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중지부 여성혐오 기사’ 문제로 바라본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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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현중지부 여성혐오 기사’ 문제로 바라본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

민주노조의 정신이 ‘페미니즘’이어야

  • 배예주
  • 등록 2024.07.19 14:10
  • 조회수 364

 

최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7월 12일자 노동조합 소식지 ‘민주항해’에 여성과 장애인, 질환자 등을 혐오하는 기사를 실어 논란이 일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수구 꼴페미의 나쁜 광고 즉시 철거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용자가 설치한 산업안전 광고판에 합성된 손 모양을 남성혐오 세력의 집게손가락으로 규정하며 여성과 여성운동, 장애인, 질환자,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혐오하고 비난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지부는 당일인 7월 12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노동조합 지부장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도 같은 날 여성위원회 명의로 사과했다. 여성위원회는 이번 일로 ‘여성위원회 차원의 노력과 분투만으로는 현장과 호흡하는 데 한계가 따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6일에는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가 입장문을 통해 ‘성차별 철폐와 성평등 실현을 강령으로 하는 금속노조의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와 연대하고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위해 투쟁하는 민주노조의 역사와 정신을 훼손한’ 사안이라 명시하며 내부 성찰과 함께 사회적 연대와 투쟁을 약속했다.

 

이 일로 많은 노동자가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무엇보다 자본과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민주노조’가, 곁에 있는 ‘동지’가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언론도 이번 사안의 주체가 여성혐오 정서가 퍼져있는 온라인 매체나 남성우월주의 단체, 자본가나 우익 종교단체가 아니라 ‘노동조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금속노조는 강령에서 모든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위한 투쟁을 과제로 삼고 있다. ‘여성위원회’가 있고 다양한 교육과 사업을 진행하는데도 이런 일을 막지 못했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지부는 원하청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하며 올해 초 자본이 하청노동자를 감시·통제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설치한 ‘안면인식기’를 정규직 노조가 직접 철거하는 등 현장투쟁을 벌여 원하청 단결의 모범을 보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과연 집게손가락이 문제일까? 최근 집게손가락 논란이 있었던 게임업체 넥슨코리아 사안에서는 노동조합이 여성단체와 함께 페미니즘 혐오를 규탄하고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제기했다. 완성차업체 르노코리아 사안에서는 별다른 입장이 없었다가 현대중공업에서는 노동조합이 페미니즘 혐오 집게손가락 논란을 일으켰다. 문제는 집게손가락이 아니다. 혐오는 주적에 의해 그들의 피 묻은 손을 은폐하는 도구로 쓰일 뿐이다. 한국 자본주의사회에서 남성이 경험하는 고통과 부조리는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와 요구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 고통은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수탈에서 비롯된다.* 집게손가락 논란의 사과와 교육, 후속조치 이행만으로 그리고 ‘여성위원회 차원의 노력과 분투만으로는’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 차별에 맞서는 노동조합의 투쟁이 제대로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착취와 억압,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자본주의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 현실과 민주노조의 과제를 고민해 보자.

*https://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896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과 여성운동

 

노동조합의 연이은 사과문은 민주노조 운동의 성찰과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사과문을 통해 ‘노동조합의 사회적 지위와 그 역할, 그리고 책임감 등을 망각한 채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멸시적인 언어들을 신중하지 못하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표현하는 잘못된 기사를 보도함’에 대해 사과하고 ‘여성 인권과 장애인 등 모든 차별과 혐오를 배척하는 데도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올바른 기준이다. 현중지부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책임’에 비추어 자신의 과오를 사과했다. 금속노조의 사과문도 ‘민주노조의 역사와 정신’에 근거했다.

 

대중의 시선 역시 ‘노동조합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이미 사회적으로 노동조합이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옹호하며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데 앞장서는 세력임을 어느 정도 입증했기 때문에 나타난 반응이다. 한 줌 자본가계급은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며 사회를 극심한 위기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노동자계급만이 이에 맞서 투쟁하고 억압과 착취를 근절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투쟁이 중요하다. 현중지부가 사과문에서 옳게 밝힌 것처럼 노동조합은 ‘여성 인권과 장애인 등 모든 차별과 혐오를 배척하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노동자계급의 힘을 확장하고, 자본주의사회의 착취와 억압을 끝장낼 수 있도록 전진해야 한다.

 

한 줌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 민중 속에 대부분의 남성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이 있고 다양한 사회적 약자가 있다. 성소수자와 장애인은 스무 명 중 한 명꼴이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일부인 여성,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계급의식을 잃어버린 소리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여성과 소수자를 억압하며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저항을 파괴하는 분열 전략을 펼치는 상황에서 노동자 투쟁은 모든 차별과 억압, 착취에 맞서 더욱 단결해야만 한다.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 노동해방과 여성해방 투쟁에 앞장서는 것이 노동조합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책임이다.

 

만약 ‘여성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지향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질 때, ‘아니요’라고 답할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민주노조 평조합원에게 ‘남성과 여성 등 노동자끼리 적대시하고 분열하길 바라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자본가계급이다’고 답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표현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페미니즘’이란 단어로 질문한다면, 뭔가 낯설고 심지어 반감을 갖는 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자본의 분열 이데올로기를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걸러내지 못하면 노동조합 안에 여성혐오는 또다시 단결을 해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오래전부터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파괴하고 지배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수단으로 가부장제, 성차별을 활용해 왔다. 그 연장선에서 자본은 대중 속에 남성중심주의, 혐오 정서를 퍼뜨리며 구조적 성차별을 강화한다. 생산의 착취시스템뿐 아니라 성별 이분법과 남성중심주의로 노동자 민중을 분열시키고 진짜 적인 자본가계급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본에 맞선 노동자 투쟁의 역사와 정신은 ‘단결’과 ‘연대’였다. 계급과 계층,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 장애, 인종, 국가, 민족, 고용형태, 외모, 학력, 나이 등 온갖 근거로 차별과 억압, 착취를 정당화하는 것은 노동자의 사상일 수 없다. 페미니즘으로 표현해 보자면 ‘여성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상태’를 일컫는 단어, 사회의 일반적 표현이 ‘페미니즘’이므로 투쟁하는 노동자가 ‘페미니스트’다. 민주노조의 정신이 ‘페미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현실

 

‘노동자 투쟁’, ‘노동조합’이라고 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동자의 성별은 무엇일까? 그리고 하는 일에 따른 예컨대 ‘금속노동자’, ‘병원노동자’, ‘운수노동자’, ‘청소노동자’, ‘가사돌봄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성별은? 남성? 남성과 여성? 남성과 여성 등 모두? 전체 임금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절반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는 노동자의 성별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차별적 성별 노동 분업을 강요해 여성 노동자를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이중 굴레 속으로 내몰고 있다. 27년째 공고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성별임금 격차, 경력단절, 훨씬 높은 저임금과 단시간 노동·비정규직 비율 등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에 놓인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등장한 윤석열 정부는 노동과 여성을 표적으로 삼아 여성과 여성 노동정책을 후퇴시키며 여성을 출산과 양육의 도구로 여기고 있다. 성차별에 맞선 민주노조의 투쟁이 절실한 때다.

 

민주노총은 작년 4월 윤석열 정부를 평가하며 여성의 역할을 육아돌봄 전담자로 규정하고, 여성 노동을 ‘주변부 노동’으로 취급한 여성 노동정책이 가부장제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진단했다. 불안정 노동 문제를 누적해 여성 노동을 하향 평준화하며 자본의 이익만 키운다고 규탄하며 이에 맞선 투쟁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노조에서 여성문제나 여성 노동의 문제가 ‘노동’과 별개로 여겨지며 관심이 덜한 게 사실이다.

 

민주노총 사업장은 지금 대부분 임금 및 단체교섭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 7월 10일 금속노조는 그 일환으로 6만여 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벌였다. 전국 곳곳에서 집회도 개최해 치솟는 물가와 노동탄압 등 윤석열을 규탄하고 단체교섭 승리를 높이 외쳤다. 그리고 이 시점을 기준으로, 앞뒤로 노동과 여성을 관통하는 커다란 노동 현안이 있었다. 하나는 7월 12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민주노총이 ‘국민임투’라고 부른 2025년 최저임금을 결정한 일이다. 고물가에 실질임금이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역대 두 번째 최저인상률(1.7%)이었다. 다른 하나는 6월 19일 윤석열 정부가 저출생과 고물가에 대응한다며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이때 민주노조의 투쟁은 어땠는가?

 

많은 민주노조 간부와 활동가, 노동자들이 산적한 투쟁에 발에 땀띠가 날 정도로 뛰어다닐 테지만 이러한 투쟁에서는 민주노조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투쟁을 ‘국민임투’라고 호명했을 뿐, 조직 노동자의 절박한 투쟁으로 삼지 않았다. 지도부의 투쟁계획도 현장의 조직화도, 전략과 전술도 없이 저임금, 미조직 노동자와 단결하지 못했다. 분명 노조의 투쟁현안과 이어진 이주 여성 가사돌봄 노동자(가사사용인)에게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겠다’는 초법적 노예노동 착취 선포에도 불구하고 분노조차 모아내지 못했다.

 

민주노조가 최저임금이나 이주 여성노동자 당사자만이 아니라, 먼저 권리를 쟁취한 노동자조직으로서 위기에 내몰린 저임금·미조직·불안정·여성·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같이 싸운다고 상상해 보자. 단결한 노동자대오 안에 여성혐오가 발붙일 수 없을 것임은 자명하다. 오히려 노동자의 단결 투쟁을 통해 여성혐오 정서와 이를 조장하는 세력이 호되게 비판받고, 성차별에서 성평등으로 현장과 사회를 바꿔 가는 힘이 세질 것이다. 그것이 민주노조의 올바른 모습이지 않은가.

 

 

단결과 연대,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

 

차별과 혐오가 아닌 단결과 연대가 필요하다. 쇠퇴기 자본의 공격은 노동조합이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사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자신이 ‘사회적 약자의 편’이라고 떠드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노동조합 기득권 세력 탓에 생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가장 심각한 사회 불평등으로 못 박는다. 이렇게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 불평등, 빈부격차를 감추는 이데올로기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측면에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 강화, 탄압과 단단히 결합해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정주-이주 노동자로 분열시켜 공격의 고삐만 당겨댄다. 사업장 안에서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이러한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주노동자, 여성 노동자가 더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더 많이 착취당하고, 가정에서 무급가사노동에 시달리며 이중삼중으로 더 빼앗길수록 결국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수탈의 정도는 커지는 것이다. 모든 이득은 자본가계급의 파이를 키울 뿐이다.

 

7월 17일 ‘울산 장애인 이동권 보장 전국 집중 결의대회’에서 휠체어를 탄 사회자는 민주노총을 ‘모든 투쟁의 주춧돌’이라고 표현했다. 과연 노동조합이 노동자 민중의 분노와 고통과 함께하며 사회에 저항하는 ‘투쟁의 주춧돌’이 되고 있는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주춧돌’이 사업장 울타리 안에 박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모든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서지 않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불가능하다.

 

성평등한 노동권, 노동력 재생산 책임의 사회화, 성에 기반한 폭력 추방, 성적 다양성 보장과 존중을 위해 우리 일터에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같이 투쟁할지 ‘성평등’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접근해 가자. 여성 노동자 조직화, 노조할 권리 보장과 지원, 여성위원회 구성과 활동 강화 등 여성 노동자 주체의 목소리를 강화하며 노동자 민주주의를 성장시켜야 한다. 성차별은 물론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빈민 등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으로 노동자 투쟁을 확장하자.

 

노동조합이 조합주의, 개량주의,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을 하나로 펼쳐나갈 때 평가절하한 노동력의 가치와 빼앗긴 권리와 평등을 되찾는 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노동자의 집게손가락으로, 우리가 싸울 대상은 바로 착취와 억압의 주범인 자본가계급임을 정확히 가리키자. 노동자계급만이 모든 착취와 억압에 맞서 평등한 세상을 열어갈 세력임을 단결 투쟁으로 증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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