6일 노조는 카라 대전환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같이 경기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구조견이 20시간 이상 비좁인 켄넬(사육장)에” 갇히고 “동물 구조단체가 구조견을 위탁보호시설에서 동물학대를 방조”한 점을 규탄했다. 노조와 비대위는 “동물권 수호에 앞장서야 할 시민단체 대표가 동물학대를 방조하고, 후원금을 불법 사업자에게 집행한 것은 업무상 배임”이라며 “도의 적극적인 계도·시정명령·행정처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카라 전진경 대표 측은 “임금 지급과 고용승계를 위해서라도 매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노조는 “노동자의 고용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일터와 권리를 먼저 파괴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비영리단체도 노동자가 일하는 일터인 점은 예외일 수 없다. 카라 노동자들은 동물권을 넘어 노동권, 민주성, 공익성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9240 https://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8590 5. 한국여성단체연합 “정부 인공지능 행동계획에 데이터 젠더편향 등 대응 방안 전무해”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공개한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안에 “성인지 관점이 전무해 성차별과 폭력을 인공지능(AI)이 그대로 답습할 우려가 있다”는 여성계 의견이 나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4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에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인공지능(AI) 정책 전 과정에 성평등과 인권 기준을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정부의 인공지능 계획이 “데이터 수집·가공, 알고리즘 설계 등 AI 활용 과정 전반에서 현존하는 성차별과 폭력, 불평등을 재생산하거나 강화할 위험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며 “대규모 데이터 통합·활용을 전제로 한 정책 방향은 특히 여성의 임신·출산·돌봄·건강·성폭력 피해 등에 대한 민감한 정보가 감시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여성단체연합은 AI가 성중립적 기술이라는 전제 자체가 문제라고 밝혔다. 데이터 수집·가공·학습·활용 전 단계에서 기존 사회의 성차별 구조와 권력관계가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AI 기반 채용과 평가 과정에서 남성 중심 경력 패턴이 ‘표준’으로 작동하고, 여성의 경력 공백은 불리한 요소로 해석돼 성차별이 강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여성 노동자가 많은 돌봄이나 초단시간 노동 등의 분야에 AI가 도입될 시 발생할 문제에 대안을 마련할 것도 요구했다. 여성단체연합은 “현재 대다수의 돌봄노동자가 여성이어서, AI 돌봄 기술 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성 돌봄노동자의 일자리 문제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AI 기술 도입에 있어서 돌봄노동의 가치 저하, 감정노동의 비가시화, 노동조건 악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1819 6. 성차별 조사 담당관이 성 비위 의혹 … 인권위, 직위해제 조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차별·성소수자 문제를 맡는 핵심 부서인 성차별시정과장이 강제 추행 혐의로 피소돼 직위 해제된 것으로 파악됐다. 7일 경찰과 인권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인권위는 지난 1일 강제 추행 혐의를 받는 성차별시정과 A과장을 직위 해제하고 대기발령 조처했다. 인권단체들이 모인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성추행으로 성차별시정과장이 직위해제된 사건은 안창호 위원장의 성인지감수성 부재를 증명한다”며 “부적절한 인사로 인권위를 망가뜨리지 말고 당장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38434.html ※ 여성뉴스브리핑이 이번 호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여성운동위원회는 2022년 10월 17일 카드뉴스를 시작으로 매주 여성뉴스브리핑을 통해 여성과 성소수자의 현실을 전하며 노동자운동의 단결된 투쟁을 제안해 왔습니다. 그동안 주간 여성뉴스브리핑팀에 함께 하신 동지들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2026-01-13 | 조회 2,026 -
직장 내 불법촬영 피해 노동자에게 ‘셀프 상담’ 조치한 쿠팡쿠팡이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대자본의 ‘조직 보위’를 택했다. 지난 7일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재작년 9월 쿠팡 물류센터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 범죄를 당한 여성 노동자 A씨가 가해자를 직접 붙잡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는 해고되고 실형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이후 피해 회복과 피해자 보호, 재발방지에 책임을 다해야 할 쿠팡이 오히려 피해 노동자에게 더 큰 고통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자 A씨는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정신적 고통에 계속 시달리다가 회사에 고통을 호소하며 “상담을 위해 성고충처리 상담 담당자가 필요하다”라고 제기했다. 그러자 쿠팡은 상담을 진행할 담당자를 피해 노동자 A씨 본인으로 지정했다. 셀프로 상담하라고? 당시 상황을 A씨는 “여자 매니저급이 저밖에 없다고 제가 됐습니다. 저는 제 피해에 대한 그런 상담은 할 수 없었죠”라고 토로한다. 피해 회복에 나서야 할 사측이 여성 노동자에게 사건을 스스로 처리하라고 한 조치는 해괴할 정도다. 직장 내 젠더폭력 사건과 피해를 별 게 아닌 일 취급하고, 사용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 여성 노동자에게 직장 내 성폭력의 책임을 떠넘기는 수준이다. 그런데 무책임한 조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노동자 A씨는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그날 일이 떠올라 외근이 많은 부서로 이동을 요청했다. 그러자 상급자가 “왜 그렇게 웃으면서 다니질 못하냐?”, “콧바람 쐬면서 일하고 싶냐?”는 등의 조롱과 비난으로 2차 가해를 가했다. 쿠팡은 2차 가해를 방관했다. 이미 ‘셀프 상담’ 조치가 쿠팡의 공식적 2차 가해와 다름없었으므로 상급자에 의한 2차 가해는 어쩌면 당연한 조직적 수순이었다. 참다못한 노동자 A씨는 상급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쿠팡은 분리 조치도 하지 않았다. “팀장이랑 분리가 안 돼서 업무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결국 휴직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어요.” 법이 정한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차 쿠팡이 하지 않는 바람에 노동자 A씨만 병가와 휴직으로 일터에서 밀려났다. 일터에서 쫓겨나야 할 사람이 피해를 겪은 여성 노동자인가? 이후 쿠팡은 직장 내 괴롭힘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차 가해가 직장 내 성폭력에 해당하지도 않고 직장 내 괴롭힘도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다시 말해 쿠팡은 조직에서 여성 노동자의 젠더폭력 피해는 개인의 탓이므로 기업의 조직적 2차 가해 행위도 문제없다는 ‘젠더폭력 재생산 기업시스템’을 보증한 것이다. 그나마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 A씨의 병가를 산업재해인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고 노동청은 뒤늦게 재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쿠팡은 아직 사과 한마디 없다. 이번 일은 여성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쿠팡 대자본이 여성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구조적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쿠팡은 사용자로서 책임져야 할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재발방지 책임을 회피한 수준을 넘어 여성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겼다. 여성 노동자에게 문제가 있다며 구조적 젠더폭력을 이어갔고 기업 차원에서 이를 조직적으로 승인했다. 오마이뉴스_©_권우성 '2021년 '괴롭힘 성희롱 없는 쿠팡에서 일하고 싶다' 기자회견 장면 이번 일뿐이었겠나. 쿠팡은 5년 전에도 동탄 물류센터에서 현장 소장으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당한 쿠팡 하청업체 소속 미화노동자 A씨에게 “지금 사직하면 아무 탈 없지만 해고되면 노동부가 관리하는 블랙리스트가 있어 타 회사 취업도 어렵다”는 내용의 협박과 2차 가해를 가했다. 그를 도운 조창식 노동자를 정직 3개월 징계하기도 했다. 쿠팡이 젠더폭력 피해를 겪은 많은 노동자에게 이삼중의 고통을 안기고 있을 것이 뻔하다. 자본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일터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통제가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안전과 건강권은 물론 젠더평등까지 침해당한다. 쿠팡만이 아니라 수많은 일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자본은 일터의 젠더폭력도 구조화하며 노동자를 억압해 왔다. 오로지 노동자가 맞서 싸워 변화를 만들 때에만 젠더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일터가 가능할 것이다.2026-01-12 | 조회 1,4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