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전환점에 선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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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번역] 전환점에 선 베네수엘라

  • 양준석
  • 등록 2024.09.04 19:48
  • 조회수 214

(원문 기사) https://www.leftvoice.org/venezuela-at-a-tipping-point/

 

후안 크루즈 페레, 히메나 베르가라

2024년 8월 8일

 

 

7월의 치열한 대선 이후 베네수엘라는 쉬운 탈출구가 없는 전환점에 서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반노동자적인 마두로 정부도 극우파 야당도 베네수엘라 노동자계급에게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 7월 28일(일) 베네수엘라 중앙선관위가 니콜라스 마두로를 대선 승리자로 선언하자, 우파 야당은 중앙선관위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자체 집계 결과를 토대로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를 승자로 내세웠다.

 

미국의 주류 언론 매체는 예상대로 마두로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우파 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일부 좌파들은 계속해서 마두로를 옹호하며 이번 선거가 공정하고 투명했다고 주장한다. 베네수엘라 외부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소음 속에서 급변하는 현 상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7월 29일 아침 베네수엘라 전역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어떤 축하 행사나 불만의 표시도 없었다. 하지만 늦은 아침이 되자 정적은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소리로 바뀌었고, 몇 시간 뒤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천 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거 조작이 있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인데, 특히 광역 카라카스로 알려진 노동자·빈민 거주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이 수년 동안 반민주 정권과 굶주림에 지쳐 있었고, 따라서 마두로가 압도적인 선거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시위는 우파와 정부 모두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 일요일 밤, 우파 야당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와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는 사람들에게 거리로 나오라고 요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폭력적인 진압으로 대응했는데, 특히 월요일 늦게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7월 30일 화요일까지 우파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자발적인 시위가 자신들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유도했고, 자신의 전통적인 사회적 기반인 중산층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집회를 조직했다.

 

7월 29일 밤부터 대규모 군경 부대가 시위대를 체포하고 괴롭히고 잔인하게 구타했으며, 정부가 후원하는 준군사 단체인 이른바 '콜렉티보스'와 협력했는데 이들은 시위가 열리는 동안 총기를 발사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단속이 시작된 이후 최소 2,000명의 시위대가 체포되었고 수백 건의 불법 가택 급습이 보도되었다. 마두로는 심지어 구금된 시위대를 “옛날처럼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강제 노역에 투입하고 싶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하기도 했다.

 

제국주의 압력과 차베스주의 사이의 베네수엘라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마두로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베네수엘라를 통치한 중도 좌파 군 장교이자 정치가인 우고 차베스의 후계자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온 나라를 뒤흔든 격변기 이후 1998년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그 결과 강력한 반제국주의 수사(修辭), 석유 대금 일부를 전유(專有)하는 국가 개입, 석유 추출주의로 자금을 조달하는 진보적인 사회경제 정책을 중심으로 지지층을 구축했다.

 

차베스의 정책은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의 목표와 업적은 베네수엘라 안팎에서 크게 과장돼 있다.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21세기 사회주의”라고 불렀지만, 일부 유명한 국유화를 제외하고는 기업 소유권은 여전히 사적 소유로 남아 있었고, 소유주에게는 항상 시장 가치에 따라 관대한 보상이 주어졌다. 14년간의 집권 기간에 차베스는 외채를 갚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중남미 지역 좌파들은 대체로 외채를 제국주의 국가들의 수탈 장치로 인식한다. 특히 FT는 그런 인식이 분명하고, 따라서 중남미 지역 전반에서 ‘외채상환 거부’를 중요한 투쟁 강령으로 내세운다. -옮긴이).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한 후 마두로가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그해 말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직후 유가가 급락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마두로는 노동자계급에게는 잔인하고 대자본과 기업에게는 유리한 긴축 정책을 펼치며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2018년 마두로가 내놓은 경제 계획은 최저임금을 급격히 하락시켜 월평균 3달러로 떨어뜨렸다(필자의 확인에 따르면, 2017년에는 최저임금이 월평균 13달러였다. -옮긴이). 임금은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차베스주의와 제국주의 압력으로 베네수엘라는 평화 시기에 있는 국가 중에서 21세기 들어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졌다. (2010년대 초반 베네수엘라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500만 명 이상이 베네수엘라를 떠났고 기아와 실업, 빈곤이 전례 없는 비율에 이르렀다.

 

제재를 통한 제국주의의 개입은 2017년과 2019년에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역외 자산과 전 세계 유동성 은행계좌를 몰수하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쿠바에 대한 금수 조치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이런 제재를 가한 이유는 베네수엘라 인민을 고통과 빈곤에 빠뜨려 정부에 대한 불만을 촉발하거나 강화함으로써 정부 축출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2019년 [우파의 대부분이 동조하고 트럼프 또한 마침내 베네수엘라에서 정권 교체를 단행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보았던] 후안 과이도의 쿠데타 시도 과정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게다가 차베스의 프로젝트는 민주적 참여 메커니즘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은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었다. 그 대신 차베스 개인에게 집중된 하향식 통치, 베네수엘라 통합사회당이라는 단일 정당에 의한 국가 통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군대에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대부분의 좌파 조직들은 차베스주의에 포섭되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탄압의 표적이 되었다. 예를 들어, 매우 반민주적인 선거법 때문에, 통상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좌파 조직들은 [우파가 정치적 대표성을 가진 것과 달리] 선거에 후보를 내세울 수 없었다.

 

<제4인터내셔널 트로츠키주의분파>(FT그룹) 소속 사회주의노동자동맹(LTS)의 지도자 밀턴 데 레온은 이렇게 설명한다.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 인민이 극심한 빈곤에 빠진 반면, 소수의 기존·신흥 부자들은 베네수엘라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해 왔다. 밀레이가 아르헨티나에서 하려고 하는 일을 마두로는 이미 수행했다. 그래서 나는 아르헨티나의 '자유주의자'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부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만일 야권 후보인 에드문도 곤살레스가 집권한다면 그가 해야 할 더러운 일의 상당 부분은 이미 수행된 상태일 것이다.”

 

차베스주의의 권위주의적 과정과 지금의 선거

 

양보를 제공할 능력이 사라지면서 정부는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강압에 의존하게 되었다. 장기적인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차베스 사망 이후 마두로 정부는 보나파르트주의와 억압의 강화라는 특징을 띠었다. 따라서 오늘날 베네수엘라 정부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선거 조작을 저질렀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합법적이고 정당한 분노가 촉발되었고, 탄압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에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민주주의를 (또는 적어도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표현인 투표권 인정을) 지키기 위한 대중의 결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파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노골적인 선거 조작에 맞서, 보수파 ‘통합 민주주의 플랫폼’의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들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이전 정부에 대한 군사 쿠데타와 외국의 개입을 일관되게 옹호했었다.

 

우파 야당 인사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차베스 집권 초기부터 차베스나 마두로를 무력으로 축출하려는 모든 시도를 일관되게 지지해 왔다. 마차도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2002년 쿠데타를 지지했는데, 당시 민주적으로 선출된 차베스 대통령이 군부 고위층에 의해 체포되고 사업가 페드로 카르모나로 대체되었지만 대규모 군중 동원으로 차베스가 다시 권력을 되찾았다. 2004년에는 차베스 축출을 위한 국민투표를 다시 추진했지만, 거의 20%의 표차로 패배하자 부정투표를 주장하며 공식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2019년 후안 과이도의 실패한 쿠데타 시도를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개입을 옹호하기도 했다. 이 마지막 행위로 인해 마차도는 이번 선거에서 출마가 금지되었다. 따라서 마차도는 74세의 전직 외교관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를 대선 후보로 직접 지명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 거리낌이 전혀 없었던 마차도가 다시 한 번 군대에 “베네수엘라 국민의 편에 서라”고 촉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군부는 2002년 쿠데타 실패 이후 줄곧 차베스에게 충성해 왔으며 마두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7월 28일 선거와 부끄러운 조작극 이후 새로운 지형에 접어들고 있다. 마두로에 대한 표면적으로 견고한 지지는 충분한 수의 노동자계급이 지속적으로 결집한다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과 국제 좌파는 마두로 정부나 우파 야당 어느 쪽에도 희망을 두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의 한 좌파 단체 연합은 이번 선거 기간 동안 “노동자계급에게는 후보가 없다”는 캠페인 아래서 단결했다. 참여 단체인 사회주의노동자동맹(LTS), 모두를 위한 나라(PPT-APR), 사회주의 흐름(MS), 사회주의 자유당(PSL)은 공동 성명에서 정부와 부르주아 야당이 노동자 권리를 약화시키고 초과착취 조건을 강요하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둘 다 청소년에 대한 경찰폭력 지지, 낙태 금지와 반성소수자 종교단체에 대한 지지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마두로는 이번 선거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 2023년부터 수천 개의 교회에 자금, 물품, 라디오 방송을 제공하는 등 복음주의 교회들에 구애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리더 앙헬 아리아스가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후보가 차이는 있지만 사업가와 대형 상인, 다국적 기업과 은행가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국제적 압력 강화

 

시간이 지나도 정부가 공식 개표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면서 마두로에 대한 외국의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과 그 지역적 '전선 조직' 미주기구(OAS)의 비난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앤서니 블링컨은 8월 1일 목요일 보도자료를 통해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가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루이스 알마그로 미주기구 사무총장은 마두로에게 패배를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미주기구 상임 총회에서 공식 투표 기록의 즉각적인 공개를 요구하는 안건에 충분한 찬성표를 모으는 데는 실패했다.

 

선거 결과 발표 이후 이 지역의 중도 좌파 정부들은 곤경에 처했다. 마두로 정부에 우호적인 정부들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제공한 납득할 수 없는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외국의 개입을 거부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멕시코), 구스타보 페트로(콜롬비아),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브라질) 대통령은 모든 투표 집계표의 공개와 공정한 기관의 결과 검증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미국 국무부는 곤살레스 우루티아를 아직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브라질·콜롬비아·멕시코 정부가 제안한 협상적 권력 이양을 위한 중재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입장을 완화했다. 미국이 강경한 정권 교체 접근 방식에서 벗어난 것은 지역 내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한 맥락, 그리고 마두로 정부와 다른 중도 좌파 라틴 아메리카 정부들 사이에 틈을 벌리려는 시도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쉬운 탈출구는 없다

 

베네수엘라는 전환점에 서 있다. 이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든, 우리는 정치적 사건들의 가속화를 목격하고 있다. 마두로는 탄압을 강화해야만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며, 이미 그 맛보기가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모종의 권력 이양이 합의되면 우파 정부는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국내외 자본에게 유리한 퇴행적 재분배를 초래할 프로그램을 시행하려고 할 것이다.

 

베네수엘라 인민은 뚜렷한 탈출구가 없는 수렁에 빠져 있다. 미국의 제재는 지난 10년간 엄청난 고통을 초래했으며, 미국에서 베네수엘라에 연대하려는 노력은 무엇보다 바로 이 제재를 문제 삼아야 한다. 또한 선거 과정이 아무리 조작되거나 의심스러워 보여도 우리는 항상 외국의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에서 손을 떼라! 그러나 이것이 마두로 정부에 대한 지지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미국 좌파의 일부는 (설령 수사에 불과할지라도) 미 제국주의와 반대되는 '진영'에 자신을 배치하는 정치 지도자를 지지하는 '진영주의' 입장을 취한다. 사회주의해방당(PSL)이 대표적이다. 사회주의해방당은 더 나아가 반대편을 가리키는 압도적인 증거들을 무시한 채 차베스주의를 사회주의를 향한 '혁명적' 경로의 예로 찬양한다. 마두로의 통치를 지지함으로써, 사회주의해방당은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자본주의 이윤을 보존하기 위해 긴축 정책을 통과시키고 노동자계급 운동과 좌파를 탄압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보이지 않는 정부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장애물이다.

 

국제 좌파는 친쿠데타 우파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특히 마두로 정부가 사회적 시위에 대해 잔인한 탄압을 가할 때 마두로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차베스주의의 기괴한 퇴행에 직면하여, 좌파는 이 경험에서 결론을 도출하고 독립적이고 노동자계급적이며 사회주의적인 프로젝트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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