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 태안화력 정문 앞에서 김충현 노동자 기억식을 치른 후, 태안 읍내에서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1.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훈이라고 합니다. 2021년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설립 이후 처음에는 태안분회장을 했고, 지금은 지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현재 KPS비정규직지회는 지난 6월 2일 돌아가신 故 김충현 노동자의 동료로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충현 동지의 죽음이 있기 전, 지회에서는 故 김충현 동지가 속한 서부발전 2차 하청업체 한국파워오엔엠을 포함한 사측과 교섭하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교섭 경과를 알고 싶습니다.
조합이 설립된 2021년 당시 한전KPS는 하청노동자를 상대로 불공정 계약을 많이 하고 임금 착취도 많이 했었어요. 그것 때문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죠. 노동조합 설립 이후 불법파견도 인지하게 되어 2022년에 불법파견 소송, 즉 근로자지위확인 소송과 함께 임금청구 소송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한전KPS에 불법파견 인정과 하청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발전소 상시·지속업무에 하청 사용은 위법이니 이를 중단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한전KPS와 싸우는 와중에 한전KPS로부터 업무지시가 몰린다거나, 시키면 안 되는 일을 계속 시키는 등 탄압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김충현 동지가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불법파견에 대해, 한전KPS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들을 했어요. 불법파견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있으니까, 책임을 지우려고 한 것이죠. 기존에는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근무했다면, 따로 근무시키는 식으로요. 눈속임으로 업무를 나눠놓은 게 있거든요.
그래도 발전소가 내 일터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이 있어요. 그 자부심으로 어떻게든 참고 일하던 와중에 내 형제 같은 사람이 옆에서 죽은 거잖아요.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싶어 밖으로 뛰쳐나가 투쟁을 결의하게 되었던 거죠. 3개월 동안의 투쟁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다 싶은데, 당연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한전KPS와는 얘기가 안 통하더라고요.
현재 지회가 3개 정도 교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김충현 동지가 돌아가신 한국파워오엔엠이라는 회사와의 교섭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저희의 직접사용자인 한전KPS와의 교섭, 그리고 범정부 협의체, 정부와의 교섭이 있는 거죠. 사실은 전부 다 잘 안 되고 있어요.
한국파워오엔엠은 소속 노동자가 돌아가셨는데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불법파견 승소판결이 나니, 오히려 ‘그래, 우리는 직접사용자가 아니야’, ‘사실 우리는 인력사무소야’, ‘우리는 한전KPS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죄가 없어’라는 반응이에요. 한국파워오엔엠은 내년 1월에 계약이 종료되면 철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도 ‘한전KPS에 따져라, 우리는 줄 것이 없다’, ‘손해를 많이 봤다’며 빠져나갈 생각만 합니다.
김충현 동지 장례 전에, 한전KPS와 서부발전이 같은 테이블에 나와 직접교섭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주말 밤을 꼬박 새워 교섭했는데, 한전KPS와 서부발전은 ‘처벌불원서’를 원했어요. 심지어 사측은 유족분 앞에서 처벌불원서를 원한다고 이야기하고, 그 요구로 유족분 집에 찾아가기까지 했습니다. 어떻게건 중대재해처벌법을 회피해보려는 파렴치한 짓이었습니다.
지금 지회는 직접고용을 주장합니다. 김충현 동지가 돌아가신 근본적 원인은 원청 책임 안전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전KPS는 김충현 동지에게 전화 등 문서가 남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업무지시를 했어요. 문서는 불법파견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측은 계속 ‘긴급작업’ 방식으로 업무를 직접 지시했고, 그 작업들은 사실 계약에 없는 사항들이었어요. 계약하지 않은 일도 계속 맡게되다보니, 업무가 과중해 김충현 동지가 생전에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예전에 노동조합에 가입하셨었어요. 그때도 그 얘기를 자주 토로하셨고, 다른 회사로 이직도 심각하게 고민하셨죠.
한전KPS에 직접고용 의지가 없음을 교섭에서 확인했습니다. 직접고용을 위해서는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최종 결론이었어요. 그렇게 첫 교섭은 파행으로 끝났습니다. 한전KPS가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오라고 했기 때문에, 교섭 결렬 후 김충현 동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상경투쟁을 시작했어요. 7년 전 김용균 동지의 죽음 이후 민주당 정권이 약속한 것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은 우리 같은 2차 하청업체까지는 적용되지 않았어요. 1차 하청에 집중되어 있었고, 2차 하청은 아예 범위 밖에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이행 요구와 함께, 2차 하청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한전KPS에서 정부 승인을 받아오라는데, 정부는 그동안 뭘 했느냐’, ‘한전KPS가 이 모양이다. 발전소 하청에서는 무수한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 그 불법으로 사람이 죽었다’ 등등. 새 대통령이 산업재해를 근절하겠다고 했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하청노동자 얘기를 듣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협의체가 원만하게 열릴 줄 알았어요.
김충현 대책위가 꾸려지고 나서, 수많은 국회의원이 장례식장에 찾아왔어요. 국회의원들이 조문 와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무슨 힘을 썼는지 잘 모르겠어요. 본인들이 언론에 나오려는 의도 외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요. 정부협의체도 대통령 비서실장이 요구안을 받아간 후 빨리 꾸려질 줄 알았는데 늘어졌어요. 김충현 동지가 6월 2일 돌아가셨는데, 8월 13일에야 협의체가 출범했어요. 두 달 넘게 걸린 거죠.
그 이유를 들어보니 국무총리가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지회 동지들이 국무총리 공관에서 노숙농성하며 항의했습니다. 당시 국무총리 내정자였던 김민석도 빈소에 와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내뱉은 말이 있었거든요. 공관 앞 농성 다음 날 김민석이 민주노총에 방문했을 때도 연좌하며 요구를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8월 13일에 협의체가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꽉 막힌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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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한전KPS, 2차하청업체, 서부발전 원청, 그리고 정부까지 다양한 이들과 투쟁하고 계십니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의 망언도 떠오르는데요, 투쟁하며 잊지 못할 기억들이 있나요?
김소희 의원 망언, 기억에 많이 남네요. 김영훈 노동부 장관 청문회 당시 이야기한 건데, 그것도 저희 보도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했던 거예요. ‘노조 가입 안 해서 왕따시킨 거 아니냐’, 그 이야기를 듣고 조합원들이 엄청나게 분노했었어요.
당시 얘기를 드리자면 김충현 동지가 노조에 가입했다가 탈퇴했었어요. 김충현 동지는 베테랑 선반 기술자고 자격증도 많아요. 그런데 한전KPS가 김충현 동지 경력과 기술에 비해 임금이나 계약조건을 후려친 게 정말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노조도 최선을 다해 교섭하려고 했는데 역부족인 현실도 있었습니다. 사실상 한전KPS와 직접 교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청업체와 교섭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 과정은 정말 답답했죠. 김충현 동지도 한전KPS 관리자한테 얘기하고 하청업체 사장한테도 얘기하고, 한편으로는 이직을 고민하시기도 했어요.
그렇게 힘들어했던 과정에서, 김충현 동지 본인은 노조에 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던 거고요. 그때 지회는 단체교섭 중이었거든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 중 개인 교섭을 하면 안 되는 게 있어서, ‘내가 일단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와 직접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시며 탈퇴하셨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전KPS와 관리자한테도 얘기했어요. ‘내가 이렇게 부당한 계약을 하고 있는데 한전KPS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을 때, 오히려 한전KPS는 김충현 동지 목줄을 쥐면서 ‘당신과 계약 못 하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나가시게 됐던 거고, 김충현 동지가 하던 선반 작업을 다른 동지가 했어요. 이후 김충현 동지가 필요해져서 한전KPS가 다시 채용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다시 임금을 후려쳐 깎으며 채용한 것이죠. 김충현 동지가 자리를 비우고 있는 동안 이직을 준비했었는데, 나이가 있으시니 이직이 쉽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이 현장에 돌아오시게 된 거죠.
한전KPS에 억울한 점이 많았는데, 그 내용을 저와 조합원 동지들이 다 알고 있잖아요. 같은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김소희 의원이 그런 말을 해서, 속으로 욕이란 욕을 다 했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매주 상경해서 투쟁문화제를 하잖아요. 연대하는 분들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매주 서울 대통령실 앞에 앉아 투쟁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공연도 해주시고, 발언해 주시고, 같이 앉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김충현 동지가 사고 당하고 쓰러져 계실 때는 머리가 백지가 되더라고요. 그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든 것이, 과학수사반이라고 하죠? 경찰들이 와서 상황을 보는 와중에 한전KPS가 통제를 하려고 했던 거예요. 조합원 동지들이야말로 김충현 동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하는데, 한전KPS가 못 보게 하는 거예요. 정신이 번쩍 들면서 ‘대응해야겠네, 그런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장 다른 노조에 전화했었어요. ‘어떻게 대응해야 되냐’, 저와 교류가 있었던 노동조합에 먼저 전화했었고, 공공운수노조에도 소식을 전하며 대응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가족들이 상황을 알아야 하니, 유가족을 찾아 모셔야 했고요. 유가족에게 한전KPS의 행태를 전달하며 같이 대응하자고 말씀드렸는데, 그게 제일 많이 도움이 됐었던 것 같고요.
경찰이 수사하는 동안 한전KPS는 입장문을 냈었어요. 입장문에는 ‘왜 김충현 동지가 혼자 작업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시킨 게 아닌데 임의작업한 거다’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굉장히 화가 나고 황당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니라고 알리며 함께 대응했던 거고요. 그때 소식 듣고 부랴부랴 장례식장에 달려와 주신 분들이 기억에 남죠.
앞에 계신 학생사회주의자연대(인터뷰어는 학생사회주의자연대 회원이기도 하다)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관심 가져주고 만나 뵙는 자리가 많지 않거든요. 사실 조합원들도 굉장히 관심 있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고요.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태안에 직접 찾아와서 저희와 간담회를 한 것도 뜻깊다고 생각했습니다.
Q4.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은 누구나 아찔했던 경험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권한이 없어 위험이 방치되거나 증폭되고, 결국 재해로 이어졌을 때 작업자 개인 책임으로 떠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들었습니다. 실제 경험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발전소에는 중대재해도 많지만, 어떤 때는 경미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어떤 때는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심하게 다치기도 하고... 많이 다쳐요. 어떤 사람은 이빨이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2도 이상의 화상을 입기도 하고, 어디가 부러지기도 하고, 물에 빠지면서 작업하는 경우도 있어요.
‘안전조치를 분명히 요구했는데도 사측이 지키지 않아 사고를 당한 거다’, ‘안전 개선조치 해달라, 그래야 우리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고 수도 없이 말합니다. 그래도 한전KPS와 서부발전, 특히 서부발전은 ‘안전 예산이 부족하다. 여기 효율도 안 나오는데 뭐하러 안전조치하고 개선하냐’는 식이예요. 회사도 설비는 고장나면 안 되고, 유지는 해야 하니 현장노동자를 땜빵으로 투입하고 보수하는 건데, 유지보수도 한계가 있어요. 유지보수만으로 도저히 안전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대공사를 해야 한다고 요청을 하는데 그게 반영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원청에서는, 일단 다치면 119에 신고하지 않고 은폐하려고 해요. 한전KPS나 서부발전 같은 경우 산재가 발생하면 페널티를 받아요. 경영등급 점수가 깎이니 산재를 은폐하죠. 경영등급을 잘 받아야 성과금이 잘 나오는데, 정규직들은 경영등급 점수가 깎이면 성과금이 깎이잖아요. 그걸 어떻게든 막으려고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은폐하냐면, 사내에 자체 의료시스템이 있으니 외부에 신고하지 말라고 해요. 자체 시스템에 신고하면 119로 안 보내고 내부조치를 해버립니다. 가능한 한 산재로 보고를 안 해요. 한전KPS는 관리자가 아무 조치도 안 하고, 심지어 내부시스템 신고도 안 하고 그냥 개인적으로 병원에 데려가 공상 처리를 유도합니다. 만약 산재 처리한다고 하면 ‘너 괜찮겠냐’, ‘회사에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웬만하면 공상 처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돌려 말하며 협박해요. 사실 일하는 입장에서는 계약기간도 짧은데 해코지라도 당할까봐 산재 처리가 쉽지 않습니다. 산재 처리하려면 잘릴 각오해야 하는 상황은 참담합니다. 오히려 다친 사람이 벼랑으로 몰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특히 사고가 나면 경위서를 개개인이 쓰게 만들어요.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기 부주의나 불찰로 몰아요. ‘왜 사고가 났습니까?’, ‘당신이 잘못한 거 아니에요? 경위서 쓰세요’라는 식으로요. 경위서 쓰면, 경위서를 보고 ‘경위서 보니 당신이 잘못한 거 맞네요’, 트집 잡아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요. 비열한 수법을 많이 쓰더라고요. 사실 안전은 원청 책임인데, 안전시스템을 개선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안 들어주고 강제로 일 시키고 사고 나면 오히려 뻔뻔하게 반문합니다. ‘그렇게 위험했으면 작업중지권 쓰지 왜 안 쓰셨어요?’
사실상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쓸 수 없는 구조예요. 원청은 어떻게건 저희를 작업하게 하려고 하는데, 위험하다고 작업을 거부하면 어떻게 해코지할지 몰라서요. 작업중지권 행사에 대해 불이익을 주거나, ‘내년에 당신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어 작업중지권을 쓰기 힘들어요. 이렇게 개개인이 위험을 감내하며 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원청이 책임져야 할 안전조치가 지켜지지 않는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일하는데, 사고가 일어나면 그것조차 작업자 개인들에게 책임을 물으니 많이 힘들었죠.
Q5. 발전소 폐쇄가 임박한 상황에서 현장 조합원 동지들이 이를 얼마나 급박하게 체감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바깥에서 느끼는 위기감과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저희는 발전소 폐쇄에 대해 이전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하청업체와 계속 쪼개기 계약을 하니까요. 짧으면 3개월 6개월, 길어봤자 1년 이렇게 고용하고, 회사가 계속 바뀌는 와중에 발전소 폐쇄까지 겹치게 되니 그렇지 않아도 늘 있던 고용불안이 더 심해졌거든요.
특히나 그동안에는 발전소 폐쇄한다는 소식을 귀동냥으로 들었지 실제로 언제 폐쇄되는지는 노동자들도 최근 알게 되었어요. 2025년 12월로 날짜까지 정해지니 이제 버틸 수가 없는 거죠. ‘가만히 있다가는 다 잘리게 생겼다’, ‘몇 명 나가라고 하면 우리끼리 싸우게 생겼다’며 불안해했죠. 폐쇄된 다른 곳을 보니 실제로 해고당하거나 협력업체가 통으로 계약해지되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폐쇄될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정규직도 있고 비정규직도 있는데, 정규직들이 잘리지 않으려면 비정규직들이 잘려야 되는 상황인 거예요. 원청은 협력업체를 애초에 그렇게 설계한 거예요. 소모품처럼 써먹으려고 설계한 거죠. 원청은 ‘계약해지 하면 되지 그게 뭐가 문제야’라고 하고, 계약해지 하면서도 ‘이건 해고가 아니라 정당하게 계약에 따라 집행한 것뿐’이라고 해요. 그러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가 부품처럼 쓰이는구나, 당장 12월 되면 우리를 자르겠구나’라는 불안감이 더 팽배해진 거죠.
Q6. 지난해 5월 발전HPS 하청노동자들에 이어 지난 8월 27일 한전KPS, 금화, 발전HPS 등 발전비정규노동자 수백 명이 총파업에 나섰습니다. 파업의 요구와 경과, 조직 과정, 의미, 성과 등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8월 27일이었죠. 많이 놀랐어요. 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한자리에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은 저도 처음 봤거든요. 그동안은 모여도 소규모였고, 아무래도 조직하기 힘들다 보니까요. 8월 27일 파업을 준비하면서도 다 모일 수 있을까, 기대 반 불안 반이었는데, 이 투쟁 속에서 우리가 해왔던 노력이 의미가 있었는지 엄청 나와 주셨더라고요. 발전노동자들이 다들 발전소 폐쇄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고, 다들 우리와 다르지 않았구나. 그때 많이 도와주셔서, 감동하기도 했어요. 제가 발언을 했었는데 목소리에 힘이 좀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1차 하청과 우리 같은 2차 하청 사이에 온도차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모두 발전소 폐쇄로 인한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차 하청은 인원이 얼마 안 되거든요. 전국적으로 따지면 꽤 규모가 있는데, 발전소 하나하나 따지면 1차 하청에 비해서 소규모죠. 2차 하청이 먼저 잘려나가면 그 다음이 1차 하청인 걸 그들도 알기 때문에 함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되긴 하지만,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기 때문에 같이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된 자리였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으니 다음에도 이런 자리가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Q7.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의 요구로 제시해 온 정의로운 전환,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이 함께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힘을 만들어왔을까요?
사실 정의로운 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을 주변에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나 싶기도 한데요. 저희가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했는데도 저희 상황을 알고 나서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아요. 사실 ‘정의로운 전환’이나 ‘공공재생에너지’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다 설명하려면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는 못했죠. 그런데 ‘발전소 상황이 이랬구나’ 하는 공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발전소에도 비정규직이 얼마나 많은지, 비정규직이 얼마나 참담한 현실 속에 있는지 설명하고, 공공재생에너지 선전물 같은 걸 돌리면서 조직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민주노조 동지들한테 통했던 것 같아요. 지난 활동이 의미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설득 과정이 많이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저희가 돌아다니며 힘을 받았죠. 감사한 일이죠.
(설득의 과정이 없었기보다는, 발전노동자 동지들이 현장의 고민 속에서 대안으로 정의로운 전환, 공공재생에너지라는 결론을 내리고 실천하면서 스스로 사회적 동의를 만들어 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이라면, 예전에는 갈등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기후운동 진영에 있는 분들이랑 사실 많이 고민이 있었고요. 발전소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 잘리게 생겼는데 기후를 생각할 수 있냐는 얘기도 있었던 거고요. 기후운동 진영에서는 발전소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몰랐으니까 일단 폐쇄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고... 이런 얘기들이 부딪혔는데 서로가 교류를 자주 했어요. 그 과정에서 기후활동가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 또 우리 얘기를 들어주는구나, 그러면 우리도 달리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국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기후위기 대응은 거스를 수 없는데, 우리는 뭘 얘기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발전산업이 바뀌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발전소가 폐쇄되면 지역적으로도 영향이 있는데, 노동자들의 생계와 지역경제를 고려할 때 발전소 폐쇄가 결국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희생이 있어야만 한다면, 그게 어떻게 정의로운 전환일 수 있겠느냐고 얘기됐던 거죠. 기후활동가들과 발전소 노동자들이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소가 폐쇄되어도 노동자의 삶은 폐쇄될 수 없다’라는 슬로건이 나온 거죠. 그러면서 많이 느꼈어요. 이렇게 하면서 노조 활동가이자 기후활동가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생겨나고요.
Q8. 8월 28일 불법파견 1심 승소판결 당시 심정이 궁금합니다. 특히 KPS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이 현장 복귀한 이후에는, 김충현 투쟁 당시 작업중단 상황에서 싸웠던 것과는 또 다른 결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2월 발전소 폐쇄와 연동된 투쟁 계획, 방향, 고민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법원이 직접고용 판결을 내린 후 한전KPS는 교섭에 안 나왔어요. 대신 불법파견을 부정하기 위해,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회사가 연관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수단은 파업이죠. 이미 한국파워오엔엠과는 교섭이 결렬되어 쟁의권을 확보하고 있어요. 그래서 파업투쟁으로 한전KPS에 직접고용 판결 이행을 요구하는 거고요. 험난하겠지만, 투쟁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차근차근히 하고자 합니다.
협의체를 통해 국무총리 훈령이 나올 거예요. 국가기관이라면 이 훈령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으니, 저희 요구가 잘 반영되도록 정부에도 요구해야 하고요. 저희가 매주 상경 투쟁을 했듯 계속 서울 갈 일이 있을 겁니다.
대통령이 그랬잖아요. ‘하청의 하청은 문제가 있다,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 저는 이런 유령회사 같은 하청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청구조, 일 좀 해보셨던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왜 하청이 이런 식으로 존재해야 하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노란봉투법도 통과됐잖아요. 노조법 2·3조가 개정된 배경이 무엇인지를, 현장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이 숨졌는지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일해왔는지를 사람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한국 사회가 좀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청이 중간착취가 너무 많아요. 아웃소싱도 너무 많고요. 발전소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어느 공장이든 조선소든 산업현장이라면 아웃소싱, 하청이 많기 때문에, 그런 하청부터 근절해야 노동자도 제대로 대가를 받고 일할 수 있어요. 특히 하청업체들은 유령 회사들이 많거나, 아니면 인력사무소처럼 진짜 인력만 공급하는 기형적인 형태가 많거든요. 건설업이라고 등록은 해놨지만 실질적으로 건설업 전문 지식도 없이 인력만 조달하는 회사들이 알바사이트에 업체 등록하고 사업하는 것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착취가 너무 심한 것 같고, 그런 것부터 하나하나 풀려야 사람들이 제대로 된 노동 환경에서... 하청업체들은 대부분 안전시스템도 구축이 안 돼 있어요. 저희도 똑같습니다. 김충현 동지가 돌아가신 원인은, KPS가 직접사용자로서 안전관리 체계를 적용했어야 하는데, 그런 책임 없이 위험을 방치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게 당해도 어디 하나 하소연할 데도 없었던 거고, 김충현 동지가 그렇게 돌아가셨어도 한전KPS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계속 법을 악용하고 회피하거든요. 이게 발전소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우리나라 전반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9. 마지막으로 조합원들이나 연대 동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불법파견 승소했다고 자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선 불법파견임을 법원이 공증한 것이니 이 공증으로 다시 투쟁을 만들어나갈 겁니다. 한전KPS가 이렇게까지 악독하게 구는 상황을 두고만 보지 않을 거고, 발전소 전체에서 횡행하는 불법적인 일들을 밝혀낼 겁니다. 다단계 하청과 불법을 근절시키는 투쟁 과정에서 정부에 책임을 묻고, 저희 뜻을 끝까지 관철할 겁니다. 이 투쟁을 끝까지 잘해보려고 합니다. 한전KPS가 저희를 못살게 굴면 저희도 똑같이 못살게 굴 겁니다.
한전KPS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직접고용 쟁취와 불법적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잖아요. 김충현 동지를 돌아가시게 한 책임자들, 그 책임자들을 직접 처벌하는 순간까지 싸우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함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