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직업병을 처음 알린 고 황유미 님이 일한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3라인과 같은 장소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 2명이 11일 산재보험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당사자와 함께 자녀 3명이 산재 신청을 같이 했다.
2007년 3월 고 황유미 님의 죽음 2년 뒤 삼성 기흥공장 반도체 3라인은 LED라인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삼성은 새로운 설비 대신 삼성전기에서 쓰던 구식 설비를 들여 왔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새로운 LED 라인에서도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해야 했다. 특히 노동자들은 반도체 웨이퍼(슬라이스 또는 기판)를 강산·강염기성 화학물질에 담갔다 빼는 작업을 하며 직접 유해물질에 노출됐다.
11일 기자회견을 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연대단체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들이 일했던 노동조건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다. 이날 직접 기자회견에 참가한 산재신청자 유씨는 1997년 삼성 기흥공장에 입사해 약 18년 동안 일한 뒤 근무구불결장암과 난소암을 앓게 됐다. 그는 임신이나 출산휴가, 육아휴직 1개월을 제외하고는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작업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노트에 빽빽이 작업 순서를 써가며 외우기도 했다. 포토공정에서 신너 교체, 바울 체인지, PR 약품 교체 등을 직접 손으로 작업했다. 그러다보니 약품이 손이나 방진복에 묻었고, 냄새도 역하게 났다. 신입사원 막내가 그런 일을 했고, 선배가 되면 그런 일을 하는 후배들을 교육했다. 특히 유씨는 다기능자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불려가 위급상황에 대처했다. 그는 유해물질을 다루는 라인에서 일했지만 생산 실적을 올리려고 열과 성의를 다해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는 고과평가로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을 정도였고, 그만큼 승격도 빨랐다. 그런데 어렵게 얻은 아이는 눈을 맞추지 않았고, 이후에야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질적 가장이었던 유씨는 퇴사를 한 뒤에야 자녀와 같은 장애를 안고 있는 아이를 둔 동료들이 여러 명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날 산재를 함께 신청한 만 50세의 김씨 역시 각종 화학약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일했다. 당시 ‘환경안전’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상품을 위해서는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고 온습도를 잘 관리해야 했지만, 생산성과 수율을 올리는 데만 모두가 집중했다. 2009년 반도체에서 LED로 이동했던 사원들 모두가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헛웃음을 지을 정도였다고 한다. 손으로 뜨거운 플레이트 위의 웨이퍼를 분리하거나, 맨손으로 계면활성제를 이용하여 웨이퍼를 세정하거나, 형광체를 아무런 보호구 없이 수작업으로 배합했다. 반도체라인은 자동화됐지만, 유해물질로부터의 보호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 또한 퇴직 후 자녀의 장애를 알게 됐다.
난소암으로 지난 7월 사망한 이 씨는 LED 제조공정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면서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형광체 등 여러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다. 2004년부터 20년을 수원과 기흥 LED 제조공정에서 일한 그는 2024년 7월 복부 통증으로 병원에 갔다가 난소암 4기 진단을 받은 후 수술도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씨의 언니는 기자회견에 전한 서면을 통해 “우리 집안에 난소암에 대한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 왜 이런 병이 걸렸는지, 우리 동생이 왜 이렇게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해야 했는지 꼭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재해를 당한 여성 노동자들의 질병이 산재가 아니고는 설명될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제대로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까지 삼성은 모든 책임을 외면하고 있으며, 건강이 손상된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2022년 일명 태아산재법(산재보험법 개정)이 만들어졌지만, 2020년 1월 이전에 출생한 자녀들은 산재 신청을 할 수 없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구조적 여성 노동자 살해
고 황유미 씨의 죽음과 투쟁을 계기로 늦게나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산업재해 현실이 세상에 드러났지만, 삼성과 정부는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생식독성 등 유해요인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은커녕 작업장 안전을 심각하게 방기했다. 더구나 그들은 가부장제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여성 노동자들을 싸고 쉽게 쓰고 자녀가 입은 산재 책임까지 떠넘겼다.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가 지적한 바 있듯이, 전자산업은 여성이 원래 손이 빠르고, 참을성이 있다는 성별 고정 관념에 여성 노동자를 선호하고 그에 따라 여성 비율이 높은 산업이다. 또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고, 노동 통제가 쉽기 때문에 어린 여성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삼성은 성별과 연령에 따른 차별을 부추기는 가부장제를 활용해 여성 노동자들을 초과착취했으며, 노동안전을 방기했다. 심지어 생식독성물질이 가득한 작업장을 방치하여 자녀의 건강까지 해쳤지만, 가부장적 편견 뒤에 숨어 기업의 책임을 외면했다. 뿐만 아니라 건강이 손상된 자녀의 돌봄 책임 역시 노동자 가족에, 특히 산재를 입은 피해 여성 노동자 당사자에게 떠넘겼다.
물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삼성전자의 구조적 착취는 11일 산재를 신청한 여성 노동자 일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유씨의 경우에도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 LED 생산라인 같은 조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자녀 5명이 지적장애, 자폐, 희귀질환을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난소암, 뇌종양, 림프종을 앓다가 투병 중이거나 세상을 떠난 동료들도 있다고 밝혔다.
현실이 이런데도 삼성은 여성 노동자에게는 산재와 아픈 자녀를 돌봐야 하는 돌봄노동까지 떠안기면서 자신은 천문학적 이윤을 내 왔다. 최근 삼성전자 실적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3분기만 해도 9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그럼에도 삼성은 진심어린 사과와 산재보상에 나서기는커녕 증거로서 다뤄져야 하는 유해물질 생산공정을 치워내기에 급급하다.
삼성의 여성 노동자 살해에 맞서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이 단결하자
이렇게 추악한 삼성에 맞서 여성 노동자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조직 노동자운동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 특히 삼성 여성 노동자들의 산재는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단결된 투쟁이 절실하다.
그 동안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살해를 비롯해 여성폭력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제기돼 왔다. 해외서도 여성살해에 맞서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조직돼 왔다. 그러나 그 배경에 자본과 그들의 국가가 있다는 사실은 별로 이야기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부장적 폭력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봉사하도록 재구성된다. 더구나 삼성전자 생산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죽음과 질환은 바로 그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노동자를 착취해 온 삼성이란 자본의 가장 직접적인 여성살해다.
이제 우리는 삼성을 향해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는 여성살해에 맞선 구호를 외쳐야 할 때다. 자본의 구조적 여성살해에 맞선 목소리를 조직하자.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이 단결해 삼성의 구조적인 여성 노동자 살해와 폭력에 맞서 저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