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건진법사 자택 압수수색 중 발견된 현금 관봉권의 스티커와 띠지가 분실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종교-정치 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개혁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민주당식의 검찰개혁은 본질적인 한계를 가진다. 불법파견 범죄수사 등 노동자 민중을 대상으로 벌어진 기업범죄 수사에서, 검찰과 자본의 유착은 상시로 있었다. 노동자 민중이 권력을 통제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
건진법사는 이전부터 윤석열과의 관계에 있어 많은 논란을 낳았던 인물이다. 과거 최순실 게이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종의 비선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도 항상 따라다녔다. 이러한 의혹은 윤석열과 김건희가 정치브로커 명태균을 통해 2022년 6월 보궐선거 및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국민의힘 국회의원 공천에 개입했다는 보도와 그에 이은 일련의 폭로로 본격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건진법사는 출마희망자에게 1억 원을 수수하였다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2024년 12월 17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관련 수사를 위해 건진법사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때 현금 1억 6,500만 원이 발견되었고, 그중 5,000만 원은 한국은행 관봉권 형태로 압수되었다.
그런데 관봉권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문제가 되는 것일까? 관봉권은, 문자 그대로 관에서 봉한 돈이라는 뜻이다. 즉 한국은행에서 시중은행에 돈을 공급할 때, 그 액수와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보장하는 의미로 띠지를 두르고 포장하여 스티커를 부착해 둔 돈의 묶음이다. 관봉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조폐공사에서 갓 찍어낸 ‘신권 관봉권’, 다른 하나는 시중에 유통된 후 다시 한국은행에 들어온 돈을 시중은행에 공급할 때 쓰는 ‘사용권 관봉권’이다. 이번에 압수된 관봉권은 사용권 관봉권으로 확인되었다.
관봉권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적이다. 과거에는 한국은행 본점을 통해 개인도 관봉 단위의 화폐 교환이 가능했다. 그러나 2022년 3월부터 한국은행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신권 교환을 중지하였다. 시중은행에 공급되는 관봉권 역시 개인이 소유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관봉권은 대개 각 은행 본점 출납실에 보관된다. 영업점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그때 출하하게 된다. 영업점은 이를 풀어 계수한 후, 은행 띠지로 다시 묶어 고객에게 전달한다. 통상 관봉 자체를 그대로 내주는 경우는 없다. 간혹 영업점의 협조 아래 관봉이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비정상적인 경우이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것이 수집 가치가 있는 신권 관봉권도 아니고, 사용권 관봉권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 출처가 의미심장하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MBC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중은행이 관봉을 주는 곳은 딱 두 가지”라고 하였다. “첫 번째 줘도 될 만한 신뢰할 수 있는 곳, 두 번째는 힘 있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건진법사가 일개 개인이라면 어떻게 관봉권을 가질 수 있었는지 상당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더욱 미심쩍은 것은, 해당 관봉권이 지급된 일자가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고작 사흘 뒤였다는 것이다.
해당 관봉권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건진법사 수중에 들어갔는지, 그 출처를 알기 위해서는 관봉권에 붙어있던 스티커와 띠지 등 증거물이 필요하다. 스티커와 띠지에는 처리부서, 기계식별번호, 담당자 코드, 현금 검수 날짜와 같은 중요 정보들이 있다. 수사기관은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자금줄을 역추적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하였듯,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출처 확인을 위한 증거물들을 모조리 분실하였다. 관봉권이 들어있던 비닐 포장에 붙어있던 스티커는 검찰이 촬영해 둔 자료가 있으나, 각각의 관봉권을 묶어두던 띠지는 완전히 분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압수수색 당시에는 띠지와 스티커가 전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증거물 접수 과정에서 스티커와 띠지가 폐기되었다고 한다. 애초에 수사팀에서 정확히 수사를 지휘했어야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렇듯 초보적인 실수가, 금융범죄수사를 자주 담당해 온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일어났다는 점은 더욱 이상하다. 수사를 방해하거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띠지를 폐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최근에는 띠지 분실에 책임이 있는 수사관들이 말을 맞춘 정황이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해당 수사관들의 진술과는 달리 증거물 원형 보존 시 비닐봉지나 띠지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증언이 법사위에서 제기되었다. 이러한 모든 정황이 의혹을 가속한다.
관봉권 띠지 사태는 노동자 민중에게 일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착은 노동자 민중에게 전혀 새롭지 않다. 불법파견 범죄수사를 비롯해, 기업이 노동자 민중에게 자행한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보이는 행태는 노동자 민중에게 매우 익숙하다. 최대한 자본에 유리하게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야말로 자본의 로펌이라고 할 만한 노골적인 유착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사례들을 살펴보자.
최근, 검찰이 쿠팡의 퇴직금 갈취를 무혐의 처분하며 핵심 증거를 누락·폐기했음이 드러났다. 가히 ‘노동판 관봉권 띠지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이 사건은, 검찰이 자본을 위해 얼마나 노골적으로 봉사하는지 잘 드러낸다. 2023년 5월, 쿠팡은 위법한 취업규칙 변경으로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체계적으로 갈취하기 시작했다.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한 쿠팡 노동자들의 진정으로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나섰고, 결국 쿠팡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부는 쿠팡 내부 문건까지 확보해 검찰에 넘겼다. 문건은 취업규칙을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바꾸기 두 달 전 작성된 것이었다. 그 안에는 쿠팡이 “일용직 사원들에게 연차, 퇴직금, 근로시간 단절 개념을 별도로 설명하지 않고, 이의 제기가 있을 시 개별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운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시 말해, 퇴직금 갈취가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남부지검은 이 핵심 증거조차 누락하며 쿠팡을 불기소 처리했다.
사진: 쿠팡대책위
2019년 9월부터 2020년 5월까지 발생한 현대중공업의 중대재해 4건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635건에 대해, 검찰은 2021년 9월 27일 열린 첫 공판에서 고작 벌금 2천만 원을 구형했다. 개별 건당이 아니다. 중대재해 4건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635건, 총 639건 전체에 대해 고작 2천만 원이다. 이러니 노동현장에서 사람이 죽고 다쳐도, 기업들은 안전조치를 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 준수를 위해 현장 안전에 돈을 쓰는 것보다 벌금을 지불하는 것이 더 싸니 말이다.
구미 아사히글라스 공장 사내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문제에서도 검찰은 똑 닮은 행태를 보였다. 해당 사건에서는 원청 일본인 대표이사가 결국 2021년 8월 11일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실형 선고가 날 만큼 중대하고, 시비가 명확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즉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기소를 거쳐 처리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회사를 최초에 고소한 것은 2015년 7월이었다. 이토록 명확한 사건을 놓고, 검찰은 6년 동안 질질 끌며 노동자들의 투쟁 포기를 유도한 것이다. 검찰은 명백한 불법파견 증거를 가지고도 ‘도급’과 ‘파견’조차 구분하지 못하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자본의 로펌으로 기능하는 검찰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노동자들이 떠안는다.

검찰은 대기업의 중대재해범죄에도 유독 관대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7일부터 정권이 바뀐 올해(2025년) 6월 말까지도, 중대산업재해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121건 중 대기업의 경영책임자가 기소된 사건은 13건에 불과했다. 반복적인 중대재해에도 불구하고 기소되지 않은 대기업도 많다. 검찰은 의도적으로 더디게 기소하거나,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있다. 수사 역시 소극적이다. 형식적인 안전조치의무 이행을 이유로, 실질적 이행 여부는 면밀히 수사하지도 않는 것이다. 수사가 되지 않으니, 기소가 될 리도 없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맞선 투쟁과 노동자 민중의 권력통제가 대안이다
민주당은 앞서 살핀 건진법사 관련 핵심 증거 은폐 정황 등을 이유로 검찰개혁 필요성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기존 검찰청을 폐지하고, 검찰의 공소권은 법무부 산하 공소청에, 수사권은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에 각각 넘겨준다. 기존 검찰청 검사는 공소청 검사가 된다. 기존 검찰수사관은 중대범죄수사청 수사관이 된다. 기존 검찰을 해체하고, 검찰이 가지고 있던 공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막대한 검찰권력이 각종 유착 요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과연 민주당이 이러한 ‘검찰개혁’을 이뤄낸다고 노동자 민중의 상황이 나아질까? 그 한계는 뚜렷하다. 현재 개혁안만 보더라도 그렇다. 기존의 현직 검사들, 검찰수사관들이 그대로 신설 기관으로 이동하여 공소청 검사, 중대범죄수사청 수사관이 된다. 재벌 대기업 눈치를 보며 봐주기 수사를 이어오던 그들이 자리만 옮기는 것이다. 민주당은 결국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당일 뿐이다.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만들어져도,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그 본질적 기능 역시 변하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이 투쟁하지 않는 한, 공소청 검사들은 기존 검찰청 검사처럼 자본에 대한 기소를 지연하고, 불기소 처분을 내릴 것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수사관들은 자본의 범죄에 대해 질질 끌며 봐주기 수사를 계속할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맞선 투쟁과 노동자 민중의 권력통제만이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있다. 이는 공직자들에 대한 상시적 소환권과 파면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맞물린다. 노동자 민중을 위해 봉사해야 할 국가공무원이 노동자 민중의 이해관계에 어긋나게 행위한다면, 언제든 소환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상황을 보자. 어떤 검사에게 아무리 큰 문제가 있어도, 해당 검사에 대한 탄핵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발의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어야만 가능하다. 애초 노동자 민중과 괴리된 300명의 엘리트에 의해서만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며, 그 문제제기에 대한 처분 또한 9명 남짓한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공직자들이 노동자 민중에게 해를 끼쳐도, 노동자 민중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자 민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식 ‘검찰개혁’에 기대서는 안 된다. 노동자 민중은 국가권력에 맞선 싸움 속에서, 국가관료들을 소환하고 파면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