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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법원, KEC 남녀승격 차별 인정1. 법원, KEC 남녀승격 차별 인정 노사 합의에 따른 평가 기준으로 승진을 결정했더라도 여성 노동자가 한 명도 관리직으로 승진하지 못했다면 승진 차별에 해당해 회사가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만, 고강도 업무 수행을 위해 남성 노동자를 채용한 것은 채용 차별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29일 서울고등법원 제1-1민사부는 금속노조 KEC지회가 제기한 여성 고용 차별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2심(항소심) 재판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생산직 여성 노동자에 대한 승격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어야 함에도 (차별적) 승격 조건을 적용한 과실이 있고, 여성 노동자(원고)는 한 차례 이상 승격에서 누락돼 차별이 없었을 때 받았을 임금과 실제 임금 차액 상당의 재산상 피해를 봤다”고 판시했다. KEC는 경북 구미공장에서 반도체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다. KEC에서 남성 생산직 노동자는 선발 후 대부분 J2등급을 부여받았지만, 여성 생산직 노동자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직급인 J1등급을 부여받았다. 승격에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20년 이상 재직한 생산직 중 J등급으로 입사한 남성은 모두 관리자인 S등급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여성은 한 명도 S등급으로 승격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에서 노동자 측을 대리한 장석우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남녀 승진 차별 사건에서 법원은 형식적 평등이 아닌 결과적 불평등을 더 면밀하게 보고 기준을 제시했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장기간의 구조적인 승진 차별을 회사가 계속적, 반복적으로 방치할 경우 손해 배상 책임을 진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참조 기사>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028 2. 소속기관 전환 투쟁 중인 건보고객센터지부, 12일 서울노동청 농성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4년째 이행되지 않은 소속기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산발적 파업과 서울 고용노동청 앞 천막농성, 각 지역별 거점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4년 전 소속기관 정규직 전환 합의가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2일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고용노동청 내에서 농성을 벌였다. 노조는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고 있는데, 지난 24일 교섭(노·사·전문가 협의)에서 공단은 정부 승인 당시보다 18명 줄어든 1,615명만 전환하겠다는 안을 철회하고 정원을 1,633명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공개경쟁 대상인 재직자(2021년 11월 이후 입사자)에게는 경력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모두 수습기간을 거치고, 이때 근속을 0년으로 설정해 기존 연차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수습평가에서 ‘불량’이 한 차례라도 나오면 탈락시키겠다고 했다. 건보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공단이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정규직 신규채용’으로 적용”하고,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며 규탄했다. 이에 고용노동부에 △소속기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수습임용 강요와 연차 미보장 등 노동조건 후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할 것 △상시·지속업무 전환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전환 방식 전반을 점검하고 시정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농성은 오후에 출장 중인 장관을 대신해 보좌관과의 면담 성사로 종료되었다. 노조는 12월 17일 13시, ‘고용불안 야기하는 건보공단 규탄!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합의 이행!’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전국동시다발 총파업 결의대회를 서울, 강원, 대구, 부산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참고 기사> https://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8458 3. 일하다 다쳐도 “승인될까요?” 산재신청 망설이는 청년여성들 청년 여성 노동자들이 일 때문에 아프거나 다쳐도 산재보험 신청·처리를 하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데다가, 인사상 불이익이 우려되는 등의 이유로 회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낮은 승인 가능성 때문에 산재보험을 제때에 원활히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동건강연대가 2022~2025년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신청자 1천42명을 분석한 결과, 실제 산재보험을 이용한 비율은 2.9%(29명)에 그쳤다. 대부분(75.2%)은 건강보험으로, 36.3%는 개인보험으로 치료했고, 치료를 아예 포기한 이들도 27%였다. 노동건강연대는 “산재보험제도가 필요한 노동자에게 닿지 않고 있다”며 “청년여성 노동자들이 산재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잘 몰라서’가 아니라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참조 기사>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598 4. 이집트·이란 축구협회, FIFA에 ‘프라이드 매치’ 취소 요구 ― 국제 스포츠 무대서 LGBTQ+ 권리 둘러싼 갈등 격화 이집트와 이란 축구협회가 국제축구연맹(FIFA)에 공식 서한을 보내, 미국 시애틀에서 예정된 월드컵 예선 경기와 연계된 ‘프라이드 매치’ 행사를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두 협회는 해당 행사가 자국의 종교적·문화적 가치에 반하며, 선수와 대표단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된 프라이드 매치는 월드컵 예선 경기 기간 중 개최될 예정이었으며,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상징적 이벤트로 기획됐다. 그러나 이집트와 이란은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로, 자국 축구협회는 “정치적·이념적 메시지가 스포츠 행사에 개입돼서는 안 된다”며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와 LGBTQ+ 단체들은 “이미 FIFA가 인권 존중을 명시적 원칙으로 채택한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차별적 법과 관행을 이유로 성소수자 가시성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후퇴”라고 비판했다. 특히 월드컵과 같은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는 인권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중요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번 요구는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의 성소수자 배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FIFA는 공식적인 최종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내부적으로는 ‘문화적 다양성 존중’과 ‘차별 금지 원칙’ 사이의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에도 월드컵 개최국의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FIFA가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아온 만큼, 이번 사안 역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논란은 국제 스포츠가 더 이상 정치와 인권 문제로부터 분리된 중립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동시에 성소수자 권리가 세계 무대에서 여전히 협상 대상이자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참고 기사> https://people.com/egypt-football-association-demands-fifa-cancels-pride-match-scheduled-in-seattle-for-their-world-cup-game-11865886 5. 헝가리, 프라이드 행사 도운 교사 형사처벌 위기 ― 표현의 자유와 교육 현장 탄압 논란 확산 헝가리에서 LGBTQ+ 프라이드 행사를 조직하는 데 관여한 한 교사가 형사처벌 위기에 놓이면서,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 침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해당 교사는 정부가 금지한 프라이드 관련 집회 준비를 도운 혐의로 경찰에 소환됐으며, ‘불법 집회 조직’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된 행사는 헝가리 정부가 ‘아동 보호’를 명분으로 시행 중인 법률에 따라 금지된 프라이드 관련 집회였다. 이 법은 미성년자 보호를 이유로 성소수자 관련 공적 표현과 집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인권단체들은 이를 사실상 LGBTQ+ 존재 자체를 검열하는 법이라고 비판해 왔다. 교사는 해당 행사에서 직접적인 주최자는 아니었으나, 준비 과정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 본인은 “평화적인 시민 행사에 참여했을 뿐이며, 학생들에게 혐오나 차별이 아닌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가르치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소가 이뤄질 경우, 형사 처벌뿐 아니라 교직 박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헝가리 교육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교사를 본보기 삼아 성소수자 연대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헝가리가 유럽연합(EU)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집회·표현의 자유와 소수자 권리를 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육 종사자에 대한 형사 처벌은 공적 영역 전반에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사건은 헝가리 내 LGBTQ+ 권리 억압이 개인 시민의 삶과 직업 안정성까지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참고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dec/10/teacher-hungary-facing-criminal-charges-pride-event?CMP=share_btn_url 6. 이재명 정부 주요 국정과제 ‘통합돌봄’ … 인력‧예산 반토막 내년 3월부터 통합돌봄 서비스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 이재명 정부는 ‘노인·장애인 등이 시설, 병원에 가지 않고 살던 곳에서 존엄한 삶’을 살도록 보장하겠다며 통합돌봄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통합돌봄은 “노인, 장애인 등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하여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나 지자체장이 보건의료, 건강관리, 장기요양, 일상생활 돌봄, 주거 등의 서비스를 직접 또는 연계”하는 서비스이다. 정부는 당초 777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고, 전국요양보호사협회 등 53개 현장 돌봄 단체들은 통합돌봄 안착을 위해 내년 예산 2,132억 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관련 사업비는 91억 원(529억 원→620억 원) 증액에 그쳤고, 이를 모든 지자체에 나누도록 결정했다. 지역 현장에서 통합돌봄을 담당할 인력 부족 문제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통합돌봄 전담 인력 2,400명 인건비를 6개월간 한시 지원하도록 했다. 국가책임 공공돌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돌봄 사업을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담보할 기본인력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부가 제도 취지에 역행하는 예산을 배정하면서 통합돌봄 시행 첫해부터 사업 안착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돌봄단체들은 지난 8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재명 정부의 ‘화려한 약속, 초라한 예산’을 규탄한다”며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복합 돌봄 사업을 이 수준의 예산으로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참조 기사> https://news.tf.co.kr/read/life/2271125.htm -
[성명] 노동자연대의 성폭력 2차 가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김승섭 노무사 해촉 여부에 관한 논란을 계기로 노동자연대의 성폭력 2차 가해가 다시 난무하고 있다. 노동자연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그간 재판을 통해 노동자연대의 성폭력 2차 가해가 모두 부정되었다'며 2020년 민주노총이 결정한 노동자연대 연대 중단의 정당성까지 부정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다시 극심한 고통을 안기고 있다. 노동자연대는 성폭력 2차 가해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라. 김승섭 노무사 해촉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노동자연대가 오랜 기간 성폭력 피해자와 조력자에게 행한 조직적 가해, 그리고 이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부재다. 민주노총이 노동자연대와 연대를 중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연대의 정치적 지향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조직적 공격을 문제 삼았다. 이는 특정 단체와 노선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운동이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에 대한 제기였다. 민주노총의 연대 중단은 정당했으며, 노동자연대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하지 않는 한 유지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노동자연대 성원을 일괄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해당 시도는 자칫 특정 정치적 경향에 대한 배제와 통제 시도로 오용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에 대한 정당한 우려가 성폭력 2차 가해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책임을 흐리거나 부정하는 주장과 뒤섞여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다. 김승섭 노무사는 민주노총 추천 질병판정위원이 될 수 없다. 여기서 가부를 가르는 기준은 '노동자연대 회원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에게 또 한 번 고통을 안긴 구체적 행위와 그에 대한 책임이다. 김승섭 노무사는 이번 논란 과정에서 노동자연대의 성폭력 2차 가해를 부정하며 노동자연대의 입장을 대변했다. '성폭력 2차 가해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해당 제기는 노동자연대에 대한 음해'라는 노동자연대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대변하는 사람,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다시 가중한 사람이 민주노총 추천 질병판정위원이 될 수 없다. 노동자연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사안의 본질을 다시 호도한다. 우선, 법원조차 노동자연대의 2차 가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노동자연대의 결백이 입증되었다'는 선전은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그간 노동자연대는 피해자의 사생활과 이력을 조직적으로 유포했고, 노동자연대를 중상모략한다며 피해자들을 비난했으며, 심지어 성폭력 가해자의 피해자 비방을 조직 입장으로 게시하며 피해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기도 했다. 이런 행보가 비판받자, 노동자연대는 슬그머니 다수의 글을 내렸지만, 피해자들에게는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2차 가해는 피해자들에게 원 사건 이상의 고통을 남겼다. 지금, 노동자연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노동자연대는 성폭력 피해자와 조력자에게 가한 조직적 괴롭힘과 2차 가해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과제 역시 분명하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연대의 조직적 2차 가해와 같은 끔찍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중적 토론과 교육에 나서야 한다. 성폭력과 2차 가해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는지를 드러내고, 보다 성평등한 일터와 사회를 향한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을 촉구함으로써, 성폭력과 2차 가해를 근절할 조합원 대중의 힘을 확대하자.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기원한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전심전력으로 피해자들과 연대할 것임을 밝힌다. 2025년 12월 16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2025 정치캠프] 약탈과 전쟁·학살로 치닫는 자본주의 국제질서사진: AP 연합뉴스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2025 정치캠프 <위기·전쟁·혁명> 2일차 전체세션 발제문으로 제출되었다. 들어가며 세계화의 전성기, 누군가는 '맥도날드가 들어선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열강이 충돌하는 '제국주의' 시대는 가고, 전 세계를 단일 질서로 포섭하는 '제국'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배적 담론이었던 ‘세계화의 불가역성’이 허상으로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계화의 호시절은 짧았다. 미국은 쇠퇴했고, 중국과 브릭스 국가들이 곳곳에서 부상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호무역주의 심화는 열강투쟁 격화와 전쟁위기 확대로 급격하게 발전했다. 세계화의 첨병으로 기능하던 WTO는 흔적만 남았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던 세계화와 자유무역 질서가 허물어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쇠퇴하는 헤게모니를 조금이라도 연장하고자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 폭압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세계는 다시 노골적 제국주의 열강투쟁의 시기로 진입했다. 위기와 전쟁, 혁명의 시대가 우리 앞에 있다. 1. 미국 주도 관세전쟁의 본질 1) 대대적 약탈에 나선 트럼프 정부 2025년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을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 이름 붙이며 대통령 긴급권한에 근거해 대대적인 고율관세 부과조치를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날 발표한 소위 상호관세율이 상대국의 △대미 관세 △비관세 장벽 △환율 조작까지 고려해 산정한 잠정관세율에서 할인한 수치라고 설명했으나, 실제 관세율 산정 방식은 ‘엑셀 돌리기’에 불과하며 합리적 근거는 전무하다.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이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에 있다’고 규정하며 심지어 생명체라고는 펭귄뿐인 섬까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한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 수탈의 개시를 알렸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풍경은 아니다. 1기 트럼프 정부 당시 이미 중국은 물론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 대한 관세인상 조치를 압박했고, 화웨이·SMIC 등 중국 자본을 규제대상 기업 목록(Entity list)에 올려 서방 공급망에서 퇴출시켰다. 2018년에는 ‘수출통제개혁법’(Export Control Reform Act, ECRA)을 제정해 반도체·AI·5G 등 '첨단 전략기술'을 국가안보 범주로 분류하며 중국 기업에 대한 장비·소프트웨어·설계기술 등 수출 제한에 착수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의 대중국 관세조치를 철회하지 않았으며,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으로 제조업 부흥을 추진하는 한편 트럼프의 보호주의를 충실히 이어갔다. (바이든 정부는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영업비밀 열람권까지 요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2기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고율관세 부과를 압박하며 미국에 대한 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자유무역 체제를 노골적으로 뒤집으며 ‘내가 본 손해를 보상하라’고 강요하는 미국의 행보는, 흔들리는 패권국 지위를 노골적 수탈로 만회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유럽연합에 대해 4월 2일 발표한 30%의 관세를 15%로 낮추는 댓가로 6천억 달러 투자를, 일본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5,500억 달러 미국 투자를, 그리고 한국은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댓가로 3,500억 달러 투자를 뜯어냈다. 2)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미국 헤게모니 위기에 대응하는 폭력적 질서재편 시도 미국의 약탈은 단지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조치가 아니다. 2기 트럼프 정부는 ‘스티븐 미란’이라는 인물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다(현재 그는 연방준비위원회 이사를 겸직하고 있기도 하다). 미란은 「국제 무역체제 재구조화를 위한 사용자 가이드」, 일명 ‘미란 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다. 보고서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에 대한 예리한 인식에 근거한다. 「‘역사의 종언’이 뒤집히고 국가안보 위협이 다시 돌아오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주요 지정학적 경쟁자가 없던 시기, 미국 지도자들은 제조업 기반 쇠퇴의 의미를 축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단지 무역 상대가 아니라 안보 위협으로 등장하면서, 강력하고 다각화된 제조업 기반은 다시 필수 사항이 되었다. 무기와 방위체제를 생산할 공급망이 없다면 국가안보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듯이, “철강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많은 경제학자는 이러한 외부효과를 분석에 포함하지 않고, 따라서 공급망을 무역 동반자나 동맹국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없다고 여기지만, 트럼프 진영은 그러한 신뢰를 공유하지 않는다. 미국의 동맹국과 동반자 중 상당수는 미국보다 중국과의 무역·투자 규모가 더 크다.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과연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미란 보고서, 5p.) 보고서는 미국의 지속적 무역적자는 강한 달러 때문이라고 짚으며 이는 달러의 기축통화 기능과 연동된다고 주장한다. 즉, 무역적자가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수출이 늘어나 무역적자가 해소되어야 하는데, 달러가 기축통화인 관계로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비축하고 있기에, 달러 강세는 필연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는 무역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세계경제의 작동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미란 보고서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를 주요 수단으로 제시하며[1], 다음 기준으로 각국 관세율을 산정하자고 한다. - 해당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미국이 그들에게 부과하는 수준과 비슷한 관세를 적용하는가? - 외환보유고를 과도하게 축적해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한 이력이 있는가? - 미국 기업이 해당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가, 외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수준과 유사한가? -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가? - 해당국이 중국으로부터 제품을 수입한 후 미국에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회피하고 있는가? - 나토 국방예산 분담금을 전액 납부하고 있는가? - 중국, 러시아, 이란 등과의 국제 분쟁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는가? - 제재 대상 국가 또는 기업과의 거래, 혹은 그들에 대한 제재 회피를 방조하는가? - 다양한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작전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 미국의 적대 세력(테러리스트, 사이버 범죄자 등)을 자국 내에서 보호하거나 수용하는가? - 국제 무대에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반미적인 외교 행보를 하는가? (미란 보고서, 23p.) 위 기준들에서 드러나듯 고율관세 압박은 무역과 안보를 직결시키고 세계 자본주의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축하는 지렛대다. 제국주의 열강투쟁이 격화하는 지금, 미국은 경제와 안보를 하나로 묶으며 ‘당신은 누구 편인가’를 묻는 한편, ‘나의 편이 되고 싶다면, 수탈을 수용하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체제는 국가안보와 무역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구현할 수 있다. … 미국의 방위 우산(defense umbrealla) 안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공정무역 우산(fair trade umbrella) 안에도 들어와야 한다.」 (미란 보고서, 23p.) 이렇듯 관세는 단지 경제정책의 기술적 도구가 아니다. 관세부과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현재 미국에게 관세는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다. 보고서는 무역·금융·안보를 통합한 ‘안보구역’을 구축을 제안한다. 이 안보구역을 구축하는 수단이 소위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다. 미국은 각국에 100년 만기 채권 구입[2] 등 조치를 제안할 것이며, 조치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는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미국이 제공하는 방위우산에서 배제하겠다는 압박이 따를 것이다. ‘안보구역 건설에는 돈이 필요하다. 100년 뒤에 돌려줄테니, 일단 돈을 내놓아라’, 그러나 각국은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제공하는 달러-금융 시스템과 안보체제에 편입하기 위한 정당한 대가일 뿐이다. 현 미국의 정책이 보고서의 청사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나, 안보와 경제를 직결시키며 고율관세, 통상압박, 조공과도 다르지 않은 투자 강요에 나선 미국 행보의 본질은 보고서에 담긴 구상과 같다. 미국은 1971년 달러 금태환 중지, 1985년 플라자합의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위기에 대한 폭력적 해결에 나섰다. 미국은 사적 이익을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하나, 그 명분은 트럼프의 그린란드·캐나다·파나마운하 편입 압박만큼이나 허약하다. 폭력적 질서재편에 나선 미국, 그 배경에 미국의 쇠퇴가 있다. 미국의 지위는 예전 같지 않다. 2차대전 직후 세계 GDP의 50%에 달하던 미국 GDP 규모는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 35%로 줄었고, 이제는 세계 GDP의 24-25% 가량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부상했다. 최근 중국의 경제위기로 미·중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으나, 이는 상당 부분 착시다. 첫째,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중국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기준으로 본 미국 경제 규모는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중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된다. 둘째, 최근 3년 사이 위안화 가치는 달러보다 15%가량 하락했다. 이에 따라 같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달러 기준으로 본 중국 산출량은 15% 과소평가 된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의 명목 GDP는 28조 달러, 중국은 18조 달러이나,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서는 이미 11년 전인 2014년 중국경제가 미국경제를 앞질렀다. 3) 달러체제의 균열, 종이금 대신 진짜 금을 쌓는 제국주의 열강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전 세계를 위해 손해를 감수해 온 것처럼 묘사하나,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는 미국의 손해가 아니라 기축통화국의 터무니 없는 특권을 여실히 드러냈을뿐이다. 첫째,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국가 채무가 쌓여도, 달러 가치는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유지되어 왔다. 중국을 비롯한 대미 무역흑자국들은 확보한 달러를 미국 국채와 주식을 비롯한 달러표시 자산에 투자했고, 이를 통해 무역적자로 빠져나간 달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즉, 미국은 기축통화라는 무기로 세계 각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실물가치를 자국으로 흡수하는 한편, 자국 자산시장을 지탱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일례로, 2024년 말 기준 한국은행 총자산 약 596조원 중 외화증권이 401조원이며, 이 중 태반이 미국채다. 즉, 무역흑자를 통해 들어온 달러화가 고스란히 미국으로 다시 유입되는 상황을 한국은행 대차대조표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주식 등 가공자본 축적은 생산을 통한 이윤축적이 아니라 생산될 이윤에 대한 ‘청구권’의 축적, 즉 기생적이고 투기적인 채권자계급의 성장을 뜻한다. 맑스의 설명처럼, “이윤율이 저하하면 … 다른 한편에서는 … 투기와 투기의 일반적 촉진이 나타난다.”[3] 물론, 미국은 해외 각국이 보유한 달러표시 자산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하나, 그간 미국의 해외 지급액은 미국 자본의 해외투자 수입보다 적었다. 문제는 연금술과도 같은 이 구조가 균열해왔고, 최근 들어 더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3분기, 미국이 외국에 지급한 투자수익은 미국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투자수익을 초과했다. 이는 미국이 21세기에 들어 최초로 기록한 본원소득수지(Balance on primary income) 적자다. 미국의 지대수취체제, 금융수탈체제의 균열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본원소득수지 추이 (본원소득 = 미국의 해외투자 수익과 노동소득 – 미국이 해외에 지급하는 투자수익과 노동소득) 금융팽창, 즉 거대한 가공자본(의제자본, ficticious capital) 축적으로 전 세계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를 미국으로 흡수해 패권을 유지하던 미국 자본주의가 난관에 봉착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해외투자로 벌어들이던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 상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기존보다 더 높아진 금리가 미국의 본원소득수지 적자의 한 요인이다. 즉, 현재 미국은 양적완화 저금리 국면 당시 해외투자자들에게 지급하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2025년 2분기 말 기준으로 미국 GDP의 118.8%에 달하는 막대한 국가부채에 더해, 고금리로 매년 지급해야하는 이자부담까지 급증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25년 7월 의회를 통과한 감세 및 지출 법안, 소위 ‘크고 아름다운 법안’으로 향후 10년 동안 약 3.4조 달러의 추가 재정적자가 더해질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재정적자는 GDP의 6% 이상을 유지할 것이며, 공공부채 대비 GDP 비율은 10년 이내에 128%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0년 그리스 국가부채위기 직전 수준과 유사하다.) 2024 회계년도 기준 미국이 지출하는 이자만 1조 1,330억 달러로 2023년 대비 29%나 증가했다. 부채에 대한 연이자가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4년이 최초다. 현재 미국이 부채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비용은 국방비, 메디케어(고령자 건강보험)보다 높다. 그렇다면 이자율을 낮추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현 상황이 중앙은행 정책금리 조정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단기 추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장기금리는 본질적으로 시장이 결정한다. 아래 30년 만기 미국채 수익률 추이에서 드러나듯, 미국 장기금리는 연준의 수차례 금리인하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채권이 이전처럼 인기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 채권에 대한 수요는 상당히 떨어져있고, 이에 따라 미국이 빚을 내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금리를 얹어주어야 한다. 30년 만기 미국국채 시장수익률 높은 장기금리의 배경에는 △인플레이션 기대 (명목금리 ≒ 실질금리 +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불안 △미국채에 대한 구조적 수요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미국채권 매도에 나섰고, 특히 2022년 러우전쟁 이후로 국채 매각 속도를 높여왔다.[4] 이와 함께 중국·러시아·터키·인도를 비롯한 다수 국가가 금 축적에 나서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물론, 개인들까지 너도나도 금 매입에 뛰어들며 금값이 치솟고 있다. (좌) 중국의 미국채 보유량 / (우) 금 가격 추이 치솟은 금값과 달러체제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금값 폭등은 달러 위기의 반영이자, 달러 위기를 가속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미국 주도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믿음, ‘종이금’(paper gold)으로 여겨졌던 달러가 지불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자, 진짜 화폐(眞幣), 즉 ‘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5] 맑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실적인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화폐는 유통수단, 즉, 상품교환의 오직 순간적인 매개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교환가치의 독립적 존재형태, 일반적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 메커니즘에 전반적 교란이 일어날 때, 그 교란의 원인이 무엇이든, 화폐는 계산화폐라는 순전힌 관념적인 모습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직접적으로 금속화폐로 변해버린다. 더 이상 보통의 상품은 화폐를 대신할 수 없다. … 사슴이 신선한 물을 갈망하듯 부르주아의 영혼은 유일한 부(富)인 화폐를 갈망한다.」[6] 2. 일대일로 2.0 -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을 시도하는 중국 1) 미국의 급소를 공략하며 활로를 찾는 중국 첫째, 중국은 희토류를 지렛대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초반 승기를 잡았다.[7] 중국은 기존 규제에 이어 2025년 4월 희토류 원광 · 산화물 · 금속 · 자석 완제품을 포함한 7개 희토류에 사용처 신고와 수출허가제를 적용하곘다고 나섰고, 중국 밖에서 만든 반도체·배터리·항공전자장비라 할지라도 중국산 희토류를 포함한다면 수출허가 대상으로 포함했다. 2025년 10월에는 규제를 더 강화해, 희토류뿐 아니라 리튬-이온 배터리소재, 항공·방산용 금속 등까지 통제 대상으로 포함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전 세계 공급망과 산업기반 전체를 겨냥한 바주카포 같은 조치”, 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의 말이다. 아이폰도, 테슬라 전기차도, F35전투기도 희토류 없이는 만들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의 급소를 찾았다. 2025년 10월 30일, APEC을 계기로 약 6년 4개월 만에 열린 부산 정상회담 결과는 중국의 당면 우위를 잘 드러낸다. 미국은 대(對)중국 관세를 10%를 인하하고, 규제 대상 1,300여개 중국기업의 자회사와 손자회사까지 총 2만개 이상 중국기업으로 규제를 확대하는 '50% 자회사 규칙' 적용을 1년 동안 중단했다. 자회사 규칙은 미국의 기술통제에 대한 중국의 우회를 원천차단하겠다는 시도였다.[8] 중국은 그 댓가로 중국은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통제를 1년 연기하고, 미국산 대두를 구입한다. 중국은 어차피 어디선가는 사야 하고, 기존에도 미국에서 구입하던 대두 수입을 약속했고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를 거둬들였다. 미국은 대만 문제와 ‘기술안보’ 등 핵심 쟁점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6년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있고, 이것은 다시 트럼프 정부의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서방이 희토류 추출·분리 역량을 키우고 결과를 내기까지는 5에서 7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중국은 미국의 보호주의와 공급망 봉쇄 압박에 대응해 소위 '홍색공급망'을 구축해왔다. 동남아 등지로 생산거점을 이전해 중국제품에 대한 고율관세를 피하고, 애플ᅠ등 대자본의 공급망 이전에 조응해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새로운 시장과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중국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과의 무역 확대, 투자 확대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셋째, 중국은 브릭스를 통해 미국에 맞설 우방을 규합하며, 브릭스를 G7에 대한 정치경제적 대항축으로 형성하고자 한다. 2024년에는 이집트·에디오피아·이란·아랍에미리트가, 2025년에는 인도네시아가 새롭게 가입해 현 브릭스 가입국은 모두 10개국으로 늘었다. 브릭스는 현재 전 세계 GDP의 약 37.3%를 차지한다. 2024년 카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브릭스 공동선언문에서 드러나듯, 브릭스는 미국과 달리 ‘예측 가능하며 포용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규정한다.[9] 「우리는 세계무역기구를 핵심으로 하는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고 포용적이며, 평등하고 차별적이지 않은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지지하며, 최빈개도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에 대해 특별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제공하는 것을 지지하며, 세계무역기구의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방적인 무역제한조치를 거부한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3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결과를 환영하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결정과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한다.」 중국은 브릭스를 축으로 위안화 국제화 역시 추진하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위안화 결제 비중은 달러화(49%), 유로화(21.74%) 파운드화(6.94%)에 이어 3.75%로 4위를 기록했다. 이미 중국은 자국 상품··서비스 무역액의 25% 이상을 위안화로 결제한다. 사우디와 위안화 대출협정을 맺고, 브라질과 교역 시 위안화-헤알화 거래에 합의하는 등,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맞선 중국 행보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시도와 직결되는 것이 앞서 설명한 중국의 급속한 금 축적이다. 기축통화로서의 위안화를 지향하는 중국은, ‘무엇으로 인민폐의 가치를 보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중국이 축적한 금은 그 중요한 보증이다. 중국의 공식 금 축적량은 2,300톤을 초과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실제 금 보유량이 공식 발표치의 두 배를 넘는 5,500톤에 달한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2025년 1월 31일,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리는 이들 국가가 새로운 브릭스 통화를 만들거나, 강력한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100% 관세에 직면할 것이다”, “브락스가 국제무역이건, 또는 그 어떤 영역이건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런 시도를 하는 국가가 있다면, 관세와 마주할 것이며 미국과는 작별할 것이다.” 트럼프가 브릭스의 탈달러 시도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미국의 통화패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 중국이 보여주는 자신감과 외교적 공세에도, 중국 경제 내부 조건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중국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 가치사슬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했다. 거대한 인구에 기반한 안정적 저임금 노동력 공급과 이를 통한 제조업 중심 자본축적, 거대한 과잉생산을 흡수할 자유무역체제는 중국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러나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과 보호주의 심화는 중국 자본주의의 근간을 침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 자본주의는 미국 주도 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일부이자 수혜자였으며, ‘세계의 공장’이라는 위상은 중국 내부의 저임금 생산체제와 자유무역체제가 맞물릴 때만 유지될 수 있었다.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이미 2008년 이후 심화해왔다. 무역장벽 확대와 세계 수요 둔화 속에서, 중국의 과잉자본의 배출창구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은 대규모 부동산·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왔고, 그 결과 부동산 부문은 GDP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대해졌고, 폭증한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6년 11% 미만에서 현재 60% 이상에 달할 정도로 폭증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중국은 거대한 잉여노동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1,100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공식 청년실업률만 20%에 달하는 구직난 속에 상당수 청년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구직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유행하는 ‘탕핑(躺平,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기)’은 단순한 밈이 아니라 중국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체념과 분노를 표현하는 사회적 징후다. 이런 흐름은 중국공산당의 통치 위기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대외 팽창은 ‘상승하는 강대국의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로부터 주어진 것에 가깝다.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균열 속에서 그 질서의 일부인 중국은 BRICS 확장, 글로벌사우스의 전략적 연대로 새로운 무역대상국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과잉생산의 흡수처를 확보하고자 한다. 또한, 각국과의 경제적 연계를 정치적 영향력 투사와 연계하며 미국에 대응하는 세력권을 구축하고자 한다. 금융정보업체 S&P글로벌 추산에 따르면, 중국 수출에서 글로벌사우스 비중은 2015년 35%에서 2024년에는 44%까지 올라갔다. 같은 기간 미국 비중은 18%에서 15%로 감소했고, 서유럽은 14% 수준을 유지했다. 중국의 무역흑자 가운데 글로벌사우스가 차지하는 몫은 54%에 달하며, 이는 미국(36%)과 유럽(23%)을 더한 수준이다. 3) 미국의 폭주가 중국의 활로를 연다 중국을 상대적으로 ‘합리적 존재’로 보이게 만드는 존재는 미국이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고율관세, 노골적 수탈, 대외원조 축소, 특유의 즉흥적 외교 등으로 우방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현 상황을 기회로, 중국은 내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안으로 제시할 공간을 넓히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UN의 존재 이유를 문제삼으며 다수의 다자기구에서 철수하고 있음에 반해, 중국은 2025년 9월 1일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GGI) 구상을 발표하며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등 자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를 확대하고 있다.[10] 중국의 주요 행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대일로 2.0’의 부상이다. 정체하는 것으로 보였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 프로젝트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중국의 일대일로 관련 투자와 건설 계약 규모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했고, 2025년 상반기에는 사업 규모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 역대 최고치에 도달했다. 특히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중동·걸프 지역, 남미가 신규 확장 축으로 떠올랐다. 과거 일대일로의 중심이 철도·항만·도로·발전소 등 토목형 인프라 구축이었다면, 현재의 일대일로는 재생에너지·배터리·디지털 통신망·스마트시티 플랫폼으로 확장되어 진화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제조업의 과잉생산을 흡수할 해외시장의 구축 과정이자,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만 문제를 두고 중국을 지지하는 70여개국 대부분은 일대일로 참여국이다. 진화한 일대일로와 함께, 중국은 주로 서방이 우위를 점해온 의제에서도 개입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 중요한 행보 중 하나가 재생에너지 선두국가로서의 부상이다. 트럼프가 기후위기를 “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규정하며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중심 정책을 강화할 때, 중국은 태양광·배터리·풍력터빈·스마트 전력망 등에서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며 산업적 우위를 도덕적·외교적 자산으로까지 전환하고 있다.[11] 중국에 따르면, 「일대일로 공동건설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진정한 다자주의를 견지하며, '공동논의 · 공동건설 · 공동공유'라는 글로벌 거버넌스 관점을 실천하고, 대립이 아니라 대화를 선택하며, 장벽을 쌓지 않고 장벽을 허물며, 분리나 탈동조화가 아니라 융합을 선택하고, 배제가 아닌 포용을 추구함으로써 국가 간 상호작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둘째, 미국의 무역전쟁으로 타격 받은 저개발국을 달래며 세력권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잘 드러내는 행보가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다. 미국은 아프리카 20개국을 고율관세 대상으로 지정했으나, 중국은 2025년 6월 아프리카 53개국에 대한 전면 무관세 정책을 발표하며 이전 33개국에서 모든 아프리카 국가로 무관세 정책을 확대했다. 이미 15년째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 지위를 유지하는 중국의 아프리카 무역 지배력은 압도적이다. 미국보다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더 큰 아프리카 국가는 2003년 18개국에 불과했으나, 2023년에는 54개국 중 52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이 교역한다. 이는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 확대 조치인 동시에, 미국산 농산물 등에 대한 대체경로 확보 조치이기도 하다. 셋째, 러시아·북한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음은 물론, 인도 등 상대적으로 미국과 가까웠던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는 그간 중국 견제라는 목표 아래 협력해왔으나, 트럼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관세율 50%라는 징벌적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직후인 8월 30일, 모디 총리는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미국 조치에 따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시진핑과 모디의 회담 결과에 따르면, 양측은 양자관계에서 일부 갈등 요소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중국-인도 관계는 '제3국의 영향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4) 브릭스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미국과 중국의 투쟁은 분명 현 국제정세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현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 각국을 양 진영으로 편재하는 ‘신냉전’이라기보다, 1차대전 이전 난마(亂麻)처럼 얽힌 열강의 각축체제에 가깝다. 미국과 중국 어느 국가도 대중의 이념적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두 국가 모두 자국의 질서를 보편규범으로 확장할 정당성이나, 이념적 흡입력이 없다. 확고한 헤게모니 국가의 부재 속에, 국가 간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으며 각국은 단기적 이익에 따라 정렬과 이탈을 반복하고 있다. 브릭스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브릭스는 반미(反美)라는 대강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을 뿐, 통일된 경제·안보 블록으로 기능하기에는 너무도 균열해 있다. 심지어 ‘반미’도 확실하지 않다. 중국·러시아·이란과 같은 미국의 제재 대상국이 있는 반면, 사우디와 UAE처럼 미국과 군사적으로 깊게 연결된 국가들도 있다. 인도는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쿼드(QUAD) 회원국이기도 하다. 그 결과, 브릭스는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질적 행동 능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즉, 브릭스의 확장은 미국의 수탈적 행보에 대한 반작용이 낳은 현상일 뿐 브릭스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모태가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브릭스 소속 국가가 늘어날수록, 브릭스 내부의 균열 역시 커질 것이다. 2025년 4월 브라질 리우 외교장관회의에서 브릭스는 창설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 채택에 실패했다. 쟁점은 유엔 안보리 개혁 문제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상임이사국 지위를 요구하자, 남아공과 지역적 경쟁관계에 있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이를 반대했다. 이는 2023년 브릭스 확대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중대한 내부 갈등으로, 신규 아프리카 회원국들이 기존 회원국에 대한 우대 조치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사례다. 2025년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에도 브릭스는 미국 또는 이스라엘을 명시적으로 규탄하지 못한 채, ‘확전에 반대한다’는 수준의 모호한 입장만을 내놓았다. 브릭스가 위기 상황에서 단일한 대오로 기능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브릭스의 중심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의 동맹 역시, 당면 이해관계 속에서 러시아가 중국의 하위파트너로 역할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기인한다. 관련,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있었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10년 넘게 추진해온 ‘상하이협력기구 개발은행’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중국이 10년 동안 이를 추진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간 러시아의 반대였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개발 자금을 자신이 통제하는 체계를 통해 조달하길 원했으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하며 러시아는 경제·군사적으로 중국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지금, 중국의 제안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중-러의 동맹 역시 미국에 대한 반작용에 근거할 뿐, 균열적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브릭스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공간을 확보하며 당면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느슨하고 과도적인 조합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제약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브릭스는 미국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탱되고 있으며, 브릭스의 존재 그 자체가 미국 중심 세계질서가 더 이상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체제가 아님을 증명한다. 세계는 조각조각 균열하고 있다. 3. 헤게모니 국가의 부재, 무장하는 세계 1) 전쟁위기 확대, 군비경쟁 격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비경쟁을 본격 촉발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국방비 지출 총액은 약 2조 7,180억 달러로, 2023년 대비 9.4% 증가했다. 이는 연구소가 보고서를 내기 시작한 1988년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율이다. 불과 몇 년전까지, 나토 국방비 가이드라인은 각국 GDP의 2%였다. 기준이 만들어진 2014년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한 해이고, 그해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나토국가는 3개에 불과했다. 그리고 2025년 6월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는 GDP 대비 5% 국방비 지출을 결의했다. 막대한 사회적 자원이 군비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교육, 의료, 복지예산 감축은 당연한 일이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6년 미국과 맺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12]가 최근 훨씬 구체적으로, 또한 공격적인 개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6년 합의가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으로 투입할 수 있다’고 확인하는 개념적 수준이었다면, 2025년의 전략적 유연성은 실제 작전·전력·외교구조를 변화시키는 실행 패러다임으로 진화했다. 2025년 11월 17일,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동아시아 지도를 거꾸로 들어보이며 “한국은 러시아 북부함대, 중국 북부전구, 북한군 모두에게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대러 전초기지로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언급은 미국이 한국을 전쟁기지로 규정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유사시 대만해협 군사개입’을 언급한 다카이치 사나에의 발언이 촉발한 중국과 일본의 갈등 격화가 드러내듯, 북중러와 한미일의 투쟁은 날이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전쟁위기는 남미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2025년 트럼프는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를 비롯한 미 해군 함대를 카리브해로 파견하며 베네수엘라를 압박했는데, 이는 1989년 파나마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중남미 개입이다. 미군은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남미 연안에서 공습을 단행해 9월 이후 최소 76명을 사살했고 , 베네수엘라 해역 인근에 핵잠수함까지 배치하며 침공에 준하는 군사개입을 진행했다. 2) 팔레스타인 학살, 그리고 학살에 맞선 투쟁 확대 헤게모니의 침식 속에서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는 전쟁과 학살, 그 한 축에 3년째 지속되는 팔레스타인 학살이 있다. 서방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대량학살에 그치지 않고 레바논, 이란을 공격했고, 최근에는 시리아를 공습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 학살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좁은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중동 전역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 패권 유지와 직결되어 있다. 미국은 학살이 개시된 2023년 10월 직후 지중해와 홍해에 항모전단을 급파했고, 영국과 함께 예멘 후티세력을 공격했다. 프랑스, 독일 등 나토 소속 주요 열강 역시 해군 투입, 방공방 구축, 군수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중동 군사작전에 동참하고 있다. 이는 브릭스의 중동-북아프리카 확장과 맞물려 열강투쟁을 심화하고 있다. (2024-2025년 사우디·UAE·이란·이집트·에티오피아 등이 브릭스에 새롭게 가입했다.) 당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으나, 심지어 팔레스타인의 브릭스 가입 관련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상황 자체가 분명 중동지역 패권을 둘러싼 열강투쟁이 격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 모니터’에 실린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유럽 국가들의 공허한 제스처 너머에서, 우리는 종종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승리로 보려는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결과 없는 인정은 공허한 의식일 뿐이다.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과 무기거래를 지속하고, 그들의 스파이웨어를 구매하며, 외교적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한다면, 그러한 제스처는 공범행위가 된다. 제재 없는 인정은 억압자를 보상하고 피억압자를 버린다. 브릭스는 훨씬 더 중대한 것을 제공한다: 구조적 지원이다. 신개발은행(NDB) 접근권, 남남(South-South) 투자, 대안 무역체제, 그리고 무엇보다 - 세계최대 경제권 일부로부터의 정치적 연대. 그것은 정중한 박수와 실질적 동맹의 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팔레스타인의 브릭스 참여는 유럽의 위선과 전략적 결별을 의미한다: 그것은 상징적 인정이 아니라 세계 정치경제 형성에 실질적 참여를 요구한다.」 물론 브릭스는 중동 민중의 해방을 위한 대안이 아니다. 다만 이런 상황은 제국주의 학살 뒤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 또한 그 학살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2025년 10월 기준, 가자지구 사망자는 6만 7천 명을 넘었고 부상자는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학살이 시작된 2023년 10월 이후 숱한 UN결의안이 학살중단을 권고하고, 2025년 9월 23일까지 158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지금에도 학살은 지속되고 있다. 2025년 10월 발효된 ‘휴전’ 이후에도 최소 312명이 죽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학살을 지원하는 제국주의 국가들마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 흐름은 학살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다. 투쟁이 여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는 역사적 최저치로 떨어졌다. 2025년 6월 보도에 따르면, 서유럽 6개국(독일·프랑스·덴마크·이탈리아·스페인·영국) 응답자 중 63-70%가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0월 발표에 따르면 응답자 59%가 이스라엘 정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과도하다’는 응답 역시 2023년 27%, 2024년 31%, 2025년 39%로 상승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노동자계급의 팔레스타인 연대파업이 정세를 돌파할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2025년 9월 22일, 이탈리아 제노바 항만노동자들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군수 물자를 실은 선박의 작업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며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을 전개했다. 항만뿐 아니라 철도, 교육, 운수 노동자들까지 파업에 동참했고, 65개 도시에서 50만 명이 가담했다. 이 투쟁은 곧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9월 27일, 베를린에서 10만 명이 참여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 금속노조(CGT Metal Madrid)가 ‘이스라엘이 수무드 선단을 공격하는 순간 즉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며 본격적인 연대투쟁이 시작됐다. 10월 2일부터 5일까지 마드리드·바르셀로나·발렌시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연인원 2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0월 15일에는 스페인의 양대노총이 조별 2시간 부분파업을 조직했고, 보다 왼쪽의 노동총연맹(CGT)는 24시간 총파업을 선언하며 보다 강경한 행동을 촉구했다. 학생들 역시 80%가 수업을 거부했다. 이 땅에서도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노동자 국제주의 투쟁을 확장해야 한다. 4. 한국 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 운동 1) 한미관세협정, 국가를 등에 업고 세계적 독점자본으로의 부상을 꾀하는 한국 자본[13] 10월 29일 한미 관세협정이 타결되었다. 한국은 매년 현금 200억 달러씩 10년에 걸쳐 총 2,000억 달러를 '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되는 사업으로 미국에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한국 조선업 자본의 미국 투자에 대한 정부 보증과 대출로 이루어지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 투자다. 그 댓가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유지하고, 자동차에 부과되던 25% 관세율을 15%로 낮춘다. 2천억 달러 투자에 대한 배분비율은 원리금 회수 전까지는 미국과 한국 5:5다. 이에 따라 2천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한 한국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천억 달러 이상의 이윤이 남아야 한다. 연간 이익을 10%로 잡아도 원금 회수에는 20년이 걸리며,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모두 한국정부 손해가 될 뿐이다. 협정 타결 직후 백악관 발표문에는 한국정부가 발표하지 않은 투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연간 330만톤의 미국산 LNG를 수입한다. 대한항공은 362억 달러에 달하는 항공기 103대와 137억 달러에 달하는 엔진을 미국기업에게 구매한다. 한국 공군은 23억 달러 규모 조기경보기 개발사업 파트너로 미국기업을 선정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국기업과 함께 미국 내 희토류 분리정제 및 자석 생산단지를 개발한다. LS그룹은 2030년까지 30억 달러를 미국 전력망 인프라에 투자한다, 등등. 트럼프 정부는 이번 거래가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더 공고히 하고, 기술혁신에서의 미국 우위를 강화하며, 미국 조선산업 생산력 확대 등을 통해ᅠ미국의 지도력을 다시 세우는 계기였다고 선전한다. 이것은 약탈이다. 그러나 미국이 빼앗은 것은 한국 노동자 민중의 피땀일뿐, 한국 자본의 이윤이 아니다. 한국정부는 기업에 달러를 빌려주고, 삼성·현대차·한화·포스코 등 기업은 정부로부터 조달한 달러를 미국 제조업과 에너지 인프라 확대를 위해 투자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가 성공하면 한 단계 도약할 계기를 확보하는 셈이고, 실패해도 정부가 이를 보전하니 손해 볼 것이 없다. 즉, 한국 자본은 국가의 비호 아래 안전한 이윤축적 기회를 확보했다. “미국은 프로젝트에 상품·서비스를 제공할 벤더 및 공급업체 선정시 한국 업체를 우선하여야 하며, 개별 프로젝트별로 가능한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정하여야 한다. 또한, 투자 이행 과정에서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 협의위원회 등을 통해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2025.11.14. 한미관세협정 팩트시트) “우리 기업의 대미 진출 확대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히,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연방토지 임대, 용수·전력 공급, 구매계약 주선 및 규제절차 신속 진행 등 미측의 유·무형적인 지원을 확보하였으며, 미국이 최대한 한국업체를 선정하고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프로젝트 매니저를 채용하도록 하여 우리 기업의 미국 사업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 조선협력(MASGA)도 우리 기업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2025.11.14. 팩트시트 관련 산자부 보도자료) 이것이 한국 자본가단체 모두가 관세협정 타결을 환영하는 이유다. "한미 양국이 상호 이익과 공동 번영이라는 대원칙을 공유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한국경제인협회), "양국간 교역과 투자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첨단분야에서 상호 국익을 증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경총), "22,000여 개 대미 수출 중소기업들이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대미 투자와 수출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중소기업협회), "대미 무역, 투자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대한상의), "우리 기업들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새로운 투자·수출 전략을 모색할 기반이 마련됐다"(한국무역협회). ᅠ 2,000억불 투자 자금조달 및 현금흐름 구조도 (산자부 2025.11.14.). ‘한미전략투자기금’, 즉 한국 정부가 마련한 달러는 각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한국 주요 기업은 각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임한다.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의 구체적 이윤배분 비율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환영 일색인 자본가단체들의 입장에서 드러나는바, 계약은 자본 측에 유리하게 설계되었을 공산이 매우 크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AI 수출, AI 표준 등에 관한 '기술번영협정'을 체결했으며, 최근 발표된 엔비디아의 한국 기업들에 대한 최신 GPU 대량공급 역시 이번 한미 협정의 결과다. 이번 관세협정은 한국 지배계급과 미국 지배계급의 이해타산 일치로 맺어진 거래이자, 한국 자본의 도약을 위한 국가적 사업이다. 매해 노동자 민중을 위해 쓰일 수 있는 30조 원가량의 재정이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이전되며, 그 과정에서 한국 대자본은 이윤 축적을 확대한다. 한국정부는 재정 부담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할 것이며, 이는 복지축소와 공공요금 인상, 공공부문 민영화 확대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 자본의 미국 생산 확대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실업 확대, 구조조정의 고통이 노동자 민중을 덮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 격화하는 동북아 전쟁위기 심화, 전쟁산업 확대로 이윤을 쌓는 한국 자본 문제는 노동자 민중의 피땀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관세협정뿐만이 아니다. 한국정부는 국방비를 현 GDP의 2.8% 수준에서 3.5%로 올리겠다고 약속했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며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미국 승인을 확보했다. 이는 북중러 블록에 맞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한국정부 자신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편입이자, 한미일 동맹 강화 속에서 한국자본의 세계화를 가속하겠다는 야망의 표출일 뿐이다. 한국의 군사적 팽창은 튼튼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방위산업 수출로도 드러나고 있음은 잘 알려져있다. 2020년까지 한국 방위산업 수출액은 3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2021년 72억 5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급성장했고,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억 달러, 2024년 95억를 기록하며 이전보다 훨씬 확장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전통적 군수산업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한미 기술번영협정과 GPU 대량 도입의 의미 역시 한국 경제 군사부문 팽창과 연동되어 있다. 현 정세에서 GPU는 전략자산이다. 2021년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2024년 삼성그룹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 등 로봇과 피지컬AI 투자를 확대하는 대자본의 행보는 분명 전투로봇과 자율살상무기체계(Lethal Autonomous Weapons Systems, LAWS) 개발 등 전쟁산업 고도화와 연관이 있다. 이런 조건에서 GPU 대량 도입은 대자본이 주도하는 전쟁산업 고도화의 중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렇듯 한국 자본은 전쟁위기 확대와 군비경쟁 격화를 중요한 이윤축적 계기로 삼고 있으며, 이번 관세협정 역시 이를 잘 드러낸다. [한반도 및 지역 사안에 대한 공조] “양 정상은 항행·상공비행의 자유와 여타 합법적인 해양 이용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모든 국가의 해양 권익 주장은 국제해양법과 합치해야 함을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양 정상은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독려하였으며,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였다.”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 현상변경 반대’ -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격화하는 동북아 전쟁위기에 대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라는 흐름은 이번 협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미동맹 현대화] “한미 양국은 북한을 포함하여,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재래식 억제 태세를 강화할 것이다. 양측은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를 확인한다. 양측은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고, 이행 진전 상황을 각측 지도부에 보고할 것이다.”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 그 핵심은 물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합의문은 다음과 같다. "반기문 장관과 라이스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정부의 양해사항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였다.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동북아 전쟁위기가 미국과 중국의 자유무역 호시절인 2006년보다 훨씬 격화된 지금,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당시 조항은 그야말로 공허하다. 이미 주한미군은 중러를 견제하는 기동군이며, 한반도는 중국과 러시아 코앞에서 미군을 품은 병참기지다. 무장력 강화를 위해 한국군에게는 핵추진 잠수함 보유 승인이라는 약속이 주어졌다. 또한, 격화하는 미중투쟁 속에서 중국의 1/200에 지나지 않는 미국 조선업의 건조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 조선소에서는 미국 군함이 건조될 공산이 높다. 미군이 계약한 선박의 해외 건조를 금지한 현행 존스법을 뜯어고치건, ‘비상 상황’을 명분으로 존스법 적용예외를 추진하건, 합작회사 방식으로 법을 우회하건 말이다. [해양 및 원자력 분야 파트너십 발전] “한미 양국은 조선 분야 실무협의체를 통하여 유지·정비·보수, 인력 양성, 조선소 현대화, 공급망 회복력을 포함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전시키기로 하였다.” “이러한 구상들은 한국 내에서의 잠재적 미국 선박 건조를 포함하여, 최대한 신속하게 미국 상업용 선박과 전투수행이 가능한 미군 전투함의 수를 증가시킬 것이다.”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하여,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 3) 바로 지금 이 땅에서의 국제주의 계급투쟁으로 심화하는 열강투쟁은 각급 진영론으로 이어진다. 한국 운동 진영에서도 중국-브릭스 대안론, 미국 주도 세계질서 인정론, 혹은 ‘규칙기반 세계질서’ 수호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현 정세는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쟁투이며, 그 대가를 치르는 존재는 노동자계급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은 격화하는 제국주의 패권대결과 그 위험을 올곧게 해설하고, 반제반전 국제주의 연대투쟁을 전체 노동운동의 과제로 제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팔레스타인 연대투쟁 등 국제주의 실천에 앞장서는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중동전쟁 위기, 대만해협 위기, 각국 군비경쟁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쟁취투쟁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과 현장에서 반제반전 연대투쟁을 자기 과제로 여기는 노동자와 노동자조직을 확대하고, 더 넓은 민중조직과 함께 반제반전 정치파업을 조직해가야 한다. 이런 목표 아래, 당면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관세전쟁 이후 횡행하는 산업주권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이재명 정부와 자본에 대한 독립적 태도에 기반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해야한다. 관세전쟁 이후 확산하는 산업주권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자본의 이익이 곧 노동자의 이익이라고 호도한다. 그러나 이번 관세협정 결과가 드러내듯, 국가를 등에 업고 세계적 독점자본으로 부상을 시도하는 한국 자본은 관세협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다. 국가와 자본에 맞선 독립적 운동을 확대하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의 환성을 거부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하자. 둘째, 급속히 팽창하는 한국 전쟁산업 양상과 실체를 드러내며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확대하자. 전쟁산업 확대와 군비증강은 필연적으로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압박, 복지삭감, 기후위기 확대로 이어지며 그야말로 극소수 일부 노동자들이 그 수혜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을 △생존권 쟁취투쟁 △교육·의료·주거 등 복지삭감 반대투쟁 △기후정의 투쟁과 연동해 확대하자. 현 정세 속에서 노동자계급 국제주의는 ‘전쟁을 위한 생산을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으로 전환하라’는 요구와 함께 확대되어야 한다. 셋째, 이주노동자 연대를 확대하자. 현 정세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라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 탄압을 강화한다. 자본주의는 왜 ‘일은 하지만 사회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을 만들어내는가? 왜 국가와 자본은 이주노동자 혐오를 부추기는가? 이주노동자가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될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인상을 요구할 것이며, 같은 사람으로서 한국노동자와 동일한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저임금-무권리 노동력에 대한 자유로운 착취’라는 자본의 이주노동자 도입 목적 자체와 충돌한다. 즉, 정주노동자가 이주노동자들을 일자리 경쟁자로 놓으며, 이주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를 방치하는 한 자본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투쟁은 임금 하한선을 높일 것이며, 이에 따라 평균임금을 높일 것이고, 이는 저임금 정주노동자의 임금투쟁 확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자본은 이주노동자의 단결을 봉쇄하고자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철저한 탄압으로 일관하며, 다양한 민족국가의 노동자들을 유입시키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극심한 착취와 수탈에 따라 저출생이 장기화했고,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 증가는 필연이다.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연대는 위기로 치닫으며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는 자본주의에 노동자의 단결로 맞서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넷째, 의식적 노동운동, 정치적 노동운동을 확대하자. 노동운동이 단지 현장의 경제적 요구를 넘어, 사회 전체의 운영 방향에 대한 의식적 투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열강투쟁과 함께 확산하는 군사경제와 민족주의를 국가적 생존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노동자계급의 희생을 다시 강요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 노동운동 일각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2025년 3월 26일,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지지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노동자계급 공동체를 황폐화한 자유무역 재앙을 끝내고자 나선 트럼프 행정부에 갈채를 보냅니다”(숀 페인 UAW 위원장). UAW는 해당 성명에서 △미국 내 생산 확대 △저임금 국가로의 일자리 이전 금지 △미국산 부품 사용 확대 등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반동적인 입장이다. UAW와 숀 페인 논리대로라면, 미국 노동자들과 한국 노동자들은 트럼프 정부와 세계 자본가들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할 동지이기는커녕, 철천지원수일 수밖에 없다. 당면 경제적 요구를 넘어, 산업부문과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넘어,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목적의식적 정치투쟁을 형성하자. [각주] .footnote-ref, .footnote-target { scroll-margin-top: 200px; color: #E60012; text-decoration: none; } .footnote-ref:hover, .footnote-target: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1] 관세에 따르는 수입물가 상승의 경우, 무역 상대국의 환율 평가절하가 미국의 수입물가 상승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2] 미란 보고서는 각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채권’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보고서 자체에 100년 만기 채권이 ‘무이자’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세간은 해당 채권이 무이자일 가능성까지 내다본다. [3] 맑스, 『자본론』 3권, 3편 15장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4] 2022년 1월에서 2024년 12월 사이 중국의 공식 미국채 보유액은 27% 넘게 감소해 2015∼2022년 감소율 17%를 크게 뛰어넘었다. 미국의 러시아 해외자산 동결을 목격한 이후, 중국의 미국채 매각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이다. 어느새 중국의 미국채 보유량은 영국보다도 낮아졌다. [5] 금은 상품의 가치를 ‘질적으로 같으며 양적으로 비교가능한 크기’로 표현하는 일반적 척도로 기능한다. [6] 맑스, 『자본론』 1권, 1편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맑스는 『자본론』 3권, 5편 33장 「신용제도 아래의 유통수단」에서도 마찬가지로 위기 상황에서는 “신용제도(credit system)가 갑자기 화폐제도(monetary system)로 전환”한다고 논한다. 여기서 ‘화폐’란 국가권력이 강제통용하는 불환지폐가 아니라 금이 뒷받침하는 화폐,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상품화폐를 뜻한다. [7] 미국과의 무역전쟁 관련 희토류 통제는 바이든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2023년 8월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허가제를 도입했고, 2024년 12월에는 희토류 가공기술 및 자석 제조기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8] 과거에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개별 기업이나 연구기관만 규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고자 자회사를 설립하면, 미국정부가 이를 제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기술과 부품조달이 가능했다. “A new export rule escalates US-China tensions”, PIIE, 2025.10.27. [9] 미국 주도 관세전쟁 속에서, 중국은 브릭스 국가들은 물론 남미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나아가 미국의 전통적 우방들에도 손짓한다. 중국은 자유무역을 역설하며 동맹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당장 2025년 3월 30일 한·중·일 경제통상장관들이 5년 만에 3자 회담을 열어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4월 9일에는ᅠ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30개 회원국이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규탄했다. [10] 중국에 따르면, GGI는 다섯 가지 핵심 원칙에 기반한다. △주권 평등 △국제법 준수 △다자주의 실천 △사람 중심 접근방식 △실질적 행동 [11] 물론, 중국의 실제 의도가 기후위기 대응 자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일대일로 에너지 투자가 보다 ‘녹색화’ 되고 있지만, 여전히 화석연료 투자가 지배적이다.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일대일로 재생에너지 투자는 95억 달러에서 118억 달러, 그리고 2025년 상반기 94억 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석유·가스 투자는 157억 달러에서 243억 달러, 그리고 440억 달러로 증가했다. 현 행보는 CATL, 화웨이, 롱기 같은 민간기업이 아프리카·동남아·남미에서 배터리공장, 데이터센터, 광산 개발을 주도하고 국유기업은 여전히 정유시설과 파이프라인, 거대 광산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형태로 파악된다. [12] “반기문 장관과 라이스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정부의 양해사항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였다.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13] 아래 단락은 한미관세협정에 대한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의 성명 “미국의 약탈, 필요한 것은 산업주권 수호투쟁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국제연대다”를 토대로 보완하였다. -
[발언] 롯데백화점은 노조와 해고자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 노조 조끼와 몸자보는 혐오물품이 아니다![편집자주] “노조 조끼와 몸자보는 혐오물품이 아니다! 롯데백화점은 노조와 해고자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 현대차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 동지들의 요구를 담은 몸자보를 입고 롯데백화점 푸드코트를 이용하려 한 연대 동지와 노조 조끼를 입은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에게 보안요원이 몸자보 탈의를 요구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항의 동영상이 퍼지면서 공분을 샀는데요, 12일에는 롯데백화점의 노조혐오에 대한 항의행동도 진행됐습니다. 현장에서 발언한 스테끼 동지의 발언문을 전합니다. 오늘 저희는 몸자보와 노조조끼를 입고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바로 그저께, 이 롯데백화점 푸드코트에 노조조끼를 입고 들어갔다는 이유로, 조끼를 벗으라고 한참동안이나 강요받는 노조혐오를 겪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거대자본 현대차에 의해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이수기업 해고자를 복직시키라는 문구가 적힌 몸자보를 ‘규정상‘이라는 이유로 탈의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도대체 몸자보 벗으라는 그 규정이란 게 뭡니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회사가 갑질을 하니 조직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노동조합은, 이렇게 밥 먹으려다 제대로 밥도 못 먹게 하는, 그런 룰을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사유지라서 노조조끼는 안 된다’는 그 안내지침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없어져야 할 지침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롯데백화점의 대처는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저희는 그 자리에서 사과받지도 못했는데요, 일이 커지니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에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이 것 또한 황당합니다. 그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이 받았던 심각한 인권 침해는 모르는 일입니까? 거통고에서는 롯데백화점이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롯데백화점 정말 야비한 것 같습니다. 사과를 하려면 숨어서 잘못한 티 안나게 하지 말고, 잘못한 것 똑바로 인정하는 게 사과 아닙니까? 동지들, 그게 맞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계속해서 노조조끼를 입고, 몸자보를 걸치고, 슬로건을 착용하고 롯데백화점, 롯데몰 이용할 겁니다. 조직적인 대응으로 바꿔나갈 것입니다. 이 사회에 만연한 노조혐오, 바꿔나가기 위해서 행동할 것입니다. 다시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복장을 검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 더 분명히 말해두겠습니다. 노조조끼 벗으라고 안내하신 그 안전요원 직원분, 그 사람에게만 유독 부득이하게 벌어지게 되는, 부당한 조치 취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노동자에 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롯데백화점 측에서 직원이 규정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런 메뉴얼은 없었고, 오로지 그 하청노동자의 민감한 판단으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라고 쉽게 꼬리 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동자의 식사할 권리, 그리고 노동자의 일할 권리 빼앗지 마십시오. 노조혐오 사라지는 그 날까지 함께 바꿔나가겠습니다. 투쟁! -
[우리의 투쟁] 쿠팡물류센터 노동자에 대한 강제연행 규탄한다!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2025년 12월 10일 오후 14시경, 쿠팡 대표이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진입한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조합원과 쿠팡대책위 활동가를 경찰이 강제로 연행해갔습니다. 쿠팡물류센터지회 정성용, 최효, 홍익표 동지가 경찰에 의해 연행됐고, 경찰은 이를 항의하고 말리던 쿠팡대책위 조혜연 동지까지, 총 4명을 연행해갔습니다. 쿠팡 노동자들이 쿠팡 본사에서 벌인 항의행동은 정당합니다. 조합원들의 요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쿠팡에서 반복되는 산재사망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 과로와 폭염, 혹한에 시달리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에 대한 휴게시간 보장과 냉난방대책을 마련할 것, 쿠팡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조활동 보장과 단체협약을 체결할 것, 최근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사과와 책임을 다할 것, 이 모두가 너무나 당연한 요구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이어졌습니까? 얼마나 많은 쿠팡노동자들이 새벽배송으로, 과로로, 온열질환으로 쓰러지고 죽어갔습니까. 퇴근 후 욕조에서 돌아가신 장덕준 님, ‘개처럼 뛰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배송하다가 돌아가신 정슬기님의 죽음 앞에 쿠팡물류센터지회와 쿠팡대책위는 벌써 5년 넘게 쿠팡에게, 더 이상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되는 일터를 만들자고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해왔습니다. 쿠팡은? 지금까지 교섭 시늉만 냈을 뿐입니다. 올해만 해도 물류센터에서 4명, 택배를 하다 4명의 쿠팡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이 쿠팡 사측에게 있기 때문에, 그리고 쿠팡노동자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당한 투쟁의 권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쿠팡은 노동조건을 개선해 사람이 죽어가는 걸 막는 대신, 유족에게 접근해 입막음을 하는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10일 한겨레·문화방송(MBC)·뉴스타파 공동취재팀이 입수한 쿠팡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가 만든 ‘위기관리 대응 지침’을 보면, “유족을 우리 편으로 만든다. (유족에게) 오염된 정보를 차단한다”라는 미션이 적혀있습니다. 쿠팡 유족이 노동조합과 만나지 못하도록, “유혹적인 선동이나 잘못된 정보가 많이 들어올 수 있는데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한다고 합니다. 즉 그 죽음이 사실 쿠팡의 혹독한 착취환경 때문이고, 사실은 죽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유족을 회유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실행해온 것입니다. 삼성 반도체에서 백혈병으로 노동자들이 죽어갈 때, 유족들을 입막음하려고 했던 삼성이 했던 짓과 판박이입니다. 경찰은 쿠팡 노동자들이 마치 범죄자라도 되는 것처럼 수갑을 뒤로 채워서 연행해갔습니다. 그런데 진짜 범죄자는 누군가요? 물류센터, 택배 노동자들이 초과노동과 위험한 일터 속에서 죽었습니다. 3천만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을 저지르고도, 이를 축소하려 했던 혐의로 지금 9일부터 쿠팡 본사에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노동구조를 그대로 두고 전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취급하는 쿠팡의 이런 범죄는 모른체 하면서, 단체협약을 몇 년째 체결을 안하니까, 그래서 지금도 쉬는시간도 없이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소식이 이어지니까, 겨우 의장 만나러 가겠다고 현수막 하나들고 있던 노동자에게 경찰은 잔혹한 탄압을 가했습니다. 자본의 이익과 권리만을 옹호하려 드는 경찰과 쿠팡의 합작이 오늘 벌어진 폭력적 연행 사태의 본질입니다. 쿠팡과 경찰은 쿠팡 노동자와 활동가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지금 당장 중단하십시오.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오늘 쿠팡 본사에서 한 항의행동은, 쿠팡에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죽지 않을 권리뿐만 아니라, 최근 발생한 초대형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3천만명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동지들이 함께 긴급 규탄집회를 열고, 싸운 덕분에 연행되었던 동지들은 4시간 뒤에 풀려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쿠팡은 이제 삼성 현대에 이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고용한 기업입니다. 쿠팡이 바뀌어야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이 바뀝니다. 반대로 쿠팡이 바뀌지 않으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바닥을 향한 경쟁을 지속해야할 것입니다. 쿠팡물류센터지회와 함께,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만들어가기 위한 쿠팡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합시다. 투쟁!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잇단 개인정보 유출 사태 … 상담원만 ‘욕받이’ 만들어놓고 숨은 원청1. 잇단 개인정보 유출 사태 … 상담원만 ‘욕받이’ 만들어놓고 숨은 원청 최근 SKT·쿠팡 등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잇따르면서 고객센터 상담원의 과중한 업무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상담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떠안는 ‘욕받이’로 전락했다는 자조도 나온다. 언론사 취재 결과, 지난달 30일 쿠팡은 각 하청업체에 ‘고객 응대 가이드’를 배포했다. 가이드는 상담원들이 확인된 사실 외엔 “현재 조사 진행 중에 있어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답하도록 안내했다. 보상 관련 언급을 피하고 상급자나 민원 부서로 문의를 넘기지 말라는 내용도 담겼다. 모호한 지침으로 상담원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엔 “가이드가 두루뭉술해서 고객 불만이 이어진다”, “지침에서 토씨 하나만 틀려도 ‘잘못된 응대 사례’라며 지적받는다”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한 콜센터 노동자는 “우리도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인데 ‘책임지라’는 항의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며 “민원이 거세지면서 절차를 무시하거나 억지 요구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041547011 2. 더 나은 일자리 찾아 지역 떠나는 비수도권 청년 여성 청년 여성들은 낮은 임금과 일자리 부족 속에서 생존을 위해 지역을 떠났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 여성의 소득 증가율이 남성보다 더 높았다. 지방에 남은 여성은 이동하더라도 오히려 하향소득층으로 떨어질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데이터처와 지방시대위원회가 3일 발표한 ‘청년 인구이동에 따른 소득변화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 여성의 평균소득은 전년보다 25.5% 상승했다. 수도권 이동 전 소득 하위 20%에 속했던 청년 여성 비율은 35.9%였으나, 이동 후에는 25.2%로 크게 감소했다. 수도권 이주는 여성에게 사회경제적 지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실질적인 탈출구로 작용한 것이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도권으로 이동할 때 여성의 임금 상승률이 남성보다 높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 내 여성 일자리가 열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여성의 임금 상승률은 상대적으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수준에서는 남성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이번 통계에서도 확인된 바, 여성 노동자들이 지역 노동시장에서 겪는 불균형은 여전히 심각하며, 지역을 떠나야만 열악한 일자리 여건도 그나마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0490 3. 일본 여자대학,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늘어 최근 마이니치신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여자대학교가 트랜스젠더 여성(지정성별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 학생의 입학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두 곳의 국공립여자대학교가 2020년부터 트랜스젠더 여성 학생의 입학을 포용했고, 조만간 일부 여자대학교가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앨 예정이다. 상당수 다른 여자대학교도 성소수자 입학 차별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차별을 유지하겠다는 학교도 있다. 17개 대학은 트랜스젠더 학생 포용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 이유는 성중립화장실 등 인프라 부족, 학생 지원 자격이 여성으로 규정된 법규 등을 들었다. 서일본여자대학교 관계자는 ‘과거에는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을 고려했지만, 지금까지 성소수자에 대한 법체계가 미흡하고 사회적 논의가 진전되지 않아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를 얻기까지 신중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단체 활동가인 미노리씨는 여자대학교에 트랜스젠더 학생 모집 요강이 공지되었을 때, ‘트랜스젠더 학생이 같은 환경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tokyoweekender.com/japan-life/news-and-opinion/womens-universities-japan-transgender-students/ 4. 여성의 출산 … 노동시장 배제 주된 계기로 작용해 출산이 여성노동자에게 노동시장 배제의 주요 계기로 작용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서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4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개최한 ‘2025 패널조사 학술대회’에서 관련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원은 “출산 후 남성은 노동시장 성과가 큰 변화를 겪지 않지만, 여성은 고용률·소득·근로시간 등 주요 지표에서 뚜렷한 감소가 지속된다”며 “특히 고용률과 소득은 출산 직후 급락한 뒤 10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출산 후에도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을수록 여성 출산 의향이 높아진다는 분석 결과도 제시됐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24년 국내 세대와 성별 예비 조사 자료 가운데 19∼44세 남녀 1,059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같이 발표했다. 해당 발표에서 여성은 출산 이후 노동 지속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할수록 출산 의향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특히 무자녀층과 중·저소득층 여성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 김 선임연구원은 “이러한 연구 결과는 출산 의향이 개인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출산 후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는가’라는 현실적 가능성과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참조 기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204010002252 5. 미국 법무부, 교도소 내 LGBTQ+ 수감자 보호 규정 폐지 … 인권단체들 즉각 반발 미국 법무부는 2025년 12월 4일(현지시간) 내부 지침을 통해, 연방 및 주(州) 교도소와 구치소, 이민 구금센터를 포함한 모든 구금시설에 대해 기존의 성소수자(LGBTQ+) 수감자 보호 규정을 폐지하라고 명령했다. 이 지침은 2003년 제정된 PREA의 일부 조항 — 성폭력 예방을 위해 수감자 위험도 평가, 차별적 검색 금지, 별도 샤워 및 의복교체 보장, 성정체성에 대한 존중 기반의 의사소통 등 — 에 대한 이행 의무를 즉시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구금시설을 점검·감사하던 PREA 감사(audit) 기관들은 더 이상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젠더 논바이너리 수감자 등 성소수자에 특화된 보호 기준을 준수하고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지 않도록 지시받았다. PREA 감사란 미국 내 수용 시설(교도소, 구치소, 청소년 시설 등)에서 성폭력 예방, 탐지 및 대응에 관한 법률(PREA)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독립적인 외부 감사를 말한다. 이 변화는, 수감자 중에서도 특히 LGBTQ+ 커뮤니티가 기존에 겪어왔던 성폭력 및 괴롭힘 위험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는 인권단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국제구금정의(Just Detention International, JDI) 및 미국 시민자유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 등은 이번 조치를 “무모하고 위험한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가장 취약한 수감자들이 사실상 보호 없이 남겨졌다”고 경고했다. 미 정부 측은 이 같은 지침 변경이, 과거 트럼프 행정부 시절 대통령 차원의 명령으로 시작된 ‘성별 정체성 관련 정책’ 철폐 기조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선, PREA 조항이 여전히 법률상 유효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보호가 중단된 이 변화를 둘러싸고 혼란과 책임 회피의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PREA 감사원은 “지침이 아닌 정식 규정 개정 전까지는 원래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항의하고 있으며, 구금시설 운영 주체들 사이에서도 혼선이 빚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치가 실행됨에 따라, 미국 내 구금시설에 수감된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인터섹스 등 성소수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내 인권단체들은 “이번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수감자 기본권과 생명권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법적 소송을 포함한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참고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5/dec/05/doj-prison-lgbtq-sexual-abuse-protections?utm_source=chatgpt.com -
[발언] 세종호텔지부는 일터의 차별에 저항하는 용기있는 기아차 화성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마음깊이 연대합니다[편집자주] “구조적 성차별이 여기 있다! 기아차는 화성공장 청소노동자 부당해고·징계 철회하라!” 12월 11일 경기도 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심문을 앞두고 차별과 탄압에 맞서 투쟁해 온 여성 노동자들이 기아차 화성공장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현대차 본사 앞에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 연대한 허지희 세종호텔지부 사무국장 동지의 발언을 전합니다. 해고 전 호텔객실 청소노동자로 일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로비를 점거한 파업에 참가하고 사실상 사측이 만든 새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보복조치였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룸메이드 주간미팅 시간에 하우스키핑팀장에게 ‘차렷 경례’를 시킨 것입니다. 팀장은 변방에 자신만의 소왕국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사측에 항의하고 직장내 괴롭힘으로 징계를 요구했을 일이지만 당시엔 너무 어이없어 웃음밖에 안 나왔습니다 객실을 정비하는 일은 호텔의 새 상품을 만드는 일로 핵심적인 업무입니다. 그러나 룸메이드 중 누구도 승진을 하는 일은 없습니다. 청소하는 여사님이기 때문입니다. 호텔은 객실을 판매하는 판촉지배인 또는 호텔의 꽃이리는 프론트 클락만 승진시킵니다. 이름만 정규직인 룸메이드는 최저임금 수준임에도 서울시내 대부분 용역회사 소속인 룸메이드들은 정규직이 되려고 세종호텔로 이직해 오곤 했습니다. 저임금이라도 정규직은 고용이라도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코로나 때까지였습니다. 경영위기를 핑계로 세종호텔 또한 룸메이드 용역회사를 들였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은 단체협약으로 1년 이상 비정규직 근무해야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이었던 룸메이드와 남성노동자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여성노동자만 해고된 일이 있었습니다. 남성은 가족을 부양한다는 통념 속에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업무는 남성이 한다고 여기는 관습, 여성의 노동은 부수적이라고 여겨지고 폄하됩니다. 현실은 그 부수적 노동 중에서도 청소노동 등 우리사회에서 기반노동은 대부분 비정규직에게 맡겨진다는 겁니다. 코로나 이후 호텔객실청소는 플랫폼 업체에서 방 개수에 따라 수입을 정해져 보통 12객실을 청소하던 일이 최근 세종호텔에서는 25객실 청소합니다. 그 고된 일이 이주노동자 노동이 되고 있으며 더 이상 4대 보험 가입도 안 해주는 노동이 되었습니다. 기아차 화성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다는 소식은 가슴 아프고도 반가운 일입니다. 용역회사나 자회사 소속의 청소노동자들이 구조적 차별과 열악한 처우의 개선을 당사자들이 요구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석열의 거짓은 더 이상 먹히지 않지만 성차별과 가부장적 문화는 곳곳에 뿌리 깊습니다. 그래서 기아차 화성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더 중요한 투쟁입니다. 부당노동행위가 일상화된 직장 내 조직문화를 끊어내는 것은 부당해고와 징계를 철회시키는 것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기아차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인정하고 조합원들의 징계와 해고철회를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세종호텔지부는 일터의 차별에 저항하는 용기있는 기아차 화성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마음깊이 연대합니다. 함께 싸웁시다. 투쟁! -
[사회주의 기초학습#4]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역사와 전략[편집자 주] 역사적으로 사회주의는 착취와 차별, 억압을 일소하고, 만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사상이었다. 인간해방 세상을 꿈꾸며 투쟁하려는 이에게 사회주의는 지금도,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계급투쟁의 나침반이다. 그러나 오늘날 진짜 사회주의 사상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 역사의 굴절로 인해, 스스로가 '사회주의'라 주장하는 가짜 사회주의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반혁명으로 노동자국가를 파괴하고,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된 소련을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라 칭한 스탈린주의자들이 있다. 오늘날 '중국특색 사회주의' '우리식 사회주의' 등 다양한 스탈린주의의 변종은 억압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포장하면서, 사회주의를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자기해방 사상에서 계급지배를 정당화하는 수사적 도구로 바꿔버렸다. 다른 한편에는 제국주의 전쟁을 찬성하고 노동자혁명을 파괴한 개량주의자들이 있다. 오늘날 전통적 개량주의자들은 이미 지배계급의 일부가 되었고, 새로운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내부로부터 갉아먹는 의회주의와 관료주의를 '사회주의'와 뒤섞어버린다. 자본주의는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다시 불러왔다. 위기와 전쟁에 맞선 계급투쟁이 부활하고 있지만, 계급투쟁의 사상인 사회주의에 대한 정돈된 지식을 얻기는 너무나 어렵다.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뒤엎기 위해, 스탈린주의와 개량주의의 혼란을 걷어내고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진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함께 배우고, 함께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사회주의 기초학습' 시리즈를 연재한다. [다른 시리즈 읽기] #1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2 자본주의의 원리 파헤치기 #3 사회주의로 가는 길: 개량인가, 혁명인가? 오늘날 여성과 성소수자의 현실은 어느 때보다도 모순적이다. 여성 정치인과 CEO는 해마다 증가하지만, 여성의 현실은 평등과는 까마득히 멀다.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 등 성차별은 법으로 규제되지만, 현실에서는 임금, 노동조건, 고용형태 등 모든 면에서 구조적인 성차별이 지속하고 있다. 가령 국내 여성 임금 노동자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며, 다수가 최저임금을 받는다. 초단시간 노동자의 70% 이상은 여성이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다수의 성별도 여성이다. 시간당 임금은 남성 정규직 > 남성 비정규직 > 여성 정규직 > 여성 비정규직 순이다. 여성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남성 정규직의 38.8%일 뿐이다. 청소, 콜센터, 톨게이트, 가스검침, 요양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직장은 모두 최저임금 사업장이다. 이러한 성별 직종분리 추세는 확대돼 왔으며, 여성 비율이 많은 직종일수록 임금이 낮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한 원년부터 지금까지 내내 성별임금격차는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 연금 수급액 수준은 남성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는 필리핀 가사 관리사 시범사업의 사례처럼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더 불평등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독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이자 여성 노동 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 20세기 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1]이 사회적 격변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현대 여성 문제를 촉발시켰다”[2]라고 지적했듯이, 구조적 성차별은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결과다.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억압되는 구조적 배경을 살펴보자. 자본주의란 생산수단 소유 여부로 계급이 나누어지는 계급사회다. 마르크스가 분석했듯이 노동력만을 소유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존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를 착취한다. 그리고 착취가 지속되려면 노동력은 재충전되어야 한다. 노동력은 한편으로는 가정을 비롯해 기숙사 등에서 회복된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력은 출산을 통해 새롭게 공급돼야 한다. 자본가에게는 이주 노동자 도입이나 노예화도 노동력을 보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출산을 통해 노동력이 보충될 때는 아이를 낳는 다수인 여성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여성은 동시에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본가에게 출산은 노동자로서 여성이 생산하는 잉여가치를 감소시킬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출산은 당장에는 자본의 잉여 가치 착취에 방해가 된다. 그러나 노동력이 세대에 걸쳐서 보충되려면 출산이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지배계급 입장에서 노동력 재생산에는 잠재적 모순이 존재한다. 여기서 리즈 보겔은 “이러한 모순의 해결을 둘러싼 계급투쟁 과정에서 피착취계급 여성에 대한 억압이 발전한다”[3]고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지배계급은 노동력을 최대로 착취하면서도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가부장제를 동원해 출산시 여성을 남성이 책임지도록 하고, 남성에게는 임금노동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무급 재생산 노동에 대한 부담을 지운다. 이렇게 아이들과 가족 구성원을 먹이고, 돌보고, 교육하는 재생산 노동은 여성에게 사적으로 떠맡겨지고 평가절하된다. 이렇게 생산 노동과 재생산 노동이 분리된 것은 자본주의에서였다. 생산노동은 직장에서 수행되며, 재생산 노동은 갈수록 시장화(사회화)되고 있지만, 주로 사적으로 집안에서 수행된다. 이런 재생산 노동은 (계급투쟁의 결과에 따라) 국가가 자녀수당에서처럼 한편에선 지원하고, 다른 한편에선 결혼제도에서처럼 통제한다. 가부장적 억압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이 같은 메커니즘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고 여성을 규율한다. 여성의 성은 혼인에 구속되며 임신출산은 국가 인구정책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재생산 노동에 대한 국가나 자본의 지원은 늘 충분히 못하므로 임신출산과 가사돌봄을 사적으로 떠맡은 여성은 불완전한 노동자로 전락하여 채용에서부터 임금과 승진승급이나 불안정한 고용형태까지 다양한 차별을 받는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전 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개진된다. 나아가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성별과 신체와 출신과 능력에 등급을 매겨 서로를 경쟁시킨다. 그래서 어떤 노동에는 고가가 매겨지지만, 구조적으로 저임금 일자리로 떠밀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노동력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거나 노동을 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존재한다. 이 같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여성 노동자의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성소수자의 존재는 지워진다. 그러나 남성에게는 당연시되는 노동강도를 비롯해 남성 노동자 역시 성별을 이유로 억압된다. 그리고 그러한 억압을 통한 이득은 이 자본주의 체제가 비호하는 한 줌의 자본가들에게 돌아간다. 더불어 임금노동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은 빈곤한 재정적 여건으로 인하여 파트너에게 의존하게 된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는 가부장적 폭력을 조장한다. 체트킨이 지적했듯, 자본가계급 여성도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급적 차이에 따른 여성 억압의 양상은 전혀 다르다. 자본가계급 여성의 현실은 직장과 가장에서 이중으로 착취되고 억압받는 노동자계급 여성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즉, 노동자계급 여성은 자본주의 고유의 생산양식에 의해 차별받는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란 이렇게 젠더에 따른 차별과 억압의 근원이 노동력 착취와 재생산을 위해 가부장제를 동원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고 보고 가부장적 자본주의 철폐를 위한 계급투쟁으로 젠더평등을 쟁취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즉,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성적 억압과 차별의 원인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을 직시하며, 이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관점을 공유한다. 1. 세계 자본주의 변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대응 자본주의의 정치체제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낳은 프랑스혁명부터 인간의 평등은 부르주아 남성에 한정되었다. 대신 여성에게는 혼전 순결과 모성, 부권을 강요하는 부르주아의 성 규범이 뿌리를 내렸다. 서구에서의 이러한 여성 억압은 제국주의 시대를 경유하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피식민지에 이식됐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서구에서 일어난 페미니즘 제1물결은 이러한 부르주아 시민 혁명의 한계 속에서 예고된 것이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도 여전히 불평등한 현실을 지적하며 참정권, 재산권, 혼인, 교육, 직업 등에서 남성과의 평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페미니즘 제1물결은 부르주아 여성의 삶의 조건에 치우쳐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임금 노동자나 빈민, 성 노동자로 살았던 국내외 노동자계급 여성의 삶은 철저히 외면됐다. 예를 들어, 1894년 독일여성단체연맹은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여성 단체의 가입을 거부했고, 1900년에는 사회민주주의 여성 운동과 협력하자는 운동에 반대했다. 영국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은 재산을 소유한 여성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4] 여성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사회적으로 억압당하며, 여성운동이나 노동조합들에게도 버림받았지만, 19세기 계급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다. 대표적으로 1812년 밀가루 가격의 제한을 요구했던 노팅엄 봉기, 필로멘 로잘리 로잔이 이끈 리용의 비단 노동자 파업, 1888년 남성 노조들과 독립적으로 조직되어 요구를 쟁취했던 런던의 성냥공장 여성노동자 파업, <우리, 여성>이라는 소책자에서 성 평등의 이름으로 인쇄할 권리를 요구했던 에딘버러 여성 식자공 파업, 그리고 1857년 3월 8일 경찰의 공격을 받았고 수십 년 뒤 ‘세계 여성의 날’ 제정을 끌어냈던 뉴욕 직물공장 여성노동자 파업 등이 있다.[5] 이후 제국주의 국가에 식민지배를 받던 지역 여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쿠바, 아르헨티나, 멕시코, 인도, 조선 등 식민지 여성 노동자들은 제국주의 지배와 자본의 착취 아래 더욱 비참한 현실 속에서 투쟁했다. 조선에서는 대표적으로 1930년 8월 임금삭감과 보증금제도 및 불량품에 대한 벌금제를 이유로 일본 자본에 맞서 일어난 평양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에 주목한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이었다. 그들은 여성억압이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구조적 결과라는 점에서 여성해방이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 과제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변혁운동의 과제로 여성해방을 강조했고, 클라라 체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를 비롯한 사회주의 여성 혁명가들은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비되는 사회주의 여성운동을 조직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여성 노동자의 권리가 단순한 권리의 획득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 같은 방향에서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 사회주의 여성대회를 소집했고, 계급투쟁 속에서의 여성해방 실현을 추구하며 여성 노동자를 조직했으며, 노동권, 동일임금, 유급 출산휴가, 무료 보육 시설, 여성교육 등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6] 1910년 8월 제2인터내셔널 사회주의자 여성대회에서 클라라 체트킨을 비롯한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국제여성의날을 제안한 배경도 이 같은 맥락이었다.[7] 이 같은 배경 속에서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혁명에 성공하자 여성해방을 핵심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가사노동 사회화, 그리고 성평등 조치에 나섰다. 이후 서구는 전후 자본주의 장기호황에 힘입어 정부 지출과 통화 공급을 증대해 질서를 유지했다. 더구나 주류 노동운동은 미국에서는 뉴딜을 정점으로 체제 내화한 지 오래였고, 냉전의 여파 속에서 갈등은 쿠바, 베트남 등 주로 제3세계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1960년대 프랑스와 독일, 미국 등에서 국가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학생 시위가 일어나 서구 사회를 뒤흔들기 시작했고, 민권 운동과 신좌파운동의 영향 속에서 분출한 혁명적 열기는 여성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서구에서 여성의 선거권이나 재산권, 교육 등은 보장되었으나 여성은 여전히 현모양처로 호출됐다. 소비에트연합에서도 스탈린 반혁명에 가부장제가 강화된 지 오래였고, 서구의 공산당 운동은 스탈린주의를 표방했으며, 사민주의 운동도 가부장적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페미니즘 제2물결은 이 같은 조건에서 일어났다. 아르헨티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다트리는 페미니즘 제2물결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에서 나타나듯이, “사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 사이의 관계를 제기했다. 여성들은 자본이 제도화하고 안착시키려 애썼던 것, 즉 정치적 영역(생산/임금노동)과 사적 영역(재생산/무급노동) 사이의 분할에 의문을 제기했다”[8]고 표현한다. 또 낸시 프레이저는 당시 “여성해방 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남성지배에 맞서 봉기”했으며, “다른 급진주의 조류와 합류하여 사회민주주의의 허상을 폭로했고, 자본주의의 깊숙한 남성 중심주의의 뿌리와 가지를 바꾸고자 했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당시 페미니즘 운동은 급진적 실천에도 신좌파운동이나 노동자운동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고 주류 페미니즘 운동은 체제 순응적인 제도화의 길을 걸었다. 제2 페미니즘 물결 이후 서구에서는 1970년대 시작한 자본주의의 장기불황 속에서 신자유주의 질서가 구축되기 시작하며 백래시가 밀려 왔다. 미국에서는 뉴딜 합의가 붕괴했고, 긴축, 규제 완화, 복지 축소, 노동유연화를 설교하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새로운 지표가 됐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함께 우파는 1960~1970년대 성장한 미국 신좌파와 민권운동, 여성운동 등 진보적인 사회 흐름에 대한 백래시로 보수적인 성과 가족, 사회 질서, 국가안보를 옹호하는 신보수주의를 이끌었다. 반면, 자유주의 세력은 여성의 권리를 지지했지만, 사회적 평등은 오히려 후퇴시켰다. 더구나 주류 여성운동은 이 같은 자유주의 세력에 포섭돼 지배계급의 일부로 역할했다. 한편,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바이섹슈얼 등 기존 페미니즘이 소외시켰던 성 소수자들을 포함해 여성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인종, 계급, 성 정체성, 문화 등 다양한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제3 페미니즘 물결이 일었지만, 계급투쟁과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당시 두드러진 운동 담론인 정체성정치에 계급은 하나의 부문운동 이상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게다가 역설적이게도 당시 지배계급은 페미니즘의 구호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신자유주의를 구축해냈다. 낸시 프레이저에 따르면, 페미니즘 제2물결은 경제 지상주의, 국가주의, 남성 중심주의 등을 비판했으나, 이는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구축되는 데 활용됐다. 즉, 경제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은 정체성 정치로 수렴되어 사회경제적 투쟁을 축소시켰고,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은 복지국가 해체로, 남성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가족 임금 해체를 비롯해 보다 유연한 자본주의를 위한 도덕적 설명으로 치환됐다.[9]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2007~2008년 시작한 세계공황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저항에 직면하기 시작한다. 2010년대 이른바 아랍의 봄과 유럽 긴축반대 투쟁, 미국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멕시코 에너지 민영화 반대 투쟁, 칠레 펭귄시위와 무상교육투쟁 등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확산했으며, 이와 맞물려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 역시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아랍의 봄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에서는 집회 시위 중 벌어진 성폭력에 맞서 여성들의 시위가 일어났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니우나메노스(Ni Una Menos(“No one less”)는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는 뜻으로, 더 이상 젠더기반 폭력으로 살해당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위가 전개됐다. 미국에서는 수십만 명이 참여한 여성대행진이 있었고, 스페인에서는 수백만이 여성파업을 일으켰다. 멕시코에서는 페미사이드 반대 시위, 칠레에서는 집회 시위 중 발생한 경찰의 성폭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폴란드와 아일랜드에서는 임신중지 억압에 반대하는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사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장 큰 희생자 중의 하나는 여성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여성 노동자의 수가 증가한 시기지만, 이들은 대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불안정해진 일자리에서 일해야 했고, 사회복지비는 축소되어 여성에 대한 무급 재생산 노동을 강화했으며, 젠더폭력 역시 배가됐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노조는 가부장적인 관료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주류 여성운동은 제도화되어 기층 여성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터져 나온 여성들의 시위는 이 사회를 생산하며 재생산하는 노동자계급으로서의 투쟁이자 다수가 그 전술로서 노동자계급의 무기인 파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적 열기는 계급운동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대개는 개량주의 정치세력에 흡수되며 산개해버렸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 위기 속에서 출현한 극우의 세계화 속에서 여성과 성소수자에게 보다 폭력적인 자본주의를 대면하고 있다. 2. 한국에서의 여성운동 한국에서 여성운동은 이러한 세계 자본주의와 여성운동의 동학과 맞물려 전개해왔다. 그러나 또한 식민지와 내전, 분단과 독재정권이라는 제3세계적 특수성 속에서 사회 변혁운동의 자장 속에서 태동했다.[10] 이러한 한국 여성운동은 1970년대 전투적인 여성노동자 투쟁과 인권, 노동, 학생운동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은 여성운동의 이념과 조직적 정비를 부추기는 데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운동은 여성운동 안에서 중심축의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진보적 여성운동 단체인 1984년 여성평우회[11]도 여성운동의 주체를 ‘기층여성’으로 설정했다. 대표적으로 이화여대 출신 여성 지식인과 학생운동 출신의 운동가들이 창설한 여성평우회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결합되어 있다고 인식했고, 80년대 민족민주민중운동의 부문운동으로 여성운동의 위치를 규정하면서 여성해방을 추구하며 결혼퇴직제(25세 조기정년제) 철폐나 가사노동 등 여성 이슈를 의제화하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운동 전체로 보면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여성운동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강했고, 여성평우회 내적으로는 여성운동 내 지식인과 운동가 사이 민족민주운동과 여성운동의 관계에 대한 이견 때문에 1987년 해산했다. 이후 1980년대 여성운동은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으로 분화했으며, 진보적 여성운동단체들의 연합체로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결성되었다.[12] 그러나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여성운동의 주체를 여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기층여성에 두고 이들의 생존권 투쟁 지원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80년대 여성운동은 노동자계급 여성 이슈가 중심축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13] 한편으로 대학 사회에서는 80년대 초중반 대학 운동권 내 남성중심적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져왔던 여성들을 중심으로 총여학생회가 설치됐다. 이들 역시 여성 억압을 군사 독재 정권, 식민 지배 역사, 자본주의 체제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 위치시키고자 하였다.[14] 그러나 90년대 문민정부 출현과 소비에트 몰락 이후 계급운동의 퇴조와 방향 상실 속에서 주류 여성운동은 탈계급화하기 시작해 기층여성 중심의 ‘노동자’ 정체성은 1990년대에 ‘여성일반’으로 전환됐다. 여성운동은 독자성과 대중성을 추구하며 성폭력과 성차별 등 문제를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대표적으로 성폭력특별법(1994년) 제정, 호주제 폐지(2005년 헌법 불합치 결정) 등의 제도 개혁을 이끌었다. 그러나 노동 등 사회 문제는 사안별 연대로 국한되었으며, 기층 노동계급 여성의 생존권에는 거리가 있었다. 한편 90년 중반 이후 여성운동은 성주류화 정책을 주요 전략으로 채택하며 본격적인 제도화의 길을 밟기 시작해 갔다.[15] 그리고 이는 당시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루며 자신의 정당성과 기반을 다지기 위해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대거 흡수한 김대중 정권의 이해와 맞물렸다.[16] 이 같은 조건에서 김대중 정권은 여성부와 여성공천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 등을 제정하여 그동안 여성운동이 주장해 온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17]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이와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구조개악을 밀어붙이며 전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후퇴시켰고, 이는 특히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김대중 정권이 강행한 공공부문 매각과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계급 여성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거 밀어냈다. 대표적으로, 1998년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여성 임시/일용직 노동자는 57%에서 68.9%까지 증가했다.[18] 여연조차 2001년 1월 “김대중 정부의 여성정책 3년에 대한 평가에서 우리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며 “여성들의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시간제 노동이 가속적으로 증가하여, 대표적으로 9개 은행의 명예퇴직 여성의 비율이 74.5~95.5%를 차지했다”고 기록한다.[19] 둘째, 김대중 정권 시절 남녀고용평등법 전부 개정, 모자보건법 개정 등으로 도입된 일·가정 양립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여성정책으로 임신·출산, 가사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방기한 채 여성 노동력을 시장화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 여성은 가족임금제(남성부양모델)가 해체되고 유연화한 고용조건 속에서 임신·출산, 가사돌봄이란 이중의 부담을 떠맡으며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들었다. 셋째,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 이후 출생율이 급감[20]하면서 처음으로 저출산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해 신보수주의의 출산장려정책을 추진할 발판을 마련해주었다.[21] 마지막으로 김대중 시절 수립된 신자유주의적 여성노동·인구정책 기조는 이후 전 노동계급에 대한 노동유연화를 촉진하는 기조로 활용됐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 8월 수립된 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시작으로 ‘근로형태 유연화’가 출산장려정책의 주요 과제로 자리 잡았으며,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인 ‘가족친화적 기업 지원’에서도 기준 항목에 탄력적 근무제가 포함됐다.[22] 이명박 정부는 저출산 정책으로 유연근무제를 추진했는데, 이는 사실 단시간노동제로서 신규채용을 단시간 일자리로 전환하고 직무를 단시간화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조치였다.[23] 문재인 정권도 노동유연화 조치인 직무급제를 추진하며 내세운 명분 중 하나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들었다. 이렇듯 그동안 여성운동이 이룬 성과는 적지 않지만, 여성과 퀴어의 성적 권리는 여전히 무거운 납덩이에 짓눌려 있다. 2019년 대중적 페미니즘 운동의 여파 속에서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하다고 결정됐지만, 문재인 정부부터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는 대체입법에 나서지 않았다. 퀴어의 성적기본권은 다양한 음행매개, 음화반포와 제조, 공연음란죄(형법 제242~245조)를 비롯해, 군형법 추행죄, 에이즈예방법 상 전파 매개 행위 금지 조항 등으로 통제되고 있다. 차별금지법 역시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발의했고, 2021년에는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위원회 회부 기준을 충족하기도 하였는데도, 기독교 우파, 근본적으로는 자본가계급의 눈치를 보며 이번 민주당 이재명 후보 역시 외면하고 있다. 3. 마르크스주의자와 여성억압 그러면 여성억압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입장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을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여성억압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봤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여성해방을 추구했다. 특히 그들은 여러 지면을 통해 자본주의 여성억압의 물질적 토대를 분석하며 이론적 토대를 세워 갔다. 우선 마르크스는 1845년 <신성가족>에서 공상적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말을 의역하여, “역사적 시대의 변화는 여성의 자유를 향한 진보에 의해 항상 측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 남성에 대한 여성의 관계에서, 강자에 대한 약자의 관계에서, 잔인함에 대한 인간 본성의 승리가 가장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해방 정도는 일반적인 해방의 자연스러운 척도다”라고 봤다. 엥겔스는 당대 노동자계급 여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억압의 구조적 기원을 최초로 역사유물론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여성 억압이 단순히 문화적,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구조 속에서 등장하고 재생산된다고 보았다. 그는 24세였던 1845년 영국 노동자계급 여성들의 삶을 세세하게 기록하며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성적 학대 속에서 저임금 노동자로서 그리고 가정에서는 무급 가사 노동자로서 이중의 굴레를 지고 있다는 점을 제기했다. “여자들은 대개 분만한 지 사흘이나 나흘 만에 당연히 아기를 남겨둔 채로 공장으로 복귀한다. 저녁시간에 여자들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자기도 뭔가를 먹는다.”[24] “이 외에 공장에서의 종속관계가 다른 종속관계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그보다 더한 정도로 제조업자에게 초야권(중세 영주가 신랑보다 먼저 신부와 잠자리를 할 수 있는 권리)을 부여한다는 것도 당연히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용주는 피고용인들의 인신과 아리따운 용모를 지배하는 군주이기도 하다. 고용주가 해고하겠다고 위협만 해도 어차피 순결을 단호하게 지킬 마음도 없는 소녀들 10명 가운데 9명은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제조업자가 몹시 비열한 사람이라면 그의 공장은 하렘이기도 하며, 공식 보고서에 그런 사례가 몇 가지 실려 있다.”[25] “공장노동은 여성의 체격에도 뚜렷하고 독특한 영향을 미친다. 장기간 노동이 초래하는 변형은 여자들 사이에서 훨씬 더 심각하다. 장시간 노동은 흔히 골반의 변형을 일으키는데, 일부 변형은 엉덩이뼈의 비정상적인 위치와 성장으로 나타나고, 일부 변형은 척추 하부의 기형으로 나타난다. (...) 몇몇 산파들과 산과의사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보다 난산으로 고생하고 또 유산하기도 쉽다고 증언한다. 더욱이 여성 공원들은 모든 공원에게 공통된 전신 허약으로 고생하며, 임신을 해도 분만하는 시간까지 공장에서 계속 일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을 받지 못할뿐더러, 너무 일찍 일자리를 비웠다가 다른 노동자로 대체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전날 저녁까지 노동하다가 이튿날 아침에 분만하는 일이 빈발하고, 공장의 기계들 사이에서 분만하는 경우도 그리 드물지 않다.”[26] 특히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사후 인류학에 대해 그가 남긴 메모를 기초로 친족, 가부장제 가족, 결혼제도, 일부일처제 형태의 변화와 연관된 사회 조직에 대한 역사 유물론적 분석을 전개했다. 그것이 1884년 쓰인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인데, 이 책에서 엥겔스는 유물론적 관점에 따라 가족 문제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고찰하며,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관계를 강조했고, 여성 억압의 기원이 자연적인 게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라는 점을 보여줬다.[27] 즉 여성억압의 기원이 사유재산의 축적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하며 계급사회의 산물임을 밝혀냈다. “유물론적 관점에 따르면, 역사를 규정하는 결정적 계기는 궁극적으로 직접적 생활의 생산 및 재생산이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생활수단, 즉 의식주의 대상과 이에 필요한 도구의 생산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 그 자체의 생산, 즉 종족의 번식이다. 특정한 역사 시기 및 특정한 지역의 인간들이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회 조직은 이 두 가지 종류의 생산에 의해, 즉 하나는 노동의 발전 단계에 의해, 다른 하나는 기존의 발전 단계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의 발전이 미약할수록, 그 생산물의 양이 제한될수록, 따라서 사회의 부가 제한될수록 사회제도는 혈연적 유대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다.”[28] “이렇듯 재부가 증대함에 따라 가족 내에서 한편으로는 아내보다도 남편이 더 유력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강화된 지위를 이용해 남편은 자녀들을 위해 기존의 상속 순위를 폐지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모권에 의해서만 혈통을 따졌던 시기에는 그것이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 모권은 폐지되어야 했으며 또 폐지되었다. (...)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자는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어 여자는 자기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한 산아도구로 전락했다.”[29] “일부일처제 가족은 남편의 지배에 따른 것으로, 아버지의 혈통이 확실한 아이를 낳자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혈통이 확실해야 할 필요성은 아이들이 후에 직계 상속인으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소유해야 했기 때문이다.”[30] “현대의 개별 가족은 아내의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내 노예제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리고 현대 사회는 순전히 개별 가족이라는 분자로만 구성된 집단이다. (...) 가정에서 남편은 부르주아지이고 아내는 프롤레타리아트이다. (...) 여성해방의 첫째 조건은 여성 전체가 사회적 노동에 복귀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개별 가족이 사회의 경제적 단위로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31] 무엇보다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이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묶여 있는 사회적 노동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했고, 이에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공산주의 사회의 목표 중의 하나로 제시했고 이 같은 그의 제안은 현재까지 주요 과제로 다뤄진다.[32] “여자의 지위, 즉 모든 여자의 지위에도 극심한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생산수단이 공동소유로 됨으로써 개별 가족은 이제 사회의 경제적 단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사로운 집안 살림은 사회적 산업으로 전환되고, 아이들을 돌보며 교육시키는 것은 공공사업으로 전환될 것이다. 사회는 적자나 사생아를 막론하고 모든 아동들을 똑같이 돌보아 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처녀가 마음놓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몸을 맡길 수 없게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사회적 계기 – 도덕적 및 경제적 –인 그 ‘결과’에 대해서 처녀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은 강요받지 않은 성교를, 따라서 또 처녀의 명예 및 여성의 수치에 관한 보다 관대한 여론을 점차 발전시키기에 충분한 원인으로 되지 않을까?”[33]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 쓴 《공산당 선언》에서는 부르주아 가족 제도를 비판하며 이는 “자본이자, 사적 이득 위에 서 있다. 이 가족은 완전히 발전된 형태로 오직 부르주아지에게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가족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사실과 공창 속에서 그 보완물을 발견한다”라고 지적하는 한편,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아내를 단순한 생산의 도구로만 본다”고 비판하며, “현 생산 체제의 폐지가 여성의 공유, 즉 공창과 사창 모두의 폐지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자명하다”[34]라고 봤다. 즉,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가족이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그 결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가족은 사실상 해체됐다고 지적한다. 또 부르주아가 일부일처제를 명문화하면서도 아내를 출산 도구화하고 ‘공유’하는 위선을 비판하며, 노동자계급은 성매매가 가족을 대신하고 있다고 봤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는 여성 노동의 착취적 측면에 대하여 분석했다. 기계가 육체적 힘의 차이를 지워버리며 임금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는 수단이 되었는데, 이러한 기술 진보가 노동자에게 야기하는 문제로 여성과 아동을 저임금 노동에 유입시켜 전체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착취의 정도를 강화한다고 비판한다. 기계, 근육의 힘을 요구하지 않는 한, 근육의 힘이 약하거나 또는 육체적 발달은 미숙하지만 팔과 다리는 더욱 유연한 노동자를 사용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은 자본가에 의한 기계사용의 첫 번째 결과였다! (...) 노동력의 가치는 개별 성인노동자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뿐 아니라 노동자 가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기계는 노동자 가족의 전체 구성원을 노동시장에 내던짐으로써 가장의 노동력 가치를 그의 전체 가족구성원들에게로 분할한다. 그러므로 기계는 가장의 노동력 가치를 저하시킨다. (...) 이와 같이 기계는 처음부터 자본의 가장 특징적 착취대상인 인간적 착취재료를 추가할 뿐 아니라 착취의 정도를 증가시킨다. (...) 기계는 아동과 여성을 대량으로 노동자계급에 추가함으로써, 성인 남성노동자가 매뉴팩처 시기 전체를 통해 자본의 독재에 대항했던 반항을 드디어 타파하게 된다.”[35] 또 인용에서 “가족 기능의 어떤 것(예컨대 어린이를 돌보며 그들에게 젖을 먹이는 일)은 전혀 없애버릴 수는 없으므로, 자본이 징발한 어머니는 어떤 대체물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며 여성이 공장 노동과 함께 가정 내에서의 전통적인 역할과 의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는 점을 암시한다. 아울러 현대의 ‘경력단절’ 여성과 같이, 더 많이 착취할 생각으로 부양가족이 있는 고분고분한 기혼 여성만 고용하는 사업주의 사례[36] 등도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자본론》에서는 여성억압의 물질적 기초로서 가사노동이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유일하게 “사용가치가 가치의 원천이 되는” 즉,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력이란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의 필요를 다루며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재생산 노동의 위치 등을 제시했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력이 가치인 한, 노동력 그 자체는 거기에 대상화되어 있는 일정한 양의 사회적 평균노동을 표현할 뿐이다. (...) 노동력의 생산이란 이 개인 자신의 재생산, 즉 그의 생활의 유지다. (...) 그러므로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는 달리 노동력의 가치규정에는 역사적 및 도덕적[정신적] 요소가 포함된다. (...) 노동력 소유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따라서 그가 시장에 연속적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판매자는 ”살아 있는 개체는 어느 것이나 생식에 의해 자신을 영구화하는 것처럼“, 생식에 의해 자기 자신을 영구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모와 사망의 결과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노동력은 적어도 같은 수의 새로운 노동력에 의해 끊임없이 보충되어야 한다.”[37]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선구자 플로라 트리스탄은 1843년 자신의 책 《노동자 연합》에서 처음으로 계급과 젠더의 관계를 다뤘다. 그는 여성이 프랑스 사회의 ‘마지막 노예’라고 부르며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숙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38] 또 여성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프롤레타리아트이며, 여성은 노동자계급과 함께 손을 잡아야만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남성 노동자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투쟁의 기치 아래 여성과 함께 싸울 것을 촉구하지 않는 한 임금 노예의 멍에에서 해방되기를 열망할 수 없다고도 한다.[39] 이렇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억압이 자본주의에 따른 결과로 보면서 여성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또 여성이 이미 사회 생산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일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80년 신생 프랑스 노동자당 선거 강령에 조언하였는데, 이 강령 서문의 첫 문장은 “생산계급의 해방은 성별이나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을 포함한다”였다. 이후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을 조직해 온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계승, 발전시키며 자본주의의 여성억압에 맞서 투쟁했다. 특히 자본주의 초기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지였던 독일의 사회민주당(SPD) 여성 운동 지도자이자 초기 개량주의의 반대자였던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은 여성 노동자 조직에 사회주의 운동의 성사가 달려 있다고 주장할 만큼 여성 노동자 조직에 앞장섰다. 그는 특히 명시적으로 계급사회 내 여성의 종속 문제가 갖는 이론적 성격을 분석했는데, 생산양식과 계급에 따라 여성문제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제시했다. 1896년 독일 사회민주당(SPD) 여성회의에서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함께해야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에서 체트킨은 여성 억압을 ‘성별 일반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문제로 분석하며,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부르주아 여성의 처지와 이해관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여성 문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산물인 특정 사회 계급들에서만 나타난다고 봤다. 체트킨에 따르면, 우선 상류계급 여성은 언제나 배우자, 어머니, 주부로서의 임무를 하인에게 떠맡길 수 있는 계급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다. 프티부르주아지, 즉 중간계급에서는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고 정신적 만족을 얻기 위해 사회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데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때문에 교육과 취업등 기회의 평등이 중요한 요구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에 관한 한 여성 문제를 창출하는 것은 끊임없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착취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필요다. 이들은 저임금 노동자가 되어 자본주의 생산이 적선하듯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만 할당받는다. 때문에 프롤레타라아 여성의 해방 투쟁은 부르주아 여성처럼 자기 계급의 남성에 맞서 싸우는 투쟁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전체 자본가계급에 맞서 자기 계급 남성과 공동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4. 볼셰비키 혁명과 여성해방 1910년 10월, 한 섬유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 연장으로 인해 두 명이 사망하자 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공장 내 노동자 5,000명의 지지를 얻었다. 1913년에는 또 다른 섬유 공장의 여성 노동자 2,000명이 임금 인상, 유급 출산 휴가 및 기타 요구 사항을 요구하며 50일 가까이 파업을 벌였다. 그 후 5,0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고무 공장에서 파업을 벌였다. 또 다른 여성 노동자들은 사장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섬유 공장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또 다른 3,0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향수와 파스타 공장을 마비시켰다. 합판 공장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과 관리자의 성희롱에 항의했다.[40] 이것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과 정치 조직화를 촉진하면서 투쟁을 조직했던 사례들이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고, 결국 노동자혁명에 성공하자 자본주의의 여성억압에 맞선 조치를 현실화했다. 볼셰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부터 여성해방 문제를 사회주의 혁명의 핵심적 일부로 생각하고 여성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쟁취하지 못하는 한, 프롤레타리아는 온전한 해방을 이룰 수 없다”라며 “자본주의는 형식적 평등의 문제에서조차 일관될 수 없다. 가장 분명한 사례 하나가 바로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이라고 봤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망명 중 작성된 1903년 최초의 당 강령의 초안에 “남성과 여성의 권리의 완전한 평등”에 대한 요구로 포함됐다. 이후 레닌은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은 여성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법률을 남김없이 모두 단숨에 일소해 버림으로써 완전한 법률적 평등을 즉시 보장했다”고 밝혔다. 레닌은 여성이 여성으로서 겪는 특별한 억압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레닌은 매춘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 원인을 사회적 조건에서 찾고 처벌 중심의 자유주의적 해결책을 비판했다. 산아 제한 운동의 계급적 성격을 분석하며, 소부르주아 자유주의자의 심리와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의 관점을 대비시켰다.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아제한은 빈민과 유색인종에 대한 강제불임 등에서처럼 종종 빈곤과 여성 억압의 산물로 나타난다고 봤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해야 하며, 동시에 낳지 않을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임신중지나 피임의 제한을 없애는 모든 법 개정을 지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농민들의 ‘수세기 된 가부장적 전통’이 여성에게 특히 잔혹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비판했다. 레닌은 또한 당시 남성 공산주의자들이 집안일에 대해 무관심하며 여성 동지들을 가사노동에 방치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남성 내부의 교육과 사상 개조 또한 필수적이라 강조했다.[41] 레닌과 함께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싸웠던 레온 트로츠키는 특히 볼셰비키 혁명 뒤 물질적 토대를 구축해야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며 여성 해방 조치의 실현을 위해 분투했다. 그는 또한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적 가족 구조를 사회적으로 대체하고 여성의 역할을 해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 그는 당사자로서의 여성들에게 가사 노동의 최대한의 사회화를 위해 투쟁할 것을 촉구했고, 무엇보다도 여성들에게 무기력과 맹목적인 습관에 맞서 의식적으로 싸울 것을 호소했다.[42] 한편 러시아 혁명가들은 부르주아의 젠더규범과는 다른 노동자계급의 성적 실천을 추구했다. 여기에는 최초 볼셰비키 사회위원이었던 콜론타이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평가되며, 그의 사상은 혁명 포고령에 반영됐다. 콜론타이는 봉건주의에는 기사도적인 사랑이, 자본주의에는 부르주아 결혼과 매춘이 있었던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지배 시기에 적합한 성적 사랑의 형태는 ‘동지애적 사랑’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성과 사랑의 사유화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이 완전히 평등하고 독립적인 사회주의 집단에 성적 사랑을 포함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동지애적 사랑’의 핵심은 ‘완전한 자유, 평등, 진정한 우정’이었다. “‘파트너’의 육체뿐 아니라 감정까지 완전히 소유한다는 원리를 면밀히 발전시킨 것은 바로 부르주아지다. 그 결과 그들은 소유권의 개념을 타인의 정신과 감정 세계 전부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이렇게 해서 가족 구조는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 투쟁하던 시기에 강화되고 안정됐다.”[43] “노동자 국가에서는 남녀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확립돼야 한다. (...) 여성의 예속 상태에 기초를 둔 영속적 결혼은 사랑과 존중으로 뒷받침되는 노동자 국가의 두 구성원 사이의 자유로운 결합으로 대체돼야 한다. 이런 결합에서 남녀는 권리와 책임을 똑같이 평등하게 나눠 가질 것이다. (...) 그 속에서 모든 노동자가, 모든 남성과 여성이 동지가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미래 공산주의 사회의 남녀 관계일 것이다. (...) 새로운 형태는 (...) 애정과 동지애로 맺어진 결합일 것이고, 공산주의 사회의 평등한 두 인간이 맺는 결합일 것이다.”[44] 러시아혁명가들은 이러한 방향 속에서 자본주의 변혁 운동을 조직했다. 대표적으로 볼셰비키당은 가장 진보적인 여성들과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볼셰비키가 1917년 10월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노동자계급을 조직화하고 통합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일례로 모스크바에서 노동조합은 초기에 여성이 더 후진적이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여 여성 조합원을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다. 이러한 생각은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모든 국가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점차 가장 진보된 노동자들은 성별에 따른 노동계급 내 분열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주로 남성 노동자들로 구성된 모스크바 노동조합은 공장 노동자들에게 전단을 배포하며 노동계급의 단결 운동을 시도했다.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자 노동자들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일자리를 마련하고 공공탁아소와 공동식당, 공공세탁소 등을 개설하여 가사노동을 사회화했다. 볼셰비키는 경제적 평등을 위한 조치를 취했을 뿐 아니라 여성억압적인 제도 역시 뜯어고쳤다. 그 결과, 남녀는 법 앞에 평등해졌고, 이혼 절차가 간소화되었으며, 임신중지가 합법화, 성매매는 비범죄화됐다. 동성애 역시 합법화되었으며, 나아가 동성결혼도 보장했다. 형법에 성 행위에 관한 언급은 1922년 사라졌으며, 성범죄는 개인의 “생명, 건강, 자유, 존엄”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됐다. 이전과는 다르게 비혼모의 자녀도 법적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완전한 자유, 평등, 진정한 우정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꽃을 피웠다. 이러한 여성해방 조치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보다 최소 60년 이상 앞선 조치였다. 볼셰비키 정부는 법적 개혁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가 구현해야 할 성평등 문화를 여러 캠페인을 통해 알려나갔다. 여성교육의 필요성과 아내 구타나 직장 내 성폭력을 금지하는 캠페인이 수많은 포스터, 영화, 연극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볼셰비키의 혁명은 스탈린의 반혁명에 질식당했고 1917년 혁명 세대는 궤멸됐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미국 러시아혁명 연구자 웬디 골드먼이 그의 책 <여성·국가·혁명>에서 “스탈린 정권이 저지른 모든 범죄 중 가장 끔찍한 것은 스탈린 관료 체제가 ‘현실 사회주의’라고 온 세계가 믿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볼셰비키 혁명은 스탈린의 반혁명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여성해방을 노동자혁명의 중심 과제로 여겼고 이를 현실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5. 20세기 하반기 사회주의 페미니즘 논쟁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서구 자본가 정부들에 의해 스탈린주의와 동일시되었으며, 남성중심적인 서구 사민당이나 공산당처럼 주류 좌파는 여성억압을 경제 문제로 환원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편견을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이 같은 조건에서 1970년대 좌파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억압의 관계를 밝히려는 시도 속에서 몇 가지 중요한 논쟁을 벌였고, 그 영향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여성억압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무급 가사노동의 성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다. 1972년 자율주의 페미니스트 마르크스주의자인 마리아로사 달라코스타와 셀마 제임스[45]는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이라는 책에서 마르크스가 ‘생산적 노동’만이 교환가치를 창출한다고 밝힌 것을 ‘남성적’ 편견이라면서 마르크스의 정의가 대부분 여성이 수행하는 재생산 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의 결여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가사노동은 가정에서 직접 소비할 사용가치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 능력이라는 필수 상품 노동력을 생산한다며, 주부들이 엄격한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착취당하는 '생산적 노동자'라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주부들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적 자율주의 페미니스트 실비아 페데리치 역시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적’이란 말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을 말하는 사전적 의미다. 잉여가치란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된 가치를 초과하는 나머지 가치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적 노동이란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 즉 유급 노동을 의미한다. 가사노동은 노동자의 생존에 꼭 필요한 사용가치를 생산하지만, 가사노동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의 생산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노동자는 그가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 또는 자본의 가치증식에 기여하는 노동자만이 생산적이다. (...) 그러므로 생산적 노동자의 개념은 노동활동과 그 유용효과 사이의 관계, 즉 노동자와 그의 노동생산물 사이의 관계를 내포할 뿐 아니라 노동자를 자본의 직접적 가치증식 수단으로 만드는 특수한 사회적/역사적 생산관계도 내포한다. 따라서 생산적 노동자가 되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운이다.[46] 위의 표현처럼,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가치증식 수단으로 만드는 특수한 사회역사적 생산관계 때문에 오히려 생산적 노동자가 되는 것은 오히려 불운이라고 말했다. 그 사회역사적 생산관계란 임금 노동자를 창출하기 위해 지배집단이 농민에게서 농토를 빼앗은 인클로저 운동과 같은 사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스페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마르티네스의 설명을 보면 이 같은 성격을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유급노동’이 아니다. 사실 가사노동은 생산적인 것도, 비생산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범주는 유급 노동에 적용되는 것이고, 자본주의적인 잉여가치 생산에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은 노동자들이 소비하는 것들을 생산한다. 그것이 시장에서 비교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가치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추상적 노동으로 환원될 수 없다. 가사노동은 사적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는 유용한 노동이다. 이것은 곧 가사노동의 지속시간, 반복 주기, 구체적인 할 일 등을 자본가들이 직접 통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구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와 노동력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 (노동자와 달리) 노동력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 따를 때, 가사노동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종속돼 있으면서도 자율성을 유지하며, 자본의 통제에 종속돼 있지는 않다.[47] 즉, 자본주의는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재생산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사노동은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는 자본주의가 생산과 재생산영역을 분리하고 노동력 재생산에 따르는 부담을 사적으로 여성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다. 즉 자본은 여성에게 무급 재생산 노동이라는 굴레를 씌웠는데, 오늘날 이 부담은 더더욱 무거워졌다. 즉, 재생산 노동은 꼭 필요하지만, 가치나 잉여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논쟁의 갈래를 잘 살펴야 하는 이유는 가사임금을 말하는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생산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해방을 위해 어떠한 변혁 전략을 취할 것인가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달라코스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억압에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주부들을 결집시키고 가사노동을 중단함으로써 가사임금을 쟁취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생산영역이 아닌 재생산영역을 계급투쟁의 영역으로 보면서 노동력이 사회적 공장에서 생산된다고 말하는 페데리치의 자율주의 페미니즘과도 같은 궤를 형성한다. 그러나 가사노동의 중단은 자본주의적 여성억압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할지라도 자본가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가사노동이 자본가계급이 원하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페데리치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말하는 ‘자율적인 재생산 공동체’는 어떻게 이러한 사회로 이행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반자본주의 전략이 부재하다. 이들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리즈 보겔은 마르크스가 체계화한 분석틀에서 여성억압의 근원을 찾았다. 그는 자본주의적 여성 억압의 근원을 가정 내의 개별적, 사적 관계로 함몰시키는 대신 노동력 재생산이 이뤄지는 사회적 구조에 주목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과 노동력 재생산의 관계를 다뤘고,[48]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노동력 재생산 과정에서 수행되는 여성의 역할에서 여성억압의 근원을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계급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항상 잉여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착취 가능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영원히 살 수 없으며, ‘마모되고 죽고’ 새로운 노동력으로 최소한 똑같은 양의 신선한 노동력이 계속해서 교체되어야 한다. 세대교체를 통한 교체가 이루어질 때, 여성이 출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의 노동 능력이 출산 기간 동안 다소 제한되면서 지배계급에게 모순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은 남성에 더 큰 생계유지 책임과 여성의 더 큰 필수 노동 책임, 그리고 가부장제를 이용했다. 결국 이 같은 조건에서 여성은 가정에서는 가사, 출산, 돌봄의 부담을 떠맡고, 직장에서는 남성이 중심이 되어, 여성은 ‘남성 가장’을 보조하는 ‘생계 보조자’로 위치지어진다. 이에 여성은 더욱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으며, 나아가 가부장제는 노동자계급 내 젠더 위계와 분열을 유발하여, 계급적 단결을 가로 막아 자본이 노동력의 가치를 감소시킬 수 있도록 한다. 둘째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가부장제 간의 관계에 관한 토론이다. 1970년대 서구에서 하이디 하트만은 〈마르크스주의와 가부장제는 화해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마르크스주의가 ‘계급 환원주의’라며, 여성 억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억압 체계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여성 억압을 설명하려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두 개의 독립적인 체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가부장제는 자율적인 억압 체계이며, 자본주의와는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봤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불렀다. 그러나 리즈 보겔과 같은 다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 특히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더 가까운 이론가들은 여성 억압은 자본주의 내에서 기능하며, 가부장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종속된 관계라고 봤다. 따라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별개의 체계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하나의 물질적 토대 위에서 여성 억압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전자는 이원론/이중체계론 또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후자는 일원론이자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혼용해 쓴다. 한편, 일부 좌파는 페미니즘을 잘못된 관점으로 부르주아 여성운동과 동일하게 보아 자본주의 여성억압에 맞선 운동을 사회주의 여성해방운동이라고 부른다. 전진이 말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내용은 ‘6.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략’에서 살펴보자. 셋째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계급환원론이라는 딱지다. 자율주의 페미니스트나 이중체계론자 그리고 최근에는 사회재생산 페미니스트까지 마르크스주의를 계급환원론이라고 비판하며 자신의 논지를 편다. 그러나 스페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호세피나 마르티네스가 잘 지적했듯이, “‘계급 환원론’이라는 용어에는 난점이 있다. 마치 ‘젠더’ 요구를 ‘계급’ 요구에 대립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젠더냐 계급이냐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내의 경제주의, 부문 주의, 조합주의 관점이다. 계급적 관점에서라면, 노동자 운동 내 분열과 모든 성차별, 인종차별, 그 밖의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제기할 것”이다.[49] 여성 억압에 관한 경제주의적 입장이 널리 퍼진 이유는 각국에서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이 가부장적인 경제주의적 환원론을 취했고, 노동운동에서도 강력한 노동 관료제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노동 관료제는 여성, 가장 불안정한 처지의 청년, 이주민,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사람들 등 노동자계급 내에서 가장 착취당하는 부분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키려 한다.”[50] 6.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략 이제까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역사적 전개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다시 간추리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유물론적 관점에 따라 여성억압의 기원이 사적 소유에 있다고 봤다. 노동자계급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하여 생산과 재생산을 분리하고 재생산은 사적으로 여성에게 전가한다. 여기서 재생산노동은 원래부터 여성에게 부합하는 일이라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동원되어 차별적인 성별 노동 분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변혁을 우회할 수 없다고 본다. 이를 위해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과 노동자계급이 동맹하여 여성해방을 노동자혁명의 중심 과제로 여겼던 러시아 혁명을 원류로 삼는다. 이때 노동자들은 가사노동을 사회화했을 뿐 아니라 동성결혼의 권리 등 현재도 접근하기 어려운 수많은 권리를 쟁취했다. 그러나 이후 “스탈린주의와 노조 관료주의, 국가기구로 넘어간 사회운동가와 비영리 단체의 탈정치적 분열로 노동자계급과 여성 간 동맹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페미니즘은 젠더에 따른 일체의 차별과 억압을 폐지하려는 사상이지만,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즉,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에는 과연 ‘어떤 정치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돼야 한다. 우리는 그 정치란 노동자계급정치여야 한다고 말한다. 즉,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노동자 헤게모니에 기초하여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그 토대부터 뒤엎을 변혁 전략을 취한다. “계급투쟁에서 헤게모니란 한 계급이 지배적인 위치에 서서 다른 계급들과 다양한 사회세력들을 이끌 수 있는 힘”[51]을 뜻한다. 노동자 헤게모니의 전략은 노동자계급 중심의 동맹을 건설하여 작게는 개별 페미니즘 사안부터 가부장적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사회 건설까지 여성억압 문제를 계급투쟁의 과제로 삼고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어 왔고, 그 성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성과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차별적인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최근 인셀(‘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로 여성혐오 관념을 내재하고 있다) 문화처럼 여성과 성소수자는 점점 더 혐오와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각 페미니즘 진영의 정치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부르주아 페미니즘은 자유, 평등, 정의라는 자유주의 가치에 근거하여 남성과의 동등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으로 특히 법적, 인습적 차별을 폐지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이들이 성차별을 폐지하려는 이유는 남성과 공정하게 경쟁하려는 데 있다.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체제는 ‘성평등한 자본주의’로 요약되지만, 자본주의는 애초 여성억압적이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요구라 할 수 있다. 여성의 현실이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상층 계급의 여성에 한정된다. 급진주의(분리주의) 페미니즘은 이 체제를 남성지배체제로, 사회의 위계와 모순을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성차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사실상 가부장제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 외의 역사적 설명을 하지 못하며, 계급이 아닌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적대하여 트랜스젠더 혐오와 성차별적인 분리주의로 귀결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사회 불만을 약자에게 전가하는 지배질서에 의해 극우화 경향이 확산되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2008년 자본주의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새로운 저항 운동이 등장하면서 페미니즘 운동, 성소수자 권리 운동, 인종차별 철폐 운동 등 다양한 억압받는 집단 간의 연대를 형성하기 위해 새로운 의미에서 ‘교차성’의 개념이 관심을 모은 데서 비롯됐다. 특히 국내에선 페미니즘 대중화와 맞물려 부상한 터프(TERF,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반대하여 선호되었다. 이러한 교차성은 터프 등 분리주의나 전체주의 세력에 반하여 다양한 하위계층이 겪는 억압을 조명하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교차성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변혁 전략이 모호하다. 이를테면 교차성은 여러 정체성 중의 하나로 계급을 취급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종이나 성별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두지만 계급은 평가절하된다. 그러나 애초 1970년대 사회주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단체 콤바이 리버 콜렉티브(CRC)의 정체성 담론은 계급을 여러 정체성 중 하나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자이면서 흑인여성이자 레즈비언으로서 경험하는 억압을 말하기 위해 정체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동구 붕괴 뒤 포스트 모더니즘의 유행 속에서 콤바히 리버 콜렉티브가 제기한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은 탈계급화한다. 물론, 여성과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모든 문제가 계급으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억압과 착취의 범주를 명확히 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다. 계급은 착취의 영역이며, 성과 인종 등 이른바 정체성은 억압과 차별의 영역이다. 잉여가치 생산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은 다양한 정체성을 활용하여 차별과 억압을 재생산함으로써 착취를 강화한다. 이러한 페미니즘 진영과 다르게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억압의 원인을 찾는다. 이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변혁운동을 조직한다. 이를 위한 핵심적 과제는 노동자계급과 페미니즘 운동 간 역사적 동맹을 다시 세워내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페미니즘을 노동자계급 투쟁의 과제로 세워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혁명적 페미니즘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사회주의 여성단체 ‘빵과장미(Pan y Rosas)’”를 참조한다. 7. 빵과장미 사례 빵과장미는 2003년 아르헨티나에서 창립해 지금은 수천 명으로 성장했고, 멕시코와 스페인, 프랑스 등 14개국에서도 생겨나 국제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있다. 이러한 빵과장미는 “이 고통스러운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야만 전 세계 여성의 삶에 만연한 성차별도 끝장낼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기반으로 삼는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과 성소수자가 진짜로 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회주의혁명만이 여성억압을 끝장낼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 주체는 자본주의 체계가 억압하고 착취하는 노동자계급 당사자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자계급이 페미니즘 운동과 단결하고, 유색인종·원주민·성소수자를 비롯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운동과 단결하면 무적의 세력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빵과장미는 페미니즘 운동을 노동자계급과 연결하고 이들의 요구로 채택하도록 밀어 올리면서 새로운 사회주의 페미니즘 운동을 현장에서 일궈왔다. 빵과장미는 전국 곳곳의 공장과 작업장에 여성위원회(여기에는 여성 노동자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의 배우자나 어머니, 딸도 포함된다)를 조직하기 위해 애써왔고, 성평등을 위해 수많은 계급투쟁을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펩시코공장에서는 하청제도에 반대하고 출산휴가를 늘리며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이끌어 왔다. 남성만 고용했던 마디그라프의 한 공장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일했던 트랜스여성이 여성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파업을 조직하기도 했다. 크라프트 공장에서도 한 여성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하자, 여성위원회가 파업을 조직했다. 참혹한 여성살해에 떨쳐 일어나 아르헨티나를 뒤흔든 니우나메노스 시위에 이어 임신중지 권리 쟁취 투쟁에서도 현장에서 파업을 일으키고 노조 지도부가 여성파업에 가세하도록 끈질기게 압력을 조직했다. 또 나아가 “한 명도 더 일자리를 잃을 수 없다”, “하청제도는 (여성) 폭력이다”라는 구호를 비롯해 니우나메노스 운동 속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조직했다. 결국 2003년 아르헨티나에서 몇십 명으로 시작된 빵과장미는 이제 수천 명의 회원과 지지자를 결집해 단독으로 대중적인 집회까지 조직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다. 이러한 빵과장미는 2001년 아르헨티나 금융위기 동안 벌어진 수많은 공장점거를 비롯한 노동자투쟁 속에서 태어났다. 그중 하나가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브루크만 의류 공장에서 일어났는데 이들은 경찰에 맞서 대결했고, 이 투쟁은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빵과장미 운동을 조직하는 데 주요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들에게 여성의 권리란 사회주의를 통한 노동자의 집단적인 해방 투쟁의 일부였다. 더구나 국내 민주당처럼 말로만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또 다른 자본주의 정치세력 키르치네르 정부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조직돼야 할 필요성은 점점 더 분명해지면서 빵과장미는 힘을 키워 나갔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을 우회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략의 핵심은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반자본주의의 계급동맹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은 함께 여성억압, 성소수자 혐오,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양자의 연대가 아닌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와 계급투쟁으로 이뤄지는 체제 변혁을 위한 전략이다. 노동자혁명으로 쟁취한 사회주의 사회는 여성해방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사적 소유와 임금 노동이 폐지된 사회에서 해방되어 노동자 자신이 생산과 재생산을 통제하여 여성억압의 물질적 기반을 제거하고,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생물학적 성 중심주의나 성별이분법이 아닌 연대적인 새로운 젠더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노동자계급과 페미니즘 운동과의 계급적 동맹을 통한 노동자계급의 페미니즘 운동, 즉 노동자계급으로서 여성과 퀴어, 청소년, 억압받는 우리 자신의 변혁적 여성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끝) [참고]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여성운동위원회,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건설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22.11 양준석, 《오늘날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전략》 오연홍 편, 김요한·양동민·양준석·오연홍·전해성 옮김, 《빵과장미의 도전》, 숨쉬는책공장, 2023 정은희, <식민지 조선의 낙태죄와 세계 자본주의>, 《검은 시위》, 무산여성, 2023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웅진씽크빅, 2010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재만 옮김,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2014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Andrea D’Atri, Translated by Nathaniel Flakin, 《Bread and Roses》, PLUTO PRESS, 2021 Lise Vogel, 《Marxism and the Oppression of Women》, Brill, 2013 ------------------ [1]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고, 임금 노동을 통해 잉여가치(이윤)를 창출하는 계급 사회의 경제 체제 [2] 클라라 체트킨, <오직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함께해야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https://www.marxists.org/deutsch/archiv/zetkin/1896/10/proletfrau.html [3] Lise Vogel, 《Marxism and the Oppression of Women》, Brill, 2013, 153p [4] Andrea D’Atri, Translated by Nathaniel Flakin, Bread and Roses, PLUTO PRESEE, 2021 [5] 앞의 책 [6] Honeycutt, Karen. "Clara Zetkin: A Socialist Approach to the Problem of Woman's Oppression." Feminist Studies, vol. 3, no. 3/4, 1976, pp. 131–144 [7]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제2 인터내셔널에 속한 각국의 사회주의 정당이 자국 전쟁을 지지하면서 분열됐을 때 노동자 국제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도 이들 여성 혁명가들이었다. [8] 셀레스테 무리쇼·안드레아 다트리, <생산과 재생산>, 《빵과장미의 도전》, 숨쉬는책공장 2023, 134쪽 [9] 낸시 프레이저, 《전진하는 페미니즘》, 돌베개, 301-309쪽 [10] 강남식,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과 쟁점》, 기억과 전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11] 여성평우회는 1920년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여성운동이 창설한 근우회를 조직 모델로 삼았다. 유경순, <1980년대 여성평우회의 기층여성 중심의 활동과 여성운동의 방향 논쟁>, 《역사문제연구》, 2020, vol.24, no.1, 통권 43호 pp. 457-499 [12] 앞의 글 [13] 최상림, <여성노동운동 지평확산을 위한 연대모색의 방향>, 《한국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여성노동운동》, 전태일 35주기 기념 대토론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5 [14] 정다울, 이나영, <대학 여성운동을 역사화하기: 대학 사회 및 한국 여성운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사회과학연구》 제28집 1권, 2020 [15] 1995년 북경대회가 주창. 강남식,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과 쟁점, 기억과 전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16] 대표적으로 김대중 대통령 취임에 앞서 평민당에 합류한 이우정, 박영숙은 1세대 여성운동가로 각각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대표, 부대표를 지냈으며, 초대 여성부장관으로 임명된 한명숙 의원도 여연 상임대표 출신. 이후 민주당 공직자나 정부 관료로 진출하는 여성운동가의 수와 단체는 여연에 이어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정치연구소 등으로 그 폭이 넓어졌음. [17] 앞의 책 [18] 정성미,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고용특징>, 한국노동연구원, 2005 [19] http://women21.or.kr/policy/3623 [20] 앞선 20여 년간 합계출산율은 1.5~1.7명 사이로 유지했지만, 1998년에는 1.46명, 2002년에는 1.18명으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21] 2002년 국민연금발전위원회가 ‘저출산’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해 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22] https://www.betterfuture.go.kr/front/policySpace/basicPlanDetail.do;jsessionid=50834218BBCA6D108693F71F18E941BF.node20?articleId=1 [23] http://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79513059713069 [24]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재만 옮김,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2014, 193-194쪽 [25] 앞의 책, 200쪽 [26] 앞의 책, 213쪽 [27]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엥겔스, 여성 노동자, 사회주의 페미니즘>, 《빵과장미의 도전》, 숨쉬는책공장, 2023, 156쪽 [28]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8-9쪽 [29] 앞의 책, 92-94쪽 [30] 앞의 책, 104쪽 [31] 앞의 책, 125-126쪽 [32]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인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빵과장미의 도전》, 174쪽 [33] 앞의 책, 129쪽 [34]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웅진씽크빅, 2010, 249-251쪽 [35]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하), 533-544쪽 [36]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하), 534-544쪽 [37]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1권(상), 223-224쪽 [38]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엥겔스, 여성 노동자, 사회주의 페미니즘>, 《빵과장미의 도전》, 154쪽 [39] Andrea D’Atri, Translated by Nathaniel Flakin, Bread and Roses, PLUTO PRESEE, 2021 [40] Andrea D’Atri, Translated by Nathaniel Flakin, Bread and Roses, PLUTO PRESEE, 2021 [41] Lise Vogel, 《Marxism and the Oppression of Women》, Brill, 2013 [42] 안드레아 다트리, <레온 트로츠키 저작 속의 여성 문제> https://www.leftvoice.org/the-woman-question-in-the-work-of-leon-trotsky/ [43]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성적 관계와 계급투쟁> https://www.marxists.org/archive/kollonta/1921/sex-class-struggle.htm [44]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공산주의와 가족> https://www.marxists.org/archive/kollonta/1920/communism-family.htm [45] 그들은 뉴욕의 실비아 페데리치 등과 함께 국제페미니스트연합을 결성하고 ‘가사노동 임금 지급 운동’을 벌였다. [46] 카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자본론》 1권(하), 688쪽 [47]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인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빵과장미의 도전》, 179-180쪽 [48]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내부토론회, <사회 재생산과 계급 환원론>, 2023.7.25 [49]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사회적 재생산 페미니즘인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인가>, 《빵과장미의 도전》, 172-173쪽 [50] 앞의 책 [51] 양준석, 《오늘날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전략》, 48쪽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힘으로 학교를 바꾸자!사진: 조수영 2025년 11월 20·21일과 12월 4·5일,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연이어 총파업에 돌입했다. 조리실무사, 돌봄전담사, 행정실무사, 특수교육실무사 등 여러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모였다. 필자 역시 교육공무직 노동자로서 12월 4일 파업에 참여했다. 12월 4일 집회에서 노동자들이 외친 구호는 학교 현장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요구들이었다. “방학 중 무임금 철폐”,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중단”, “교육공무직 법제화”, “학교급식법 개정”이 적힌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쳤다. 한 조리실무사는 “경력 10년이 넘었지만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방학 때마다 생계가 끊기는 구조를 더는 감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장의 발언을 들은 뒤 국회까지 행진하며 투쟁의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사진: 조수영 학교는 여전히 차별의 현장이다 전국 유치원‧초·중·고등학교에는 급식·돌봄·행정지원·특수교육 등 80개가 넘는 교육공무직 직종이 존재하며, 약 15만 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학교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오랜 기간 ‘보조 인력’, ‘부수적 업무’를 담당하는 집단으로 취급되어 왔다. 2017년 세 노조(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조)가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로 결집한 이후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이 이어졌지만, 노동조건과 임금체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 공무원과의 기본급 격차는 여전히 크고, 각종 수당·명절상여금·복지제도에서도 차별이 유지되고 있다. ‘학교보릿고개’라고 불리는 방학 중 무임금 구조는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생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조리실·돌봄·특수교육 분야 등에서는 인력 기준이 없어 항상 인력이 부족하며, 이는 심각한 노동강도 증가와 산업재해로 연결된다. 또한 교사·행정직 부족 인력을 교육공무직 노동자가 채우는 일이 반복되면서, 교육공무직은 이곳저곳에서 구멍 난 인력을 메우는 ‘부품 노동’으로 취급받아 왔다. 교육공무직 노동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학교는 겉으로는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교육공무직 차별을 방치함으로써 성별 임금격차를 재생산해 왔다. 학교 현장은 저임금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돌아간다. 따라서 이번 파업은 단지 임금인상을 넘어, 학교 전반에 내재한 차별 구조를 드러내고 바꾸기 위한 투쟁이다. 이번 투쟁은 윤석열 퇴진 광장 이후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었다. 그러나 이번 투쟁이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내부적으로는 임금교섭 성과를 위한 수단으로 일정하게 기능했을지 몰라도, 노동자의 힘으로 학교를 멈춰 세우고 운동을 확장하는 데에는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왜일까? 사진: 조수영 강화되는 민주당 의존 경향 윤석열 탄핵 이후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자,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대표자들은 교육공무직 저임금 해소와 학교급식법 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후 민주당은 ‘학교 비정규직 저임금 구조 해결’을 정책과제로 제시했고, 투쟁은 민주당과의 정책협약 체결 형태로 마무리됐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소속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법안 발의를 논의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여는 등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투쟁을 민주당 국회의원이 대리할 수 있을까? 민주당과 협력하면 ‘비정규직 철폐’, ‘저임금 구조 철폐’라는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요구가 실현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진: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중도보수’라고 규정하며 실제로 반노동적·자본친화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령에서 드러나듯 말이다. 그럼에도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를 포함한 많은 노동운동 지도부는 민주당에 기대 노동조합의 요구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용인할 수 있는 전술적 타협이 아니다. 민주당에 대한 의존은 민주당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노동조합의 요구를 제한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자주적 투쟁으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조직이다. 이 원칙을 포기하는 순간,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운동 능력은 약화된다. 집단행동과 파업으로 관철해야 할 요구는 “정부에 대한 청원” 수준으로 축소되고, 노동운동은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기껏해야 자본주의 질서 내 조정·타협 기능만 담당하게 된다. 교육공무직 법제화 논의는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공무직의 독립된 법적 지위와 기준을 마련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사회적 여론을 명분으로 결국 법 제정을 포기했고, 현재는 요구 수준이 대폭 축소되어 초・중등교육법에 '교육공무직'이라는 단어를 삽입하는 정도로 방향을 좁히고 있다.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요구를 투쟁으로 실현하기보다는,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로 노동조합 요구를 스스로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전국교육공무직본부, 학교비정규직노조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자주적 투쟁으로 개별 학교장 채용 체계를 교육감 직고용으로 전환해낸 경험이 있다. 또한 ‘13%’라는 한국사회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보다 훨씬 높은 조직률을 가지고 있으며, 올해만 해도 지역별 파업을 나흘간 조직할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약하고 투쟁의 성과를 민주당으로 수렴시키는 행보는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요구 실현에 방해가 될 뿐이다. 교육노동자 단결하여 학교 현장을 바꾸자! 교육노동자 간 연대라는 과제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투쟁에서 전교조나 공무원노조의 뚜렷한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학교 내 노동자들이 직종과 고용형태를 넘어 진정으로 연대하고 단결하기까지는 갈길이 멀다. 기억하자. 학교 현장의 갈등은 국가가 주도하는 구조적 차별에서 비롯된다. 교사 인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추가인력 배치 없는 ‘업무 경감’ 정책은 결국 교육공무직에게 업무를 전가하고 노동강도를 높인다. 이 과정에서 교육공무직 내부에서도 업무량과 역할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원인은 인력충원 없이 노동자 사이의 분열을 획책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국가 정책 그 자체에 있다. 투쟁의 대상은 국가일 뿐, 노동자가 아니다. 열악한 학교현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사·공무원·교육공무직 등 교육노동자 전체가 단결해 싸워야 한다. 그럴 때 근본적 변화가 가능하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학교 행정실 법제화를 환영하는 성명을 내며 공무원 직종에 연대의 손을 내민 것도 그 일환이다. 구조적 차별을 극복하고 공동의 노동환경 개선을 이루기 위해 교육노동자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과제다. 4일간의 파업이 마무리되었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정부가 임금교섭에서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신학기 파업 또한 예고했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대표자들은 5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이후 있을 투쟁은 민주당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더 강력한 파업으로 돌파할 수 있기를, 모든 교육노동자의 연대를 실현하는 투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도 그 길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사진: 조수영 -
[2025 정치캠프] 영상으로 다시보기2일차 전체세션: 약탈과 전쟁 • 학살로 치닫는 자본주의 국제질서 2일차 선택세션: 폭발하는 아시아 민중투쟁 2일차 선택세션: 학생운동 재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3일차 전체세션: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3일차 선택세션: 노동자 운동으로 빵과 장미를! 3일차 선택세션: 임박한 발전소 폐쇄, 노동자 기후총파업으로 돌파하자! 각 세션별 소개영상 정치캠프 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