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위원회 기획연재 - 노동자의 삶과 철학 3] 능력(경쟁)주의,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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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교육위원회 기획연재 - 노동자의 삶과 철학 3] 능력(경쟁)주의,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 조형우
  • 등록 2023.01.26 12:23
  • 조회수 731

소위 ‘인국공 사태’라고 일컬어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관련된 논쟁을 기점으로 ‘공정성’을 기치로 내세운 능력주의·경쟁주의 담론이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직접고용 투쟁에서 나타난 정규직의 격렬한 반발에서 시작해, 능력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이준석의 국민의힘 대표 당선과 차별과 혐오를 앞세운 윤석열 정부 출범까지의 기간 동안 능력주의·경쟁주의 담론은 말 그대로 절정에 달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배계급의 이전투구로 인해 우익 포퓰리즘의 형편없는 실체가 드러나고 계급투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 양태가 변화하면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파급력이 다소 약화된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현재 노동자와 청년학생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계급적 단결과 운동의 전망을 열어내는 데 있어서 강력한 방해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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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문재인 정부 동안 인천국제공항에서 건보공단에 이르기까지 ‘공정성’을 앞세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비정규직 투쟁을 공격하는 강력한 논리로 작동해왔고 이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박근혜 퇴진 촛불을 촉발시킨 정유라 사태에서 등장했던 ‘불공정’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하게 되자 많은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부르주아 정치권이나 언론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내에서(특히나 청년 정규직 조합원 중심으로)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능력(경쟁)주의가 청년들의 시대정신인 것처럼 재생산했다.


최근 몇 년간 논쟁이 되었던 능력(경쟁)주의 담론은 사실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흔히 채용 과정에서의 공정을 주장한다. 즉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채용 과정을 거친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무임승차’라는 것이다. 채용 시험을 골자로 한 공정성 시비는 교육공무직 법안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2016년 말 교육현장에서의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발의되었던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현직 공무원과 교사, 사범대생들과 고시준비생들은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발의 배경과 내용은 논의되지 않은 채 ‘정유라 법’이라는 등의 음해만 난무했고, 결국 박근혜 퇴진 촛불이 한창이었던 2016년 12월 해당 법안은 철회된다. 이후에도 기간제교사 등 교육현장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더 격화되었고, 2017년 9월 2일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는 ‘현재 근무 중인 기간제 교원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공식 결정을 내린다. 이 전교조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민주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세력화된 반대를 표출하는 것에 정당성을 제공하게 되었고, 그간 민주노조운동이 그나마 지켜왔던 계급적 연대와 단결의 전통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과 함께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공정성 담론의 장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서울교통공사, 한국도로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정규직 전환이 추진되는 곳마다 공정성 논란이 벌어졌다. 많은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투쟁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가로막히고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들끼리 분열하고 싸우는 것을 보며 계급적 연대와 단결의 전망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청년들의 능력(경쟁)주의

 

현실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야만적인 형태로 작동한다. 이러한 야만적인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에는 능력주의가 청년·학생들을 대변하는 목소리인 것처럼 유포되었던 것이 크다. 소위 ‘공정성’은 정유라 사태와 조국 사태에서 나타난 대학생들의 외침에서 시작되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사회적 지위가 이전에 비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의 주장과 담론은 시대정신인 것처럼 여겨지고 사회에서는 청년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극한의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내몰리고 있는 지금의 청년들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학에 들어오기까지는 입시 경쟁에 시달려야 했고,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취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많은 대학생들은 경쟁 과정에서의 공정함에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와 같은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에서 승리해 정규직 일자리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청년층 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쟁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보상에 집착하게 된다. 체제가 강요하는 능력주의 경쟁구조로 인해 능력(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자연스럽게 체화된 청년들은 ‘경쟁에서 앞선 자와 뒤처진 자를 가르고, 승자는 노력을 보상받아야 하고 패자보다 더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청년층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자신보다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이 자신과 같은 처우를 누린다는 것에 대한 불만과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억울함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다.

 

여기서 질문해야 하는 지점이 생긴다.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살아온 청년들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화신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인가라는 물음이다. 한동안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과 ‘노오력’ 등의 말이 유행했었다. 이러한 단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힘든 한국 사회의 지옥 같은 능력주의 경쟁구조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만과 비판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능력주의 경쟁구조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은 모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경쟁 체제 자체에 대한 신물이 났고 많은 불만을 품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그 경쟁에서 이겨보고자 몸부림친다. 이는 체제의 입장에서 능력주의 경쟁구조가 양날의 검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청년들이 ‘공정성’ 같은 기치를 내세우며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장서서 실천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경쟁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체제 변혁적인 전망을 택할 수도 있다. ‘공정성’이라는 개념과 ‘헬조선’, ‘노오력’등의 유행어는 그러한 상반된 두 가능성에 대한 청년 세대의 복잡한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청년들은 왜 능력주의 경쟁 체제 자체를 철폐하는 입장이 아니라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앞장서는 방향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는 우선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 그리고 현재 운동의 주체적 조건 및 전망의 수준과 연관지어 분석해볼 수 있다. 청년학생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서로 상보적인 성격의 관계를 갖는다. 청년학생층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좌우하기도 하고, 반대로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에 청년학생층의 이데올로기가 종속되기도 한다.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청년학생들의 운동이 전체 운동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청년학생들의 운동의 전망은 해당 시기 전체 계급의 역관계와 운동의 수준에 의해 규정된다.

 

결국 현재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계급투쟁의 상태가 청년학생들이 경쟁구조 자체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투쟁에서 전체 민주노조운동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자.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절박한 투쟁에 대해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조합주의적이거나 반계급적인 행동을 일삼았고, 민주노조 운동 상층의 관료주의 세력은 대사업장 정규직 노조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 이러한 계급적 단결의 전망을 세워내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상태를 이용해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언론은 노노갈등 등을 운운하며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렇듯 전체 계급투쟁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전망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청년학생들은 체제에 맞서는 길과 체제에 복종하여 살아가는 길 중에 후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학생운동이 위축된 상황 속에서 반동적인 일부 상위권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더욱 큰 힘을 얻게 되었고, 이를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언론이 전체 청년들의 공통된 주장인양 전파하면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이와 함께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물적 토대의 측면도 중요하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 핵심은 극심한 일자리 경쟁이다. 턱없이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 속에서 더 나은 일자리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에 몸을 내던져야 하는 취업 준비 청년들의 조건은 경쟁을 강요하는 체제 자체에 맞설 여유와 전망을 갖는 것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체제를 깨뜨리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취업 경쟁을 통해 당장 자신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최소한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조운동의 국가책임일자리 운동으로 능력(경쟁)주의를 뚫고 나가야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투쟁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투쟁의 방법과 나아가야 할 방향 자체는 분명하고 간단하다. 우선 비정규직 투쟁의 확대와 조합주의를 뛰어넘는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통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투쟁의 전망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할 최소한의 조건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체제에 맞서는 투쟁의 전망에 자신감과 확신을 갖지 않는 이상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선도하면서 경쟁주의에 맞선 계급단결을 주도하고 청년층의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투쟁을 전개하는 등 다수 청년들을 대변하는 확실한 전망을 보여준다면, 청년들이 지금까지 능력주의 경쟁구조 아래에서 쌓아왔던 불만은 투쟁으로 폭발할 수 있다. 청년층의 대다수가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을 벌이게 된다면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급변하고,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점차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서기 위한 핵심적인 지점은 노동운동과 청년학생운동이 공통으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물적 토대로 작동하는 일자리에 대한 요구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취업 경쟁이 지속된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 자체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될 것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양질의 일자리는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고 이를 국가가 책임지라는 요구가 필요하다.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이 일자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라며 자본과 국가를 상대로 함께 투쟁해서 일자리 경쟁을 없앨 수 있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물적 토대도 무너뜨릴 수 있다. 더욱이 국가책임일자리운동은 취업 준비 청년들이 안정된 삶을 쟁취하고, 자본주의 위기와 산업전환 앞에서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총고용을 쟁취할 수 있는 공통의 핵심적인 요구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과 투쟁의 확장 가능성은 매우 클 것이다.

 

이러한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결국 자본주의 철폐라는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이데올로기 투쟁과 일자리 등의 요구를 내건 운동을 통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는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뿌리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이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맞설 수 있다는 투쟁의 자신감이 생겼다면, 이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하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곧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현시기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이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적인 당면 과제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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