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신문 뉴스목록
-
[2023년 정세와 과제 6]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전투적인 여성의 날을 준비해야 한다정권 차원에서 여성 억압을 강화하는 윤석열 정부 2022년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여성이 유리천장을 깬 해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첫 번째 여성 총리가 선출됐고, 미국에서는 최초로 흑인 여성이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멕시코에서도 여성이 대법관장을 맡아 200년 만에 유리천장이 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사장직을 최초로 여성이 차지했다. 세계경제포럼 역시 리더십 역할에 고용된 여성의 비율이 2016년 33.3%에서 2022년 36.9%로 꾸준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적 불평등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다. 더구나 2022년 노동력 부문에서 성평등은 62.9%로, 처음 집계된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왜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CEO의 임무는 노동자계급을 착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대부분의 여성에게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의 비용이 0순위로 청구되기 때문에 여성 내 계급 간 격차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실 2008년 세계공황 이후 시작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은 앞다투어 여성에 대한 ‘백래시’를 시작했다. 지난해 6월 24일 전복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수구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주류가 이끈 자유민주주의의 허상을 공격했고, 이때 등장한 첨예한 문제의 하나가 바로 임신 중지 권리였다. 결국 갈수록 위태로운 삶에 고군분투하는 미국의 다수는 그러한 트럼프를 ‘샤이’하게 지지했고, 트럼프는 이에 힘입어 보수적인 대법관들을 지명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최근 이란과 폴란드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여성 시위가 일어난 배경도 다르지 않다. 여성에 대한 자본주의 위기 전가 국내의 풍경은 더 잔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지율이 떨어지자 여성혐오 세력의 주장을 받아들여 자신의 SNS 계정에 단 7글자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고, 무고죄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한편으로는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모성주의와 ‘저출산’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출산보육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위선에 신물 난 유권자들이 그런 윤석열 쪽으로 돌아섰고, 결과적으로 집권 후 윤석열 정권은 여성의 권리부터 박탈하기 시작했다. 즉, 성평등 제도를 후퇴시키고, 출산 부양에 초점을 둔 여성정책을 확대하며, 가사돌봄 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여성에게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심화하는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여성에 대한 윤정권의 이러한 백래시는 대표적인 ‘양성평등’ 경제학자인 김현숙을 여가부 장관으로 임명해 여가부 폐지 과정을 관장하도록 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국민의힘은 10월 당론으로 여성가족부를 삭제하고 여성고용은 고용노동부로, 나머지 사무는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한다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역에서는 중앙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 흐름에 따라 각 지자체 정책, 조례, 예산에서 ‘여성’, ‘성평등’ 용어가 삭제되거나 성평등과는 관련 없는 용어들로 수정됐다.**2023년도 여성정책 예산도 일부 삭감됐다.*** 한편에서 윤정권은 출산 부양 정책으로 부모급여 등 제한적인 지원 조치를 도입했지만, 이와 동시에 가사돌봄 서비스 민영화 계획 역시 추진했다. 지난 10월에는 ‘민간 주도의 사회서비스 확대, 복지체계 통폐합’ 등 공공돌봄 기관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중앙부처의 정책 기조 속에서 지역에서는 이미 사회서비스원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회는 올해 서울사회서비스원 예산에서 100억 원을 삭감했다. 이뿐만 아니라 윤정권은 오직 값싸게 부려먹기 위한 의도로 이주 여성 고용 확대를 추진해 임금 차별을 제도화하고 바닥으로의 경쟁을 재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윤정권은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을 악화하고 더욱더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로 내모는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윤정권이 계획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은 장시간 노동을 극대화하고, 임금 체계를 직무급제로 변경하며, 노동시장을 정부가 아닌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는 세대 간 격차나 양성평등을 그 취지로 내세우지만, 많은 경우 가사돌봄 속에서 가까스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한 것이자, 현재에도 여성 비율이 높은 직무일수록 임금이 낮은 현실을 고착할 가능성이 큰 문제를 지고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권의 여성정책은 신보수주의의 여성 억압 정책으로 규정할 수 있다. 앞서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했지만, 여성정책 면에서는 제한적으로라도 미국 민주당식의 자유주의 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여성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화한 고용 및 출산·육아 정책을 시행하는 한편, 여성부 신설 등을 통해 자유주의적 성평등 조치를 도입해왔다. 이후 정권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그 기조는 지속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제한적으로나마 성평등을 관장하는 부처를 아예 폐지하는 한편 여성정책을 출산·보육 중심으로 강화하고, 노동권을 후퇴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신보수주의적 여성정책을 본격화했다고 평할 수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권의 여성정책은 세계적인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노동력 재생산과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화를 위한 것이다. 즉 여가부 폐지는 단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윤석열 정권이 여성혐오 세력을 겨냥해 보낸 단순한 ‘싸인’이 아니다. 오히려 윤정권의 여성정책은 신자유주의 위기 속에서 성차별적인 억압과 착취를 강화해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체계적인 통치 전략이다. 그런데도 제1야당인 민주당은 여가부 폐지를 협상의 대상으로만 삼았을 뿐 이에 대한 명확한 당론이 없고, 여가부 예산 삭감안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진보정당들 역시 윤정권의 여성 억압에 맞서 싸우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다. 여성의 현실이 그렇다. 2021년 기준, 여성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5명 중 3명은 여성이다. 남녀 간 경제활동참가율 격차는 19.3%, 성별 임금 격차는 31.1%,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임금이 낮고, 한해에도 수만 명이 성폭력을 당하며, 또 다른 수만 명이 가정폭력에 희생된다. 이렇게 여성은 일상적인 성폭력에 노출돼 있고,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강요받으며, 독박 가사돌봄 속에서 아등바등 생존해야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더구나 지난해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 가장 큰 고통을 당한 이들도 저임금 여성 노동자였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전투적인 여성의 날을 준비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를 여성에게 전가하는 그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강력한 노동계급의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하다. 여가부를 폐지하려는 저들, 낙태죄가 비범죄화된 지 2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 저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보는 저들, 여성을 더욱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려는 저들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이 싸움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여성을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지배계급의 백래시,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착취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전투적인 여성의 날을 준비해야 한다. 바로 생산을 중단하고, 여성 파업 운동을 조직해야 할 때다. 더불어 4월 노동자건강권쟁취투쟁, 세종기후정의행진, 장애인차별철폐투쟁과 함께 여성 노동계급의 투쟁을 확대해 6월 총파업으로 전진하자. 나아가 이러한 변혁적 여성운동을 토대로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장기적인 투쟁을 시작하자. 바로 그 투쟁에 또 한 명의 여성 살해, 31.1%의 성별 임금 격차, 독박 가사돌봄을 비롯한 여성 억압과 착취의 철폐가 달려 있을 것이다. * Global Gender Gap Report 2022. **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 살롱 지워도 지워도 절대 절대 안지워지지 사후보도자료 *** 이주빈, [현장에서] 여가부 증액 예산에 ‘성평등’은 없었다, 2022년 12월 28일 한겨레 **** 김요한,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 - 이주노동자를 한층 더 착취하겠다는 자본가 정부, 사회주의를향한전진2023-01-26 | 조회 553
-
[교육위원회 기획연재 - 노동자의 삶과 철학 3] 능력(경쟁)주의,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소위 ‘인국공 사태’라고 일컬어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관련된 논쟁을 기점으로 ‘공정성’을 기치로 내세운 능력주의·경쟁주의 담론이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직접고용 투쟁에서 나타난 정규직의 격렬한 반발에서 시작해, 능력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이준석의 국민의힘 대표 당선과 차별과 혐오를 앞세운 윤석열 정부 출범까지의 기간 동안 능력주의·경쟁주의 담론은 말 그대로 절정에 달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배계급의 이전투구로 인해 우익 포퓰리즘의 형편없는 실체가 드러나고 계급투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 양태가 변화하면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파급력이 다소 약화된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현재 노동자와 청년학생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계급적 단결과 운동의 전망을 열어내는 데 있어서 강력한 방해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문재인 정부 동안 인천국제공항에서 건보공단에 이르기까지 ‘공정성’을 앞세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비정규직 투쟁을 공격하는 강력한 논리로 작동해왔고 이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박근혜 퇴진 촛불을 촉발시킨 정유라 사태에서 등장했던 ‘불공정’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하게 되자 많은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부르주아 정치권이나 언론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내에서(특히나 청년 정규직 조합원 중심으로)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능력(경쟁)주의가 청년들의 시대정신인 것처럼 재생산했다. 최근 몇 년간 논쟁이 되었던 능력(경쟁)주의 담론은 사실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흔히 채용 과정에서의 공정을 주장한다. 즉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채용 과정을 거친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무임승차’라는 것이다. 채용 시험을 골자로 한 공정성 시비는 교육공무직 법안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2016년 말 교육현장에서의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발의되었던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현직 공무원과 교사, 사범대생들과 고시준비생들은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발의 배경과 내용은 논의되지 않은 채 ‘정유라 법’이라는 등의 음해만 난무했고, 결국 박근혜 퇴진 촛불이 한창이었던 2016년 12월 해당 법안은 철회된다. 이후에도 기간제교사 등 교육현장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더 격화되었고, 2017년 9월 2일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는 ‘현재 근무 중인 기간제 교원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공식 결정을 내린다. 이 전교조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민주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세력화된 반대를 표출하는 것에 정당성을 제공하게 되었고, 그간 민주노조운동이 그나마 지켜왔던 계급적 연대와 단결의 전통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과 함께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공정성 담론의 장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서울교통공사, 한국도로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정규직 전환이 추진되는 곳마다 공정성 논란이 벌어졌다. 많은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투쟁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가로막히고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들끼리 분열하고 싸우는 것을 보며 계급적 연대와 단결의 전망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청년들의 능력(경쟁)주의 현실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야만적인 형태로 작동한다. 이러한 야만적인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에는 능력주의가 청년·학생들을 대변하는 목소리인 것처럼 유포되었던 것이 크다. 소위 ‘공정성’은 정유라 사태와 조국 사태에서 나타난 대학생들의 외침에서 시작되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사회적 지위가 이전에 비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의 주장과 담론은 시대정신인 것처럼 여겨지고 사회에서는 청년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극한의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내몰리고 있는 지금의 청년들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학에 들어오기까지는 입시 경쟁에 시달려야 했고,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취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많은 대학생들은 경쟁 과정에서의 공정함에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와 같은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에서 승리해 정규직 일자리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청년층 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쟁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보상에 집착하게 된다. 체제가 강요하는 능력주의 경쟁구조로 인해 능력(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자연스럽게 체화된 청년들은 ‘경쟁에서 앞선 자와 뒤처진 자를 가르고, 승자는 노력을 보상받아야 하고 패자보다 더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청년층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자신보다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이 자신과 같은 처우를 누린다는 것에 대한 불만과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억울함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다. 여기서 질문해야 하는 지점이 생긴다.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살아온 청년들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화신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인가라는 물음이다. 한동안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과 ‘노오력’ 등의 말이 유행했었다. 이러한 단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힘든 한국 사회의 지옥 같은 능력주의 경쟁구조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만과 비판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능력주의 경쟁구조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은 모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경쟁 체제 자체에 대한 신물이 났고 많은 불만을 품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그 경쟁에서 이겨보고자 몸부림친다. 이는 체제의 입장에서 능력주의 경쟁구조가 양날의 검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청년들이 ‘공정성’ 같은 기치를 내세우며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장서서 실천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경쟁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체제 변혁적인 전망을 택할 수도 있다. ‘공정성’이라는 개념과 ‘헬조선’, ‘노오력’등의 유행어는 그러한 상반된 두 가능성에 대한 청년 세대의 복잡한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청년들은 왜 능력주의 경쟁 체제 자체를 철폐하는 입장이 아니라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앞장서는 방향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는 우선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 그리고 현재 운동의 주체적 조건 및 전망의 수준과 연관지어 분석해볼 수 있다. 청년학생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서로 상보적인 성격의 관계를 갖는다. 청년학생층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좌우하기도 하고, 반대로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에 청년학생층의 이데올로기가 종속되기도 한다.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청년학생들의 운동이 전체 운동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청년학생들의 운동의 전망은 해당 시기 전체 계급의 역관계와 운동의 수준에 의해 규정된다. 결국 현재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계급투쟁의 상태가 청년학생들이 경쟁구조 자체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투쟁에서 전체 민주노조운동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자.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절박한 투쟁에 대해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조합주의적이거나 반계급적인 행동을 일삼았고, 민주노조 운동 상층의 관료주의 세력은 대사업장 정규직 노조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 이러한 계급적 단결의 전망을 세워내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상태를 이용해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언론은 노노갈등 등을 운운하며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렇듯 전체 계급투쟁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전망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청년학생들은 체제에 맞서는 길과 체제에 복종하여 살아가는 길 중에 후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학생운동이 위축된 상황 속에서 반동적인 일부 상위권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더욱 큰 힘을 얻게 되었고, 이를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언론이 전체 청년들의 공통된 주장인양 전파하면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이와 함께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물적 토대의 측면도 중요하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 핵심은 극심한 일자리 경쟁이다. 턱없이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 속에서 더 나은 일자리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에 몸을 내던져야 하는 취업 준비 청년들의 조건은 경쟁을 강요하는 체제 자체에 맞설 여유와 전망을 갖는 것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체제를 깨뜨리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취업 경쟁을 통해 당장 자신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최소한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조운동의 국가책임일자리 운동으로 능력(경쟁)주의를 뚫고 나가야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투쟁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투쟁의 방법과 나아가야 할 방향 자체는 분명하고 간단하다. 우선 비정규직 투쟁의 확대와 조합주의를 뛰어넘는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통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투쟁의 전망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할 최소한의 조건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체제에 맞서는 투쟁의 전망에 자신감과 확신을 갖지 않는 이상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선도하면서 경쟁주의에 맞선 계급단결을 주도하고 청년층의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투쟁을 전개하는 등 다수 청년들을 대변하는 확실한 전망을 보여준다면, 청년들이 지금까지 능력주의 경쟁구조 아래에서 쌓아왔던 불만은 투쟁으로 폭발할 수 있다. 청년층의 대다수가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을 벌이게 된다면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급변하고,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점차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서기 위한 핵심적인 지점은 노동운동과 청년학생운동이 공통으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물적 토대로 작동하는 일자리에 대한 요구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취업 경쟁이 지속된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 자체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될 것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양질의 일자리는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고 이를 국가가 책임지라는 요구가 필요하다.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이 일자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라며 자본과 국가를 상대로 함께 투쟁해서 일자리 경쟁을 없앨 수 있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물적 토대도 무너뜨릴 수 있다. 더욱이 국가책임일자리운동은 취업 준비 청년들이 안정된 삶을 쟁취하고, 자본주의 위기와 산업전환 앞에서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총고용을 쟁취할 수 있는 공통의 핵심적인 요구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과 투쟁의 확장 가능성은 매우 클 것이다. 이러한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결국 자본주의 철폐라는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이데올로기 투쟁과 일자리 등의 요구를 내건 운동을 통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는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뿌리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이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맞설 수 있다는 투쟁의 자신감이 생겼다면, 이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하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곧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현시기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이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적인 당면 과제인 이유이다.2023-01-26 | 조회 886
-
[노조법2·3조개정 현장기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은 한국GM 원청이다법원의 불법파견 유죄판결에도 발탁채용 강행하는 한국GM 일상적 해고와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강요받는 비정규직 노조법 2·3조 개정투쟁과 함께 현장을 바꾸자! 불법파견 유죄판결에도 발탁채용 강행하는 한국GM 지난 1월 9일 인천지방법원은 파견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국GM 전 사장과 임원,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한국GM 전 사장 카허 카젬에게는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 한국GM 전·현직 임원과 하청업체 사장들에게는 벌금 700~200만 원, 한국지엠 법인에는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카허 카젬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과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도 무시한 채 차량에 올랐다. "도대체 8개월이 말이 됩니까? 최고형인 3년은 때렸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법원이 약한 처벌에 그치니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 재판에 이어진 한국GM 규탄 기자회견, 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 김정식 부지회장의 울분에 찬 발언이다. 법원은 한국GM의 비정규직 양산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와 벌금형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놨다. 불법파견이라는 범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에 비해 너무도 약한 처벌이지만, GM대우 시절 닉 라일리 사장에 대한 ‘700만 원 벌금형’보다 조금이나마 진전된 결과를 끌어낸 것은 분명하다. 한국GM의 불법 비정규직 양산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05년부터 18년 동안 지치지 않고 싸웠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GM은 노동부·검찰·법원의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을 빼고, 불법파견을 은폐하려 할 뿐이다. 소위 ‘발탁채용’이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한국GM에서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신입사원’이 되라는 요구다. 2022년 5월, 한국GM은 불법파견 은폐를 위해 260명을 발탁채용한 데 이어 2023년에도 발탁채용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 6일, 한국GM은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앞으로 '생산하도급 근로자 관련 협의 제안' 공문을 보냈고, 동시에 해당 공문을 대법원에도 제출했다. 당사자인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를 무시하고 다시 신규채용을 강행하는 이유는 뻔하다. 늘 그렇듯 재판을 지연하고, 범죄를 은폐하기 위함이다. 해고, 저임금, 고강도 노동 - 비정규직을 쥐어짜는 GM자본이 교섭당사자가 아니라니 현장으로 눈을 돌리면 한국GM이 불법파견을 고수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일상적 해고, 임금체불, 저임금, 부족한 인력, 고강도 노동, 위험한 작업환경 등 하청노동자들에게 강요된 이 고통은 모두 한국GM이 이윤을 더 뽑아가기 위한 조치다. 작년 10월 말, 부평2공장이 폐쇄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해고통보서가 날아왔다. 태호코퍼레이션, 중부테크, PDS, 세일인텍, 와이앤텍, 부영솔루션 등 2공장 하청업체에 일하는 150여 명의 비정규직들은 일방적으로 해고됐다. 이미 수많은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어야 할 이들이 그 흔한 위로금 한 푼도 없이 쫓겨나 일회용품처럼 버려졌다. 마땅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책임져야 할 한국GM은 오히려 뻔뻔하게 해고의 칼날을 휘둘렀다. 해고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들은 저임금에도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한국GM 사내 2차 하청업체인 더원테크의 경우 수년 동안 시급 8천 원에 올해까지 임금이 동결되는 상황으로 내몰려왔다. 상여금 530%는 명목상 존재할 뿐 모두 확대된 산입범위에 녹아 없어진지 오래다. 비정규직지회가 항의 공문을 보냈지만, 하청업체는 시간 끌기로 일관할 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막상 교섭에서 하청업체 사장과 만나도 나오는 말은 뻔하다. "우리는 에어컨 하나 설치하지 못한다"는 하청업체 사장들의 하소연이 이를 증명한다. 오죽했으면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원청 가서 임금 좀 올려달라고 대신 따져달라’고 한다. 기가 찬다. 하청업체는 원청에 가서 따지라 한다. 막상 원청에 가면 "노동법상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모든 권한을 가진 원청이 이따위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법 자체가 하청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노동자가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에 나설 때 현장이 바뀐다! 손배폭탄을 맞은 조선소 하청노동자 거통고조선사내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 동지는 노조법2·3조 투쟁에 함께하자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 법이고, 힘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그 힘을 부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법이어야 한다.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 차별을 옹호하는 법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다."(김형수 지회장, 매일노동뉴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싸울 권리조차 금지한다. 진짜 사장을 하청 바지사장 뒤에 숨기고, 원청 책임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손배폭탄을 안기는 법은 바뀌어야 한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절규는 바로 한국GM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불법파견 범죄자 한국GM은 불법파견을 지속하며 해고를 남발하지만 싸우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노조법에 막힌다. 최소한 원청자본에 요구하고, 교섭하고, 싸울 권리는 있어야 한다. 한국GM의 불법파견부터 일방적 해고, 저임금까지 모두 노조법 2·3조 개정투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손으로 노동법을 다시 써야 불법파견 범죄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이 일터를 바꾸는 투쟁인 이유다. 바로 지금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 모든 특수고용노동자가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에 나서야 한다. 현장의 투쟁에 기반해서, 또한 현장의 담벼락을 넘어 노조법 2·3조를 다시 쓰자. 모든 노동자의 단결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을 쟁취하자.2023-01-25 | 조회 536
-
[번역]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인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인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수잔 퍼거슨의 책 <여성과 일: 페미니즘, 노동, 사회적 재생산>에 대하여 2020년 플루토 출판사에서 수잔 퍼거슨의 책 <여성과 일: 페미니즘, 노동, 사회적 재생산>이 발행됐다.1) 이는 억압과 자본주의적 착취에 맞선 투쟁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 그 밖의 여러 정치전략 간에 벌어진 논쟁을 파헤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다. 스페인 <일간 좌파> 편집자인 호세피나 마르티네스가 서평의 형식을 빌려 사회적 재생산 이론을 둘러싼 여러 논점을 살펴본다. * * * 이 책을 펴내면서 퍼거슨은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의 쇄신”, “자본에 맞선 투쟁의 중심에 억압에 맞선 투쟁을 배치하는 변혁적 정치를 위해 더욱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 아래 퍼거슨은 책의 첫 대목에서 역사적 개괄을 시도하면서, 다음의 세 가지 경향이 있다고 규정한다. 평등 페미니즘, 비판적 평등 페미니즘(또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 그는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 내에서 진행된 다양한 논쟁을 다루고, 자율주의 페미니즘에 반론을 제기한다. 마지막 대목에선 ‘99%의 페미니즘’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퍼거슨의 책은 자본주의 내에서 체계적으로 세워진 억압과 착취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역사를 관통하며 여성의 일에 관한 논쟁을 검토하면서 그간 덜 알려져 왔던 논의 성과들, 예컨대 19세기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밝혀낼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은 가사노동과 가치법칙을 둘러싸고 자율주의 경향과 벌인 일부 중요한 논쟁을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퍼거슨은 여성 억압의 문제가 “자본에 맞선 투쟁의 중심에” 있으며,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에서 보조적으로 덧붙여지는 요소가 아니라 필수 구성요소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반적 형태로 서술된 이 명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역사적 논쟁과 정치전략을 다룬 이 책의 다른 명제들에는 불분명한 지점이 있다. 궤적과 계보에 관하여 퍼거슨이 제시한 세 갈래의 역사적 궤적을 다루기에 앞서, 그의 책이 개입하고 있는 논쟁을 들여다봐야 한다. 2019년 4월 발행된 이론지 <급진철학>에 사회적 재생산에 관한 자료들이 게재됐다. 여기에는 실비아 페데리치가 쓴 개괄적인 글2)과 알레산드라 메자드리가 쓴 분석적인 글3)이 포함된다. 이 글들에서 그들은 친지아 아루자, 티티 바타차리야, 수잔 퍼거슨 등 자기 입장을 사회적 재생산 이론으로 규정하는 논자들의 주장과 다양한 각도에서 논쟁을 벌인다. 메자드리는 이들의 시도4)가 사회적 재생산 ‘이론’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페데리치는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시각에서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로는 마르크스주의적인 또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급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분석을 위한 범주로서 ‘사회적 재생산’은, 자신을 ‘사회적 재생산 이론가’라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접근과는 달리, 하나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채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페데리치가 보기에 사회적 재생산을 다루는 논쟁에서 특징적인 것, 1970년대 가사노동 임금 지급 운동5)을 이끈 활동가들이 기여한 것 중 ‘혁명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가사노동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것을 모든 점에서 공장 노동과 똑같이 생산적인 노동 형태로 간주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가사노동이라는 영역에서도 자본주의적 착취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들이 보기에 지금껏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를 무시해 왔다는 주장이다. 메자드리와 페데리치의 글은 사회적 재생산 이론 내의 ‘이론적-정치적 논쟁’을 자율주의 경향과 ‘마르크스주의자’ 내지 ‘마르크스 진영’으로 거론되는 필자들 사이의 공개적인 논쟁으로 끌어간다.6) 그 논쟁이 펼쳐지는 지형 위에서 퍼거슨은 사회적 재생산 이론 자체의 계보, 즉 그가 자율주의 진영과 주류 사회주의 페미니즘 둘 다와 구별하고자 하는 ‘전통’을 제시하려 한다. 그는 엥겔스 이래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젠더와 계급의 관계를 개념화하는 데에서 ‘이중체계론’의 오류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점을 다루기 전에, 그리고 사회적 재생산 이론 내의 공개적인 논쟁의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사회적 재생산을 다루는 ‘마르크스’ 학파(퍼거슨이 쓰는 표현이다)가 리즈 보걸의 책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7)을 참조 기준으로 인용하기는 하지만 그 관점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는 점을 언급해야겠다. 앞으로 보게 될 것처럼 퍼거슨은 자신의 위치를 주류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통에서 멀리 떼어놓는다. 보걸 자신은 한편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작업에서 중요한 오류, 실수, 누락이라고 판단한 것들을 지적하면서도, 더 전반적인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일부로서 여성 억압을 이론적으로 파악하고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데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기여한 바를 옹호한다.8) 자신의 책에서 보걸은 초기 저작을 비롯해 <공산당선언>, <자본론>,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등 젠더와 계급 문제를 다루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작업에 담긴 다양한 측면을 밝혀낸다.9) 그는 또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여러 사회주의 조직 내에 여성을 위한 ‘특별지부’를 설립하기 위해 국제노동자협회 내에서 수행한 실천적인 투쟁에도 관심을 쏟는다.10) 이 투쟁은 노동자 운동이 억압에 맞선 투쟁에 나서도록 그들이 전개한 투쟁의 한 부분이었다. 퍼거슨은 이런 측면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이제 ‘세 갈래의 궤적’이라는 발상을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이 퍼거슨은 페미니즘 사상의 세 가지 경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평등 페미니즘, 비판적 평등 페미니즘(여기에 주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포함된다),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 평등 페미니즘은 이른바 ‘여성 문제’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18세기 말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맥락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올랭프 드 구주 등 당시 계몽된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고찰과 결부된다. 이 경향은 새로 등장한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수모에 대한 이성적-도덕적 비판에 바탕을 둔다. 여성은 이성의 왕국에서 여전히 배제된 상태였고, 가사노동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밀려났다. 철학적, 법률적, 문화적 논의에서는 여성을 본래부터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면서 이런 종속을 정당화했다. 평등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에게서 독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얻을 기회와 평등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사상가들은 계몽된 최상류층에 속했기 때문에 계급 불평등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퍼거슨의 책에 담긴 명제에 비춰 보면 둘째, 셋째 궤적이 더 중요하다. 퍼거슨은 자신이 말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 간의 차이점을 규정한다.11) 그가 보기에 이 두 개의 궤적 또는 초점 간의 차이는 이론적인 세부 사항의 문제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통에서 정치적 중점 사항의 차이가 왜,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한 설명”의 문제다. 이것이 어떤 문제인지 살펴보자.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의 역사적 뿌리를 추적하기 위해 퍼거슨은 여성의 상황을 다룬 유토피아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저작을 재검토한다. 그는 1825년 <인류의 절반, 여성의 호소>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한 윌리엄 톰슨과 안나 윌러의 공헌을 강조한다.12) 퍼거슨에게 이들은 최초로 “현대의 정치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적인 시각에서 ‘생산적’ 노동을 분석할 때 사용한 것과 똑같은 렌즈를 이용해” 집안에서의 여성 노동을 분석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성 억압을 “재생산노동과 생산적 노동의 역학관계”에 연결함으로써 “페미니즘적인 노동이론의 역사에 ‘전환점’을 찍었다.” 이 ‘혁신’의 파급력이 크지는 않았다는 점을 퍼거슨도 알고 있지만, 그는 이것을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의 기원으로 간주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자본의 운동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다룬다. 가부장적 권력관계는 자본주의 외부에 존재하는데, 이는 그에 맞선 투쟁이 단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뜻이다. 그에 따라 페미니즘은 지금까지의 ‘계급’투쟁과 동시에 수행되거나 아니면 그것에 포괄되는 (나중에 회자된 공산당의 어법을 따르자면) ‘별도의 투쟁’이 된다. 이와 같은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은 퍼거슨이 (여성들의 투쟁이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며, 따라서 ‘혁명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멀리 가버린)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당들의 어리석은 입장과, 억압에 맞선 투쟁과 착취에 맞선 투쟁을 결합하려 한 혁명적 전통을 구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퍼거슨이 작성하고 있는 계보는 그런 게 아니다. 그가 보기에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통은 플로라 트리스탄에서 출발해 이후 여성 문제에 대한 베벨과 엥겔스의 ‘이중체계론’적 접근과 결합하면서 이와 같은 보수적인 입장으로 귀결됐다. 퍼거슨의 관점에서는, 방금 언급한 인물들이 나중에 ‘계급 환원론’이라고 규정된 이해방식으로 가는 길을 닦았으며, 노동자 운동 내에서 억압에 맞선 투쟁을 무시하는 풍토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몇 가지 이유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그는 베벨과 엥겔스를 똑같이 취급한다. 하지만 이는 엥겔스가 여성 억압이 자연적이거나 정신적인 요소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기원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부분적으로 베벨의 글에 맞대응하는 방식으로 가족에 관한 고전적인 글을 썼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13)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기원을 다루는 데에서 퍼거슨의 참조 문헌은 플로라 트리스탄에서 출발해 마르크스를 언급하지 않은 채 엥겔스와 베벨로 건너뛴다. 마르크스는 어느 ‘계보’에 포함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개가 이렇게 다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퍼거슨은 자본주의에서 생산적 노동과 무급 재생산노동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이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엥겔스 이래로, 여성 억압에 대해서는 평등 페미니즘의 입장에 더 가까운 설명 방식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계급적 비판을 수반한 것일지라도 말이다(이 점 때문에 그는 이 경향을 비판적 평등 페미니즘으로 분류한다). 퍼거슨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가사노동을 단지 성별 노동 분업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분석하며, 고립된 개별 가정에서 고단하고 무거운 가사노동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여성의 문제로만 여성 억압을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에서 생산적 노동과 재생산노동의 관계를 제대로 이론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필수노동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삶’에 필수적이지 ‘자본’의 운동에 필수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퍼거슨의 주장은 핵심적으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생산적 노동과 재생산노동이라는 두 요소를 별개로 분석하면서 그것의 체계적 연관성을 놓치고, 그 결과 계급투쟁을 앞세우면서 여성의 투쟁을 뒤로 미루는 정치적 입장에 길을 터준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의 작업에서만 약간의 예외를 언급하는데, 그들은 이런 경향을 거부하고 “당원들의 성차별과 안티페미니즘”에 맞서 싸움으로서 오류를 피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콜론타이와 체트킨이 “여성해방은 자본주의의 타도를 조건으로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투쟁의 한 부분으로 여성 쟁점을 명확하게 다뤄야 하며 나중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비중 있게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점을 지적한 뒤에 그는 “체트킨과 콜론타이의 이론적인 틀은 그들이 설정한 과제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인다. 즉 퍼거슨의 관점에서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통은 가사노동을 이론적으로 잘못 이해한 탓에 출발점부터 결함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후의 ‘이중체계론’ 흐름과 ‘계급 환원론’이 등장하고 결국에는 노동자계급 여성의 투쟁에 완전히 보수적인 스탈린주의 입장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몇 가지 이유에서 그의 명제는 잘못됐다. 첫째, 그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에서 펼쳐진 정치적, 이론적, 전략적 투쟁의 총체적인 역사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추상적으로 떼어낸다.14) 이 일련의 투쟁은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 스탈린주의의 등장, 그리고 스탈린 반혁명 집단에 맞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투쟁에 걸쳐 이어졌다. 퍼거슨은 이 두 개의 역사적 흐름을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는 듯하다. 평론가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각각 혁명 정치와 개량주의 정치에 복무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을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잣대는 너무 뭉툭하다. 이것으로는 두 전통이 공유하는 가설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통에 남아 있는 이론적 모호함을 포착할 수 없다. 퍼거슨은 (부르주아) 평등 페미니즘과 비판적 평등 페미니즘 또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이에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있는 소위 이론적 동의 지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그것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 간의 이론적, 전략적 차이는 내버려 둔 채 말이다. 결국 퍼거슨의 접근법이야말로 너무 뭉툭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여성 억압 문제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 스탈린주의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한편 우리는 잠시 ‘계급 환원론’이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퍼거슨은 계급 환원론의 책임을 거리낌 없이 엥겔스 이후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통 전체로 돌린다. ‘계급 환원론’이란 무엇인가?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공산당 역사에서 가져온 몇 개의 사례로 이를 설명한다. 미국 공산당 지도부는 현장 내에서든 노동자 운동 조직 내에서든 성차별에 맞선 여성의 요구를 막연한 미래의 문제로 돌리려 했다. 그런데 ‘계급 환원론’이라는 용어에는 난점이 있다. 마치 ‘젠더’ 요구를 ‘계급’ 요구에 대립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젠더냐 계급이냐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내의 경제주의, 부문주의, 조합주의 관점이다. 계급적 관점에서라면, 노동자 운동 내의 분열과 모든 성차별, 인종차별, 그 밖의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제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억압에 관한 공산당의 경제주의적 입장이 널리 퍼진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퍼거슨이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이론에서 발생한 ‘근원적인 오류’인가? 아니면 다른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문제인가? 우리는 이런 입장의 물질적 기반을 20세기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사회적, 정치적 전개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여긴다.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이 옹호한 경제주의적 환원론은 강력한 노동 관료제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노동 관료제는 여성, 가장 불안정한 처지의 청년, 이주민,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사람들 등 노동자계급 내에서 가장 착취당하는 부위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키려 한다. 퍼거슨은 이러한 사회주의 운동의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역사가 지닌 전체적인 양상을 생략해버린다. 러시아혁명과 가사노동의 사회화 퍼거슨은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통에서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페미니스트에게든 계급투쟁에서든 목표 또는 궁극의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과 아주 다르다. 엥겔스는 생산수단이 사회화되면 “개별 가족은 사회의 경제적 단위이기를 멈춘다. 사적인 가사 업무는 사회적 산업으로 전환된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아동 돌봄과 교육은 공적인 업무가 된다.”15) 비록 이 지점을 이론적으로 더 진전시키지는 않았지만,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이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묶여있는 사회적 노동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했다. 더욱이 그는 공산주의 사회의 목표 중 하나로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꼽는다. 그리고 이런 전망을 물질적인 힘으로 만들어낸 러시아혁명만큼 이 이론을 실천적으로 잘 검증한 사례가 있는가? 놀랍게도 퍼거슨은 이 혁명적 경험에 대해서도, 여성해방을 위한 볼셰비키의 강령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1919년 8월, 볼셰비키 당의 여성 투사들이 제노텔[여성부]을 설립했다. 제노텔은 여성 노동자, 농민, 주부로 구성됐고, 내전의 고난을 겪는 동안 여성들 사이에서 특별 활동을 수행하고자 했다. 1920년 11월, 임신 중지가 합법화됐고, 동성애가 비범죄화됐으며, 혼외 자녀의 평등한 권리도 인정됐다. 이 기간은 치열한 논쟁과 실험으로 가득 찼고, 여성해방, 성 해방, 개인적인 관계의 변화 등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투쟁의 필수 요소로 여겨진 시절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무급 재생산노동과 총체적인 생산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탈바꿈시켜야 했다. 이 목표를 염두에 두고 국립 어린이집, 유치원, 공동 식당, 빨래방 등 가사노동을 사회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제안됐다. 그 목표는 각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최대한 줄이면서, 이런 업무가 사회적 생산의 새로운 부문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미국 역사학자 웬디 골드먼이 설명하듯이, “가사노동은 공적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다. 무수히 많은 개별 여성이 각자의 가정에서 무급으로 수행한 업무를 공동 식당, 빨래방,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유급 노동자들이 넘겨받을 것이다.”16) 이와 관련해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이렇게 주장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집안일이 제거될 것이고, 소비는 가족 내의 개인적인 활동이기를 멈출 것이다. 사적인 주방은 공적인 대형 식당으로 대체될 것이다. 광업, 금속 가공업,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바느질, 청소, 세탁이 경제활동으로 재편될 것이다.”17) 이네사 아르망 역시 ‘가내 노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투쟁했다. 1918년 열린 여성노동자농민대회에서 그는 여성 노동자가 공장과 집에서 이중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현실을 규탄했다. 레닌 또한 “‘실질적인 여성해방’을 이루려면 법적 평등만이 아니라 가사노동을 사회화된 노동으로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여러 번 지적했다.18) 같은 의미에서 트로츠키는 “세탁은 공공 빨래방에서, 음식 섭취는 공공 식당에서, 바느질은 공공 작업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 그러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모든 외부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날 것이다.”19)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여성 억압에 맞선 투쟁과 착취에 맞선 투쟁을 공산주의 사회를 향한 단일한 투쟁으로 결합하려 했다. 이는 그 중심 요소로서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포함했다. 그 뒤 스탈린 정권 시기에 이뤄진 (여성의 권리에서 중대한 역행이 포함된) 반혁명적 퇴행을 마치 애초부터 마르크스주의에 내포된 문제인 것처럼 과거로까지 확대 적용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관한 자신의 서술을 구성하면서, 퍼거슨은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 내의 자율주의 진영이 마르크스주의에 가한 공격에는 대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런 공격을 정당화시켜준다. 가사노동과 사회적 재생산 사회적 재생산의 궤적에 초점을 맞추면서, 퍼거슨은 1960년대 말 페미니즘 운동의 두 번째 물결과 가사노동에 관한 논쟁으로 돌아간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 가사노동 임금 지급 운동 등을 포함한 다양한 경향이 이 쟁점을 토론했다. 그는 또한 1969년에 마거릿 벤스턴이 제출한 입장을 강조했는데, 이후에 다른 논자들이 그 입장을 이어갔다.20) 자신의 책 2부에서 퍼거슨은 “가치 창출과 삶의 재생산 간의 모순을 강조하는” 이들 논의의 흐름을 추적한다. 그런데 그의 결론은, 1970년대의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이 더 넓은 시각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살펴보는 대신, 여성의 가정 내 무급 노동에 지나치게 집중했다는 점에서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1983년 출판된 리즈 보걸의 책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단일 이론을 향하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말한다. 리즈 보걸은 무급 노동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노동력 재생산이 자본의 축적과 맺는 필수적이지만 모순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이렇게 해서 사회적 재생산에 관한 작업의 “윤곽이 폭넓게 그려졌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돌보는 것처럼 전형적으로 여성이 여러 세대에 걸쳐 매일 해온 일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자신과 타인들이 인간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이 하는 노동, 즉 ‘기초적인 생활상의 업무를 해내기 위한 개인적, 집단적인 생존전략’도 여기에 포함된다.” “사회적 재생산노동의 목표가 삶을 지속시키는 것인 한, 동시에 그것은 자본을 지속시키는 데 충분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확실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로부터 질문이 제기된다. 사회적 재생산의 의미가 무급 가사노동으로 제한되는 걸 피하려고 하면서, 이제는 그 의미가 너무 확장되는 건 아닌가? 그 경계선이 다소 모호해진 게 아닌가? 예컨대 친지아 아루자는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매장 노동자의 일을 사회적 재생산노동에 포함한다.21)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가정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플랫폼 노동자, 술집과 식당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도 여기에 포함해야 한다. 게다가 가족을 위해 식료품을 구매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슈퍼마켓 계산원을 포함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면 그 식료품을 운송하는 노동자는? 우리는 이렇게 생활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일련의 직무를 계속 포함해 나갈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확인했듯이 세상에 그런 직무는 아주 많다. 그런데 이렇게 그 의미가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면, 도리어 설명력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또한 이는 폭넓은 사회적 재생산 범주에 속한 다양한 유형의 노동에 내재한 질적 차이를 다소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 맨 끝에 언급한 문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사회적 재생산 이론 내의 자율주의 진영과 마르크스주의 진영이 가치문제를 둘러싸고 전개한 논쟁과 연관된다. 이어서 그 문제를 다루겠다. 자본주의, 가치, 가사노동 가사노동이 만들어내는 것은 사용가치인가 교환가치인가? 1970년대에 시작한 이 논쟁이 오늘날 다시 논의되고 있다. 퍼거슨은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이 마르크스 경향과 자율주의 경향이라는 두 개의 사상적 조류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은 어떻게 저항을 조직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전략을 채택할 것인지에서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이 차이가 “사회적 재생산노동이 가치 창출에 어떻게 연관되는지 이론화하는 데에서 불일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는 자율주의 경향과 논쟁하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한다. 가사노동 임금 지급 운동을 벌인 자율주의 이론가들은 가사노동이 노동자의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며(이들은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력을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치를 생산한다는 입장이다.22) 그러므로 가사노동은 생산적인 노동이며, 자본가들은 주부들을 직접적으로 착취한다.23) 그들은 이것을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공장’의 한 부분이라고 부른다.24) 따라서 가사노동을 거부하는 것은, 그 노동이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한, 공장에서 벌어지는 파업 또는 그 이상으로 가치 창출을 막을 것이다. 그들이 이런 규정에서 끌어내는 전략은, 은폐된 착취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주부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와 동시에 가사노동을 거부하는 것, 즉 가사파업이다. 퍼거슨은 이 주장을 사회적 재생산 이론 내의 마르크스 경향의 분석과 대조한다. 리즈 보걸과 마르크스의 입장을 따라, 이 경향은 가사노동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 노동의 산물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용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가사노동은 생산적인 것도, 비생산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범주는 유급 노동에 적용되는 것이고, 자본주의적인 잉여가치 생산에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은 남녀 노동자들이 소비하는 것들을 생산한다. 그것이 시장에서 비교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가치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추상적 노동으로 환원될 수 없다. 가사노동은 사적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는 유용한 노동이다. 이것은 곧 가사노동의 지속시간, 반복 주기, 구체적인 할 일 등을 자본가들이 직접 통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구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와 노동력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 [노동자와 달리] 노동력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 따를 때, 가사노동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종속돼 있으면서도 자율성을 유지하며, 자본의 통제에 종속돼 있지는 않다. 파울라 바렐라는 다음과 같이 옳게 설명한다. 가정이 정말 문자 그대로 노동력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면, 여기에서도 상품 생산의 논리가 똑같이 지배할 것이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시장에서 쓸만하게 팔릴 수 있도록, 즉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노동력이란 상품에 관해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게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에도 이 상품의 생산은 멈추지 않는다. 실업률이 높을 때에도 아이들은 계속 먹이고, 씻기고, 가르치고, 옷을 입혀야 한다. 의심할 바 없이 그 노동은 더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조건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에서는 과잉 공급 때문에 ‘해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25) 우리는 사회적 재생산노동이 무급 가사노동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영역의 임금노동을 포함한다는 점을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관점에서 이미 지적했다. 사회적 재생산에 속하면서도 이렇게 그 유형이 구별되는 노동은 자본주의적 잉여가치 생산과도 아주 다른 관계를 맺으며, 따라서 자본가들의 통제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한쪽 끝에는 무급 가사노동이 있다. 그것은 유용한 노동이지만, 자본주의 관점에서 볼 때 생산적인지 비생산적인지 따질 수 없는 노동이며,26) 대체로 자본가들의 통제로부터 상당 정도의 자율성을 지닌다. 다른 쪽 끝에는 사회적 재생산에 속하면서 임금노동으로 이뤄지는 일자리가 있다. 개별 가정에서 이뤄지는 유급 가사노동은 가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는 비생산적이며, 상당 정도로 (극악한 수준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고용주의 통제가 따른다. 가정에 입주해 일하는 노동자라면, 심지어 자기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휴식 시간’에까지 통제가 가해진다. 그들이 일하는 집에서 그대로 생활하기 때문에 그들의 자유시간은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노동자에 비해 더 많이 규제되고, 제한되고, 강제가 따른다. 공적 영역에서 임금노동을 하는 사회적 재생산 노동자의 상황은 다르다. 그들의 업무에서 ‘자율성의 여지’는 사적 영역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의 경우보다 더 클 수 있다. 비교해 보자면, 공공병원보다 민간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나 미화원의 경우 업무, 스케줄, 생산성 등에 대한 통제가 더 강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문제와 부딪힌다. 두 집단의 구체적인 노동이 아주 유사하다고 할 때, 민간병원 노동자들의 업무는 자본가에게 생산적인 반면, 공공병원 노동자들의 업무는 비생산적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는 점점 더 많은 공공병원이 민간업체에 업무를 외주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노동자들이 더욱더 불안정한 처지와 과중한 업무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층 더 복잡해진다. 패스트푸드 식당 노동자의 경우는 또 어떨까? 두말할 나위 없이 이곳 노동자들의 노동 형태, 작업 속도, 강도 등에 대한 통제 수준은 공장 같은 ‘전형적인’ 생산적 부문에 비견할 만하거나 더 심하기까지 하다.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조차 생산적, 비생산적 노동을 구별하는 것은 자의적인 게 아니라 이 업무가 자본과 맺는 관계를 가리키고, 따라서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데 어떤 역할을 맡는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무급 노동, 개별 가정에서의 유급 노동, 공공이나 민간 영역의 사회화된 유급 노동 등 사회적 재생산 영역으로 간주되는 부문에서 나타나는, 비생산적일 수도 있고 생산적일 수도 있는 직무의 다양성을 보면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생산 영역과 무 자르듯 구별되는 사회적 재생산이란 영역이 존재한다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분석하는가에 따라 그 경계선이 유동적이며 규정하기 어려운 것인가? 이론에서 정치로: 페미니즘 전략 퍼거슨은 자율주의 경향과 마르크스 경향이 “자본에 저항하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데에서 사회적 재생산 파업이 중심 역할을 한다는 점에는 동의가 이뤄졌으며, 서로 다른 점은 사회적 재생산 파업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토대로 그는 실비아 페데리치가 옹호하는 전략을 반박한다. 페데리치는 ‘자본의 논리 바깥에’ 자율적인 공간, ‘혁명적 공유재’의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협동조합, 공동 식당, 그 밖의 여러 유형의 연합체가 포함될 텐데,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관계 ‘외부’에서 사람들의 질서를 형성하며 자본을 넘어선 사회를 ‘미리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사노동을 ‘그만두고’ 그런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때로는 여성을 위한 ‘기본소득’ 요구를 동반하는 것이 사회적 재생산 파업이라고 한다. 퍼거슨은 사회적 재생산 이론 내의 마르크스 경향 역시 사회적 재생산 파업을 중요하게 여길지라도, 문제는 ‘자율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국가에 보건의료, 교육 등의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에서 사회적 재생산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지역 차원의 시위가 필요하다. 그는 파업이 “자본의 영토 안에서 자본에 대항하고, 연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생산적 노동은 재생산노동과 같은 방식으로 자본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적 부문의 파업도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인다. “오직 사회적 재생산 노동자 파업을 중심으로 저항을 조직하는 것만으로는 지배계급을 충분히 위협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퍼거슨은 “현장 파업을 향한 길을 찾아내 억압에 저항하는 정치를 세워내고, 억압에 저항하는 파업으로 현장에 기반한 요구를 세워내면서” 여러 전선에서 투쟁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연대를 건설하는 것이 파업의 수단이자 목표”라고 결론 내린다. 퍼거슨이 보기에 협동조합, 공유재, 또는 페미니즘적 기본소득으로 ‘자본에 의한 삶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삶을 위해 더 많은 재원을 요구하고 자본을 위해서는 더 적게 내주면서, 체제 그 자체 안에서 자본에 의한 삶의 지배에 반격”하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파괴될 때까지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탈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퍼거슨은 이렇게 말한다. “혁명전략은 대중 운동을 건설해 지역과 거리에서의 투쟁을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연결하며 자본에 저항하는 복합적인 방식의 수립을 동반한다. 그런 운동은 다양하면서도, 이윤보다 필요를 우선시하며 자본을 위한 노동을 몰아내고 삶을 위한 노동을 수행하는 세계를 창조한다는 목적으로 단결해 있다.” 전략을 둘러싼 이 논쟁에서 퍼거슨은, 이 체제의 변방에서 ‘자본의 논리 바깥에’ 공간을 만들어내자는 자율주의적 제안을 논박한다는 점에서 옳다. 협동조합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계속 상품을 사들여야 하고, 자본주의 기업에 전기료를 내야 하는 등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경쟁을 강요받거나, 그게 아니라면 단명하는 소규모 기획으로 끝날 것이다. 자본주의적 재난의 한복판에서 작은 유토피아적 ‘오아시스’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퍼거슨이 제안하고 ‘99%의 페미니즘’과 동일시된 전략은 “체제 그 자체 안에서 자본에 의한 삶의 지배에 반격”하기 위해 자본에 맞선 대중의 저항운동을 창출한다는 구상에 집중한다. 그것은 동시에 ‘연대 관계’를 창출하는 데에도 힘을 쏟는다. 물론 ‘99%의 페미니즘’이 호소하는 내용은 노동자계급의 힘을 산산조각 내는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견고한 동맹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본에 도전할 수 있는 사회세력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제기된 방식으로는 전적으로 불충분하다. 연대와 저항의 운동을 강화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깨부수기 위한 전략으로는 부족하다. 이 저항에서 공세로 넘어가는 시점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세워져 있는가? 더 나은 공공의료와 교육을 위한 요구에 덧붙여 자본가들의 이윤을 문제 삼기 위해 우리는 어떤 강령을 옹호해야 하는가? 노동자 대중의 가장 긴급한 요구와 필요를 어떻게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과 연결할 것인가? 혁명전략에 관해 얘기해보자면, ‘연대 관계’의 창출은 전략의 기초적인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 억압적 물리력을 쳐부술 수 있는 물질적인 세력을 창출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략에 관한 논쟁이 관건이었다. 총파업, 노동자계급의 전략적 지위, 자기조직화를 위한 기구의 필요성, 노동자계급과 동맹 세력의 관계, 공동전선, 승리를 향한 강령을 갖춘 혁명 정당 건설 등의 문제가 여기에 포함된다.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다른 피억압 민중과 동맹을 구축하고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헤게모니’ 문제 역시 이 핵심 논쟁에 속한다.27) 제2, 제3인터내셔널에서는 이것이 핵심 쟁점이었다. 러시아혁명에서 농민 문제, 피억압 민족의 권리, 다양한 부문들의 민주적 요구, 여성 억압이나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억압에 대해 말하자면, 여성 노동자와 인종차별을 겪는 노동자의 구체적인 요구와 나란히 민주적 요구를 (노동자계급만의 요구가 아닌 것으로서) 명료하게 제시해야 한다.28) 마무리를 위해 우리는 두 개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다. 첫째, 아래로부터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운동과 사회 운동에서 연대를 방해하는 관료집단의 조합주의 정치에 대항해야 한다. 사회 운동이 노조 관료들의 조합주의를 문제 삼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 운동 내에도 똑같이 조합주의적이고, 분리주의적이며, 때로는 자본주의 국가에 포섭된 관료집단이 있다. 최근의 사례로 페미니즘 운동을 들 수 있는데, 여러 나라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거리 시위와 대중적인 여성 파업에 등을 돌리고 자본주의 국가의 내각과 정부 기관에 들어갔다. 둘째,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 같은 최근의 가장 중요한 사회 운동은 우익에 맞서 ‘차악’을 지지하자는 생각 때문에 활력을 잃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스페인에서 사회노동당(PSOE)과 포데모스의 연립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대거 옮겨갔다. 다시 말해서, [퍼거슨이 제시한] ‘연대’ 전략은 계급 독립성을 앞세우며 동시에 관료제에 반대하는 정치가 없다면 제구실을 할 수 없다. 결론을 대신해 리즈 보걸에 이어서 사회적 재생산 문제에 집중한 이론가들의 많은 저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과 착취의 체계적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아주 소중하다. 논의를 더 진전시켜야 할 요소들이 이 영역에 많이 남아 있다. 보걸의 작업이 중요하다. 그는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필수 요소로서 가사노동을 자리매김하면서, 마르크스가 전개하지 못한 구체적인 분석 지점을 풀어가기 위해 <자본론>의 범주들을 활용했다. 현재 사회적 재생산 이론가들은 교사, 간호사, 노인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부문이 ‘연대’의 고리를 만들거나, 노동자계급의 다른 부문 및 가난한 민중과 ‘가교’를 놓을 수 있는 잠재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의 노동은 노동자계급의 일상생활을 재생산하는 데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며, 계급 전체와 복합적인 경로로 연결돼 있다. 미국의 교사 파업에서 이런 측면을 볼 수 있었고, 팬데믹 기간에 보건의료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대중의 지지가 그랬다. 그러나 이 ‘잠재력’이 그런 ‘연대’가 실체를 갖도록 보증하는 건 아니다. 많은 경우에 노조 관료들이 그런 연대가 실현되는 걸 거부하고, 저지한다. 동시에 혁명적 정치는 노동자계급의 다른 부문에서, 심지어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일하는 생산적 부분에서 이 잠재적 ‘헤게모니’를 불러낼 수 있다. 그 사례를 프랑스 토탈 그랑퓌 정유공장 노동자들의 해고에 맞선 투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곳 노동자들은 환경운동 단체들과 연대의 고리를 맺었고, 노동자와 민중의 이해관계를 지키며 친환경적 전환 방식을 옹호했다. 또 다른 사례로 아르헨티나 네우켄지역의 세라믹 타일공장 사논이 있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학생, 마푸체 원주민, 실업 노동자, 그 밖의 노동자들과 동맹을 구축했다. 궁극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잠재적인 헤게모니를 현실화할 수 있는가는, 그들의 ‘사회학적’ 구성이나 그들의 노동이 생산적 노동인가 아니면 사회적 재생산노동인가보다는, 노동자들이 채택하는 정치에 더 달려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혁명적 정치의 지평으로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젠더와 계급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 사회적 재생산 이론 분야에서 이뤄진 많은 저자들의 다양한 공헌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이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페미니즘 운동에서 펼쳐진 150년 이상의 논쟁과 별개이거나 심지어 능가하는 하나의 전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모든 피억압 민중과의 동맹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인 논쟁과 연결하면서 그간의 사회적 재생산 이론에 관한 공헌을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연대는 단지 파업과 투쟁의 ‘수단이자 목표’에 그칠 수 없다. 다른 사회 운동과 노동자계급의 연대와 단결은 사회주의를 향한 혁명적 투쟁이라는 더 높은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될 때 비로소 전략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것이 이윤보다 삶을 더 중요시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한 폭력에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모두를 해방시킬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주 1) Susan Ferguson, Women and Work: Feminism, Labour, and Social Reproduction (Pluto Press, 2019). 2) Silvia Federici, “Social Reproduction Theory: History, Issues and Present Challenges,” Radical Philosophy, no. 2.04, series 2 (Spring 2019). 3) Alessandra Mezzadri, “On the Value of Social Reproduction: Informal Labour, the Majority World and the Need for Inclusive Theories and Politics,” Radical Philosophy, no. 2.04, series 2 (Spring 2019). 4) 친지아 아루자, 티티 바타차리야, 수잔 퍼거슨 등의 주장은 다음의 책에 실려 있다. Tithi Bhattacharya, ed., Social Theory Reproduction: Remapping Class, Recentering Oppression (London: Pluto Press, 2017). 5) 이 운동은 여러 페미니스트와 함께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실비아 페데리치, 셀마 제임스가 이끌었으며, 이탈리아 자율주의가 발전시킨 개념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6) Paula Varela, “La reproducción social en disputa: un debate entre autonomistas y marxistas,” Revista ARCHIVOS de historia del movimiento obrero y la izquierda 8, no. 16 (March–August 2020): 71–92. 7) Lise Vogel, Marxism and the Oppression of Women (New Brunswick, NJ: Rutgers University Press, 1983). 2013년에 헤이마켓북스에서 역사유물론 문고 시리즈로 이 책을 재출간했다. 8) “계속하기에 앞서, 여성 억압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때 포함해야 할 항목들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첫째, 여성해방과 모든 인간의 실질적인 사회적 평등에 대한 확고한 지향에서 출발해야 한다. 둘째, 여성의 현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그 현 상황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연구해야 한다. 셋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다루는 이론을 제시해야 한다. 즉 여성의 지위를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것과 더불어 ‘이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여성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는, 과거와 현재의 사회에서 여성의 종속을 다루는 이론과 역사에서 일관되게 뻗어 나온 미래 사회 여성해방이라는 시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여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실천적인 강령과 전략에서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작업에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이런 지점들을 다룬다.” 앞의 책. 9) 이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Ariane Díaz, “Economía política de la reproducción social I: trabajo y capital,” Ideas de Izquierda, July 14, 2019; Ariane Díaz, “Economía política de la reproducción social II: patriarcado y capitalismo,” Ideas de Izquierda, July 21, 2019. 10) 이 점에서 리즈 보걸은 친지아 아루자, 티티 바타차리야와 입장이 다르다. 예컨대 다음을 보라. Cinzia Arruzza, Dangerous Liaisons: The Marriages and Divorces of Marxism and Feminism (London: Merlin Press, 2013). 이 책에서 친지아 아루자는 플로라 트리스탄, 마르크스와 엥겔스, 클라라 체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그리고 이후 스탈린 관료체제에서 이뤄진 후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러시아혁명에서 볼셰비키의 해방을 향한 강령 등의 기여를 검토한다. 11) 퍼거슨은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을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한 부류로 간주하면서도, 이들을 서로 다른 두 개의 궤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12) William Thompson, and Anna Wheeler, Appeal of One Half of the Human Race, Women, against the Pretensions of the Other Half, Men, to Retain Them in Political and Thence in Civil and Domestic Slavery. 13) Josefina L. Martínez, “Engels, Working Women, and Socialist Feminism,” Left Voice, November 28, 2020. 14) 게다가 노동자계급 내의 성차별에 문제 제기했을 뿐 아니라 계급과 젠더의 관계를 사고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한 트리스탄에 대한 태도는 다소 부당하다. 비록 그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사이에서 과도적 위치에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15) Friedrich Engels, 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16) Wendy Goldman, The State and Revolu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3. 17) 같은 책. 18) 같은 책. 19) Leon Trotsky, “From the Old Family to the New,” 1923. 20) 마거릿 벤스턴은 가사노동이 교환가치가 아니라 가정에서 직접 소비하는 사용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적인 의미에서 생산적인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자본주의에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전자본주의적(pre-capitalist) 노동이다. 21) Cinzia Arruzza and Tithi Bhattacharya, “Teoría de la Reproducción Social: Elementos fundamentales para un feminismo marxista,” Revista Archivos de historia del movimiento obrero y la izquierda 7, no. 16 (March–August 2020): 48. 22) Andrea D’Atri and Celeste Murillo, “Producing and Reproducing: Capitalism’s Dual Oppression of Women,” Left Voice, no. 4 (February 2019). 23) 마르크스의 용어에서 노동이 생산적이라거나 비생산적이라는 정의는 마치 어느 한쪽이 더 ‘값진’ 것이라거나 더 ‘중요한’ 것이라는 도덕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정의는 노동이 시장에 팔리기 위한 상품을 생산하는가, 따라서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는가를 다루는 것과 연관된다. 24)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은 ‘사회적 공장’이라는 개념을 이탈리아 오페라이스모(operaismo: 노동자주의)와 마리오 트론티의 저작들에서 빌려왔다. 25) Paula Varela, “La reproducción social en disputa”. 26)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이 구분은 다른 형태의 임금노동을 가리킨다. 27) Matías Maiello and Emilio Albamonte, “Trotsky, Gramsci, and the Emergence of the Working Class as Hegemonic Subject,” Left Voice, March 13, 2021. 28) 혁명전략에 관한 논쟁을 더 깊게 보려면 다음을 참조. Emilio Albamonte and Matías Maiello, Estrategia socialista y arte militar (Buenos Aires: Ediciones IPS, 2019). 곧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글쓴이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2021년 5월 20일 옮긴이 오연홍 꺾쇠괄호[ ] 안의 문구는 옮긴이가 추가한 것이다. 기사 원문 https://www.leftvoice.org/social-reproduction-feminism-or-socialist-feminism/#easy-footnote-bottom-1-24917 연재 소개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남성 혐오’나 ‘갈라치기’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또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여전히 주류인 것도 맞다. 하지만 페미니즘에는 다른 길이 있다. 착취, 가난, 전쟁, 기후 위기로 점철된 자본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남성과 더 잘 경쟁하기 위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즘, 이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성별, 국적, 인종의 노동자와 청년이 똘똘 뭉쳐 함께 싸워야 한다고 외치는 페미니즘이 있다. 2003년에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독일,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코스타리카, 스페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 페루,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에서도 활동하는 국제 ‘빵과 장미’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변혁적 여성운동을 건설하려는 우리는 혁명적 페미니즘의 중요한 사례로 ‘빵과 장미’를 주목하면서, 이들의 주장과 실천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란 이런 것이다(타티아나 코차렐리) ② 왜 여성이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안드레아 다트리) ③ 여성 자본가에 맞서는 여성 노동자들(타티아나 코차렐리) ④ 우리는 임신 중지권을 이렇게 쟁취했다(너새니엘 플라킨) ⑤ 혁명은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안드레아 다트리) ⑥ 사회적 재생산과 사회주의 페미니즘(호세피나 마르티네스) ⑦ 페데리치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토론(호세피나 마르티네스)2023-01-25 | 조회 679
-
성평등 개혁은 스페인처럼?지난 한 해 동안 스페인에서 추진되고 있는 성평등 개혁 뉴스가 종종 전해졌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 성 및 생식 건강과 자발적 임신 중지에 관한 법률: 정부 개정안이 2022년 5월 스페인 국무회의에서 승인됐다. 16~17세 여성과 장애가 있는 여성이 법적 보호자의 동의 없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공공병원에서 시술 지원, 숙려 기간 조항 삭제, 사후 피임약 무료 공급 등 광범한 내용이 포함됐다. • 성전환자 성별 정정 간소화 법안: 16세 이상이면 의학적 소견이 없어도 성별을 바꿀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으로, 12월 22일 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이 상원까지 통과하면 성 소수자 정체성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전환 치료’가 금지되고, 성 소수자를 겨냥한 공격도 처벌 가능하다고 한다. • 생리휴가 법제화: 한국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월 1회 무급 보건휴가가 가능한데, 스페인에서는 월 최대 3일(애초 제안은 5일)의 유급휴가로 추진하고 있다. 12월 15일 하원을 통과했다. • 페미니스트 내각: 2020년 초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가 함께 구성한 연립정부 내각에서 22명의 장관 중 11명이 여성이다. 2018년 사회노동당 정부의 내각은 17명 중 11명이 여성이었다. 평등부 장관은 “스페인의 모든 새로운 법안과 정부 지출안은 페미니즘적이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개혁’ 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와 비교해 보면 천지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역사가 오래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고, 포데모스는 2011년 경제위기와 긴축정책에 항의하며 광장점거 운동이 분출한 이후 2014년에 결성된 느슨한 범좌파 경향의 개량정당이다. 이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해 추진하는 성평등 조치를 보면서 한편에서는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역시 이런 ‘개혁 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급하게 그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살펴봐야 할 점들이 있다. 개혁적인 것처럼 보이는 스페인 정부의 조치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우선 페드로 산체스 총리 스스로 솔직하게 고백한 비밀이 있다. 2018년 6월 6일자 <가디언 The Guardian> 보도에 따르면, 산체스 총리는 성평등 문제에 관한 한 스페인의 역사는 2018년 여성 파업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며, “새 정부는 그 운동을 충실하게 반영한다”고 말했다. 2018년 스페인 여성 파업의 한 장면 스페인 여성 파업에서 노조들은 3.8 여성의 날에 2시간 파업, 24시간 파업, 대규모 집회와 행진 등의 방식으로 투쟁을 조직했고, 그 결과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530만 명과 600만 명의 참가자 규모를 기록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 당시 최대 인원이 230만 명이었다고 한다). 학교, 병원, 버스, 철도, 공항, 공장, 언론사, 콜센터 등 다양한 산업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성별 임금 격차를 비롯한 직장에서의 성차별, 가정과 거리에서의 성폭력을 규탄한 이 파업은 “우리가 멈추면 세계가 멈춘다”는 대표 구호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증명해 보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 거대한 대중적 열망에 응답하는 모양새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집권 사회노동당의 처지가 곤란했다. 대중을 들썩거리게 만든 근본적인 경제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우익정당들에 더해 복스(VOX) 같은 신생 극우 정당이 포데모스를 제치고 제3당으로 떠오를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사회노동당은 포데모스와 손을 잡아야 가까스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취약한 상태였다. 요컨대 개혁적인 성향의 조치를 대거 풀어놓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기만과 그 결과 ‘그래도 어쨌든 이와 같은 성평등 개혁 조치는 환영할 만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런 조치 자체가 끈질기게 이어진 대중 투쟁의 성과인 만큼 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현 정부를 절대 신뢰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 연립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페미니스트 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여성들의 투쟁이 다시 터져 나오는 것을 결단코 억누르려는 그들의 기만적인 태도 때문이다. 2021년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정부는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다음 날 진보 성향의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 EL PAÍS>에는 현 정부의 기만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실렸다.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시장과 다수의 관중이 몰린 축구 경기장, 지하철 인파는 내버려 둔 채 오직 여성 집회만 통제했다”는 얘기다. ‘노동 존중 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를 핑계로 ‘핀셋 방역’ 운운하며 노동자 투쟁만 핀셋처럼 콕 집어 억압했던 것을 빼닮았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긴축정책을 밀어붙이며 여성과 청년,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했던, 그래서 2011년 ‘분노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광장점거 운동이 터져 나오게 만든 바로 그 세력이라는 점이다. 스페인 사회노동당의 정치는 다른 세상을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또 하나의 절충적 방식을 지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절충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가 극심한 위기에 직면하면 결국 자본가들의 이윤 보호를 1순위에 놓고 노동자, 민중에게 손실을 전가하게 된다. 지금 사회노동당 정부가 보이는 ‘개혁적’인 겉모습은 2018년과 2019년 스페인을 뒤흔든 대규모 여성 파업의 위력에 압박을 느낀 결과일 뿐이다. 여성 장관의 숫자가 늘어나면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성격이 달라질까? 이런 성격의 정권이 어떤 말로를 걷게 되는가는 그리스에서 시리자가 먼저 보여줬다. 절망적인 경제위기와 폭발적인 총파업 운동의 분출에 뒤이어 긴축정책 폐기를 내걸고 2015년에 집권한 시리자는 그 이름(‘급진좌파연합’이라는 뜻)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어중간한 정치 전망에 머물렀고, 대중 투쟁의 압력이 가라앉은 상황에서 스스로 긴축정책을 집행하는 자본주의 위기관리 대리인으로 우경화하더니 결국 2019년 기존 지배 세력인 신민주당에 도로 정권을 내줬다. 이런 결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중 투쟁의 압력을 끌어올리는 것, 즉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정부를 자처하면서 여성 집회를 봉쇄하는 스페인 사회노동당에 이를 기대할 순 없다. 광장점거 운동의 기세를 이어받아 탄생한 포데모스는 조금 다를까? 애초에 포데모스는 사회노동당 같은 특권 집단과는 손을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극우를 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며 대중 투쟁의 힘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로 우경화했다. 그들의 시야가 선거 정치에 완전히 함몰됐기 때문이다. 기만과 자기기만에서 벗어나야 그렇다면 2018~2019년 여성 파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페미니즘 운동은 어떤 상황일까? 당시 여성 파업을 조직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스페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호세피나 마르티네스는 이렇게 증언한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 같은 최근의 가장 중요한 사회 운동은 우익에 맞서 ‘차악’을 지지하자는 생각 때문에 활력을 잃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스페인에서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의 연립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대거 옮겨갔다.” 이 대목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스페인의 거대한 여성 파업 운동이 사그라든 데에는 코로나 사태가 조성한 압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투쟁이 활력을 잃은 본질적인 원인은 ‘지금은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 연립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타협적인 전망에서 찾아야 한다. 여전히 다수 여성이 더 높은 실업률과 임금 차별, 가사노동의 부담과 여성 살해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더 큰 투쟁을 조직해야 할 이유가 넘쳐나는데도 페미니즘 운동의 주류가 그런 타협적인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고, 일부는 정부와 직접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대중 투쟁의 고삐를 놓아버리는 방식은 결국 극우세력이 더 기세등등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준다. 스페인은 위력적인 여성 파업을 일으킴으로써 여성 억압, 성차별에 맞선 투쟁이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또한 그런 투쟁이 활력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지금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주류가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에 맞서면서 민주당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 점은 특히 중요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명적 페미니즘의 힘은, 개혁 간판을 걸고 노동자 민중을 농락하는 민주당 같은 자들과의 제휴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물결 속에서만 살아날 수 있다.2023-01-20 | 조회 542
-
[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5부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거듭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도 체제 전반의 이윤율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화는 점점 후퇴하며, 금융화는 더욱 거대한 금융위기를 향해 치달으면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가 근근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강력한 충격을 안기며 이 시대를 끝장내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무엇보다 이전 시대 동안 축적된 모순들이 폭발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격렬하게 분출할 시대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전 시대 동안 축적된 모순들로부터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충돌과 전쟁이 일상화할 시대다. 나아가 경제위기와 전쟁이 서로 맞물리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고 들어갈 시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계급투쟁이 부활하고 전진할 것이며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노동자혁명의 전망이 다시 한번 미래의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눈앞의 구체적인 과제이자 가능성으로 떠오르게 될 시대다. 1) 패권대결과 보호주의가 만들어 낼 새로운 세계질서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이 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배경 위에서 시작됐고, 또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 30년 동안 국가들 간의 세력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1~2020년 세계 총GDP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살펴보면, 흔히 짐작하는 바와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중국의 눈부신 상승이고, 일본의 급격한 하락이다. 또한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전반적인 하락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상승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크게 하락한 뒤 다시 회복하고 있다. 인도·브라질·러시아의 추세적 상승도 확인할 수 있다. 1991~2020년 세계 총 수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역시 중국의 눈부신 성장이 가장 눈에 띈다.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 등 기존 선진국들은 공히 추세적으로 하락해 왔다. 한국·싱가포르·인도·멕시코·러시아·브라질·사우디·튀르키예 등 신흥국들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한 성장 추세를 보여준다. 1991~2020년 세계 총 해외직접투자(자본수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중국·일본·독일·캐나다·한국·러시아의 성장과 미국·프랑스·영국·스위스의 하락이 교차함을 볼 수 있다. 브라질·사우디·인도·튀르키예는 계속해서 미미한 수준이다. 여기서는 수출에 비해 특정 국가로의 쏠림이 더 큰 것과 기존 선진국들과 신흥국들 안에서도 흐름이 서로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991~2020년 세계 총 군비지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상황을 볼 수 있다. 미국의 하락과 중국의 상승이 교차했지만, 여전히 그 격차가 매우 크다. 또한 경제력 지표에서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사우디·인도·러시아가 꾸준한 성장 끝에 3~5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영국·프랑스·일본·독일·이탈리아·스페인은 꾸준한 하락을 보여준다. 한국·호주·브라질·캐나다·이스라엘·튀르키예·이란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왔다. 2016~2020년 세계 주요 분야에서 국가별 비중 비교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종합한 국가 간 세력관계가 지난 30년의 변화를 거쳐 오늘날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력에 비해 군사력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력에서 미국을 상당히 추격했고 심지어 수출과 해외직접투자에서는 추월하기까지 했지만, 군사력에서는 미국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이 보여주는 차이는 미국의 군비지출이 GDP 대비 3.4%인 반면, 중국은 1.7%에 불과한 것으로도 나타난다. 또 하나 두드러지는 지점은 인도·러시아·사우디가 경제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핵무력은 미국과 쌍벽을 이루지만, 종합적인 군사력을 보여주는 데는 군비지출이 더 적절한 지표일 것이다.) 그러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 국가는 GDP 대비 각각 2.5%, 4.3%, 9.3%에 이르는 군비지출을 했다. 중국이 아직까지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 군비지출 비중이 1.7%에 머물러 있고, 상시적인 전쟁위기 아래 놓여 있는 한국의 군비지출 비중도 2.6%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또는 매우 높은 수치들이 아닐 수 없다. 튀르키예는 경제력도 군사력도 강하지 않지만, GDP 대비 군비지출이 2.4%라는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영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 등 미국을 제외한 기존 선진국들은 경제력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프랑스가 나토가 요구하는 GDP 대비 2.0% 내외의 군비지출을 하면서 경제력과 엇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반면, 나머지 국가들은 1.0~1.4%의 군비지출을 하면서 경제력보다 꽤 낮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최근의 국가 간 세력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중국의 급격한 추격과 미국의 견제로 미·중 패권대결이 본격화했지만 아직 군사력에서는 중국이 한참 밀린다.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미·중 패권대결은 국가 간 세력관계가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을 제공하는데,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급격히 군사력을 증강해 온 인도·러시아·사우디가 중국의 현저한 군사력 열세라는 빈 공간을 파고들며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배경과 이후 전개되는 사태들을 상당히 설명해 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나토의 동진에 대한 반발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역으로 나토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장악한다면 영향력 강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주도 아래 중국을 포위하는 쿼드에 참여해 온 인도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불참하고 오히려 에너지 수입을 늘리면서 사실상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굳건한 동맹이었던 사우디는 바이든의 요청을 거절하며 원유가격 유지를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더니, 미래도시 건설에 미국의 제재대상 화웨이의 참여를 허용하며 중국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큰 틀에서 보자면,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돼 온 세계질서가 미·중 패권대결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경제력에 비해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러시아·인도·사우디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를 붙잡기 위해 세계질서를 더욱 뒤흔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기존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나토를 이끌며 우크라이나의 대리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반격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러시아 등의 세계질서 재편 시도에 크게 자극받은 서방의 열강들이 적극적인 재무장에 나서게 만든 과정이기도 하며, 특히 일본과 독일은 공히 GDP 대비 2% 수준으로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세 국가에게 신중하지만 분명하게 화답하고 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러시아에 대한 직접 지지는 삼가면서도 제재에 불참하고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면서 러시아를 사실상 지원하고 있다. 인도와는 ‘한 세기 동안 볼 수 없었던 중대한 변화’를 놓치지 말자며 국경분쟁의 조속한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에게는 다량의 원유·가스를 안정적으로 수입하는 대신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유지에서 중요한 한 축인) ‘원유대금 달러화 유일결제’ 시스템에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후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진영과 중국이 주도하는 진영 사이의 대립구도로 재편될 것인가?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은 이제 그 승부가 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겠지만, 다른 주요 열강들까지 그 패권대결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 진영 간 대결구도로 포괄될 것이냐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일차적으로 러시아·인도·사우디가 중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거나 확고한 동맹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세 나라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미·중 패권대결로 열린 공간을 활용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있을 뿐이다. 지금은 필요에 따라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나가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필요에 따라 다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또한 아직 중국은 세 나라를 휘하에 묶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 내부의 모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동맹복원’을 외쳤던 바이든의 정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동 대응을 통해 나토의 단결을 회복하면서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10년 동안 중국투자를 포기해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반도체지원법’과 (전기차와 배터리의 생산시설을 북미지역으로 이전해야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제정을 통해 트럼프 이상의 ‘미국 우선주의’를 실행했다. 심지어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러시아를 대신해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데도 바이든 행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동맹국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미국의 행보에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크게 반발하면서, 반도체법·탄소국경세·핵심원자재법 등의 맞불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보호주의가 강력한 대세로 자리를 굳힌 미국 내 정치상황과 점점 더 악화될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앞으로도 미국이 당파를 초월해서 보호주의를 강화할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게 되면, 유럽 국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은 심각한 균열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미국은 (특히 미·중 패권대결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정리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더 이상 유럽의 열강들을 휘하에 묶어 둘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 세계질서는 한편으로 미국과 중국이 패권대결을 펼치지만 이와 별개로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독자노선을 추구하면서 다극 대립구도가 병행하는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러시아·인도·사우디는 이미 세계질서 재편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나 독일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보호주의가 맹렬히 확산하거나 극우 세력이 집권한다면, 주변 지역을 이끄는 맹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면서 미국 패권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아직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지 않지만 지역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튀르키예도 복병이 될 수 있다. (반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지리정치적 조건 때문에 미·중 패권대결의 영향이 강력하게 미치면서 모든 나라가 그 구도 아래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에 덧붙여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각자 영향력 강화를 추구하는 다극 대결구도는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가능케 했던 미국 유일 패권의 ‘단일한 세계질서’와는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만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각국이 결집하는 진영 간 대결구도로 재편된다 하더라도 역시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과 다양한 수준의 전쟁이 일상이 되고 나아가 점점 더 격화되는 격동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하이퍼인플레이션·금융대공황과 대규모 전쟁 만일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때, 각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투입과 중앙은행들의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 결과는 거의 분명하다.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에 뒤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파산과 실업으로 가득 찬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진입했을 것이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발발 이후 1년 동안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발발 이후 1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치는 각각 –0.3%와 1.2%를 기록했다. 만일 이 수치가 7% 이상 또는 심지어 10%를 넘나드는 수준이었다면, 그래도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가능했을까? 또는 우리가 경험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면,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하면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를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대공황으로 빨려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그러므로 아마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르지는 않되 대공황은 차단해 낼 수 있는 어떤 기묘한 균형점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만일 그와 같은 상황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되풀이된다면, 그것도 점점 더 악화된 형태로 되풀이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두 번은 그 기묘한 균형점을 요행히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가능할까? 불가능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이퍼인플레이션? 금융대공황? 아니면 둘 다? 문제는 바로 그런 상황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그 가능성은 두 가지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첫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미 전 세계 주식·부동산 시장에 사상 초유의 거품이 조성돼 있어서 언제든 거대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데, 그럼에도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막대한 금융수탈을 끝없이 추구할 수밖에 없어서 계속해서 더욱 거대한 거품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세계화를 대신해서 패권대결과 보호주의가 지배하게 될 새로운 세계질서는 인플레이션의 파고가 거듭해서 세계를 강타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세계질서 아래서 패권대결과 보호주의 때문에 훨씬 더 자주 발생하게 될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은 꼭 전쟁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공급망을 거듭거듭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나아가 공급망 자체가 경제 논리보다 패권대결·보호주의 논리에 의해 재편되도록 강제할 것이며, 이는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추가 비용과 비효율성을 뜻하게 될 것이다.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세계화보다 앞세우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논리는 사실 이미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상당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도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율관세를 끝내 철회하지 않았다. 패권대결 일환으로 첨단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하며, 보호주의를 앞세워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들에만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려 한다. ‘가장 저렴한 곳에서 생산’한다는 세계화의 논리는 바로 그 세계화를 힘으로 관철하던 미국에 의해 적극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가장 저렴한 곳에서 생산함으로써 가능했던 장기적인 저물가를 대신해서 이제 ‘인플레이션과 함께 사는 시대’가 장기적인 경향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2년, 미국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금리를 인상했다. 미국 연준의 경우 2022년 3월부터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4.25%포인트의 금리를 인상했다. 그 결과 6월 9.1%로 정점을 찍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2월 7.1%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물가는 아직도 높고 연준은 2023년에도 1%포인트 가량의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이번 인플레이션의 파고는 일단 잡혀갈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금리인상이 부채부담 증가, 기업신용 경색, 가계소비 위축, 주식·부동산 가격 하락의 고리를 거쳐 초래할 경제침체의 파고를 겪어야 한다. 다가오는 경제침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미국 연준이 2004~06년 금리를 4.25%포인트 인상하고 2년 뒤에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더 짧은 시기 동안 더 높은 금리를 올리게 될 이번 금리인상의 파고는 결코 작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22년 3분기에 162.1%를 기록함으로써 정점을 찍은 2021년 4분기 211.4%로부터 이미 49.3%포인트나 하락했다. (닷컴붕괴 때는 12분기 동안 69.8%포인트, 금융위기 때는 7분기 동안 68.1%포인트 하락했다.) 주식 못지않게 거대한 거품을 조성했던 미국 부동산시장은 2022년 5월 정점을 찍은 뒤 아직은 소폭 하락한 상태인데, 향후 그 하락 폭과 속도가 어떻게 되는가 또한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편 IMF에 따르면 가계·기업·국가를 망라하는 세계의 총부채가 2007년 195%에서 2020년 256%로 상승했는데, 이렇게 부채가 늘어난 만큼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과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은 다가오는 경제침체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에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잘 준비돼 있는 측면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거의 모든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로 묶어놓았는데, 이것은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는 데 (적어도 미국 안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에 비해 과거와 달리 외환위기에 빠져든 국가가 아직까지 거의 없는 것은, 많은 국가들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2023년에 겪게 될 경제침체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들도 있다. (반면 근원물가가 40년 만에 최고치인 3.6%에 이르렀는데도 GDP 대비 266%라는 세계 최고 수준 국가부채 때문에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거대한 부동산 거품 붕괴가 진행 중인 중국이 동아시아발 세계 경제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23년의 경제침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든, 아마도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일 수 있다. 이미 GDP 대비 국가부채가 세계 평균 100%에 이를 정도로 크게 누적돼 있다는 점 때문에, 또한 쉽사리 꺼지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불씨 때문에,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를 통한 경기부양이 매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의 경제침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게 출발했지만,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부양 정책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 경제침체가 길게 늘어지고 점점 악화되다가 마침내 심각한 수준의 경제위기로 넘어가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 또는 무리해서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거대한 거품을 부풀렸을 때 훨씬 빠르고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덮치는 시나리오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지금 2023년 이후를 구체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사태가 전개되는 양상과 속도는 우리가 지금 알 수 없는 많은 변수에 의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추세만큼은 우리가 예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금융대공황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그와 같은 파국적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본가계급은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까? 그런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본가계급이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탈출구는, 어마어마한 대량파괴와 대량학살을 실행함으로써 자본주의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부터 벗어나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경험일 것이다. 지구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는 가공할 핵무장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장기간의 전면전이 쉽지 않을 테니, 자본가계급은 아마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대규모 전쟁을 추진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파국을 향해 치달아가는 동안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앞세우며 켜켜이 누적될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은 그러한 전쟁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충분한 계기와 명분을 자본가계급에게 제공할 것이다. 지극히 반동적인 그러한 전쟁을 반드시 관철해 내려면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철저히 제압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자본가계급은 많은 국가에서 파시즘 정권을 세우려 할 것이다. 3) 계급투쟁의 재건과 혁명적 전진을 향해 198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는 기본적으로 1970년대 세계적인 노동자투쟁의 분출을 잠재운 토대 위에서 전개됐다. 그러므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세계 전반의 노동자투쟁은 착취와 수탈이 상당히 강화됐는데도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침체에 빠져 있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강력한 노동자투쟁의 시대를 거쳤던 한국의 경험은 브라질·남아공 등과 함께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에 속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노동자투쟁의 양상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전 세계 자본가계급이 금융위기에 따른 고통과 그 수습비용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기 위해 엄청난 공세를 지속적으로 퍼부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민중들이 금융수탈의 집중적인 피해자가 되어 집을 빼앗기거나 파산했다.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으로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한 각국 정부가 국가부채 폭증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공공부문 정리해고·임금삭감, 복지지출 축소, 연금개악 등의 대규모 공세를 퍼부었다. 세계 곳곳의 민간 기업들도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과 소비위축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또한 대불황 시기를 가로지르며, 노동권의 후퇴와 노동조합의 약화를 노린 노동법 개악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80년대 이후 확산돼 온 노동유연화를 한층 가속시켜 더욱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더욱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자본가계급의 집요한 공세에 맞서, 또한 파탄난 삶과 희망 없는 미래에 분노하며, 2010년 이후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거센 반격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돼 왔다. 2010~12년에는 프랑스의 연금개악 반대파업, 아랍의 봄,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 운동, 미국의 월가점령운동, 그리스의 긴축반대 총파업 등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민중투쟁의 첫 번째 물결이 펼쳐졌다. 2018~2020년에는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홍콩의 민주화 투쟁, 칠레의 민중반란,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등을 중심으로 두 번째 물결이 펼쳐졌다. 2022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를 위해 진정으로 필수적인 존재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 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존권 박탈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파상적인 임금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 노동자계급은 경제침체와 경제위기로 점철되다가 끝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금융대공황 같은 파국을 향해 치달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 또한 이와 맞물리며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앞세운 제국주의 열강들의 충돌이 거듭되다가 끝내는 대규모 전쟁을 향해 치달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 앞에 서 있다. 앞으로 펼쳐질 ‘위기와 전쟁의 시대’는 세계 노동자계급을 극심한 고통과 절망으로 내몰 것이며, 이 암흑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뒤집어엎는 데에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투쟁과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나라마다 계급투쟁의 양상과 발전정도에 차이가 많은 만큼 그 구체적인 답은 나라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핵심적인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우리는 특히 한국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계급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광범한 노동자대중이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계급적 노동자투쟁의 길을 열어야 한다.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든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든 이제는 눈앞의 협소한 변화에만 몰두하는 조합주의를 과감하게 박차고 떨쳐 일어서야 한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덮치는 큰 그림을 직시하면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요구를 세워내고 광범한 노동자대중을 끌어들이며 하나의 계급으로 뭉쳐 싸우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둘째, 노동자계급이 구심에 서서 광범한 민중을 단결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맞선 투쟁, 기후재난과 환경파괴에 맞선 투쟁, 사회적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 등에서 노동자계급이 선두에 서야 한다. 특히 위기와 전쟁으로 치달을 자본주의 아래서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기게 될 청년들이 노동자계급과 함께하는 투쟁 속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모든 자본가세력에 대한 모든 어리석은 미련을 깨부수고 오직 노동자계급 자신의 단결투쟁만을 믿는 ‘노동자계급 독립성’을 확고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노동자투쟁의 재건과 계급적·정치적 전진, 나아가 혁명적 도약을 헌신적으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혁명적 노동자정치운동을 강력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다가오는 파국의 고통과 절멸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세계적인 노동자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에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국가·작업장·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어 민주적 계획경제와 생산자 자주관리를 결합시키는 사회주의 세계체제를 건설함으로써만 자본주의에서 끝없이 되풀이돼 온 착취와 억압과 차별을 그리고 빈곤과 야만과 전쟁을 끝장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2023-01-20 | 조회 512
-
[노조법2·3조개정 현장기고] 현대제철 비정규직노동자에게는 싸울 권리가 필요하다현대제철 불법파견 은폐하려 자회사 설립, 불법파견 인정하라 파업한 노동자들에게 손배청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위험한 일터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교섭, 쟁의 가능해야 바꿀 수 있어 현대제철소에서도 반복되는 손해배상청구 2022년 6월부터 거통고조선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거제 대우조선소에서 파업을 한 후 470억 원이라는 손배가 청구됐다.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을 행사했다고 하여 평생을 살아도 만져보지 못할 금액이 손해배상으로 청구된 이후 노조법2·3조 개정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부각되었고,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투쟁을 하고 있다. 거통고 투쟁과 같은 내용으로 원청 자본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 이미 21년 9월에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소에서도 벌어졌다. 충남 당진 현대제철소에는 현대제철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돼있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가 있다. 비정규직지회는 그동안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요구하고, 불법파견 소송 등을 진행하며 마침내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불법파견 판정에 대응하여 현대제철은 사내하청업체들을 폐업시키고,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위한 현대ITC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회사 이직을 회유함으로써 비정규직지회를 사실상 파괴하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비정규직지회는 획득한 쟁의권을 바탕으로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 통제센터 1층 로비를 점거하고 자회사 철회, 불법파견 시정지시 이행 등을 요구하며 53일간의 점거농성을 했다. 그러자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정규직과 원청 관리직, 외주업체가 생산현장에서 대체근로를 했고, 심지어 울산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후판공장에 직접와서 후판출하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파업투쟁 과정에 원청은 충남지부 및 비정규직지회 간부들을 제소하고 2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추가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체협약에 해당하는 보안공정(협정근로) 사항을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까지도 적용해 46억1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렇게 현재 총 246억1천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이 진행중이다. 원청과 교섭할 수 없다면 사람 죽는 일터는 그대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모든 부분에서 정규직과의 차별은 기본이고, 자회사와의 차별도 발생한다. 그동안 원청과 교섭 한번 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진짜사장인 안동일 현대제철 대표이사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데, 현대제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과 각종 형사고소고발 등으로 비정규직지회를 탄압하고 있다.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을 상대로 특별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제철이 거부하여 지노위와 중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중노위에서는 ‘현대제철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어서 산업안전보건 의제에 대해서는 현대제철이 교섭 의무가 있고, 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이마저도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넣었다. 현대제철은 명백하게 원청이 하청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현장의 모든 생산설비와 시설에 대한 권한은 원청 자본에게 있지, 하청 바지사장에게는 없다. 그러나 원청의 설비를 사용해 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과 교섭할 수 없는 구조다. 교섭할 수 없으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속 위험한 환경을 바꾸지 못한 채 죽어간다. 현대제철은 중대재해다발사업장이다. 유해위험요소로 가득찬 제철소의 작업환경과 조건을 바꾸기 위해서는 원청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구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럴 수 없다. 중대해재처벌법이 시행되고 나서 고용노동부가 현대제철을 두 번이나 압수수색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현대제철의 중대재해 사망자 중 80%가 비정규직 노동자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싸울 권리가 필요하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원청과 교섭하고 투쟁하기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이 절실하다. 그래야만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생명을 지키고, 차별을 철폐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노조법 2조, 3조 개정을 이뤄내려면 비정규직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단결해 연대투쟁의 길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후에 다가 올 노동법 개악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도 온전하게 노동3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원청을 상대로 교섭과 쟁의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파업을 했다고 손배와 가압류로 노동자와 그 가족까지 파탄으로 몰아가는 탄압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서 함께 투쟁에 나서자!2023-01-19 | 조회 475
-
[번역] 혁명은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1917년 여성의 날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 1917년 노동자혁명으로 러시아 여성의 삶에 전례 없는 도약이 이뤄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폭넓은 동의가 있다. 이혼할 권리, 임신 중지권, 일자리 보장,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조치 등은 볼셰비키 당이 도입한 개혁의 일부 사례일 뿐이다. 소련 여성의 삶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가 세계 곳곳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의 권리와 진보적인 공공 정책을 아로새긴 법령에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가), 여성 교육 지지자, 심지어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와 그 밖의 진보적인 세력까지도 박수갈채를 보냈다. 세계적인 시야에서 이들 진보적인 조치를 볼 때 가장 신기한 점은, 러시아 즉 경제적, 문화적으로 뒤처졌다고 여겨진 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가부장과 차르, 보드카에 절어있는 코사크족, 글을 배우지 못한 소작농, 채찍을 휘두르며 부를 쌓은 쿨락[부농]의 나라에서 여성이 반란을 일으켰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 건, 러시아가 1차 세계대전의 참화로 만신창이가 되고 제국주의 군대에 포위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가뭄, 질병,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누가 보더라도 문화적, 정치적으로 풍성한 진보를 누리기 힘든 불모의 땅에서 남성과 여성의 법적 평등이 확립됐다. 사실혼 관계가 승인받았고, 이혼할 권리와 임신 중지권이 보장됐으며, 어린이집과 공공 빨래방, 공동 식당이 들어섰다. 동성애 처벌과 성매매 여성에 대한 박해가 사라졌다. 러시아 여성, 가정, 가족의 일상을 혁명적으로 뒤집은 이와 같은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사회주의 혁명의 열기 속에서 저절로 솟아난 것도 아니다. 레닌이 이끈 정당에서는 여성해방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육아가 사회화되고 나면 어머니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모든 애정 관계에서 국가의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가 결혼증명서를 발행해야 할까? 이런 여러 쟁점에 대해 볼셰비키 내에 통일된 입장은 없었으며, 다양한 입장 간의 개방적인 논쟁이 있었을 뿐이다. 볼셰비키는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노예 반란의 오랜 역사에서 영감을 끌어냈다. 그들은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발상을 계승했고, 주요 저작인 <공산당선언>에서 부르주아적 결혼과 가족을 가차 없이 비판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영향받았다.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역사 유물론에 기원을 둔 이데올로기와, 유럽식 대도시의 산업 중심지에 대규모로 결집한 여성이 연결되면서 중대한 정치적 계기가 마련됐다. 이 새로운 여성 노동자계급이 해방을 지향하는 선진 의식으로 충만한 혁명적 지도력과 결합하면서, 볼셰비키 당이 채택한 대담한 법령, 정부 계획, 사회정책의 기반이 됐다. 자유로운 사랑 중세시대 이래로 사람들은 자유로운 사랑의 방식을 심사숙고해왔다. 계약 결혼, 중매에 의한 결혼, 애정 관계에 교회나 국가가 간섭하는 것을 거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14세기 이후로는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발상을 제기하는 집단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결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간통에 관한 규범, 피임과 임신 중지 금지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자유로운 사랑에 찬성한 운동이 대부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에도 이의를 제기한 건 이 때문이다. 그들은 여성의 자유 박탈에 항의했고, 이에 따라 대개 여성해방을 지지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노동자혁명을 토론하는 맥락이라면, 아마도 자유로운 사랑보다는 ‘자유결혼’을 거론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의 주된 관심사는 애정 관계를 러시아 정교회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혁명 이전에는, 교회가 승인하지 않은 혼외 자녀는 재산권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회에서 무시당했다. 볼셰비키는 이에 맞서서 교회의 구속이나 승인을 배제하며, 모든 형태의 결혼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혼을 허용한 새로운 법령은 자유결혼에도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전쟁으로 피폐해진 러시아에서 이런 조치는, 기나긴 세월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온 여성의 삶에 부정적 효과도 미쳤다. 많은 여성에게 결혼이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일종의 생존방식이었다. 따라서 자유결혼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생산적인 노동에 참여하게 하고, 경제적 독립과 법적 평등을 획득하게 함으로써 여성해방을 촉진하는 게 필요했다. 볼셰비키 지도자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질투와 소유하려는 욕망을 특징으로 하는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부르주아적 이상에 대조되는 것으로서, 동지적인 사랑의 성립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글을 썼다. 그는 ‘낭만적인 사랑’이 자본가계급의 출현과 함께 등장했고, 개인들 간의 관계에 투영된 사적소유의 개념을 구현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뿌리 깊은 소유욕의 강화와 애정 관계에서의 권리는 곧 다양한 형태의 폭력의 원천이 됐다. 권력 장악 이후에 콜론타이와 그 밖의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그동안 토론해온 혁명적 구상을 실행할 기회를 얻었다. 불꽃이 튀어 불길로 타오르다 차르 체제하의 여성들은 갓 등장한 러시아 노동자계급 속에서 광범한 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생존권 요구를 걸고 싸웠을 뿐 아니라 공장 내 보육, 유급 출산휴가, 신생아 수유를 위한 휴식 시간 등을 요구하면서도 투쟁했다. 경찰 보고서와 공장 기록에 따르면, 고용주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나 관리자의 학대를 중단시킬 것을 요구하는 여성 파업 사례가 많았다. 1910년 8월 26, 27일, 2차 국제 사회주의 여성대회가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주요 토론 의제에는 여성 참정권과 출산휴가, 임신을 이유로 한 해고의 금지 등 어머니의 권리 개선 문제가 포함됐다. 독일 사회민주당을 대표해 참가한 클라라 체트킨과 카테 둥커는 국제 여성의 날 제정을 제안했고, 1913년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이를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멘셰비키는 여성의 날 시위에 오직 여성만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대해 볼셰비키는, 여성해방은 모든 피착취 민중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계급 전체가 시위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차 세계대전은 여성에게 또 다른 짐을 짊어지게 했다. 거의 천만 명에 이르는, 대부분 농민인 남성이 징집돼 전쟁터로 보내지자 여성이 농사를 떠맡았고, 농촌 노동인구의 72%를 차지했다. 도시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1914년에서 1917년 사이에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력이 50% 가까이 늘어났다. 이것은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을 떠맡으면서 ‘이중 노동’을 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볼셰비키는 여성 노동자를 당으로 조직하기 위한 대담한 정책을 펼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이 당은 여성해방을 위해 투쟁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노동자들을 교육했다. 그러는 동안 전쟁은 극심한 식량부족을 낳고 사망자 숫자를 엄청나게 늘리면서 격렬하게 이어졌다. 1915년에는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 여성이 들고일어나 전쟁에 반대하는 필사적인 사보타주를 벌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여성들이 식료품 물가 폭등에 항의해 투쟁하며 상점을 약탈했다. 그 해와 그다음 해에 모스크바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차르 경찰은 러시아 민중이 굶주리고 묘지에 시신이 쌓이면서 누적되는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썼다. “가게 앞에 늘어선 끝없는 대기 행렬에 지치고, 굶고 병든 자녀를 보며 고통을 겪는 어머니들이 이제는 밀류코프와 로디체프* 일당보다 더 혁명에 우호적이다. 당연하게도 이 여성들이 더 위험한데, 이들은 불길이 타오르게 만들 수 있는 불꽃이기 때문이다.”(1) [* 밀류코프와 로디체프: 러시아 입헌민주당(카데트)의 리더들. 입헌민주당은 러시아의 자유주의적 개혁을 꿈꾸면서 볼셰비키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 경고는 너무 늦었다. 1917년 국제 여성의 날에 섬유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인근 공단을 행진하며, 공장 유리창에 눈덩이와 돌멩이를 던지면서 다른 노동자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점점 더 많은 남성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해 평화, 빵, 전제 정치 종식을 외쳤다. 이 요구들은 한 해 전부터 전쟁의 고난 때문에 일어난 시위에서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 노동자들이 시작한 자발적인 시위는 이틀 뒤 총파업으로 번져나갔다. “2월 23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었다. 사회주의 조직들은 집회, 연설, 유인물 같은 통상적인 방식으로 이날을 기리려 했다. 그날이 혁명의 시작점이 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2) 여성해방은 혁명의 기둥 여성의 권리가 그렇게 거대하게 변화한 것은 전적으로 권력 장악 덕분이었다. 이 혁명 자체가 여성들이 불을 붙인 것이었다. 굶주림, 전쟁, 고립 등 이제 갓 태어난 노동자국가를 짓누른 역경보다 더 강력하고 거침없었던 볼셰비키의 상상력 또한 영향을 미쳤다. 혁명이 일어나고 일 년도 채 안 된 1918년, 가족법이 제정됐다. 웬디 골드먼*은 이를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가족법”이라고 불렀다. 새 가족법은 결혼을 개인 간의 사안으로 규정하면서 교회가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혼이 합법적인 것으로 허용됐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사유서를 제출할 필요 없이 누구나 진행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 법은 사유재산에 대한 남성의 특권을 보장하는 낡아빠진 규정을 폐기했다. 혼외 자녀를 포함해 모든 자녀가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았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여성의 성적 파트너 모두가 자녀 양육의 책임을 나눠야 했다. 미국에서조차 통과되지 못한 법률개정을 거쳐 남성과 여성이 법적으로 동등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새 가족법을 작성한 알렉산드르 고이키바르크는 이 법을 국가나 가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일시적인 조치로 여겼다. 오히려 이 법은 가족의 소멸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 웬디 골드먼: 역사 연구자로서, 러시아혁명 이후 여성의 권리 변화를 포괄적으로 다룬 책 <여성, 국가, 혁명: 1917~1936년 소련의 가족정책과 사회생활>을 썼다.] 그러나 레닌이 주장했듯이 법적인 평등은 시작에 불과했으며, 여성의 권리를 위해 혁명이 이뤄내야 할 최소한의 조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주도, 자본가도, 상인도 없는 곳, 이들 착취자 없이 노동자의 정부가 세워지고 있는 곳, 그곳에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법률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법적인 평등과 삶에서의 평등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여성 노동자가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남성 노동자와 평등을 누리기를 원한다.”(3) 혁명은 진정한 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법적인 변화가 효과를 얻으려면, 여성을 혹사시키며 무보수로 이뤄지는 ‘가내 노예제’를 끝장내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대규모로 수반돼야 한다. 볼셰비키는 노동자국가를 활용해 집안일을 남성과 여성 모두가 수행하는 산업화한 임금노동으로 전환하려 했다. ‘가사노동 임금 지급’ 운동이 벌어지기 한참 전에 볼셰비키는 가사노동을 유급 노동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뿐 아니라, 여성해방을 위한 필수 요소로서 이 노동을 집단화해야 할 필요에 대해서도 간파했다. 이렇게 전환함으로써, 낡은 가부장적 관계가 강요하는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의 발판을 만들었다. 사회복지부 장관이 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여성과 가족에 관한 다양한 개혁의 설계자로 활동했다. 이 노동자국가의 장관이 옹호한 가장 중요한 조치는 소련 여성이 직업 선택의 자유, 모든 공직에 진출할 기회,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받을 권리를 누리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임신 여성 해고가 금지됐다. 또한 여성에게 이혼할 권리와 남녀공학에 입학할 권리가 인정됐다. 혁명 이후 여성부와 사회복지부를 이끈 콜론타이(왼쪽) 이러한 진보적인 변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여성에게 진정한 평등을 보증하기에는 여전히 불충분했다. 민법상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볼셰비키 당내에서, 그리고 폭넓은 사회적 차원에서 여성해방, 사회주의 사회에서 가족의 역할,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사회로 전환하는 방식에 관한 길고 심층적이며 흥미로운 논쟁이 이뤄졌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역사적인 불평등을 의식하면서 볼셰비키는 전통적인 가족에 훨씬 큰 자유를 도입한 새로운 법률이 여성에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지 않도록 주의했다. 역사가 웬디 골드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비교해서 본다면, 1918년의 가족법은 놀라울 정도로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성평등, 이혼, 친권, 재산권 등을 다루는 유사한 법령이 미국이나 다수의 유럽 나라에서는 아직 제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새 가족법이 파격적인 혁신을 담고 있는데도 법학자들은 ‘이것은 사회주의 법령이 아니라 과도기의 법령일 뿐’이라고 빠르게 지적했다. 그 가족법이 혼인 신고, 이혼 수당, 자녀 양육과 그 밖의 생계유지를 위한 대비 등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가족 단위에 필요한 항목들을 남겨놨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법학자들은 그들 스스로 곧 유명무실해질 거라고 여기는 법령을 만들어내는 특이한 처지에 있었다.”(4) 가족법을 둘러싸고 드러난 이러한 새로운 사고방식은, 이 혁명은 이제 1막을 지났을 뿐이며 그것은 수천 년간 재생산된 가치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볼셰비키의 관점을 보여준다. 레온 트로츠키가 그의 책 <연속혁명>에서 지적하듯이, 사회주의 혁명의 본질적인 속성에는 이렇게 모든 사회관계를 집어삼키고 변화시키는 부단한 내부 투쟁을 거쳐 사회가 탈바꿈한다는 점이 포함된다. 몇 세기에 걸쳐 여성을 종속시키고 짓눌러왔던 굴레에서 여성이 해방되는 건 사회관계가 급진적으로 바뀌는 데에서 근본적인 요소다. 볼셰비키는 계급 환원론 관점을 취하기는커녕, 여성해방을 노동자혁명의 중심 과제로 여겼다. 레닌은 “여성의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지 않는 한 노동자계급은 완전한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5) 볼셰비키는 한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그 사회 전체의 수준을 측정하는 척도로 여겼다. 여성이 온전한 평등을 쟁취했을 때 비로소 사회주의 혁명이 진실로 성공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 반혁명 “모스크바의 테르미도르 반동”(원문 보기)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혁명과 내전을 거친 후 신생 노동자국가인 소련은 국제적으로 고립됐고, 다수가 목숨을 잃거나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 고립 탓에 볼셰비키 당내에서, 그리고 소련 국가 내에서 정치적 특권층이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이들이 국내의 결핍 상황을 관리했다. 여성의 권리 영역에서든 다른 영역에서든, 이는 볼셰비키가 도입한 조치들에 대한 반혁명을 뜻했다. 정치에서 발생한 이런 전환이 쉽게 또는 저항 없이 이뤄진 건 아니다. 볼셰비키 혁명은 스탈린주의에 질식당했고, 1917년 혁명 세대는 궤멸됐다. 1차 세계대전과 내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다른 이들은 추방되고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혔으며, 또 다른 이들은 총살당했다. 스탈린은 새로운 세대로 형성된 출세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볼셰비키 당과 국가의 지도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출세주의자들은 혁명 이후에 당에 들어왔으며, 가장 낡고 후진적인 사고방식을 같이 끌고 들어왔다. 스탈린의 지휘 아래 가부장적 이해관계와 소부르주아 심성이 당내에 번져나갔다. 가사노동을 대체한 사회 서비스가 기이하게도 사회주의의 이름 아래 제약됐다. 오직 결혼한 부부 관계만 국가가 공식적으로 승인했고, 볼셰비키 당 중앙위원회의 여성부는 해체됐다. 성매매는 범죄화됐으며, 성 소수자들은 박해받으며 감옥에 끌려갔다. 임신 중지는 금지됐다. 혁명 초기 몇 년간 볼셰비키가 그토록 열성적으로 토론했던 여성해방에 관한 모든 논의는 완전히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됐다. 스탈린주의 반혁명은 부르주아 가족제도와 낡은 모성 관념을 떠받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스탈린 정권 아래에서 국가는 여성이 오직 어머니, 아내, 주부 같은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했다. 1944년에 스탈린은 얼마나 많은 자녀를 낳았는가를 기준으로 여성에게 호칭을 부여했다. ‘명예로운 어머니 훈장’을 제정해 여성을 분류했고, 10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여성에겐 ‘어머니 영웅’이란 호칭을 부여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전통적인 가족을 사회의 기강을 잡는 기본 토대로 간주했는데,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도 가족이 그런 역할을 맡았다. 혁명 초기 몇 년간 자유로운 사랑과 가족의 소멸에 관한 해방적인 사고가 정점에 달했지만, 이제 그 모든 게 부도덕하고, 무정부주의적이며, 소부르주아적인 선전이라고 매도당했다. 웬디 골드먼이 자신의 책 <여성, 국가, 혁명>에서 거듭 강조했듯이, 스탈린 정권이 저지른 모든 범죄 중 가장 끔찍한 것은 스탈린 관료체제가 ‘현실 사회주의’라고 온 세계가 믿게 만든 것이다. ‘노동자계급 내의 노동자계급’인 여성에게 사회주의 혁명이란 곧 위대한 승리를 뜻했고, 여성은 러시아혁명에서 영웅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노동자국가의 전면에 스탈린이 등장한 뒤 이 역사가 지워지기까지는 채 반세기도 걸리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혁명, 1871년 파리코뮌, 1917년 러시아혁명을 포함해 역사 속의 혁명에서 여성은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맡아왔다. 이 거대한 격변 속에서 여성은 인내와 용기, 영웅적 행동의 풍부한 사례를 남겼다. 그 뒤 100년 동안에도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여성은 혁명적 변화와 거대한 사회적 격변을 이끌어갈 주인공으로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보여줬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레온 트로츠키도 지적한 바, “새로운 것을 향해 더 큰 활력과 끈기로 투쟁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낡은 것으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겪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6) 주 1. 바르바라 푸네스, “혁명가”, <투사들 – 역사를 만든 여성 이야기>. 2. 레온 트로츠키, “5일간”, <러시아혁명사> 1권. 3. V. I. 레닌, “여성 노동자에게”, <전집> 30권. 1920년 2월 22일 <프라브다>에 먼저 발표. 4. 웬디 Z. 골드먼, <여성, 국가, 혁명: 1917~1936년 소련의 가족정책과 사회생활> 5. V. I. 레닌, 앞의 글. 6. 레온 트로츠키, “모스크바 여성 노동자 대회에 보낸 편지”, 1923년 11월 28일 <프라브다>에 발표. 글쓴이 안드레아 다트리, 2018년 3월 5일 옮긴이 오연홍 *로 표시한 각주는 옮긴이가 붙인 것이다. 기사 원문 https://www.leftvoice.org/women-in-the-revolution-the-revolution-in-women-s-lives/ 연재 소개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남성 혐오’나 ‘갈라치기’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또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여전히 주류인 것도 맞다. 하지만 페미니즘에는 다른 길이 있다. 착취, 가난, 전쟁, 기후 위기로 점철된 자본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남성과 더 잘 경쟁하기 위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즘, 이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성별, 국적, 인종의 노동자와 청년이 똘똘 뭉쳐 함께 싸워야 한다고 외치는 페미니즘이 있다. 2003년에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독일,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코스타리카, 스페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 페루,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에서도 활동하는 국제 ‘빵과 장미’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변혁적 여성운동을 건설하려는 우리는 혁명적 페미니즘의 중요한 사례로 ‘빵과 장미’를 주목하면서, 이들의 주장과 실천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란 이런 것이다(타티아나 코차렐리) ② 왜 여성이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안드레아 다트리) ③ 여성 자본가에 맞서는 여성 노동자들(타티아나 코차렐리) ④ 우리는 임신 중지권을 이렇게 쟁취했다(너새니엘 플라킨) ⑤ 혁명은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안드레아 다트리) ⑥ 사회적 재생산과 사회주의 페미니즘(호세피나 마르티네스) ⑦ 페데리치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토론(호세피나 마르티네스)2023-01-18 | 조회 679
-
[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4부(왼쪽부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로널드 레이건, 마가렛 대처 (사진출처: american prospect)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1970년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매우 심각하게 하락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 1970년대 노동자계급의 세계적 반란을 잠재운 자본가계급은 1980년대 이후 이윤율 저하를 상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매우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라는 한 묶음의 대책이 지난 40여 년의 세계를 지배했다. 1) 198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나아가 바닥까지 내려간 이윤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가 가장 먼저 추진한 정책은 신자유주의였다. 정리해고, 임금삭감, 비정규직화, 복지축소, 노조무력화, 자본가감세, 규제완화, 기간산업사유화 등의 세부 정책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최대한 강화하고 자본가에게 온갖 특혜를 줌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 목표가 있었다. 1970년대 중후반 칠레 군사정권의 실험을 거쳐,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보수주의 정권에 의해 본격화한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를 거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은 특히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권들이 대거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가 되는 과정을 수반했는데, 이들은 흔히 노·사·정 협상에 입각해 신자유주의를 ‘민주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강제로 하락시키면서 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78~2007년 미국 제조업의 시간당 산출량은 연 평균 3.26% 상승했지만, 노동자들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연 평균 0.37% 하락했다. 2007년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974년 실질임금의 85%에 불과했다. 1972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에서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160.70%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시간당 실질임금은 24.28%만 상승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이윤율 회복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지만, 이내 한계에 봉착했다. 신자유주의 자체에 내장된 모순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힘입어 개별 기업이 이윤율을 회복할수록 노동자는 더 가난해졌고 따라서 사회 전체에서 생산과 소비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생산과잉은 구조적인 판매부진을 낳았고, 이는 이윤율 회복에 중대한 장애를 조성했다. 신자유주의가 지닌 결정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세계화와 금융화가 덧붙여졌다. ‘생산의 세계화’와 ‘시장의 세계화’가 결합된 세계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가속되다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전면화했다. 세계 총GDP 대비 해외직접투자(FDI)는 1985년 0.4%에서 2007년 5.3%로 늘어났다. 세계 총GDP 대비 수출은 1986년 16.9%에서 2008년 31.2%로 늘어났다. 특히 198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 1989~91년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는 스탈린주의 진영을 소멸시키면서 세계를 단일 공급망과 단일 시장으로 통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생산의 거점 전체 또는 일부를,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를 찾아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이동시킨 ‘생산의 세계화’는 자본의 이윤율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저개발 국가를 향한 공장이동은 추가되는 물류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임금비용을 획기적으로 하락시켰다. 공장이동에 대한 협박은 선진국에서 노조를 무력화하고 후퇴를 강요하는 자본의 필살기가 되었다. 국가 간 무역장벽을 허물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킨 ‘시장의 세계화’는 시장을 획기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간극 확대라는 신자유주의의 약점을 보완했다. 중국산으로 대표되는 저렴한 수입품은 선진국 노동자들이 하락한 임금으로도 그럭저럭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임금하락이 노동자투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세계적인 공장이동은 자본주의의 지형을 크게 바꿔 놓았다. 미국·서유럽·일본에 집중돼 있던 공장은 남미·동유럽·동아시아를 향해 빠져 나갔고 최종 귀착지로 중국을 향해 몰려들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중국의 생산과 미국의 소비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금융자본은 본래 산업자본에 대한 대부나 주식투자를 통해 산업자본이 획득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나 배당의 형태로 나눠받음으로써 수익을 얻는 자본이다. 금융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지만, 사회의 유휴자본을 수집하여 산업자본에게 공급함으로써 산업자본의 가치증식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이자나 배당을 분배받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주가가 지속적으로 폭등한다면, 금융자본은 이자나 배당으로 얻는 수익보다 주식 매매차익을 통해 훨씬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투기적인 불로소득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 상층까지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면, 주가는 자연히 한동안 오르게 마련이다. 금융자본은 주식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고금리 대출을 통해서도 별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물론 실질가치를 크게 벗어난 주가는 언젠가 폭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체로 큰손들은 폭락 이전에 이미 차익을 실현하고, 폭락에 따른 손실은 대부분 개미들에게 전가된다. 이와 같은 금융수탈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매우 큰 부작용이 있다. 주식가격이 폭락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그 충격으로 은행들까지 파산하면서 경제 전반이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29년 10월 미국에서 대공황이 시작될 때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수습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여러 가지 규제를 도입했다. 가장 중요한 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금지였는데, 예금을 취급하는 상업은행이 주식투자 같은 고위험 영역에 관여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대공황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이런 규제는 1990년대 후반까지 60년 이상 계속됐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이런 규제들을 1999년에 대대적으로 풀어버렸다. 대표적으로 상업은행·보험사·투자은행 사이의 겸업금지 조항을 없애 버렸다. 대중들이 가진 소액의 자금조차도 최대한 투기적인 고위험 영역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적극적 지원 아래 금융수탈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과정이 바로 금융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금융화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기게 됨으로써 잉여가치 생산을 통한 착취만으로는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없게 된 자본에게 금융수탈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을 보충해 주는 장치였다. 금융수탈은 주식 매매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업을 인수한 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가치’를 높여 다시 판매하는 기업 자체의 매매도 금융수탈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주식시장과 비슷한 일이 훨씬 큰 규모로 벌어졌는데, 여기서는 주택담보대출의 규모가 압도적인 만큼 그를 통한 금융기관의 수익도 훨씬 컸으며, 주택가격 폭등에 따라 임대료 상승으로 얻는 수익도 상당했다. 금융화가 확산되면서, 금융수탈의 영역은 외환시장, 원자재시장, 선물시장, 나중에는 암호화폐시장까지 끝없이 뻗어나갔다. 금융화는 금융부문을 비대하게 팽창시켰다. 2006년 세계 총GDP가 51.8조 달러일 때, 세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더한 규모가 119조 달러에 이르렀다. 2007년 금융화의 전위부대라 할 헤지펀드들이 운용하는 금액만 10.1조 달러였다. 영국에서는 2007년 제조업에 300만 명이 고용된 반면 금융부문에는 650만 명이 고용됐다. 미국에서는 GDP 대비 전체 금융기관 자산이 1985년 110.3%에서 2007년 224.2%로 치솟았다. 세계화와 금융화가 맞물린 결과, 미국에서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7년 25.6%에서 2009년 11.2%로 축소된 반면, 은행·보험·증권·부동산·임대업을 합친 금융업의 비중은 1947년 10.5%에서 2009년 21.5%로 성장했다.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에서 헤매는 까닭에 쓸 만한 투자처를 쉽사리 찾지 못하던 자본은 가공할 수익률을 제공하는 금융부문에서 새로운 활기를 찾았다.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거품을 바탕으로 금융부문에서 투기적인 수익률을 얻을 수 있게 되자, 제조업마저 생산적 투자가 아니라 금융수탈을 향해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 지엠은 1990년대에 자회사 지맥을 통해 금융수탈에 동참했다가,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전체 이윤의 절반을 상회하자, 지맥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해 소형차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멀쩡한 공장들을 폐쇄시켜 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지맥의 파산은 2009년 지엠 전체의 파산으로 귀결됐다.) 금융수탈을 위해 주식·부동산 시장에 거품을 일으키고 이를 뒷받침하려고 막대한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소비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구조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중요한 모순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과 시장의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점점 더 많은 상품이 세계시장에 쏟아져 나오는데, 세계시장의 중추인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 공세와 공장이동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임금하락·고용감소로 소비능력이 오히려 점점 더 위축됐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유럽연합·일본을 포괄하는 선진국은 세계 인구의 17.9%이지만 세계 GDP의 57.9%를 차지했다. 특히 미국은 세계 인구의 4.5%에 불과하지만 세계 GDP의 23.3%를 차지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구조가 마비되지 않고 원활히 작동할 수 있으려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인위적인 소비 확장이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했다. 미국에서 1990년대 중후반 주식거품과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거품을 국가가 은행을 매개해 막대한 신용대출로 뒷받침한 것은 그에 동승한 대중이 지갑을 열고 왕성한 소비에 나서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과정은 소득불평등이 빠르게 심화되는 과정이었다. 자본가들이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면서 이윤을 늘린 만큼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 국민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10%에서 2007년 23%로 치솟아, 1929년 대공황 발발 직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는 자본가들에게 꿈과 같은 세상을 열어줬다. 뉴욕을 비롯한 금융 중심지들에 포진한 국제 금융자본은 마치 지구가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기라도 한 것처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들을 앞세워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흐름을 지구 구석구석까지 강제하면서 자본주의 세계 전반을 이끌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흐름 속에서 소련·동유럽이 붕괴하고 중국·베트남이 개혁개방에 나서자 자본가들은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노래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자본가들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앞세워 자본주의가 영원히 승승장구하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2) 2008년 금융위기와 대불황 금융수탈을 위해 한껏 부풀려진 주식·부동산 가격은 필연코 실제 가치에 부합하는 가격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에서 부풀어 올랐던 이른바 ‘닷컴버블’이 2000년에 터졌다. 그러자 수많은 주식시장 파산자들을 뒤로 하고, 금융수탈의 주요 무대가 부동산시장으로 옮아갔다.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시장에서 더욱 거대한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은행들은 상환능력이 부족한 이들까지 광범하게 대출을 제공하며 주택 구입을 부추겼다. 주택소유자가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기 때문에 주택을 압류해서 팔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준이 3~4%대의 물가를 잡기 위해 2004~06년 금리를 1.00%에서 5.25%로 인상하자, 갑자기 불어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주택구매자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그에 따라 주택가격도 폭락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 은행들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고, 하나 둘 위기로 내몰렸다. 게다가 파생상품을 매개로 미국과 세계의 금융기관들 다수가 부동산 부실채권과 연결돼 있었다. 마침내 2008년 9월 미국의 5대 투자은행과 최대 보험사를 비롯한 대규모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 또는 사실상의 파산 국면에 들어섰고, 그 충격으로 주식시장이 대폭락했다. 이른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전면에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사건이었다. 미국은 물론이요, 다른 나라의 거대 금융기관들도 줄줄이 파산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약탈적 대출을 통한 금융수탈은 200만 가구를 홈리스로 만들며 자본가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었지만, 결국 금융위기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본가들의 지배체제 자체를 파탄 직전까지 내몰았다. 자본주의 체제 전반이 붕괴할 위험에 직면하자,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부르짖으며 ‘시장에 다 맡기라’던 자본가계급은 뻔뻔스럽게도 국가를 통해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금융기관들에게 제공했다. 2009년 11월 영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영국·유로존이 쏟아 부은 구제금융만 14조 달러로 2009년 세계 총 GDP의 4분의 1에 해당했다. 은행들의 파산은 간신히 막았지만, 선진국 소비시장이 빠르게 위축되었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불과 세 달 만에 전 세계 생산과 무역이 30% 이상 감소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세 달 만에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2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들이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보조금과 세금혜택을 중심으로 소비를 진작시켰다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서는 대대적인 토목·건설 공사가 활용됐다. 금융위기 이후 2년 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가 투입한 재정은 5조 달러를 웃돌았다. 한편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실시했다. 이를테면 미국 연준은 2008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3.6조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확대하는 정책)를 실시했다. 또한 연준은 2008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7년 동안 기준금리를 제로(0.00~0.25%)로 유지했다. 이와 같이 전례 없는 대규모 구제금융과 경기부양 정책을 동원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는 2008년 금융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처럼 대규모의 파산과 실업으로 넘쳐나는) 또 한 번의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불황은 피할 수 없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2년 동안 세계경제의 평균성장률이 2.5%를 기록했는데, 이는 1961~2007년 평균성장률 3.7%는 물론, 1995~2007 평균성장률 3.4%보다도 한참 낮은 것이었다. 더욱이 이 수치는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확장과 전례 없는 초저금리·양적완화 정책을 장기간 동원함으로써 겨우 달성한 결과였다. 대불황의 시기는, 부분적으로 애플 같은 빅테크 기업들,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들, 테슬라 같은 이른바 ‘친환경’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과 그에 따른 과감한 투자를 보여주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른 극심한 투자기피 현상을 보여주었다. 체제 전반의 투자기피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대표적인 실례는 미국의 ‘자사주 매입’ 확산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투자를 미국으로 회수하는 기업들에게 감세 혜택을 주기로 함에 따라, 2018년 1분기 미국 기업들이 2,170억 달러를 미국으로 회수했는데, 이는 전체 해외투자금 2.1조 달러의 약 10%였다. 그런데 상위 15개 기업이 회수한 810억 달러 가운데 겨우 20억 달러만 생산적 투자에 지출됐다. 반면 2018년 2분기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1,500억 달러로 1분기 대비 세 배로 급증했다. 즉 미국으로 회수된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생산적 투자 대신 경영권 방어나 주가 견인을 위한 ‘자사주 매입’에 투입됐다. 투자기피 현상은 은행의 대출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상업은행들이 1970~81년 제공한 총신용 가운데 상공업대출의 비중은 25.0%였으나 2008~19년에는 16.1%에 불과했다. 반면 부동산대출의 비중은 같은 기간 19.1%에서 37.0%로 상승했다. 한국에서는 투자기피 현상이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급증으로 나타났다. 2008년 221.6조였던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19년 821.6조로 성장했다. 결국 대불황의 시기는 자본주의 축적체제에 발생한 모순을 해소함으로써 새로운 호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모순을 더욱 축적하고 악화시킴으로써 대규모의 폭발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모순의 축적과 악화는 세계화와 금융화 양 측면 모두에서 진행되었다. 3) 세계화가 불러낸 리쇼어링·보호주의·패권대결 세계화는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에서 자본가들이 저임금을 강요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나아가 이윤율을 회복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는 수단이었다. 또한 낮은 물가가 유지되게 함으로써 저임금이 노동자투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는 기능도 했다. 그러나 대불황 시기를 거치며 세계화는 (특히 ‘생산의 세계화’는) 크게 후퇴했다. 세계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의 비율은 1985년 0.4%에서 출발해 추세적으로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07년 5.3%까지 이르렀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을 거듭하며 2020년 1.3%를 기록했다. 세계 GDP 대비 수출(상품+서비스)의 비율은 1986년 16.9%에서 출발해 2008년 31.2%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 끝에 2020년 26.3%를 기록했다. 세계 주요국·지역에서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 유입분의 비율은, 대부분의 경우 2006~10년보다 2016~20년에 그 수치가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1.9%에서 1.5%, 유로존 5.8%에서 1.9%, 중국 3.7%에서 1.5%, 인도 2.4%에서 1.8%, 러시아 3.7%에서 1.4%로 하락했다. 브라질이나 동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지역에서는 양상이 약간 달랐지만, 여기서도 그 비율이 뚜렷이 상승하지는 못했다. 세계화의 후퇴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범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세계화가 이렇게 후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화 자체에 내장된 모순이 작동한 결과 리쇼어링, 보호주의, 패권대결을 불러냄으로써 강력한 역세계화의 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초기에 선진국 자본가들이 신흥국으로 생산거점을 대거 이동한 것은 무엇보다 신흥국의 현저한 저임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선진국 임금과 신흥국 임금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신흥국에서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노동자들의 단결과 임금투쟁이 확대되면서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서 2010년에 터져 나온 대대적인 임금투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덧붙여 선진국에서 전반적인 임금정체에 덧붙여 이중임금제까지 확산되면서 제조업 신규 노동력의 임금이 상당히 하락했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임금격차 축소는 물류비용 등까지 고려할 때 신흥국으로 생산거점 이동이 과연 장기적으로 이득인지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대략 2010년을 분기점으로 많은 선진국 기업들이 신흥국을 향한 추가 생산투자를 보류하고, 심지어 신흥국에 있던 생산거점을 다시 선진국으로 되돌리는 이른바 리쇼어링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기 이전인 2010~16년에 이미 리쇼어링으로 43만 8천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리쇼어링이 비교적 조용한 경제적 현상이었던 것과 달리,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의 부상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강력한 정치적 현상이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는 소련·동유럽의 몰락과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포괄하며 사실상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재통합해 냈는데, 그와 같은 단일한 세계질서는 반대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가 원활하게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기반이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각국 정부들이 단일한 세계질서에 입각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 것은 금융위기가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나아가지 않고 대불황 정도로 수습되게 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화는 이 단일한 세계질서를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드는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을 다시 불러냈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G20 제2차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각국 정상들은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보호주의 저지’를 공식 결의했다. 1930년대에 세계 각국이 보호주의에 빠짐으로써 대공황을 크게 악화시켰던 경험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로 피폐해진 데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욱 급격하게 삶의 후퇴를 경험한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민중이 (이들을 이끌 역량 있는 혁명적 세력의 부재라는 조건 위에서) 보호주의 세력에게 거대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마침내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고,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보호주의가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의 전면에 부상했다. 보호주의 세력의 집권은 기왕에 진행되던 리쇼어링을 더욱 가속시켰다. 트럼프 정부가 해외투자를 회수하는 기업들에게 대규모 감세 혜택을 제공한 결과 2017~20년 리쇼어링으로 63만 7천 개의 일자리가 추가됐다. (앞서 본 것처럼 회수 자금의 대부분이 자사주 매입에 투입됐는데도 그 정도 결과가 나왔다.) 보호주의 세력의 집권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적 힘으로도 기능했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는 중국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유럽의 전통적인 동맹들과의 관계에도 큰 균열을 만들어냈다. 외국과 이주민을 혐오하는 보호주의의 득세는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온갖 극우 세력들을 강력하게 고무했다. 세계화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빠른 성장을 거듭한 끝에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만큼 도약했다.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추격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중국 사이의 갈등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대결을 조기에 가시화했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82년, 미국 GDP 대비 중국 GDP의 비율은 6.1%였다. 한동안 이 수치는 완만하게 증가해서 중국이 WTO에 가입하던 2001년에도 12.7%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후 6년 만에 이 수치가 두 배로 늘어나 2007년 24.5%를 기록하더니,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4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나 2011년 48.4%를 기록했다. 게다가 2010년부터는 중국 GDP가 일본을 추월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오랜 밀월을 대신해서 긴장과 갈등을 불러왔다. 2011년 오바마 정부는 ‘잠재적 적국’으로서 중국에 대한 견제와 포위를 뜻하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미국의 최상위 대외정책으로 설정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추격의 고삐를 더욱 당겼다. 중국의 GDP가 처음으로 미국의 절반을 넘어서서 52.5%를 기록하던 2012년, 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꿈, 즉 ‘중국몽’을 전면에 내걸었다. 나아가 중국의 GDP가 미국의 60.8%를 기록하던 2015년, 중국은 2025년까지 10대 핵심 첨단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GDP가 미국의 3분의 2를 넘어서며 67.7%를 기록하던 2018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전면적인 무역분쟁으로 불붙었다. 2018년 7월 트럼프 정부의 선공으로 34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한 25%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며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2019년 미국이 3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수입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화웨이를 비롯한 첨단기술 기업들을 제재하자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축소하는 양상으로 확대된 가운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역분쟁을 거치며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관세부과 대상이 1.0%에서 66.4%로 크게 확대됐으며, 평균 관세율은 3.1%에서 19.3%로 상승했다. 미국은 무역분쟁을 활용해 2019년 중국과의 GDP 격차를 다시 벌릴 수 있었지만, 중국이 빠르게 대응력을 회복하면서 2021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77.1%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와 중국의 왕성한 추격은 미·중 패권대결이 점점 더 격화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2008년 이전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결함을 보완하며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만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세계화의 자체 모순이 전개된 결과 원래의 기능도 현저히 약화됐을 뿐만 아니라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이라는 (세계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자본주의 위기를 결정적으로 심화시킬) 정치적 힘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4) 더욱 거대한 금융위기를 향해 치달아 온 금융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제가 침체와 저성장에 갇힌 것과 달리, 세계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7년 4분기 115.5%로 정점을 기록한 뒤,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8년 4분기 54.6%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1년 4분기 128.1%로 새로운 정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12.6%포인트나 높다. 세계 주식시장에 금융위기 직전보다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더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0년 1분기 164.7%와 2007년 2분기 142.6%로 정점을 기록한 뒤, 각각 닷컴붕괴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3년 1분기 94.9%와 2009년 1분기 74.5%로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1년 4분기 211.4%를 기록했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닷컴붕괴 직전보다는 46.7%포인트, 금융위기 직전보다는 68.8%포인트나 더 높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닷컴붕괴나 금융위기 직전보다 훨씬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미국 부동산시장도 심각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대비 주택가격지수는 2006년 5월 155.1%로 정점을 기록한 뒤, 부동산 가격폭락과 금융위기를 거치며 2012년 2월 99.4%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2년 5월 178.1%로 정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23.0%포인트 더 높다. 미국 부동산시장에서도 금융위기 직전보다 상당히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부동산 거품이 조성돼 있다. 2022년 6월 블룸버그는 임대료 대비 가격과 소득 대비 가격을 합산해 본 결과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19개 국가의 부동산시장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큰 거품이 조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2008년 이전,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금융화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초과착취에 덧붙여) 금융수탈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수탈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붕괴로 내몰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수단임을 여실히 입증했다. 그러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적어도 한동안은 금융수탈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자본가들에게 최소한의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60년 이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2008년 이후 금융수탈은 더 거대한 규모로 전개됐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자본주의에는 2000년 닷컴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를 낳았던 두 거품보다 훨씬 더 큰 거품이 조성돼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금융수탈이 아니고서는 자본주의가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엄청난 신자유주의 공세가 퍼부어졌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은 여전히 바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게다가 착취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세계화는 2008년 이후 빠르게 후퇴해 왔다. 자본주의의 동력은 자본가들의 끝없는 이윤욕인데, 대규모의 금융수탈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이윤욕을 제대로 충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금융수탈 없이는, 금융수탈을 필사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2008년 이후 주식·부동산 시장 등에서 더욱 거대한 거품이 조성되고 그럼으로써 더 거대한 규모로 금융수탈이 전개된 데에는 금융수탈을 부추기고 지원하는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 법과 제도가 작용했지만, 경제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가 핵심이었다. 2008년 직후 미국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 충격으로 급격히 얼어붙은 실물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자본가들이 더 쉽게 생산적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시중에 충분한 화폐를 공급하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바닥을 기는 이윤율 때문에 자본가들은 생산적 투자에 잘 나서지 않았고, 결국 넘쳐나는 화폐는 주식가격과 부동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더 많이 기여했다. 그런데 자본가계급 전체로 보자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생산적 투자로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없다면, 금융수탈로 보충하면 될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구조가 고착되자,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는 주식·부동산 가격을 지탱하고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상 변질됐다. 그런데 특히 주식거품이 맹렬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다시 금융위기가 터지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조심스럽게 금리를 다시 인상하고 양적긴축에 들어갔는데, 특히 미국 연준은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9차례에 걸쳐 2.25% 금리를 인상하고 2017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0.7조 달러를 회수하는 미미한 양적긴축을 실시했다. 그 표면상 이유는 ‘점진적인 경제회복에 따른 정상화’였지만, 과도하게 부푼 거품이 격렬하게 터지기 전에 미리 바람을 빼는 것 또한 실제 목표에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준은 바람을 충분히 뺄 수 없었다. 약간의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에도 미국 경제가 빠르게 하강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2019년 9월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져서, 일시적으로 초유의 위기 국면이 펼쳐졌다. 이를테면 2020년 4월 미국에서는 한 달 만에 일자리 2천만 개가 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1년 동안 사라진 일자리 670만 개의 세 배가 한 달 만에 사라졌다.) IMF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가 9.9조 달러의 재정을 지출했으며, 각국 중앙은행이 6.1조 달러의 금융 지원에 나섰다. 이렇게 투입된 16.0조 달러는 2020년 세계 GDP의 18.8%에 이르렀다. 미국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4.8조 달러의 양적완화에 나섰다. 이번에도 정책의 효과는 비슷했지만 그 정도는 훨씬 심했다. 다시 한 번의 제로금리와 대규모 양적완화는 생산적 투자의 활성화보다 주식·부동산 거품을 끌어올리는 데 훨씬 더 많이 기여했다.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거품이 전 세계 주식·부동산 시장에서 조성됐다.2023-01-18 | 조회 398
-
[2023년 정세와 과제 5] 2023년, 계급투쟁으로서의 기후정의운동을 확대하자사진: 연합뉴스 에너지의 완전한 상품화, 궁핍한 민중을 더 궁핍하게 하는 정부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전력 수요관리를 하자는 주장이 운동진영 일각에서도 제기된다. 정부는 전기·가스요금뿐 아니라 버스·지하철 요금도 자신 있게 인상안을 발표했다. 그런데도 공공요금 인상에 선뜻 불만을 내비치는 흐름은 크지 않다. 한전·가스공사 등 공기업 적자 이데올로기는 이만큼 강력하다.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의 본질이 민영화와 위기전가임을 폭로하고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 전기요금 인상을 통한 수요관리론부터 반박해보자. 가격 인상-수요 감소 원리에 따라 에너지 수요를 억누르자는 것인데, 우선 한국 민중의 전기수요는 그리 높지 않다. 2021년 전체 전력사용량 중 가정용 전력은 14.5%로 제조업·서비스업에서 사용한 77.0%에 한참 못 미친다. 참고로 한국의 가정용 전력사용량은 전 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이다. 당장 2019년 미국 전력사용 중 가정용 사용량은 37.8%로 한국의 2.5배가 넘는다(「2021년 한국전력통계」). 정말로 수요관리가 필요하다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과 사용량 제한을 도입해야지, 가정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적자를 이유로 한 요금 인상의 함의는 공기업 민영화다. 전기·가스·수도·철도 등을 공공기관에서 공급하는 이유는, 이들이 모두에게 필요한 공공재이며, 정부가 강조하는 원가주의에 근거해 유통될 경우 꼭 필요한 곳에 공급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영국에서 수입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해야 하는 ‘난방 빈곤’이 급증하고 있다. 에너지가 민영화되었기 때문이다. 필수재·공공재를 필요한 만큼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공이 관리해야 하며, 어느 정도 적자를 감수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2026년까지 한전의 30조 적자를 해소하겠다고 한다. 이는 에너지의 완전한 상품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한전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노골적인 이윤 창출 기관이 되어야만 한다. 한전 적자 진짜 주범, 에너지 재벌 국유화를 요구하자 무엇보다 정부는 한전 적자의 주범을 감추고 있다. 민간발전사를 소유하는 에너지 재벌 말이다. 한전이 적자를 보는 이유는 에너지 재벌로부터 비싼 값에 전기를 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지구적인 에너지 위기로 LNG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력도매가격이 급등했다. 7개 민간발전사는 상반기에만 1.9조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한전 적자가 심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전력도매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직전 3개월 평균 도매가격이 지난 10년 도매가격 상위 10% 이상일 경우 1개월간 가격 상한을 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한 가격은 10년 평균의 1.5배로 적지 않고, 적용 기간은 1개월로 짧다. 나아가 3개월 이상 연속해 가격 상한제를 적용할 수 없으며, 그마저도 올해 말이면 상한제가 폐지된다. 지구적인 에너지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재벌 발전사는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이다. 이렇게 쌓아 올린 에너지 기업의 이윤은 한전의 적자와 맞바꾼 것이며,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의 적자를 민중의 생존과 맞바꾸려 한다. 전형적인 위기 전가다. 재생에너지 부문도 마찬가지다. 재벌 재생에너지 기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태양광 모듈을 생산하는 4개 에너지기업(한화솔루션, 현대에너지솔루션, OCI, 신성에너지)의 매출액은 14.2조, 영업이익은 1.5조를 기록했다(각 기업 분기보고서, 전자공시시스템). 이윤을 위해 지난 수년간 농민들의 삶터를 밀어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고, 이는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확산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윤이 아니라 민중의 필요 충족을 위한 에너지 생산, 공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체제에 기반한 에너지 생산이 곧 기후정의이다. 재벌 민간발전사와 재생에너지 기업의 국유화가 필요하다. 4월 세종기후정의행진은 에너지자본 국유화 요구를 확대하기 위한 계기여야 한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핵심, ‘노동자 참여’가 아니라 ‘노동자 통제’다 전기차·수소차 전환으로 내연기관 공정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부품사 노동자들의 해고가 예고되고 있다. 고용보장과 정의로운 산업전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이유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주장 다수가 ‘산업 전환 과정에서의 노동자 참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를테면 지난해 금속노조는 <산업전환시 고용안정 및 노동전환 관련 법률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주체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동등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함을 법안에 분명히 적시”해야 한다면서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위원회’를 중층적으로 구성해 심의·의결할 내용의 구체성을 담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자 참여’ 자체가 운동이 될 수는 없으며, 이윤에 균열을 내지 않는 수준의 노동자 참여는 정부와 자본이 크게 마다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재원으로 고용을 보장할 것인가다. 기후위기를 가속하고, 다단계 비정규직을 양산해 이윤을 쌓은 현대차 등 금속산업 재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즉, 산업전환의 핵심은 ‘노동자 참여’가 아니라 ‘노동자 통제’다. 자본은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기후정의 실현과정에서 징벌해야 할 대상이다. 금속노동자들이 기후정의운동에 뛰어들어야 한다. 고용보장 요구는 물론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 집단적 질문을 던지는 대중운동의 형성과 함께 재벌과 기간산업 국유화를 요구해야 한다. 자본은 ‘그린워싱’으로 스스로를 친환경 기업으로 포장하고 있으며, 해고와 구조조정으로 기후위기의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자본과 싸우는 노동자들부터 해고와 구조조정에 맞서는 것이 기후정의임을 선언하고, 노동자 산업통제운동의 자신감을 확대해야 한다. 싸우는 기후정의, 4월에 세종으로 2019년 9월, 정부에 기후위기 인정을 요구하는 ‘기후위기비상행동’에 5천여 명이 모였고, 불과 3년 뒤인 지난 9월, ‘기후정의행진’에는 5배가 넘는 인원이 모였다. 기후재난과 불평등이 체제의 문제라는 공감대는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요구를 들고 뾰족한 싸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체제전환에 대한 넓은 공감대를 이제는 정권과 자본이 두려워할 만한 물리적 힘으로 조직해내야 한다. 오는 4월 공공 주도 재생에너지 전환, 탈핵과 탈석탄, 정의로운 전환과 고용보장, 신공항 난개발 반대를 요구하는 대정부 투쟁으로서 ‘4월 세종기후정의행진(가)’이 준비되고 있다. 이 싸움을 에너지 위기 전가에 맞서고 노동자 산업통제를 요구하는 전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재벌 민간발전사의 수탈과 재생에너지 기업의 이윤을 폭로하자. 에너지 국유화와 노동자 민중의 산업통제를 요구하는 대정부 투쟁을 실현하자. 노동자 산업통제가 기후정의임을 알리고, ‘사회적 대화’가 아닌 재벌과 맞선 투쟁으로 산업전환을 준비해가자. 발전산업, 금속산업, 공공부문 등 각 부문과 지역에서 4월 세종기후정의행진 노동자 참가선언과 참가단을 조직하자. 4월 세종기후정의행진, 그리고 이어질 9월 기후정의행진은 국가와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는 계급투쟁이어야 한다.2023-01-17 | 조회 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