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다시 마르크스주의 연재#2] 세계를 해석하는 유물론과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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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그래, 다시 마르크스주의 연재#2] 세계를 해석하는 유물론과 변증법

  • 최영익
  • 등록 2026.01.29 10:26
  • 조회수 154

 

2부. 세계를 해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 유물론과 변증법
 

1.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누군가에겐 ‘고작’ 빵, 누군가에겐 생명줄, 이게 그저 생각의 차이일 뿐일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나섰던 민중은 “빵을 달라!”고 외쳤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고작 빵 때문에 혁명을 일으킨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것은 혁명에 기름을 부었다. (실제 이 말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기록은 없다. 장 자크 루소가 자서전 '고백록'에서 쓴 구절이 이 이야기의 기원이다. - 편집자 주)

 

이 일화는 인간의 의식이 무엇으로부터 자라 나오는지 설명해 준다. 오스트리아 왕족 출신으로 프랑스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식에서 빵은 ‘고작’ 빵에 불과했다. 마치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그녀는 평생 빵을 언제든 손에 쥐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이 처한 상황은 전혀 달랐다.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꺼이 이 빵을 위해, 그리고 이 빵을 얻게 하는 일자리를 위해 혁명으로 들고 일어났다.

 

빵에 대한 이 상이한 두 관념, 의식의 뿌리는 무엇인가? 바로 이들이 놓여 있는 물질적 삶, 즉 존재 기반의 상이함이었다. 이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식에 혁명에 대한 적대감을 심은 반면, 노동자 민중의 의식에는 혁명에 대한 간절함을 심었다. 이처럼 인간의 의식은 바로 인간이 발 딛고 있는 존재 기반 즉, 물질적 토대로부터 자라 나온다. 이런 관점을 칭하는 개념이 바로 유물론이다.

  

유물론 vs 관념론 

 

위 일화에 빗대서, 관념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관념론은 모든 것이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고작 빵’, ‘고작 일자리’라고 단단히 마음먹으면, 우리는 빵과 일자리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물론은 모든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러한 물질적 토대로부터 의식이 자라난다고 주장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서 빵을 박탈해 보라! 물론 케이크도 함께! 그러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릿속에 ‘고작 빵’이라는 관념,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아니면 ‘제발 한 조각의 빵이라도!’라는 새로운 관념, 의식이 자리 잡게 될까?

 

유물론과 관념론을 이렇게 대비하면, 누구나 유물론이 옳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유물론을 두려워한다. 사회의 물질적 토대에 유물론적으로 접근하면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한 줌 소유자들과 다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계급 분열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일하는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이 자본주의로부터 생겨나고 있음이 대낮처럼 밝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항상 노동자 민중에게 관념론을 불어넣으려 애써 왔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착취 제도’라는 물질적 토대가 아니라 ‘마음가짐’ 때문이며, 따라서 분노와 저항의식을 억제하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은 인간이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착취 제도의 부당함에 맞서곤 했다.

 

지배자들은 더 고도한 관념론을 만들어 보급했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고통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월자’, ‘신’의 섭리에서 비롯되므로,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순응하라고 주문했다. 심지어 ‘현세의 고통’은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이므로, 기쁘게 행운으로 받아들이라고 주문했다. 자본주의의 태동과 함께 등장했던 ‘직업소명설’은 노동자들은 죽어라 일하고, 자본가들은 죽어라 이윤을 축적하는 게 신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설교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념론을 퍼트리는 종교를 두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통렬히 폭로했다.

 

‘소확행’ 의식으로 들여다본 오늘날의 관념론

 

오늘날 종교만이 아니라 갖가지 아편이 노동자들과 젊은이들을 세뇌하고 있다. 몇 년 전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소확행’ 현상을 살펴보자. ‘소확행’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작고(小) 확실하게(確) 실현 가능한 행복(幸)을 뜻한다. 가령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을 때, 서랍 안에 잘 정리된 속옷이 가득 쌓여 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불확실한 큰 행복을 추구하면서 불행하게 사는 대신,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 것을 제안했다. 욕망을 키우기보다, 욕망을 최소화하면서 작은 일상에서 행복하게 보내자는 제안이다.

 

이런 ‘소확행’ 현상은 한국의 젊은이들 속에서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동료와 함께 맛집 방문하기,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기 등이다. 이는 큰돈이 들지 않는 것에서 소소한 만족감을 느끼며 살자는 생각, 배우자와 아이가 생기면 삶이 더욱 불확실해지기 쉬워서 결혼을 기피하고 혼자만의 삶에 만족하며 살자는 생각, 당장 살아가기도 벅찬데 미래에 대한 희망은 버리고, 저녁에 맥주 한잔하며 TV 드라마를 보는 것에 만족하자는 생각, 친한 친구와 동네에서 고기 구워 먹을 때의 행복에 만족하자는 생각, 따뜻한 햇볕 속 낮잠의 행복에 만족하자는 생각 등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소확행’ 사고는 분명 관념론이다. 행복과 불행은 오직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간의 욕망은 개개인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유물론은 인간의 욕망은 개인이 놓여 있는 사회적 환경 즉, 물질적 토대에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수백, 수천 년 전, 최소한의 먹고 입는 것조차 힘든 사회였다면, 그 사회에 사는 개인은 약간의 빵과 몇 벌의 옷가지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노동자 계급이 매우 많은 것을 효율적으로 생산한 덕분에 그 정도의 물질적 삶은 대다수가 누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대신 인간의 욕망은 크게 성장했다. 이제 최소한의 문화생활, 자동차, 집, 의료혜택과 교육 기회 등이 대다수 인간이 욕구하는 기본적인 것이 됐다.

 

이와 같은 물질적 환경 앞에서 약간의 빵과 옷에 만족하라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소수의 가진 자들이 누리는 엄청난 사치와 쌓이는 부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가뜩이나 좁아지는 시장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인간의 소비 욕망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사회 체제가 아닌가? 이런 소소한 것들로부터 지속적인 행복감을 느낄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더구나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조차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실업 상태인 청년들은 저녁에 친구와 맥주 한잔 마실 여유도 없고, 당장 메워야 할 카드 빚 앞에서 펑펑 울지도 모른다. 소확행의 한 사례로서 ‘따뜻한 햇볕 속 낮잠’의 행복감에 대해 필자가 만난 한 젊은이의 외침은 의미심장하다. “‘따뜻한 햇볕 속 낮잠’요? 저는 살기 위해 자요. 데이 근무(새벽∼오후)가 끝나고 집에 오면 밥도 못 먹고 침대에 쓰러집니다. 3교대 근무라 약속 잡기도 어려워요. 하루를 버텨 내느라 진이 빠지죠. 이 일을 계속할 건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어요.”

 

유물론은 이런 소확행 관념이 최근 왜 탄생했고, 젊은이들 속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는지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요즘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방식 중 ‘1 대 9 대 65 대 25 사회’가 있다. 최상층 1%와 중산층 9%, 평균 이하의 삶을 누리는 65%와 최하층 25%로 구성된 사회가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다. 최근 25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중산층이 앞으로는 거의 붕괴로 내몰릴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런 양극화 추세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더 나은 처지로 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오히려 최하층으로 떨어질 두려움에 신음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때 소확행 의식은 일종의 아편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하위 계층의 처지에서 벗어날 기회의 사다리가 부러진 상황에서, 가난에 만족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불행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필사적인 시도가 바로 소확행 의식이 오늘날 확대되는 객관적 배경이다. 거꾸로 소확행 의식 확대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삶의 전망이 닫혀 가고 있다는 현실, 계급 양극화가 더욱 고착화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노동자들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현실을 가리는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2. 공정과 유물론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젊은이들을 마취시키는 아편 중 하나다. 개인이 하층, 최하층으로 떨어지는 것은 ‘공정한 경쟁 무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경쟁력 상실은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므로, 공정한 결과로 받아들여지며, 가난과 불평등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을 탓하게 한다.

 

이 논리는 노골적인 관념론에 비할 때 더 세련된 형식을 취하지만, 근본적으로 관념론이다. 진짜 현실을 감추고, 가짜 현실로 대체하는 것, 이 또한 명백한 현실로부터 비껴나 허구적인 관념적 환상을 유포한다는 점에서 관념론의 변종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현실은 어떤 것인가?

 

우선 앞에서 살펴봤듯이, 아무리 공정한 경쟁을 하더라도 중산층 이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사다리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 100명이 경쟁해서 3~4명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경쟁 체제라면, 그것이 아무리 그 과정이 공정하더라도 96~97%의 젊은이들은 이미 패자가 되도록 정해져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96~97%의 확률로 패자가 되도록 룰이 정해져 있는 이 게임을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단지 공정한 룰로 3%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게임이라 부를 것인가? 게다가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도 자본가 계급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다.

 

윤석열 현 대통령은 사법고시에 10번 낙방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10년 동안 고시 공부에 매달린 것이다. 그의 집안은 그 10년을 뒷받침하기 충분하게 여유로운 집안이었다. 하지만 흙수저 보통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집안의 신세를 지면서 10년간 고시공부하는 건 너무나 버거운 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4년의 대학생활조차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지탱할 수 없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이지 않은가? 경쟁의 결과는 사실 불평등한 출발선에서부터 대부분 판가름 나 있는 게 현실이다.

 

반대로 유물론은 진실을 알려 준다. 현재 젊은이 개개인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은 노력을 하지 않아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행하는 생존을 위한 노력은 조부모나 부모 세대가 과거에 했던 노력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비참한 상태로 내몰리는 것은 낡고 노쇠해 너덜해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구성원들에게 줄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경쟁은 격화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재벌의 자식들은 경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재벌의 삶이 보장돼 있지 않은가? 그런데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목청껏 외치는 자본가 계급은 경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재벌 회장들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아편이 창궐한 시기의 공통 특징이 있다. 소위 세기말적 현상으로 불리는 ‘앞이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태’가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현존 사회 체제가 생명력을 다했지만 아직 새로운 사회 체제가 등장하지 않은 불안정한 사회 상태를 반영한다. 종교와 함께 소확행 의식과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오늘날의 아편이다. 이 아편의 등장 배경은 바로 반동화돼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다.

 

자본가 계급의 위선적인 이중 철학

 

노동자 계급을 향해서, 자본가 계급은 관념론을 설파한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임금과 일자리, 평등을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대신, 현재의 가난한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한다. 성난 민중에게 붙들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민중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가 계급은 노동조합에게 ‘협조주의와 사랑의 감정’을 설파한다. 자본에 대한 적대적 생각을 거두고, 평화로운 협조주의적 생각을 발전시키면 노사 모두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자본가들은 저항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폭력적이고 적대적으로 삐뚤어진 의식’에 물든 불순분자라고 고함친다.

 

과연 그럴까? 노동자들의 의식이 폭력적이고 불순하고 저항적이라서 투쟁과 전투가 등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가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그런 의식을 낳고 있는 것일까? 상황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와 같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노동자들은 높아지는 실업률과 상시적으로 덮쳐 오는 구조조정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노동의 결과물 가운데 더 많은 부분이 갈수록 소수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집중돼 불평등이 확대된다. 물가마저 폭등하면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노동자들은 갈수록 절대적,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객관적, 물질적 상황이 노동자들의 의식을 저항적으로 만들고, 분노를 확산한다.

 

그런데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들을 향해서는 관념론을 설파하면서, 스스로를 향해서는 철저히 유물론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윤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모든 자본가들은 한 치의 관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가장 많은 이윤이 보장되는 길을 유물론적으로 추적하고, 즉각 행동에 옮긴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임금을 최소화하며, 노동 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길을 모든 뇌세포를 총동원해 찾아 나간다. 사랑, 용서, 협조 등 자본가들이 노동자들 속에 심어 놓고자 하는 관념은 정작 그들의 두뇌 속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사랑, 배려를 외칠 때 그들은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들이라고 윽박지른다.

 

이러한 계급적 이해관계로부터 자본가 계급의 진정한 의식이 거꾸로 자라난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금전 문제에서 인정은 금물이다!”가 자본가 계급의 진짜 의식이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조합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의식, 투쟁하는 노동자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으로 무장한다. 자본가 계급의 거짓말이나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보라! 그들은 단호한 유물론자다!

 

3. 마르크스는 어떻게 유물론을 발견했는가?

 

마르크스가 처음부터 유물론자였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마르크스는 당시 관념론 철학을 대표했던 헤겔철학에 경도돼 있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에서 급진적 측면을 끌어내 절대왕정 체제에 맞서고자 했던 청년 헤겔파에 속해 있었다. 청년 헤겔주의자들과 함께 마르크스는 민주주의 운동에 나섰는데, 그 가운데 여러 정치적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1842년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급진적인 민주주의 사상을 대변했던 〈라인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정치적 문제와 마주치자, 마르크스는 여러 중요한 정치적 대립 배후에 물질적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토지 문제나 채취권 등의 쟁점들을 파고들자, 정치적 견해가 계급적 이해관계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방직공들의 봉기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의 대립이, 숲에서 땔감을 얻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에서는 지주와 가난한 농민 사이의 계급적 이해 대립이 놓여 있었다.

 

대다수 헤겔 좌파들은 이러한 물질적 대립 즉, 계급 대립 앞에서 관념의 세계로 도망쳤다. 그들은 추상적인 우애, 인간애 뒤로 숨어 계급 투쟁에 대해 기권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 진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투쟁을 선택했다. 그리고 투쟁은 그를 유물론으로 이끌었다. 그 결정적 계기는 1844년 6월에 일어난 독일 슐레지엔 방직공들의 봉기였다.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됐고, 수십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 지배자들의 악선동 가령, 노동자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기에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봉기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맞선 저항이었고, 따라서 폭력을 유발한 자들은 자본가들과 정부였음을 폭로했다.

 

그의 두뇌는 현실에 더욱 충실했다. 그는 이 노동자 봉기라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혁명적 의식’으로 전진했다. 부르주아들이나 지식인들이 중심이었던 민주주의 투쟁이 보인 소심함과 달리, 노동자들의 투쟁은 철저히 전투적이었고 혁명적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경험한 마르크스의 의식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이 현실을 반영해, “오직 노동자 계급 속에서만 해방(혁명)의 진정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식으로 전진했다. 그의 의식에서 이제 노동자 계급은 고통받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혁명으로 이끌 수 있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전진했는데, 이 유물론적 인식은 노동자 계급을 혁명의 중심에 놓는 혁명적 사회주의로 안내했다.   

 

다시 빵의 문제로

 

확고한 유물론자로 재탄생한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이제까지 인류의 삶의 기초는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적 생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류는 이 경제적 생산능력(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생산관계를 채택해 왔는데, 이 생산관계의 핵심은 ‘생산수단을 어떤 계급이 소유하는가’였다. 그에 따라 생산물의 분배관계가 결정됐다.

 

어떤 사회의 의식은 바로 이 경제적 생산양식(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에 의해 근본적으로 좌우되는 것이었다. 문화, 의식, 윤리 등의 상부구조는 인간에게 필요한 경제적 요소들, 가령 의식주를 생산하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그 우선 조건이었다. 바로 이 경제 구조를 밝히는 것,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구조를 밝히는 것이 마르크스가 평생에 걸쳐 수행한 유물론적 과업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자본론》이었다.

 

결국 핵심은 ‘빵의 문제’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나섰던 민중의 “빵을 달라!”는 외침은 사회의 진정한 핵심을 여과 없이 투명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유물론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동자들과 민중은 왜 가난하고 굶주려 빵을 갈망하는가? 어떤 현실이 그것을 강요하는가?

 

현실을 분석한 마르크스는 작업장과 기계, 토지 같은 생산수단을 어떤 계급이 소유하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간파했다. 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유산자 계급은 소유자라는 이유로 작업장과 기계, 토지 등 경제적 핵심 요소들을 제 마음대로 운영하고 통제한다. 그 결과 노동 과정은 단순히 생산 과정인 것이 아니라, 착취자들이 생산자들의 노동으로부터 잉여노동을 뽑아내는 착취 과정이 되고 만다.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대가(가령 임금)를 뺀 나머지(가령 이윤)를 유산자들이 독점하게 된다.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 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되며, 자신이 만들어 낸 생산물인데도 최소한만 분배받는다. 그에 따라 착취 계급과 일하는 피착취 계급 사이의 계급 투쟁이 원시 공산제 이후 인류 사회를 규정해 온 역사라고 마르크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빵을 달라!”는 1789년의 노동자 민중의 외침은 모든 생산수단을 노동자 민중의 공동 소유로 전환시키는 사회주의로 뻗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단지 ‘빵’이라는 구호가 지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 일자리를 달라!’라는 구호로 표현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고, 바뀔 수도 없다면, 이 자본주의의 현실 비판을 반영하고 있는 의식 즉, 마르크스주의 또한 근본적으로 바뀔 수 없고, 바뀔 이유도 없다.  

 

 왜 지배 계급은 유물론을 두려워하는가?

 

지배 계급은 “유물론은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고, 관념론은 정신적 가치를 중시한다”면서 유물론을 저급한 것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유물론이 의식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유물론은 단지 ‘존재(물질)가 의식에 선행한다는 점’, 따라서 ‘인간의 의식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그 의식이 발 딛고 있는 현실(물질과 물질의 운동)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점을 말할 뿐이다. 가령 우리가 컵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눈앞에 컵이라는 물질적 실체가 먼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컵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에 컵이 앞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계급 투쟁 사상과 착취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는 것도 바로 현실에 ‘계급 대립’과 ‘잔인한 착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물론은 딱 거기까지만 주장한다. 그 뒤 유물론은 의식과 정신의 가치를 인정한다.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옳게 반영하는 의식이라면, 그 의식은 옳다. 그리고 이 올바른 의식이 현실을 변혁하고 세계를 전진시키는 것일 때, 이 의식은 ‘물질적 힘’으로 전화한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혁명적 의식(혁명적 사회주의 의식)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지배 계급이 유물론을 제 맘대로 왜곡시키면서 유물론의 확산을 가로막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를 규정하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으로의 분열, 그리고 이 분열에서 자라나는 계급 대립을 감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들,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착취 제도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고통의 진정한 근원을 발견하고 단결해 투쟁에 나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치명적인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물질적 토대를 자본주의 스스로 창조하고 있음을 밝혔다. 나날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고 있는 사회적 생산력, 이 사회적 생산력이 토해 내는 혁명적 노동자 계급이 바로 그 물질적 토대다. 그 점 때문에 자본가 계급은 유물론을 저주할 뿐만 아니라 이 유물론이 토해 낸 혁명적 사회주의 앞에서 벌벌 떨게 된다.

 

자신을 휘감고 있는 이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근원적으로 탐구하고, 그로부터 진정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유물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마르크스주의를 향한 길을 떠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4. 변증법: 세계는 변화한다 
 

지배 계급이 지배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수단 중 하나는 기존 체제를 결코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체제로 사람들이 여기게 하는 것이다. 즉, 세상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보게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지배 계급은 다양한 세뇌, 교육 장치를 가동했고, 그런 생각을 정당화하는 다양한 이론과 사상을 발전시켜 왔다.

 

동양의 봉건 체제는 유교와 같은 사상을 보급함으로써, ‘충’의 사상 즉, 임금과 백성으로 신분이 나뉘는 것을 영원히 정당하고 윤리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는 ‘변하지 않는 신의 섭리’를 앞세우면서, 대중이 능동적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차단해 왔다.

 

자본가 계급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활력을 거세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는 영원불멸하다는 관념을 대중 속에 불어넣는 작업에 집요하게 매달려 왔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본성이므로, 자본주의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교육해 왔다. 시장 상품경제 속에서 힘없고 고립된 개인들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한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믿게 만들어 왔다.

 

그렇지만 자본가 계급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 가령 과학과 기술의 변화 발전이다. 이에 대해서는 자본가 계급도 인정하며, 오히려 앞으로의 변화 발전 속도는 더욱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자체는 자본주의 체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발전에 대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또한 영원불멸하지 않고 혁명적으로 타도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가 계급도 어느 정도의 사회 변화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이상 임금과 백성으로, 영주와 봉건 농노로, 노예주와 노예로의 분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자본가 계급은 자본주의에 도달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만, 혁명적 변화를 인정한다. 자본주의에 이르면, 영원불변한 고정성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의 이런 위선과 사기에 맞서, 마르크스는 “모든 사물은 변화하며,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변증법 사상을 대변했다. 그리고 이 변증법 사상을 유물론과 결합해,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식화했다. 나아가서 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에 적용해, 자본주의의 붕괴 불가피성과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 탄생의 역사적 필연성을 증명했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이기적 본성’ ─ 완전한 허구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노예제와 봉건제는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과 위배되는 경제 체제였다고 말했다. 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이기적 본성에 조응하면서, 이 본성을 활용해 경쟁의 활력을 높여 사회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체제이므로 영원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추적해 보면,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자본주의 사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지속됐던 원시 공산제 사회에서는 이기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령 지금까지도 극소수 부족으로 남아서 원시 공산제 사회의 흔적을 유지해 오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모히칸족의 사전에는 원래 ‘나’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우리’라는 단어만 존재했다. 공동체적 소속감이 개인을 압도했고, 사적 소유권이 성립하지 않았던 상황을 반영한 결과였다. 물론 이처럼 ‘개인’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던 모히칸족의 모습은 자본주의보다 낙후한 과거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와 함께, ‘나’라는 의식이 탄생한 것은 분명 인류의 거대한 역사적 진보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의 논의에서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간이 변하지 않는 이기성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인간의 속성 안에 이기성이 들어오게 된 것은 사회의 오랜 역사적 변화 발전의 결과물이었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생겨나면서, 특히 자본주의가 확대되면서 나타났다. 게다가 오늘날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의 속성에 이기성만이 있는 건 아니다. 홍수나 화재 같은 재난 상태에서 발휘되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타인을 구하려는 숭고한 연대성도 우리는 자주 접한다.

 

인간의 속성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 속성은 일차적으로 주어진 사회 체제에 의해 좌우된다. 이 사회 체제 속에서 새로운 변화의 요소가 성장하면 그에 발맞춰 인간의 속성에도 혁명적 변화가 시작된다. 이미 그 변화는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시작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단결 속에서 말이다. 길어지는 불황과 수시로 위협을 가하는 공황 앞에서, 무한대의 이기적 경쟁을 찬미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과연 인류에게 더 이상 유용한 선택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져 가는 상황에서 말이다.

 

헤겔 넘어서기

 

변화 발전을 자본주의에 한해서만 인정하는 자본가 계급의 모습은 철학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헤겔철학이다. 헤겔은 법을 포함해 인류의 정신적, 사상적 발자취를 탐구했다. 당연히 인류 사회의 변화는 이 정신적 영역에도 각인돼 있었다. 헤겔은 이 변화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했고, 그 결과 변증법을 정식화할 수 있었다. 사물의 변화 발전의 법칙을 일반화해서 정식화한 양질 전화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은 헤겔에 의해 정식화됐다. 이런 정식화가 가능했던 것은 헤겔이 살았던 시대가 급격한 변화를 맞은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봉건제가 저물고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있는 급격한 전환의 초입부였고, 프랑스 혁명 시대였으며,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철학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기였다. 이처럼 변화를 도외시할 수 없는 격변기 상황이 헤겔철학을 잉태했다.

 

하지만 헤겔철학은 대단히 모순적이었다. 한편으로 헤겔철학은 세계의 끊임없는 혁명적 변화에 대한 인정을 핵심으로 하는 변증법에 내재한 혁명적 측면을 반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헤겔철학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오직 헤겔철학에 도달하는 역사적 과정에서만 적용하고 인정했다. 헤겔철학 그리고 이 철학에 근거한 당시 독일 절대왕정의 법률에 도달하면, 변화 발전은 끝나고 이제 ‘완성’ 즉, 변하지 않는 고정성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청년 헤겔학파에 속했던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의 이중성 가운데 전자의 혁명적 측면에 주목했고, 후자의 보수성에 맞서 싸웠다. 마르크스는 헤겔 변증법의 혁명적 결론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도착지는 어디였는가?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헤겔 이전의 사상, 법과 마찬가지로, 헤겔의 사상과 그에 기초한 당시 독일의 절대왕정 체제의 법도 ‘일시적’이며, 영원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넘어서야 하는’ 대상임을 밝혀냈다.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의 법, 즉 절대왕정 체제에 맞선 투사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는 이제 막 역사의 무대에 올라오고 있던 신흥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까지 변증법을 확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모순 즉, 변화의 씨앗을 과학적으로 탐구했다. 그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진보적인 신흥 체제에서 낡은 반동적 체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런 전환은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가 수립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임을 과학적으로 논증했다.  

 

5.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탄생, 변증법과 유물론의 결합
 

헤겔이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은 《법철학》을 통해서였다. 그는 법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따라, 자신이 발견한 변증법을 가장 완전무결한 형태로, 구체적으로 전개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스승 헤겔을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뒤집어진 변증법이었고, 그 때문에 여러 지점에서 불완전하고 뒤틀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이념)’이라는 관념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으로부터 법, 정치 체제, 경제적 토대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회의 진정한 모습은 그 반대였다.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를 탄생시키고, 이 정치적 상부구조 속에 법과 사상, 철학이 자리 잡았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적 접근이고 현실에서 운동이 전개되는 객관적 양상이었다. 현실이 운동하므로 그것의 그림자도 운동한다. 그런데 헤겔은 현실의 운동에 주목하는 대신, 그림자의 운동에 주목했고, 그림자의 운동으로부터 거꾸로 현실의 운동을 끌어냈다. 이처럼 헤겔철학은 존재와 의식, 실체와 그것의 그림자가 전도된 관념론이었다. 하지만 사회의 경제적 토대가 운동하기에 그 토대 위에 놓인 정치적 상부구조인 그림자 또한 그것을 따라 운동할 수밖에 없다. 헤겔은 현실과 그림자, 토대와 상부구조를 혼동했지만, 끊임없이 운동하는 역사적 맥락에서 그림자(법, 철학)를 검토했기에 그림자의 운동에 반영된 현실의 운동 법칙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그림자의 운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식화한 사물의 운동 법칙 즉, 변증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머리와 발이 거꾸로 서 있는 헤겔철학을 완전히 뒤집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헤겔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스승 포이어바흐 철학의 한계 또한 극복했다. 포이어바흐는 물질적 토대로부터 의식을 설명했지만, 그가 토대로 했던 물질은 사회의 경제적 토대, 그리고 이 경제적 토대에서 이뤄지는 생산을 둘러싼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이로부터 분리, 고립된 개별 인간이었다. 그는 이런 ‘개별 인간’이 놓여 있는 토대로부터 여러 의식을 설명했다.

 

그러나 포이어바흐가 상정했던 그러한 ‘개별 인간’은 현실에서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주어진 경제적 관계 속에서 타인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그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개별 인간의 윤리, 취향, 취미, 생각 등을 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타인들 즉,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남겨진 ‘개인’이라는 것은 완전히 허상일 수밖에 없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분석한 추상적 개인이 사실은 일정한 사회 형태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그래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왜곡될 수밖에 없었고, 인간의 의식을 제대로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없었다. 당연히 헤겔철학을 넘어설 수도 없었다. 특히 사회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억압당하는 노동 인민에게 현실적 탈출구를 제공할 수도 없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과 변증법이 서로 분리돼 대립함으로써 발생하는 모순과 부조화, 한계를 결합시킴으로써 해결했다. (비록 정치적 상부구조가 경제적 토대에 반작용을 가할지라도)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를 탄생시키고, 이 정치적 상부구조 속에서 법과 사상, 철학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분석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철학적 결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역사적,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제대로 전개될 수 있었다. 관념론자였던 헤겔이 그것을 시도한 무대가 법철학이었다면, 유물론자인 마르크스가 그것을 시도한 무대는 자본주의 경제 분석이었다. 《자본론》을 통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탄생했고, 자신을 매장할 무덤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로부터 어떻게 자본주의 정치 체제와 법, 이론들이 탄생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다룬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자본론》에 가장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서술돼 있다.

 

형식논리학 vs 변증법

 

형식논리학과 변증법의 차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스냅 사진과 동영상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달리는 마라톤 주자를 떠올려 보자. 이렇게 달리고 있는 주자의 위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식의 설명 외에는 불가능하다. 운동하고 있는 그의 위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라톤 주자를 스냅 사진으로 찍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스냅 사진 속의 마라톤 주자는 ‘정지’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콕 집어서 그의 위치를 정확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마라톤 주자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 즉 운동하는 상태라면 이 스냅 사진은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 동영상만이 끊임없이 운동하는 마라톤 주자의 실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철학에서 형식논리학은 이 ‘스냅 사진’에, 변증법은 ‘동영상’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변화 속에서, 운동 속에서 포착하고자 한다면, 변증법이 필요하다. 형식논리학은 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며, 사물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형식논리학을 대표하는 두 명제는 ‘동일률’과 ‘모순률’이다. 동일률의 예를 들면, “나는 나다.”, “책상은 책상이다.” 등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A=A’라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것을 두고서 “나는 내가 아니다.”, “책상은 책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두 의견은 모순되기에 양립할 수 없고 틀렸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A=A가 아니다.”는 것은 틀렸다는 뜻이다. 이것이 모순률이다.

 

그러나 스냅 사진처럼, 어느 한순간의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찍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인 운동 과정, 변화 과정을 찍고자 한다면, 동일률과 모순률은 단박에 한계를 드러낸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나와 예순 살 환갑의 나는 과연 같을까? 아니면 이 사이에는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니 서로 다른 나일까? 육체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가치관, 세계관, 취향 등의 측면에서 두 ‘나’는 과연 같을까?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 쓰는 열일곱 살 나와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예순 살의 나는 과연 같은 존재일까?

 

시간의 길이를 더 늘려 보자. 오늘 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 책상은 200년 후에도 책상일까? 아마 200년 후에 이 책상은 썩거나 쓸모가 없어 쓰레기장으로 보내진 뒤, 땔감으로 쓰여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 더 이상 책상이 아니라 숯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결국 형식논리학은 운동하고 변화하는 사물을 어느 특정 시점에서 고정된 것으로 취급했을 때만 유효하다. 반면 사물의 운동과 변화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변증법을 채택해야 한다. 변증법은 동일한 사물에 대해, 변화와 운동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르다.”, “나는 살아 있지만, 동시에 나는 죽어 가고 있다.”, “오늘의 책상은 미래에는 책상이 아닐 것이다.”, “책상은 책상임과 동시에, 썩고 유행에 뒤처져 숯으로 변하고 있다.” 등처럼 말이다.

 

지배 계급은 왜 형식논리학에 집착할까? 그리고 왜 변증법을 거부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변증법은 오늘의 사물이 내일에는 바뀔 수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본주의 착취 체제가 영원불멸하기를 꿈꾸며 “이대로!”를 외치는 자본가 계급은 아직 충분히 각성하지 못했고 자본주의를 타도할 생각에 이르지 못한 노동자 계급의 현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노동자 계급이 미래의 혁명적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못해 자포자기하면서 자본주의 착취에 순응하기를 간절히 희망할 것이다.

 

반면 노동자 계급에게 변증법은 희망과 용기, 확신을 불어넣는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파업에 나서 변화하고 있는 ‘어제의 동료’는 ‘내일의 동료’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바로 이런 변증법적 정신 즉, 변화 발전의 정신에 입각해, 선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준비한다. “파업 투쟁에 나서고 있는 ‘오늘의 동료’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야 한다는 점을 자각하는 ‘내일의 동료’로 변화할 것이며, 언젠가 노동자 혁명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변증법적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주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속에서 활동한다. 반면 자본가 계급은 ‘절대 세상은 변하지 않고 어제의 임금노예는 내일도 임금노예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노동자의 정신을 물들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의 실천은 자신이 유포하는 고정불변의 철학을 거역한다. 그들은 4차 산업혁명의 파도처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더욱 순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노동조합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늘의 민주노조는 내일의 어용노조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민주노조 파괴에 전력을 다한다.

 

상황은 분명하다.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한, 자본가 계급은 변증법까지도 활용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을 거역하는 한, 자본가 계급은 변증법을 거부하고 매장시키려 분투한다.

 

6. 전체와 부분, 그리고 총체적 연관
 

젊은이들이, 노동자들이 변증법 철학에 익숙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변증법은 사물들의 전체적 연관 속에서 개별적 사물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변증법의 핵심인 운동과 변화는 고립돼 일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물들이 맺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운동과 변화가 일어난다. 역으로 운동과 변화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해 낸다. 따라서 사물의 운동을 인식하려면 우선 사물의 전체적 연관에 주목하라고 변증법은 가르친다. 이러한 전체적 연관 속에서 상황을 접근할 때 현재의 상황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가령 지금껏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은 전체 세계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접근해야만 옳게 이해할 수 있고, 미래의 전망을 예측할 수 있으며,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전쟁 위험들은 단지 남북 지배자들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한·미·일 제국주의 세력과 중국 제국주의 사이의 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더 깊이 분석해 보면, 이러한 제국주의 대립의 뿌리에는 주요 강대국 대자본가들의 상호대립적인 경제적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와 중국 제국주의 사이의 갈등, 대립이라는 전체적 연관 속에서 남북문제를 바라보면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북 노동자 민중의 단결, 나아가서 세계 노동자 민중의 단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사건이나 상황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부분’을 정확히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데서도 변증법은 사고의 방법을 제시한다. 사물의 전체적 연관을 고민한다면, 모든 노동자들은 자신을 덮치는 자본가들의 공격과 정부의 억압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사업장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전체로서 볼 때 어느 개별 자본도 지속적인 승리를 구가할 수 없는 무한대의 경쟁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이므로, 자본의 위기가 덮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이에 따라 구조조정, 파산위협 등에 맞선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은 개별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전체 노동자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젊은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변변한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 고통을 겪는다면, 그 고통의 이유를 따져 봐야 한다. 사물의 전체적 연관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런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불행, 혹은 능력과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연관을 따져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일자리가 부족한가? 더 낮은 임금과 더 높은 노동강도를 강요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가들의 이해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본가들이 작업장의 대부분을 소유하면서, 일자리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을 더 확대한다면, 이런 고통이 자신만을 덮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수많은 청년들이 이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혼자’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만, 이런 사회적 역량을 단결시켜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면 비참한 운명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에 도달할 수 있다.  

 

7. 물질의 운동 3대 법칙: 양질 전화, 부정의 부정,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변증법은 사물이 맺는 무한한 연관성 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일반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운동의 주요 법칙들을 통해 제시한다. 그 법칙들은 양질 전화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인데, 이것들은 사물이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하나의 단계로 질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분석하고 설명하며 예측할 수 있는 인식의 주요 도구들이다.

 

가령 이것을 소위 보수냐 진보냐 하는 대립구도에 적용해 보자. 보수파 지배 계급의 철학은 고정불변을 찬미하면서 변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반면 개혁파 지배 계급의 철학은 일정한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개혁파 지배 계급의 경우에도 자본주의 착취 체제의 안정과 고도화를 향한 변화를 추구할 뿐이다. 개량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앞세운다. 하지만 개량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점진적인 양적 변화만을 인정한다. 그들은 이러한 양적 변화가 어느 시점에서는 질적 변화라는 사회의 혁명적인 변화로 이어지며, 또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부정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변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혁명적 변화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사물의 변화의 정점이자, 질적으로 도약하는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변화는 바로 혁명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 혁명적 변화를 반영하는 법칙이 바로 “양적인 변화가 어느 지점에서 질적인 변화로 이행한다.”는 ‘양질 전화의 법칙’이다. 인간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아이에서 소년, 소년에서 청년, 청년에서 장년으로, 장년에서 노년으로 양적인 변화를 겪으며, 종국에는 죽음으로써 살아 있던 생명체에서 무생명체로 질적으로 변화한다.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또한 이런 ‘양질 전화의 법칙’을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극소수 사람들에게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노동자 투쟁이 확산하면서 점차 다수 대중에게 퍼져 나간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고 투쟁력과 경험이 성장함에 따라, 이런 문제의식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대안을 향한 갈망으로 성장한다.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전면화하고 확고하게 만든다.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의 양적 축적이 어느 단계에 이르러, 사회구성원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 계급에 의한 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질적 도약이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또한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설명해 주는 소중한 도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산 것과 죽은 것이라는 대립물의 투쟁 속에 놓이게 된다.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의 일부는 죽어 가고, 일부 세포는 새롭게 탄생한다. 새롭게 탄생하는 세포의 수가 죽어 가는 세포 수를 능가할 때, 인간은 자라나고 성장한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면, 인간은 점차 늙게 된다. 산 것과 죽은 것이라는 대립물의 투쟁에서 어느 시점이 되면, 죽어 가는 세포가 새롭게 탄생하는 세포를 압도하게 되고, 인간은 죽음이라는 질적 변화와 만나게 된다.

 

대립물 사이의 투쟁은 대립물의 통일 속에서 전개된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은 대립물의 통일 속에 있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단 한 푼의 이윤도 뽑아낼 수 없다. 반면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본가의 생산수단을 활용해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은 상호 대립하면서도 서로 의존하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과 이윤을 둘러싼 대립과 투쟁이 그 사례다. “너희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도 일하지 않겠다.”라는 정신으로 전개되는 노동자 파업은 노동에 대한 자본가들의 의존성을 활용한 투쟁이다. 반대로 자본가는 생산수단(불변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존성을 활용해 사업장을 폐업하거나 공장 가동을 중단해 파업을 압박한다. 매우 격렬한 파업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어느 한도를 넘어서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대립물의 통일’이란 단지 상호의존성만을 다루는 개념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립과 적대적인 투쟁이다. 상호 대립하되 서로 의존하고 있는 두 대립물 사이의 투쟁이 계속 발전해 가다가, 결국에는 격렬한 상호 투쟁 속에서 낡은 것이 파멸하고 새로운 것이 승리하면서 상호의존과 함께 대립도 소멸하는 과정, 즉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운동을 통해 모순이 극복되고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 또한 이러한 대립물의 투쟁 속에 놓여 있다. 바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계급 투쟁이다.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면서 신흥 지배 계급으로 올라선 자본가 계급은 부단히 자본을 축적하면서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배출해 낸다. 두 계급 사이에서는 임금과 고용, 노동조건을 둘러싼 부단한 투쟁이 일어난다. 초기에는 자본가 계급의 힘이 노동자 계급의 힘을 압도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수적으로 압도적 다수가 되고, 사회적 생산의 대부분을 담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단결해 나가는 노동자 계급의 힘도 성장한다.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자본가들에 대한 의존성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생산수단을 사회 공동의 재산으로 전화시켜 완전한 독립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어느 시점에 자본가 계급의 힘과 노동자 계급의 힘은 팽팽한 힘의 균형 상태, 즉 이중권력 상태로 이행한다. 혁명과 반혁명의 치열한 대립 끝에 힘의 우위를 점한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계급으로 떠오른다. 자본가 계급은 소멸한다. 이렇게 대립물의 한 축이었던 자본가 계급이 소멸하게 되면 대립물 사이의 모순도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철폐다.

 

모든 지배 계급은 자신이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떠오르는 시점까지는 이러한 ‘대립물의 투쟁’을 인정한다. 가령, 프랑스에서 자본가 계급은 봉건 체제에 맞선 자신의 투쟁 역사를 찬미해 왔고, 혁명기념일까지 제정했다. 그러나 이 대립물의 투쟁이 이제 자신을 권좌에서 몰아내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자, 이렇게 부르짖는다. “이제 계급 투쟁(대립물의 투쟁)을 멈추자. 계급 투쟁은 야만적이다. 계급 협조를 통해 평화의 세상을 열자!”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선언한다. “계급 투쟁(대립물의 투쟁)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다!”

 

‘부정의 부정의 법칙’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가 질적인 발전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질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역사적 과정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자본가 계급을 극복하고 세상의 주인공으로 도약한 노동자 계급은 단순히 새로운 유형의 지배 계급을 만들어 낸 것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자본가 계급을 부정하고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노동자 계급은 2차 부정으로 나아간다.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공동체 사회)로 전진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은 자신을 포함한 계급 일반을 제거해 버린다.

 

우선 생산수단을 전체 사회구성원의 공동 소유로 전환시킴으로써, 노동자 계급은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구별을 없애 버린다. 모두가 (공동의) 유산자이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누구도 생산수단에 대한 개인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산자다. 다음으로 이렇게 누군가가 누구를 착취할 이유도, 착취할 근거도, 착취할 힘도 없게 만듦으로써 타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했던 모든 국가 기구들이 존재 근거를 잃게 된다. 오직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의식적 공동체’만 남게 된다. 자본주의의 부정을 통한 사회주의의 건설, 사회주의의 부정을 통한 공산주의의 건설이라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인류 사회는 계급 사회에서 무계급 사회라는 질적 발전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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