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경과와 전망> 정세집담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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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기고]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경과와 전망> 정세집담회 후기

 

927기후정의행진을 일주일가량 앞둔 9월 19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책선전위원회가 주최하고 백종성 동지가 발제를 맡은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경과와 전망> 정세집담회에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사전 배부된 발제문을 훑어보던 중 “탈성장론에는 자본주의와 싸울 방법이 없다”라는 소제목이 눈에 박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드러낸 일상의 위태로움과 기후위기 담론의 확산에 응답하듯 한국 사회운동 진영은 2022년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을 출범시켰고, 자본주의 성장체제가 기후재난과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기조 아래 기후정의행진을 조직했으며, 체제비판적 연구자들은 ‘탈성장’, ‘생태적 레닌주의’, ‘제국적 생활양식’, ‘커먼즈’ 등 다채로운 개념들을 대항 담론으로 생성‧유통해 왔다. 이러한 최근 몇 년의 흐름은 침체된 노동‧사회운동에 ‘기후정의’라는 새로운 동력을 제시하며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는 한편, 대안을 자처하는 무수한 언어의 물살 속에서 우리를 표류하게 만들기도 한 것 같다.

 

이번 정세집담회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그 힘을 믿는 방법을 잊어 온 우리의 강력한 무기, ‘계급투쟁’을 기후정의 실천의 핵심 동력으로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백종성 동지의 발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첫째, 기후위기는 명백한 자본주의의 문제이고, 따라서 계급적 문제이며, 자본주의 체제는 이 파국적 위기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놀랍게도 인류 출현 이래 30년 전까지 배출된 양보다 훨씬 많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금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은 2.7도, 한반도 포함 중위도 지역은 4도 이상 상승할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기후위기 논의들을 ‘사기’로 일축하고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선포했다. 가장 부유한 상위 1%와 하위 10%의 백 배가 넘는 탄소배출량 격차를, 폭우나 더위의 위험이 계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경험되고 책임까지 전가됨을 사람들은 이미 알거나 감지한다. 이러한 정세에서 계급은 누락시켜도 그만인 변수가 아니라 원인, 효과, 대안 모든 측면에서 핵심이다. 그렇다면 좌파들은 위기의 원인과 효과로서의 자본주의라는 조건에 기반하여 대안을 구축해 왔는가?

 

여기에 발제의 두 번째 파트는 아니라고 답한다. 가령, 좌파적 탈성장론은 자본주의를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짚고 생산과 소비에 대한 민주적‧계획적 통제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일정한 접점이 있다. 하지만 사이토 고헤이나 제이슨 히켈과 같은 논자들은 계급투쟁 대신 커먼즈 확대나 제국적 생활양식의 극복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계급투쟁이라는 동력과 이행경로가 부재한 대안들은 윤리적 소비 담론과 그린워싱을 비판함에도 결국 ‘소비의 억제’라는 또 다른 개인 도덕주의로 귀결되거나, 자본과 국가권력의 승인과 원조에 의존하면서 착한 사람들의 섬을 짓는 일에 머무른다. 이행경로의 모호함은 단지 운동 수위의 문제라기보다 운동 좌표 상실의 문제다. 예를 들어 2023년 상반기 기후정의운동에서 일부 환경운동 진영은 전기‧가스요금 인상 철회 요구를 비롯한 ‘에너지 기본권’ 주장이 기후위기‧탈탄소 시대에 적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에너지 요금 전반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민중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이 같은 주장은 부지불식간에 발전산업 자본의 입장을 뒷받침하고, 대중을 시장의 가격 신호에 따라 규제되어야 할 상품 소비자로 규정하며 시장주의와 공조한다.

 

이와 달리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를 낳은 체제와 노동자 민중을 궁핍하게 만드는 체제는 결국 같은 체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백종성 동지는 강조했다. 발제의 마지막 파트에서는 기후정의 계급투쟁이 전개되어 온 국내외 사례를 살피고, 앞으로 조직해야 할 운동의 방향을 짚었다. 1970년대 영국 군수산업 구조조정 국면에서 루카스 항공 노동자들이 무기 생산을 거부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생산품 계획서를 공개한 사례, 2018년 캐나다 GM 오샤와 공장에서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이 함께 사회적 필요를 중심으로 생산 전환 요구를 조직한 사례, 독일 공공운수노동자들이 기후운동과 접점을 만들며 2023년과 2024년 전개한 노동자 기후정의파업(메가 스트라이크), 프랑스 토탈 정유공장의 공장 폐쇄와 그린워싱에 “다국적 자본의 손에 친환경 전환을 맡길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노동자들과 기후정의 단체들이 파업과 공동 행동에 나선 사례, 2024년 한국하동화력발전소 폐쇄에 맞서 발전HPS지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기후정의 활동가들이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한 파업 사례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과정은 이번 정세집담회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생명을 빨아먹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노동자들이 기꺼이 동의하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에 속아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화해하는 것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선택지처럼 눈앞에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부터 운동사회까지 팽배한 이 정치적 체념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안정성을 보증하는 메커니즘이라면, 체념을 흔들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만드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쌓고 알려내야 한다. 청송군에서 2023년부터 군 내 모든 버스를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전환으로 버스 이용률이 20%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을 이번 집담회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진짠가 싶어서 검색도 했다). 공적자금으로 교통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현재의 버스 준공영제 대신, 발제의 제안처럼 대중교통 완전공영제를 쟁취하여 노동자 민중의 통제에 둠으로써 효율적으로 노선을 재편하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 아닐까?

 

927기후정의행진이 끝나고 참여자들과 이상한 심심함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부스 짐을 창고로 나르며 위화감 속에서 지난 정세집담회를 떠올렸다. 우리는 내란과 탄핵이라는 격동의 정세를 겪고도 고작 보수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그쳤다. 행진을 했으되 무엇을 이루었는지 모르겠다는 이 허무한 감각이 축적되어 냉소주의로 번지기 전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번 행진의 6대 요구안은 정말로, 어떠한 투쟁을 통해 실현 가능한가? 발제에서 제안된 특정 부문 사업장 외에 무수한 이들이 몸담은 불안정 노동과 재/생산 노동의 현장 사안을 기후정의 의제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가 분할통치로 쪼개진 세계를 통합하여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한때는 좋았다. 선배들이 알려 준 정답과 결말을 큰 소리로 뱉기만 해도 박수를 받았고 내가 세상의 원리를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때는, 사회주의 운동진영이 반복하는 거대서사와 관성화된 분석이 게으르고 투박하고 오만하다고도 느꼈다.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한데 이를 쫓는 노력을 방기하는 관념론 같았다. 지금 사회주의는 무엇을 상상하게 하는가? 누구나 대중교통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운동 속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기후정의운동과 만나게 하기. 노동자들의 현장통제권 확보 투쟁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와 집단학살을 중단토록 하기. 이 세계가 노동하고 돌보는 사람들을 통해 지탱되고 있음을 모두가 알게 하기. 다른 원리로 운용되는 세계는 가능하다고, 방법은 이미 실행되어 왔다고, 두터운 체념을 뚫으며 설득하는 사회주의가 이제는 그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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