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성 CEO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의 해방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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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우리는 여성 CEO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의 해방을 원한다!”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건설을 위한 토론회 개최돼

  • 김요한
  • 등록 2022.11.30 09:10
  • 조회수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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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향한전진(전진)이 주최한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건설을 위한 토론회’가 11월 22일 저녁 진행됐다. (토론회 발제문 및 토론문은 기사 하단 첨부파일 목록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여성 혐오를 정치적 지지 기반 중 하나로 삼으려는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망발을 일삼으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강행하려 든다. 그러나 임금 차별, 직장 내 성폭력, 가사‧돌봄의 여성 전가로 인한 경력 단절 등 여성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여성 억압의 사슬은 선명하기만 하다. 전진은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을 결합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변혁적 여성운동을 건설하자는 취지에서 이 토론회를 개최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은 성차별 사례 증언

 


전진의 이영미 동지 사회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먼저 노동현장 여성 노동자 다섯 명의 사례 증언으로 시작됐다. 현재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 중인 세종호텔지부 허지희 동지는 호텔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성희롱 실태를 고발했다. 남자사우나 식당에서 서빙할 때, 전화 교환데스크에서 전화를 받을 때, 객실에 카페 룸서비스를 제공할 때 여성 노동자들은 늘상 “마치 서비스 차지에 성희롱 가격이 포함되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남성 고객들의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은 호텔 임원, 부장과 같은 상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동료 남성 노동자에 의해서도 이뤄졌다. 그러다 여성 노동자가 “나이 든 아줌마”가 되면 그저 호봉이 높아 퇴출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실제로 세종호텔은 고참 여성 노동자들을 룸 어텐던트로 전환배치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용역회사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웠다.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의 남기정 동지는 개인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했던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간호조무사 노동자들은 여성 탈의실이 별도로 없고 비품 도난방지 명목으로 CCTV가 설치된 창고에서 간호복을 갈아입어야 했다. 병원 원장은 CCTV로 노동자들을 감시하다 이에 항의하자 부당한 갑질을 일삼았다. 같은 지부의 강주희 동지는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근무 중 겪는 성차별을 증언했다. 고객들은 여성 상담사에게만 하대하기 일쑤다. “목소리가 예쁘니 얼굴도 예쁠 거 같다”며 성희롱을 일삼아도, 여성 노동자는 그저 볼륨을 줄이는 식으로밖에 대응하지 못한다. 남기정 동지와 강주희 동지는, 개개인이 무력하게 당하지 않도록 여성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함께 사회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변주현 동지는 남성들이 대부분인 중공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다. 남성들도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릴 만큼 노동강도가 센 현장에서, 변주현 동지는 중량물을 여러 번 나눠서 자주 드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사내하청업체에는 여성 탈의실도 없어서 노동조합에서 여성 탈의실 설치를 요구해야 했다. 남성들이 “아가씨가 어쩌다 이 험한 데 있냐, 적당히 하다가 시집 가라”라는 말을 할 때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변주현 동지는, 노동조합 내에서 제대로 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나 성소수자가 겪는 억압도 함께 얘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지엠 부평공장 하청 노동자 박옥이 동지의 현장 사례 증언이 이어졌다. 하청업체는 여성 노동자들을 내보내기 위해, 이들을 일부러 노동강도가 센 라인 조립 공정에 배치했다. 박옥이 동지는 손톱 네 개가 빠질 정도의 노동강도에 고통받으며 자신의 키에 맞춰 작업대를 높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업체는 묵묵부답이었다. 다행히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김태훈 동지 등 동료 조합원들이 항의 대자보를 써 붙이는 등 함께 투쟁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박옥이 동지는 최근 금속노조 인천지부에서 발생한 언어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노동조합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쉽게 밝힐 수 없었던 이유에 공감하게 되었다며 가해자의 사퇴를 촉구했다.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연결 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발제① -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건설로 여성 노동자의 자기 조직화와 계급적 단결을 실현하자!


이어 전진 여성운동위원장 정은희 동지의 첫 번째 발제가 진행됐다. 정 동지는 한국 여성 노동자계급은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며, 고용불안, 성별 직종분리와 여성 직종의 저임금, 채용‧승진‧임금 차별, 직장 내 성폭력과 가정폭력, 출산휴가‧육아휴직 실태, 가사‧돌봄의 여성 전가 등의 여성 억압을 통계 수치를 들어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어 정 동지는 전진이 제안하는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의 지향을 제시하기 위해, 세계 여성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요약 정리했다. 부르주아 혁명의 한계를 비판하며 출현했지만 여전히 부르주아 여성들의 요구에 머물렀던 1세대 페미니즘, 여성해방을 향한 일련의 혁명적 조치를 시행했지만 스탈린주의 반혁명을 거쳐 가부장제의 질서가 복구됐던 소비에트의 경험, 전후 호황기 사회민주주의의 허상을 폭로하고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했지만 서구 중산층 백인 여성의 시각을 넘어서지 못했던 2세대 페미니즘, 신자유주의 구축을 위해 페미니즘을 적극 차용했던 ‘진보적’ 신자유주의에 맞서 반자본주의 지향을 선명히 한 채 세계 곳곳에서 대중적 투쟁을 벌인 페미니즘 제3물결에 대한 분석이 그것이다.


한편 한국의 여성운동은 80년대 기층여성 중심의 체제 변혁 지향 운동의 성격이 옅어지고, 90년대에 들어 주류 여성운동이 탈계급화했다는 특징을 드러낸다. 주류 여성운동은 성폭력, 성차별 문제를 대중화하는 등 일련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여성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는 거리를 둔 한계를 보인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 추진된 성 주류화 정책은 김대중 정부 이후 정권과 자본이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여성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권을 지켜내는 데서 무력했다. 한편 민주노조 운동은 87년 이후 사업장에서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을 증진하기 위한 투쟁을 확대해왔지만, 뿌리 깊은 가부장적 질서와 90년대 중반 이후 확대된 관료주의‧조합주의 질서 속에서 변혁적 여성운동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부족했다.


바로 이 현실이 변혁적 여성운동을 건설하려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이다. 주류 여성운동이 지배체제의 일부로 통합되면서 자본주의 질서를 강화하는 것에 맞서, 또한 일부 여성운동이 자본주의 체제 문제를 회피한 채 가부장제 타파라는 부문운동에 한정돼 있거나 심지어 배타적인 분리주의 경향을 보이는 데 맞서,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는 무엇보다도 여성 노동자를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고자 한다.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는 자본주의에 맞서지 않고서는 여성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여성 노동자의 자기 조직화와 계급적 단결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을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정 동지는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의 실천 과제로 여성 이슈에 대한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적 토론, ‘세종호텔 해고자와 함께하는 성평등 문화제’와 같이 성차별에 맞선 공동 실천, 여성노동자 투쟁 연대 등을 제시했다.


발제② - 노동자계급 속에서 혁명적 페미니즘의 길을 열어가는 ‘빵과 장미’의 도전


이어 두 번째 발제로 전진의 오연홍 동지가 변혁적 여성운동, 또는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의 실제 사례로서 국제 여성조직 ‘빵과 장미’를 소개했다. 2017년 아르헨티나 전국여성대회에 참가한 4,000여 명의 ‘빵과 장미’ 회원들의 모습에서 드러나듯이 현재 이들은 상당한 규모로 활동하고 있지만, 2003년 전국여성대회에 처음 참가할 때만 하더라도 회원 수는 40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고통스런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야만 전 세계 여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성차별을 끝장낼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투쟁했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빵과 장미’ 회원들은 자본주의를 끝장낸다고 해서 곧바로 여성해방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놔두고서 여성해방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빵과 장미’ 회원들은 임신중지권을 위한 투쟁, 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투쟁, 성 소수자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거리에서의 투쟁을 현장에서의 투쟁으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현장에서 모든 노동자와 함께 여성 억압의 현실을 토론하고, 연대인증샷 찍기와 같은 투쟁에서부터 여성파업까지 노동자다운 투쟁을 조직해 나간다.


대다수가 여성인 600여 명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해고한 펩시코 공장 폐쇄에 맞서 “한 명도 더 해고될 순 없다”(“한 명도 더 잃을 수 없다”는 여성 살해 규탄 시위의 구호를 차용한 것)는 투쟁을 조직한 것, 브루크만 투쟁, 사논 공장 투쟁 등에서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을 펼친 것이 그 실례다. 이들은 노동자계급과 분리된 여성운동만의 별도의 전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투쟁의 큰 물결 속에서 함께 전진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전업 활동가, 전문가 중심의 운동을 넘어 여성 파업 등 여성 노동자를 주체로 세우기 위한 실천에 앞장서고, 모든 활동에서 성별을 넘어 노동자 단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빵과 장미’ 운동의 핵심이다.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를 함께 건설하자!


두 발제에 이어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이혜정 동지, 보육노동자 서진숙 동지의 지정 토론이 있었다. 이혜정 동지는 지배계급이 역사적으로 사회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여성을 억압해온 실례를 지적하고, 민주노조 내에서도 성차별 문화 속에서 여성 노동자나 여성 활동가가 밀려난 점도 아울러 지적했다. 서진숙 동지는 어린이집을 예로 들어 ‘12시간 문을 여는 어린이집’이 아동에게 인권도 없고, 보육교사에겐 노동권도 보장되지 않는 곳으로, 육아를 전담하는 여성만 짧게 일하는 단시간 일자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시간 단축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 지적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서 저임금 구조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에 대해, 또 노동조합 내 성차별 문화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발표했다. 여성 차별과 억압의 현실에 대해 함께 더 많이 고민하고 대안적 실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 바로 이것이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건설의 절박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30여 명의 참석자들은 이날 토론회를 시작으로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을 결합한 변혁적 여성운동의 첫걸음을 함께 내디디기로 뜻을 모았다. 착취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갈수록 여성 혐오와 성차별을 강화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서,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는 여성 노동자의 자기 조직화와 계급적 단결을 통해 여성해방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첨부파일 다운로드

  •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토론회 자료집.pdf (2.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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