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을 떠나면 한국에서 안녕이라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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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사업장을 떠나면 한국에서 안녕이라 그랬어

고용허가제 폐지 없이 이주노동자 인권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지독한 위선

  • 이용덕
  • 등록 2026.05.08 08:54
  • 조회수 7,356

최근 잇따르는 이주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행과 괴롭힘 사건은 이주노동자를 한 사업장에 묶어 두고, 사장 동의 없이는 떠날 수도 없게 만드는 한국 이주노동제도의 필연적 결과다.

 

폭행을 당해도, 임금을 떼여도, 위험한 작업장에서 다쳐도 마음대로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면, 이는 노예노동과 다르지 않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꿀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이주노동자 인권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말은 철저한 기만이다.

 

사진: 노동과 세계 

 

이곳에서는 더 이상 인간으로 살 수 없다

 

에어건으로 장기가 파열돼 응급수술을 받고, 기숙사를 비웠다며 뺨을 맞고, 술 취한 관리자에게 박치기까지 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제도가 이주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사이, 이주노동자들은 괴롭힘과 폭행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아무리 심한 괴롭힘과 폭행을 당해도 사업장을 떠날 자유가 없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발급되는 E-9 비자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는 사장의 동의 아래 최초 3년 취업 기간 중 3회, 사장의 추천으로 재고용된 기간 1년 10개월 중 2회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임금체불, 휴·폐업, 성희롱·성폭력, 근로조건 위반 등은 횟수에 포함되지 않지만,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입증하는 동안 계속 그 사업장에 머물러야 한다. 엄청난 부담이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임금체불도 ‘월 임금의 30% 이상을 두 달 이상 지급하지 않은 경우’ 등 피해자 누적될 때까지 참아야 하고 복잡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러니 온갖 불이익을 당하고도 사업장을 쉽게 떠날 수 없다.

 

계절노동(E-8), 일반기능인력(E7-3), 숙련기능인력(E7-4), 회화강사(E—2) 등도 사업장 변경 제한은 마찬가지며, 고용허가제보다 훨씬 어렵다.

 

물론 사업장을 떠나도 어려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업장을 떠나는 순간, 이주노동자는 곧바로 체류 자격 박탈의 위험 앞에 놓이고 3개월 안에 고용노동부가 알선하는 사업장과 매칭되지 못하면 출국해야 한다. 생존의 위험, 체류 자격 박탈의 위험, 강제 출국의 위험이 이주노동자를 계속 쫓아다닌다. 고용노동부가 알선하는 사업장이 지금의 사업장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사업장을 선택해 들어갈 수 없고, 고용센터에서 소개한 사업장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장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단순한 이직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규입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인간으로 살 수 없다”라는 절규입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주노동팀 최정규 변호사, 노동절 맞이 긴급 이주인권딴체 기자회견, 2026년 4월 30일)

 

"베트남으로 돌아가, 집에 가, 한국에서 안녕, 바이 바이"

 

최근 내가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는 3월 10일 이천 중앙산업에서 야간 노동을 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베트남 23세 이주노동자 응웬반뚜안님의 유족 위임을 받아 투쟁했다. 동생이 입국한 끝에 고인이 숨진 지 38일 만인 4월 17일 정주노동자와 차별 없는 배·보상, 공식 사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에 합의했다.

 

응웬반뚜안님은 평소에 야간노동이 힘들다고 말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사업장을 떠날 수는 없는 게 바로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다. 사업장 변경 자유를 가로막는 고용허가제는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위험한 현장 상황을 인식해도 위험하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다.

 

파주 식육가공업체 태운푸드에 다녔던 베트남 이주노동자 응웬꽁투씨는 지난 2월 11일 저녁 7시 반 영하 8도의 날씨에 공장 정문 앞에서 이유도 모른 채 벌을 섰다. 이유도 모른 채 반성을 쓰라고 해서 ‘직원은 거절하거나 불만을 표현할 권리가 없다’라고 썼다. 그 이후 발가락을 다쳐 절뚝거리며 일을 했는데 “두 달 동안 쉬라”라는 말을 들었다.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지만 “베트남으로 돌아가, 집에 가, 한국에서 안녕, 바이 바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장은 이주노동자가 자유롭게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응웬꽁투 반성문 사진: 소금꽃나무

 

언론에 많이 보도된 박치기 사건(술 취한 관리자가 4분 동안 22번 박치기를 한 사건)의 피해자도 상담하고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노동자는 사장의 추천을 받아 재고용 되기 위해 60만 원만 지급하겠다는 관리자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당사자의 신청만으로도 기간 연장과 재입국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사장의 추천이 없으면 불가능하기에 이주노동자는 회사에 찍히지 않기 위해 눈치만 보게 된다.

 

사진: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가능해야 괴롭힘과 폭행뿐만 아니라, 임금체불, 노동안전, 열악한 숙소, 차별 문제 앞에서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독한 위선 아래 계속 쓰러지는 노동자들

 

사업장 변경 자유 없이 이주노동자의 권리보장은 불가능하다. 폭행을 당해도 떠날 수 없다면, 위험한 작업장에서 다쳐도 떠날 수 없다면, 그 노동은 자유로운 노동이 아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지난 4월 22일 민주노총 ‘한국 이주노동제도 진단과 대안 토론회’에서 한은숙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과장)은 “이주노동자는 내국인보다 임금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잔업이 많은 고임금 사업장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에 따른 갑작스러운 이동 증가는 사업주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주고 장기적으로 노동자 숙련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 완전 자유화 어려워”, 매일노동뉴스, 4월 23일)

 

고용허가제를 폐지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이다. 노동부가 주도하는 ‘외국인력 통합지원 TF’에서는 ‘1년간 1회만 제한 후 자유화’와 ‘2년간 2회 제한 후 자유화’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1년간은 한 번만 사업장 바꿀 수 있고, 2년간은 두 번만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 결국 1년이든 2년이든 강제노동을 하라는 뜻이다. 여전히 노동자를 특정 사업장에 묶어 두는 족쇄를 그대로 두겠다는 것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다음 사업장이 어떨지 알 수 없고, 고용센터가 알선한 사업장, 즉 정부가 고용허가를 내준 사업장에서만 일할 수 있으며, 이주노동자 고용 업종과 규모는 일정하게 제한되어 있는데, ‘갑작스러운 이동 증가’라는 핑계를 대고 있다. 애초 고임금 사업장으로의 이동을 문제로 보는 것 자체가 노동권과 인권의 말살이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의 값싼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다. ‘규모는 많이, 권리는 적게’라는 기조 아래 권리 없는 노동자를 확대하겠다는 정책이다.

사업장 변경 제한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분명하다. 바로 자본가들이다. 이 정부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조금도 침해할 생각이 없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은 한국 사회 인권과 노동권을 아래로 계속 끌어내린다. 정주노동자의 권리는 이주노동자와 경쟁한다고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바꾸면서,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상향평준화 하는 것에 있다.

 

이재명은 작년 스리랑카 노동자 지게차 학대 사건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 인권도 지켜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를 폐지하지 않고 기본적 인권을 지킬 수 있는가? 이 지독한 위선 아래 이주노동자들은 지금도 수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다치고, 죽고 있다.

 

이러한 위선에 맞서야 하지 않는가? 이주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다짐하고 이재명 정부와의 투쟁을 다짐해도 모자랄 판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국제연대의 상징인 5월 1일, 메이데이 날 청와대에 가서 이재명의 손을 맞잡았다.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나 비통하다.

 

* 제목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소설가 김애란의 소설집 제목에서 끌어왔다. 작가는 소설에서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라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라는 뜻이 있다고 했다. 글에도 썼지만, 사장들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협박한다. 이때 안녕(바이)은 이주노동자에게 대한 협박과 조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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