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은 과연 극우파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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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프랑스 총선은 과연 극우파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는가?

  • 양준석
  • 등록 2024.07.19 16:53
  • 조회수 1,252

6월 14일 신인민전선 선거강령 발표 사진: AFP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극우파 정부가 출현할 가능성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프랑스 총선이 7월 7일 예상 밖 결과와 함께 끝났다. 1차 투표에서 33.2%를 득표하며 1위를 했던 극우파 ‘국민연합’(RN)은 143석을 차지하며 3위로 밀려났다.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중도우파 ‘앙상블’은 1차 투표 3위(21.3%)라는 부진을 딛고 163석으로 2위로 올라섰다. ‘불복프랑스’(LFI)·사회당·공화당·녹색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생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PF)은 1차 투표에서 2위(28.2%)로 선전한 여세를 몰아 182석으로 깜짝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1차(66.7%)와 2차(67.1%) 모두 1997년 총선 이후 최고를 기록할 만큼 프랑스 국내에서도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졌다. 2022년 총선에 비하면 20% 가량 투표율이 치솟았다. 관심의 초점은 역시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여 온 극우파 국민연합의 집권 여부였다. 2007년 총선 때만 해도 4.3%에 불과했던 극우파의 득표율이 2022년 총선 때 18.7%로 늘어났다가 올해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31.4%로 폭증했기 때문이다. 2위를 한 마크롱 세력(14.6%)과 16.8%나 차이가 나면서 선거 결과는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나오던 6월 9일 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한편으로 극우파의 기세가 탄력을 받은 상황에서 다음 총선까지 3년 동안 소수파 정부를 끌고 가는 데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면, 다른 한편으로 극우파의 집권을 경계하는 표가 결집함으로써 자신의 당이 2022년 총선의 부진을 딛고 다시 과반수를 획득할 수도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극우파의 집권 실패와 신인민전선의 ‘성공’

 

마크롱이 그런 도박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전제는 2022년 총선 때 결성됐던 좌파 선거연합 ‘사회생태신인민연합’(NUPES)이 붕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내부 분란으로 시달리던 사회생태신인민연합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이후 내부 이견이 첨예화하면서 끝내 붕괴했다.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사회당의 주장을 불복프랑스가 반대하자 사회당이 전격 철수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크롱이 조기 총선을 발표하고 불과 5일 만인 6월 14일 불복프랑스·사회당·녹색당·공산당은 새 선거연합 ‘신인민전선’의 결성을 선언하면서 공동 강령을 발표했다. 사회경제 분야에서는 급진좌파 불복프랑스의 입장을 골격으로 해서 △2023년 연금개악 취소 및 퇴직 연령을 64세에서 60세로 하향 △세후 최저임금을 월 1,600유로(약 230만원)로 14% 인상 △생필품과 에너지 가격 동결 △임금과 연금의 물가연동제 △(2017년 마크롱 정부가 폐지한) 부유세 재도입 △과도한 이윤에 대한 새로운 세금 도입 △의회 투표를 생략할 수 있는 정부의 긴급명령 입법권을 헌법에서 삭제 등의 공동 강령이 만들어졌다.

 

반면 대외정책 분야에서는 사회당의 입장을 골격으로 해서 △러시아에 맞서 NATO 협력을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계속 지원 △우크라이나에 프랑스의 직접적인 군사개입 반대 △두 국가 해법을 전제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이스라엘에 무기수출 중단 △10·7 하마스 공격을 ‘테러주의 학살’로 규정 △이스라엘과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체포영장 지지 등의 공동 강령이 만들어졌다.

 

또한 극우파 국민연합이 이민자 수의 대폭 축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거는 데 맞서 △2023년 마크롱 정부가 개악한 이민법 취소 △망명 절차를 더 관대하고 매끄럽게 하는 이민법 개정 등을 내걸었다.

 

결과적으로 신인민전선은 결성 23일 만에 극우파의 집권을 저지하고 최다 의석을 차지하면서 일정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신인민전선의 성공은 극우파의 집권 가능성에 맞서 신인민전선을 열렬히 지지한 노동자대중에게도 역시 성공을 뜻할까?

 

신인민전선의 모델 -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

 

극우파의 집권을 막겠다고 결성된 신인민전선이 모델로 한 것은, 그 이름에서 바로 드러나듯이 1936년의 프랑스 인민전선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프랑스 인민전선이 처음에는 파시즘에 맞서 그럴 듯하게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파시즘에게 스스로 굴복했다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신인민전선이 이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한 이후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도 나치당과 비슷한 파시즘 세력이 거침없이 준동했다. 독일 노동자계급이 파시즘에게 패배한 핵심 이유가 공산당과 사회당의 분열에 있다고 본 프랑스 노동자대중은 파시즘에 맞선 공산당과 사회당의 단결을 아래로부터 추동해 냈다. 1935년 정치적 단결을 실현해 낸 프랑스 노동자계급이 파시즘 세력을 거리에서 육탄전을 펼쳐가며 분쇄해 냈을 때, 노동자대중의 자신감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런 상황에서 공산당과 사회당이 1936년 총선을 앞두고 자본가정당인 급진당을 끌어들여 인민전선을 결성했다. 57.8%를 득표하며 610석 가운데 386석(63.3%)을 차지한 인민전선의 총선 승리는 파시즘을 확실히 제압한 것처럼 보였다.

 

총선 직후 노동자들은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거대한 공장점거 총파업을 일으켰다. 10일 이상 프랑스를 완전히 마비시킨 총파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자본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 상황임에도) △집단교섭권과 파업권의 보편적 인정 △주 48시간 임금을 지급하며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2주간의 유급 여름휴가 등 상당한 양보를 제시했다.

 

1936년 총파업에 나선 르노 노동자들. '바캉스'라는 말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얻어낸 2주 유급휴가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향해 전진할 수도 있었을 그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이 총파업을 중단시킨 것은 바로 인민전선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공산당이 급진당의 인민전선 이탈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총파업을 중단하도록 설득하여 관철시킨 것이었다. 파시즘을 막아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총파업이 아니라 인민전선 정부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노동자들은 물러섰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세상을 바꾸는 길과는 반대로 갔다. 바로 옆 나라 스페인에서 비슷한 성격의 인민전선 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파시즘 군부에 맞서 내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독일의 나치 정부와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부가 스페인 군부를 공공연히 지원한 것과 달리)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는 급진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스페인 인민전선에 대한 지원을 포기했다. 급진당은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1년 뒤 인민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급진당 주도로 재구성된 인민전선 정부는 긴축정책을 전면화하고, 그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인민전선 정부의 정책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노동자대중의 힘을 약화시키고 파시즘 세력의 힘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1940년 애초 인민전선 정부를 출범시켰던 그 의회가 (히틀러에게 항복한) 파시즘 군부에게 나치 부역정권을 수립하도록 전권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최후를 맞이했다.

 

자본가정당과 연합한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환상 때문에 총파업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고 수동적 방관자로 전락했던 노동자대중은 결국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그런데 만일 1936년 거대한 총파업에 나섰던 프랑스 노동자들이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면서 (당장 권력 장악까지는 아닐지라도) 작업장을 토대로 지역별로 노동자평의회를 건설해 내면서 자본가계급과 정부를 감시하고 통제할 물질적 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진했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경제위기

 

신인민전선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지금 프랑스의 상황은 1930년대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반은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비슷하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끝없는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1930년대보다는 국가의 경제 개입이 훨씬 다양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경제위기의 양상이 덜 파국적이지만, 문제는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미국과도 뚜렷이 대비된다. 미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지만, 지난 15년 동안 기축통화 달러를 마음껏 찍어내며 자신의 경제위기를 나머지 세계로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전가해 왔다. 물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여전히 몇몇 나라를 상대로 제국주의적 수탈을 지속하고 있긴 하지만, 달러화 대비 유로화가 가진 취약성은 미국과 큰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경제학적으로는 벌써 수십 번 파산했어야 마땅한 달러화의 무제한 발권이 지속될 수 있는 힘은 첨단기술, 금융, 군사 부문에서 여전히 세계를 압도하는 미국의 패권에서 나온다. 그런 패권을 갖고 있지 않은 유럽은 따라서 유로화를 마음껏 찍어내며 국가개입을 극대화하는 마법을 부릴 수가 없다.

 

게다가 유로화는 유럽연합이 미국처럼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는 또 하나의 취약점을 안고 있다. 유럽연합 27개 국가 중 19개 국가가 유로화를 공동화폐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유로존 국가들은 특정 국가가 과도하게 재정을 지출하여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타국에 피해를 안길까봐 서로 민감하게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유로존에서는 매년 정부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하고 누적된 총 정부부채를 GDP 대비 60% 이내로 유지한다는 이른바 ‘재정건전성’ 기준이 존재한다. 물론 이 기준은 수시로 무시되긴 하지만, 늘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처럼 무제한 발권을 통한 국가개입을 불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족쇄로 작용한다.

 

지난 15년 동안 자본주의 위기 대응에서 미국과 유럽 사이에 발생한 차이는 2008년 미국 GDP 대비 110.3%를 기록했던 유럽연합의 GDP가 2023년에는 67.1%로 축소됐다는 통계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위기 전가 공세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

 

2008년 이후 만성화된 유럽의 경제위기는 당연하게도 그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수많은 공세를 낳았다.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도 줄기차게 전개됐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정권의 공세와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대한 파노라마를 형성하며 전개돼 왔다.

 

2010년 우파 정권이 밀어붙인 연금개악에 프랑스 노동자들은 최대 300만 명이 참여한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총파업의 위력을 10여 차례의 하루 경고파업과 거리시위로 제한시킨 노조 지도부 때문에 ‘60세 정년의 62세로 연장’ 등을 요지로 하는 연금개악을 저지하지 못했다. 노조 지도부가 생각한 대안은 정권교체였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원에 힘 받은 중도좌파 사회당이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집권했다.

 

그러나 사회당은 연금개악을 되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노동시간 연장과 정리해고 자유화를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악을 추진했다. 다시 노동자들이 격렬한 총파업으로 맞섰지만, 사회당 정부는 헌법상 긴급명령 제도를 활용해 의회 표결을 생략한 채 입법을 강행했다. 이후 사회당 정부의 지지 기반이 무너져 내린 틈을 뚫고 중도우파 마크롱이 혜성처럼 나타나 권력을 장악했다. 프랑스 정치의 양대 축으로서 번갈아 공세를 폈던 우파와 중도좌파가 공히 대중의 분노 앞에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정치적 격변이었다.

 

그런데 2017년 집권한 마크롱 또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2018년의 유류세 인상은 ‘노란 조끼’ 운동이라는 광범위한 빈민층의 반란을 촉발했다. 2019년의 공공부문 연금개악 추진은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강력한 총파업에 맞닥뜨렸고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2022년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한 마크롱은 2023년 다시 ‘정년 64세로 추가 연장’을 핵심으로 하는 연금개악을 추진했다.

 

2023년, 그러니까 지난해 상반기 연금개악에 맞서 다시 한 번 거대한 총파업이 전개됐다. 최대 참가 인원이 350만 명으로 2010년의 규모를 능가하면서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노동자투쟁이 됐다. 전통적으로 노동자투쟁의 중심 역할을 해온 대도시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의 중소도시들까지도 총파업 열기로 가득 찼다. 여론조사에서 94%가 연금개악에 반대하고 65%가 연금개악 철회를 위한 경제봉쇄를 지지할 정도로 일반 대중의 지지도 압도적이었다.

 

2010년의 총파업이 연금개악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기억하는 상황에서, 일부 선진노동자들은 무기한 총파업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에 착수했다. 에너지·정유·철도·청소 등 일부 부문에서는 실제로 무기한 파업이 아래로부터 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다시 한 번 총파업을 10여 차례의 하루 경고파업과 거리시위로 제한하면서, 더 이상 넘어서려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들이 생각한 대안은 ‘정권교체’였다.

 

그들이 생각한 정권교체의 주체는 2022년 총선 때 결성됐던 좌파 선거연합 ‘사회생태신인민연합’(NUPES)이었다. 그 중심에는 사회당의 몰락 이후 좌파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급진좌파 불복프랑스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명백하게 배신했던 사회당 또한 좌파 선거연합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좌파 선거연합의 집권이 또 다른 배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총파업이 연금개악을 막지 못하고 허망하게 소멸되자, 대중의 기대는 좌파 선거연합보다는 한 번도 집권한 적이 없는 극우파 국민연합을 향해 쏠렸다. 연금개악에 반대한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총파업 시위에는 매우 적대적이었던 극우파가 아이러니하게도 연금개악 반대투쟁의 가장 큰 정치적 수혜자가 됐다.

 

극우파의 지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마크롱 정부는 그 기세를 꺾어볼 요량으로 극우파의 핵심 공약인 이민 제한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이민법 개악을 지난해 12월 강행했다. 이민 허용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극우파로 쏠리는 흐름을 자기 당에 묶어 보겠다는 계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당은 분열되고 극우파의 기세만 더 살려주는 꼴이 되었다.

 

바로 이런 배경 위에서 지난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연합이 (2022년 총선 때 18.7%에서 31.4%로 득표율이 폭증하는) 눈부신 선전을 하게 된 것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도 극우파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구체적인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과정의 결과였다.

 

 

2023년 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 사진:AFP

 

무엇이 진정한 희망인가? 자본가세력과의 인민전선인가, 투쟁하는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인가?

 

이번 총선에서 극우파의 상승세가 집권으로 귀결되는 것을 막았다고 해서 불복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신인민전선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복프랑스는 지난해 연금개악 반대투쟁 때 오로지 그 정치적 수혜를 얻는 것에만 집중할 뿐 무기한 총파업을 건설하려는 노력에는 철저히 눈을 감았다. 그런 태도를 가진 불복프랑스가 설령 집권을 한들 노동자들의 열망을 진정으로 관철해 낼 수 있을까?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주관적인 진실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역학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기한 총파업과 같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상황이 열리면 노동자대중은 자본주의 일상 속에서는 감히 꿈꾸지 못하던 변화를 추구하고 실행하면서 자본주의를 결정적으로 타격할 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한 투쟁 속에서 건설되는 노동자평의회 같은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 기관들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집결하는 조직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들이 중단되고 자본주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래서 노동자대중의 힘이 가라앉고 자본가계급의 통제력에 압도당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자대중의 의식마저 부르주아 의식에 장악당하게 된다. 그렇게 무기력해진 노동자들 위에서 자본가계급이 가하는 압력은 어떤 정권에게든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불복프랑스가 보여준 ‘정치’는 만일 그들이 집권한다면 훨씬 더 거세질 압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불복프랑스가 주도적으로 결성한 신인민전선에 참여한 사회당은 2012년부터 5년 간 대통령을 역임하며 노동법 개악 강행 등을 주도했던 올랑드를 총선 후보로 내세웠고 결국 당선까지 시켰다. 6월 30일 오후 8시 15분, 1차 투표의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불복프랑스를 대표하는 멜랑숑은 신인민전선 소속으로 3위를 한 모든 후보들의 사퇴를 전격 선언하며 극우파 국민연합에 맞선 이른바 ‘공화국전선’의 형성에 앞장섰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신인민전선 후보들이 양보해 준 후보들 가운데에는 마크롱 정부의 전 총리로서 2023년 연금개악과 그 긴급명령 강행처리를 주도했던 보른, 그리고 역시 마크롱 정부의 현 내무장관으로서 노란조끼 시위부터 연금개악 반대투쟁과 경찰폭력 항의투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위에 대한 잔인한 폭력진압과 2023년 이민법 개악을 주도했던 다르마냉이 포함돼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극우파 대통령 밀레이의 미치광이 같은 정책들이 보여주듯이, 지난 10여 년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성장해 온 극우파의 집권은 노동자들에 대한 훨씬 더 강화된 공세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앞으로 자본주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면 이들 극우파는 노동자의 모든 성과를 파괴하고 노동자운동의 절멸을 시도하는 파시즘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갈 것이다. 자본주의 위기가 끝없이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대안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야만 나의 생존을 지킬 수 있다는 극우파와 파시즘의 논리가 대중에게 악마적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하는 것, 파시즘으로의 진화를 가로막는 것은 오늘날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사활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얼핏 보기에 극우파를 제외한 모든 세력과의 연합은 극우파를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최근의 프랑스 사례가 보여주듯이 그러한 방법은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극우파의 성장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줄 뿐이다.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할 힘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불러내는 데 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건설해 내고, 그 한복판에서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 기관을 건설해 내는 것이다. 자본가세력과 연합하는 인민전선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노동자투쟁의 건설 및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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