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거부
지난 5월 7일 한국마사회의 자회사인 ‘한국마사회시설관리’가 계약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수국나무 1만 주를 심으라는 업무지시를 내렸다. 1미터가 넘는 수국나무들을 굴삭기를 비롯한 전문 장비도 없이 심으라고 강요했다. 기존 업무 범위와 노동강도를 훨씬 뛰어넘는 일이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 부경지회는 업무지시를 거부했다. 즉각적인 현장투쟁이었다.
온갖 협박
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하자, 회사는 “민형사상 책임이 따른다”고 협박했다. 회사는 계약직 15명 전 조합원에게 징계 협박 문서를 개별로 보냈다. 지회에도 징계 협박 공문을 보냈다. 원청인 한국마사회 관리자는 “수국이 죽으면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협박했다.
한국마사회지부는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에 질의를 보냈는데, 국토부는 수국 식재 사업이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조경공사에 해당할 수 있으며, 그 경우 등록된 조경사업장만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답변을 보냈다.
계약직 조합원들을 지켜내겠다!
법률적 판단은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현장 노동자들의 단결이 가장 중요했다. 대부분 고령의 여성 노동자인 계약직 조합원들은 사측이 다시 계약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 눈물을 흘리며 재계약 문제를 고민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지부나 지회 간부들도 처음에는 계약직 조합원 계약해지(해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지회는 현장을 믿었고, 중단없는 투쟁을 선택했다. 계약직 조합원들만이 아니라 다른 조합원들도 투쟁에 동참했다. 조경 담당 전체 조합원이 투쟁에 참여했다. 피켓팅을 시작했고 현수막을 부착했다. 마사회 부경지회 전체 노동자는 계약직이냐 상용직이냐를 떠나 하나로 단결했다. 동료가 계약해지를 당한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마사회지부는 부경지회 투쟁을 위해 투쟁기금 1,000만원 지원과 마사회지부 전 지회 현수막 부착, 선전 활동을 결의했다. 노동자들의 힘에 놀란 사측은 5월 22일 작업 지시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다만, 뻔뻔하게도 이번 투쟁의 책임자를 징계하겠다는 말을 내뱉었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흔들림 없이 투쟁하고 있고, 만약 작업 지시를 재개하거나 징계를 자행한다면 투쟁을 확대할 것이다.
무늬만 정규직화, 자회사의 실상이 분명히 드러나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으로 마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20년 마사회 자회사인 마사회시설관리 소속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임금과 노동조건은 용역·하청업체 시절 그대로다. 이번에도 한국마사회시설관리는 전문 공사업체를 쓰지 않고, 다시 말해 전문 인력과 전문 장비를 투입하지 않고 계약직 노동자들을 시켜 아주 싼값에 식재 공사를 진행하려 했다.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 했다.
마사회시설관리는 작년 6월 손톱 색깔과 귀걸이 길이, 머리 길이까지 통제하는 ‘표준응대메뉴얼’을 만들어 노동자를 통제했다. 이 매뉴얼은 노동자들의 항의와 지부의 대응으로 올 2월 폐기됐다. 과천지회에서는 근무평가제도를 이용해 지회장에게 근무평가 D등급을 내리는 탄압을 하기도 했다. 이 역시 저항에 부딪히고 나서야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모든 공격의 배후에는 원청인 한국마사회가 있다. 원청은 자회사에게 쥐꼬리만큼의 시설 유지비만 던져주고, 모든 책임은 자회사에 떠넘겼다. 자회사는 용역 시절과 마찬가지로 인력 충원 없이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데 급급하다. 노동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원청과의 투쟁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단결한 노동자들은 정의를 선택했고, 그들의 힘은 강하다. 이 투쟁을 바탕으로 마사회 노동자들이 더 멀리 전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