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막대한 이윤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 보수 언론은 ‘긴급조정권’ 발동까지 언급하며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정부 역시 "일부 노동자의 과도한 요구"라며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노동자들의 파업권 행사는 정당하다. 그러나 이 투쟁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얻고 반도체사업의 진정한 변화를 도모하려면, 투쟁의 한계도 직시해야 한다.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규직 노동자의 성과급 분배 요구의 한계를 넘어 나아가야 한다.
삼성의 이윤은 노동자계급의 공동노동이 만든 사회적 부다. 바로 그 부를, 또한 그 부를 만들어내는 생산수단을 누가 통제하고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성과급 제도 투명화와 성과급 상한제 폐지, 영업이익 15%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1분기 영업이익은 57조 2,000억원이며, 올해 전체 영업이익은 270조를 훌쩍 넘어 300조원에 이를 거라는 예측이 많다. 인공지능(AI) 산업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AI 서버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고용량 DRAM, SSD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보수 언론은 영업이익의 15%면 대략 40조 원이 넘고 1인당 5~6억 원이나 되는 관계로 노동자들의 요구가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며, 경제 전반에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며 연일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공격한다. 반도체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마치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무리한 요구 때문이라는 거짓 선동을 맘껏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이재명도 나서 “일부 노동자의 과도한 요구, 부당한 요구가 다른 노동자에게 피해를 준다”라고 했다. 보수 언론들은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의 발언은 이런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파업권을 짓밟기 위한 사전 포석일 수 있다.
정당한 출발
노동자들은 그동안 흘린 피와 땀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삼성은 아주 오랫동안 ‘무노조경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짓밟아왔다. 자본의 잔인한 독재 아래 수많은 노동자가 온갖 유해 물질에 중독되어 백혈병과 각종 희귀암에 걸렸다.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체리듬이 파괴되는 야간·교대 근무와 고강도 반복 작업으로 크나큰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어 왔고, 지금도 겪고 있다.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은 각종 재해와 질병에 시달린다 사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2024년 3월, 반올림이 전국삼성전자노조와 함께 발표한 건강실태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수면장애 비율은 일반 임금노동자에 비해 최대 3.7배 높았고, 우울증상 역시 약 2.5배에 달했다. 무엇보다 자살충동은 7배, 자살시도는 10배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2024년 4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화성사업장에 입사한 고 김치엽씨의 자살은 삼성의 성과 압박이 낳은 비극이었다. 그의 SNS와 진료기록 등에는 ‘잘해보려는데 일그러진다’, ‘파트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입사 1년도 안 돼 정신건강 휴직을 할 것 같다’, ‘다른 사람만큼 해야 하는데, 실행 능력이 밑바닥이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삼성의 실적은 이런 노동자들, 또한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지난 4월 29일 삼성에서 제기한 쟁의행위금지 가처분신청 심문회의에서 사측 대리인단은 "영업이익은 원래 주주와 회사의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노력과 기여를 철저히 부정했다. 이런 태도를 보이며, 파업을 봉쇄하려는 회사에 맞선 투쟁은 정당하다.
삼성은 2023년 반도체(DS) 부문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는 이유로, 2024년 초에 지급된 초과이익성과급(OPI)을 0%로 책정하면서도 경영진 1,000여 명에게는 총 1,752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이런 비열한 행동에 분노했고, 노동조합으로 가입해 목소리를 내야만 회사를 바꿀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적자일 때도 자기 잇속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 흑자가 났다고 노동자들의 몫을 순순히 인정할 리는 없다.
영업이익이 천문학적 액수여서 그렇지,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지급 요구 자체는 결코 과도한 요구로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경영진이 이익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란 점에서 투쟁은 꼭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성과급 상한(기본급 1,000%)을 없애고,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삼성을 제쳐 나가는 시점에 노사관계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고, 2024년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첫 파업을 보며 노동자투쟁을 초기에 통제할 필요도 느꼈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SK하이닉스 자본이 물러선 이유는 파업까지는 가지 않았음에도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결집하며 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14일에는 만 명이 넘는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며 자신들의 분노와 요구를 드러냈기에 회사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 자본이 드러내는 위기의식도 현장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잠재력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분명한 한계
그런데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수십만 명이 넘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적극 수렴하고 대변하려 하지 않는다. 정규직의 이해와 요구만을 관철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면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핵심 이유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은 이재명의 경고와 비난을 ‘LG유플러스를 두고 한 얘기’라고 했는데, 이렇게 다른 노조에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이 투쟁의 한계와 약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노동조합 지도부가 계급적 관점, 연대의 관점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가? 단지 투쟁 경험이 부족해서인가?
그것만이 아니다. 삼성전자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투쟁을 전체 노동자와 연결된 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투쟁은 우리들에게만 국한된 투쟁’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따라서 연대를 추동해야 할 필요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이 단호하게 뻗어나갈 수는 없다. 여론의 압박이 세질수록, 파업의 심리적 기초는 더 약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사업장 노조들의 투쟁에서, 노동부의 압박이나 중재를 받고 지도부가 한순간에 뒤로 물러서는 일은 흔하게 발생한다.
이것은 이미 원청 대기업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깊게 분열된 현실을 반영한다. 이미 상당수 노동자가 보통 노동자는 꿈도 꿀 수 없는 성과급과 복지, 상대적 고용안정에 안주하면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고착되면 이른바 ‘노동귀족’이라 불릴 정도로 특권화된 일부 집단이 형성된다. 상대적 고임금과 복지에 길들여진 노동귀족적 정서를 표현하는 실리주의는 더 강하게 성장한다.
물론 이것은 절대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경제위기가 깊어지면 대기업도 노동자들에게 양보할 여유가 없다. 이에 따라 기존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거세질 수 있다. 후퇴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관료주의가 깊게 자리잡힌 현대·기아 등 다른 대공장 노조보다, 이제 막 투쟁에 나선 삼성전자 노동조합들이 더 역동적 모습을 보여 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투쟁의 한계와 약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비정규직을 확대해 막대한 초과이윤을 거둬들이는 자본가들이, 지금도 그들의 편에서 법과 제도를 설계하는 정치인들이, 경찰을 동원해 화물연대 투쟁을 짓밟고 서광석 열사의 목숨을 빼앗은 정부가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을 대변하라’고 지껄이는 치 떨리는 위선과 기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일종의 ‘사회공헌기금’을 회사에 요구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사회적 고립을 벗어날 수는 없다. 이는 따가운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들러리로 세우는 또 다른 기만에 불과하다. 또한 ‘노사 상생’이라는 기조 아래 만들어지는 기금은 하청노동자들의 투쟁력과 단결력을 약화하고, 하청노동자를 평생 비정규직 신세에 가둔 채 던져주는 작은 시혜에 불과하다. 그것이 아무리 ‘사회적 책임’이라는 포장을 두르고 있더라도, 이는 자본이 거대하게 양산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와 그로부터 나오는 막대한 이윤에 대한 묵인을 전제한다. 이 점에서, 제반 사회공헌기금 또한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임은 매한가지다.
물론 하청노동자들이 투쟁하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금은 원청자본이 ‘고달픈 현재에 만족하라’며 건네는 돈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연대의식에서 나와야 한다.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연대하고자 노동자가 모은 기금, 반도체산업 노동자가 안전할 권리를 위해 노동자 자신이 모은 기금은 비정규직 넘쳐나는 반도체산업, 일하다 죽고 다치는 반도체산업을 바꾸기 위한 투쟁의 일부다. 이는 노사가 협조해 조성한 기금, 즉 현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기금과 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성과급 동일 지급 요구, 기본급 동일 인상을 내걸고 투쟁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예전엔 성과급만이 아니라 기본급 동일 인상이 금속노조 정규직 노조들의 기본 요구였다. 하지만 노동운동 후퇴에 따라 연대 정신은 약화했다. 자동차 하청노조들은 “성과급이 완성차 정규직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외치며 싸웠다. 작년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조들이 성과급 삭감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큰 투쟁을 만들지는 못했다.
2024년 12월, 한화오션이 협력회사에도 같은 비율의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실제로는 근속 및 국적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고, 사외업체 노동자, 물량팀 노동자 등은 성과급 지급에서 제외했다.
한화오션이 하청노동자에게 성과급을 지급한 이유는, 470억 손해배상·가압류 청구로 하청노동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던 악덕기업 이미지를 바꾸고, 정부의 원하청 상생모델 구축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 이후 정부 지원을 더 많이 받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하청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장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이 계급적 행동에 나서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단지 노동조합 역사가 짧아서가 아니라 현장이 조합주의, 실리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청·비정규직의 상황은 다르다. 그들은 초과착취 속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하나 둘 저항의 길을 찾고 있다.
“명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전자 화성·기흥·온양 사업장에서 반도체 운송 업무를 위해 하루 12시간 교대근무와 3만 보를 초과하는 ‘과도한 걷는 노동’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종 근골격계 질환이 속출하고 있으나, 1년 단위로 도급계약이 갱신되는 상황에 고용상 불이익을 우려해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말 명일은 126명의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단체협약에 따라 감원 시 사전 통보 및 협의를 거쳐야 하지만, 이를 무시했다” (서비스일반노조 명일지회 기자회견, 2025년 8월 6일)
사진: 참여와 혁신
수년째 부당해고 및 노조탄압에 맞서고 있는 서비스연맹 명일지회, 작년 통상임금 투쟁을 벌였던 금속노조 이엔에스지회는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투쟁의 잠재력도 보여 줬다. 하청·비정규직 주체들의 능동적 개입은 반도체산업에서 원·하청 연대의 길을 실질적으로 만들어내는 가장 주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초호황 국면에서도 지독한 차별과 소외에 짓눌리는 하청·비정규직의 분노는 지금도 산처럼 쌓이고 있다. 따라서 이 지점에 운동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높은 성과급 비중의 위험성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기아차 등에서 ‘영업이익의 몇 %’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이 기본급 대폭 인상에 중심을 두고 성과급 비중은 보조적으로 놓지 않는다면, 나아가 성과급제 철폐를 위해 싸우지지 않는다면 성과급 요구는 오히려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성과급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투쟁은 자본의 이윤 논리에 노동자들을 종속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크다.
왜냐하면 성과급제 자체가 노동자를 통제하는 관리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성과급제는 노동자를 경쟁시키고 분열시키는 데 적합한 제도다. 세 번째로 성과급제는 노사협조주의를 확산하는 수단이다. 이윤이 많이 남을 때는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고, 이윤이 적어지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 논리는 결국 회사가 어려우면 임금삭감을 감내해야 한다, 회사가 어려우면 누군가는 해고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등골이 휘게 일하며 회사가 번창하기를 바라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성과급제는 노동자의 투쟁의식을 마비시켜 노동자들을 노사협조주의의 포로로 묶어두는 장치로 둔갑한다.
지금 성과급 투쟁에서도 삼성전자 반도체를 담당하는 부문(DS)과 모바일, TV 등 가전을 담당하는 부문(DX)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부문 노동자만 챙긴다는 비판을 제기하며 많은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에서도 메모리 사업부와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스템 설계(LSI) 사업부의 차이도 있다.
메모리 부문은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TV와 생활가전 사업은 적자가 예상되는데, 이에 따라 자본은 ‘성과 없는 곳에 보상 없다’는 논리를 들이대며 노동자들을 갈라치고 있다. 자본은 DS의 초과 성과 영업이익을 DX에 분배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업부가 반도체에 무슨 기여를 했길래 내가 받아야 할 성과급을 가져가느냐’고 반발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삼성은 DS부문에서도 메모리, 반도체연구소, TSP사업부 공통조직, 파운드리와 LSI, CSS(LED·전력반도체 등 개발) 등 부문별로 성과급을 차별하겠다고 한다. 입만 열면 반도체가 모든 기술과 모든 노동의 총합이라고 말하면서도 말이다.
이런 갈라치기에 노동조합이 정면으로 반박하며 힘으로 맞서지 못하고, 이에 따라 정규직 내에서도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생기니, 하청·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은 얘기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다. 적자의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하청·비정규직에 대한 초과착취가 아주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있는데도 말이다.
‘성과를 내면 보상받을 수 있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라는 논리를 받아들이면,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 노동자 죽이기 구조조정 앞에서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생존이 기업의 이윤에 달려 있다는 자본가들의 논리에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생존을 기업의 이윤과 상관없이 보장하라는 요구로 나아가지 못한 채,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정리해고 폐지, 비정규직 철폐, 모든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보장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구조조정을 수용하며 노동자 일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적자와 부실의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있지 않다. 전 사회적, 전 세계적 계획화와 민주적 협동를 가로막고 이윤을 위해 무정부적 생산을 지속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으며 자본주의 이윤 논리에 도전하는 투쟁을 향해 대담하게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성과급제 논리에 노동자도 박자를 맞추면, 이런 투쟁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노동자들은 영원히 자본가들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임금인상 투쟁은 투쟁에 족쇄를 채우는 성과급제 논리를 되짚어봐야 하며, 기본급 대폭 인상 기조를 세우고 그에 따른 장기적 투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 방향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운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반도체산업의 초호황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고 있지만, 이를 통한 직접적인 매출이나 수익 창출은 아직 불투명하다.
AI 기반 서비스의 수익화가 지연될 경우,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축소할 수 있으며, 이는 반도체 수요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과잉생산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전쟁은 핵심 원자재 공급 차질과 물류 및 생산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
무정부적 과잉생산과 전 세계 경제위기로 반도체산업 초호황이 끝나거나,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면 자본가들은 임금 삭감, 구조조정 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다. 성과급제 논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만든 과잉생산의 후폭풍을 뒤집어쓰게 된다. 노동자 스스로 고용·임금·노동조건을 희생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와 제대로 맞설 수 없다.
근본 대안을 향해
정의당 등 일각은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초과이윤 환수를 제기한다. 그러나 재벌대기업의 초과이윤에 대한 환수는 어디까지나 계급투쟁의 결과일뿐,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국정농단의 본질은 이재용 3세 승계 작업을 위해 삼성이 국가권력을 매수해 국민연금을 동원한 사건이었다. 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재용은 건재하다. 이렇듯 삼성은 총수 일가의 세습경영을 위해 온갖 불법과 탈세를 저지르면서도,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거부했다. 지금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망가뜨리는 유해물질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국회는 온갖 규제 완화와 재벌 특혜를 선사하며 공적재정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노동자 민중은 특정 기업에 물, 전기 같은 공적 자원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양도하지 않았는데도, 정부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이 자원을 마음대로 쓰도록 허용했다. 이윤에 혈안인 자본주의체제는, 심화하는 기후위기는 안중에도 없다.
이렇듯 이윤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과 그들의 정부는 결코 생산력 발전의 성과, 수십만 노동자의 공동노동으로 만들어지는 성과를 사회 전체를 위해 활용하기는커녕 이를 억압한다. 따라서 그 성과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단절해야 한다. 이윤 논리와 단절해야 한다.
특정 산업에서 창출되는 막대한 이윤은, 해당 산업 자본가의 경영능력이 특출나서가 아니다. 이재용의 경영능력이 뛰어나 삼성전자가 호황을 누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또한 해당 산업의 노동자들만 열심히 일한 결과도 아니다. 적자기업, 혹은 파산기업 노동자들이 게으르게 일해 적자나 파산 상태에 처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생산을 통해 만들어지는 부, 나아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간산업 자체를 전체 노동자 민중이 공유해야 한다. 그 일차적 경로가 산업 국유화와 산업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통제다. 산업을 국유화하고, 해당 산업 노동자 전체가 구성하는 ‘노동자 통제위원회’,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 기구들이 만드는 ‘사회적 통제위원회’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아무리 삼성과 하이닉스라도 이윤을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과 중대재해 예방에 사용한다면,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지 않겠는가?’, ‘TSMC 노동자보다 덜 일한다면 한국 반도체산업이 망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래서 노동자의 국제연대가 중요하다. 국적으로, 산업으로, 사업장으로, 고용형태로, 심지어 사업부서로 노동자들이 쪼개질수록, 자본가들은 웃는다. 전 세계 노동자들의 협력으로 반도체산업을 노동자 민중에게 이롭고 안전한 사업으로 재편하기 위한 국제연대에 나서야 한다.
생산의 사회화는 사업장, 업종, 지역과 국경을 뛰어넘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산과 소비를 균형 있게 조절하고, 각종 생산부문을 세계적 차원의 계획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사회질서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은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절실히 갈구한다. 결국, 자본주의를 변혁할 노동자 ‘계급’의 힘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이 거대한 힘을 조직하는 것은 가장 느린 길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장 확실한 길이며, 유일한 길이다.
엄청난 탄압과 고립 속에서도, 노동자계급 전체의 해방이라는 기준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늘 탄생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강점만이 아니라 약점도 살필 줄 안다. 그래서 더 단단해지고, 깊어진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성과급 투쟁은 많은 악선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악선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 자체의 약점에도 있다. 약점을 돌아보고, 극복하자. 그렇게 전체 노동자계급과 함께 한발 더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