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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을 만나다#4]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사회를 바꿔야한다고 생각해요" 레어…

기사입력 2025.07.18 11:28 | 조회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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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내란 이후,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는 많은 '말벌동지'들을 만났다.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된 뒤에도 많은 ‘말벌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노동조합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기도 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을까? 그 전에 이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왜 광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대오에 섰을까?


    지난 5월 19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으로서 고공농성을 엄호하던 레어동지를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대선시기에 진행했던 인터뷰지만, 이재명 정부가 시작부터 내란 장관을 유임하고, 동성애 혐오자 김민석 국무총리와 같은 문제적 인사들을 권좌에 앉히고, 기후위기와 전쟁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K-방산 확대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외치는 지금, 인터뷰에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광장에서 우리가 외쳤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대선시기 민주노총 지도부는 중집에서 민주당 지지안건 통과를 시도했고, 이미 전현직 간부와 단위노조의 민주당 지지가 줄지어 벌어졌다. 민주노총을 정부에 묶어두는 거간꾼 역할을 하기 위해 발탁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영훈은, "보수양당과 일체의 협력을 금한다"는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무색하게도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타이틀을 자랑거리처럼 얘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계급투쟁의 기관으로 재편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다시 상기해본다.

     

     

    12·3 내란사태 이전에도 사회의제나 활동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주로 어느 방면에서였나요? 집회에 참여해본 적이 있으셨나요? 혹은 아예 없으셨나요? 처음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내란 전에도 윤석열 탄핵 관련 집회들이 있었잖아요. 당시에는 윤석열에 대해서 압박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데, 촛불행동 집회 말고는 갈 수 있는 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촛불행동 집회에 참여했었어요. 그거 말고는 따로 더 집회를 나가거나 그랬던 건 없었던 것 같아요. 내란 이후는 계속 비상행동 집회에 혼자 갔었어요. 누구랑 같이 가는 건 좀 신경 쓰여서 혼자 다녔었어요.

     

    윤석열 탄핵된 4월 4일날에 한화빌딩 앞 집회에서 간호법과 관련해서도 발언 때 언급하셨었잖아요. 저는 그걸 듣고 ‘이전에 간호법 제정 운동에 참여하셨었나’ 생각했었어요.

     

    그건 아니고요. 솔직히 좀 비관적인 생각이기는 한데, 저는 간호사가 단결하는 게 되게 힘들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일하는 것도 힘들고. 물론 안 힘든 노동자가 어디 있겠냐만, 힘들고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박혀 있고요. 노조에 들어가서 목소리 내는 것을 되게 귀찮아해요. 그런 걸 보면서 그냥 혼자 답답해 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어디 단체에 들어가서 목소리 낼 수 있었겠지만 안했고요.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도, 그냥 막연하게 간호사의 현실이 부당하고,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라는 걸 생각만 하고 있었어서, 그냥 그때 발언했을 때도 알리고 싶었어요. 간호사들도 이런 법의 제정이 필요하니까 한번 알아봐줘라, 간호사가 좀 힘들다라는 거 한 번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 발언했었던 거고요.

     

    저는 간호사 관련한 단체에 들어가거나 그러지는 못했었어요. 탄핵광장에서 보건의료봉사를 한게 간호사로서 했던 유일한 일이에요. 많이 비관적이죠. 이번 탄핵 정국 때에도 대한간호협회에서 성명서를 낸 것도 없었어요.

     

    간호사는 조직력이 왜 없을까요? 병원에서 가장 많은 게 간호사거든요. 간호사들이 제일 많은데도 불구하고, 대우를 못 받고 있으면서도 그냥 안에서만 맴돌아요. 이거를 어디에 얘기하거나, 단결해서 파업을 한다던가 이런 거를 못해요.

     

    이유를 생각하자면, 일차적으로 환자 때문이겠죠. 우리가 이렇게 힘든 거를 환자들도 알 수 있도록, 우리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를 인식시키려면, 간호사들도 뭔가 행동을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이 커요. “그럼 우리가 나가버리면 환자는 누가 케어하느냐” 거기서 아직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그거를 넘어서야 뭔가 전진될 수 있는데도 아직 그거는 좀 힘든 것 같아요. 그걸 하기 위해서는 가장 큰 단체인 대간협에서 뭔가를 해야 될 거 같은데, 그들도 되게 보수적이라 아직은 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때 처음 얘기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간호사라는 걸. 대단한 건 아니지만요…

     

    처음엔 촛불행동 쪽 집회에 참여하셨다고 했잖아요. 언제, 어떤 계기로 거통고나 세종호텔, 이런 투쟁하는 노동자들 집회하는 데에 오시게 됐나요?

     

    원래도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 사회가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히 부조리하잖아요. 저는 부조리를 느끼지만,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 반복됐었거든요. 그런데 12월 7일 날 국회에서 양경수가 얘기했던,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 진짜 뭔가 … ‘멋있다’. ‘되게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었어요. ‘이거 뭔가 될 것 같다’ 라고 생각해서, ‘이제부터 집회나갈 때 무조건 민주노총 깃발 따라다녀야지’ ‘그럼 노조분들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그 뒤론 계속 민주노총 깃발, 금속노조 깃발만 따라다녔어요.

     

    거통고에 연대하게 된 건 무지개 조선소가 컸어요. 그 전까지는 2022년 파업 투쟁으로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어요. ‘어떤 노동자가 케이지 안에 들어갔다’ 라는 것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그게 거통고인 줄은 몰랐거든요. 그냥 그런 투쟁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죠. 그런데 그게 거통고였고, 처음에 무지개조선소에 왔을 때는 그렇게 큰 투쟁을 하고 있는 지도 몰랐었던 상황이었고, 되게 죄송했죠. ‘내가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왔구나’ ‘이 프로젝트도 하나의 투쟁인데, 나는 너무 놀러 왔네’ 라는 생각이 되게 컸어요.

     

    그래서 ‘나는 늦게 온 만큼, 대화도 잘 해보고, 잘 알아가 보자’라는 마음이 되게 컸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거통고에 연대하면서 투쟁하게 됐고요. 세종호텔도 그 전까지는 솔직히 진짜 몰랐거든요. 거통고에 연대하기 전까지도요. 저는 박근혜 퇴진 광장 때 진수동지가 고공에 올라갔던 줄도 몰랐어요. 핑계긴 한데, (고향인) 제주도는 정말 정보량이 적거든요. 큰 것만 알 수 있어요. ‘박근혜 퇴진 광장 집회에 몇 명이 모였다’ ‘어떤 의원이 왔다’ 이런 정보만 있었지, 솔직히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다는 건 되게 축소시켜 놓잖아요. 그래서 저는 몰랐어요.

     

    그래서 그것도 또 너무 죄송한 거예요. 저는 모든 연대의 마음의 시작에는 죄책감이 커요. 이들은 진짜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제주도에 있다는 핑계만 대고, 분명히 찾아봤으면 알았을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게을러서요. (어떻게 모든 걸 다 알겠어요) …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 알았다는 게 되게 죄송했었죠. 세종호텔에도 솔직히 자주 가진 못했잖아요. 그거는 아직도 좀 죄송하죠.

     

    박근혜 퇴진 정국 때 제주도에 살고 계셨어요?

     

    그때 학생이었어요. 그땐 제가 한창 바쁠 때여서…(간호사) 국가고시도 준비해야 되고 … 보세요 제가 이렇게 핑계를 댄다니까요.

     

    그래도 시험은 쳐야죠, 그래야 간호사가 되잖아요.(웃음)

     

    아무튼 그때는 정말 죄책감이 컸어요. 되게. 그때 참여했었던 시민들한테 정말 감사했죠. 제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요. 윤석열 파면된 날에 제가 정말, 친구들이 이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던 말이 있었어요. “레어야 고생했다” 이 말 정말 듣기 싫었거든요.

     

    이유는 너무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것 같아서요. 남의 일이 아니잖아요. 이 내란이 그 당시에 계엄이 터지고 달려갔었던 시민들 덕분에 막아졌고, 더 퍼지지 않은 거잖아요. 그래서 막아진 거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데, 내란이 종식이 되니까 되게 별거 아닌 걸로 생각을 하는 … 가끔 그들과 대화를 하면 좀 제 3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어요.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몇몇 친구들과 집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게 딱 한 번이었거든요. 어쨌든 내란이 길어지면서 그들도 지쳤겠죠. 그 뒤로 제가 몇 번 가자고 했는데, 안 가겠다고 하는 얘기 들으면서도 좀 속상했는데, 그걸로 끝났어요. ‘내가 열심히 해야지’ 라고 생각을 했지만, ‘수고했다’라는 말만은 듣기 싫었거든요.

     

    제 주변에 집회에 참여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제주도에서도 분명 민주노총이나 비상행동 주최로 집회를 했단 말이죠. (제주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기라도 참여해라”라고 말해도 안가요. 왜 안 가냐고 하면 일이 많대요. 알겠다고 했어요.

     

    레어동지는 언제부터 서울에 살았어요?

     

    3년 전에 왔어요. 서울은 꼭 오고 싶었거든요. 제주도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주도는 커뮤니티가 너무 좁아요. 말이 너무 잘 퍼지고요. 주변에 가족들 지인이 너무 많아요. 제 행동을 되돌아봐야하고, 조심해야하고. 물론 서울에서도 그러긴 해야 되지만요.

     

    제주도는 그게 좀 많이 심했고요. 제가 언제 마음을 먹었냐면, 병원에서 일하면서, 그냥 환자 A였는데, 제가 그 환자를 막 돌보다가, 그 환자가 갑자기, “근데 너 000 딸 아니냐?” 하는 거예요. “네 맞는데 누구세요?” 하니까 “아 나 000 친구 누구야” 하는 거예요. 그때 ‘빨리 벗어나야지’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버리면 간호를 제대로 못 해요. 신경쓰이니까요.

     

    물론 제가 뭐 간호에 큰 뜻이 있고 그러진 않거든요. 간호는 제 성격이랑 안 맞아요. 어쨌든 그때 진짜 크게 마음 먹었고, 그래서 떠나오게 됐습니다.

     

    12월 3일 내란 터지기 전과, 지금의 레어 동지를 비교해 보면, 내란사태를 거치면서 뭔가 변한 게 있나요?

     

    일단 가볍게 얘기하면, 야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 물론 경기 찾아보고 분노하고 그러긴 하는데요. 제가 그 전까지는 야구 시즌만 기다리며 살았던 사람이거든요. 쉬는 날마다 야구장 가고, 잠실에서 게임하면 무조건 가고요.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그 다음, 저의 취미 생활을 다 뒤로 미룬 거요. 원래 책 읽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런데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사색할 시간이 필요한데 저는 지금 그럴 수 있는 조건이 없잖아요.(웃음)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영화도 못 본지 오래됐고, 공연 보는 것도 좋았는데 공연도 못 봤고. 그건 뭐 가벼운 변화인 거고요.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너무 많은 투쟁장들을 알게 됐고, 부조리를 너무 더 격하게 알게 됐어요. 그 차이가 제일 큰 것 같아요. 저는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분노만 하고 있었거든요. 저의 상황에 한정돼서요. 간호사면 간호사, 여성이면 여성에 대해서 그냥 한정적으로만, 분노만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저의 범위를 더 넓혀서, 간호사 말고 다른 노동자들, 퀴어와 소수자들로 나의 범위가 더 넓어졌고, 알게된 만큼 그들을 바라보게 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겠죠. 그 전까지는 남이었는데 지금은 동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고요. 저는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이들을 알게 된 이후에는, ‘내가 너무 곱게 자랐구나’ 싶었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지혜복 선생님 투쟁장에 갔을 때 발언을 하는 동지들을 보면서, ‘나는 학교를 정말 순탄하게 다녔구나’라는 생각도 하게됐고요. 그리고 간호사는 면허증만 따면, 이력서 내면 별로 어렵지 않게 병원에 들어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쉽게 사직서를 내고 나올 수 있는 여건도 돼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에 대해서 계속 분노, 아니 분노도 아닌 것 같아요. 이들과 비교하면 그냥 짜증만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듣고, 이들이 처한 상황을 들으면서, ‘난 도대체 뭐에 분노를 하고 뭐에 짜증이 그렇게 났을까?’ ‘이들은 더 힘들고 더 안 좋은 조건에서 더 심한 탄압을 받았었는데, 넌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렇게 사회에 불만이 많았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정말 나 곱게 자랐네’ ‘그냥 막연한 불만만 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제 자신한테 짜증이 많이 났었죠.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당당한 거통고 조합원이 되셨군요.

     

    맞아요. 근데 진짜 거통고지회에 가입하기 전까지도 정말 많이 고민을 했었거든요. 조합원 동지들이 얘기하는 것과는 약간 고민의 결이 다른데요. 처음에 조합원이 됐을 때 ‘내가 여기 와서 뭘 할 수 있지?’ ‘내가 뭘 도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이 조합에 가입해서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 때문에 가입할지 말지 갈팡질팡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뭔가 이제는, 생각을 정리해서 잡았고, ‘아 이렇게 하면 같이 싸울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좀 하게 돼서요. 지금은 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아직도 조합원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기는 한데요, 일단 제 자리에서 열심히 싸워야죠.

     

    저는 어디에 제 목소리를 크게 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냥 옆에서 누가 막 얘기하면 ‘맞지 맞지’ 맞장구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머릿속에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어디 가서 막 발언하고 그러는 건 제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탄핵 정국을 지나고 거통고에 연대를 하게 되면서 같이 싸우고, 조합원이 되고, 발언을 한 두 번씩 하게 됐는데, 이런 게 저의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내란 사태 이후에 거통고를 만나면서, 그냥 ‘이런 곳도 싸우고 있네’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잖아요. 무지개조선소 왔다가 그냥 잘 참여하고 갔을 수도 있는데, 왜 계속 이렇게 같이 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투쟁을 알게 되었고요. 그게 가장 컸고요. 두 번째는, 나도 노동자니까,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거통고 투쟁이 그들만의 투쟁으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노조법 개정) 의제를 갖고 와서, ‘이거를 개정하라’는 요구가 있었잖아요. 저는 이게 정말 컸어요. ‘이들은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고, 모든 노동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투쟁을 하고 있구나’ ‘그러면 나도 노동자니까 같이 싸워야지’ 그래서 했던 것 같아요. 

     

    노조법 2,3조 개정이 거통고만을 위한게 아니니까요. 

     

    맞아요. 노조법이 개정되면, ‘간호사도 파업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그냥 막연하게 생각해 봤어요.

     

    물론 노조법 개정 자체에는 그런 내용은 없지만…혹시 모르잖아요. 간호사 파업했다고 손배 때릴지도 모르니까요. 뭔가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나왔던 것 같아요. 궁금해서요. 이들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어떻게 싸울 예정인가. 그게 궁금해서 계속 나왔는데 지금의 제가 됐어요.

     

    고맙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볼게요. 결국 윤석열은 노동자민중의 이름으로 파면을 선고받았는데요. 윤석열 파면 광장도 일단락되며 퇴진 이후를 향해가는 사회대개혁의 광장이 새로이 열렸죠. 개인적으로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혹은 파면 이후 조직된 노동자 운동(민주노총)에 바라는 점, 또는 조직된 운동(민주노총)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길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민주노총에 한정돼서 얘기하는 아쉬운 점은 아닌데요. 트위터에서도 그 얘기 했었잖아요. 파면을 위해서라면 ‘서로 머리채 잡고서도 광장 나가서 싸운다’ 저는 그게 되게 컸거든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서로 막 갈라치기를 하려고 하고, 모 정당 지지자들이 우리가 노동의제에 대해서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옆에서 비꼬고 하는 게 저는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 모습이 저는 한국 사회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도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될 예정인데도, 노동의제에 관련해서는 되게 등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가야 될 길이 많이 멀었구나 싶었어요.

     

    그때 좀 많이 안타까웠어요. 넓게 보지 못하고 그냥 그 당만 지지하는 모습이 좀 안타까웠어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저는 그렇게 (무한히 지지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무한히 채찍질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지하는 건 좋긴 한데,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 되는 게 정말 진짜 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해야 발전이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고 그냥 무조건적인, 뭔가 팬클럽 같은 모습을 보면서 ‘큰일 났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민주노총에 바라는 점은요, ‘모든 사람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어떻게 체감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노조에서 외치는 이 의제들이 남의 일이 아니고 나의 일이라는 걸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가’가 가장 큰 쟁점이 될 것 같아요.

     

    민주노총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가장 큰 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조합원만 노동자가 아니잖아요. 지금 여기(카페)에서 알바하는 사람들도 다 노동자고, 여기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도 다 노동자인데…거기서 (사람들이) 벽을 치는 걸 보고 ‘아 이거 쉽지 않겠네’ 싶었어요. 이걸 어떻게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가 민주노총에게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러게요. 특수고용, 플랫폼까지 다 합해 2천만, 2천5백만 노동자라고 하는데, 민주노총은 110만이고, 전체의 5%정도 되는 건데요. 사실 노동자지만 노동자로서 스스로를 조직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지요.

     

    간호사만 잘 코꿰면 될 텐데.(웃음)

     

    레어 동지 주변 간호사 분들 중에 노동조합에 가입한 분들은 없나요?

     

    없어요. 아, 생각해보니 제가 거통고 들어오기 전에 잠깐 조합에 가입한 적 있어요. 병원에 다녔는데 거기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었거든요. 제 첫 노조 활동은 거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잘 모르니까… 물론 노동조합이 필요한 건 알고 있었고, 그래서 가입한 것도 맞아요. 그런데 뭐 하는 게 없었어요. 제가 그때는 신규였어서 얘기할 수 있었던 건 없긴 했지만…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양경수 위원장을 제가 뽑았네요.

     

    아 그래요? 투표도 했었어요?

     

    마침 제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그 해인가 그 다음 해에 위원장 선출 투표를 했었을 거예요. 근데 저는 누가 누군지 잘 모르잖아요. 그 때 노동조합에 되게 진심인 선임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한테 ‘저는 누가 누군지 모르는데요. 누구 뽑아야 돼요?’ 하니까 ‘이 사람 뽑아’. 해서 뽑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양경수 위원장이더라고요. 정근식(서울시 교육감)도 제가 뽑고, 양경수도 제가 뽑았어요.

     

    그래서 더, 노동자지만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노동자로 조직할 건가 이런 고민이 많군요.

     

    좀 하기 힘들 것 같긴 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음, 그래서 말인데요…다음 질문이, ‘독자적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인데요. 전진, 민주노동당으로 이번에 출마한 분들, 고공3사 투쟁사업장들, 비정규직 이제그만 등 다 생각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정당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같은 자본가 정당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데에서는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자본가계급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동자로서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전에는 ‘거대 정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라도 노동의제를 통과시켜야한다’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지금은 그들도 ‘노동자를 어떻게 탄압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함에 있어 자본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서요. ‘그전에 내가 생각하던 건 말도 안되는구나’ 라고 느꼈고요. 그 때는 잘 몰랐으니까, 법안 같은 걸 통과시키려면 그들(거대정당)의 도움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런 생각은 아예 없어졌고요. 지금은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사회를 바꿔야한다’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그러려면 조직을 잘 해야겠죠. 그리고 법안에 머무르는 투쟁이 아니라, 법을 넘어서는 투쟁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하고요. 법을 바꾸는 것도 자본이 만든 하나의 선을 넘는거잖아요. 그런, 선을 넘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선을 넘는게 많이 어렵더라고요.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려면 민주노총이 그 분위기를 만들고 가장 앞장서야하는데, 지금 제가 바라본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그 선넘는 투쟁을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본이 만들어놓은 선을 넘는 투쟁을 조직노동자들의 대표체인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하는 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레어동지가 말씀하신,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더 자각하도록 만들어야 된다’라는 문제의식을 푸는 열쇠도 거기 있는 거 같아요.

     

    일반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는 사실 노동조합이란 ‘진지’를 갖기도 어려운 조건에서 살아가잖아요. 반면 대기업, 대공장, 공공부문 등 이른바 전략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그러한 조건들 덕에 노동조합을 하고 있는데…그 힘을 전체 노동자계급을 위한 요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민주노총이 먼저 선을 넘어서 투쟁해야 미조직 노동자들도 같이 선을 넘어 스스로를 조직화할 수 있는 길이 더 열릴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급투쟁을 얼마나 크게 벌여내느냐에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것도 더 진전될 수 있는 것 같고요. 계급투쟁과 동떨어진 어떤 정치세력화, 또는 계급투쟁과 동떨어진 진보정당 운동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다른 질문으로 가볼게요. 광장에서 ‘사회대개혁’이라고 하는 걸 다들 엄청 얘기를 했는데요. 민주당도 사회대개혁 얘기하잖아요. ‘빛의 혁명’, ‘광장의 후보’라 하면서. 그런데 그러면서 ‘AI산업 진흥’, ‘반도체 특별법’ 하겠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어떻게 사회대개혁인지.

     

    그러니까요. 그래서, 동지가 생각하는 사회대개혁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대화를 나눴다시피 저는 일단 노동의제 관련한 개정,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광장을 바라볼 때, 많은 시민들이 본인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임을 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안타까웠거든요.

     

    그리고 사회대개혁에서 노동 관련한 의제가 개혁이 된다면 다른 의제들에도 큰 발판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노동자가 소수자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다수자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일단 노조에 가입하고 조합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긴 하죠. 그런데 이 소수라고 여겨졌던, 노동조합이 사회대개혁을 통해 뭔가 발판이 마련돼 진보하게 되면, 우리가 같이 싸웠던 동지들의 다른 의제들도 같이 딸려서 전진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사회대개혁을 얘기할 때, 노동의제를 가장 먼저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게 해결이 돼야 다른 것도 다 같이 끌고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이런 것들도 말이죠.

     

    맞아요. 그냥 나이브한 생각인 것 같긴 한데 그냥 막연하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조합원, 노동자, 성소수자, 퀴어, 장애인 … 계속 만났던 동지들이잖아요. 뭔가 하나라도 해결되면, 같이 결합을 했었으니까. 다른 거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다같이 목소리를 내서, 진보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이 질문을 보고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저도 공감이 되네요. 노동자 운동이 해야 될 역할이 큰 것 같아요. 노동자는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라는 말에 저도 공감하는데, 노동자계급이 실제 인구적으로도 다수고, 사회의 온갖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고 유지시키는 노동을 하니까, 노동으로 모든 게 만들어지고 하니까. 거기에 잠재된 노동자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그 힘을, 차별과 억압들을 없애 나가는 데 사용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조합주의라고 하죠. 자기 조합의 협소한 권리만 요구하는 식으로, 노동귀족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 않으려면 정말 모두의 해방을 위한 운동을 만들어 가야 되는데, 그런 운동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다 중요하지만, 노동자계급에게 요구되는 과제라는 게 있고, 책임이 큰 거 같아요.

     

    저는 전장연 동지들의 투쟁을 보면서, 매번 쫒겨나는 게 너무 화나고 슬프기도 하고…진짜 ‘파업으로 지하철을 한 번 멈출 수 있으면 얼마나 큰 연대가 될까’ 생각을 해보거든요. 

     

    맞아요

     

    그런데 현실은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전장연 지지 입장도 제대로 안내고 그러니까요…레어 동지가 전에 SNS에 쓴 글에서 본 것 같은데, ‘민주노총의 현실을 알았지만, 이젠 이걸 고쳐 쓰는 데부터 시작해야겠다’ 대략 이런 말이었는데, 공감이 됐어요.

     

    진짜 많이 답답해요.

     

    그래서 연관된 질문인데요. 레어 동지는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 갈 생각이신가요?

     

    저요?(웃음) 일단 저의 계획은, 거통고 투쟁이 마무리되면, 산업안전기사 공부를 할 거예요. 필요할 것 같아서. 괜찮죠?

     

    그렇군요. 너무 멋있잖아요.

     

    지금 그냥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일단 이 투쟁이 끝나고 나서의 일이기 때문에…

     

    좀 뭔가, 참견을 하고 싶어요. 제가 뭔가 전문적으로 자격증을 따서 열심히 말하고, ‘이건 이래서 잘못됐어요’ 라고 하면 뭔가 열심히 ‘긁을 수’ 있지 않을까. 자격증 있는 사람이 얘기하면은 더 타격이 있지 않을까…

     

    예컨대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뭐가 문제인지 훨씬 자세하게 밝히며 할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그래서 그 생각으로 그렇게 갈 것 같아요.

     

    그렇군요. 레어동지는 이미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웃음)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에 혹시 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제가 유일하게 그거를 못 썼어요. 여기만 빈칸이에요 지금. 무슨 말을 해야될지…전진이라는 단체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더 세력을 넓혔으면 좋겠어요. 더 열심히 뛰세요.(웃음)

     

    네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 같아서요. 어쨌든 우리나라에는 아직 ‘사회주의’ ‘공산주의’ 얘기를 하면 빨갱이 소리 듣잖아요. 그런 거에 대한 인식 변화의 첫 발자국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정말 필요한 단체 같아요. 기대감이 아주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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