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기초학습#12]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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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사회주의 기초학습#12]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노선

  • 백종성
  • 등록 2026.05.11 17:53
  • 조회수 9,147

착취 당하는 모든 노동자가 날카로운 계급의식을 가진다면 자본주의는 단 하루도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며 정세에 따라 진동한다. 때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나게 퇴보하기도 한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일부로서의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노동자계급’ 그 자체는 구분된다. 특정한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집단, 운동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며 노동자계급을 이끄는 의식적 집단이 바로 당이다.

 

 

[목차]

1. 노동자계급에게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필요한가

1) 노동조합 투쟁,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노동
2)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주의
3) 전 계급의 단결에 기초한 대중권력기관, 노동자평의회
4) 사회주의 정당의 존재 이유, 계급의식의 불균등성
5) 노동자평의회와 사회주의 정당

2. 전위정당에 대한 이해

1) 누가 당원인가? -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규약 1조 논쟁
2) 당과 대중의 관계
3)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조직
4)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 진보정당의 ‘양날개론’ 비판

3. 사회주의 정당의 노선

1) 노동자계급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철폐 - 칠레와 그리스의 경험이 말하는 것
2)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업으로서의 노동자 혁명
3) 노동자계급 국제주의 – 국적이 아니라 계급으로 단결하자
4) 노동자계급 공동전선 추동
5)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형성

 

1. 노동자계급에게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필요한가

 

1) 노동조합 투쟁,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노동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자본가계급은 착취강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자본가계급은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고자 가능한 한 임금을 줄이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늘리고, 더 많은 노동자를 기계설비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지속한다. 많은 경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다수의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가의 착취 강화시도는 생존을 위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 곧 계급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투쟁은 단지 경제적 문제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1838년부터 10여 년간 이어진 영국노동자들의 인민헌장 제정운동, 프랑스 노동자들의 1848년 2월혁명과 6월 봉기, 그리고 1871년 파리코뮌,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독일혁명, 1936년 스페인혁명, 1968년 프랑스 5월혁명, 1987년 한국 노동자대투쟁 등등. 자본주의의 역사는 거대한 계급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와의 적대적 이해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 즉 계급의식을 형성한다.[1] 노동자계급은 이런 각성과 함께 계급조직을 건설해왔다. 계급투쟁의 경험이 조직이라는 물질적 형태로 축적되지 않는다면, 그 성과는 자본의 반격과 함께 형체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중 노동조합은 가장 보편적인 계급조직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철폐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조합의 작동 원리는 자본주의적 임노동관계, 즉 노동력 상품화를 전제한다.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자본가에게 판매해야 생존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본질적 기능은 노동력 상품을 자본가에게 더 높은 가격, 즉 더 높은 임금에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노동력 상품을 (자본가의 의도에 비해) 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노동력을 ‘집단적으로’[2] 판매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조합 활동인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의 본질은, 조합원집단의 노동력 판매 조건을 둘러싼 자본가와의 흥정[3]과 투쟁이다. 미조직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개별로 판매해야 하나, 조직노동자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은,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떨어뜨려 더 많은 이윤을 쌓으려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조합원의 생존권을 방어한다. 이렇듯 노동조합은 착취가 이루어지는 조건을 개선하고, 착취의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줄 수 있는 성과는 자본의 안정적인 이윤축적과 직결되어 있다. 전반적인 이윤축적의 위기가 도래하거나, 한 자본이 다른 자본과의 경쟁에 뒤처져 지불능력이 부족할 경우,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높은 값에는커녕 노동력 재생산비용 이하로 판매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그렇기에 불황이 도래하면 상당수 노동조합은 임금삭감, 노동조건 후퇴, 해고를 용인하기도 한다. 호황기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더 많은 임금과 복지를 요구하며 불황기에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요구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적어도 일상적 시기에는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회사가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는 인식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자본가의 선동 때문이 아니라 노동력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상황, 또한 혁명적 노동자조직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계급의 상황에 기인한다. 앞서 설명했듯, 노동조합은 착취의 원인인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노동력 상품화’ 그 자체에는 맞서 싸우지 않는다. 그저 자본가의 공격에 맞서 방어하고 또 방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조합 투쟁을 ‘시시포스의 노동’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은 바로 이윤의 공격에 대항하려는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방어,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경제가 가지고 있는 임금률을 아래로 억누르는 경향에 직면하여 노동자 계급을 보호하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노동조합의 과제는 자신의 조직을 통해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시장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은 중산계층이 프롤레타리아화되면서 끊임없이 노동시장에 새로운 상품을 제공하기 때문에 계속 파괴된다. 둘째, 노동조합의 목적은 노동자 계급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 즉 사회적 부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몫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몫은 노동 생산성이 향상함에 따라서 자연적인 과정처럼 숙명적으로 계속 낮아진다. … 노동조합을 통한 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들로 인해 일종의 시시포스 노동으로 바뀐다.[4]

2)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주의

 

통상 자신의 활동을 소속 ‘조합원’의 권익 실현에 한정한다는 점 역시 노동조합의 주요한 특징이다. 현실의 노동자들은 수많은 업종과 고용형태로 분리되어 있기에, 특정 노동자의 당면 이해와 전체 노동자들의 장기적 이해는 때때로 충돌한다. ‘조합원’의 이해를 우선하는 노동조합의 동학상,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는 종종 노동조합의 투쟁 과제에서 배제된다.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고 파괴하기까지 하는 정규직 이기주의, 여성노동자 차별을 구조화하는 성별임금 이데올로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등이 그 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체 노동자계급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형성되기도 한다. 특정 산업의 호황과 해당 산업 노동조합이 보유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집단, 소위 ‘노동귀족’이라고 불리는 집단이다.[5] 이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윤율 저하에 따라 자본주의의 위기가 만성화한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더욱 가혹하게 공격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이윤축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군부독재에서 신자유주의로 이행하며 케인즈주의 계급타협 체제를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이 나라의 조건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대다수 노동자계급이 생존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극히 일부 노동자들이 고임금과 기업복지를 누리며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노동자계급운동에 대한 미조직 대중의 반동적 정서를 강화한다. 앞서 말한 대로 미조직 대중은 자신의 노동력을 개별로 판매해야 하는 처지다. 지배계급은 미조직 대중의 분노를 십분 활용해 조직노동자운동을 탄압한다. 노동조합은 이런 한계들을 가진다. 이렇듯 노동조합은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조직이나, 그 자체만으로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이익을 위한 투쟁을 조직할 수 없다.

 

특정한 조직은 특정한 의식을 낳는다. 혁명조직은 혁명적 의식을, 조합조직은 조합적 의식을 낳는다. 단기적이고 부문적인 이해관계에 종속된 노동자 의식,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종속된 노동자 의식을 ‘조합주의’라고 한다. 이렇듯 노동자계급에게는 조합주의를 넘어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추동할 조직이 필요하다.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추동하고 실현하며,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도하고, 나아가 사회주의 권력기관 그 자체로서 노동자계급을 지배계급으로 조직할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조직이 바로 노동자평의회다. 또한 노동자평의회가 창출되기까지 노동조합을 포함한 계급조직 안에서 노동자운동의 발전을 이끌고, 노동자평의회 내부의 한 경향으로서 활동하며, 노동자평의회를 노동자 권력으로 이끄는 의식적 지도조직이 바로 사회주의 노동자당이다.

 

3) 전 계급의 단결에 기초한 대중권력기관, 노동자평의회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폐지가 필수적이다. 사적소유는 자본가들의 개별적 생산수단 소유에서, 주식회사나 국유기업 같은 집단적 소유까지 다양한 형식을 취하지만, 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과 노동과정에 대한 지배력을 독점한다는 점은 다양한 형식을 관통해 동일하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폐지, 즉 사회적으로 연합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며, 따라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쟁취하는 것은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서 핵심적인 토대다. 이 토대는 개별 기업이나 특정 산업부문, 일부 지역에서 마련될 수 없다. 전국적이고 전면적인, 모든 산업에 걸친 변혁이 이뤄져야 생산수단 사적소유를 폐지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노동자계급의 공동체적 소유를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힐 자본가계급의 공공연한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여전히 남아 있을 노동자계급 내 의식 편차를 극복하고 다른 피억압 민중과의 동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국가권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재생산하는 선거, 그 선거로 만들어지는 의회를 바탕으로 노동자 권력을 세울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가 남긴 억압적, 관료적 국가기구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할 수 없다. 기존의 국가 질서는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유지하고 혁명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회혁명에 나선 노동자들은 낡은 억압적, 관료적 국가기구를 해체하고, 작업장에 바탕을 둔 대중적, 민주적 평의회 권력기구를 새롭게 창조해내야 한다.[6]

 

4) 사회주의 정당의 존재 이유, 계급의식의 불균등성

 

착취 당하는 모든 노동자가 날카로운 계급의식을 가진다면 자본주의는 단 하루도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할 것이고, 전투적 임금·단체협상 투쟁은 물론 계급적 연대투쟁에 나설 것이며, 노동자평의회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을 통해 국가권력 장악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7]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며 정세에 따라 진동한다. 때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나게 퇴보하기도 한다. 10% 남짓한 한국 노동조합 조직률이 드러내듯, 일상적 시기에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는 물론이고 노동조합에서 투쟁하는 노동자조차 소수일 수밖에 없다. 일상적 시기에 다수 노동자는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잠식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단결을 막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이 능력주의, 성차별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이 물질적 힘으로서 존재하는 이유, 노동자계급의 다수가 가장 보편적인 계급조직인 노동조합으로조차 조직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사회의 물질적 힘을 지배하는 계급은 사회의 정신적 힘도 지배한다”는 맑스의 말마따나, 피지배계급을 분열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유포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계급의 힘이다.

 

운동의 퇴조기에는 많은 노동자가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에 휩쓸린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당은 일상적 시기와 운동의 퇴조기에도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며 노동자계급을 이끌고자 노력한다. 당의 입장이 당장 큰 반향을 얻기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당은 대중 속에서 호흡하며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하고, 정세에 대한 대응방향을 제시하며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어야 한다. 

 

이렇듯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다. 투쟁하지 않던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자연히 투쟁대열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경제위기가 저절로 계급투쟁 격화를 낳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일부로서의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노동자계급’ 그 자체는 구분된다. 맑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이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 있어서 국적에 상관없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 이해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 있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프롤레타리아 정당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정당들 중에서 가장 단호한 부분, 언제나 운동을 추동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부분이다 :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여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8]

위 글에서 추론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자 계급에게는 다수의 당이 존재한다. 하나의 계급에게는 하나의 당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9] 둘째, ‘공산당’은 다른 프롤레타리아 정당과 대립되는 당은 아니지만 구별되는 당이다. 즉, 공산주의자들은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일부’이다. 셋째, 공산주의자들은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대변한다. 즉, 특정 프롤레타리아의 단기적 이해는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공산주의자들은 양자가 충돌할 경우 단호하게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대변한다. 넷째, 공산주의자들은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는 점에서 선진적 집단이다.

 

이렇듯 특정한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집단, 운동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며 노동자계급을 이끄는 의식적 집단이 바로 당이다. 앞서 살폈듯,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조차 자신이 속한 산업과 고용형태에서 유래하는 부문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당의 주요 과제는 대중의 계급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쟁,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하는 투쟁이다. 당은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을 이끈다.

 

5) 노동자평의회와 사회주의 정당

 

그렇다면 앞서 살핀 노동자평의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필요한가? 그렇다. 계급의식의 불균등성은 노동자평의회 내에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혁명은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자평의회, 두 조직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평의회는 대중의 권력기관이며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 평의회 내에서 다른 정치적 경향과 경쟁하며 대중을 혁명으로 이끌고자 분투한다.

 

러시아혁명 당시를 살펴보자. 혁명의 과정 속에서 당(볼셰비키)과 평의회(소비에트)의 관계는 매우 역동적이며, 사건의 흐름은 노동자평의회가 대중의 요구를 왜곡하고 굴절시키는 경우도 얼마든지 드러낸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등장한 자본가들의 권력기관, 임시정부는 즉각 전쟁을 끝내라는 대중의 요구를 결코 수용하지 않았으나, 소비에트는 10월 혁명 직전까지도 임시정부의 권위를 인정했다. 이는 당면 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으로 못 박은 소비에트 다수파의 정치적 입장에 근거했다. 각 당파는 소비에트에 대한 정치력 영향력을 분점하고 있었고, 볼셰비키를 제외한 정치세력은 소비에트를 그저 임시정부를 지키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했다. 그랬기에 소비에트를 누가 주도하느냐의 문제가 곧 소비에트가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느냐, 혁명이 전진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혁명 초기 소비에트에 대한 볼셰비키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1917년 4월, 전쟁 중인 독일과 즉각 종전협상을 요구하는 대중투쟁이 정치적 위기로 번지자, 임시정부는 소비에트 내 온건 사회주의자들을 임시정부 장관으로 임명해 소비에트를 통제한다. 6월, 임시정부는 ‘전쟁 종식’이라는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러시아군에게 공세를 명령했다. 이에 충실하게 협조하던 소비에트 지도부의 입장으로, 즉각 종전을 원하는 대중의 정서는 소비에트와 더욱 멀어진다. 7월에는 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 수비대 병사들, 크론슈타트 수병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일으킨 봉기로 임시정부-소비에트-대중 사이의 균열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런데도 소비에트 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지도자들은 임시정부에 대거 입각해 자유주의자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볼셰비키를 불법화한다.

 

자본가의 권력기관인 임시정부와 노동자의 권력기관인 소비에트가, 서로 대립하기는커녕 화해하고 융합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볼셰비키를 불법화한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볼셰비키는 민주적 소비에트 권력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이 새로운 혁명에서 소비에트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아니,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비에트는 현재의 소비에트, 즉 부르주아와 협력하는 기관이 아니라, 부르주아에 대당하는 혁명적 투쟁기관일 것이다. 그때에도 물론 우리는 소비에트를 모범으로 삼아 국가 전체를 건설하는 노선을 지지할 것이다. 일반적인 소비에트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반혁명 또 현재의 소비에트의 배신과 싸우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10] 

볼셰비키의 불법화 이후에도 볼셰비키는 대중 속에서 영향력을 넓혀 갔고, 결국 10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현실로 만들었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성공은 난관 속에서도 노동자평의회를 권력의 주체로 세우려는 볼셰비키의 지도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렇듯 사회주의 정당만으로도, 노동자평의회 만으로도 혁명은 불가능하다. 양자의 유기적 결합이 혁명을 가능케한다.

 

2. 전위정당에 대한 이해

 

1) 누가 당원인가? -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규약 1조 논쟁

 

전위정당 개념은 이념적으로는 대중의 ‘자생성’에 대비해 당의 ‘의식성’을 강조한 1902년 레닌의 소책자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처음 제기되었고, 이념과 조직적 측면을 포함한 총체적 제기는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2차 당대회에서 벌어진 규약 1조, 즉 <당원 자격에 관한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1903년 2차 당대회 당시 레닌이 제출한 규약 1조 초안은 다음과 같다.

“당원은 당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물질적 수단으로 당을 지지하며, 당의 한 기구에 속해 활동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마르토프가 제출한 초안은 다음과 같다.

“당원은 당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물질적 수단으로 당을 지지하며, 당의 한 기구의 지도 아래 정기적으로 당을 지원하는 사람이다.”

레닌에게 당원은 당기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었으며, 마르토프에게 당원은 당을 돕는 사람이었다. 전자는 당원 자격을 당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제한하자는 주장이고, 후자는 지지자도 당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살폈듯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의 의식적 일부, 즉 ‘전위’[11]다. 그렇기에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모든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적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삼는다.  

“당 조직으로 공인된 조직의 성원만을 당원으로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특정의 당 조직에 ‘직접’ 가입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당 조직이 아니지만 당과 관련된 조직 속에서 여전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에의 참가와 활동으로부터 제외한다는 의미로서 방기한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반대로 참된 사회민주주의자로 이루어진 우리의 당 조직이 강고하게 되면 될수록, 또 당내의 동요와 불안정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당을 둘러싸고 있으며 당에 의해 지도되는 노동자 대중의 분자들에 대한 당의 영향력은 더욱 넓어질 것이며, 더욱 다면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더욱 성공적으로 될 것이다. 요컨대 노동자계급의 전위로서 당은 계급 전체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급의 당이다. 그러므로 계급의 거의 전체가 (그리고 전시나 내란 시에는 완전히 계급 전체가) 당의 지도하에 행동해야 하며, 가능한 한 긴밀하게 우리 당에 동조하여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에서 계급 전체가 또는 거의 전체가 그들의 전위나 사회민주당의 의식성과 적극성의 수준까지 고양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마닐로프주의거나 추수주의인 것이다. 현명한 사회민주주의자라면, 자본주의하에서는 노동조합 조직조차도 모든 또는 거의 모든 노동대중을 망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전위와 전위에 이끌리는 모든 대중과의 차이를 망각하고, 광범한 층을 점차로 선진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전위의 항상적 임무를 망각하는 것은 단지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며, 우리 임무의 위대성을 외면하는 것이며, 우리 임무를 축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에 동조하는 자와 당에 소속하는 자의 차이, 자각된 적극적인 자와 원조하는 자의 차이를 말살하는 것이야말로 이와 같은 외면이고 망각이다.”[12]

레닌의 강조점은 명확하다. ‘당’은 ‘계급의 당’이지만, 계급 그 자체와는 다른 것이다. 당은 계급 전체를 망라할 수 없으며, 그러려고 해서도 안된다. 당은 계급의 의식적이고 선진적인 부분이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당은 끊임없는 계급투쟁의 부침 속에서도 중핵을 보존하고 확장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권력으로 이끄는 투쟁조직이어야 한다.

 

혹자는 ‘전위당’의 필요가 러시아 전제정의 혹독한 공안탄압에서 기인했으며, 오늘날 전위당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위 인용문에서 레닌은 ‘러시아 상황’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과 계급조직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13] 전위는 정세적으로 끊임없이 진동하는 계급을, 단기적인 경제적 이해를 넘어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노동자계급의 선진층이며, 이 선진 부위의 축적과 단결이 곧 당의 건설이다.

 

자본주의체제를 변혁할 당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당의 성격은 당연히 전위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전위’를 무엇인가 신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 사실 ‘당원은 당기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다’라는 레닌의 주장은 매우 소탈한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앞서 살핀 것처럼 계급의식의 불균등성에 따라 당원 자격을 한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는 음모주의, 엘리트주의와 하등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전위정당은 종종 음모가 집단, 직업적 혁명가들만 가입할 수 있는 집단, 엘리트주의적 집단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레닌 자신이 한 번도 당원 자격을 음모에 능한 직업적 혁명가들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음에도 이런 오해는 널리 퍼져있다. 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논쟁 당시 레닌에 따르면, 당을 구성하는 범주는 다음과 같다.

당 조직은 오직 직업적 활동가로만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극히 제한되고 비밀스러운 조직으로부터 매우 광범하고 자유로운 느슨한 조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 모든 등급, 모든 색채의 다양한 조직이 필요하다. … 마르토프 동지의 정식 초안이 당과 조직 간의 관계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음에 반해, 나는 대회가 소집되기 1년 전에 이미 어떤 조직이 당에 가입해야 하고 어떤 조직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지적하였다. …

1) 혁명가의 조직, 2) 가능한 한 다양하고 광범한 노동자 조직 (나는 이 말을 노동자계급에 한정하고 있지만 다른 계급의 일정한 분자도 일정한 조건에서는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이 두 범주가 당을 구성한다. 다음으로 3) 당에 동조하는 노동자 조직, 4) 당에 동조하지는 않으나 실제로는 당의 지도와 통제 하에 있는 노동자 조직, 5) 적어도 계급투쟁의 대발현의 시기에 부분적으로 사회민주당의 지도에 복종하는 노동자계급의 미조직 분자. … 마르토프 동지의 견해를 보면 당의 경계가 완전히 불분명하다.이러한 느슨함으로부터 어떠한 이로움이 생기는가? 명칭이 널리 퍼져나가는 것이다. 그 해악은, 계급과 당의 혼동이라는 조직 해체의 사상을 가져오는 것이다.[14]

레닌은 ‘혁명가의 조직’만으로 당을 구성해야 한다는 사고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며, ‘가능한 한 다양하고 광범한 노동자 조직’도 당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즉, ‘당의 한 기구에 속해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로 구성된 당은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노동자계급과 가장 넓은 접촉면을 유지하며,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추동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종국적 승리로 이끌고자 분투한다. 전위당은 대중 속에서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하다. 이렇듯 전위당의 본래적 의미, 그 어디에도 엘리트주의와 음모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의문은 남는다. ‘대중 속에서 활동하더라도, 전위당은 당원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므로, 결국 사회주의 정당은 늘 소수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운동의 침체기와 일상적 시기에 사회주의 정당은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 철폐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정치의 대중화는, 그 본질상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대중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와 계급투쟁 확대를 그 필요조건으로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벌어지는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투쟁 확대는 급진적 노동자들의 비약적 확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 이후의 공세기에, 레닌은 혁명이 배출한 급진적 노동자들을 당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위험을 과장하지 말자, 동지들.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자기 이름을 확립했고,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냈으며, 사회민주주의적 노동자 간부들을 형성해 냈다. 그리고 이제 영웅적인 프롤레타리아가 실천으로, 명확히 인식된 목표를 위해, 순수한 사회민주주의 정신으로, 일관되고 집단적으로 싸울 준비와 능력이 있음을 입증했으니, 우리 당 소속 노동자나 중앙위원회의 초청으로 내일 당에 가입할 노동자 백에 아흔아홉은 사회민주주의자일 것임을 의심하는 것은 그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본능적으로, 자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이며, 사회민주주의가 지난 10년 넘게 기울인 활동은 이러한 자발성을 의식성으로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허수아비를 때리지 말자, 동지들! 모든 살아 있고 성장하는 정당에는 언제나 불안정, 동요, 흔들림의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영향받을 수 있으며, 굳건하고 확고한 사회민주주의 중핵의 영향에 따를 것이다.[15]

2) 당과 대중의 관계

 

계급투쟁 확대는 전위와 대중의 간격을 급격히 좁힌다. 격화하는 계급투쟁 속에서 대중은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해 집단적 의문을 제기하며, 이는 사회주의 정치가 급진화된 노동자 대중 속으로 뻗어나갈 계기를 형성한다. 이것이 사회주의 대중화의 조건이다.

 

물론 위기가 사회주의 대중화 자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위기에 조응하는 과제를 제시하고 선도할 사회주의 정당의 주체적 능력이며, 이러한 능력은 일상적 시기에 준비된다. 해당 준비의 핵심은 혁명적 강령, 노동자계급과의 일상적 결합, 그리고 당원의 주체화를 추동할 당내 민주주의다.[16] 당은 노동자계급의 유기적 일원이어야 한다. 당원은 당의 제반 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당론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적 시기에 살아있는 당이 아니라면, 그 당은 혁명적 시기에도 살아있을 수 없다. 전위는 대중과 호흡하며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노력하며, 성공과 실패 속에서 스스로를 교정한다.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를 반추하며, 레온 트로츠키는 당과 대중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대중은 사회재구성에 관한 준비된 계획을 가지고 혁명에 돌입하지 않는다. 다만, 구체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격렬한 감정으로 혁명에 돌입할 뿐이다. 계급대중의 지도적 부위만이 정치강령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혁명의 시험과 대중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도조직이 없다면 대중의 혁명에너지는 피스톤 실린더 안에 들어가지 않은 증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질 뿐이다. 그러나 역시 원동력은 피스톤이나 실린더가 아니고 증기에 있듯이 혁명의 원동력은 대중에게서 나온다.”

“소비에트는 공장위원회에 뒤처졌다. 공장위원회는 대중에게 뒤처졌다. 병사들은 노동자들에 뒤처졌다. 더욱이 지방은 수도에 뒤처졌다. 이것이 혁명의 불가피한 역동성이다. … 볼셰비키 역시 혁명의 역동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졌다. … 대중은 균일하지 않을뿐더러 손을 데이고 소스라치게 놀라자빠진 다음에야 혁명의 불길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볼셰비키는 경험을 통해서만 배우는 대중의 각성 과정을 가속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에 역사는 이들의 참을성에 보답해 주었다.”[17]

트로츠키의 서술은 대중의 자발성과 당의 의식적 지도 사이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전위는 대중의 에너지를 조직하고 방향을 부여하는 피스톤이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역동성은 언제나 대중으로부터 솟아나며, 당은 이를 선도하기도 하고 뒤따르기도 한다. 살아있는 당은 바로 이 흐름을 이해하고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을 갱신할 수 있는 조직이다. 당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을 결합해, 대중의 경험을 의식적 전술로 만들며, 이를 통해 전위와 대중의 간극을 실천으로 메운다. 혁명적 강령, 노동자계급 속에서 활동하는 실천적 당원,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을 보장하는 민주집중제, 이 총체가 ‘인민의 호민관’으로서의 당을, 또한 혁명을 가능케 한다.

 

3)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조직

 

사회주의 정당은 기초조직을 노동현장에 둔다. 노동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생산과 착취가 일어나는 공간,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노동현장으로부터 계급투쟁을 조직하고, 지원하며, 개입하고, 이끈다. 노동현장에 존재하는 당의 기초조직, 노동현장에 뿌리박은 ‘당의 한 기구’, 이를 ‘현장분회’라고 부른다. 현장분회는 생산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며, 사회주의 정당의 이념과 강령을 알리며 대중을 조직한다. 이를 통해 일터에 당의 존재를 드러내고, 일터의 투쟁과 전체 노동자투쟁을 잇는 선전·선동을 수행한다.

 

앞서 살폈듯 노동조합은 조합원에 대한 분배의 확대를 중심 목표로 활동하며, 이는 때로 사회주의 정당의 노선과 충돌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노동현장에서 전개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독립적인 당의 기구가 생산현장에 존재해야 한다. 즉, 사회주의 정당의 당원은 그저 당원증을 가진 노동조합원이 아니라, 일터에 포진한 사회주의 정치활동가를 지향한다. 현장분회는 대규모 제조업 생산현장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소규모 공장이 모인 공단, 서비스 노동 등 당원의 구체적 노동형태에 따라 지역적 형태 등 유연한 조직형태에 기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통상적인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 진보정당의 기본조직은 ‘지역구’다. 지역구 단위로 선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목적은 의회진출이며, 이에 중요한 것은 선거에 필요한 재정과 표의 확보다. 그렇기에 대다수 진보정당은 선거 단위에 조응해 당원을 편재한다. 양자의 차이는 현장분회가 노동자를 ‘계급’이라는 집단으로 조직하고자 하는 데 반해, 지역구 체제는 노동자계급을 자본주의 선거제도 아래 ‘유권자’로 조직한다는 것이다. 지역구 체제 아래 진보정당에 속한 노동자들은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편재되고, 해당 노동자들 또한 시민적 정체성으로 지역구민을 만나며 당의 득표 확대를 위해 활동한다. 진보정당의 당원은 동료 노동자들에게 국가와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노동자 정치운동가로서가 아니라, 최대한 온건한 모습을 요구받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정체화되는 것이다.

 

선거 중심 활동과 조직체계는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에 내재한 국민정당화 경향[18]을 증폭시킨다.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은 애초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출발했더라도, 결국 전 국민을 조직대상으로 삼는 국민정당으로 귀결해왔다. 그 동학은 다음과 같다. 선거에서는 투쟁하는 노동자도 1표,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도 1표, 교수와 변호사도 1표, 자본가도 1표를 행사한다. 그렇기에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선거에서 1/N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 중심 활동과 선거대응에 초점을 맞춘 조직체계 아래, 노동자계급은 당의 핵심 주체가 아니라 일부가 될 수 있을뿐이다.

 

이렇듯 현장정치활동이 존재하지 않는 통상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구조상, 노동자는 일터 바깥에서만 당원이 될 수 있으며, 그것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러할 뿐이다. 이에 따라 일터의 투쟁은 오로지 노동조합에 맡겨지며, 정당의 활동은 현장투쟁과의 결합력을 잃고 의석 확대를 위한 표와 재정의 조직화로 축소된다. 한국에서 이런 모델, 즉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을 하고 진보정당은 정치투쟁을 한다는 역할분담론은 ‘양날개론’으로 제시되어 왔다.

 

4)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 진보정당의 양날개론 비판

 

운동진영에 이른바 ‘양날개론’이 처음 제시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며,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역시 이런 모델에 근거했다.[19] 그렇다면 노동조합의 경제투쟁과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은 어떤 문제를 가지는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리를 전제로 하는 양날개론은 그 자체로 오류다. 정치투쟁은 진보정당이, 경제투쟁은 산별노조가 한다는 역할분담론에 따라, 정치의 공간과 경제의 공간은 무 자르듯 분할된다. ‘현장’은 ‘노동조합 임단협투쟁’을 하는 곳으로, ‘의회’는 더욱 중요하고 거시적인 ‘정치’가 행해지는 것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분리될 경우, 경제투쟁은 그야말로 조합주의적 이해관계에 한정된다. 노동조합 밖에서 사회적 격변이 벌어지건 말건 노동조합은 소속 조합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그만이다. 또한 양날개론 역할분담론에 따라 정치는 현장의 외부, 까마득히 먼 의회에서 직업정치인들이 하는 것이 된다. 정치가 이렇게 정의되는 순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임무는 전적으로 진보정당의 의회진출 확대에 맞추어진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정치’는 진보정당 후원사업과 투표 조직으로 한정되며 노동현장 안에서의 정치활동은 텅 비게된다. 이는 정치운동과 노조운동 양자 모두의 후퇴를 결과한다. 그러나 계급투쟁은 그 자체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융합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경제투쟁인가, 정치투쟁인가? 1996-97 총파업 투쟁은 경제투쟁인가, 정치투쟁인가? 모든 거대한 계급투쟁에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은 뒤섞이며 상호 발전한다.

 

또한 양날개론은 필연적으로 관료주의와 노동자정치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양날개론자들에게 ‘정당’이란 의회에 진출하기 위한 도구이며, ‘정치’란 의회에서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양날개론자들에게 현장투쟁은 고될 뿐 별 성과가 없는 것이며,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임무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의 인적·재정적 자원을 진보정당으로 동원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첩경으로 놓인다. ‘진보정당에 의한 노동조합의 안정적 동원’[20]이 목적이 되는 순간, 노동조합 내에는 ‘묻지마 단결’이 최우선 과제로 놓인다. 노동조합 내 다양한 정치적 경향의 존재에 ‘분열’이라는 딱지가 붙고, 정치적 소수파를 노동조합 밖으로 내모는 행위가 단결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논쟁과 토론을 통해 이루어지는 조합원의 정치의식 발전은 봉쇄된다.

 

정치의 목적이 선거와 의회진출로 놓임에 따라, 당은 계급투쟁이 배출한 전투적 노동자들이 아니라 선거기술자, 출세주의자로 채워진다. 심지어 ‘진보정당도 의석확대를 위해 자본가정당의 정치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정당도 협상에 능해야한다’는 투의 이데올로기가 일종의 교훈처럼 유포된다. 이를 통해 당은 노동자계급의 통제를 벗어나며, ‘국민정당’으로 귀결한다.

 

이러한 한국 양날개론의 원형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서 유래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당의 정치투쟁과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이 “병행 행동”(parallel action)을 하며 “동등한 권위”를 지닌다는 이론은 전적으로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이 이론은 부르주아 사회의 평화롭고 “정상적인” 시기라는 환상에 기초해 있다. 이 시기에는 사회민주당의 정치투쟁이 의회투쟁으로만 소모되어버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노동조합 투쟁과 마찬가지로 의회투쟁도, 부르주아 사회 질서라는 토대 위에서만 수행되는 투쟁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경제개혁 작업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본질상 정치개혁 작업이다. … 최종 목표는 의회투쟁이나 노동조합 투쟁 그 너머에 있다. …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의 “동등한 권위”라는 이론은 단순한 이론적 오해나 혼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잘 알려진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 경향의 표현이다. 이 경향은 노동계급의 정치투쟁을 의회투쟁으로 축소시키고, 사회민주당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정당에서 소부르주아적 개혁정당으로 바꾸려 한다. … 물론 이것은 노동조합 조직을 정당에 흡수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 전체와 그 일부인 노동조합 간의 실제 관계에 상응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 간의 통일을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다.[21]

3. 사회주의 정당의 노선

 

1) 노동자계급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철폐 - 칠레와 그리스의 경험이 말하는 것

 

곳곳에서 제국주의 전쟁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조차 극우세력이 발호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이윤율 저하에 따른 자본의 이윤축적 위기가 있다. 일반화한 저출생 문제가 드러내듯 현 시기 자본주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다. 자본가계급은 체제를 지배할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22]

 

그러나 문제는 어떤 지배계급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혁명을 지향하건 평화적 이행을 지향하건, 지배계급은 평화적 이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배계급의 조직된 폭력, 국가권력이다. 칠레와 그리스의 사례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맞선 결정적 투쟁 없이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레닌이 말했듯, 혁명의 문제는 곧 국가권력의 문제다. 

 

(1) 1973년 칠레의 경험

 

1970년 9월, 칠레 노동자 민중은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아옌데는 사회당, 공산당, 급진당 등 좌파와 중도좌파 정당이 결성한 ‘인민연합’(Unidad Popular, UP) 소속으로 출마하여 토지개혁, 대외 종속 탈피, 기간산업 국유화, 교육·보건 공공성 강화 등 개혁 프로그램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아옌데 정부는 집권 이후 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던 구리 산업을 비롯해 은행, 석유, 통신, 제약 등 주요 부문 국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1971년 7월 11일 의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한 헌법 개정에 기초한 것으로, ‘초과이윤 조항’을 통해 미국 자본에 대한 보상을 최소화했다.

 

‘사회주의로 가는 칠레의 길’을 내건 아옌데 정부는 이러한 개혁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 채 합법적으로, 즉 기존 헌정질서의 틀 내에서 추진하려 했다. 사실 인민연합정부는 출범부터 의회제도를 비롯한 기존질서 유지를 ‘보장법’으로 약속했다.[23] 현존 정치체제와 사법체제, 교육제도·노동조합·사회조직의 사회주의 지향으로부터의 독립, 출판과 대중매체에 대한 국가로부터의 독립 등을 서약하며 제도 내에 존재할 것을 다짐하고서야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국가의 골격을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자본은 아옌데 정부에 극렬한 반격을 개시한다. 칠레 자본가계급은 보수 언론과 정당, 교회, 자본가 단체들을 통해 조직적으로 아옌데 정부를 흔들었다. 특히 1972년 10월에 발생한 '트럭 소유주 연맹'의 대규모 파업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이 파업은 CIA가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기획한 것으로, 물류망을 마비시켜 아옌데 정권을 흔들기 위함이었다.

 

더욱이, 의회 다수와 사법부는 인민연합 정부의 경제 개입 조치를 '합법성 결여'라 비판하며 사보타주에 나섰고, 1973년 8월 22일에는 하원이 아옌데 정부가 '헌법을 위반했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는 군부의 정치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이미 그 무렵 칠레 군대는 우익 쿠데타 세력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칠레 노동자 민중은 자본주의가 정한 틀 내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경제를 마비시키려는 자본의 사보타주와 군부의 쿠데타 위협 속에서, 1972년부터 1973년까지 노동자 민중은 공장과 지역에서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권력기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바로 산업조정위원회(cordones industriales, 직역하면 ‘산업 벨트’)이었다. 산업코르돈(산업조정위원회)은 작업장과 지역 단위를 잇는 노동자 조직으로 공장점거, 생산통제, 분배 조정, 쿠데타에 맞선 방어조직 형성 등을 수행했다. 유통부문에서는 노동자와 주부, 학생들이 '민중공급위원회'(공급과 물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식량과 필수재의 배급을 자율적으로 조정했다. 산업조정위원회와 민중공급위원회처럼 노동자 민중이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고자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들이 전국으로 확장되고 이것이 정부의 지지, 지원과 결합할 경우, 이것이 ‘이중권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옌데 정부는 이런 조직을 잠재적 권력기구가 아니라 자본가들을 놀라게하는 성가신 존재들로 취급했다.

 

1973년 6월,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하자 산업코르돈은 수십 개의 공장을 접수하고 생산과 물자 이동을 자체적으로 통제하며 반격했다. 하지만 아옌데 정부는 이 흐름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화된 기업을 자본가에게 돌려주는 조치를 취했고, 위기 타개를 위해 피노체트를 내무장관으로 기용하는 타협을 선택했다.

 

이는 치명적인 선택이었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부는 쿠데타를 단행했고,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자결했다. 칠레 군부는 대대적 학살을 자행했고, 정치적 억압뿐 아니라 경제 구조의 근본적 재편을 추진했다. 그 중심에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에서 밀턴 프리드먼에게 학습한 신자유주의 교리로 무장한 경제학자 집단, 이른바 ‘시카고 보이즈’가 있었다. 이들은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고삐 풀린 시장 개방, 국영기업의 민영화, 노동권 축소, 복지 철폐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이후 IMF가 세계 곳곳에 강요할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원형이었다. 아옌데 정부가 추구한 ‘사회주의로 가는 평화로운 길’은 무참히 짓밟혔고, 군부와 자본의 연합은 칠레 노동자 민중의 삶을 벼랑으로 몰았다.

 

칠레의 비극은 단지 민중연합의 적들이 악랄해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중립성’에 대한 환상, 부르주아 헌정질서 내에서의 점진적 개혁에 대한 집착, 그리고 노동자 민중이 아래로부터 만들어낸 투쟁과 기구에 대한 방기. 이것이야말로 ‘체제 내 사회주의’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혁명이 배제된 사회주의는, 자본이 허용하는 만큼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2) 2015년 그리스의 경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이어진 유럽 재정위기는 남유럽 국가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겨줬다. 그리스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 중 하나였다.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된 ‘트로이카’는 그리스 정부에 퇴직연령 상향, 연금 삭감, 최저임금  삭감, 단체교섭 제한, 해고 요건 완화, 공공부문 축소 등 가혹한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그리스 실업률은 30%에 가깝게 치솟았고, 청년실업률은 50%를 넘겼다. 분노한 대중은 기존과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24]

 

이런 상황에서 ‘시리자’(SYRIZA)와 같은 급진 좌파 정당들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급진좌파연합’ 이라는 뜻의 시리자는 2004년 여러 좌파정당의 연합체로 결성되었고, 이후 2012년에 하나의 통합 정당으로 재편되었다. 시리자는 긴축정책에 맞선 대중운동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면서 지지층을 빠르게 넓혀갔다.

 

시리자는 2012년 5월 1차 선거에서 16.8%, 6월 2차 선거에서 26.9%를 얻어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를 제치고 제2당으로 부상했다. 2009년 선거에서 4.6%를 획득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이었다. 결국 시리자는 2015년 1월 총선에서 36.3%를 득표하며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트로이카가 강요하는 긴축안에 맞선 대중투쟁이 시리자의 집권 배경이었다.

 

긴축을 둘러싼 협상이 시작되었다. 트로이카는 강경하게 가혹한 조건을 강요했고, 그 강경함 뒤에는 다른 채무국에 대한 경고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5년 7월 9일, 시리자는 굴욕적 긴축안을 트로이카에 제출한다. 2015년 7월 5일 긴축 찬반을 둘러싼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다수가 '긴축 반대'를 결정하고 단 4일이 지난 뒤였다. 7월 12일, 그리스와 트로이카가 합의한 긴축안은 △연금 삭감 △노동유연화 △해고 공무원 재고용조치 등 구제금융 합의에 위배되는 법률 철회 △500억 유로 규모 국유자산 민영화 등을 포괄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중의 기대를 품고 집권한 시리자는 트로이카의 긴축안 집행자로 전락했다. 시리자의 몰락은 통상적인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 정당의 몰락 경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급투쟁의 발전 전망에 중대한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시리자의 굴복이 남긴 상처는 더 컸다. ᅠ

명백히 드러났듯, 긴축의 중단은 열강의 대리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입씨름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시리자는 트로이카와의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 그리스 노동자 민중의 힘에 호소했어야 한다. 또한, 유럽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구하며 트로이카의 악랄한ᅠ강요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어야 했다. 그 힘과 함께 ‘유로존 탈퇴’라는 도약을 감행하지 않고, ‘긴축의 거부’는 불가능했다.

 

시리자가 부상하던 당시, ‘혁명과 개량의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말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많았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시리자의 몰락이 남긴 역사적 교훈을 상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맞선 결정적 계급투쟁 없이 이행은 불가능하다.

 

2)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업으로서의 노동자 혁명

 

사회주의 혁명은 한 유형의 착취자를 좀 더 진보적인 다른 유형의 착취자로 대체하는 지난날의 혁명이 아니라, 모든 착취자의 손아귀에서 생산수단을 빼앗아 전체 사회의 공동 소유물로 만들고 생산자들 자신이 운영함으로써 계급 그 자체를 철폐하는 혁명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계급이 전면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노동자계급의 주도권과 능동성에 바탕을 두어야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이렇듯 혁명은 노동자계급이 사회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며 자신의 억눌린 잠재력을 해방하는 과정이다.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혁명이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는 데 착수하고 그러한 전복에 성공한다고 해서 반드시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은 아니다. 둘째, 또한, 혁명이 중앙정부가 부르주아 정치권력을 집행하는 수단인 대의제도와 행정조직을 제거하는 데 착수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 혁명이 반드시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셋째, 민중봉기가 자신을 공산주의자라 부르는 자들(또한, 실제로 신실한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권력을 쥐여준다고 해서, 그것이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혁명은, 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의 깊은 곳에서 발전하는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의 생산적 힘을 해방하는 정도만큼만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이다.[25]

노동자계급의 힘을 해방하는 과정이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할 때, ‘평의회’는 단지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평의회는 혁명의 발발, 확산, 승리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하는 투쟁기구일 뿐만 아니라 혁명 이후에도 노동자권력의 핵심을 구성한다. 역사적 계급투쟁은 평의회 형태의 권력을 창출해왔다. 1871년 파리코뮌, 1917년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평의회), 1918-19년 독일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자·병사평의회, 1919-1920 이탈리아의 ‘붉은 2년’ 당시 금속산업 노동자들이 주축으로 건설한 공장평의회, 1972-73년 칠레 인민연합 정부 당시 산업코르돈(산업벨트, 산업조정위원회), 1979년 팔레비 왕조를 타도한 이란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쇼라(평의회), 1980-81년 폴란드 국가자본주의에 맞선 ‘연대노조’ 등이다. 

 

계급투쟁 격화와 노동자계급의 자기권력으로서의 평의회 형성이라는 흐름은 한국에서도 드러난다. ‘민주노조’는 고유명사다.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은 국제 노동운동사에서 손꼽힐 정도로 역동적인 것이었다. 한국 민주노조운동은 △생산현장에 기반해 사업장 모든 노동자를 조직했다는 점에서 △총회 민주주의 등 아래로부터의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생산현장 점거파업으로 자본가의 소유·경영권에 균열을 내며 이를 일상의 ‘현장권력 쟁취투쟁’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사업장 담장을 넘어 연대투쟁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평의회적인 것이었다. 주체들이 그것을 노동조합이라 불렀건, 평의회라 불렀건 간에 말이다.

 

이는 서구 노동조합의 전통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19세기 말 영국·독일 등 서유럽 노동조합들이 구성한 노동조합은 숙련노동자 중심의 직종·직능별 조합체제였다. 이는 특정 노동자 부문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에는 기여했지만, 비숙련 노동자와 여성노동자 등을 배제하며 전체 노동자의 단결과 계급적 연대를 제약했다. 이후 서유럽 노동조합들은 산업별 체계로 전환했으나, 이는 생산현장에 기초한 투쟁기관이 아니라 상층 중심의 관료적 협상체계였다. 반면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 노동조합은 단지 임금교섭의 수단이 아니라, 생산현장에서 자본의 독재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계급의 투쟁기관이었다. 이런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적 지향을 집약하는 구호가 바로 ‘노동해방’이었다.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한 투쟁의 일부로서, 노동자계급과 함께 투쟁하며 노동자계급을 이끈다.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계급의 대리자가 아니다. ‘전지전능한 유일당’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운동의 역사적 과정을 안내하고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혁명적 상황을 낳는 것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노동자대중의 운동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에너지를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빼앗아 노동자 자신의 권력으로 대체한다는 궁극적 목표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대중의 에너지가 모이고, 그 에너지가 혁명의 기관차를 움직일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찾게 안내하고 앞장서 이끄는 것이 진정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역할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이러한 자주적 운동을 가로막는 온갖 유형의 관료주의적 질서와 통제, 억압에 맞서 투쟁하면서 노동자 스스로의 운동, 즉 노동자계급의 의식과 조직, 노동자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당이다.[26]

 

3) 노동자계급 국제주의 국적이 아니라 계급으로 단결하자

 

사회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세계혁명의 성격을 지닌다. 자본주의 자체가 생산과 분배를 국제적으로 실행하는 세계체제인 한, 이로부터 단절한 채 한 나라에서 노동자계급 해방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한 곳에서 혁명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회 위기가 표면화한다는 것은 곧 지구적인 차원에서 위기가 누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위기만이 아니라 기후 위기 같은 재난 상황 역시 일국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 범위에서 다가오고 있다. 또한 어느 나라에서 노동자혁명이 일어나든, 반드시 세계 자본가계급이 연합해 이 혁명을 진압하려 정치적, 군사적으로 간섭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경쟁이 초래하는 낭비와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해 전 지구 차원에서 의식적, 계획적으로 생산과 분배를 조직해야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혁명의 시작은 일국적일지라도, 세계혁명의 전망 아래 여러 나라로 확산하며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협력을 성취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노동자 국제주의를 구현하는 것은 단지 고귀한 이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과제다.[27]

 

20세기 식민지 재분할과 대공황 극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차례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인류를 절멸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대결, 그리고 팔레스타인 학살은 또 다른 세계대전의 전조다. 지금,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2차대전 직후 세계 GDP의 50%에 달하던 미국 GDP 규모는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 35%로 줄어들었고, 이제는 세계 GDP의 24-25% 가량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부상했으며[28] 브릭스를 축으로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균열하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조건 속에서 군비지출 확대는 당연한 일이다. 2025년 4월 28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각국 군사비 지출은 2023년보다 총 9.4% 증가했다. 미국 군사비 지출 5.7% 증가, 중국 7% 증가, 러시아 38% 증가, 독일 28% 증가. 일본 21% 증가. 열강은 직접 전쟁을 치르고 있거나, 대리전에 참여하고 있거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자유무역 시대 종말과 보호주의 전면화, 급증하는 군비,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장기화하는 대리전. 이런 열강투쟁을 조건으로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극우세력 득세가 다시 열강투쟁 격화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노동자계급 국제주의는 자본주의 태동 이래 변함없는 과제였지만, 다시 세계대전의 위기 앞에 놓인 오늘날 그 중요성은 그야말로 막중하다.

 

오늘의 한국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연대투쟁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보호주의 관세전쟁과 함께 확산하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맞선 투쟁. 둘째, 군비증강,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무기수출 확대 등 군사화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 셋째,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연대투쟁, 넷째, 이주노동자 탄압과 이주민 혐오조장에 맞선 투쟁이 그것이다.  

 

첫째, 보호주의 관세전쟁이 촉발한 애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야 한다. 이윤축적의 위기 앞에 국가와 자본가계급은 끊임없이 애국주의를 부추긴다. “한국 산업을 살리자”는 선동 뒤에는 보호주의 심화에 따른 경제위기를 명분으로 한 착취강화 시도가 담겨있음은 물론, 자본가들 사이의 투쟁에 노동자계급을 동원하며 ‘타국 노동자계급을 억압해야만 한국 노동자계급이 생존할 수 있다’는 분열 조장이 담겨있다. 사회주의 운동은 국가와 자본의 애국주의 선동에 맞서 세계 노동자계급 공동의 이해를 내세운다.[29] 

 

둘째, 제국주의 전쟁과 군비증강, 전쟁산업 확대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세계 곳곳에 전운이 깔린 지금, 각국 지배계급은 급격한 군비 확대에 나서고 있다. 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유럽 각국 방위비는 나토 가이드라인인 2% 이하였다. 최근 방위비를 5%까지 올리겠다는 유럽 각국의 결의는 노동권에 대한 전면 공격과 복지 축소를 동반한다. 전쟁산업 확대 역시 노동자계급의 투쟁 대상이다. ‘K-방산’은 한국을 제국주의 열강의 보급기지로 만들고 있으며, 이는 그 자체로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 이미 한국은 모든 유럽 국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했으며[30],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산업 노동자들을 미 해군력 증강의 도구로 만들고 있다.

 

셋째,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국제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이스라엘 지배계급이 서방 제국주의의 지원과 묵인 아래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투쟁은 이미 세계정세의 핵심축이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9월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으로 길을 보여주었듯, 한국 노동자계급 역시 일터와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이주노동자 탄압과 강제추방에 맞서는 연대가 필요하다. 9월 4일 미국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에서 이루어진 한국노동자 대규모 체포 구금사태에 분노했다면,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에도 분노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이주민에 대한 혐오선동,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에 맞서 지역과 사업장 모든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구심으로 서야한다.

 

4) 노동자계급 공동전선 추동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다. 산업, 고용형태, 지역, 조직화 수준의 차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경험과 의식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추동하기 위해 공동전선(United Front)에 주목한다. 공동전선은 자본가계급의 공격에 맞선 투쟁,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투쟁, 소수자 차별에 맞선 투쟁 등에 있어 광범하게 적용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공동전선 속에서 △공동전선이 내건 요구의 쟁취 △대중의 계급의식 고양 △투쟁조직 확대를 추동한다. 또한, 그 과정 속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한다. 공동전선 내에는 투쟁하는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량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도 있을 수 있고, 개량주의 정당 자체도 있을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대중의 공동행동 속에서 대중의 혁명적 능력을 확대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 진지를 확대하며, 사회주의자 노선과 개량주의 노선의 차이를 실천적으로 드러내어 혁명적 정치세력을 확대하는 과정 없이 혁명은 불가능하다.

 

공동전선의 필요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30년대 초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게 된 과정이다.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 하의 독일 자본주의는 심각한 경제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 실업자는 1932년 2월 600만 명에 달했고, 중간계급이 몰락하면서 나치당이 급부상했다. 이 시기 노동자계급은 독일공산당(KPD)과 사회민주당(SPD)으로 나뉘어 있었고, 공산당은 1928년 코민테른 제6차 대회가 채택한 ‘사회파시즘론’에 따라 사회민주주의를 파시즘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르주아 지배의 한 형태로 규정했다. 사회민주당이 저지른 역사적 배신[31]이 이러한 인식을 강화시켰다.

 

‘사회민주주의 주적론’에 따라 독일공산당은 당원들에게 “사회파시스트를 공장과 노조에서 몰아내자”고 선동했고, 1931년 프로이센 사회민주당 주정부 해산을 위한 국민투표에 나치와 함께 참여했으며(소위 적색 국민투표), 1년 뒤 나치세력에 의해 프로이센 주정부가 해산될 때 공산당은 이를 기뻐할 정도였다. 이러한 사회파시즘론이 파시즘 부상과 나치 집권의 길을 열었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총리에 임명되고 나치가 정권을 장악했다. 나치는 집권 직후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동시에 불법화했고, 독일 노동조합총연맹을 해체했다. 단결하지 못한 독일 노동자운동은 파시즘에 의해 철저히 분쇄되었다.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공동전선을 구성할 수 있었다면 나치를 막을 수 있었다.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전 마지막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32]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합산 득표는 나치보다 많았다.

정당

득표수

비율

나치당

11,737,021

33.1%

사회민주당

7,247,901

20.4%

공산당

5,980,239

16.9%

중앙당

4,230,545

11.9%

국민당

2,959,053

8.3%

바이에른인민당

1,094,597

3.1%

기타

-

6.3%

이러한 공동전선은 단순한 전술적 연합이 아니라, 공동투쟁으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혁명적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교다. 바로 그러하기에, 사회주의자들은 공동투쟁 속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논쟁할 권리를 보유해야 하며, ‘대중투쟁강령’은 이러한 실천의 매개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은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다. 개량주의 정당들은 선거와 의회주의를 통해 노동자들을 체제 내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민주노총 상층의 노조 관료들은 민주당에 의존해 노동자투쟁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도 대중투쟁강령을 매개로 한 공동전선의 적극적 운용은 필수적이다. 개량주의 정당과 노조 관료들이 장악한 현실 속에서도 노동조합은 여전히 중요하며, 노동자평의회 정신에 입각한 공동전선은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적·전투적·계급적 재편에 있어 핵심적 과제다.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평의회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내에서 활동하며, 또한 다양한 노동자 투쟁조직 내에서 활동하며 노동조합운동의 평의회적 발전을 추동한다. 

 

중요한 것은 공동전선과 인민전선의 차이다. 공동전선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피지배계급의 공동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전술이다. 즉, 공동전선은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전제하며 이에 지배계급 분파와의 공조를 배제한다. 그러하기에 공동전선은 자본가 정당과의 연합을 포괄하는 인민전선(Popular Front)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른바 ‘민주대연합’은 자유주의 정당과 민주당을 포괄하는 전형적인 인민전선으로, 노동자계급을 자본가 정당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시킨다. 인민전선은 노동자운동을 체제 내로 포섭하는 지배계급의 수단일 뿐이다.

 

5)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형성

 

모든 혁명은 억압받는 민중의 혁명이다. 그러나 그 혁명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계급이 민중을 이끄는가, 어떤 계급이 혁명을 주도하는가다. 노동자계급이 주도적으로 제반 사회적 의제에 개입하며 해당 의제의 계급적 본질을 드러내고, 피억압 민중을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대열로 이끌 때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이것이 노동자계급 헤게모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노동자가 이런저런 민중의 투쟁에 단지 연대하는 것으로, 노동자의 요구와 다종다기한 민중의 요구를 기계적으로 조합하고 절충하는 것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 헤게모니는 사회적 억압 자체가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산물이며, 따라서 계급투쟁의 영역임을 실천으로 드러낼 때 형성된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 아래 고통받는 여성의 해방은 기업과 정부에서 여성 고위직을 늘리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별분업과 여성노동에 대한 체계적 저평가는, 자본에 맞선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단결 투쟁을 통해서만 해소된다. 해방은 착취자와 억압자의 성별을 바꾸는 과정이 아니다. 기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이 된 기후재난은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세’와 같이 탄소에 시장가격을 매기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윤을 위한 기후파국을 불사하는 자본주의 생산체제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기후위기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청년취업난은 중장년층 노동자 퇴출로 해결되지 않는다. 청년실업은 노동시간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이윤이 아니라 공공복리를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 이 모든 투쟁이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과 직결되어 있다. 노동자계급은 이에 대한 총체적 투쟁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헤게모니를 형성할 수 있다.

 

만약 노동자들이 조각조각 쪼개져 모두 단기적 이해관계에 함몰되어 있다면,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형성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강력한 노동조합이 소속 조합원들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잔업과 특근을 늘리고, 조합원 자녀에 대한 우선 채용을 요구하며, 기후파국이 오건말건 탄소 다배출 공정 확대를 요구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노동조합은 결코 전체 운동을 주도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사회 각 부문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을 단순히 병렬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계급투쟁의 보편적 관점으로 재조직하는 과정이다. 노동자계급이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 기후정의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계급 적대’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운동의 목표 쟁취를 위해 계급투쟁이라는 투쟁 수단을 제시할 때, 그 투쟁들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겨누는 변혁적 실천으로 발전한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자 ‘계급’의 관점으로 세상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과정, ‘계급’의 관점으로 제반 투쟁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계급은 협소한 단기적 이익을 넘어, 피억압 민중 전체의 해방을 자신의 과제로 내걸 때 비로소 사회변혁의 주도 세력으로 올라설 수 있다. 그것이 노동자계급 헤게모니이며, 그 헤게모니 형성을 주도하는 구심이 사회주의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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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들은 다른 한 계급에 맞서 공동의 투쟁을 수행해야 하는 한에서만 하나의 계급을 이룬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경쟁자로서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다.” - 칽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1845-46년. 

[2]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이 임금에 대한 시장결정 메커니즘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이유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항상 개별적인 노동시장 참여자여야 한다.

[3] 노동조합 관료층의 존재는 노동력 상품의 판매 조건에 대한 흥정이라는 노동조합의 기능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자주성·민주성·연대성·투쟁성·변혁지향성을 강화해 노동조합을 노동자계급의 투쟁기관으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4] 로자 룩셈부르크,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1899년.

[5] 노동귀족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엥겔스의 다음 언급을 보자. “노동조합들은, 자본이 노동자계급을 붙잡아 매는 속박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을 자유롭게 하는 데 성공했는가? … 노동조합들이 그렇게 해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도하지조차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와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영국에서도 다른 모든 공업국에서도 노동조합은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 노동조합들이라는 저항 수단이 없다면, 노동자는 임금 제도의 기준에 따르면 자신의 몫인 것조차 받지 못한다.” - 엥겔스, 「임금제도」, 1881년.

[6]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기본강령」

[7] 경험과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런 관점이 틀렸다는 점을 잘 안다. 그러나 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런 진화론적 낙관론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2인터내셔널의 파산이었다.

[8]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1847년.

[9] 따라서 스탈린주의 ‘유일당’ 이론은 맑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유일당 이론은 그 자체로 노동자 민주주와 양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10] 레닌, 「슬로건에 관하여」, 1917년 7월.

[11] 전위(vanguard)는 본래 군사 용어로, 선두 부대를 뜻한다.

[12] 레닌, 『일보전인 이보후퇴』, 1904년.

[13] 물론, 레닌은 러시아의 극심한 공안탄압을 들어 전위당의 필요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조건에 더해 ‘러시아 상황’을 함께 들어 이루어진 논증이었다. 즉, 러시아의 구체적 상황에서 더더욱 당은 전위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4] 레닌, 『일보전인 이보후퇴』, 1904년.

[15] 레닌, 「당의 재편」, 1905년.

[16] “볼셰비키의 경이로운 성공은 적잖이 1917년에 당이 띤 성격 덕택으로 돌릴 수 있다. … 1917년에 모든 수준의 볼셰비키 페트로그라드 조직 안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론과 전술상의 쟁점을 둘러싸고 자유롭고 활기찬 토론과 논쟁이 계속 벌어졌다. 다수파와 의견이 다른 지도자들이 자유롭게 자기 견해를 위해 싸웠으며, 이 싸움에서 레닌이 패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이 급변하는 와중에 이들이 각 기구 나름의 특정한 지지층에 알맞은 전술과 호소를 재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엄청난 수의 새로운 당원이 충원되었으며 이들도 볼셰비키의 행동 방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혁명의 시간』, 1976년.

[17] 레온 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 1930년.

[18] 숱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 유로코뮤니즘 정당들이 국민정당화되어갔다. 독일 사민당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했고, 기간산업 국유화 강령 등을 폐기하며 스스로를 국민정당으로 선언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1973년 ‘역사적 타협’을 선언하며 기독교민주당과의 협력에 나섰다. 영국 노동당 역시 1950년대 중반 국민정당화를 택했다. 1978-79년 노동당 정부의 임금인상률 제한에 맞선 노동자 총파업(불만의 겨울)으로 인한 노동당 정부 몰락 이후, 대처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프랑스 사회당과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집권 이후 민영화와 긴축으로 전환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1980년대 이후 복지 축소를 주도했다.

[19] 민주노총은 1995년 출범부터 산별노조 건설을 내걸었고, 1996-97 총파업 이후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본격적인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산별노조-진보정당의 양날개론 모델에 근거했다.

[20] 이것이 과거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의 본질이었다.

[21] 로자 룩셈부르크, 『대중파업, 정당, 노동조합』, 8장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의 단결」, 1906년.

[22]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노예들에게서 노예 상태에서의 생존조차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노예들에 의해 부르주아지가 부양되는 대신에 부르주아지가 노예를 부양해야 하는 그런 처지에 노예를 빠뜨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부르주아지는 지배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23] 1970년 9월 4일, 아옌데는 36.6%의 득표율로 대통령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당시 칠레 헌법에 따라,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국회가 상위 두 후보 중 한 명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했다. 아옌데의 인준을 위해서는 기독교민주당(PDC)의 지지가 필요했고, 이들은 아옌데 정부가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보장을 요구했다.

[24] 기존 그리스 정치 판도는 중도우파 신민주주의당(ND)과 중도좌파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 (PASOK)이 번갈아가며 집권하던 구조였다.

[25] 그람시, 「두 혁명」, 『신질서』 1920년 7월 3일자.

[26]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기본강령」

[27]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기본강령」

[28] 최근 중국의 경제위기로 미·중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으나, 이는 상당 부분 착시다. 첫째,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중국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기준으로 본 미국 경제 규모는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중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된다. 둘째, 최근 3년 사이 위안화 가치는 달러보다 15%가량 하락했다. 이에 따라 같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달러 기준으로 본 중국 산출량은 15% 과소평가 된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의 명목 GDP는 28조 달러, 중국은 18조 달러이나,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서는 이미 2014년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앞질렀다.

[29] “공산주의자들은 … 국적에 상관없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 이해를 내세우고 주장한다” -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1847년.

[30]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이 선택지를 제시했다. 한국법은 교전지역 무기수출을 금지한다. 미 국방부는 한국을 설득할 수 있다면, 41일 안에 155mm 포탄 약 33만 발을 항공과 해상으로 수송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 한국 측은 간접지원이라면 수용 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연초부터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한국은 모든 유럽 국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국가가 되었다.” - 2023.12. 04. 워싱턴포스트

[31] 독일 사회민주당은 1919년 로자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하고 독일혁명을 진압한 주역이었다. 1932년 파시즘 부당 당시 독일 공산당의 지도자인 에른스트 텔만은 공동전선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히틀러-파시즘’에 대한 기회주의자들의 과대평가보다 더 재앙적인 것은 없다”, “우리의 전략은 공격의 주요 방향을 사민주의에 돌리는 것이다.” (텔만,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 연설, 1932년 2월), “트로츠키는 진심으로 공산주의자들이 리프크네히트와 로자의 살인자들과 … 공동행동을 하자고 한다. 트로츠키는 여러 글에서 독일공산당과 사회민주당 지도자들 사이의 협상을 요구함으로써 노동계급을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다.” (텔만, 코민테른집행위원회 12차 전원회의 폐회 연설, 1932년 9월),

[32] https://en.wikipedia.org/wiki/November_1932_German_federal_e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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