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화물연대 광양컨테이너지부장 서광석 동지의 사망 소식은 화물노동자의 운전대를 멈추게 했다. 진주 정촌에 있는 CU물류센터 정문에서 좌측으로 약 100미터에 이른 길은 이전에는 평범한 도로였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CU원청 자본과 정부가 ‘살기 위해’ ‘노조하다가’ 무참히 ‘살해당한’ 서광석 열사를 떠나보낸 현장이자, 전국 화물노동자의 애끓는 분노가 모이고 투쟁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 되었다.
현장에 도착한 4월 20일 자정께부터 21일 17시 화물연대 집회를 마칠 때까지, 노동자는 그곳으로 모이고 또 모였다. 밤새 CU BGF 공장 정문을 지키고 또 지켰다. 서광석 열사가 떠난 자리 옆을 지키고 일손을 놓고 진주로 오는 인원을 점검하고 투쟁을 이야기하고 뉴스를 확인하고 집회하고 토론하고 회의하고 피켓을 들고 주위를 청소하고 음식을 나눠 먹고 투쟁 복장을 챙기고 구호를 외쳤다. 때로는 울다가 때로는 눈물을 삼켰다. 구호로 심경을 토해내고 이를 악물었다.
4월 20일에 약 300명의 인원은 21일 아침부터 계속 불어나더니 11시 약식집회에는 900명에 이르렀다. 4월 21일 17시에 열린 ‘열사정신 계승! 살인기업 CU BGF 규탄! 살인진압 경찰 공권력 규탄! 화물연대 결의대회’는 대오가 3천을 넘기며 예정 시간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대오는 계속 불어났다. 화물노동자 2,700명, 연대 대오까지 4천여 명이 “서광석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경찰은 노동자들이 분노로 쓰러트린 공장 펜스 대신 방패로 무장하고 시종일관 자본을 지켜주었다.
“저기에 가면, 아직 핏자국이 선명합니다”
밤늦게서야 도착한 CU진주물류센터(CU BGF로지스) 앞은 밤샘농성 중이었다. 어두워졌지만 동영상에 나온 바로 그 공장문과 도로였다. 오전까지 현장에서 투쟁하던 화물연대 노동자 서광석 지부장이 하루아침에 고인이 되어 영정사진 속에서 화물연대 노동자와 연대동지를 맞이하는 현실이 기막혔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심경이 어떨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뜯어낸 정문 안팎에서 화물연대 동지들이 농성을 이어가고 서광석 열사와 같은 지부 동지들이 번갈아가며 영정사진을 들었다.
비슷하게 도착한 동지들과 일행을 이루었고, 화물연대 임원 동지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어제 같이 있었는데”, “저기에 가면, 아직 핏자국이 선명합니다.” 그 말을 들은 후에는 다른 말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영상 속 길을 걸어 사고장소까지 갔다. 하얀색 분필의 선들, 그리고 검은 핏자국이 검붉게 느껴졌다. 묵념하는 마음이 타들어갔다.
CU자본과 경찰이 얼마나 끈끈했던 걸까. 생각보다 차가 작았고 차고가 높지 않았다. 영상이 그려져서 고통이 배가됐다. 원청교섭 하자는데, 손해배상에 해고(계약해지). 정부는 CU자본의 ‘공권력 투입 요청’에 기꺼이 응답했다. 차로 사람을 밀고가게 사주하고, 사람들이 차에 치였는데도 대체차량을 빼내기에 급급했던 공권력과 자본. 저들은 야만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은 열사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생각을 쏟아냈다. “운전하는 사람이 앞에 사람이 있는데 운행을 할 수가 없어”, “동영상 보셨어요?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는데”, “경찰이 차를 계속 가라고 하잖아”, “사람이 차에 끌려 들어갔는데도 그를 구하려는 우리는 밀쳐내고 차들을 보내잖아, 인간이 아니야”, “위에서 시키지 않았으면 그럴 수 없다”, “사고낸 운전자만 잡아넣으면 억울해서 안 된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구조적 살인이다”
“실감이 안 납니다”
눈을 붙이러 간 노동자들도 많았지만, 4~50여 명 노동자는 정문 앞쪽을 떠나지 않았다. 서광석 열사와 같이 노조하던 ‘동지’가 갑자기 ‘유족’이 된 광양컨테이너지부 동지들은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나같이 “실감이 안 납니다”고 말했다.
지부 동지들은 덤덤하시다가 울다가, 또 서로를 챙기다가 고개를 떨구시기도 했다. 조용히 사진 속 얼굴을 만지기도 했다. “엊그제 만났는데”, “노동운동을 오래 열심히 한 동지인데”, “동료들을 잘 챙기던 동지인데”, “앞에 서지만 않았더라면”, “같이 모임도 하고 있는데”, “내년 환갑까지만이라도 살았으면 덜 억울할텐데” 그리고 “실감이 안 난다”
“‘사망’이라는 소식을 듣고 운전대에서 손을 놓았습니다. 파업지침이 내려지고 광양에서 컨테이너를 몰고 그대로 달려왔습니다. 병원으로 바로 갔습니다. 유족분들이 오열하셨습니다.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데 가족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이 싸움은 원청교섭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CU자본이 유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할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영정을 든 한 간부 노동자는 피맺힌 결의를 말해주었다. 차분하고 단호한 동지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는 듯했다.
CU살인기업, 이재명 살인정권
바로 옆 주택가에 버려진 박스로 피켓을 만들기 시작했다. 피켓이 하나둘 만들어지니,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CU진주물류센터 앞에 도열한 노동자들은 피켓을 들었다. “공권력의 살인이라는 문구를 써달라”, “서광석을 살려내라”, “유족 앞에 무릎 꿇라고 써달라” 등 피켓 문구를 요구하며 함께 만들기도 했다. 피켓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으면 서로 이렇게 들자고 하고, 피켓이 없으면 더 챙기기도 했다. 17시 집회가 열리기 전까지 정문 앞 농성조가 피켓을 이어 들었다.
아침 8시 투쟁 일과가 시작되기 전, 노동자들은 부러진 나뭇가지와 맨손으로 정문 앞과 도로 주변을 쓸고 청소했다. 그 풍경은 마치 새벽에 장례식장 빈소를 청소하고 정돈하는 모습 같았다. 오전에 되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서광석 열사가 쓰러진 장소가 밟힐까 불안했다. 부러진 이동식 경찰바리케이드 조각과 도로 위에 있던 교통꼬깔을 모아 표식을 했다. 그랬더니 화물노동자들이 경찰바리케이드를 통째로 옮겨 열사의 피가 지워지지 않게 보호했다.
열사가 떠난 자리
4월 21일 11시, 경남경찰청 앞에서는 화물연대 16개 지역본부와 중집, 공공운수노조, 사회단체 등이 참여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같은 시각 CU진주 현장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화물노동자들은 일사분란하게 ‘고 서광석조합원 분향소’가 차려진 무대차량을 바라보고 앉아 ‘투쟁’을 외쳤다. 집회에서 사회자는 먼저 CU투쟁과 열사투쟁을 하나로 진행한다고 전달했다. “우리가 서광석이다. CU BGF 박살내자! 화물악법철폐투쟁 결사투쟁”
사회자는 CU편의점 화물노동자가 노동자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얼마나 착취당하는지 폭로하며 CU자본과 공권력에게 서광석 열사 죽음의 책임을 물었다. “1회전을 하면 6-7시간이 걸리고 점포수 14-16개. 그런데 월대 270만원 받는다. 그래서 2회전을 한다. 그럼 13-14시간 운행한다. 운수도 상하차도 한다. 1회전을 하면 굶어 죽는다. 2회전을 하면 도로에서 죽는다” “살려달라고, 죽지 않게 해달라고 대화 요구했다. 대화를 요구했더니 계약해지를 날렸다”, “경찰이 입고 쓰는 물건도 화물노동자가 운송해준 거다. 그런데 이것이 2026년을 살고있는 화물노동자의 현실이다”
발언자로 나선 여러 지부 임원들은 절절하게 투쟁을 토해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안타깝게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게 투쟁하자”, “어제 아침 경찰이 CU대문을 막고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서광석동지의 아픈 소식이 들렸다. 화물연대의 정신으로 CU자본 박살내자. 승리할 때까지 이 자리를 사수하자”, “친일자본 CU자본이 쉽게 굴복하지 않을 테지만 서광석동지가 하늘에서 지켜본다. 끝까지 투쟁하자!” 전날 경찰에 연행됐다가 석방된 노동자도 마이크를 잡았다. “열사의 정신으로 이번 투쟁 승리하자. 진주CU분회는 4명이지만 4백 명, 4천 명이 되고 이길 것이다. 승리할 때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화물연대 진군가와 파업가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자영업자 개소리
정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책임자이자 공범이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아직도 보장하지 않는 공범이다. 노동자가 투쟁으로 개정한 노조법, 원청사용자 편에서 시행령부터 원청 대자본의 온갖 부당한 노조탄압을 비호하고 방관하는 공범이다. 그러다가 죽을 만큼 힘겹게 일하는 특수고용 화물노동자를 국가폭력으로 죽였다.
반노동을 감추려는 정부는 립서비스가 통하지 않을까 봐 고용노동부 장관을 급히 보내더니, 고용노동부는 하루도 되지 않아 화물노동자는 ‘자영업자’라고 떠들었다. ‘화물연대는 노조 아님’, 그저 ‘자영업자가 대화할 구조가 없는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했다. 화물노동자들은 분명히 말했다. “구조적 타살”이라고! 현장에서는 “자영업자 개소리다”고 했다. 그리고 “김영훈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을 내어 ‘사태해결을 가로막는 자영업자 논리에 눈이 멀어있는 정부도, 모두 서광석 열사를 죽인 공범이다’고 규탄했다. 이재명 살인정부의 손에 피도 마르기 전에 ‘화물연대’가 노조가 아니라며 원청을 비호하는 모습에 ‘윤석열’이 떠올랐다. ILO권고가 어쨌든, 2022년 파업 당시 화물연대를 ‘사용자단체’로 규정하고 탄압한 기억을 화물노동자들이 더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원청을 위해 바리케이드 친 공권력의 모습대로 정부는 서광석 열사의 죽음을 피해가면서, 원청을 비호하기 위해 실질적 저지선을 치려 했다.
17시 화물노동자 결의대회가 있기 전까지 화물연대 외의 노동조합과 연대대오는 적었다. 원청교섭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노동자 규모를 민주노총은 10만 명이라고 했다. 2026년 진짜 사장, 대원청 투쟁을 하는 노동자는 많으나 열사가 살해당한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몸은 무거운 듯했다. 민주노총 지침을 여러 번 확인했지만, 속보 외에 지침은 따로 없었다(이후 4월 22일, 민주노총은 사업장 열사 분향소 설치와 현수막 게시, 조문 안내 등의 내용을 담은 지침을 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오, 내가 서광석이다!
17시가 되기도 전에 CU진주물류센터 앞 도로는 사람들도 넘쳤다. 무대차량 앞 분향소 옆으로 화환이 둘러쳐졌다. 자리가 없었다. 16시부터 대오정리를 반복해 당겨 앉고, 또 당겨 앉았다. 그렇게 무대 앞부터 서광석 열사가 떠난 자리 넘어까지 대오가 3천 명에 이르면서 집회는 10여 분 일찍 시작됐다. 수많은 인파에도 노동자들은 비장하고 엄중했다. 사실 화물연대는 이 투쟁이 지속될 것을 고려해, 이날 전국을 동원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도 대오는 계속 늘어났다. CU물류센터를 지나 GS물류센터 입구에 이르는 2백여 미터 도로를 가득 메웠다.
묵념,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화물연대 김동국 위원장의 긴 발언이 있는 동안 노동자들은 울기도 하고 “투쟁!”, “살려내라!” 등을 크게 외치기도 했다. “고의적으로 공권력이 CU와 합작해서 살인한 것입니다. 악덕 CU보다 경남경찰청장을 더 죽여버리고 싶다. 경찰청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이 싸움 접을 수 없다. 화물연대는 화물연대다운 투쟁을 해야 합니다. 대화에는 대화로, 탄압에는 저들보다 더 악랄하게”
공공운수노조 엄길용 위원장은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열사가 남긴 말을 상기시켰다. “헌법파괴의 시작, 업무개시명령 즉각 폐지, 안전운임제 재입법과 확대”, “화물연대가 앞장서겠다” 광장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한 청년 연대동지들은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열사와 10일 전 마지막 술자리를 했다는 광주전남 이행섭 본부장은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죽여놓고 말 한마디 없는 것이 지금의 권력과 정권이다, 이 투쟁 끝까지 가야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경기지역 장정훈 본부장은 “삶에 편리한 편의점이지만, 배송노동자는 새벽 2-3시에 출근해서 저녁 6-7시에 퇴근한다. 배라도 덜 곯고자 노조에 가입한 게 무리냐”며 “꼭 사람이 죽어야만 우리 화물노동자를 찾아주는 정치다. 고용노동부 장관 왔다 가서 기대했는데, 우리를 다시 자영업자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김동환 울산본부장은 “죽을 때까지 4월 20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정말 억울한 죽음이 되지 않게 투쟁하자”고 했다.
“내가 서광석이다! 열사의 한을 풀어내자”, “살려내라, 살려내라, 서광석을 살려내라!” 방송 스피커 장비의 높은 볼륨이 아닌 노동자의 육성, 대오의 커다란 분노가 하늘에 울렸다. 서광석 열사 곁에서 현장의 화물노동자들은 진실로 끝까지 싸운다고 결의했다. 1시간의 집회가 끝나고 1시간의 헌화가 이어진 사이 현장의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CU물류센터 정문을 막고 선 경찰을 밀었다. 노동자를 죽이고도 26개 중대, 1,500명을 동원한 정부를 향한 몸짓이었을 것이다. 사회자의 요구로 노동자들이 빠지자, 경찰은 다시 CU자본을 지키는 방패를 이어 붙였다.
‘노동절’ 이름은 되찾았다. 그러나 노동자의 이름과 권리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2026년 국제노동절을 열흘 앞두고 노조한다고, 원청교섭 하잔다고 살해당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영업자 단체’ 해법을 제시받고 있다. 하지만 진주CU 현장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열사의 한을 풀고, CU자본과 정부를 유족 앞에 무릎 꿇리게 할 사람은 정치꾼이나 노조관료가 아니라 오직 투쟁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화물연대 뿐 아니라 원청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힘을 집중하자. 민주노조 노동자가 앞장서자. CU살인기업, 이재명 살인정권 노동자가 심판하자! 서광석을 살려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