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와 친족성폭력, 그리고 지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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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딥페이크와 친족성폭력, 그리고 지혜복

지혜복 교육노동자의 투쟁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

  • 정은희
  • 등록 2024.08.31 15:49
  • 조회수 396

최근 불법합성물(딥페이크)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집단 성범죄가 드러나 여성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 지인의 사진을 보내면 단 5초 만에 유료로 나체를 합성해 주는 텔레그램 채널 가입자는 무려 22만7천여 명이라고 한다. 초중고교까지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이 밝혀졌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8월 25일까지 딥페이크 피해자 3명 중 1명이 미성년자다. 많은 여성이 극심한 공포 속에서 소셜미디어에서 사진을 삭제하고 있으며, 불안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누나, 여동생, 엄마 등 여성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촬영해 공유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까지 드러나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때문에 최근 트위터에서는 친족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친족 미투’도 터져 나오고 있다. 한 게시물은 3만 건 가까이 리트윗되었을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2021년에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상담사례 분석’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가해 아동·청소년 10명 중 9명은 ‘범죄’라는 인식 없이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딥페이크 사태뿐 아니라 청소년이 겪는 성폭력은 학교와 가정, 일터를 비롯한 일상 공간에서도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받은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비율은 전체 상담자의 28.8%고, 전년도보다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지난해 학교 성폭력 건수만 해도 무려 3,685건에 달한다. 한 여성단체에서는 최근 딥페이크 사태를 보며 ‘국가적 위기상태’라고 선언했는데, 바로 그 국가적 위기상태를 청소년과 학생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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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주영

 

교육과정에서 ‘성평등’ 삭제한 교육부

 

그러면 아동과 청소년이 이렇게 심각하게 성폭력을 겪고 있을 때 과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과연 피해 아동과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있을까? 학교부터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포괄적 성교육을 강화하여 아동과 청소년들이 성평등 감수성과 관점을 잘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교육부는 이미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 ‘섹슈얼리티’ 표현을 삭제했으며, 여성가족부는 올해 2013년부터 10년간 진행한 비장애 학생과 장애학생이 참여하는 ‘성인권교육’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 폐지했다. 이를 포함해 여성가족부 청소년 예산 90%도 중단됐다. 학교와 전국의 도서관에서는 성평등 도서들이 줄줄이 퇴출당하거나 열람이 제한되고 있다. 

 

물론 윤석열 정권의 반여성 정책은 훨씬 광범위하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가부를 폐지하려고 했고, 지난해 9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잼버리 사태로 사퇴한 뒤에는 1년 가까이 후임을 지명하지 않고 있다. 애초 강간 성립의 기준을 폭력에서 ‘비동의’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국정과제에서 삭제해 버렸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은 2024년 예산안에서 ‘여성폭력 방지·피해자 지원 예산 120억 원’, ‘19개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12억1,500만 원’,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 71억800만 원’을 삭감하는 등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2년 성인지 교육 관련 영상제작 용역사업을 진행하면서 ‘성평등’, ‘여성혐오’ 등을 금지어로 정한 사례도 빠트릴 수 없다. 

 

특히 인구 1천만이 살고 있는 서울시의 모습은 참상 수준이다. 서울시는 성평등지원센터를 통폐합해 버렸고,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를 12년 만에 폐지해 버렸다. 또 성평등 기본조례는 성소수자를 지운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개정했고,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역시 폐지해 수백 명의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고 여성의 부담을 가중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노동개혁 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적임자”라며 임명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어떠한가? 그는 과거에 자신의 어머니는 16살 중학생 나이에 시집와서 애 8명 낳았다며 돈 없어 결혼 안 한다는 건 물질주의라고 했다고 한다. 또 젊은이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개만 사랑하고 결혼도 안 하고 애를 안 낳는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젠더폭력 무한히 재생산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이쯤이면 이 사회와 교육을 과연 누가 안전하고 제대로 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특히 주로 여성인 아동, 청소년, 교사, 학부모와 가족이 성폭력과 성착취의 피해자가 되고 불안에 떨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이 아동과 청소년이 누군가를 성착취할 수 있고, 또 그러한 피해를 겪을 수 있게 만드는가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 사회가 가부장제와 결탁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다수의 노동자를 안전하게 착취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허용하는 사회, 자본이 영원히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도록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 양육과 돌봄의 부담을 강요하는 사회, 그래서 여성을 남성에게 예속하는 사회, 그래서 여성 노동자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더 하찮기만 해야 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다. 그리고 여기서 교육부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이념적 지향을 토대로 이 체제를 지탱할 엘리트 그리고 임금 노동자를 길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생을 줄 세우는 입시 경쟁교육 외에 학생 인권도 교육노동자의 노동권도 성평등도 보이지 않게 된다.

 

즉,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무참한 피해를 전가하는 성폭력이 일부 청소년들에게는 단순히 ‘놀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딥페이크 논란 후 오히려 가해자들이 반성은커녕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오프라인에서의 성폭력 또한 일부에게 ‘놀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죽든 살든 그 피해가 어떻든, 그들에게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

 

성폭력 유발하는 체제의 정치인들이 쥔 칼자루

 

그러면 과연 우리는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부에서는 성착취물 제작자에 대한 강력 처벌과 함께, 성착취물을 이용하거나 소지한 자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물론 딥페이크 제작과 이용, 반포가 성폭력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인권 침해이자 폭력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가해의 정도에 따라 사법적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처벌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성범죄를 야기해 온 이 체제의 정권이 휘두르는 칼자루가 정의를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처벌 강화는 그들이 떠받드는 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구조적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성범죄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가장 쉽게 모면할 방법일 뿐이다. 윤석열이나 이재명이 재빠르게 유체 이탈하여 이구동성으로 처벌 강화를 말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학교 미투를 외면하고,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성범죄를 무마하였으며,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경찰을 비호하고, 김학의 별장 성범죄 의혹을 무혐의 처분한 사법권력에 깊이 연루되어 있을 뿐이다. 이 썩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한, 그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든 성폭력은 근절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젠더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계급투쟁이다. 그 점에서 딥페이크 사태에,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에, 직장 내 성폭력에, 여성 폭력과 살해에 여성운동만이 아니라 노동자운동이 나서야 한다. 여성운동은 젠더폭력에 대한 정의를 부르주아 정치 세력에 의탁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운동과 함께 싸워 쟁취해야 한다. 즉,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이 결합하여 젠더폭력에 맞선 계급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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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병철 

 

지혜복 교육노동자의 투쟁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

 

이는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부당전보에 맞선 지혜복 교육노동자의 투쟁에서도 동일하다. 특히 그의 투쟁은 동시대 썩어빠진 교육 현실을 웅변하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싸움이다. 딥페이크 가해자의 70% 이상이 달리 10대가 아니다. 그만큼 공교육에서의 성평등은 비상사태에 처해 있다. 

 

A학교에서도 학생들의 가해행위는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폭력 사안을 해결해야 할 담당 교사는 피해를 축소하고 피해자 신원을 유출하는 2차 가해를 저질렀다. 게다가 A학교는 관할 서울시중부교육지원청과 함께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지혜복 교사를 부당전보했으며, 서울시교육청은 법리를 조작해 지혜복 교사의 공익제보자 지위마저 부정했다. 바로 10년 이상 ‘진보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조희연 교육감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왜 일부 아동과 청소년이 동료의 얼굴을 나체 사진과 합성하고, 자기 여동생과 누나, 엄마의 몸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는 ‘놀이’를 할 수 있는지 그 배경을 웅변한다. 즉, A학교 성폭력 사안과 부당전보는 초중등학교 불법합성물과 10대 친족 성폭력 사태와 직결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지혜복 교육노동자의 투쟁이 비단 A학교에서만의 투쟁이 아닌 이유다. 달리 말하면,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부당전보에 맞서 투쟁해 온 교육노동자가 승리해야 학교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투쟁에서 현장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이 승리할 때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주조하는 젠더폭력을 실질적으로 뿌리 뽑을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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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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