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액이 삭감됐다는 말이 한두 군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뼈가 드러나도록 앙상하게 잘려 나간 곳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권리 예산이 그것이다. 반면 전체 예산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방위비는 대폭 증가했다. 말로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권리를 빼앗아 국방비에 몰아준 꼴이다.
이를테면 어린이 학교 급식 예산까지 삭감해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A 같은 무기 구입비로 야무지게 털어냈다. 이 예산은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F-35A를 생산하는 미국 록히드마틴 항공사 계좌로 따박따박 입금된다. 심지어 정부 총지출 증가율이 5.1%에서 2.8%로 하향 조정됐지만, 국방예산 증가율은 4.4%에서 0.1%p 더 늘었다. 그러면 잘려 나간 곳은 어디일까?
교육·어린이·돌봄 사업 예산 삭감
가장 많이 털린 예산은 작년에 비해 6조 3,725억 원이나 감액된 교육부 예산이다. 유·초·중등교육 예산은 무려 7조 1,714억 원(전년도 대비 8.9%)이 삭감됐다. 초중등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2023년 대비 6조 8,748억 원(전년도 대비 9.1%)이 감소했고,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는 2,594억 원(전년도 대비 7.5%)이 감액됐다(참조 : <교육부 내년 예산, 유초중등 공교육비 '역대급 삭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크게 삭감되면서 당장 내년부터 학교급식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무상급식 체계가 교부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내 돌봄 공간 조성과 아침·저녁 틈새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다함께돌봄센터 사업 예산도 2023년 22억 7,000만 원에서 전액 삭감됐다. 올해 491억 4,000만 원이 편성되었던 어린이집 확충 사업 예산도 416억 2,000만 원으로 축소됐다.
이외에도 교육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교육 관련 노동조합 8곳의 사무실 운영 지원에 필요한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참조 : <전교조·교사노조 지원예산 전액 삭감… 소통·협력은 어디 가고?>).
성평등 예산 삭감
성평등 예산 역시 삭감됐다. 여성가족부는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성폭력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 등을 말하는 ‘성 인권 교육' 사업을 내년에 폐지하기로 하고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이 사업에 올해 배정된 예산은 5억 5,600만 원이었다. 양성평등 지원 예산도 2,407억 원으로 2.5% 줄었다.
이외에도 여성가족부는 지난 9월 2024년 예산안에서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해 제출했다. 올해 해당 예산은 총 12억 7,300만 원이었지만, 내년 예산안에서는 한푼도 남기지 않았다. 이 사업이 그나마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준 사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예산 삭감은 현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여가부가 발표한 ‘2022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서도 노동 경험 청소년 가운데 29.5%가 부당 처우를 당한 적이 있었다. 12.6%는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일터에서의 위계, 노동 관련 법 지식 부족 등으로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은 임금체불, 부당해고, 성희롱, 성폭력, 부당노동행위 등 각종 부당한 처우를 당한 청소년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가부가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이유는 고용노동부와의 ‘기능 중복’이다. 하지만 노동부에는 해당 사업에 대한 예산이 전혀 잡혀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을 보면, 고용노동부의 2024년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 사업의 예산은 16억 1,300만 원으로 2023년 16억 2,300만 원보다 오히려 0.6% 줄었다(참조 : <‘당해도 말 못하는’ 청소년 노동자 돕던 단 한 곳, 정부가 ‘뒤통수’?>).
고용노동부는 지난 24년간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등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내년 예산도 올해 12억 원에서 5억 원을 대폭 삭감해 책정했다.
사회서비스원 예산도 삭감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전국 16개 시도 사회서비스원에 대한 중앙정부 지원금을 전액 삭감했다. 또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관련 내년 예산안은 177억 3,100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올해 해당 예산은 302억 1,900만 원이었다. 사회서비스원은 영유아 돌봄, 노인요양 등 돌봄 사회서비스의 민간 의존을 벗어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공공기관이다. 사회서비스원이 진행하는 사회복지시설평가 사업 예산 역시 2023년 61억 5,000만 원에서 2024년 6억 6,300만 원으로 줄었다. 사회복지시설평가 사업 중 지역복지사업평가는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소규모 생활권이 지역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이다(참조 : <[심층기획-2024년 긴축 예산 후폭풍] 쪼그라든 청년 일자리·복지 예산… 고용 충격·취약층 부담 증폭 우려>).
장애인 권리 예산도 역시나 줄어
일명 ‘동료지원가 사업’이라고 불리는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이 사업은 중증장애인을 고용해 이들이 일터에서 동료 장애인을 만나게 하고, 장애인들의 취업과 모임 등을 도와주는 것으로,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 참여 촉진을 목적으로 한다. 노동부는 2023년 23억 100만 원이었던 사업비를 2024년 16억 1,000만 원 수준으로 낮춰서 제출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이를 전액 삭감했다. 2023년 6월 말 현재 전국 동료지원가 수가 187명인데, 이들은 이번 예산 삭감으로 내년부터 실직자가 되는 처지에 놓였다(참조 : <갈수록 줄어드는 장애인 관련 예산, 우리 언론은 어떻게 보나?>).
장애인복지시설기능보강 사업 예산도 263억 3,000만 원에서 236억 원으로 축소됐다. 이 예산은 장애인 복지시설을 늘리고 시설 환경 개선을 위해 쓰인다. 정부는 성과를 보여줄 지표 관리와 집행 실적에 대한 관리를 문제 삼았다. 이와 함께 희귀질환자 지원 예산도 올해 430억 원에서 2024년 296억 원으로 삭감됐다. 희귀질환자 지원 대상자 가운데 2만 명 이상이 저소득자인 터라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과 고통이 더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관련 예산도 전액 삭감
2023년 71억 800만 원이었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2023년 현재 전국 9개소, 소지역센터 35곳이 있다. 이 센터들은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어와 생활법률 등을 교육해 일상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고 임금체불과 산재 등과 관련한 상담을 진행한다. 또한 출산과 자녀 취학 등의 생활지원 활동도 벌인다. 정부는 2024년에 역대 가장 많은 12만 명의 이주노동자를 새로 들이기로 한 상태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에 적응하도록 돕는 인프라는 없애려는 것이다(참조 :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 ‘0원’… 거점센터 사실상 폐지 수순>).
이외에도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보면, 일자리창출지원사업 등 수많은 민생 예산이 싹둑 잘렸다.
그러나 방위비는 역대급
반면 내년도 국방예산은 올해보다 4.5% 증가한 59조 5,885억 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우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방위력 개선비를 모두 17조 7,986억 원 증액했다. 특히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추가로 들여오는 사업을 비롯해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3축 체계' 고도화와 군사정찰 위성 획득을 목표로 하는 ‘425 사업'에 모두 7조 원이 넘는 예산이 편성됐다. 아울러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5K 성능 개량에 246억 원, 한국형 구축함 KDX-Ⅱ 성능개량에 192억 원이 들어간다(참조 : <“병장 봉급 165만 원”…내년 국방예산 59조 5천억 원>).
더욱이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은 인도 뉴델리 주요 20개국,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에 23억 달러(3조 원) 가량을 유무상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역대급 긴축 재정을 편성한 이유를 세수결손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기가 둔화하여 59조 1천억 원이나 덜 걷혔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기업 법인세나 양도소득세, 부가세가 크게 줄었다. 그런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위해 정부는 빚을 내는 대신 칼자루를 쥐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 초기에 발표된 법인세·보유세·상속증여세·금융투자소득세를 비롯한 대규모 부자 감세를 떠올리면, 정부가 쥔 칼자루의 방향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당시 정부가 추산한 법인세(최고세율 25%에서 22%로 인하) 세수 감소액만 5년 간 약 30조 원에 달했는데, 학계에서는 최대 260조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더구나 방위비가 대폭 늘어난 점을 생각해 보면, 정부가 말하는 ‘재정건전성’도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즉 복지비를 줄여 방위비를 늘리는 예산 편성은 오로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아래 미중 갈등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한반도 위기 비용을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수작일 뿐이다. 결국 그들은 겉으로는 중국, 북한, 러시아를 향해 주먹을 치켜올리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노동자 민중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