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재벌의 병원에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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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현대중공업 재벌의 병원에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싸우고 있다

울산대병원 장례식장 해고노동자의 글 2편을 전합니다

  • 배예주
  • 등록 2022.10.16 10:54
  • 조회수 573

 

현중 재벌의 병원

현대중공업 재벌은 재단을 달리하는 9개의 대형병원을 운영해 배를 불리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강릉·보령·영덕 등 지방 도시의 아산병원, 울산대학교병원 등이다.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서울아산병원(보건의료노조), 울산대학교병원(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두 곳뿐이다. 해당 사업장에는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노동조합도 있는데 서울아산병원은 복수노조고, 울산대병원은 단일노조다.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울산대학교병원은 공공병원이 하나도 없는 울산광역시에서 지역거점병원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환자도 많고 국가와 울산시의 지원금도 많다. 작년에는 코로나19지원금 등을 보태 무려 500억 원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울산대병원은 모든 인력을 최소한으로 운영하고 고강도 노동, 낮은 임금을 강요하기로 유명하다.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갑질은 더하다. 장례식장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기 전, 병원 관리자는 당연한 듯 ‘해장라면 좀 끓여와라’, ‘체육행사 때 수육 삶아라’ 등 부당한 업무를 시켰다. 

 

자본 대 노동조합

자본은 장례식장이 직영이라고 홍보하지만, 식당과 청소업무를 용역업체로 운영해왔다. 청소, 장례식장 식당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 울산대학교병원 민들레분회로 단결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외쳤다. 

 

자본에게는 노조가 눈엣가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단결을 방해하고, 양보를 종용해 민주노조를 종이호랑이로 만들려 애쓰고 있다. 올해 3월 1일, 자본은 결국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8명에게 해고의 칼날을 휘둘렀다. ‘장례식장 식당에 입찰하려는 용역업체가 없다. 기존 업체와 계약이 종료되고 새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으니 나가라’며 출입을 금지했다. 용역업체의 무입찰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등 해고와 함께 민주노조를 파괴하려는 공격이었다. 십 수년간 일해온 일터, 병원의 필수업무에서 노동자들이 정말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해고에 맞선 투쟁

봄에 시작한 투쟁이 여름을 지나, 이제 아침저녁 찬바람을 가르며 여성 노동자 4명이 8개월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동지들이 울고 웃으며 말한다. “사측은 ‘아줌마들이 뭘 하겠어?’ 했겠지. 우리뿐이었다면 그 말이 맞았을 수 있겠지만, 아니다! 우리는 연대하고 또 투쟁한다.”, “투쟁 과정에서 열사들에 대한 교육을 받고, 여러 사업장에 연대하며 부끄러웠다. 왜냐면 우리 투쟁이 제일 큰 줄 알았고, 우리가 제일 힘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대를 몸소 겪으며 배웠기 때문에 끝까지 연대할 거다.” 

 

같은 현대중공업 자본에게 해고당한 현중사내하청지회 서진노동자들이 울산대병원 장례식장 노동자들과 한 몸처럼 연대하며 투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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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한 끼를 위해 써내려간 글

장례식장 해고노동자들의 눈에 번쩍 띈 게 있었다. 바로 ‘노동조합체험수기 공모전’이었다. 시나 생활글을 출품해 당선되면 상금을 주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행사였다. 해고노동자들은 글을 써서 상금을 받으면 연대한 동지들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자, 계속 싸울 테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꼭 밥 한 끼를 사겠다는 목표로 글을 썼다. 소중한 마음, 뜨거운 투쟁의 글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하게도 ‘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도 글을 보내주셨다. 

‘아줌마’가 아니라 당당한 노동자로 싸우는 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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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다른 이름 연대투쟁 _ 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민들레분회 해고자 황미정

 

늘 평범하고 별다를 게 없던 소소한 일상에서 어느 날 우리에게 던져진 자본의 돌팔매질은 잔잔한 호수 같은 삶의 파장이 되어 투쟁이라는 낯선 세상 속으로 걸어가게 되는 통로로 험한 길을 걸어가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장난으로 던지는 돌팔매질에 개구리는 목숨을 잃는다고 했던가요? 사측의 치졸한 계획으로 인한 집단해고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022년 3월 1일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야속한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삼일절 공휴일이면서 창립기념일이었습니다. 휴무 날임에도 우리는 평소대로 출근했고, 활기찬 발걸음은 출입문 앞에 붙은 출입금지 딱지 한 장으로 우리가 바라던 평범함은 무참히 깨져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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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출입하던 문이 그처럼 높게 보인 적이 있었는가 싶었습니다. 소지품 한 점도 챙기지 못한 채 쫓겨난 그곳은 더 이상 나의 직장도 땀으로 일궈낸 내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사전에 어떠한 해고통지도 없었고 누구도 우리에게 해고를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닥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덤덤했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루어 짐작도 할 수 없으므로 불안감이나 주저함은 없었고, 펼쳐진 상황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우스운 코미디를 보는 양 웃음마저 나왔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해고를 인지 못 한 무지함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우리의 투쟁의 첫날은 시작되었습니다. 장례식장 로비에 깔고 앉은 돗자리 한 개가 농성장의 시작이 되었고, 2주일이면 해결될 거라는 지나가는 말을 믿고 싶었는지 사뭇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는 험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고된 투쟁의 시간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마음만 앞서고 요령은 부족하니 일단은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보았습니다. 하루 8시간의 투쟁의 시간은 서툴고 초보인 우리에게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피켓을 들고 서 있어서 다리는 퉁퉁 붓고 집에 가면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으니 가족들마저 피폐해졌습니다.

 

그런 생활의 연속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충돌이 되고 울타리 없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투쟁으로 지친 육체와 정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면서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이탈자가 생기면 서로 질책하고 원망하다 보니 투쟁의 시간보다는 내부 트러블의 고통으로 힘들어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강요하거나 지시한 적 없지만 급한 마음과 요령 부족으로 멀리 보는 안목도 없이 지친 심신을 달랠 줄도 몰랐습니다.

 

돌이켜보니 이 또한 투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간부님들의 조언과 격려는 숨을 쉬게 하는 숨구멍이 되었고 숙련되고 노련한 대처는 투쟁을 계속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질 무렵 사측에게 업무방해와 퇴거불응 그리고 소음 관련으로 고소를 당하고 5시간이 넘게 받은 경찰 조사는 자존감마저 무너지게 했습니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서 생각도 안 나는 질문에 조사를 받으며 이 길이 옳은 길인가 생각도 해봤습니다. 

 

살면서 죄짓고 살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고소를 당할 일이 생길 줄 어찌 예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무너질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워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힘을 줄 계기가 절실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수요집회. 매주 수요일 5시에는 본관 앞에서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 서울에서, 대구에서, 구미에서, 거제에서 전국 여러 곳에서 오로지 우리만을 위해 연대를 오는 동지들이 목청껏 외쳐줍니다. ‘해고를 철회하고 직접 고용하라’ 울분에 찬 부르짖음은 투쟁의 힘이 되고 동지애의 뜨거움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그 감사함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쏟아져 내리는 눈물도 지금은 사치라고 여깁니다. 해고 투쟁 초기에 쑥스러움으로, ‘투쟁’ 소리도 못 할 때 붉어진 낯빛으로, 고개 못 들던 수줍음은 발언문을 줄줄 읽고 목청껏 노동가요를 부르는 다부짐으로 성장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다섯 시는 우리를 충전하는 선물 같은 시간으로 집회의 벅찬 감동은 일주일을 버티는 힘이 되어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줍니다. 

 

동지들의 연대는 무한 감동이고, 무한에너지로 투쟁 의지에 불을 붙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주춤할 때도, 구사대의 탄압과 억압 앞에 무너질 때도, 세상의 끝에 홀로 선 것 같은 외로움 앞에서도 동지들의 연대투쟁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했던가요? 일류는 아니더라도 삼류는 되지 말자는 심경으로 오늘의 투쟁에 최선을 다합니다.

 

오늘 아파해도 우리는 내일 또 일어설 것이라 믿기에 비빌 언덕 같은 동지들 염원으로 투쟁의 시간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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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동지가 노래로 연대한 수요집회. 사진: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서진해고자 변주현

 

 

우리는 장례식장 조리사입니다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해고자 박선옥

 

우리는 장례식장 조리사입니다

 

다녀갈 사람들이 너무 슬프지는 않게

혹은 마음껏 울 수 있게

따뜻한 밥과 국을 내어놓습니다

 

밥 한술에 망자(亡者)의 길을 비추고

국 한 그릇에 남은 이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우리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떠나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변한 것 또한 없습니다

우리는 장례식장 조리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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