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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을 끌어내리고 이주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힘을 모으자!
사진=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지난 11월 8일 미등록 이주아동 출신 32살 노동자 강태완씨가 전북 김제의 특장차 생산업체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에서 10t짜리 건설기계 장비와 굴착기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어머니는 경찰에게 붙잡힐까 두려워 주검이 안치된 병원 밖을 맴돌며 울었다. 너무나 비극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바늘구멍은 뚫었지만, 빛은 없었다
강태완씨는 1998년, 6살에 몽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와 23년간 이주아동, 이주청년으로 살았다. 그는 체류자격이 없다는 불안감을 안고 청소년기를 버텨왔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언제든 강제출국될 수 있다. ‘재학생 강제퇴거 유예’ 지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진학도 취업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강태완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간 비자 없이 이삿짐센터와 공장에서 일하며 버텨왔다.
2021년 몽골로 자진출국한 후 2022년 단기 체류 비자로 한국에 다시 들어온 강씨는 구체신청을 거쳐 유학(D-2)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기간에 겪은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몽골 정부는 유학비자는 한국에 가서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한국 정부는 몽골에서 유학비자를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여러 활동가의 도움으로 간신히 유학비자를 얻고 전문대를 나온 강태완씨는 김제의 HR E&I에 취업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정된 인구감소 지역에서 5년 이상 거주’하면 취업비자를 건너뛰고 곧바로 거주비자를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역특화형 비자(F2R)로, ‘5년 거주 의무’라는 족쇄가 있는 비자이지만 강태완씨는 이제야 제대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는 입사 8개월 만에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자본은 이윤축적을 위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전 세계 노동자민중을 착취해 왔다. 자본이동의 자유에 비하면 노동자들은 이동의 자유가 너무나 좁다. 이주민들은 개별 국가들이 설치한 높은 장벽과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정주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강태완씨도 힘겹게 이 높은 장벽과 좁은 관문, 즉 ‘바늘 구멍’을 뚫었다. 그런데 애초에 이렇게 높은 장벽과 좁은 관문이 왜 필요한가?
이러한 정부의 이주(노동) 정책은 오로지 자본가들의 편의를 위해서 도입됐다. 그렇기에, 정부는 이들에 대한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덕지덕지 갖다 붙였다. 고용허가제 안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대표적인 예다.
바닥 향한 경쟁 막아내자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아동 조건부 구체대책이 2025년 3월에 끝난다. 강태완씨는 사고가 나기 몇 달 전 구제 대책을 끝내지 말라는 캠페인 지지 영상을 촬영했다. 15년 이상 체류, 중·고교 재학, 고등학교 졸업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임시체류자격(G-1 비자)를 부여하는 제도다. 모든 미등록 이주아동의 차별 없는 삶을 위해서는 구제대책의 상시화만이 아니라 ‘체류기간, 공교육 이수’라는 족쇄도 없어져야 한다.
유족 측은 브레이크 기능도 없는 장비를 경사로에서 후진시키면서 뒤에 고소차들까지 줄지어 세워둔 것을 끼임 사고의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사고의 원인을 태완씨에게 돌리며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재발방치 대책과 산재처리 협조 요구도 묵살하고 있다. 이주운동 단체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 12월 5일 HR E&I 본사 앞 규탄집회와 원광대병원 앞 추모제를 열었다.
이주민과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선주민과 정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열악한 현실이 노동자 민중을 바닥 향한 경쟁으로 내모는 강력한 압력이기 때문이다. 모든 미등록 이주아동의 합법화,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위해 힘을 모으자.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쟁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