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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발전노동자 대행진, 무엇을 내걸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1. 들어가며 기후위기 대응을 명목으로 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본격화되었다. 현재까지 서천 1·2호기, 영동 1·2호기, 보령 1·2호기, 삼천포 1·2호기, 태안 1호기가 폐쇄되었다. 2026년 태안 2호기·하동 1호기·보령 5호기 폐쇄가 예고 되었지만, 대체 발전소 건설 지연이나 중동전쟁 등을 이유로 순연된 상황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5.02)에 따르면, 2038년까지 태안과 당진, 하동 1~6호기, 보령 5·6호기, 삼천포 3~6호기, 동해와 영흥 1·2호기 등 총 37기를 폐지하고 LNG 발전소로 전환하겠다고 하고 있다. 시기는 상이할 수 있으나, 발전소의 순차적·단계적·일방적 폐쇄 국면은 지속될 예정이다. 자본의 시간표는 매우 빠르고 또 일방적이다. 자본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노동자에게 그 책임과 비용을 전가한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전기차로의 전환 등은 매우 빠르게 추진되고 있지만, 이윤 극대화를 위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불안정한 노동 환경은 여전히 공고하다. 발전소 폐쇄 국면, 노동자들은 “석탄화력발전소는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라는 기치 아래 여러 투쟁을 이어왔다. “414기후정의파업”(2023),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330 충남노동자 행진(2024)”, “발전HPS지부 파업 투쟁”(2024),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 대행진(2025), “고(故)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중대재해 대응 투쟁”(2025) 등이 그 예시다. 그 결과 매년 9월 기후정의행진에는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발전 노동자 총고용보장”이 핵심 요구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작년에는 공공재생에너지법 5만 입법 청원이 성사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6월 13일, 경남도청이 있는 창원에서,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과 공공재생에너지 전환을 내걸고 발전노동자 대행진이 조직되고 있다. 여기서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과정과 반복되는 발전소 노동자의 중대재해가 드러낸 다단계 원하청의 구조를 살펴본다. 이는 결국 비용 절감과 이윤 확보만을 핵심 목표로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만든 결과임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원청교섭 쟁취 국면에서 613 대행진을 위치지어야 할 필요 역시 강조하고자 한다. 2. “저들의 계획 속에 너와 나의 미랜 없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흐름은 순차적이고 연속적이다. 특정 시기에 모든 호기를 한 번에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전소의 일부씩을 꾸준히, 수년간 폐쇄한다. 고용불안과 해고의 결과는 당연히 누적되겠지만, 동시에 이를 노동자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수용하게 할 우려도 크다. 예를 들어 "이번에 몇 호기가 폐쇄되지만, 나는 다행히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안도하면서, 노동자들을 개별적이고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게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발전소 폐쇄 흐름은 그 자체로 매우 일방적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일정 및 대체 건설 계획과 전망을, 소수의 국가 관료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들의 계획 속에 너와 나의 미랜 없지.”라는 한 민중가요의 가사가 현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변화에 적응할 여지조차 없었다. [그림 1] 전쟁, 대체건설 등의 명목으로 일방 순연된 발전소 폐쇄의 시간표 정부입장은 뚜렷하다. 첫째,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라 발생하는 유휴 인력을 한편으론 과소평가하면서도[1]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의 보고서(2021)[2]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고 LNG 발전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약 5,000명의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둘째, 발전소 폐쇄가 되더라도 발전소 내외부로 전환 배치가 될 것이란 기만을 펼치고 있다. 2025년 10월 태안화력발전소를 방문한 김성환 기후부 장관의 발언이 이를 대표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김성환 장관은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 폐지를 “기후위기에 대응한 녹색 대전환의 신호탄”이라고 평가하며 1호기 노동자 129명 전원을 다른 사업장으로 전환 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임시적인 처방에 불과할 뿐 아니라, 발전소 대부분이 부족한 인원 속에서 정년퇴직자 재계약을 통해 버티고 있는 상황을 무시한 발언이다. 더욱이 2026년부터 폐쇄 예정인 다른 호기들의 인력 재배치 방안을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다. 셋째, LNG뿐 아니라 풍력 및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투자와 개발을 공공부문이 주도하고 이를 통해 창출되는 일자리에 노동자들을 전환 배치해야 한다는 요구에 정부는 민간 기업과의 경쟁이나 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하거나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에너지 생산과 분배에 대한 결정권을 틀어진 자본과 정부는 이윤만을 위해 파괴적 생산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미 동서, 서부, 남부발전은 "미래 먹거리 반도체 산업"을 위한 LNG 발전소 건설 입찰에 뛰어들었다. 제반 비용은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하는 반면 세제 혜택과 보조금 등의 혜택은 SK나 삼성 같은 기업에 집중되어 재벌 특혜의 성격을 띠는, 그 자체로도 막대한 물과 전기를 소비하는 그 클러스터에 말이다. 3. 반복되는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드러낸 발전소 위험 현장 발전소 노동자들의 작업복은 상이하다. 꾸준했던 민영화와 외주화로 인한 결과다. 노동자들의 작업복에 적힌 회사명도 다르고 운영 인원 자체도 매우 적다. 형식적·징벌적 안전 체계는 마련되어 있지만, 부족한 인원과 쪼개진 고용 형태는 강한 노동강도와 위험 환경으로 노동자를 내몰고 있다. 그 결과 발전소는 중대재해와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일터가 되었다. 2025년 6월 2일,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선반 작업을 하던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가 작업하던 선반에 방호덮개는 설치되지 않았다. 2018년 컨베이어벨트에 감겨 사망한 김용균 노동자의 중대재해 이후 태안화력발전소의 컨베이어벨트에는 근접 작업 예방을 위한 방호 장치가 빠짐없이 설치되었지만, 감김 사고가 발생하는 선반 전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TBM(Tool Box Meeting, 작업 전 안전 점검 회의) 이나 위험성 평가 등 안전보건 관리 체계는 매우 형식적, 징벌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도급계약이라지만 원청 한전KPS의 구두 작업 지시는 일상이었고, 하청의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위험한 작업이 전가되며 음지화되었다. 2018년 12월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도 발전소 중대재해는 반복되고 있다. 2026년에만 벌써 두 건이 발생했다.[3] 쪼개기 계약으로 인한 인원의 부족, 위험의 전가, 사업주 책임 공백의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듯, 사망자 절대다수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특히 올해 3월 23일 영덕 풍력발전소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는 다단계 하청 구조 아래에서 중대재해가 발전소 유형에 국한되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시 사망자들은 모두 운영사인 ㈜영덕풍력발전에 고용되어 있지 않았다. 3명 모두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외부 위탁업체 소속이었고, 이중 2명은 계약직(일용직) 노동자였다. 당시 작업 현장에 원청인 ㈜영덕풍력발전 소속 직원은 없었다. 육상 풍력발전소 시공을 했던 회사(유니슨)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되고 모든 노동자가 재생에너지 일자리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그 전환될 일자리가 불안정하면 안 된다는 점을 뼈아프게 보여준 사례기도 하다. 한편, 발전소가 곧 문을 닫는다는 명분은, 필요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일례로 고(故)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가 속해있던 하청업체 ㈜한국파워O&M의 정원은 27명이지만, 현재 25명만 일하고 있다. 정원에도 미달하는 적은 수의 노동자가 불안정하게 일한다는 점은 사고의 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은 이러한 쪼개기 계약 구조를, 설비나 안전 관련 문제가 있어도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는 고(故) 김충현 사망사고 이후 구성된 정부와의 협의체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 이하 협의체) 주관으로 17,000여 명의 발전소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25)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발전 공기업에 비해 1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경우 3.73배, 2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경우 3.86배 더 많은 업무 중 사고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해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경우가 32.3%로 상당히 높았으며, 특히 발전 공기업(40.2%), 1차 하청업체(31.6%), 2차 하청업체(42.2%) 노동자에서 두드러졌다. 이는 현장에서 위험을 자유롭게 발언하고 개선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느껴 작업을 멈추면 계약이 끊길까 봐 두렵다"라고, "그래서 작업을 계속 진행하게 된다"라는 한 하청 노동자의 말은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원하청 등 위계화된 고용구조가 발전소 폐쇄 흐름에서 더욱 극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은 이미 알려져 있다. 심지어 노동부도 "(발전소 폐쇄 국면) 인력 감축은 발전공기업에서는 발생하지 않았고, 특히 협력업체(특히 2차)와 자회사 중심으로 발생. 발전공기업 – 자회사 - 1차 협력사 - 2차 협력사(때론 3차까지 포함) 등으로 중층화된 발전사의 고용구조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충격의 차별성으로 이어짐"[4]이라며, 이를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폐쇄된 석탄화력발전소 8기에서 일하던 정규직 601명은 전원 재배치됐지만, 하청 노동자 667명 중 39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발전소 폐쇄로 인해 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용불안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언급한 협의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2차 하청 노동자의 68.1%가 현재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발전소 폐쇄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44.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발전소 폐쇄 이후 본인의 고용을 유지하지 못할 거라는 답변이 자회사 66.4%, 1차 협력업체 85.8%, 2차 협력업체 89%로 매우 높았다. 실제로 1년 단위로 재계약을 반복해 온 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폐쇄가 곧 회사 정원의 감소를 의미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서로 눈치만 보는 거야. 누가 먼저 나가는지. 이게 어떻게 보면 잔인하죠. 같이 일했던 사람끼리 싸움 붙이는 거”라는 한전KPS 하청 노동자의 발언은, 발전소 폐쇄가 노동자 내부의 의자 뺏기 싸움을 유도할 수 있단 우려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용불안은 단순히 불안감으로 그치지 않는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인해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던 사례, 한국GM 공장 폐쇄로 2명의 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렸던 사례, 폐쇄를 앞둔 삼천포발전소 노동자의 자살 사례 등, 일방적 폐쇄와 해고가 노동자를 (가장 극적인 형태인)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 발전소 폐쇄가 만성적, 순차적, 일방적 성격을 가지며, 이로 인한 불안과 해고는 누적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미 폐쇄를 경험한 주체들이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보령발전소의 경우 2026년 6월 30일과 12월 30일 폐쇄가 예고된 상황에서 (그 일정이 변경되었더라도)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면, 그 대상이 본인들이 될 수 있단 있다는 불안감이 현장에 상존하고 있었다. 발전 5사 등 원청은 하청 노동자에 대해 자기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5] 당진 1호기 폐쇄를 경험한 당진발전소 노동자들의 경우 언더-티오로 2~3년째 유지되고 있다. 호남발전소 폐쇄 당시 하청 노동자들은 개별 자구책을 모색해야 했고, 그중 일부는 여수발전소의 2차 하청 노동자로 들어와 매년 계약을 갱신하며 일하고 있다. 한전KPS 하동사업소의 경우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를 단기노무원으로 일방적으로 변경했고, 폐쇄를 명목으로 26년 12월 31일까지만 계약 연장하겠다고 한 상황이다. 2024년 발전HPS 지부의 파업 투쟁 결과 지자체와 발전 5사,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고용보장 협의체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협의체 논의는 폐쇄 연기와 맞물려 올해 12월로 미뤄진 상황이다. 김영구 발전HPS지부 하동지회장은 폐쇄가 예고되었다가 연기되는 반복되는 상황 속 현장이 "희망고문"과 같은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고용과 안전을 책임지는 주체가 다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폐쇄로 인한 대응이 개인적인 자구책 수준으로 축소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4. 비용 절감 자본주의, 심화하는 기후위기 발전소를 포함,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수많은 현장에 뿌리 깊게 정착했다. 이는 그 자체로 불안정한 노동 형태를 양산해 왔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위험 작업을 거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도 초래하고 있다. 일례로 성동조선, 현대중공업의 표준도급계약서(2021)에 따르면, 하청 노동자의 단체행동, 작업거부, 작업 태만으로 원청에 손해를 끼칠 경우 “즉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다. 또한 안전관리 등의 벌점 관리에도 중대재해나 산재 은폐로 인한 벌점뿐만 아니라 일반 안전사고(산재)와 작업 중지 건수에도 벌점을 매기고 있기도 하다. 징벌적이고 통제적인 안전이 원·하청 구조에서 강화될 뿐만 아니라, 작업중지권을 포함한 노동권 침해가 ‘계약’을 통해 관행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며, 이는 하청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면 위험이 해결될 거라는 기대 대신 불이익이 따라올 거라는 불신을 가져오는 핵심적인 기제다.[6] 케이블 통신 노동자 역시 그렇다. SK브로드밴드의 통신망을 유지, 보수하는 노동자들은 20여 개의 2차 하청업체로 쪼개져 고용되어 있고, 계약을 매년 갱신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보건 실태 조사에 따르면,[7] 폭염경보가 발현되었음에도 작업을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작업 중지를 하지 못한 이유로 절차가 복잡하거나 사측의 보복이 두려워서 행사할 수 없다는 응답이 80%로 압도적이었다. 이처럼 용역, 외주, 아웃소싱, 도급, 사내하청, 파견…. 온갖 불안정 노동 구조의 양산은 이윤만을 위한 자본의 전략이었다. 그 결과 불안정 노동과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했다. 다른 한편, 이윤만을 바라보는 자본의 멈출 줄 모르는 과잉 생산은 그 자체로 지구를 파괴해 왔다. 한쪽에서는 경제적 가치가 없다며 대량으로 폐기되는 물품들이 쏟아지지만,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는 식량과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새벽배송이니 로켓배송이니 하며 24시간 돌아가는 생산과 소비, 유통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공장식 축산과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지구 파괴적 산업의 집약화, 비트코인 채굴로 인한 자원 파괴도 일상적이다. 하지만 자본은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은 교묘하게 가린 채, 마치 기후위기의 해결사인 척 행동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친환경 전기차 생산을 통해 미래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HD 현대건설은 2024년 "기후변화 완화"를 재무적 중대이슈 1위 및 환경 · 사회적 중대이슈 2위로 꼽기도 했다. 이것이 기만이자 일종의 그린워싱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될 때는 ‘녹색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으나, 자본의 초점은 “기후위기 해결”이 아닌 “이윤 창출”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매우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파리 기후협약 재탈퇴를 비롯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취임 전부터 기후위기를 ‘사기’라고 주장하며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이를 단행했다. 트럼프는 또한 자신의 패권 유지를 위해 스스로 초래한 전쟁 위기를 기후 규제 완화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 2026년 4월 6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석유 및 천연가스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천연가스 플레어링(Flaring, 가스 연소 배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최종안을 발표했다. 강경한 대이란 노선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와 에너지 수급 불안을 심화시켰고, 이를 다시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환경 규제를 철폐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 2025년 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조기 총선에서 승리하면 가스 화력발전소 50개를 짓겠다”라고 공언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4년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24조 원 규모의 체코 원전 건설 사업 계약이 마무리되면, 원전 산업을 비롯한 우리 산업 전반에도 더 큰 활력이 불어넣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현 대통령 역시 고리 2호기 원전 수명연장을 승인했고, ‘현실적’, ‘기술적 한계’ 등의 이유를 들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터무니없이 낮게 설정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을 비롯한 파괴적 개발도 밀어붙이고 있다. HD 건설이 이스라엘에 수출한 굴착기 등 중장비는 "어떠한 굴착 환경이나 작업조건에서도 최고의 생산성을 약속하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터전을 파괴하는 데 사용되었다. HD현대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이 이스라엘의 학살을 뒷받침하는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었고,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살해당했으며, 지구생태계는 파괴되었다. 자본주의는 또한 현장 노동자 안전 체계 마련을 비용의 문제로 치부하며 비극을 가속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기후위기와 관련한 책임과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윤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는 모두 개별 자본이 결정한다. 그리고 이는 매우 기후부정의하다. 앞선 발전소 사례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 자본은 비정규직 하청 구조를 활용해 에너지 전환의 책임과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는 점을 빌미 삼아, 노동자의 협상력과 힘을 봉쇄하려고도 하고 있다. 공동체의 안전보다 이윤 생산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제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충분히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후 대체 건설될 발전소는 왜 반도체 클러스터에 투입되어야 하나?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 시점, 노동자의 총고용 보장 및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전망을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할 수는 없나?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인 대중교통 노선을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운영할 순 없나? 무기 생산에 쓰일 기술력을 의료기기 생산으로 전환할 순 없나? 우리는 위법하고 부당한 생산을 거부하면 안 되나? 결국 자본의 과잉 생산에 제동을 걸고, 사회적 필요에 따른 생산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이 주체가 된 노동자가 기후정의를 실현한다는 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생산하느냐를 포함해 “왜”, “어떻게”까지 나아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는 자본 중심의 권력관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의 문제기도 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가능한 문제기도 하다. 5. 613 대행진을 원청교섭과 사회적 총파업 조직의 교두보로!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정부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대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위험의 외주화 철폐,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이행 등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불안정 노동의 구조, 위험을 노동자가 말하지 못하는 일터도 여전히 공고하다. 김충현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과 부상, 질병을 반복 목도하는 현실이 아프기도, 또 무력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수록 확고해지는 점들도 있다. 자본과 정부로부터 독립된, 확고한 노동자 투쟁이 필요하다. 정부 논의나 협의체 결과 등을 바라보거나 따라가는 수준으로 우리 역할이 한정될 수 없다. 폐쇄 일정에 시차가 발생하고 분절적 대응 양상이 굳어질수록 힘을 모으기 어렵기에, 원하청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사업장 담벼락을 넘는 활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실제 파업을 만들어내고 사회적 힘을 갖게 만들어내야 한다. 어렵더라도 진짜 사장 국가와 발전 5사를 앉혀야 한다. 613 대행진을 비롯한 집회와 투쟁이, 이러한 투쟁을 건설해 가는 데 교두보로서 역할해야 한다. 이러한 기조 아래, 아래를 강조한다. △ 비정규직 철폐가 곧 기후정의다! 현장 안전장치의 미비·노동자 참여권의 박탈· 인력 부족과 강한 노동강도의 강요·반복되는 쪼개기 계약과 만성적 고용불안·위험 작업의 외주화(이주화) 등은 자본의 비용 절감 기조 아래 자행되고 있다. 고용구조의 더 아래로 내려갈수록 위험 작업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과잉 생산에, 지구에 해로운 생산에 문제 제기하기도 어렵다. 관련된 정보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노동자들이 현장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자본의 계획에 종속되도록 만드는 이 비정규직 시스템이, 자본의 맹목적 과잉 생산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8]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쪼개지고 불안정한 고용구조가, 기후위기 대응과 완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활동에 방해로 작동하는 사례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라서 작업중지권 발휘가 어렵다.”, “일용직이라서 안전보다 고용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발전소 폐쇄 등 산업전환 과정에서 특히 하청 노동자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등등. 자본이 노동자를 저비용(저임금) 고위험 노동으로 내몰고, 필요할 때 쓰다가 손쉽게 내버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던 메커니즘, 과잉·파괴적 생산을 지속시켰던 이러한 구조가 기후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은 비정규직 철폐이며, 비정규직 철폐가 곧 기후정의다. 이러한 요구를 내걸고 총노동 차원에서의 싸움을 조직하자. △ 원청교섭 투쟁 국면, 7월 총파업의 교두보로서 613 대행진을 조직하자 오랜 투쟁 끝에 노조법이 개정되었다. 원청교섭을 쟁취하여 진짜 사장을 교섭장에 앉혀야 한다는 투쟁 국면이 열렸다. 개정 노조법에 의하면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더라도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고 있다면 원청은 하청 노동자와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맞서는 파업, 임금체불에 항의하는 파업이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시행령 등을 통해 하청노조들의 원청 사용자성에 대한 적법성 입증과 판단부터 교섭 창구 단일화 및 분리 절차[9]등 전체 45일간 절차를 밟도록 강제함으로써 원청자본가들이 교섭을 지연, 회피, 거부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많은 자본은 여전히 자신의 사용자성을 거부하고, 교섭에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원청자본가들의 교섭 무력화 시도는 이곳저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2026년 화물연대본부는 서광석 열사의 죽음을 안고, CU 원청을 교섭장에 끌어냈다. 현대IHL지회도 램프 사업 매각 투쟁을 통해 현대모비스 원청 대표를 합의 주체로 끌어냈다. 이들 사례가 보여준 건 명확하다. △개별사업장 투쟁으로만 머물지 않고 전국과 지역 노동자들의 연대와 공동 투쟁을 조직하면 가능하다는 것 △물류 봉쇄나 10일 넘는 파업을 통해 그들의 이윤이 압박받을 때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의 경우 한전KPS의 사용자성을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인정받았다. 2024년 발전HPS지부는 진짜 사장 한국남부발전을 상대로 파업 투쟁을 전개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발전노동자들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선례들을 조합원들에게 더욱 선전하고 토론해 나가자. 물론 다단계 하청 구조 속 나의 원청을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는 쟁점으로 남아있다. 발전소 폐쇄 국면이기에 더더욱, 발전 5사와 국가가 모든 노동자의 고용과 안전을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수의계약 확보나 고용유지 등의 수세적 요구는 자본의 단계적, 분열적 폐쇄 전략 앞에서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크기에, 이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2026년 핵심 요구 중 하나를 “원청교섭 원년! 초기업 교섭 돌파”로 결정했다. 올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도 원청교섭 사업장의 공동 투쟁과 공동 파업을 통해 원청교섭과 7월 총파업의 사회적 파급력을 확대·확장하고, 산별 임단협 투쟁도 총파업 투쟁을 엄호, 지원하는 방향을 결의했다. 금속노조 역시 7 ~ 9월 (원청교섭 사업장 7월 총파업 복무, 8말 9초 총파업) 시기 집중 공동 파업을 원청노조와 공동으로 전개한다고 결의한 바 있다. 613 발전노동자 대행진을 7월 총파업 투쟁을 촉발하는 계기로 활용하자. 대행진을 계기로 만나는 노동자들에게, 7월 위력 있는 총파업을 통한 원청교섭 쟁취 투쟁의 주체가 되자고 조직하고, 설득해 나가자. 발전소 폐쇄 계획도, 발전사 통합 계획도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시간표와 계획에 대응하는 정도를 넘어서자. 이러한 행진과 집회를 전국적으로 조직하여, 현장 노동자의 파업을 넘어 전 사회적인 투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만들어 나가자. [1] 기후부(산자부)는 발전소 폐쇄에 따른 유휴 인력 수를 계산할 때, 단 한 명도 신규 채용하지 않은, 퇴직자 정원을 메꾸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2] “(2034년까지) 폐지되는 30기 인원 모두가 일자리 전환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최대 7,935명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중략) 폐쇄되는 석탄발전소 30기 중 24기는 LNG 발전으로 전환되면 7,935명 중 LNG 발전소 필요한 인원은 3,024명에 불과. 일대일 전환을 가정했을 때, 전환 불가 인원은 4,911명” - 산자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폐지 석탄발전소 활용 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 2021 [3] 2018년 김용균 사망 이후 발전소 사망 현황 (14건 사고 사망, 폐쇄 비관 1명 자살) 1. 2019년 5월 중부발전 신서천화력발전소 37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떨어진 부품에 일용노동자(50대)가 맞아 사망 2. 2020년 9월,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1부두 화물노동자(60대)가 화물차에 적재된 컨베이어스크루장비(석탄하역기)가 떨어지면서 이에 깔려 사망 3. 2020년 11월 28일 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심장선 씨가 3.5미터 화물차 상부에서 석탄회를 싣다 떨어져 사망 4. 2021년 7월 중부발전 신서천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이**(40대)가 전신 화상 치료 중 사망 (2020년 4월 발전소 공사 현장에서 전기설비 폭발 사고로 화상) 5. 2021년 8월 동서발전 당진화력발전소 3부두 선박, 이산화탄소 용기호스 고체적압을 하던 하청 소속 노동자 4명이 질식, 이중 1명(40대) 사망 ○ 2021년 8월 21일 새벽, 남부발전 부산LNG발전소에서 원청 갑질에 항의하며 투신, 자살 시도 6. 2021년 10월 15일 폐쇄를 앞둔 남동발전 삼천포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 노동자(30대) 자살 7. 2022년 3월 폐쇄를 앞둔 남동발전 삼천포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40대)가 3호기 보일러 건물 5층에서 추락사고 8. 2022년 7월 21일, 동서발전 당진화력발전소 내 신축공사현장, 40대 노동자 쓰러짐(폭염으로 당시 34도) 9. 2023년 2월 9일, 중부발전 보령발전소, 1부두 하역기에서 낙탄 청소를 하던 하청 노동자 이**(50대)가 15미터 높이에서 발판(그레이팅)이 떨어지며 함께 추락 10. 2023년 11일 중부발전 신서천화력발전소 본관 5층 보일러실 배관에서 밸브가 폭발해 고압 수증기 누출로, 정비작업 중이던 한전KPS 소속 노동자 1명 사망, 중부발전 소속 노동자 2명 중화상 11. 2025년 6월 2일, 서부발전 태안화력 2차 하청노동자 김충현 사망 12. 2025년 7월 28일, 동서발전 동해화력발전소 환경설비개선공사 비계 해체 작업 중 30대 노동자 추락 사망 13. 2025년 11월 6일, 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해체 작업 중 붕괴 사고로 9명의 노동자 매몰. 1명은 HJ중공업의 하도급업체 코리아카코 직원, 8명은 코리아카코의 일용직 14. 2026년 3월 17일, 한전KPS 인도사업소에서 석탄재 저장 호퍼 내부 점검 중 잿더미 매몰로 노동자 1명 사망 15. 2026년 3월 23일, 영덕 풍력발전소 날개 균열 수리 중 화재로 인해 하청업체 노동자 3명이 사망, 이중 2명은 일용직 [4]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석탄화력발전소 폐지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 (2022) [5] 이러한 불안감이 만성화되면서 무뎌지는 분위기 역시 존재했다. [6]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동조합. “금속노조 작업중지권 실태와 과제”(2024) [7] SK브로드밴드 전송망 유지보수 하청노동자 노동안전보건 실태 토론회. 2024.10.16 [8]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후정의팀 3차 워크숍 토론문 중 [9] 교섭 창구 단일화 대상 확정→자율적 단일화 시도 14일→과반수 노동조합에 의한 단일화→자율적 공동교섭대표단 구성 5일→공동대표단 구성하지 못할 시 노동위원회의 결정→하청노조 사이의 교섭 단위 분리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정세집담회] 613 발전노동자 대행진, 무엇을 내걸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기후위기 대응을 명목으로 석탄발전소 폐쇄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자본이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앞세워 발전소를 일방적으로 폐쇄한 결과 고용불안은 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집중됩니다. 김충현 협의체 설문조사(2025) 결과, 발전소 폐쇄 이후 본인이 고용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답변은 자회사와 협력업체를 가리지 않고 매우 높았습니다. 발전소 현장 다단계 하청 구조도 여전히 공고합니다. 위험작업은 계속 외주화, 음지화되었습니다. 이는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을 비롯한 발전소 중대재해 재발로 이어집니다. 기후위기 시대, 발전소 노동자들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2024년 태안 330 발전노동자대행진, 2025년 창원·태안 531 발전노동자대행진에 이어, 올해 6월 13일 창원에서 다시 투쟁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노조법 2·3조가 개정된 지금, ‘진짜 사장’ 국가와 발전 5사에 맞서 모든 노동자 고용보장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나아가 재생에너지 민영화를 막고, 에너지를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노동자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613 발전노동자대행진을 앞두고, 이러한 투쟁을 함께 만들 방안을 토론해봅시다. - 사회 : 이재백 (발전노조 서부본부장) - 발제 : 조건희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투쟁위원회) - 지정토론 :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 시간 장소 : 5월 22일 금요일 19시 민주노총 15층(서울 중구 정동길 3) (※온라인 줌 병행) ※아래 첨부파일에서 발제자료를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국민배당금 논쟁은 무엇을 드러내는가‘국민배당금’ 제안은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이 누구의 것이며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을 촉발했다. 보수세력은 노동자 파업에는 국가 개입을 요구하면서도, 기업 이윤과 주주 권리는 성역으로 놓으며 색깔론 공세를 폈다. 그러나 국민배당금 제안은 다단계 하청구조, 만연한 노동재해, 기후·환경파괴, 반도체산업의 전쟁산업화 경향을 건드리지 않는다. 반도체산업의 막대한 호황 앞에, 우리는 국민국가 내 분배론을 넘어 생산수단 소유와 통제에 대한 문제제기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이른바 국민배당금 제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이윤을 축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약 57조 원,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37조 원을 기록했다. 이 막대한 이윤은 AI 인프라 구축과 연동된 수요 폭증의 결과다. 일부는 2026년 두 기업이 합산 600조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본다. 이 거대한 이윤은 AI산업의 ‘병목’으로 부각되는 메모리 공급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한 결과다. 초기 AI 인프라 투자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집중되었으나, 최근에는 AI 추론기능 부각에 따라 이를 처리할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이에 따라 병목, 즉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이 나타나고 있다. 5월 11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을 SNS에 게재했다. 요지는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은 산업 기반의 결과이며, 그렇기에 그 과실 일부는 전 국민에게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국민배당금’ 제안이다. 국민배당금의 토대는 지속적 초과이윤에서 나오는 초과세수인데, 김용범의 글은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이 지속적으로 창출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다음날인 5월 12일 코스피가 장중 5% 폭락했고, 보수언론은 이를 김용범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의힘은 ‘공산당 본색’, ‘사회주의 급행열차’, ‘기업이익 배급제’ 등 색깔론 공세를 폈다. 청와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5월 13일, 이재명이 직접 김용범의 국민배당금 제안은 개인의견이고, 배당 제안은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세수에 대한 것이며,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민배당하는 방안”이라는 보도는 “음해성 가짜뉴스”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수언론과 국민의힘 모두 노사관계라는 ‘사적 문제’인 삼성전자 파업에 대해서는 긴급조정권을 통한 국가 개입을 요구하면서도, 이윤에 대한 국가 개입은 비난한다. 양자를 관통하는 믿음은 분명하다. 기업 이윤은 불가침이라는 것이다. 이윤을 위협하는 노동자의 파업권은 국가가 제한할 수 있지만, 기업 이윤과 주주 권리는 국가가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에 따르면 노동자의 요구는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집단 이기주의이나, 기업이 얻은 이윤은 사적 소유라는 성역으로 남아야 한다. 그 이윤이 국가의 공공재정 투입, 세제 혜택과 인허가 혜택, 연구개발 지원, 전력망 구축, 용수·토지 제공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국가는 이윤에 대해 개입해서는 안된다. 보수세력의 발작적 반응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자유주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조차 AI가 만들어낼 지대(rent)와 초과이윤의 집중을 그대로 둘 수 없으며 정상적인 자본수익률을 초과하는 이윤에 대한 과세와 토지·자연자원에 대한 부담금으로 초과이윤을 환수할 수 있다고 제기한다. 나아가 AI 기업의 부분적 국유화, 모두에게 AI기업 주식을 나눠주는 방안까지 거론한다. 물론 이코노미스트의 제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체제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화에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제지조차 초과이윤의 환수를 논하는 상황은, 한국 보수세력의 낡은 반공주의와 자본의 소유권에 대한 물신숭배를 드러내기에는 충분하다. 국민배당금, 어떻게 볼 것인가 첫째, 국민배당금은 이런저런 기본소득론과 마찬가지로 산업의 소유와 통제에 대해, 생산과정에 대해 침묵한다.[1] 국민배당금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구축한 다단계 하청과 비정규직 양산, 반도체산업에 대한 국가적 자원 집중과 특혜, 기후·환경파괴적 생산은 하등 건드리지 않는다. 배당금은 반도체산업의 실태는 그대로 둔 채, 그 불평등을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더군다나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제국주의 패권경쟁과 군사AI 경쟁 속에서 전략물자로 격상된 반도체의 지위와도 결부되어 있다. 이렇듯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전쟁산업 확대의 결과이기도 하나, 국민배당금은 반도체산업의 군사화 문제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AI산업과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경쟁이 전쟁 위험을 높이더라도, 그렇게 발생한 초과이윤을 배당하면 된다는 식이다. 둘째, 국민배당금은 한국 반도체산업의 막대한 초과이윤이 오로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은 국민경제 안에서 완결되는 산업이 아니며, 전 세계에 걸친 노동분업과 공동노동의 결과다. 한국 반도체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취한다면, 그것은 ‘한국인’만의 몫이 아니다.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원료 광물을 채굴하는 저임금 위험 노동, 공급망 하단에 위치한 각국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세계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와 자연자원 수탈의 결과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AI 인프라의 핵심을 장악한 초국적 자본이며, 한국은 더 이상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 위치한 하청 생산기지가 아니다. 그러나 국민배당금은 세계적 착취와 수탈의 산물을 국민국가 내부 분배 문제로 축소한다. 필요한 것은 ‘한국 국민에게 얼마를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한국은 물론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부를 왜 특정 자본이 전용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코노미스트>조차 ‘부분적 국유화’를 거론하는 형국이다. 셋째, 국민배당금 구상은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이 지속적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 가정은 허술하다. AI 인프라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 투자가 실제로 그만큼의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AI 기술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막대한 설비투자가 이윤의 실현을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은 빅테크 기업의 선점 경쟁에 따른 공급 병목의 결과이며, 그 배경에는 격화하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이 있다. 물론 이런 이윤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공급이 확대되고, AI산업에서 나오는 이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빅테크의 투자 조정이 시작되면,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은 급격히 축소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이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19세기 철도산업, 20세기 초반 자동차산업,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닷컴 열풍 등은 모두 광기어린 투자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연쇄적 파산과 거품 붕괴를 겪었다. 반도체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를 제기한다 그럼에도 국민배당금 논쟁은 중요한 균열을 드러냈다. 반도체산업에서 나오는 이윤은 더 이상 ‘특정 기업의 뛰어난 경영 성과’만으로 포장될 수 없으며, 이윤에 대한 처분권은 총수와 주주에게 독점적으로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그러나 국민배당금은 이 정당한 문제의식을 협소한 분배론으로 가둔다. 그 결과 국내 반도체산업 속에서 발생하는 노동 재해와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한 초과착취,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 심화는 물론 세계적 노동분업 속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와 수탈, 환경파괴는 건드리지 않은 채, 이를 용인하는 대가로 소액의 금전을 건넨다. 필요한 것은 국민배당금이 아니라 반도체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 민중의 통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전략산업’은 사회 전체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국제연대 강화와 함께 AI·반도체산업의 전쟁산업화 중단, 반도체산업 다단계 하청구조 철폐,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노동시간 단축, 노동안전보건조치 강화, 전력과 물 사용에 대한 사회적 통제, 기후위기 대응을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누구의 필요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다. 해답은 반도체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계급의 산업통제,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에 있다. [각주] [1] “분배를 가지고 야단법석을 떨고 거기에 중점을 두는 것은 도대체 잘못된 것이다. 소비수단의 그때그때의 분배는 생산조건 자체의 분배의 귀결일 뿐이다 … 물적 생산조건들이 노동자들 자신의 조합적 소유가 되면, 오늘날과는 다른 소비수단의 분배가 나타난다.” 맑스, 「고타 강령 초안비판」 -
[성명] 이것은 현대중공업 자본을 대리한 사법부의 계급투쟁이다2026년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확정했다. 사내하청지회는 2016년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현대중공업이 이를 거부하자 2017년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은 2018년 12월 대법원에 올라간 뒤 무려 7년 6개월 동안 계류됐다. 그러나 대법원이 내놓은 결론은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이 사안에서는, 하청노동자와 근로계약관계를 맺지 않은 현대중공업에 단체교섭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누가 노동조건과 노동과정을 지배하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이윤을 누가 취하는지에 대해 철저히 침묵했다. HD현대중공업 원청은 출퇴근, 휴식시간, 인원 활용과 작업배치, 잔업과 특근, 안전 문제까지 생산과정 전반을 지배한다. 그런데도 대법원 다수의견은 누가 실제로 노동조건을 지배하는지가 아니라, 원청자본과 하청노동자 사이에 형식적 근로계약관계가 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함으로써 다단계 하청구조의 본질을 철저히 외면했다. 현대중공업 전체 노동자 4만여 명 중 2만 5천여 명이 하청노동자다. 원청은 생산과정을 지배하지만 다단계 하청구조 뒤에 숨어 사용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회피한다. 하청노동자들이 만든 이윤은 가져가지만, 위험과 비용은 떠넘긴다. 대법원은 단체교섭 요구가 2016년경 이루어졌고, 개정 노조법에 경과규정이 없다는 명분으로 구법을 적용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얼핏 ‘소급적용 불가’라는 일반적 기준을 적용한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대법원이 개정되기 전 법으로도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사용자 개념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 4명은 ‘구법을 기준으로 보아도,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즉, 이번 판결은 노동자들이 노조법 2조 개정 전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개정 노조법을 소급적용하지 않아서 내려진 필연적 결론이 아니다. 이는 대법원이 자본가들을 대리해 이 땅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대로 수행한 ‘계급투쟁’이다. 우리는 그간 깨닫고 또 깨달아온 교훈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원청교섭은 힘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자.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23년간 쏟아진 그 무수한 탄압 속에서도 노동조합을 지켜 왔다. 노조법 2·3조 개정도 정부나 국회의 선물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숱한 직접고용 쟁취투쟁, 원청교섭 투쟁, 손배가압류 철폐투쟁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모든 원청자본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원청자본의 책임을 지웠다. 노동자는 투쟁으로 그 책임을 다시 새겨 넣어야 한다. 현대중공업 하청·이주노동자의 원청교섭 쟁취투쟁을 엄호하며 진짜 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투쟁, 다단계 하청구조를 깨는 투쟁을 조직하자. 가자! 7월 총파업! 2026년 5월 22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사회적 대화, ‘들어가서 할 말은 하자’는 논리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근거는 비슷하다. ‘들어가서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사회적 대화의 역사는 분명하다. 그간 노사정 대화는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 기간제 고용 일반화, 파견 확대, 직권중재 폐지와 맞바꾼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과 대체근로 허용 등 무더기 노동개악으로 이어졌다. 1998년 같은 합의 형식을 취하건 2006년 같은 배제 형식을 취하건, 사회적 대화의 끝에는 노동개악이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적 대화 2.0’ 역시 전혀 새롭지 않다. 노동운동을 대화라는 허울로 묶어두고 투쟁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며, 결국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개악을 관철하려는 시도의 반복일 뿐이다. 사진: 뉴스1 사회적 대화, 노동개악의 통로 김영삼 정권 이후, 정부와 자본은 종종 ‘경제위기 극복’, ‘고통분담’,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조합 지도부를 노사정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하는 장이 아니라, 자본과 정부가 구조조정과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동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근거는 비슷하다. ‘들어가서 막아야 한다’, ‘할 말은 해야 한다’, ‘대화를 거부하면 노동운동이 고립된다’ 등등.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의 결과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법제화였고, 이 합의는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기틀을 만든 분기점이었다. 결국 1999년 2월,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했다. 2005-2006년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추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수호 집행부는 출범 때부터 사회적 교섭을 강조했다. 그러나 화물연대 파업 탄압, 철도노조 파업 3시간 만에 공권력 투입, 2005년 울산건설플랜트 파업 탄압, 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긴급조정권 발동 등 노무현 정부가 파업을 철저히 탄압하고,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는 이름으로 기간제법 제정과 파견법 개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노사정 대화는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관철하는 공간이 아니라 노동개악을 둘러싼 협의 틀로 작동했다. 2005년 1월과 2월, 이수호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 ‘사회적 교섭방침’을 상정했지만 격렬한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3월 15일 대의원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3월 17일 중앙집행위원회는 대의원대회를 거치지 않은 채 노사정 교섭 추진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11월 비정규직 관련 개악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2005-2006년 내내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로드맵을 노동개악 두 축으로 병행 추진했다. 비정규직법이 기간제·파견 노동을 확산하는 법안이었다면, 노사관계로드맵은 파업권과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안이었다. 민주노총과 비정규직 운동진영이 요구한 것은 상시업무 정규직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폐지, 불법파견 시 직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라는 이름을 붙여 추진한 법안은 정반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간제노동을 일반화하고, 파견노동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법안은 2006년 11월 30일 국회를 통과했고, 비정규직을 줄이기는커녕 기간제·파견 노동을 합법적 고용형태로 고착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6년에는 노사관계로드맵을 둘러싼 사회적 대화가 이어졌다. 민주노총은 2006년 6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노사관계선진화방안, 즉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개악 종합 패키지였다. 2006년 9월, 정부는 민주노총의 뒤통수를 치며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긴급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열어 로드맵에 합의했고, 이날 합의된 내용은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 유예 △기존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를 폐지하되 필수유지업무제도 운용 및 쟁의기간 대체인력의 채용·하도급 허용 △필수공익사업장 확대(혈액공급, 항공, 폐·하수처리, 증기·온수공급업) △부당해고 벌칙조항 삭제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을 60일에서 50일로 단축 등이었다. 1998년과 2006년 모두 사회적 대화가 노동개악으로 이어졌으나,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노사정위에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에 합의했으나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 합의는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했음에도 정부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한국노총·경총과 전격 합의한 사건이었다. ‘개악안에 합의하지 않겠다’, ‘할 말은 하겠다’는 방침으로 참여한다고 해도, 정부와 자본은 사회적 대화라는 틀로 노동운동을 묶어두고, 합의든 배제든 노동개악을 관철했을 뿐이다. 사진: 매일노동뉴스 청와대 노동절 기념식, 어떤 요구를 말해도 그 본질은 노사정 화해의 장이다 결국 1998년 이후 사회적 대화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결과는 분명하다. 그간 노사정 대화는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 기간제 고용 일반화, 파견 확대, 직권중재 폐지와 맞바꾼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과 대체근로 허용 등 무더기 노동개악으로 이어졌다. 합의건 배제건 사회적 대화의 끝에는 노동개악이 있었다. 우리는 이런 경험 위에서 2026년 노동절을 관통하는 정세를 봐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절을 계기로 ‘노동존중’ 외양을 강화하고,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의 틀로 끌어들이려 한다. 5월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부 노동절 기념식에 관한 언론 보도에는 대통령,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위원장, 경총 회장이 나란히 선 장면이 담겼다. 일부 동지들은 정부 행사 참여가 옳은 일이었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투쟁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교섭도 해야 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오전에는 대통령 앞에서 노동자의 요구를 말했고, 노동절 집회에서는 광화문에서 7월 총파업을 선언했다. 정부 행사에 가서는 축사뿐만 아니라 서광석 열사 사망,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노동권, 자본의 원청교섭 거부 실태를 고발하고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비판했다.’ 물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실제로 그런 말들을 했다. 그러나 이런 반론 역시 새롭지 않다. 앞서 말했듯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비슷하다. 핵심은 사회적 대화의 결과는 모두 노동개악이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노동조합은 정부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노동조합 대표자가 ‘요구를 말했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이 어떤 자리에서 이루어졌는가, 어떤 정치적 맥락 속에 배치되었는가다. 정부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적대하는 계급 대표자들을 모아놓고 노사화해주의를 설파하는 자리에 노동조합 대표자가 참여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것도 불과 11일 전 열사가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말이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된 논리도 ‘들어가서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정리해고와 파견제 도입이었다. 1998년 2월 7일자 조선일보 청와대 노동절 기념식은, 국가가 ‘노동절’을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포섭해 재구성하는 자리였다. 언론은 대통령과 경총 회장, 한국노총 위원장과 함께 민주노총 위원장이 나란히 선 장면을 담았다. 바로 이 장면이 정부가 의도한 정치적 효과였다. 정부는 노사정이 함께 박수치는 장면을 연출하며, 불과 11일 전 서광석 열사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지우고 자본에 대한 분노를 희석했으며, 열사의 죽음이 만든 계급투쟁 격화 소지를 제어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노동자의 요구 또한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을 만나 ‘원청자본의 교섭해태 실태’, 심지어 ‘파견법·기간제법 폐기’를 말한다고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노동개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개악과 노동탄압은 사회적 대화와 함께 온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 탄압, 주 69시간제 추진, 노조법 2·3조 개정 거부권 행사 등으로 노동운동을 정면 공격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노동운동 상층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여 상생의 이름 아래 노동개악을 추진한다. 2026년 1월, 정부는 청와대와 고용노동부·재정경제부·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노동구조개혁TF’를 출범하며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개악에 나섰다. 언론에 따르면 노동구조개혁TF가 주도하는 노동개악 추진방향은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성과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지역 메가특구 노동시간 규제완화 등이다. 이어 3월 19일, 이재명은 정부 1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노동자들이 기업이 원하는 고용유연성을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해고가 죽음이 아닌 사회’, ‘전환의 시대에 맞는 노동시장’ 등 정부의 언사는 부드럽지만, 그 방향은 지난 정부와 하등 다르지 않다. 이재명 정부도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유연안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해고와 전환배치, 직무·성과급을 확대하는 대가로 사회안전망을 일부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본질은 더 쉬운 해고와 더 많은 비정규직이고, ‘사회안전망’은 이를 위한 부가조치일 뿐이다. 2026년 3월 19일 이재명 정부 1기 경사노위 출범식 이런 거시적 흐름은 주요 노동자 투쟁에 대한 태도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노동부 장관과 집권여당 대표 등이 요란하게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방문했을 뿐, 문제해결은커녕 장기투쟁을 낳은 악질자본가들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노동조합 회계공시제도조차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렇듯 이재명 정권은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을 향해 ‘대화’를 제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투쟁을 탄압한다. 어디 화물연대 투쟁뿐인가. 2026년 2월, 세종호텔 로비농성을 이재명 정부가 지휘하는 공권력이 침탈했고, 4월에는 지혜복 교사의 고공농성에 연대했다는 죄목으로 고진수 동지가 구속당했다. 유예되고 또 유예된 택시월급제 즉각 시행을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고영기 동지가 고공에 오른 상황에서조차, 민주당은 택시자본가들을 위해 월급제 유예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재명은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요구까지 짓밟으며 택시노동자들을 외면했다. 이렇듯 이재명 정부의 허울뿐인 ‘노동 존중’을 떠받치는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다. 일터기본법의 실체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이 법을 노동법 밖에 놓인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등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모호한 범주가 아니라 노동자성 인정이고,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의 전면 적용이다. ‘그래도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터기본법은 노동권의 보편화가 아니라 차등화다. 이재명 정부 계획에 따르면, 한쪽에는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적용받는 ‘진짜 노동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일터기본법을 적용받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2등 노동자들이 양산된다. 결국 정규직-비정규직-일하는 사람 사이의 위계, 노동자계급 내 위계를 더 촘촘히 제도화할 뿐이다. 사회적 대화 2.0은 조금도 새롭지 않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사정이 대등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하며 투쟁 대상을 흐린다. 노동자들이 원청자본을 향한 분노와 함께 ‘진짜 사장 나오라’라고 외칠 때,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이 함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해결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몬 자본에 맞선 투쟁이다. 대통령이 직접 ‘모범 사용자가 되겠다’고 말한 공공부문 원청조차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투쟁을 확대하는 것이다. 누가 비정규직을 양산했는가? 누가 그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배하면서도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다 죽음으로 몰았는가? 누가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위장해 권리를 박탈했는가? 국가와 자본이다. 물론 노동자는 국가·자본과 대면할 수 있다. 그 대면은 계급투쟁을 배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노사정은 애초 대등한 힘을 가진 주체가 아니다. 경사노위 내 노동자 대표가 그 어떤 논리와 당위로 국가와 자본을 설득해도, 결국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힘이다. 기억하자. 1998년 당시 노사정 합의에는 △실업대책기금 조성 △해고회피 노력 △해고자 우선채용 같은 완충 조항도 포함됐지만, 정세를 규정한 것은 자본이 요구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이었다.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도 마찬가지였다. ‘직권중재제도 폐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실상은 ‘필수유지업무제도’를 통한 파업 무력화였다. 노동자 대표가 회의장 안에서 아무리 효과적인 논리를 역설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말이다. 그 말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계급투쟁이다. 민주노총은 2026년을 원청교섭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는 곧 한국 자본이 수십 년간 공들여 구축한 다단계 하도급체계를 계급투쟁으로 뚫어내겠다는 뜻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와 단절하지 않고 원청교섭 쟁취,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는 불가하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적 대화 2.0’은 조금도 새롭지 않다.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거듭 파국을 낳아온 사회적 대화를 중단하고 △원청교섭 쟁취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와 실질임금 보장 △청년일자리 창출 등 절박한 요구를 걸고 7월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다. -
[성명] 오늘 삼성 노동자를 향한 칼날은 내일 다른 노동자를 향한다이재명은 오늘(5월 18일) 삼성 파업을 두고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긴급조정권으로 파업권을 봉쇄하겠다는 협박이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요구가 한계를 지님은 분명하나,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파업할 권리는 정당하다.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해달라'고? 마치 기업이 피해자라는 투다. 실상은 정반대다. 이재명 정부는 1년 365일 기업경영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파업권 행사 자체를 봉쇄하는 극악한 시도로 노동자들을 협박한다. 재벌의 이익과 경영권을 공공복리로 둔갑시키면서 말이다. 법원도 "노조가 쟁의 행위 기간에도 평상시와 동일한 수준의 인력, 가동 시간 등에 대한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라며 파업권 짓밟기에 나섰다. 그동안 이건희, 이재용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자신들만의 막대한 부를 위해 온갖 비리와 부패를 저질렀다.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참혹히 짓밟았고, 수많은 백혈병 피해자의 절규를 무시했다. 온갖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는 '영업비밀'이란 명분으로 감춰왔고, 지금도 감추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초과 착취 역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적자일 때도 자신들 배를 충분히 불렸다. 예를 들어 2023년 노동자들은 적자로 인센티브를 전혀 받지 못했지만, 등기이사 1인당 평균 보수는 상여금 포함 44억 2백만원에 이르렀다. 그뿐인가? 천문학적인 노동자 민중의 혈세를 삼성과 SK하이닉스에 몰아주고, 물과 전기 등 공공자원을 반도체산업 자본이 마음대로 쓰게 만드는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그들의 경영권은 365일 내내, 아니 수십 년 내내 100%가 아니라 1000% 존중되고 있다. 삼성의 막대한 이윤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 노동자계급의 공동노동이 만든 사회적 부다. 노동자들은 부의 분배를 요구할 정당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큰 한계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정규직만의, 그것도 반도체 부문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에만 힘을 쏟고 있다. 수많은 하청·비정규직의 권리와 이익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하청·비정규직에 대한 초과 착취에 앞장섰던 자본가들, 그들 편에서 법과 제도를 설계했던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긴급조정권은 공공 복리가 아닌 재벌 이익을 위한 노동권 압살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긴급조정권 카드를 들이밀며 노동권을 압살하려는 이재명 정부와 투쟁해야 한다. 또한 이 투쟁의 한계와 약점을 극복해 가야 한다. 이 길을 위해 힘을 모으고, 또 모으자! 2026년 5월 18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우리의 투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가스전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한국석유공사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다.이스라엘과 미국 제국주의 열강은 950일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을 집단학살하고, 중동으로 전쟁과 학살을 확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반대해 온 울산의 노동자 민중은 5월 13일, 11시 40분 한국석유공사 앞에 모여 한국석유공사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가스전 개발사업 참여를 통해 집단학살과 자원 수탈에 공모함을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항의면담을 진행했다. 약 60여 명이 이번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2025년 11월 26일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공모기업 한국석유공사 규탄 국제행동의 날” 집회 후 6개월 만에 이뤄졌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노동자민중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석유공사가 여전히 가자지구 영해 가스전 컨소시엄 사업에 참여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비용을 대주고 있음을 규탄했다. 특히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에니(Eni)가 자국 노동자들의 반대와 파업에 부딪쳐 컨소시엄에서 전면 철수한 반면, 한국석유공사는 에니의 컨소시엄 지분까지 흡수하며 이스라엘 기업과 단 둘이 자원수탈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규탄했다. 서울에서 온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눈보라 활동가는 “한국석유공사가 자회사를 통해 집단학살이 자행되는 전범국과 거래하면서 한국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꼬집으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인류의 존엄을 위협하고 국제법마저 위반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민주노총 최용규 울산지역본부장은 “전쟁과 제재의 피해는 권력자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병원에는 약이 부족해지고, 아이들의 일상은 무너지고,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며 팔레스타인에서 쿠바, 중동으로 번지는 미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침략과 전쟁, 경제봉쇄를 강력히 규탄했다. 이어 ‘울산 노동자가 앞장서서 전쟁과 침략, 제재와 학살에 반대하며 민중의 생명과 존엄, 자주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연대할것’을 강조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이수기업 해고노동자로 현대자동차와 투쟁중인 정성훈 노동자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보다 더 참담한 건,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가 이 비극의 현장에서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자원약탈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성토했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가, 이제는 가해자의 편에 서서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범하고 자원을 약탈하는 일에 동조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죽음의 땅에서 퍼 올리는 가스가 아니라,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 가치를 지키는 길을 택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금속노조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 김미옥지회장과 정의당 박민자 사무국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기자회견문은 한국석유공사의 책임회피와 기만을 낱낱이 드러냈다. “지난 6개월 동안 한국석유공사는 ‘지분(15%)이 적은 만큼 책임도 적다’며 집단학살 공모 책임을 회피했다. 또한 산업통상부는 ‘좋은 소식 기다려 보자’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한국석유공사와 산업통상부의 대답은 순간을 모면하려는 거짓과 기만이었다” “한국석유공사는 철수는커녕, ENI가 포기한 운영권을 갖고, 올해 2/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탐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 책임이 더 커진 만큼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규탄과 컨소시엄 철수 요구를 더 키울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울산긴급행동은 서울, 부산, 대구, 춘천, 전주, 영국 스코틀랜드 등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단체들과 함께 한국석유공사의 집단학살 공모 규탄과 컨소시엄 철수를 촉구하는 전국 동시다발 공동행동을 진행하고, 영국 스코틀랜드 등지의 국제연대 활동과도 함께함을 알렸다. 자원약탈 컨소시엄 즉각 철수 요구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해방을 위해 자유선단연합(FFC)을 통해 가자지구로 항해하는 배에 탑승한 김아현(해초), 승준, 김동현 활동가의 투혼을 지지하며 무사 귀환할 때까지 함께할 것임을 선언했다. 기자회견 후 한국석유공사 측과의 항의면담이 진행됐다. 항의면담에는 해외팀장 등 한국석유공사 측과, 민주노총 최용규 울산지역본부장, 조시형 노동안건보건국장, 뎡야핑과 눈보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팔레스타인평화를위한울산긴급행동 강진관 활동가가 참여했다. 면담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한국석유공사의 컨소시엄 참여의 부당성을 짚으며, 사업 철수를 강력히 촉구했다. 한국석유공사 측은 사업강행 의사를 피력하지 않은 상태로 항의를 경청했다. 이어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울산 노동자 앞장서서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한국석유공사는 가자지구 바다에서 손 떼라”, “한국은 팔레스타인 자원 약탈 중단하라”, “KNOC DANA You Can’t Hide. Stop Fueling Genocide(한국석유공사-다나는 숨지 마라, 집단학살에 연료를 대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마지막에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한국으로 원어민 영어강사로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가 “Free, Free, Palestine”을 선창하고, 60여 명의 노동자민중이 이를 함께 외치며 전 세계로 연대의 목소리를 타전했다. 노동자민중이 피땀 흘려 일한 돈으로 낸 세금을 학살과 수탈에 사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집단학살, 제국주의 식민지배와 점령, 수탈, 인권 유린, 국제법 위반 행위에 한국정부와 한국석유공사, 그리고 여러 한국기업이 공모, 협력하는 것을 가만히 둘 수 없다. 이번 기자회견과 항의면담에 뒤이은 실천투쟁으로, 5월 14일부터 5월 22일까지 울산의 한국석유공사 본사 앞에서 7일간 1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해역자원 약탈 공모기업 한국석유공사 규탄 기자회견문]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권과 자원약탈을 위한 침략전쟁은 집단학살, 테러와 살인, 삶의 터전과 문명 파괴, 굶주림과 질병, 공포와 절망, 혐오와 배제로 전 세계를 야만의 시대로 내몰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야욕과 침략전쟁을 멈추지 못한다면, 전쟁과 집단학살, 무기 수출과 문명 파괴를 이윤 추구의 기회로 삼는 기업들의 야만적인 폭주를 멈추지 못한다면, 과연 인류가 희망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동지역 전쟁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정세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아직도 멈추지 못했기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침략,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으로 이어져 중동지역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침략과 호르무즈 해역 무력 봉쇄에 따른 전쟁 양상을 봤을 때, 한국, 일본, 필리핀 등 미군이 주둔한 동아시아와 남중국해 주변 나라에서 전쟁 발발 시, 그 전쟁의 전개 양상과 참상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중동지역 전쟁은 한국기업들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한국 국가방위산업, 민간방산기업, AI 기업, 건설기계 기업, 에너지기업, 식품기업 등은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과 집단학살을 지속시키는 지렛대로 역할하고 있다. 이들은 살상 무기와 군수물자 수출, 방위산업 협력, 팔레스타인을 파괴하는 건설기계 수출 등 다양한 형태로 전쟁에 연루되어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자원약탈에 공모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영해 가스전을 약탈하는 컨소시엄에 참여하여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영해 자원약탈 컨소시엄 - 이탈리아 기업 ENI 지분 70%, 한국석유공사 다나 페트롤리엄 지분 15%, 이스라엘 기업 Ratio 지분 15% - 에 참여해 집단학살에 공모해 왔다.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 단체와 국제단체들은 2025년 11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공모기업 한국석유공사 규탄 국제행동의 날” 집회를 열어 한국석유공사의 컨소시엄 철수를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그 후에도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 단체들은 국민 감사청구인 서명운동, 산업통상부 항의 전화, 국민신문고, 국민 감사 청구 기자회견 등 한국석유공사의 컨소시엄 철수를 거듭 촉구해 왔다. 지난 6개월 동안 한국석유공사는 ‘지분(15%)이 적은 만큼 책임도 적다’며 집단학살 공모 책임을 회피했다. 또한 산업통상부는 ‘좋은 소식 기다려 보자’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한국석유공사와 산업통상부의 대답은 순간을 모면하려는 거짓과 기만임이 밝혀졌다. 이탈리아 기업 ENI가 자국 노동자 민중의 강력한 투쟁에 압박받아 2025년 12월 컨소시엄에서 최종 철수했다. 이제 팔레스타인 영해 자원약탈 컨소시엄에 남은 기업은 한국석유공사와 이스라엘 Ratio뿐이다. 그러나 한국석유공사는 컨소시엄 철수는커녕, ENI가 포기한 운영권을 갖고 Ratio와 함께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가스전 탐사권을 획득해 올해 2/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탐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2025년 12월, 이스라엘 정부가 2026년 10월 탐사권 만료 후, 다음 라운드인 5번째 가스전 탐사권 입찰을 발표했으며, 이번 입찰에는 가스전 탐사권 해당 해역에서 팔레스타인 영해가 더 늘어난 게 확인되었다. 한국석유공사의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 책임은 더 커졌다. 그런 만큼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규탄과 컨소시엄 철수 요구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울산 긴급행동은 서울, 부산, 대구, 춘천, 전주, 영국 스코틀랜드 등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단체들과 함께 한국석유공사의 집단학살 공모 규탄과 컨소시엄 철수를 촉구하는 전국 동시다발 공동행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2025년 10월,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가자지구 집단학살 공모 국가’로 지명한 사실을 기억한다.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팔레스타인 영해 자원약탈로 이윤을 추구하는 한국석유공사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한국 정부와 한국석유공사에 강력히 촉구한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자원약탈 컨소시엄에서 지금 당장 철수하라! 또한 우리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중단,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자유, 해방을 위해 가자지구 항해 선단에 오른 김아현(해초), 승준, 김동현 활동가의 투혼을 지지하며 무사 귀환할 때까지 함께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집단학살 지금 당장 멈춰라! ▸이스라엘 점령군은 가자지구에서 즉각 철수하라! ▸이스라엘은 레바논 점령과 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미국은 이란침략 중단하고 중동지역에서 즉각 철수하라! ▸미국은 쿠바 봉쇄를 즉각 해제하라! ▸한국석유공사는 가자지구 영해 자원약탈 컨소시엄에서 즉각 철수하라! ▸HD현대, 한화 등은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를 즉각 중단하라!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맞서 반제반전 국제연대를 강화하자! 2026년 5월 13일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울산긴급행동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원청교섭 쟁취!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조직하자! - Ⅱ] 근로기준법·노조법이 '기본법'이다! - 일터기본법 제정에 반대한다‘일터기본법’은 권리의 보장이 아니라 권리의 그림자다. 사각지대 해소가 아니라 사각지대의 법제화다. 노동법을 확장하는 기본법이 아니라 노동자를 차별하는 기본법이다. 자본의 책임 회피에 국가가 합법의 도장을 찍어 주는 흐름에 맞서, 우리는 일터기본법 제정에 단호히 반대한다. 사진: 참여와 혁신 1. “새로운 노동”이라는 거짓말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안」(이하 ‘일터기본법’)을 밀어붙이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이렇게 읊는다. “세상이 변했다. 플랫폼이 등장했고 ‘긱 이코노미’가 확산됐다. 프리랜서가 늘었다. 기존 노동법으로는 이 새로운 노동 형태를 포괄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그럴듯하지만, 자본의 책임을 가리려고 정성스럽게 만든 알리바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하늘에서 떨어진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근로계약 관계로 일하던 노동자를 자본이 ‘외부화’해 만들어 낸 가짜 개인사업자다. 자본은 종속 관계라는 실질을 그대로 둔 채 형식만 바꿔치기했고, 노동법은 그 술수에 끌려다니며 노동자를 근로기준법 바깥에 내다 버렸다. 플랫폼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노동법의 허술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처음부터 노동자성을 지워 버리는 방식으로 조직된 노동일 뿐이다. 기술은 그 은폐를 한층 매끄럽게 다듬어 주었을 따름이다. 본질은 똑같다. 노동자를 ‘사업자’로 위장시키는 낡은 수법이다. 프리랜서노동은 또 어떤가. 더 이상 “자유로운 일”이라는 환상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이들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권을 외친다. 어째서인가? 그 영역이 산업화되고, 자본의 맨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종속성이 더는 감출 수 없을 만큼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새로운 노동 형태”라는 말 뒤에 숨은 실체는, 노동자성을 박탈하려는 자본의 집요한 시도가 빚어낸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다. 노동자가 노동자인지 아닌지가 모호해서가 아니라, 자본이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둔갑시키려 획책한 결과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법”을 만들어 “별도로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본의 공작을 국가가 승인하는 행위다. 2.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는 네 가지 핑계 노동법으로 이들을 포괄할 수 없다는 주장은 네 가지 핑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사용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누가 이들의 노동으로 배를 불리는가? 특수고용·프리랜서노동자에게는 그들과 직접 계약을 맺은 기업이 사용자다.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플랫폼 기업과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용업체가 사용자다. 이윤이 흐르는 길을 따라가면 사용자는 반드시 드러난다. ‘사용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로 보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일터기본법조차 ‘사업자’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지목하고 있지 않은가. 이름 한 번 바꿔 부른다고 책임이 증발하지는 않는다. “노동시간을 획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준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정부와 입법기관의 책무다. 획정이 어렵다면 노동의 양태에 맞는 규율 방식을 법에 담으면 될 일이다. ‘기준 설정이 어려우니 노동법 밖으로 나가라’는 말은 국가의 직무유기이자 노동자에 대한 배신이다. “지휘·감독 관계가 불분명하다.” 낡아빠진 인식이다. 오늘, 자본은 단지 작업반장이 옆에서 지시하는 방식으로만 노동자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이미 오래전 공장형 직접 통제는 물론 노동과정 전반에 대한 유연한 통제를 도입했다. 건당 임금체계는 노동자가 스스로 채찍질하도록 강제하고, 알고리즘은 ‘자유롭게’ 일하는 노동자를 24시간 감시하고 평가한다. 낡은 지휘·감독 개념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본의 진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무능이거나, 따라잡지 않으려는 회피다. “프리랜서들은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가장 악질적인 거짓말이다. 지금의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은 정규직 고용과 나란히 놓인 대등한 선택지였던 적이 없다. 해당 직종 자체가 불안정 노동으로 통째로 메워져 있어, 그 직업을 갖는 순간 권리 없는 노동을 강제로 떠안게 되는 구조다. “자유”의 이면에 “권리 없음”이라는 형벌을 묶어 노동자에게 들이미는 이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 결국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들의 노동법 적용을 가로막는 것은 노동의 형태가 아니라, 노동법 밖으로 이 노동자들을 내몰며 책임 회피를 제도화하는 국가와 자본의 의지와 기획이다. 3. 권리 차별의 제도화 - 근로기준법 바깥에 쌓는 장벽 일터기본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그 외의 노동자를 노골적으로 ‘갈라놓는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남녀고용평등법·퇴직급여보장법이라는 보호가, ‘일하는 사람’에게는 종이우산 같은 선언적 보호가 차등 분배된다. 법을 통해 노동시장을 ‘근로자’와 ‘노무제공자’라는 두 계층으로 갈라놓는 차별의 고착화다. 머지않아 이 법은 근로기준법으로 진입하려는 노동자들 앞에 가로놓인 벽이 될 것이다. 법원과 행정기관은 ‘기본법이 적용되는 일하는 사람’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를 갈라놓는 해석 기준을 신나게 쌓아 갈 것이고, 지금이라면 근로자로 인정받았을 노동자들이 ‘기본법 적용 대상’이라는 옆길로 밀려날 것이다. 판관들은 ‘어차피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있지 않느냐’는 구실로 노동자성을 부정할 것이다. 분기의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된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이 겪는 괴롭힘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규정 적용은 부정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무제공자’로 분리해 보호한 사례가 있다. 택배기사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은 부정하면서, 산재보험법상 ‘특수고용 특례’로 산재보상만 시혜처럼 인정한 사례가 있다. 노동자성의 본체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서 곁가지 권리만 부분 배급하는 이 흐름이, 일터기본법을 통해 전국적·전면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이 법은 기본법의 원칙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본래 기본법이란 개별법의 확장과 발전을 견인하는 등대다. 그러나 이 법은 거꾸로 개별법의 확장을 가로막는 방파제다. 일터기본법 제3조 제2항이 “다른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을 적용한다”고 정한 것은, 개별법 우선·기본법 보충이라는 전도된 구조다. 범위 설정도 기만적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을 말하면서도 정작 본문에서는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일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노무제공자)으로 대상을 좁힌다. 경제적 종속성을 핵심 개념으로 삼는 노조법상 근로자보다도 협소한 범위이며,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이 보장하는 자영노동자와 자유직업인을 아우르는 ‘노동자(Worker)’ 개념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내걸고 실상은 대상을 배제하는 명백한 입법적 기만이다. 사진: 민주노총 4. 실효성 없는 선언 일터기본법이 외치는 권리 보장은 껍데기뿐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하지만 사업주는 “예방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가벼운 권고만 받는다. 근로기준법이 괴롭힘 발생 시 사업주에게 조사·징계·피해자 보호 의무를 강제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부과하는 것과는 비교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보수지급, 계약변경·해지 제한, 불이익취급 금지 등 모든 권리조항에 벌칙도, 과태료도, 강제도 없다. 분쟁 해결은 ‘조정’이라는 가장 느슨한 방식에 의지하는데, 사용자가 조정을 거부하면 절차는 그대로 종결된다. 강제이행 수단 없는 권리선언은 법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의 기만이며, 노동자에게는 차라리 모욕이다. 이에 대해 정부와 국회는 “기본법이기 때문에 처벌조항이나 강제조항을 넣기 어렵다”고 둘러댄다. 그렇다면 묻자. 기본법과 함께 개별법 개정안을 묶어 패키지로 내놓으면 될 일 아닌가?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다. “나중에.” 5. "선언이라도 하면 낫다"? - 2020년 산안법의 교훈 “일단 선언이라도 해 두면 개별법도 따라서 개정되겠지.” 안이한 낙관은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똑똑히 목격했다.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당시, 제1조 ‘목적’ 조항은 ‘근로자의 안전 및 보건’을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으로 바꿔 달았다.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까지 빠짐없이 보호하겠다는 거창한 선언이었다. 언론은 ‘일하는 모든 사람의 안전이 지켜진다’고 일제히 박수를 쳤다. 6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에게 실제로 적용되는 조항은 단 4개다. 제5조, 제6조, 제77조, 제78조. 모두 선언적이고 추상적이다. 취객을 응대하고 고객의 욕설을 온몸으로 받아 내지만 감정노동자 건강장해 예방조치(제41조)는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위험한 작업 앞에서 멈춰 설 권리, 작업중지권(제52조)도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전속성 기준’에 따르면 앱을 두 개 사용하는 순간 산안법의 어떤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 무권리 상태로 추락한다. 법의 ‘목적’을 바꿔 보호 범위를 ‘선언’했지만, 지난 6년 동안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제도 개선은 단 한 글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죽고 다친 노동자의 이름만 차곡차곡 쌓여 갔다. 선언은 노동자의 무덤 위에 세워진 비석에 불과했다.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치료’다. 빈껍데기 입법을 성과로 포장하고, 그 가짜 성과를 명분 삼아 진짜 개혁을 무한정 미루는 패턴이 다시 반복되려 한다. 우리는 이 잔인한 동어반복을 더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6. 반복되는 역사 - 제2의 비정규직법 파견법은 중간착취 금지와 직접고용 원칙에 구멍을 뚫고 간접고용을 합법화하는 통로가 되었다. 도입 당시 ‘한정적·예외적’ 활용을 약속했으나, 결과는 제조업 사내하청과 간접고용의 일상화, 원청 책임의 증발이었다. 기간제법은 또 어떤가.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안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상시고용’을 원칙화하고 비정규직은 예외적으로만 허용되도록 규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근로기준법은 건드리지 않은 채 별도의 ‘기간제법’을 만들었다.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 전환”과 “차별시정제도”를 선전했다. 결과는? 2년이 차기 직전에 계약을 끊고 새로 뽑는 초단기계약의 전면화,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간접고용의 폭발적 확산, 해소되기는커녕 고착된 임금 차별이었다. 두 법의 공통점은 명백하다. 근로기준법의 원칙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 바깥에 따로 법을 만들어, 자본의 책임 완화 통로를 제도화한 것이다. 지금의 일터기본법은 그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이라는 새 범주를 마련해 한 단계 낮은 권리를 배급하려 한다. 근로기준법 바깥으로 밀려난 노동자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당신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대상인가, 아니면 그냥 자영업자인가.” 노동자, 일하는 사람, 순수 자영업자로 이어지는 단계적 탈락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일터기본법은 이 ‘강등의 기제’가 되어 자본의 책임을 완화한다. 사진: 오마이뉴스 7. ‘추정 조항’이라는 허울 함께 발의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다음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이 법과 관련한 분쟁해결에서 근로자로 추정한다.” 정부는 이를 두고 노동자성 판단의 일대 진보라며 자화자찬한다. 그러나 이 조문은 근로기준법 제104조(감독 기관에 대한 신고) 바로 다음에 온다. 근로자 정의(제2조)는 손대지 않고, 분쟁이 발생한 뒤에야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맡기는 장치다. 게다가 정부는 이 추정 제도의 적용 범위를 “민사소송”으로 한정한다. 노동 사건의 절대다수가 노동청·노동위 단계에서 종결되는 현실에서 이 추정은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 임금체불 한 건 이기려고 변호사를 선임해 민사소송까지 밀고 갈 수 있는 노동자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임금을 다툴 때만 임금에 관하여, 노동시간을 다툴 때만 노동시간에 관하여, 해고를 다툴 때만 해고에 관하여 근로자로 ‘추정’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노동권 보장인가? 권리는 분쟁 앞에서 마지못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일터에서, 매일 작동해야 한다. 8.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이 기본법이다 노동관계의 기본법은 이미 우리에게 있다.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 이름표를 단 또 하나의 법이 아니라, 이 두 기본법을 현대화해 모든 일하는 사람을 정면으로 끌어안도록 만드는 일이다. 일터기본법 제정을 당장 중단하라. 이 법은 노동법의 확장이 아니라 노동법의 후퇴이며, 노동자에 대한 배반이다. 근로기준법 제2조가 규정하는 노동자 개념을 확장하고, 제대로 된 노동자 추정 조항을 정의 자체에 새겨 넣어야 한다. 분쟁 단계에서 뒤늦게 작동하는 절차적 추정이 아니라, 일터에서 매일 작동하는 실체적 추정이어야 한다. 자본의 비노동자화 시도를 적극적으로 규율해야 한다. 이미 시행 중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ABC 테스트처럼, 고용관계를 추정하는 명확하고 강력한 법적 지표를 법령에 담아야 한다. 이 기준의 경우 기업이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려면, △업무 수행에서 기업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롭고(A) △기업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 밖의 일을 수행하며(B) △독립적으로 해당 직업 또는 사업을 영위한다는 점(C)을 기업이 모두 입증해야 한다. 변덕스러운 개별 판결에 노동자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자본이 계약 형식을 왜곡하여 노동자성을 박탈하려 한다면 법이 단호히 막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자체의 보완도 미룰 수 없다. 초단시간 노동, 초단기 계약,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 구조, 다양한 고용형태에서 벌어지는 권리의 구멍 등에 대처할 수 있도록, 근기법을 더 촘촘하고 더 단단한 법, 모든 일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끌어안는 법으로 다시 써야 한다. 이는 ‘임금노동관계’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는 노동권 개념 자체를 새롭게 벼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이 권리를 반납한다는 뜻이 되지 않도록, 노동권의 외연 자체가 확장되어야 한다. 노조법 또한 마찬가지다.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을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의 ‘노동자(Worker)’ 수준으로 활짝 열어, 모든 일하는 사람이 단결하고 교섭하고 행동할 권리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 사용자 개념 또한 실질적 지배력을 휘두르는 자본을 빠짐없이 포착하도록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노동권의 진짜 보장은 제도적 시혜에서 오지 않는다. 단결과 투쟁의 권리를 누가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가에서 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법이 아니다. 노동자의 이름을 ‘일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변두리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호명해야 한다. 노동자 정의를 그대로 좁게 유지하며 그 노동자가 아닌 이에게 권리의 부스러기를 적선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이에게 노동자라는 이름과 그 이름에 따라붙는 온전한 권리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사진: 노동과 세계 -
[번역] 당, 전위, 대중 - 아르헨티나의 경험들급진 좌파 조직은 계급투쟁 전위들과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어떻게 더 넓은 대중과 결합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2025년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당대회 문서에서 저자는 이 물음들에 답하며, 계급투쟁 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을 건설하려는 PTS의 기획이 거둔 성공과 아울러 그 한계까지 탐구한다. 다음은 PTS 20차 당대회에 제출되어 전국지도부가 승인한 문서다. 이 문서에서 우리는 PTS 20차 당대회의 정치적 지향에 관한 일반적 기준을 몇 가지 수립하고자 한다. 먼저 (1) 우리 조직, (2) 전위 즉 노동계급의 가장 전투적이고 조직된 부문으로서 청년과 여타 전투적 운동을 포함, (3) 우리의 더 넓은 토대인 대중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투적·반관료적인 계급투쟁의 전위가 부상하고 있다. 이것은 확대 가능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3월 12일 가혹한 국가 탄압에 맞서 축구 팬과 노동자들이 연금 생활자들을 지키기 위해 격렬히 저항하면서 사회 불안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이 사태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의 종말을 연 2017년 12월의 소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당시에 민족주의적인 페론주의 부르주아 정당은 민중의 불만을 2019년 선거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의 귀결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세르히오 마사가 주도한 재앙적 정부였다. {2017년과 다른} 새로운 측면은 이것이다. 저항이 지속적으로 발전·확산되어 정치적 총파업에 이를 경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지닌 전투적 세력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출현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결합은 질적 도약을 의미하며, (예비) 혁명적 상황을 향한 길을 열 것이다. 이 세력들은 다음을 포함한다. (1) 교사, 공공 부문 노동자, 학생, 연금 생활자, 불안정·자영 노동자로 구성된 주민 총회들(잠시 둔화되었으나 다시 활성화 중이다); (2) 반관료제 경향을 포함한 광범위한 노동 투쟁; (3) 매주 수요일 의회 앞 시위를 통해 대통령의 연금 연동제 거부에 맞선 투쟁을 이끈 연금 생활자 집단; (4) 2024년 10·11월 100개의 대학 캠퍼스 점거로 정점에 달한 학생운동(학장단, 노조 관료들, 아르헨티나 대학생연맹에 의해 기세가 꺾였으나, 이제 막 학교로 돌아온 새로운 학생 활동가 층을 형성했다); (5) 2024·2025년 두 차례의 대중적 동원을 이끈 여성 운동; (5) 밀레이가 다보스에서 “젠더 이데올로기”를 아동 성학대와 결부시키는 발언을 한 데 대응해 2월 1일 놀라운 위력을 과시한 LGBTQIA+ 운동. 이 운동 중 다수가 부침을 겪고 있으나, 이는 모두 배움의 경험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전투적·조직적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변혁적 도약을 위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3월 12일 시위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찰 탄압에 맞선 결의뿐 아니라 노동총연맹(CGT)을 향해 분출된 증오 때문이기도 했다. 이 분노는 CGT의 무대응을 규탄하는 구호, 피켓, 연설로 표면화되었다. 분노가 너무도 뚜렷하여 노동총연맹 최고 지도부의 일원인 엑토르 다에르가 4월 전국 파업을 소집해야 할 정도였다. 정부가 연금 생활자 급여 삭감을 시도했을 때 결집하여 저항한 축구 팬들 역시 똑같은 분노로 들끓었다. 이러한 순간들은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였고, 사람들은 탄압을 규탄하면서 정부와 그 졸개들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 세력들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작업장과 학생 운동 양측에서 전투적이고 독립적인 세력이 성장하고 있다. PTS의 앞에 놓인 과제는 각 영역에 적합한 조직 형태들을 촉진함으로써 이러한 발전을 과감하게 추동하는 것이다. 노조 안에서의 활성화와 작업장 위원회부터, 우리가 이미 건설하고 있는 광범위한 조직까지 말이다. 여기에는 자기조직화된 학생 집단, 재활성화된 주민 총회, 투쟁 중인 문화 운동, 보건 의료 집단 등 상이한 조직 형태가 포함된다. 이미 이러한 형태의 조직이 다수 존재한다. 이를 성장시키고, 조율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당, 전위, 대중의 관계에 관하여 PTS에게 총파업은 전략적 지향의 일부다. 총파업의 전망은 2001년 아르헨티나 봉기나 2019년 칠레 봉기보다 한결 밝다. 두 봉기 모두 최종 국면에 이르러서야 부분적 총파업으로 나아가는 데 그쳤고, 지배계급은 통제력을 되찾았다. 칠레의 경우 정권은 봉기를 기만적 제헌 의회로 우회시켜 증오의 대상이었던 피녜라 정부를 유지시켰다. 그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대안적 정치 노선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중적 영향력을 갖춘 조정 기구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봉기들은 봉쇄, 우회, 패배시키기가 더 쉽다. 이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힘, 특히 생산과 분배의 심장부로부터 자본주의의 지배에 도전하는 능력을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학생운동의 본질적 역할을 주변화한다. 투쟁 과정에는 노동계급의 미조직 부문 및 빈민의 참여가 중요하고 많은 경우 이들의 전투성이 가장 즉각적·폭발적이지만, 이 과정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는 것은 노동계급의 결정적 부문들과 결합하는 데 달려 있다. 노동계급에 뿌리를 두고 또한 모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대중이 결합한 정치적 총파업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 간의 대치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결정적 시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노동자 정부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사회주의·국제주의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인 투쟁 현장에 개입해야 한다. 작업장(작업장 위원회와 노조), 학교(및 학생회), 불안정 부문 및 피억압 부문(여성, LGTBIQIA+ 공동체)에서 출현하는 모든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대해 결정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다른 정치적 경향들, 특히 페론주의의 영향력과 노조 관료의 영향력에 맞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정 기구가 필요하다. 바로 우리가 ‘행동 위원회’라 부르는 것, 즉 전투적 노조, 작업장 위원회, 학생회, 연금 생활자 단체, 주민 총회, 문화 운동을 결합시키는 기구다. 이 기구들은 더 광범위한 조정 구조(노동자 평의회)로 진화할 수 있으며, 관료들과 더 공공연하게 효과적으로 대결하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의 접근법은 공동전선 전술을 따른다. “따로 행진하되, 함께 타격한다.” 우리는 당과 전위와 대중의 관계를 서로 맞물린 톱니바퀴 형태로 구상한다. 혁명 정당은 노동계급, 청년, 지식인 중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문들을 결집시킨다. 혁명 정당은 정의상 국제주의적이다. 전위는 노동자 조직, 학생운동, 페미니즘 및 여타 투쟁 조직체들 속에서 형성된다. 이와 관련된 우리의 과제는 투쟁을 선도하는 경향들을 단결시키면서 이들 사이의 열린 논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대중은 이러한 전위 부문과 그 지도부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는 승리에 필요한 강령과 전술을 견지하면서 개량주의 세력에 도전하는 우리 당도 포함된다. 전위는 투쟁 속에서 단련된다. 대중은 이러한 투쟁 경험을 통해 이전의 믿음을 깨고 나와 전위 및 혁명 정당의 영향 하에 좌측으로 이동할 수 있다. PTS는 이러한 도전에 뛰어들어, 계급투쟁으로 단련되는 전위라는 톱니바퀴를 통해 대중과 만남으로써 대중적 영향력을 얻고자 한다. 이는 러시아 혁명이 스탈린주의로 변질되기 전 볼셰비키 당을 이끌었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혁명적 경험에서 도출한 교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위로부터’ 획득하는 그 어떤 선거 및 의회에서의 영향력도 그것이 ‘아래로부터’의 조직에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주민 총회, 문화센터, 소셜 미디어, 심지어 우리가 주최하는 PTS 공개 집회조차도 산발적인 접촉에 불과하며, 그 위에 세워진 조직은, 작업장과 학교에서의 조직화를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작업장과 학교에서의 조직화를 통해 우리는 강력한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기층에서의 활동과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현실화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구조적 힘을 발전시키지 못한 당은 ‘거리에서는’ 가시적 존재감을 자랑하더라도 선거주의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당 강화와 신입 당원 모집은 (작업장과 학교에서) 전위 및 대중과의 유기적 관계를 벼리는 것과 불가분하다. ‘유기적 관계’란 일시적 교류나 (국가 선거든 노조 선거든 학생 선거든) 선거 활동을 넘어서는 더 깊고 더 일관된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관계다. 지금 우리 조직은 상당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노동운동 부문은 60개 이상의 노조에서, 학생운동 부문은 32개 대학, 48개 중등학교, 24개 기술학교에서 활동한다. 활동가의 규모를 꾸준히 키웠고,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계급투쟁에서 가장 활발한 동지들을 계속 조직하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일부 예외도 있지만, 여전히 작업장과 학교의 기층 대중과 유기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밀레이 정부 하에서 우리의 중대한 한계 중 하나는 지속적인 대중 행동의 부재였다. 투쟁은 고립된 상태로 폭발했다가 사그라지곤 했다. 그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과거 활동에 대한 자기 비판과 평가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주민 총회의 경우(지난 한 해 동안 대부분 부에노스아이레스 광역권에 집중되어 있었다) 인근의 투쟁과 연결된 공동 행동 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삼았다. 예컨대 우리는 GPS 항공 노동자들을 노동부 직원들, 인권 추모 구역들(군사 정권에 납치되고 살해당한 수천 명을 기리는 건물과 공간들), 보나파르테 병원 및 철도 부문 노동자들과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일부 투쟁들이 패배하면서 더 광범위한 단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총회가 활동하는 지역에 위치한 작업장 또는 학교와 지속적 관계를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정치적 선동은 엇갈린 결과를 낳았지만 우리의 개입은, 특히 상반기와 대학 점거의 물결 동안, 일관되게 집단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중운동 활성화와 광범위한 반관료주의 경향이 부재한 상황에서, 가장 전투적인 활동가들을 조직해 내는 우리의 능력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기존의 전위는 더 넓은 기층 대중과 거의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수도 바깥의 일부 지역 당은 더 많은 풀뿌리 조직 활동을 수행했다. 2023년 네우켄의 교사 투쟁은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노동 조직화가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분명한 사례였다. 우리는 또한 사회주의 페미니즘 단체 ‘빵과 장미(Pan y Rosas)’를 통해 젠더 기반 요구를 둘러싼 더 광범위한 운동을 전개했고, 빵과 장미의 행사에서는 기존 활동가들을 넘어선 폭넓은 참여가 있었다. 이는 대체로 수동적인 채로 남아 있던 노동 부문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고와 운동의 상당 부분은 12월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대중운동 일정을 거치면서 가장 적극적인 동지들을 먼저 활성화하고 조직하는 일에, 그리고 이어서 당을 강화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는 노조 선거와 학생 선거를 포함해 진행 중인 투쟁들에 일관되게 개입했고, 이데올로기 투쟁의 영역에서 다양한 운동을 출범시켰다. 예컨대 공개 포럼, 워크숍, ‘공산주의적 미래를 위한 날들’이라 이름 붙인 토론회가 있었다. 새로운 전위 운동 과정의 출현, 특히 주민 총회와 (점거의 물결에서 정점에 달한) 대학 투쟁은 활동가들에게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했다. 언제나 우리의 목표는 이러한 과정을 우리의 발판이 존재하는 기존 노동자 부문과 연결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상당수의 새로운 당원이 충원되었다. 당원 유입의 결과 우리가 주도하는 대학 기반 학생조직들이 급성장했는데, 학생조직들의 회원 수가 두 배로 늘었으며 질적으로도 훨씬 향상되었다. 투쟁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조직 노동운동과 관련된 PTS의 「활동 결산」은 우리의 투쟁 개입 내용과 참여 정도를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이 문서는 조직의 핵심적 한계를 짚고 있다. 광범위한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체계적 전략 또는 우리가 기반을 가진 작업장에서 평조합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체계적 전략의 부재가 그것이다. 이러한 결함은 수동성과 후퇴가 두드러지는 부문들에서 특히 명확히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서, 1935년 레온 트로츠키가 프랑스 지부를 분석한 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혁명적 활동과 노동자들의 일상 생활 사이에 놓인 간극을 관찰하고 인상적인 서술을 남겼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우리 동지들이 집회를 조직하고 팸플릿을 배포하고 시위에 참여하지만, 행사가 끝나면 노동자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의 구호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우리는 그들의 일상적 투쟁, 그들의 공장, 그들의 노조와 연결된 견고한 다리를 놓지 못했다. 그래서 행사는 매번 막다른 골목에서 끝난다. 우리만 남고, 노동자들은 개량주의가 통제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통찰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핵심적 모순 가운데 하나를 포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활동하는 작업장의 일상 생활에 더 깊이 관여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문화적 참여를 포함한다. 노동자의 생활이 점점 더 원자화되고, 소셜 미디어와 대중 문화의 영향 하에 가족 및 개인의 공간으로 삶이 후퇴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관료들이 지배하고 임금과 단체 협약이라는 협소한 목표에 초점을 맞춘 노조 또한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적 조직을 침식해 왔다. 아주 드물게 다른 좌파적 세력이 의미 있는 행위자가 되는 경우에도 이처럼 유리된 정치 양식은 그대로 반복된다. 이들은 노동계급으로부터 비슷하게 유리된 기구들을 건설하며, 노동자들이 사용자들의 영향력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을 조성하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대중 투쟁이나 반관료주의 조직화 노력이 뿌리내리면 노동자들의 자체적 운동으로 이러한 경향이 뒤집힐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수백 명의 무당파 활동가들과 공동의 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음 사례들에서 이러한 지향이 드러난다. 즉, 작업장과 대학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확장한 이동식 보건소(시위대 의료 지원을 위한 이동식 거점); 철도 노동자 해고에 맞선 ‘기차를 지키자’ 캠페인; (사탕수수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투쿠만에서 그리고 지역 노동자들의 거점인 마디그라프 클럽에서 열린 ‘노동자의 우애’ 축구 토너먼트; 포사다스 병원을 지키기 위한 연말 축제; 모론 지역 총회와 함께 열린 노라 코르티냐스(Nora Cortiñas) 추모식; 보나파르테 병원 투쟁을 지지한 ‘노동하는 청년 축제’; 그리고 비교적 잠잠한 시기에도 폭넓게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당의 공간과 문화센터들을 활용한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의미 있음에도 여전히 고립된 상태이며, 아직 우리가 활동하는 부문들의 일상 현실에 뿌리내린 체계적 정책으로 종합되지는 못했다. 교사 노조를 보면, 우리는 전국의 여러 노조에 걸쳐 상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으며 당원과 유관 조직의 동지를 포함 800명이 넘는 동지가 활동한다. 그중 약 250명이 자기 학교에서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이 부문 내에서 우리 당은 매우 불균등하다. 평조합원을 포괄하는 기층 투쟁이 없을 때엔 우리는 학교의 동지들과 사회적·문화적 활동을 건설하기보다는 (노조관료들이 주도하는) 노조 내부의 정치생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투쟁이 분출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더 쉬워진다. 공동의 조직에 대한 요구가 더 광범위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수의 공장에서 여러 투쟁과 노조 활동에 관여했고, 종종 사측의 보복과 관료적 탄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투쟁에 대한 개입’과 ‘동료 노동자들의 일상에 함께 참여하려는 노력’을 결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024년 점거를 통해 우리는 대학에서 거의 1,300명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당원과 무당파가 섞인) 세력을 조직했는데, 이는 다른 어떤 좌파 조직보다도 훨씬 큰 규모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충분히 밀어붙여서 대학의 기층 교수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든가, 관료적 학생회가 대학 당국의 소극성에 투쟁을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국면을 돌파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규모로 조직된 4월 23일 집회 이후, 우리는 PTS의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계획을 충분히 조율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교수직과 사무직 모두의 임금 정상화를 요구하는 투쟁에 활동적 대학 부문들을 결집시키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학교 폐쇄에 대한 우려가 첫 행진을 추동했던 것에 비해, 이 요구안은 훨씬 적은 관심을 받았다. 정부가 대학을 폐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대중의 관심이 식었고, 우리는 강의실 차원의 접근을 넘어 기층에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야 했다. 공립 대학과 노동자 임금을 방어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학교 자체에서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한 가지 선택지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했다면 교수들과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자신들의 기층과 다시 연결되고, 1990년대 이후 상당 부분 상실된 학생 조직화 관행을 복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학 차원의 이 투쟁은 장기적인 것이지만, 노동운동에서 우리가 직면한 핵심 과제들과도 교차한다. 한 가지 긍정적인 사례는 라누스대학교 투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활동(강연과 워크숍)’을 투쟁 기간 독립적인 ‘자기조직화’ 활동의 조직화 및 학교 기층 대상 사회적 접촉 활동과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략 덕분에 우리는 학생회 선거에 대담하게 개입해 지역 사회 보건학과 학생회(CeSaCo)를 영향력 아래 둘 수 있었다. 코마우에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는 변화하는 정세 속에 살고 있다. 이는 우리를 향한 부름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획을 대담하게 시도하라는, 당과 전위와 대중이라는 각각의 차원에서 활동하라는 부름 말이다. 기회가 우리를 기다린다. 이 기회를 붙들고 우리의 사상과 실천을 시험할 때다. 스페인어: https://www.laizquierdadiario.com/XX-Congreso-PTS-La-relacion-entre-el-PTS-la-vanguardia-y-las-masas (저자: Fredy Lizarrague) 영어: https://www.leftvoice.org/the-party-the-vanguard-and-the-masses-experiences-from-argentina/ (번역: Remo Erdosain) 한국어: 강성윤 역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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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기초학습#12]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노선착취 당하는 모든 노동자가 날카로운 계급의식을 가진다면 자본주의는 단 하루도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며 정세에 따라 진동한다. 때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나게 퇴보하기도 한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일부로서의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노동자계급’ 그 자체는 구분된다. 특정한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집단, 운동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며 노동자계급을 이끄는 의식적 집단이 바로 당이다. [목차] 1. 노동자계급에게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필요한가 1) 노동조합 투쟁,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노동 2)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주의 3) 전 계급의 단결에 기초한 대중권력기관, 노동자평의회 4) 사회주의 정당의 존재 이유, 계급의식의 불균등성 5) 노동자평의회와 사회주의 정당 2. 전위정당에 대한 이해 1) 누가 당원인가? -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규약 1조 논쟁 2) 당과 대중의 관계 3)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조직 4)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 진보정당의 ‘양날개론’ 비판 3. 사회주의 정당의 노선 1) 노동자계급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철폐 - 칠레와 그리스의 경험이 말하는 것 2)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업으로서의 노동자 혁명 3) 노동자계급 국제주의 – 국적이 아니라 계급으로 단결하자 4) 노동자계급 공동전선 추동 5)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형성 1. 노동자계급에게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필요한가 1) 노동조합 투쟁,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노동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자본가계급은 착취강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자본가계급은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고자 가능한 한 임금을 줄이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늘리고, 더 많은 노동자를 기계설비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지속한다. 많은 경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다수의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가의 착취 강화시도는 생존을 위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 곧 계급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투쟁은 단지 경제적 문제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1838년부터 10여 년간 이어진 영국노동자들의 인민헌장 제정운동, 프랑스 노동자들의 1848년 2월혁명과 6월 봉기, 그리고 1871년 파리코뮌,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독일혁명, 1936년 스페인혁명, 1968년 프랑스 5월혁명, 1987년 한국 노동자대투쟁 등등. 자본주의의 역사는 거대한 계급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와의 적대적 이해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 즉 계급의식을 형성한다.[1] 노동자계급은 이런 각성과 함께 계급조직을 건설해왔다. 계급투쟁의 경험이 조직이라는 물질적 형태로 축적되지 않는다면, 그 성과는 자본의 반격과 함께 형체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중 노동조합은 가장 보편적인 계급조직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철폐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조합의 작동 원리는 자본주의적 임노동관계, 즉 노동력 상품화를 전제한다.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자본가에게 판매해야 생존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본질적 기능은 노동력 상품을 자본가에게 더 높은 가격, 즉 더 높은 임금에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노동력 상품을 (자본가의 의도에 비해) 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노동력을 ‘집단적으로’[2] 판매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조합 활동인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의 본질은, 조합원집단의 노동력 판매 조건을 둘러싼 자본가와의 흥정[3]과 투쟁이다. 미조직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개별로 판매해야 하나, 조직노동자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은,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떨어뜨려 더 많은 이윤을 쌓으려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조합원의 생존권을 방어한다. 이렇듯 노동조합은 착취가 이루어지는 조건을 개선하고, 착취의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줄 수 있는 성과는 자본의 안정적인 이윤축적과 직결되어 있다. 전반적인 이윤축적의 위기가 도래하거나, 한 자본이 다른 자본과의 경쟁에 뒤처져 지불능력이 부족할 경우,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높은 값에는커녕 노동력 재생산비용 이하로 판매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그렇기에 불황이 도래하면 상당수 노동조합은 임금삭감, 노동조건 후퇴, 해고를 용인하기도 한다. 호황기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더 많은 임금과 복지를 요구하며 불황기에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요구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적어도 일상적 시기에는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회사가 있어야 근로자도 있다’는 인식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자본가의 선동 때문이 아니라 노동력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상황, 또한 혁명적 노동자조직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계급의 상황에 기인한다. 앞서 설명했듯, 노동조합은 착취의 원인인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노동력 상품화’ 그 자체에는 맞서 싸우지 않는다. 그저 자본가의 공격에 맞서 방어하고 또 방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조합 투쟁을 ‘시시포스의 노동’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은 바로 이윤의 공격에 대항하려는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방어,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경제가 가지고 있는 임금률을 아래로 억누르는 경향에 직면하여 노동자 계급을 보호하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노동조합의 과제는 자신의 조직을 통해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시장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은 중산계층이 프롤레타리아화되면서 끊임없이 노동시장에 새로운 상품을 제공하기 때문에 계속 파괴된다. 둘째, 노동조합의 목적은 노동자 계급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 즉 사회적 부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몫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몫은 노동 생산성이 향상함에 따라서 자연적인 과정처럼 숙명적으로 계속 낮아진다. … 노동조합을 통한 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들로 인해 일종의 시시포스 노동으로 바뀐다.[4] 2)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주의 통상 자신의 활동을 소속 ‘조합원’의 권익 실현에 한정한다는 점 역시 노동조합의 주요한 특징이다. 현실의 노동자들은 수많은 업종과 고용형태로 분리되어 있기에, 특정 노동자의 당면 이해와 전체 노동자들의 장기적 이해는 때때로 충돌한다. ‘조합원’의 이해를 우선하는 노동조합의 동학상,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는 종종 노동조합의 투쟁 과제에서 배제된다.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고 파괴하기까지 하는 정규직 이기주의, 여성노동자 차별을 구조화하는 성별임금 이데올로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등이 그 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체 노동자계급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형성되기도 한다. 특정 산업의 호황과 해당 산업 노동조합이 보유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집단, 소위 ‘노동귀족’이라고 불리는 집단이다.[5] 이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윤율 저하에 따라 자본주의의 위기가 만성화한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더욱 가혹하게 공격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이윤축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군부독재에서 신자유주의로 이행하며 케인즈주의 계급타협 체제를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이 나라의 조건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대다수 노동자계급이 생존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극히 일부 노동자들이 고임금과 기업복지를 누리며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노동자계급운동에 대한 미조직 대중의 반동적 정서를 강화한다. 앞서 말한 대로 미조직 대중은 자신의 노동력을 개별로 판매해야 하는 처지다. 지배계급은 미조직 대중의 분노를 십분 활용해 조직노동자운동을 탄압한다. 노동조합은 이런 한계들을 가진다. 이렇듯 노동조합은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조직이나, 그 자체만으로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이익을 위한 투쟁을 조직할 수 없다. 특정한 조직은 특정한 의식을 낳는다. 혁명조직은 혁명적 의식을, 조합조직은 조합적 의식을 낳는다. 단기적이고 부문적인 이해관계에 종속된 노동자 의식,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종속된 노동자 의식을 ‘조합주의’라고 한다. 이렇듯 노동자계급에게는 조합주의를 넘어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추동할 조직이 필요하다.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추동하고 실현하며,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도하고, 나아가 사회주의 권력기관 그 자체로서 노동자계급을 지배계급으로 조직할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조직이 바로 노동자평의회다. 또한 노동자평의회가 창출되기까지 노동조합을 포함한 계급조직 안에서 노동자운동의 발전을 이끌고, 노동자평의회 내부의 한 경향으로서 활동하며, 노동자평의회를 노동자 권력으로 이끄는 의식적 지도조직이 바로 사회주의 노동자당이다. 3) 전 계급의 단결에 기초한 대중권력기관, 노동자평의회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폐지가 필수적이다. 사적소유는 자본가들의 개별적 생산수단 소유에서, 주식회사나 국유기업 같은 집단적 소유까지 다양한 형식을 취하지만, 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과 노동과정에 대한 지배력을 독점한다는 점은 다양한 형식을 관통해 동일하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폐지, 즉 사회적으로 연합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며, 따라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쟁취하는 것은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서 핵심적인 토대다. 이 토대는 개별 기업이나 특정 산업부문, 일부 지역에서 마련될 수 없다. 전국적이고 전면적인, 모든 산업에 걸친 변혁이 이뤄져야 생산수단 사적소유를 폐지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노동자계급의 공동체적 소유를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힐 자본가계급의 공공연한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여전히 남아 있을 노동자계급 내 의식 편차를 극복하고 다른 피억압 민중과의 동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국가권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재생산하는 선거, 그 선거로 만들어지는 의회를 바탕으로 노동자 권력을 세울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가 남긴 억압적, 관료적 국가기구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할 수 없다. 기존의 국가 질서는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유지하고 혁명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회혁명에 나선 노동자들은 낡은 억압적, 관료적 국가기구를 해체하고, 작업장에 바탕을 둔 대중적, 민주적 평의회 권력기구를 새롭게 창조해내야 한다.[6] 4) 사회주의 정당의 존재 이유, 계급의식의 불균등성 착취 당하는 모든 노동자가 날카로운 계급의식을 가진다면 자본주의는 단 하루도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할 것이고, 전투적 임금·단체협상 투쟁은 물론 계급적 연대투쟁에 나설 것이며, 노동자평의회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을 통해 국가권력 장악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7]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며 정세에 따라 진동한다. 때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나게 퇴보하기도 한다. 10% 남짓한 한국 노동조합 조직률이 드러내듯, 일상적 시기에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는 물론이고 노동조합에서 투쟁하는 노동자조차 소수일 수밖에 없다. 일상적 시기에 다수 노동자는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잠식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단결을 막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이 능력주의, 성차별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이 물질적 힘으로서 존재하는 이유, 노동자계급의 다수가 가장 보편적인 계급조직인 노동조합으로조차 조직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사회의 물질적 힘을 지배하는 계급은 사회의 정신적 힘도 지배한다”는 맑스의 말마따나, 피지배계급을 분열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유포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계급의 힘이다. 운동의 퇴조기에는 많은 노동자가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에 휩쓸린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당은 일상적 시기와 운동의 퇴조기에도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며 노동자계급을 이끌고자 노력한다. 당의 입장이 당장 큰 반향을 얻기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당은 대중 속에서 호흡하며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하고, 정세에 대한 대응방향을 제시하며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어야 한다. 이렇듯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다. 투쟁하지 않던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자연히 투쟁대열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경제위기가 저절로 계급투쟁 격화를 낳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일부로서의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노동자계급’ 그 자체는 구분된다. 맑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이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 있어서 국적에 상관없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 이해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 있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프롤레타리아 정당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정당들 중에서 가장 단호한 부분, 언제나 운동을 추동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부분이다 :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여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8] 위 글에서 추론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자 계급에게는 다수의 당이 존재한다. 하나의 계급에게는 하나의 당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9] 둘째, ‘공산당’은 다른 프롤레타리아 정당과 대립되는 당은 아니지만 구별되는 당이다. 즉, 공산주의자들은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일부’이다. 셋째, 공산주의자들은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대변한다. 즉, 특정 프롤레타리아의 단기적 이해는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공산주의자들은 양자가 충돌할 경우 단호하게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대변한다. 넷째, 공산주의자들은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는 점에서 선진적 집단이다. 이렇듯 특정한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집단, 운동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며 노동자계급을 이끄는 의식적 집단이 바로 당이다. 앞서 살폈듯,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조차 자신이 속한 산업과 고용형태에서 유래하는 부문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당의 주요 과제는 대중의 계급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쟁,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하는 투쟁이다. 당은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을 이끈다. 5) 노동자평의회와 사회주의 정당 그렇다면 앞서 살핀 노동자평의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필요한가? 그렇다. 계급의식의 불균등성은 노동자평의회 내에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혁명은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자평의회, 두 조직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평의회는 대중의 권력기관이며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 평의회 내에서 다른 정치적 경향과 경쟁하며 대중을 혁명으로 이끌고자 분투한다. 러시아혁명 당시를 살펴보자. 혁명의 과정 속에서 당(볼셰비키)과 평의회(소비에트)의 관계는 매우 역동적이며, 사건의 흐름은 노동자평의회가 대중의 요구를 왜곡하고 굴절시키는 경우도 얼마든지 드러낸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등장한 자본가들의 권력기관, 임시정부는 즉각 전쟁을 끝내라는 대중의 요구를 결코 수용하지 않았으나, 소비에트는 10월 혁명 직전까지도 임시정부의 권위를 인정했다. 이는 당면 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으로 못 박은 소비에트 다수파의 정치적 입장에 근거했다. 각 당파는 소비에트에 대한 정치력 영향력을 분점하고 있었고, 볼셰비키를 제외한 정치세력은 소비에트를 그저 임시정부를 지키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했다. 그랬기에 소비에트를 누가 주도하느냐의 문제가 곧 소비에트가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느냐, 혁명이 전진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혁명 초기 소비에트에 대한 볼셰비키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1917년 4월, 전쟁 중인 독일과 즉각 종전협상을 요구하는 대중투쟁이 정치적 위기로 번지자, 임시정부는 소비에트 내 온건 사회주의자들을 임시정부 장관으로 임명해 소비에트를 통제한다. 6월, 임시정부는 ‘전쟁 종식’이라는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러시아군에게 공세를 명령했다. 이에 충실하게 협조하던 소비에트 지도부의 입장으로, 즉각 종전을 원하는 대중의 정서는 소비에트와 더욱 멀어진다. 7월에는 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 수비대 병사들, 크론슈타트 수병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일으킨 봉기로 임시정부-소비에트-대중 사이의 균열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런데도 소비에트 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지도자들은 임시정부에 대거 입각해 자유주의자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볼셰비키를 불법화한다. 자본가의 권력기관인 임시정부와 노동자의 권력기관인 소비에트가, 서로 대립하기는커녕 화해하고 융합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볼셰비키를 불법화한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볼셰비키는 민주적 소비에트 권력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이 새로운 혁명에서 소비에트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아니,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비에트는 현재의 소비에트, 즉 부르주아와 협력하는 기관이 아니라, 부르주아에 대당하는 혁명적 투쟁기관일 것이다. 그때에도 물론 우리는 소비에트를 모범으로 삼아 국가 전체를 건설하는 노선을 지지할 것이다. 일반적인 소비에트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반혁명 또 현재의 소비에트의 배신과 싸우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10] 볼셰비키의 불법화 이후에도 볼셰비키는 대중 속에서 영향력을 넓혀 갔고, 결국 10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현실로 만들었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성공은 난관 속에서도 노동자평의회를 권력의 주체로 세우려는 볼셰비키의 지도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렇듯 사회주의 정당만으로도, 노동자평의회 만으로도 혁명은 불가능하다. 양자의 유기적 결합이 혁명을 가능케한다. 2. 전위정당에 대한 이해 1) 누가 당원인가? -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규약 1조 논쟁 전위정당 개념은 이념적으로는 대중의 ‘자생성’에 대비해 당의 ‘의식성’을 강조한 1902년 레닌의 소책자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처음 제기되었고, 이념과 조직적 측면을 포함한 총체적 제기는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2차 당대회에서 벌어진 규약 1조, 즉 <당원 자격에 관한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1903년 2차 당대회 당시 레닌이 제출한 규약 1조 초안은 다음과 같다. “당원은 당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물질적 수단으로 당을 지지하며, 당의 한 기구에 속해 활동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마르토프가 제출한 초안은 다음과 같다. “당원은 당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물질적 수단으로 당을 지지하며, 당의 한 기구의 지도 아래 정기적으로 당을 지원하는 사람이다.” 레닌에게 당원은 당기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었으며, 마르토프에게 당원은 당을 돕는 사람이었다. 전자는 당원 자격을 당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제한하자는 주장이고, 후자는 지지자도 당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살폈듯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의 의식적 일부, 즉 ‘전위’[11]다. 그렇기에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모든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적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삼는다. “당 조직으로 공인된 조직의 성원만을 당원으로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특정의 당 조직에 ‘직접’ 가입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당 조직이 아니지만 당과 관련된 조직 속에서 여전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에의 참가와 활동으로부터 제외한다는 의미로서 방기한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반대로 참된 사회민주주의자로 이루어진 우리의 당 조직이 강고하게 되면 될수록, 또 당내의 동요와 불안정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당을 둘러싸고 있으며 당에 의해 지도되는 노동자 대중의 분자들에 대한 당의 영향력은 더욱 넓어질 것이며, 더욱 다면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더욱 성공적으로 될 것이다. 요컨대 노동자계급의 전위로서 당은 계급 전체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급의 당이다. 그러므로 계급의 거의 전체가 (그리고 전시나 내란 시에는 완전히 계급 전체가) 당의 지도하에 행동해야 하며, 가능한 한 긴밀하게 우리 당에 동조하여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에서 계급 전체가 또는 거의 전체가 그들의 전위나 사회민주당의 의식성과 적극성의 수준까지 고양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마닐로프주의거나 ‘추수주의’인 것이다. 현명한 사회민주주의자라면, 자본주의하에서는 노동조합 조직조차도 모든 또는 거의 모든 노동대중을 망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전위와 전위에 이끌리는 모든 대중과의 차이를 망각하고, 광범한 층을 점차로 선진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전위의 항상적 임무를 망각하는 것은 단지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며, 우리 임무의 위대성을 외면하는 것이며, 우리 임무를 축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에 동조하는 자와 당에 소속하는 자의 차이, 자각된 적극적인 자와 원조하는 자의 차이를 말살하는 것이야말로 이와 같은 외면이고 망각이다.”[12] 레닌의 강조점은 명확하다. ‘당’은 ‘계급의 당’이지만, 계급 그 자체와는 다른 것이다. 당은 계급 전체를 망라할 수 없으며, 그러려고 해서도 안된다. 당은 계급의 의식적이고 선진적인 부분이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당은 끊임없는 계급투쟁의 부침 속에서도 중핵을 보존하고 확장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권력으로 이끄는 투쟁조직이어야 한다. 혹자는 ‘전위당’의 필요가 러시아 전제정의 혹독한 공안탄압에서 기인했으며, 오늘날 전위당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위 인용문에서 레닌은 ‘러시아 상황’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과 계급조직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13] 전위는 정세적으로 끊임없이 진동하는 계급을, 단기적인 경제적 이해를 넘어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노동자계급의 선진층이며, 이 선진 부위의 축적과 단결이 곧 당의 건설이다. 자본주의체제를 변혁할 당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당의 성격은 당연히 전위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전위’를 무엇인가 신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 사실 ‘당원은 당기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다’라는 레닌의 주장은 매우 소탈한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앞서 살핀 것처럼 계급의식의 불균등성에 따라 당원 자격을 한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는 음모주의, 엘리트주의와 하등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전위정당은 종종 음모가 집단, 직업적 혁명가들만 가입할 수 있는 집단, 엘리트주의적 집단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레닌 자신이 한 번도 당원 자격을 음모에 능한 직업적 혁명가들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음에도 이런 오해는 널리 퍼져있다. 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논쟁 당시 레닌에 따르면, 당을 구성하는 범주는 다음과 같다. 당 조직은 오직 직업적 활동가로만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극히 제한되고 비밀스러운 조직으로부터 매우 광범하고 자유로운 느슨한 조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 모든 등급, 모든 색채의 다양한 조직이 필요하다. … 마르토프 동지의 정식 초안이 당과 조직 간의 관계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음에 반해, 나는 대회가 소집되기 1년 전에 이미 어떤 조직이 당에 가입해야 하고 어떤 조직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지적하였다. … 1) 혁명가의 조직, 2) 가능한 한 다양하고 광범한 노동자 조직 (나는 이 말을 노동자계급에 한정하고 있지만 다른 계급의 일정한 분자도 일정한 조건에서는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이 두 범주가 당을 구성한다. 다음으로 3) 당에 동조하는 노동자 조직, 4) 당에 동조하지는 않으나 실제로는 당의 지도와 통제 하에 있는 노동자 조직, 5) 적어도 계급투쟁의 대발현의 시기에 부분적으로 사회민주당의 지도에 복종하는 노동자계급의 미조직 분자. … 마르토프 동지의 견해를 보면 당의 경계가 완전히 불분명하다. … 이러한 느슨함으로부터 어떠한 이로움이 생기는가? ‘명칭’이 널리 퍼져나가는 것이다. 그 해악은, 계급과 당의 혼동이라는 조직 해체의 사상을 가져오는 것이다.[14] 레닌은 ‘혁명가의 조직’만으로 당을 구성해야 한다는 사고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며, ‘가능한 한 다양하고 광범한 노동자 조직’도 당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즉, ‘당의 한 기구에 속해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로 구성된 당은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노동자계급과 가장 넓은 접촉면을 유지하며,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추동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종국적 승리로 이끌고자 분투한다. 전위당은 대중 속에서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하다. 이렇듯 전위당의 본래적 의미, 그 어디에도 엘리트주의와 음모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의문은 남는다. ‘대중 속에서 활동하더라도, 전위당은 당원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므로, 결국 사회주의 정당은 늘 소수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운동의 침체기와 일상적 시기에 사회주의 정당은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 철폐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정치의 대중화는, 그 본질상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대중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와 계급투쟁 확대를 그 필요조건으로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벌어지는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투쟁 확대는 급진적 노동자들의 비약적 확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 이후의 공세기에, 레닌은 혁명이 배출한 급진적 노동자들을 당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위험을 과장하지 말자, 동지들.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자기 이름을 확립했고,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냈으며, 사회민주주의적 노동자 간부들을 형성해 냈다. 그리고 이제 영웅적인 프롤레타리아가 실천으로, 명확히 인식된 목표를 위해, 순수한 사회민주주의 정신으로, 일관되고 집단적으로 싸울 준비와 능력이 있음을 입증했으니, 우리 당 소속 노동자나 중앙위원회의 초청으로 내일 당에 가입할 노동자 백에 아흔아홉은 사회민주주의자일 것임을 의심하는 것은 그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본능적으로, 자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이며, 사회민주주의가 지난 10년 넘게 기울인 활동은 이러한 자발성을 의식성으로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허수아비를 때리지 말자, 동지들! 모든 살아 있고 성장하는 정당에는 언제나 불안정, 동요, 흔들림의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영향받을 수 있으며, 굳건하고 확고한 사회민주주의 중핵의 영향에 따를 것이다.[15] 2) 당과 대중의 관계 계급투쟁 확대는 전위와 대중의 간격을 급격히 좁힌다. 격화하는 계급투쟁 속에서 대중은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해 집단적 의문을 제기하며, 이는 사회주의 정치가 급진화된 노동자 대중 속으로 뻗어나갈 계기를 형성한다. 이것이 사회주의 대중화의 조건이다. 물론 위기가 사회주의 대중화 자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위기에 조응하는 과제를 제시하고 선도할 사회주의 정당의 주체적 능력이며, 이러한 능력은 일상적 시기에 준비된다. 해당 준비의 핵심은 혁명적 강령, 노동자계급과의 일상적 결합, 그리고 당원의 주체화를 추동할 당내 민주주의다.[16] 당은 노동자계급의 유기적 일원이어야 한다. 당원은 당의 제반 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당론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적 시기에 살아있는 당이 아니라면, 그 당은 혁명적 시기에도 살아있을 수 없다. 전위는 대중과 호흡하며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노력하며, 성공과 실패 속에서 스스로를 교정한다.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를 반추하며, 레온 트로츠키는 당과 대중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대중은 사회재구성에 관한 준비된 계획을 가지고 혁명에 돌입하지 않는다. 다만, 구체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격렬한 감정으로 혁명에 돌입할 뿐이다. 계급대중의 지도적 부위만이 정치강령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혁명의 시험과 대중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도조직이 없다면 대중의 혁명에너지는 피스톤 실린더 안에 들어가지 않은 증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질 뿐이다. 그러나 역시 원동력은 피스톤이나 실린더가 아니고 증기에 있듯이 혁명의 원동력은 대중에게서 나온다.” “소비에트는 공장위원회에 뒤처졌다. 공장위원회는 대중에게 뒤처졌다. 병사들은 노동자들에 뒤처졌다. 더욱이 지방은 수도에 뒤처졌다. 이것이 혁명의 불가피한 역동성이다. … 볼셰비키 역시 혁명의 역동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졌다. … 대중은 균일하지 않을뿐더러 손을 데이고 소스라치게 놀라자빠진 다음에야 혁명의 불길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볼셰비키는 경험을 통해서만 배우는 대중의 각성 과정을 가속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에 역사는 이들의 참을성에 보답해 주었다.”[17] 트로츠키의 서술은 대중의 자발성과 당의 의식적 지도 사이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전위는 대중의 에너지를 조직하고 방향을 부여하는 피스톤이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역동성은 언제나 대중으로부터 솟아나며, 당은 이를 선도하기도 하고 뒤따르기도 한다. 살아있는 당은 바로 이 흐름을 이해하고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을 갱신할 수 있는 조직이다. 당은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을 결합해, 대중의 경험을 의식적 전술로 만들며, 이를 통해 전위와 대중의 간극을 실천으로 메운다. 혁명적 강령, 노동자계급 속에서 활동하는 실천적 당원,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을 보장하는 민주집중제, 이 총체가 ‘인민의 호민관’으로서의 당을, 또한 혁명을 가능케 한다. 3)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조직 사회주의 정당은 기초조직을 노동현장에 둔다. 노동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생산과 착취가 일어나는 공간,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노동현장으로부터 계급투쟁을 조직하고, 지원하며, 개입하고, 이끈다. 노동현장에 존재하는 당의 기초조직, 노동현장에 뿌리박은 ‘당의 한 기구’, 이를 ‘현장분회’라고 부른다. 현장분회는 생산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며, 사회주의 정당의 이념과 강령을 알리며 대중을 조직한다. 이를 통해 일터에 당의 존재를 드러내고, 일터의 투쟁과 전체 노동자투쟁을 잇는 선전·선동을 수행한다. 앞서 살폈듯 노동조합은 조합원에 대한 분배의 확대를 중심 목표로 활동하며, 이는 때로 사회주의 정당의 노선과 충돌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노동현장에서 전개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독립적인 당의 기구가 생산현장에 존재해야 한다. 즉, 사회주의 정당의 당원은 그저 당원증을 가진 노동조합원이 아니라, 일터에 포진한 사회주의 정치활동가를 지향한다. 현장분회는 대규모 제조업 생산현장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소규모 공장이 모인 공단, 서비스 노동 등 당원의 구체적 노동형태에 따라 지역적 형태 등 유연한 조직형태에 기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통상적인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 진보정당의 기본조직은 ‘지역구’다. 지역구 단위로 선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목적은 의회진출이며, 이에 중요한 것은 선거에 필요한 재정과 표의 확보다. 그렇기에 대다수 진보정당은 선거 단위에 조응해 당원을 편재한다. 양자의 차이는 현장분회가 노동자를 ‘계급’이라는 집단으로 조직하고자 하는 데 반해, 지역구 체제는 노동자계급을 자본주의 선거제도 아래 ‘유권자’로 조직한다는 것이다. 지역구 체제 아래 진보정당에 속한 노동자들은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편재되고, 해당 노동자들 또한 시민적 정체성으로 지역구민을 만나며 당의 득표 확대를 위해 활동한다. 진보정당의 당원은 동료 노동자들에게 국가와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노동자 정치운동가로서가 아니라, 최대한 온건한 모습을 요구받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정체화되는 것이다. 선거 중심 활동과 조직체계는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에 내재한 국민정당화 경향[18]을 증폭시킨다.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은 애초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출발했더라도, 결국 전 국민을 조직대상으로 삼는 국민정당으로 귀결해왔다. 그 동학은 다음과 같다. 선거에서는 투쟁하는 노동자도 1표,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도 1표, 교수와 변호사도 1표, 자본가도 1표를 행사한다. 그렇기에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선거에서 1/N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 중심 활동과 선거대응에 초점을 맞춘 조직체계 아래, 노동자계급은 당의 핵심 주체가 아니라 일부가 될 수 있을뿐이다. 이렇듯 현장정치활동이 존재하지 않는 통상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구조상, 노동자는 일터 바깥에서만 당원이 될 수 있으며, 그것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러할 뿐이다. 이에 따라 일터의 투쟁은 오로지 노동조합에 맡겨지며, 정당의 활동은 현장투쟁과의 결합력을 잃고 의석 확대를 위한 표와 재정의 조직화로 축소된다. 한국에서 이런 모델, 즉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을 하고 진보정당은 정치투쟁을 한다는 역할분담론은 ‘양날개론’으로 제시되어 왔다. 4)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 진보정당의 ‘양날개론’ 비판 운동진영에 이른바 ‘양날개론’이 처음 제시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며,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역시 이런 모델에 근거했다.[19] 그렇다면 노동조합의 경제투쟁과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은 어떤 문제를 가지는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리를 전제로 하는 양날개론은 그 자체로 오류다. 정치투쟁은 진보정당이, 경제투쟁은 산별노조가 한다는 역할분담론에 따라, 정치의 공간과 경제의 공간은 무 자르듯 분할된다. ‘현장’은 ‘노동조합 임단협투쟁’을 하는 곳으로, ‘의회’는 더욱 중요하고 거시적인 ‘정치’가 행해지는 것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분리될 경우, 경제투쟁은 그야말로 조합주의적 이해관계에 한정된다. 노동조합 밖에서 사회적 격변이 벌어지건 말건 노동조합은 소속 조합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그만이다. 또한 양날개론 역할분담론에 따라 정치는 현장의 외부, 까마득히 먼 의회에서 직업정치인들이 하는 것이 된다. 정치가 이렇게 정의되는 순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임무는 전적으로 진보정당의 의회진출 확대에 맞추어진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정치’는 진보정당 후원사업과 투표 조직으로 한정되며 노동현장 안에서의 정치활동은 텅 비게된다. 이는 정치운동과 노조운동 양자 모두의 후퇴를 결과한다. 그러나 계급투쟁은 그 자체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융합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경제투쟁인가, 정치투쟁인가? 1996-97 총파업 투쟁은 경제투쟁인가, 정치투쟁인가? 모든 거대한 계급투쟁에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은 뒤섞이며 상호 발전한다. 또한 양날개론은 필연적으로 관료주의와 노동자정치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양날개론자들에게 ‘정당’이란 의회에 진출하기 위한 도구이며, ‘정치’란 의회에서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양날개론자들에게 현장투쟁은 고될 뿐 별 성과가 없는 것이며,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임무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의 인적·재정적 자원을 진보정당으로 동원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첩경으로 놓인다. ‘진보정당에 의한 노동조합의 안정적 동원’[20]이 목적이 되는 순간, 노동조합 내에는 ‘묻지마 단결’이 최우선 과제로 놓인다. 노동조합 내 다양한 정치적 경향의 존재에 ‘분열’이라는 딱지가 붙고, 정치적 소수파를 노동조합 밖으로 내모는 행위가 단결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논쟁과 토론을 통해 이루어지는 조합원의 정치의식 발전은 봉쇄된다. 정치의 목적이 선거와 의회진출로 놓임에 따라, 당은 계급투쟁이 배출한 전투적 노동자들이 아니라 선거기술자, 출세주의자로 채워진다. 심지어 ‘진보정당도 의석확대를 위해 자본가정당의 정치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정당도 협상에 능해야한다’는 투의 이데올로기가 일종의 교훈처럼 유포된다. 이를 통해 당은 노동자계급의 통제를 벗어나며, ‘국민정당’으로 귀결한다. 이러한 한국 양날개론의 원형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서 유래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당의 정치투쟁과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이 “병행 행동”(parallel action)을 하며 “동등한 권위”를 지닌다는 이론은 전적으로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이 이론은 부르주아 사회의 평화롭고 “정상적인” 시기라는 환상에 기초해 있다. 이 시기에는 사회민주당의 정치투쟁이 의회투쟁으로만 소모되어버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노동조합 투쟁과 마찬가지로 의회투쟁도, 부르주아 사회 질서라는 토대 위에서만 수행되는 투쟁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경제개혁 작업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본질상 정치개혁 작업이다. … 최종 목표는 의회투쟁이나 노동조합 투쟁 그 너머에 있다. …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의 “동등한 권위”라는 이론은 단순한 이론적 오해나 혼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잘 알려진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 경향의 표현이다. 이 경향은 노동계급의 정치투쟁을 의회투쟁으로 축소시키고, 사회민주당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정당에서 소부르주아적 개혁정당으로 바꾸려 한다. … 물론 이것은 노동조합 조직을 정당에 흡수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 전체와 그 일부인 노동조합 간의 실제 관계에 상응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 간의 통일을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다.[21] 3. 사회주의 정당의 노선 1) 노동자계급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철폐 - 칠레와 그리스의 경험이 말하는 것 곳곳에서 제국주의 전쟁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조차 극우세력이 발호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이윤율 저하에 따른 자본의 이윤축적 위기가 있다. 일반화한 저출생 문제가 드러내듯 현 시기 자본주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다. 자본가계급은 체제를 지배할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22] 그러나 문제는 어떤 지배계급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혁명을 지향하건 평화적 이행을 지향하건, 지배계급은 평화적 이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배계급의 조직된 폭력, 국가권력이다. 칠레와 그리스의 사례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맞선 결정적 투쟁 없이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레닌이 말했듯, 혁명의 문제는 곧 국가권력의 문제다. (1) 1973년 칠레의 경험 1970년 9월, 칠레 노동자 민중은 살바도르 아옌데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아옌데는 사회당, 공산당, 급진당 등 좌파와 중도좌파 정당이 결성한 ‘인민연합’(Unidad Popular, UP) 소속으로 출마하여 토지개혁, 대외 종속 탈피, 기간산업 국유화, 교육·보건 공공성 강화 등 개혁 프로그램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아옌데 정부는 집권 이후 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던 구리 산업을 비롯해 은행, 석유, 통신, 제약 등 주요 부문 국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1971년 7월 11일 의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한 헌법 개정에 기초한 것으로, ‘초과이윤 조항’을 통해 미국 자본에 대한 보상을 최소화했다. ‘사회주의로 가는 칠레의 길’을 내건 아옌데 정부는 이러한 개혁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 채 합법적으로, 즉 기존 헌정질서의 틀 내에서 추진하려 했다. 사실 인민연합정부는 출범부터 의회제도를 비롯한 기존질서 유지를 ‘보장법’으로 약속했다.[23] 현존 정치체제와 사법체제, 교육제도·노동조합·사회조직의 사회주의 지향으로부터의 독립, 출판과 대중매체에 대한 국가로부터의 독립 등을 서약하며 제도 내에 존재할 것을 다짐하고서야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국가의 골격을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자본은 아옌데 정부에 극렬한 반격을 개시한다. 칠레 자본가계급은 보수 언론과 정당, 교회, 자본가 단체들을 통해 조직적으로 아옌데 정부를 흔들었다. 특히 1972년 10월에 발생한 '트럭 소유주 연맹'의 대규모 파업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이 파업은 CIA가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기획한 것으로, 물류망을 마비시켜 아옌데 정권을 흔들기 위함이었다. 더욱이, 의회 다수와 사법부는 인민연합 정부의 경제 개입 조치를 '합법성 결여'라 비판하며 사보타주에 나섰고, 1973년 8월 22일에는 하원이 아옌데 정부가 '헌법을 위반했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는 군부의 정치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이미 그 무렵 칠레 군대는 우익 쿠데타 세력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칠레 노동자 민중은 자본주의가 정한 틀 내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경제를 마비시키려는 자본의 사보타주와 군부의 쿠데타 위협 속에서, 1972년부터 1973년까지 노동자 민중은 공장과 지역에서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권력기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바로 산업조정위원회(cordones industriales, 직역하면 ‘산업 벨트’)이었다. 산업코르돈(산업조정위원회)은 작업장과 지역 단위를 잇는 노동자 조직으로 공장점거, 생산통제, 분배 조정, 쿠데타에 맞선 방어조직 형성 등을 수행했다. 유통부문에서는 노동자와 주부, 학생들이 '민중공급위원회'(공급과 물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식량과 필수재의 배급을 자율적으로 조정했다. 산업조정위원회와 민중공급위원회처럼 노동자 민중이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고자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들이 전국으로 확장되고 이것이 정부의 지지, 지원과 결합할 경우, 이것이 ‘이중권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옌데 정부는 이런 조직을 잠재적 권력기구가 아니라 자본가들을 놀라게하는 성가신 존재들로 취급했다. 1973년 6월,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하자 산업코르돈은 수십 개의 공장을 접수하고 생산과 물자 이동을 자체적으로 통제하며 반격했다. 하지만 아옌데 정부는 이 흐름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화된 기업을 자본가에게 돌려주는 조치를 취했고, 위기 타개를 위해 피노체트를 내무장관으로 기용하는 타협을 선택했다. 이는 치명적인 선택이었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한 군부는 쿠데타를 단행했고,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자결했다. 칠레 군부는 대대적 학살을 자행했고, 정치적 억압뿐 아니라 경제 구조의 근본적 재편을 추진했다. 그 중심에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에서 밀턴 프리드먼에게 학습한 신자유주의 교리로 무장한 경제학자 집단, 이른바 ‘시카고 보이즈’가 있었다. 이들은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고삐 풀린 시장 개방, 국영기업의 민영화, 노동권 축소, 복지 철폐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이후 IMF가 세계 곳곳에 강요할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원형이었다. 아옌데 정부가 추구한 ‘사회주의로 가는 평화로운 길’은 무참히 짓밟혔고, 군부와 자본의 연합은 칠레 노동자 민중의 삶을 벼랑으로 몰았다. 칠레의 비극은 단지 민중연합의 적들이 악랄해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중립성’에 대한 환상, 부르주아 헌정질서 내에서의 점진적 개혁에 대한 집착, 그리고 노동자 민중이 아래로부터 만들어낸 투쟁과 기구에 대한 방기. 이것이야말로 ‘체제 내 사회주의’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혁명이 배제된 사회주의는, 자본이 허용하는 만큼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2) 2015년 그리스의 경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이어진 유럽 재정위기는 남유럽 국가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겨줬다. 그리스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 중 하나였다.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된 ‘트로이카’는 그리스 정부에 퇴직연령 상향, 연금 삭감, 최저임금 삭감, 단체교섭 제한, 해고 요건 완화, 공공부문 축소 등 가혹한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그리스 실업률은 30%에 가깝게 치솟았고, 청년실업률은 50%를 넘겼다. 분노한 대중은 기존과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24] 이런 상황에서 ‘시리자’(SYRIZA)와 같은 급진 좌파 정당들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급진좌파연합’ 이라는 뜻의 시리자는 2004년 여러 좌파정당의 연합체로 결성되었고, 이후 2012년에 하나의 통합 정당으로 재편되었다. 시리자는 긴축정책에 맞선 대중운동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면서 지지층을 빠르게 넓혀갔다. 시리자는 2012년 5월 1차 선거에서 16.8%, 6월 2차 선거에서 26.9%를 얻어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를 제치고 제2당으로 부상했다. 2009년 선거에서 4.6%를 획득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이었다. 결국 시리자는 2015년 1월 총선에서 36.3%를 득표하며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트로이카가 강요하는 긴축안에 맞선 대중투쟁이 시리자의 집권 배경이었다. 긴축을 둘러싼 협상이 시작되었다. 트로이카는 강경하게 가혹한 조건을 강요했고, 그 강경함 뒤에는 다른 채무국에 대한 경고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5년 7월 9일, 시리자는 굴욕적 긴축안을 트로이카에 제출한다. 2015년 7월 5일 긴축 찬반을 둘러싼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다수가 '긴축 반대'를 결정하고 단 4일이 지난 뒤였다. 7월 12일, 그리스와 트로이카가 합의한 긴축안은 △연금 삭감 △노동유연화 △해고 공무원 재고용조치 등 구제금융 합의에 위배되는 법률 철회 △500억 유로 규모 국유자산 민영화 등을 포괄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중의 기대를 품고 집권한 시리자는 트로이카의 긴축안 집행자로 전락했다. 시리자의 몰락은 통상적인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 정당의 몰락 경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급투쟁의 발전 전망에 중대한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시리자의 굴복이 남긴 상처는 더 컸다. ᅠ 명백히 드러났듯, 긴축의 중단은 열강의 대리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입씨름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시리자는 트로이카와의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 그리스 노동자 민중의 힘에 호소했어야 한다. 또한, 유럽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구하며 트로이카의 악랄한ᅠ강요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어야 했다. 그 힘과 함께 ‘유로존 탈퇴’라는 도약을 감행하지 않고, ‘긴축의 거부’는 불가능했다. 시리자가 부상하던 당시, ‘혁명과 개량의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말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많았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시리자의 몰락이 남긴 역사적 교훈을 상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맞선 결정적 계급투쟁 없이 이행은 불가능하다. 2)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업으로서의 노동자 혁명 사회주의 혁명은 한 유형의 착취자를 좀 더 진보적인 다른 유형의 착취자로 대체하는 지난날의 혁명이 아니라, 모든 착취자의 손아귀에서 생산수단을 빼앗아 전체 사회의 공동 소유물로 만들고 생산자들 자신이 운영함으로써 계급 그 자체를 철폐하는 혁명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계급이 전면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노동자계급의 주도권과 능동성에 바탕을 두어야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이렇듯 혁명은 노동자계급이 사회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며 자신의 억눌린 잠재력을 해방하는 과정이다.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혁명이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는 데 착수하고 그러한 전복에 성공한다고 해서 반드시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은 아니다. 둘째, 또한, 혁명이 중앙정부가 부르주아 정치권력을 집행하는 수단인 대의제도와 행정조직을 제거하는 데 착수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 혁명이 반드시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셋째, 민중봉기가 자신을 공산주의자라 부르는 자들(또한, 실제로 신실한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권력을 쥐여준다고 해서, 그것이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혁명은, 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의 깊은 곳에서 발전하는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의 생산적 힘을 해방하는 정도만큼만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이다.”[25] 노동자계급의 힘을 해방하는 과정이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할 때, ‘평의회’는 단지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평의회는 혁명의 발발, 확산, 승리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하는 투쟁기구일 뿐만 아니라 혁명 이후에도 노동자권력의 핵심을 구성한다. 역사적 계급투쟁은 평의회 형태의 권력을 창출해왔다. 1871년 파리코뮌, 1917년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평의회), 1918-19년 독일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자·병사평의회, 1919-1920 이탈리아의 ‘붉은 2년’ 당시 금속산업 노동자들이 주축으로 건설한 공장평의회, 1972-73년 칠레 인민연합 정부 당시 산업코르돈(산업벨트, 산업조정위원회), 1979년 팔레비 왕조를 타도한 이란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쇼라(평의회), 1980-81년 폴란드 국가자본주의에 맞선 ‘연대노조’ 등이다. 계급투쟁 격화와 노동자계급의 자기권력으로서의 평의회 형성이라는 흐름은 한국에서도 드러난다. ‘민주노조’는 고유명사다.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은 국제 노동운동사에서 손꼽힐 정도로 역동적인 것이었다. 한국 민주노조운동은 △생산현장에 기반해 사업장 모든 노동자를 조직했다는 점에서 △총회 민주주의 등 아래로부터의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생산현장 점거파업으로 자본가의 소유·경영권에 균열을 내며 이를 일상의 ‘현장권력 쟁취투쟁’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사업장 담장을 넘어 연대투쟁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평의회적인 것이었다. 주체들이 그것을 노동조합이라 불렀건, 평의회라 불렀건 간에 말이다. 이는 서구 노동조합의 전통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19세기 말 영국·독일 등 서유럽 노동조합들이 구성한 노동조합은 숙련노동자 중심의 직종·직능별 조합체제였다. 이는 특정 노동자 부문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에는 기여했지만, 비숙련 노동자와 여성노동자 등을 배제하며 전체 노동자의 단결과 계급적 연대를 제약했다. 이후 서유럽 노동조합들은 산업별 체계로 전환했으나, 이는 생산현장에 기초한 투쟁기관이 아니라 상층 중심의 관료적 협상체계였다. 반면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 노동조합은 단지 임금교섭의 수단이 아니라, 생산현장에서 자본의 독재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계급의 투쟁기관이었다. 이런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적 지향을 집약하는 구호가 바로 ‘노동해방’이었다.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한 투쟁의 일부로서, 노동자계급과 함께 투쟁하며 노동자계급을 이끈다.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계급의 대리자가 아니다. ‘전지전능한 유일당’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운동의 역사적 과정을 안내하고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혁명적 상황을 낳는 것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노동자대중의 운동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에너지를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빼앗아 노동자 자신의 권력으로 대체한다는 궁극적 목표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대중의 에너지가 모이고, 그 에너지가 혁명의 기관차를 움직일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찾게 안내하고 앞장서 이끄는 것이 진정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역할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이러한 자주적 운동을 가로막는 온갖 유형의 관료주의적 질서와 통제, 억압에 맞서 투쟁하면서 노동자 스스로의 운동, 즉 노동자계급의 의식과 조직, 노동자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당이다.[26] 3) 노동자계급 국제주의 – 국적이 아니라 계급으로 단결하자 사회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세계혁명의 성격을 지닌다. 자본주의 자체가 생산과 분배를 국제적으로 실행하는 세계체제인 한, 이로부터 단절한 채 한 나라에서 노동자계급 해방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한 곳에서 혁명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회 위기가 표면화한다는 것은 곧 지구적인 차원에서 위기가 누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위기만이 아니라 기후 위기 같은 재난 상황 역시 일국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 범위에서 다가오고 있다. 또한 어느 나라에서 노동자혁명이 일어나든, 반드시 세계 자본가계급이 연합해 이 혁명을 진압하려 정치적, 군사적으로 간섭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경쟁이 초래하는 낭비와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해 전 지구 차원에서 의식적, 계획적으로 생산과 분배를 조직해야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혁명의 시작은 일국적일지라도, 세계혁명의 전망 아래 여러 나라로 확산하며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협력을 성취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노동자 국제주의를 구현하는 것은 단지 고귀한 이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과제다.[27] 20세기 식민지 재분할과 대공황 극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차례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인류를 절멸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대결, 그리고 팔레스타인 학살은 또 다른 세계대전의 전조다. 지금,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2차대전 직후 세계 GDP의 50%에 달하던 미국 GDP 규모는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 35%로 줄어들었고, 이제는 세계 GDP의 24-25% 가량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부상했으며[28] 브릭스를 축으로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균열하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조건 속에서 군비지출 확대는 당연한 일이다. 2025년 4월 28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각국 군사비 지출은 2023년보다 총 9.4% 증가했다. 미국 군사비 지출 5.7% 증가, 중국 7% 증가, 러시아 38% 증가, 독일 28% 증가. 일본 21% 증가. 열강은 직접 전쟁을 치르고 있거나, 대리전에 참여하고 있거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자유무역 시대 종말과 보호주의 전면화, 급증하는 군비,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장기화하는 대리전. 이런 열강투쟁을 조건으로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극우세력 득세가 다시 열강투쟁 격화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노동자계급 국제주의는 자본주의 태동 이래 변함없는 과제였지만, 다시 세계대전의 위기 앞에 놓인 오늘날 그 중요성은 그야말로 막중하다. 오늘의 한국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연대투쟁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보호주의 관세전쟁과 함께 확산하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맞선 투쟁. 둘째, 군비증강,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무기수출 확대 등 군사화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 셋째,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연대투쟁, 넷째, 이주노동자 탄압과 이주민 혐오조장에 맞선 투쟁이 그것이다. 첫째, 보호주의 관세전쟁이 촉발한 애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야 한다. 이윤축적의 위기 앞에 국가와 자본가계급은 끊임없이 애국주의를 부추긴다. “한국 산업을 살리자”는 선동 뒤에는 보호주의 심화에 따른 경제위기를 명분으로 한 착취강화 시도가 담겨있음은 물론, 자본가들 사이의 투쟁에 노동자계급을 동원하며 ‘타국 노동자계급을 억압해야만 한국 노동자계급이 생존할 수 있다’는 분열 조장이 담겨있다. 사회주의 운동은 국가와 자본의 애국주의 선동에 맞서 세계 노동자계급 공동의 이해를 내세운다.[29] 둘째, 제국주의 전쟁과 군비증강, 전쟁산업 확대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세계 곳곳에 전운이 깔린 지금, 각국 지배계급은 급격한 군비 확대에 나서고 있다. 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유럽 각국 방위비는 나토 가이드라인인 2% 이하였다. 최근 방위비를 5%까지 올리겠다는 유럽 각국의 결의는 노동권에 대한 전면 공격과 복지 축소를 동반한다. 전쟁산업 확대 역시 노동자계급의 투쟁 대상이다. ‘K-방산’은 한국을 제국주의 열강의 보급기지로 만들고 있으며, 이는 그 자체로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 이미 한국은 모든 유럽 국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했으며[30],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산업 노동자들을 미 해군력 증강의 도구로 만들고 있다. 셋째,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국제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이스라엘 지배계급이 서방 제국주의의 지원과 묵인 아래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투쟁은 이미 세계정세의 핵심축이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9월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으로 길을 보여주었듯, 한국 노동자계급 역시 일터와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이주노동자 탄압과 강제추방에 맞서는 연대가 필요하다. 9월 4일 미국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에서 이루어진 한국노동자 대규모 체포 구금사태에 분노했다면,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에도 분노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이주민에 대한 혐오선동,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에 맞서 지역과 사업장 모든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구심으로 서야한다. 4) 노동자계급 공동전선 추동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불균등하다. 산업, 고용형태, 지역, 조직화 수준의 차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경험과 의식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추동하기 위해 공동전선(United Front)에 주목한다. 공동전선은 자본가계급의 공격에 맞선 투쟁,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투쟁, 소수자 차별에 맞선 투쟁 등에 있어 광범하게 적용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공동전선 속에서 △공동전선이 내건 요구의 쟁취 △대중의 계급의식 고양 △투쟁조직 확대를 추동한다. 또한, 그 과정 속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한다. 공동전선 내에는 투쟁하는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량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도 있을 수 있고, 개량주의 정당 자체도 있을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대중의 공동행동 속에서 대중의 혁명적 능력을 확대하고, 노동자계급의 투쟁 진지를 확대하며, 사회주의자 노선과 개량주의 노선의 차이를 실천적으로 드러내어 혁명적 정치세력을 확대하는 과정 없이 혁명은 불가능하다. 공동전선의 필요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30년대 초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게 된 과정이다.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 하의 독일 자본주의는 심각한 경제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 실업자는 1932년 2월 600만 명에 달했고, 중간계급이 몰락하면서 나치당이 급부상했다. 이 시기 노동자계급은 독일공산당(KPD)과 사회민주당(SPD)으로 나뉘어 있었고, 공산당은 1928년 코민테른 제6차 대회가 채택한 ‘사회파시즘론’에 따라 사회민주주의를 파시즘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르주아 지배의 한 형태로 규정했다. 사회민주당이 저지른 역사적 배신[31]이 이러한 인식을 강화시켰다. ‘사회민주주의 주적론’에 따라 독일공산당은 당원들에게 “사회파시스트를 공장과 노조에서 몰아내자”고 선동했고, 1931년 프로이센 사회민주당 주정부 해산을 위한 국민투표에 나치와 함께 참여했으며(소위 적색 국민투표), 1년 뒤 나치세력에 의해 프로이센 주정부가 해산될 때 공산당은 이를 기뻐할 정도였다. 이러한 사회파시즘론이 파시즘 부상과 나치 집권의 길을 열었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총리에 임명되고 나치가 정권을 장악했다. 나치는 집권 직후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동시에 불법화했고, 독일 노동조합총연맹을 해체했다. 단결하지 못한 독일 노동자운동은 파시즘에 의해 철저히 분쇄되었다.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공동전선을 구성할 수 있었다면 나치를 막을 수 있었다.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전 마지막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32]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합산 득표는 나치보다 많았다. 정당 득표수 비율 나치당 11,737,021 33.1% 사회민주당 7,247,901 20.4% 공산당 5,980,239 16.9% 중앙당 4,230,545 11.9% 국민당 2,959,053 8.3% 바이에른인민당 1,094,597 3.1% 기타 - 6.3% 이러한 공동전선은 단순한 전술적 연합이 아니라, 공동투쟁으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혁명적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교다. 바로 그러하기에, 사회주의자들은 공동투쟁 속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논쟁할 권리를 보유해야 하며, ‘대중투쟁강령’은 이러한 실천의 매개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은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다. 개량주의 정당들은 선거와 의회주의를 통해 노동자들을 체제 내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민주노총 상층의 노조 관료들은 민주당에 의존해 노동자투쟁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도 대중투쟁강령을 매개로 한 공동전선의 적극적 운용은 필수적이다. 개량주의 정당과 노조 관료들이 장악한 현실 속에서도 노동조합은 여전히 중요하며, 노동자평의회 정신에 입각한 공동전선은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적·전투적·계급적 재편에 있어 핵심적 과제다.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자평의회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내에서 활동하며, 또한 다양한 노동자 투쟁조직 내에서 활동하며 노동조합운동의 평의회적 발전을 추동한다. 중요한 것은 공동전선과 인민전선의 차이다. 공동전선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피지배계급의 공동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전술이다. 즉, 공동전선은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전제하며 이에 지배계급 분파와의 공조를 배제한다. 그러하기에 공동전선은 자본가 정당과의 연합을 포괄하는 인민전선(Popular Front)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른바 ‘민주대연합’은 자유주의 정당과 민주당을 포괄하는 전형적인 인민전선으로, 노동자계급을 자본가 정당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시킨다. 인민전선은 노동자운동을 체제 내로 포섭하는 지배계급의 수단일 뿐이다. 5)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형성 모든 혁명은 억압받는 민중의 혁명이다. 그러나 그 혁명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계급이 민중을 이끄는가, 어떤 계급이 혁명을 주도하는가다. 노동자계급이 주도적으로 제반 사회적 의제에 개입하며 해당 의제의 계급적 본질을 드러내고, 피억압 민중을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대열로 이끌 때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이것이 노동자계급 헤게모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노동자가 이런저런 민중의 투쟁에 단지 연대하는 것으로, 노동자의 요구와 다종다기한 민중의 요구를 기계적으로 조합하고 절충하는 것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 헤게모니는 사회적 억압 자체가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산물이며, 따라서 계급투쟁의 영역임을 실천으로 드러낼 때 형성된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 아래 고통받는 여성의 해방은 기업과 정부에서 여성 고위직을 늘리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별분업과 여성노동에 대한 체계적 저평가는, 자본에 맞선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단결 투쟁을 통해서만 해소된다. 해방은 착취자와 억압자의 성별을 바꾸는 과정이 아니다. 기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이 된 기후재난은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세’와 같이 탄소에 시장가격을 매기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윤을 위한 기후파국을 불사하는 자본주의 생산체제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기후위기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청년취업난은 중장년층 노동자 퇴출로 해결되지 않는다. 청년실업은 노동시간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이윤이 아니라 공공복리를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 이 모든 투쟁이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과 직결되어 있다. 노동자계급은 이에 대한 총체적 투쟁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헤게모니를 형성할 수 있다. 만약 노동자들이 조각조각 쪼개져 모두 단기적 이해관계에 함몰되어 있다면,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형성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강력한 노동조합이 소속 조합원들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잔업과 특근을 늘리고, 조합원 자녀에 대한 우선 채용을 요구하며, 기후파국이 오건말건 탄소 다배출 공정 확대를 요구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노동조합은 결코 전체 운동을 주도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사회 각 부문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을 단순히 병렬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계급투쟁의 보편적 관점으로 재조직하는 과정이다. 노동자계급이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 기후정의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계급 적대’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운동의 목표 쟁취를 위해 계급투쟁이라는 투쟁 수단을 제시할 때, 그 투쟁들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겨누는 변혁적 실천으로 발전한다. 바로 그렇기에 노동자 ‘계급’의 관점으로 세상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과정, ‘계급’의 관점으로 제반 투쟁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계급은 협소한 단기적 이익을 넘어, 피억압 민중 전체의 해방을 자신의 과제로 내걸 때 비로소 사회변혁의 주도 세력으로 올라설 수 있다. 그것이 노동자계급 헤게모니이며, 그 헤게모니 형성을 주도하는 구심이 사회주의 정당이다. ----- [1] “개인들은 다른 한 계급에 맞서 공동의 투쟁을 수행해야 하는 한에서만 하나의 계급을 이룬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경쟁자로서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다.” - 칽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1845-46년. [2]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이 임금에 대한 시장결정 메커니즘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이유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항상 개별적인 노동시장 참여자여야 한다. [3] 노동조합 관료층의 존재는 노동력 상품의 판매 조건에 대한 흥정이라는 노동조합의 기능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자주성·민주성·연대성·투쟁성·변혁지향성을 강화해 노동조합을 노동자계급의 투쟁기관으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4] 로자 룩셈부르크,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1899년. [5] 노동귀족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엥겔스의 다음 언급을 보자. “노동조합들은, 자본이 노동자계급을 붙잡아 매는 속박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을 자유롭게 하는 데 성공했는가? … 노동조합들이 그렇게 해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도하지조차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와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영국에서도 다른 모든 공업국에서도 노동조합은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 노동조합들이라는 저항 수단이 없다면, 노동자는 임금 제도의 기준에 따르면 자신의 몫인 것조차 받지 못한다.” - 엥겔스, 「임금제도」, 1881년. [6]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기본강령」 [7] 경험과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런 관점이 틀렸다는 점을 잘 안다. 그러나 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런 진화론적 낙관론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2인터내셔널의 파산이었다. [8]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1847년. [9] 따라서 스탈린주의 ‘유일당’ 이론은 맑스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유일당 이론은 그 자체로 노동자 민주주와 양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10] 레닌, 「슬로건에 관하여」, 1917년 7월. [11] 전위(vanguard)는 본래 군사 용어로, 선두 부대를 뜻한다. [12] 레닌, 『일보전인 이보후퇴』, 1904년. [13] 물론, 레닌은 러시아의 극심한 공안탄압을 들어 전위당의 필요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조건에 더해 ‘러시아 상황’을 함께 들어 이루어진 논증이었다. 즉, 러시아의 구체적 상황에서 더더욱 당은 전위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4] 레닌, 『일보전인 이보후퇴』, 1904년. [15] 레닌, 「당의 재편」, 1905년. [16] “볼셰비키의 경이로운 성공은 적잖이 1917년에 당이 띤 성격 덕택으로 돌릴 수 있다. … 1917년에 모든 수준의 볼셰비키 페트로그라드 조직 안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론과 전술상의 쟁점을 둘러싸고 자유롭고 활기찬 토론과 논쟁이 계속 벌어졌다. 다수파와 의견이 다른 지도자들이 자유롭게 자기 견해를 위해 싸웠으며, 이 싸움에서 레닌이 패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이 급변하는 와중에 이들이 각 기구 나름의 특정한 지지층에 알맞은 전술과 호소를 재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엄청난 수의 새로운 당원이 충원되었으며 이들도 볼셰비키의 행동 방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혁명의 시간』, 1976년. [17] 레온 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 1930년. [18] 숱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 유로코뮤니즘 정당들이 국민정당화되어갔다. 독일 사민당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했고, 기간산업 국유화 강령 등을 폐기하며 스스로를 국민정당으로 선언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1973년 ‘역사적 타협’을 선언하며 기독교민주당과의 협력에 나섰다. 영국 노동당 역시 1950년대 중반 국민정당화를 택했다. 1978-79년 노동당 정부의 임금인상률 제한에 맞선 노동자 총파업(불만의 겨울)으로 인한 노동당 정부 몰락 이후, 대처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프랑스 사회당과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집권 이후 민영화와 긴축으로 전환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1980년대 이후 복지 축소를 주도했다. [19] 민주노총은 1995년 출범부터 산별노조 건설을 내걸었고, 1996-97 총파업 이후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본격적인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산별노조-진보정당의 양날개론 모델에 근거했다. [20] 이것이 과거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의 본질이었다. [21] 로자 룩셈부르크, 『대중파업, 정당, 노동조합』, 8장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의 단결」, 1906년. [22]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노예들에게서 노예 상태에서의 생존조차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노예들에 의해 부르주아지가 부양되는 대신에 부르주아지가 노예를 부양해야 하는 그런 처지에 노예를 빠뜨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부르주아지는 지배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23] 1970년 9월 4일, 아옌데는 36.6%의 득표율로 대통령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당시 칠레 헌법에 따라,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국회가 상위 두 후보 중 한 명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했다. 아옌데의 인준을 위해서는 기독교민주당(PDC)의 지지가 필요했고, 이들은 아옌데 정부가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보장을 요구했다. [24] 기존 그리스 정치 판도는 중도우파 신민주주의당(ND)과 중도좌파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 (PASOK)이 번갈아가며 집권하던 구조였다. [25] 그람시, 「두 혁명」, 『신질서』 1920년 7월 3일자. [26]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기본강령」 [27]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기본강령」 [28] 최근 중국의 경제위기로 미·중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으나, 이는 상당 부분 착시다. 첫째,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중국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기준으로 본 미국 경제 규모는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중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된다. 둘째, 최근 3년 사이 위안화 가치는 달러보다 15%가량 하락했다. 이에 따라 같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달러 기준으로 본 중국 산출량은 15% 과소평가 된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의 명목 GDP는 28조 달러, 중국은 18조 달러이나,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서는 이미 2014년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앞질렀다. [29] “공산주의자들은 … 국적에 상관없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 이해를 내세우고 주장한다” - 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1847년. [30]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이 선택지를 제시했다. 한국법은 교전지역 무기수출을 금지한다. 미 국방부는 한국을 설득할 수 있다면, 41일 안에 155mm 포탄 약 33만 발을 항공과 해상으로 수송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 한국 측은 간접지원이라면 수용 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연초부터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한국은 모든 유럽 국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국가가 되었다.” - 2023.12. 04. 워싱턴포스트 [31] 독일 사회민주당은 1919년 로자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하고 독일혁명을 진압한 주역이었다. 1932년 파시즘 부당 당시 독일 공산당의 지도자인 에른스트 텔만은 공동전선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히틀러-파시즘’에 대한 기회주의자들의 과대평가보다 더 재앙적인 것은 없다”, “우리의 전략은 공격의 주요 방향을 사민주의에 돌리는 것이다.” (텔만,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 연설, 1932년 2월), “트로츠키는 진심으로 공산주의자들이 리프크네히트와 로자의 살인자들과 … 공동행동을 하자고 한다. 트로츠키는 여러 글에서 독일공산당과 사회민주당 지도자들 사이의 협상을 요구함으로써 노동계급을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다.” (텔만, 코민테른집행위원회 12차 전원회의 폐회 연설, 1932년 9월), [32] https://en.wikipedia.org/wiki/November_1932_German_federal_election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