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우파에 맞서서 승리하는 법: 밀레이에 맞선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에서 얻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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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번역] 우파에 맞서서 승리하는 법: 밀레이에 맞선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에서 얻은 교훈

  • 강성윤
  • 등록 2026.04.27 18:43
  • 조회수 15,170

싸움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지만, 아르헨티나의 병원 노동자들, 교사들, 대학 교직원과 학생들은 자기 조직화, 계급적 독립성, 현장 조직화를 무기 삼아 긴축 프로그램과 예산 삭감에 맞설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맞이한 트럼프는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노동 계급을 공격 중이며, 특히 이민자 공동체, 성소수자, 유색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반격에 나서지만, 흔히 그렇듯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의견이 갈린다.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투쟁가들과 정치 활동가들이 축적해 온 경험은 미국에서 투쟁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왜 아르헨티나를 주목해야 하는가? 한편으로, 아르헨티나에서는 급진적 자유 시장주의를 표방하는 우파 정부의 실험이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움직임은 중심부 국가들의 우파가 정책을 쇄신하는 데 영감을 제공하곤 했다. 이를테면 1970년대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추진한 프로그램은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초기 실험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계급 조직화와 저항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는 곳 또한 주변부 국가들이다. 특히 아르헨티나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혁명적 좌파연합 중 하나가 존재하며, 계급투쟁과 사회운동의 역사가 풍부하기 때문에 집단적 저항의 기억, 노동계급의 투쟁방법에 대한 신뢰, 직접행동이라는 전통을 남겨 놓았다.​​

 

밀레이, 부르주아 야당, 좌파

 

먼저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주요 정치 행위자들을 개괄해 보자. 정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하비에르 밀레이는 매우 연극적인 인물이다. 논쟁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였던 그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옹호하면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모습으로 텔레비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밀레이는 자신을 정치적 아웃사이더로 브랜딩했지만, 그의 인기가 높아진 데는 미디어 재벌 에두아르도 에우르네키안의 힘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나아가 2023년 대선 승리는 낡은 정치 브로커들과 극도로 실용주의적이고 원칙 없는 권력 협상을 벌인 결과였다. 그럼에도 밀레이의 담론과 정책이 워낙 기이했고 지난 20년간 나라를 지배해 온 두 연합(키르치네르주의와 “변화를 위한 연합(Juntos por el Cambio)”)에 맞서는 “아웃사이더”를 자임했기 때문에, 그는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후에도 반기득권 수사의 혜택을 계속 누렸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그의 경제 노선은 본질적으로 정부 긴축, 규제 완화, 자본가계급 특혜 정책의 새로운 판본이며, 노동자조직 악마화와 노동자투쟁 탄압을 수반한다. 밀레이와 그를 지지하는 운동을 낳은 국내적인 토양이 분명히 있지만, 이것이 일국에 국한된 현상은 결코 아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도널드 트럼프,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로 이어지는 전 지구적 우파 정부 물결의 일부다. 하비에르 밀레이는 이스라엘 정부와 가자에서 벌어지는 집단 학살의 확고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밀레이에 대항하는 부르주아 야당으로는 중도 및 중도좌파 정치인들을 포괄하는 잡탕과 같은 페론주의 연합, 그리고 “변화를 위한 연합”의 중도우파 잔여 세력이 있다. 후자는 두 정당으로 분열되었는데,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적이며 중산층 기반인 급진시민연합(UCR)과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의 공화주의제안(PRO)이다. 밀레이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바로 이 두 주류 정당을 맹공격함으로써 담론을 형성했다. 이들은 곧 “정치 카스트”였다. 그러나 밀레이는 결선 투표를 며칠 앞두고 마크리와의 거래를 통해 내각의 몇 자리를 내주고 마크리 지지자들의 표를 확보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2023년 PRO의 대선 후보였던 파트리시아 불리치로, 이후 밀레이 정부 치안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페론주의는 빅텐트 조직으로, 후안 D. 페론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개발주의를 느슨하게 계승한 정치 이념을 내세운다. 키르치네르주의는 세기 전환기 이후 페론주의 내에서 지배적 분파로 자리 잡은 중도좌파 정치 기획으로, 처음에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그의 사망 이후에는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가 이끌었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집권했으며 2019~2023년에는 더 광범위한 (비키르치네르주의) 페론주의 연합의 일부로서 다시 권력을 잡았다.

 

키르치네르주의는 아르헨티나 현대사에서 가장 심각했던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딛고 부상했다. 그 위기는 2001년 민중 봉기로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대통령이 축출되며 막을 내렸다. 이런 배경 때문에 키르치네르주의는 대중운동과 전투적 노동계급에 많은 부분에서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정치적 지지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포괄적 복지 정책과 일정 수준의 경제적 재분배를 실시했으며, 사회운동과 인권 단체를 포섭했다. 키르치네르주의의 핵심 과제는 국가 제도의 정당성을 회복하여 사회 질서를 복원하고 자본 축적을 위한 조건을 재설정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임기 말인 2015년에, 그리고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키르치네르 행정부 시기인 2019~2023년에는 더더욱, 빈곤율이 치솟았고 인플레이션율도 폭등했으며, 이들의 정치 기획에 대한 환멸감이 모든 사회 계층에 깊숙이 침투했다. 밀레이의 집권을 이해하려면 키르치네르주의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2015~2019년 마크리의 과도기 정권이 (미온적으로나마) 노동운동을 길들이려 시도하고 단편적 긴축(마크리는 충격 요법에 대비되는 “점진주의”를 내세웠다)을 실시하여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부양하려다 실패한 점도 기억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의 반자본주의 좌파는 대다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중요도와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한다. 2011년 창설 이래 좌파노동자전선(FIT-U)은 민중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FIT-U는 현재 연방 의회에서 5석, 주 의회 및 지방 의회에서 수십 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노동계급의 계급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쟁취한 것이다. 이 같은 계급 독립 정치는 좌파전선 원내 교섭 단체가 밀레이 정부의 모든 조치에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반대한 유일한 교섭 단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나아가 소속 의원 전원이 교사 수준의 소득만 자신이 갖고, 나머지 세비는 노동자 투쟁과 사회적 투쟁에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

 

좌파전선의 유명 인사들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나란히 서 있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이를테면 전 대선 후보이자 연방 의원인 니콜라스 델 카뇨와 미리암 브레그만은 모두 좌파노동자전선 소속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당원으로, 의회에서 정부의 탄압을 끊임없이 고발하는 동시에 현장 투쟁에 연대한다. 이들이 노동운동가들, 연금 삭감에 항의하는 퇴직자들, 병원 해체에 맞서는 의료 노동자들과 함께 최루액을 맞고 후추 스프레이를 맞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좌파노동자전선의 활동 무대는 의회로 국한되지 않는다. 소속 활동가들은 전국 수백 개 노조 지부에서 지도자나 조직가로 활동하고, 수십 개 대학에서 조직을 이끌며, 강력한 여성운동 조직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대열에 속해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그리고 특히나 노동운동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좌파노동자전선 주요 단위인 PTS 활동의 핵심이다.

 

행위함으로써, 또 행위하지 않음으로써 아르헨티나의 정치 상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내 행위자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노조 관료들이다.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은 역사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축에 속했으며, 400만 명에 달하는 조합원(전체 노동인구의 약 25퍼센트, 공식 고용 노동자의 거의 40퍼센트)을 자랑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조는 통상 페론주의 성향의 관료적 분파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정치인과도 기꺼이 거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노동조합 총연맹이 두 개 있다. 가장 크고 가장 관료적인 CGT, 그리고 CGT에서 갈라져 나온 전투적이고 (약간이나마 더) 민주적인 CTA다. 이 상급 노동 조직들은 국가 경제를 마비시킬 힘을 갖고 있지만, 지도부는 (종종 용역 깡패까지 동원하면서) 조합원의 참여와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가로막고, 파업 조직을 회피할 구실을 늘 궁리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외부 행위자를 빼놓으면 전체 구도가 완성되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다. IMF는 역사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자유 시장 및 긴축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IMF는 “최후의 대부자”, 말하자면 국채 매입자를 찾지 못하는 나라에 신용이라는 생명줄을 제공하는 지위 덕분에 공공 정책에 대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IMF 대출에는 통상 “조건부 이행 사항”이 붙는데, 여기에는 대개 재정 적자 축소 또는 해소, 사회 지출 삭감, 자유 무역 장벽 최소화 등의 요구가 포함된다.

 

중간 선거를 앞둔 밀레이 정부

 

밀레이 정부는 임기 초부터 자랑할 만한 핵심 성과를 하나 거두었는데, 바로 인플레이션을 잡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권 안정의 주된 토대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은 지난 10년간 아르헨티나를 짓눌러 온 문제였다. 마크리 집권기(2015~2019년)에 연 40퍼센트였던 물가상승률은 2023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임기 마지막 해 200퍼센트를 돌파하며 치솟았다. 이례적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이토록 불안정한 경제 환경에서 국내외 자본의 투자를 가로막아 재계를 위축시켰을 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거대한 불안의 원천이 되었다. 임금은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고, 가격을 예측할 수 없는 노동자 가정은 극도로 불안해졌다. 역대 정부가 가격 통제를 시도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하비에르 밀레이는 취임하자마자 가격을 자유화하고, 과열된 경기를 식히기 위한 친시장 정책과 여러 조치를 통과시켰다. 포퓰리즘적 “아웃사이더” 담론을 내세웠지만 그의 경제 정책은 교과서적인 신자유주의 충격 요법 그 자체였다. 집권 첫 주에 정부는 자국 통화를 50퍼센트 평가 절하하고 가격을 자유화했으며, 이로 인해 실질임금이 급락했다. 공공 지출 총액을 29퍼센트 삭감했고, 연방 정부의 주요 감축 조치는 13개 부처 폐지(또는 “차관급”으로 격하), 모든 공공 인프라 사업 동결, 보건·교육·과학 분야 지출 대폭 삭감 등을 포함했다. 2025년 6월까지 정부는 공무원 5만 명을 해고했다(취임 당시 공무원은 총 20만 5천 명이었다). 물가는 초기에 급등한 이후 안정되었고, 인플레이션은 2023년 12월 월 약 25퍼센트에서 1년 뒤 월 2.5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했다. 경기 냉각 정책에는 필연적으로 침체의 위험이 따르는데, 아르헨티나는 사회적·경제적 상황자체가 이미 참담했다. 2025년 상반기에 부분적으로 회복되기는 했으나 밀레이 집권 첫 해 경제 활동은 3.5퍼센트 감소했고, 2023년 11월부터 2024년 8월 사이에 거의 14만 개의 일자리(민간 부문 전체 고용의 2.2퍼센트)가 증발했다. 초기 정책들이 시행된 직후 빈곤율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이후 감소하기는 했으나 이미 높았던 2023년 빈곤율 언저리에서 고착되었다. 2025년 6월 기준으로 실업률은 최근 4년 중 최고치인 7.9퍼센트까지 올라섰고, 비공식 고용을 비롯한 각종 불안정 노동은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이전의 0.41에서 0.47로 뛰어올랐다. 여러 논평가들은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 정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민중의 묵묵한 인내가, 특히 가장 취약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바로 그 인내가 역대 정권에 대한 실망이 얼마나 깊었는지 드러내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 눈에 띄게 나빠진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밀레이에게 자신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기회와 더 많은 시간을 기꺼이 주려 했다.

 

밀레이의 목표는 판을 엎고 다시 투자를 끌어모아 대폭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구상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새로 짜는 것, 말하자면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임금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이를 통해 착취와 이윤 창출의 기회를 늘리고 확대하려 한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먼저 아르헨티나 노동계급과 그 조직들, 그리고 과거 투쟁으로 쟁취한 것을 지키려는 의지에 결정적 패배를 안겨야 한다. 대부분의 전국 단위 노조가 관료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해도, 지도부는 여전히 지지 기반을 이루는 목소리들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 조합원들의 핵심적인 권리가 박탈당하면 조직적 운동에 나서라는 거대한 압력이 지도부에 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5년 들어 밀레이 정부는 정권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여러 스캔들에 맞닥뜨렸다. 첫 번째는 리브라($Libra) 스캔들로, 하비에르 밀레이 본인이 소셜 미디어 X에서 해당 암호 화폐를 홍보한 뒤 투기꾼들이 투자 회수 사기를 통해 2억 5천만 달러를 챙긴 사건이다. 이어서 마약 유통업자들의 뇌물과 연루된 부패 사건이 터졌는데, 음성 녹음에는 하비에르의 여동생이자 대통령 최측근 자문인 카리나 밀레이가 직접 연루되어 있다. 가장 최근에는 밀레이의 정당인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의 간판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중간선거 첫 번째 후보였던 호세 루이스 에스페르트가 마약 사건에 휘말려 선거운동 도중 후보직을 사퇴했고, 연방 판사에 의해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되었다.

 

경제는 도약하지 못하고, 국제수지 적자와 결부된 모순이 심화되면서 단기 및 중기 경제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재무부가 200억 달러를 구제금융으로 제공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발표는 밀레이에게 단기적이기는 하지만 절실한 생명줄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또 다시 타국의 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밀레이가 선거에서 승리해야만 대출을 승인하겠다고 못 박았다. 좌파전선의 전 의원이자 전국 지도자인 미리암 브레그만이 비난했듯이, 이 합의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종속이 심화된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강경한 태세를 유지하면서 타협 불가 이미지를 내세우려 한다. 그러나 밀레이 취임 이후 계급투쟁의 윤곽을 드러낸 중요한 운동이 몇 차례 있었다. 두 차례의 총파업, 교육을 지키기 위한 대규모 시위, 성소수자의 권리와 공공 의료를 위한 대규모 시위, 운수·교사·공무원 파업, 그리고 주요 도시 전역에서 열린 대중 집회가 그것이다. 이 모든 투쟁 가운데 지금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다. 정부를 후퇴시키는 데 성공했거나, 정부에 맞서 싸우는 방법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반격하다

 

아르헨티나에서 공립대학들의 권위는 상당하다. 등록금이 전액 무료임에도 공립대학 학위는 대부분의 경우 사립대학 학위보다 높이 평가된다. 2024년 10월 정부는 공립대학을 겨냥했다. 이것이 첫 번째 공격은 아니었다. 밀레이가 취임 직후 내놓은 2024년 예산안에서 연방 정부가 전국적으로 직접 지원하는 국립대학 재정이 대폭 삭감되었다. 페소화 기준 예산은 2023년 수준에서 동결되었지만, 연간 288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거의 70퍼센트 삭감과 다르지 않았다. 2024년 4월, 50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공립대학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는 지난 20년간 가장 큰 대중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10월에 대통령은 한술 더 떠서 의회가 통과시킨 고등교육 긴급 재정지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하나둘 시작된 대학 점거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운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학생들은 전국 30개 국립대학에서 80곳 이상의 건물 점거를 조직했고, 교원 및 비교원 직원의 임금 인상과 대학 예산 전반의 증액을 요구했다. 노동조합과 대학생 연합은 두 차례의 전국 파업과 주요 도시에서의 대규모 행진을 조직했다. 이 강력한 운동 앞에서 정부는 빠르게 뒷걸음질쳤다. 밀레이는 공립대학에 등록금을 부과하겠다는 암묵적 위협을 교묘하게 내비쳤으나, 충돌이 시작된 지 불과 며칠 만에 공립대학 무상 원칙을 폐기하지 않겠다고 직접 나서서 밝힐 수밖에 없었다.

 

이 운동에 불을 붙이고 힘을 실어 준 것은 수십만 명의 학생, 교사, 교수, 대학 직원들로 이루어진 풀뿌리 조직이었다. 이들은 건물을 점거하고 민주적 토론과 의사 결정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각 학교의 활동가 수백 명이 총회에 모여서 토론하고 다음 행동을 표결로 정했다. 좌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이상화하거나 저절로 생긴 현상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좌파 정치 활동가들은 이러한 자기 조직화 기구들을 구축하고, 발전시키고, 쟁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좌파노동자전선 소속 PTS 당원들은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민주적 의사 결정을 위해 쉼 없이 싸웠다.

 

이 투쟁 국면에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낸 조직과 기관으로는 전국대학간위원회(CIN, 전국 대학 총장 협의체), 대학 노조 연합(Frente Sindical Universitario), 그리고 학생운동 대표들이 있었다. CIN의 구성원은 대부분 오래된 두 부르주아 정당(페론주의와 급진시민연합)에 소속된 총장들로, 직접 행동을 만류하거나 약화시키려 했고 학부 건물 점거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원격 수업으로 전환하여 운동을 고립시키려 했고 관심을 오로지 의회에서의 예산 협상으로 집중시키려 했다.

 

대학 노조 지도부도 투쟁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두 차례의 매우 성공적인 파업과 전국 행진 이후 정부가 약세를 보이던 시점에 그들은 세 번째 전국 교육 행진 소집을 거부했다. 학생 조합은 당연히 학생들의 도덕적 열기와 투쟁 의지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많은 점거 현장에 참여하고 점거를 이끌었다. 이를테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철학부 학생 조합 사무총장인 루카 본판테는 CIN의 타협적 노선을 거듭 규탄하면서, 지속적인 직접 행동과 전국적 학생운동 조율을 촉구했다. 그러나 전국 조직과 다수의 주·지방 조직에서 학생 조합 지도부는 대부분 급진시민연합과 페론주의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점거를 적극적으로 말리면서 초점을 2025년 대학 예산을 둘러싼 의회 논의로 돌리려 했다. 학생들과 대학 노동자들에게 허락된 역할은 의원들의 토론과 표결을 지켜보는 수동적 구경꾼에 불과했다.

 

이 투쟁의 핵심 교훈은 직접 행동과 자기 조직화야말로 대학 운동의 진정한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노조와 학생 조합의 관료들은, 제도적 경로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든 아니면 자신들의 손을 벗어날지도 모르는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든 간에, 운동의 급진적인 칼날을 무디게 하고 가로막기만 했다. 게다가 주류 부르주아 정당 성향을 가진 조직들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거스를 수 없을 때만 행동에 동참하고, 그 와중에도 운동을 해체하고 고립시키고 잠재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며, 투쟁의 현장과 동떨어진 의회 논의로 대화의 장을 옮기기 위해 애썼다.

 

꼼짝도 하지 않는 병원

 

교육과 더불어 의료 부문 또한 밀레이 행정부 출범 초부터 공격 대상이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병원 예산은 최대 54퍼센트까지 삭감되었다.

 

고등 교육을 공격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밀레이 행정부는 더 작고 만만해 보이는 표적을 겨냥했다. 바로 연방 정부 관할로 운영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정신건강 병원이었다. 보나파르트 병원은 아르헨티나에서 유일하게 정신질환과 중독에 대해 여러 분야의 통합 치료를 수행하는 전문 병원이다. 이 공격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기관에서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작업은 아르헨티나의 어떤 의료 시설과도 다르다. 의사, 사회복지사, 치료사, 사회과학자, 음악치료사 등이 협력해서 정신건강 환자에게 총체적 치료법을 제공한다. 인권 활동가이자 오월광장어머니회 소속인 라우라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딴 이 병원은 진보적이고 평등한 의료의 상징이다.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병원 노동자들은 입원 병동과 응급실을 폐쇄하라는 정부 공문을 받았다. 몇 시간 뒤, 이 조치들은 다음 주 월요일에 실행될 병원 최종 폐쇄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소식이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 왔다. 공무원 노조(ATE)가 긴급 회의를 소집했고, 곧이어 총회에서 자신들의 몸으로 병원을 지키기로 표결했다. 점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팔짱 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최대한 관심을 끌어야만 했다. 정부는 평화로운 시위에도 물리력을 행사할 의지가 있음을 이미 충분히 입증했다. 보나파르트 노동자들은 언제든 폭력적으로 진압당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병원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지체 없이 바로 그날 거리로 나가 전단을 돌리며 지역 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숨 가쁜 속도로 다음 날인 토요일 저녁 연대 음악회를 조직했고, 여러 밴드가 투쟁에 연대하며 무대에 올랐다. 환자들과 인근 지역 및 그 너머 주민들의 뜨거운 지지가 쏟아지며 조직화에 힘이 실렸다. 10월 7일 월요일에는 병원을 “껴안는” 연대 집회에 수백 명이 모였고, 기자회견에는 국회의원, 인권 활동가, 노조 지도자들이 함께했다.

 

맨 처음 회의를 소집한 것은 노조 현장위원회였지만, 현장 조합원들이 스스로 나서서 병원을 조직하고, 각기 다른 과제(언론 대응, 연대, 환자 돌봄 등)를 조율할 위원회를 꾸리고, 투쟁 전략을 결정했으며, 노조 공식 지도부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신 건강 전문가 훌리에타 슈발리에의 회고에 따르면, 병원 직원이자 조합원으로 지낸 11년 중에 어떤 행동을 할지 “직접 투표로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용 형태, 조합원 여부, 소속 부서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가 총회에 모여 매 결정마다 거수로 표결했다. 투쟁 첫 2주 동안 총회는 거의 매일 열렸다.

 

훌리에타는 자신들이 보건 부문 안팎에서 투쟁하는 다른 노동자 집단들과 빠르게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게 된 과정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포사다스 병원, 가라한 병원, 철도 노동자, 공항 노동자 등이 연대의 대상이었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대학 투쟁에도 주의를 기울여 의과 대학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싸우는 부문들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이러한 연대는 곧 결실을 맺었고, 보나파르트 병원은 정부에 맞선 대중 행동과 저항의 진원지가 되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정부는 한발 물러서서 병원을 계속 운영하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임박한 폐쇄 위험은 넘겼지만 정부가 병원 “구조조정”을 고집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구조조정은 병원을 서서히 고사시키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병원 존치를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은 정부의 명백한 패배였고, 보나파르트 병원은 전국적으로 밀레이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보나파르트 병원 직원들을 대표하는 두 노조의 지도부는 단결, 결집, 민주적 의사 결정을 요구하는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조 대표들이 정부 당국과 만나 모든 일자리와 부서를 포함한 병원 존치 합의에 서명하면서 정부와 함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동의해 버렸다. 구조조정이란 통상 해고와 부분 폐쇄를 포함하는 긴축의 완곡한 표현이다. 이후 병원 총회는 어떠한 형태의 구조조정에도 반대한다고 표결했고, 이는 현장 조합원들이 자기 지도부보다 더 왼쪽에 서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일간 좌파>와의 인터뷰에서 보나파르트 병원 핵심 조직가 중 한 명인 하비에르 리오스는 이 투쟁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정부를 후퇴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현장 조합원의 힘, 지역 사회와의 유대 구축, 병원의 벽(과 인력) 너머로 확산된 광범위한 능동적 저항 운동 덕분이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투쟁들이 서로를 자극하고, 기금을 모으고, 서로의 현장에 달려가고, 가장 넓은 의미의 노동계급 연대를 체현하는 운동이 만들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사들이 파업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교사 파업은 누가 우리의 동지이며 누가 우리의 적인지 선명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파업은 5월에 시작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최대 공립 교사 노조인 수테바(SUTEBA)가 정부와의 잠정 합의안을 발표하고 표결에 부친 뒤였다. 잠정 합의안은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소수의 교사를 대표하는 노조인 FEB가 파업을 소집하도록 추동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정부는 현재 중도 좌파 경제학자 악셀 키실로프가 이끌고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정부의 경제부 장관이었던 그는 현재 페론주의 내 지배적 분파인 키르치네르주의의 주도권을 두고 크리스티나와 다투고 있다. 지난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중간 선거에서 키실로프의 후보들이 밀레이 측 대리인들에게 큰 타격을 입힌 뒤 야당 내에서 그의 입지가 높아졌다. 키실로프는 밀레이에 대한 저항의 선봉을 자처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가 밀레이의 경제 노선에 맞서는 “방패” 역할을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FEB가 파업을 선언하자마자 키실로프는 파업에 참여하는 교사들에 대해 결근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위협은 파업을 무력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키실로프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분명히 드러냈다. 수테바 지도부는 언제나 그렇듯 보수적 역할을 맡았고, 조합원의 극히 일부에게만 의견을 물었으면서도 잠정 합의안이 압도적 다수의 동의로 통과되었다고 둘러댔다. 수테바 내 좌파 분파인 물티콜로르가 파업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내 최대 지구의 조합원 압도적 다수가 파업 호소에 응했다.

 

이러한 결과는 놀랍지 않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교사들은 생계를 위해 두 곳, 심지어 세 곳의 일자리를 가진 경우가 허다하다. 수테바가 협상한 임금 인상은 고작 4퍼센트(수개월 후 7퍼센트로 상향)였고, 2025년 물가상승률이 (작년보다 나아진 수치임에도) 27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이 인상분은 사실상 감소한 소득분을 메우기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이미 빈약한 임금을 또다시 깎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활비를 감안하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실제로 전국에서 교사 임금이 가장 낮은 세 개 주 가운데 하나다.

 

교사들에 대한 키실로프의 적대 행위는 그가 가진 정치적 입장의 민낯을 드러낸다. 키실로프는 겉보기에는 밀레이의 노골적 신자유주의와 매우 다르지만, 여러 근본 요소와 목표의 상당 부분을 공유한다. 전투적 수사를 내세우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경제 정책은 밀레이와 마찬가지로 국내외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에 기초한다. 이를 위해 키실로프는 관광업, 제조업, 광업 부문에서의 대규모 자본 투자에 대해 향후 30년간 파격적인 세금 감면을 제공하는 등 여러 경제적 특혜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의 노선이 IMF 및 기타 국제 금융 기구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종속에 도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고착시킨다는 점이다.

 

고용주들에게 밀레이의 집권은 공세에 나서라는 신호였다. 그들은 노동운동가를 해고하고, 더 낮은 임금으로 협상하고, 노동 강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진행 중인 수많은 노동자투쟁에 대한 주 정부의 답변은 “강제 조정” 조치였다. 말하자면 노동자에게는 업무 복귀를, 고용주에게는 괴롭힘, 불법해고, 임금삭감 중단을 강제하는 조치다. 문제는,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을 위험 때문에 이 조치에 따라야 하는 반면, 고용주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이를 무시할 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강제 조정은 고용주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투쟁을 무력화하는 몽둥이 구실을 할 뿐이다.

 

다시 말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키실로프 행정부는 밀레이의 정책에 대한 그 어떤 “방패”도 되어 주지 않는다. 진보적 수사로 포장되었을 뿐, 자본 투자에 보상하고 저임금을 유지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를 규율하는 정책의 온건한 판본이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교사들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키실로프의 임금 삭감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에 힘입어, 물티콜로르와 반대파 지부들은 정부와 로베르토 바라델 예하 수테바 지도부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물티콜로르 지도자이자 전 연방 의원인 나탈리아 곤살레스 셀리그라의 발언에 따르면, 수테바 지도부는 “사실상 키실로프 행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이 사례가 무엇보다 잘 보여 주는 것은, 수사가 아무리 좌파적이어도 부르주아 정치인은 자본주의 게임의 규칙 안에서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좌파는 시장과 노동자를 중재하겠다고,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겠다고 약속하는 국가 관리자에게 희망을 걸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 경험이 입증하듯, 시장의 압력 하에서는 투자와 기업 이윤을 촉진하려는 충동이 민중의 안녕보다 언제나 우선한다. 이 사례에서도 역시 노조 관료층은 운동을 잠재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좌파를 위한 전망과 교훈

 

우파 정부의 공세에 맞서려면 정치적 차이를 잠시 잊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듣는다. “지금은 전략을 논할 때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킬 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권위주의 정부의 파렴치한 공격에 맞서서 가능한 한 가장 넓은 운동을 능동적 저항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이 차이를 숨기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강력한 좌파야말로 극우에 대한 최선의 방어다.

 

이 글에서 다룬 사례들은 좌파 활동가들이 밀레이에 맞선 싸움을 선도하는 모습을 가득 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철학부 학생 조합 사무총장 루카 본판테는 PTS 당원이며, 보나파르트 병원의 하비에르 리오스, 교사 활동가이자 전 의원인 나탈리아 곤살레스 셀리그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혁명적 활동가들은 투쟁 현장에 전략적으로 자리 잡고, 동료 노동자, 학생, 사회운동 활동가를 조직하며, 노동계급의 힘을 강화하는 타협 없는 강령을 제시하고, 자기 조직화 기구 건설을 추동한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방어적 투쟁에 힘과 예리한 칼날을 부여한다.

 

이것이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조직화의 결실이라는 점도 강조할 만하다. PTS는 1990년대에 혹독한 시절을 겪었다. 활동가는 전국에 수백 명뿐이었고 대중적 인지도는 미미했다. 그러나 혁명 정당, 전투적 정당을 건설한다는 전략적 목표가 1988년 창당 이래 모든 투쟁과 모든 전술적 결정에 방향을 제시했다.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아르헨티나 좌파 대부분이 키르치네르주의를 지지하거나 그쪽에 합류했지만, PTS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한 소수 조직 가운데 하나였고 이들 대부분은 현재 좌파전선에 통합되어 있다. PTS가 지금 이 투쟁들에 내부적으로 개입하면서 급진적 목소리를 내고 사회주의적·반제국주의적 강령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원칙에 입각한 조직화와 당 건설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다. 좌파전선은 IMF를 비롯한 전 지구적 금융 기구들과 제국주의적 종속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단절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유일한 전국적 세력이다.

 

이 투쟁들이 밀레이 정부를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자기 조직화 기구를 만들어 민주적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하고, 노조 및 여타 운동의 관료적 지도부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들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현장 조합원의 힘을 키우고 지역 사회와 강한 유대를 맺음으로써 정부의 공격에 맞선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 냈다. 진보적 수사와 소소한 양보를 제시하면서 시장의 지배를 유지하고 재정 균형을 위해 필요할 경우 노동자를 규율하는 차악의 정부를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미국 좌파는 이러한 경험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실천이 재현된다면 트럼프에 저항하는 운동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두 자본주의 정당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좌파의 토대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전국 단위 노조 지도자들은 대체로 이민국(ICE)에 의한 이주민(또는 이주민처럼 보이는) 노동자 납치와 공포 조성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연방 공무원에 대한 대규모 해고와 노조가 교섭으로 쟁취한 권리의 박탈에 맞서 단호한 투쟁을 조직하는 데도 실패했다. 노조 관료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노조 내부에 반대파와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은 오늘날 절박한 과제다.

 

오늘날 미국 좌파에게 특히 어려운 과제는 조란 맘다니 현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다.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하는 맘다니의 선거운동은 뉴욕 시 노동계급과 좌파 전반에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기성 정치권과 보수 정치인들에게는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맘다니의 공약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진보적이며, 뉴욕 시 노동계급 가정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 것이다. 좌파는 노동계급의 권리를 확장하고 자본의 힘을 억제하는 조치들을 지지할 수 있고 또 지지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대중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맘다니 개인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내고 그의 캠프에 결집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그가 11월에 당선되더라도, 취임 직후 시내 대기업을 만족시키라는 즉각적 압력에 직면할 것이고 자기 공약의 가장 급진적인 부분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뉴욕 시의 정치 브로커들이나 재계 엘리트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이 그들의 부와 이익에 위협이 된다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민주당에서 출마한 좌파 성향의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이를테면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같은 정치인들의 전례를 보면, 그들이 현 상태에 도전하거나, 시장의 명령에서 벗어나거나, 독립적인 노동계급 정치 조직의 발판을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은 사라질 것이다.

 

Left Voice에 2025년 10월 26일 발행된 기사를 번역함.

저자: Remo Erdosain

번역: 강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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