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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가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대하여

'집단학살 1년, 캠퍼스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과제' 1부

Kilian Gremminger mtosocialism@gmail.com
기사입력 2024.09.26 14:53 | 조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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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9월 23일(월),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집단학살 1년, 캠퍼스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공개강연회&토론회 열렸다. 1부에서는 독일의 사회주의 학생조직인 '비판의 무기'(Waffen Der Kritik)의 활동가이자, 뮌헨대학교 학생인 Kilian Gremminger 동지가 독일 대학가에서의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대해 설명했다. 당일 강연회의 발제문을 발제자의 동의를 구해 지면에 싣는다. 발제문의 영문본은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 현재의 국제 정세

     

    여름 동안 전 세계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시위가 일정한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방학이라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에 없었고,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 주기성을 지니는 시위의 국제적 역학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대학에서, 개강과 함께 새로운 행동이 계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많은 모멘텀이 다시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물론 중동에서의 상황의 발전과도 연결돼있습니다. 서안지구에서 더욱 심한 점령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걸 볼 수 있고, 가자학살은 지속되고 있고, 레바논은 점점 더 공습과 미사일 공격 등 이스라엘 정부의 전쟁타겟이 되어 왔습니다.

     

    국제정세는 모순적입니다. 한편에서, 우리는 많은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극우정당이 집권하거나, 극우정당이 다른 부르주아 정당들을 전진시키는 등 전반적인 우경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2008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그리고 코로나에 의해 강화된 경제위기와 연결돼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원인들도 있습니다. 앞선 흐름들과 동시에, 2022년부터, 프랑스에서 연금개악에 맞선 대중적 저항과 같은 진보적인 예시들처럼, 우리는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학을 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자계급의 일부를 정치적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이, 그래서 그 노동자들이 단지 더 많은 임금을 위해서만 싸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해보입니다. 이러한 점들은 우경화에 맞서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2.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두 가지 물결

     

    큰 틀에서 볼 때, 우리는 10월 7일부터 오늘까지, 세계의 팔레스타인 운동에서 두 가지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물결은 10월 7일 이후에 곧바로 시작되었고, 이 첫번째 물결은 매우 크고, 매우 동질적인 거리에서의 시위로 특징지어집니다. 세계 모든 부분에서 대중시위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아랍국가들에서, 아시아에서도요. 이 시위는 처음에는 인도주의적 성격을 지녔습니다.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가시화하기 위한 시위였고요, 자국 정부를 향해 인도적 지원에 대한 요구를 했습니다. 이에 더해, 팔레스타인 운동은, 나크바와 불법점령 같은 지난 76년 간의 역사를 말하지 않고, 이른바 “갈등”이 10월 7일에 시작됐다는 지배적인 내러티브를 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위는 그래서 인도주의적이고 시민적이었고요, 노동조합, 정당, 학생, 이주민, 연금수령자 등으로부터 나온 시위대는 UN과 자국정부를 호명하고, 그들에게 이 고통에 대해 뭔가를 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기후운동과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운동의 많은 부분도 이 시위에 함께 참가했습니다. 독일은 (이런 흐름에서) 특별히 예외였지만요. 그래서, 반식민주의, 반인종주의 투쟁과 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된 기후위기에 맞선 투쟁 사이에 자연스러운 연결이 있었습니다. 저희 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뮌헨과 다른 유럽 도시들에서, 다양한 행동을 하기위해, 학생들을 단결시키기 위한 위원회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동시에, 이 운동의 첫번째 물결 동안, 국제적인 항구들에서, 무기전달을 봉쇄하는, 노동자계급에 의한 행동들이 이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에,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공한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과 함께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이 결정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집단학살이 계속됐기 때문에, 특히 이른바 “가자의 안전지대”라고 불리는 곳의 민간인을 분명하게 타겟팅한 집단학살이 계속됐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자국 정부,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나 또는 유엔 전체와 같은 국제기구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운동의 측면에서, 4월 17일이 모든 걸 바꿔놓았습니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십수명의 용감한 학생들이, 경찰과 대학당국의 극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첫번째 가자 연대 캠프농성장을 차렸습니다. 경찰과 대학당국의 탄압은 직접적으로 대학 교직원들의 일부로부터 연대를 촉발했습니다 그들은 인간띠를 만들어 학생들이 퇴거되는 것을 막고 캠프를 지키려 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 농성 이후로, 이러한 실천이 나라 전역의 여러 대학들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4월 말에는 유럽과 독일 대학으로도 퍼져나갔습니다. 두번째 물결이 탄생했고, 학생들은 전위로서 저항을 이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그들의 프로그램, 강령 혹은 요구안을 확대하고, 무기 수출을 한다는 점에서, 또 외교적 노력의 부족이란 점에서, 정부의 공모를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을 대학과도 연결시켰습니다. 제국주의는 대학 교정 앞에서 멈추지 않고요, 무기연구, 또는 어떤 경우엔 무기생산에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연구협력을 하는 방식으로 제국주의는 자신을 표현합니다. 학생들은 대학당국에 맞서 싸우고, 그들의 대학, 더 이상 집단학살에 봉사하기 위해 활용되어선 안되는 그런 대학을 다시 되찾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은 과학, 정치, 문화, 군사적 측면에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보이콧할 것을 요구했고요, 또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대학의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알 수 있도록, 대학이 회계장부를 공개할 것, 그리고 이스라엘과 연관된 투자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시위를 통해 학생들은 명백하게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분명하게 ‘학생’으로서, 따라서 그들의 대학에 대한 권력과 통제를 위해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측면들은, 강령 혹은 요구안의 확대라는 점과 함께, 학생들의 전위적 성격을 가능케 했고, 학생들을 개척자로서, 다른 부문과 구별짓게 한 지점입니다.

     

    3 독일 운동의 세 가지 경향

     

    현재 단계에서 첫번째 경향은 철수 또는 일상주의입니다. 이 현상은 매우 제한적인 성공과 함께 몇 달 넘게 이어진 활동으로 인한 고갈로부터 기인합니다. 이 경향은 추모제, 정보안내소, 캠프농성 등, 결론적으로 기력이 다하는 반복되는 저항의 형태로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우리는 이를 심지어 처음에 폭발적이었던 미국의 경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컬럼비아에서 세워졌던 것 같은 이런 캠프들은 계속 새로 지어졌습니다만, 새로운 행동의 형태가 발전되진 않았고요, 인구의 더 많은 부문을 포함시켜 운동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상황을 알리고 교육하는 것에 활동이 주로 집중됐고, 새로운 활동가들을 끌어내거나 활성화하는데에는 덜 집중됐습니다. 이러한, 이른바 “우리들만의 공동체”(one’s own community)로의 후퇴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물론 이는 객관적인 조건과도 연결돼있습니다. 바로 저항 주기(싸이클)의 침체라는 객관적 조건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추진력(모멘텀)을, 지역적 수준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해야했고,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활동과 동원력은 많은 부분 국제적 상황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번째 경향을 상징적 급진주의(Symbolic Radicalism)이라고 부릅니다. 이 경향은 현재 운동의 핵심부에 가장 널리퍼진 경향이며 계속해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대학에서 이 경향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창문과 벽이 저항의 슬로건과 상징으로 뒤덮였던 걸 기억합니다. 그리고 활동가들은 교육기관의 이름을 (자발리아 난민촌의 이름을 따서)“자발리아 기관”이라고 새롭게 호명하기도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특히 자발리아 기관이라고 이름을 붙인 후자의 행동에 대해 강한 동조감을 느끼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은 전략적으로 우리를 돕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국제적 부르주아 기구들에 대한 환멸로부터 나왔습니다. 이 경향은 물리적인, 그리고 매우 상징적인 저항들을 유일하게 가능한, 또는 상상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여깁니다. 이 경향의 논리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권력 혹은 권력자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그들이 그들이 하는 짓에 대해 최대한 가능한만큼 댓가를 치르도록 만들자” 탄압받는 것은 순교적인 방식으로 전투성의 도덕적인 증명을 하는 것으로 양식화되고 여겨집니다. 법적 형태의 행동들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 정치적 반달리즘(어떤 것들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집중은 이 경향을 더욱 결정짓는 요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종파적인’ 경향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학생 대중과 인구의 나머지 부분들이 ‘길을 잃었다’ 또는 ‘되찾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는 경향 말입니다.

     

    세번째 경향은 정치적 확장입니다. 10월 7일 이후, 이 경향은 여러 대학에서 위원회의 형태로 존재해왔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정도로는, 4월과 5월의 폭발을 이미 준비해왔습니다. (이 경향이) 준비해온 구조들이 운동의 도약대로서 기능할 수 있었습니다. 위원회의 목적은 분노와 슬픔 그리고 극심한 탄압의 상황 속에서, 즉 다시 말해 방어적인 상황 속에서, 학생들의 고립을 극복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방어적인 상황에 놓일 때, 어떤 순간에 반격을 할 수 있기 위해서 가능한 한 넓은 세력을 모아야합니다. 그것이, 정치적 경험이 없고 조직되지 않은 1학년 학생들이 위원회에 있고, 정치적으로 이슬람주의에 가까운 이들도, 또 저같이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도 모두 같은 위원회에 속해있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몇 달 간의 준비를 통해서, 우리는 대학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때때로 최소한 가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캠프농성 같은 활동을 통해서요. 그리고 우리의 운동을 여름학기를 넘어서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확장은 무엇보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은, 수단이나 콩고 같은, 다른 반식민주의 투쟁들과 연대를 구축하는 것을 의제로 삼았을 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억압이 팔레스타인 문제와 연결돼있다는 것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가지 예시가 이를 보여줍니다. 본래 이스라엘의 핑크워싱과 같은 이슈에 집중해오던, 퀴어연결의 문제는, 운동의 더 많은 부분으로 확장되고 있고, Christopher street day(CSD, 스톤월 항쟁 기념일, 우리나라의 퀴어퍼레이드와 유사한)를 둘러싼 토론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족해방과 반식민주의 투쟁의 문제는 따라서 더 많은 억압의 형태들과 연결돼있고, 운동의 보수적인 이슬람주의 부분과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의 운동은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억압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고, 이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대한 질문 또한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이 퀴어공동체들에게 나쁜 만큼이나, 우리는 하마스에 주도되는 저항 지도부에 대해 침묵한 채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저항의 권리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하마스의 꿈이 실현된다면, 그곳에선 여성과 퀴어와 주변화된 집단들에 대한 엄청난 억압이 지속될 것입니다.

     

    4. 뮌헨 팔레스타인 연대캠프

     

    뮌헨 팔레스타인 연대캠프는 5월 초부터 거의 중단없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오고 있고, 현재 아마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캠프일 겁니다. 바이에른 주에서, 우리는 특별한 정치적 상황에 놓여있는데요. 왜냐하면 우익 보수정당이 지방정부를 1945년부터 한결같이 집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경통제나 대학에서 학생들의 공동결정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등 권위적인 경향으로 귀결됐습니다. 특히 캠프농성과 학생시위에 대한 탄압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학생들을 “반유대주의 혹은 극단주의적 이유”를 붙여서 대학에서 퇴학시킬 수 있도록, 학생들을 범죄화하는 데에서 지방정부가 주도권을 쥐어왔습니다. 동시에, 바이에른 대학들과 군대 사이에 구속력있는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계획이 시작됐습니다. 캠프농성장이 설치되는 동안에요. 그게 우리가 특정한 어떤 요구들을 만들어낸 이유입니다. 예컨대, 독일연방군(Bundeswehr, 분데스베아)은 대학에서 퇴출시켜라, 라든지, 대학은 순수하게 시민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연구를 수행해야한다, 라든지, 시위의 범죄화를 중단하라 같은 집회와 학문의 자유 등 민주적 자유권의 온전한 실행을 위한 요구라든지 말입니다. 몇몇 정치적 행사들이 최근 몇 달 간에 대학당국에 의해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는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해, 또는 탄압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거의 남겨놓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대학을 노동자와 학생의 통제 아래 둬야 한다고, 그래서 소수의 사람들이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토론할지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매우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요소는, 우리가 연대캠프에서 발견한 노동자의 주도성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실로 자본주의 아래에 있는 계급, 전쟁에 맞선 투쟁에서 무기공장을 점거하고 항구를 봉쇄하는 등 가장 정치적인 힘을 가진 계급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는, 하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매우 노조관료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고, 이 노조관료들은 친시온주의 노선을 따르고 팔레스타인에 관한 어떤 정치적 요구도 계속 추방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무기가 아니라 의료를”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위한 노동자들”이란 조직을 설립한 이유입니다. 노동조합 안에서 지도부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요. 우리는 예컨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노동조합원들에게 서명을 받는 식으로, 이를 실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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