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노동절 시위 "시대착오적 정권은 노동권을 무시한다" 사진: CNA
5월 9일, 대만 입법원은 새로운 공휴일과 노동절의 적용 범위에 공공부문 노동자를 포함하도록 확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5년부터 이어진 10년의 투쟁 끝에 대만의 공휴일이 기존보다 ‘4+1일’ 늘어난 것이다. △신정 전날 △공자 탄신일 겸 스승의 날인 9월 28일 △광복절 겸 구닝터우 전투(Battle of Guningtou) 기념일인 10월 25일 △헌법절 12월 25일로 4일이 새로운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기존에는 민간에만 적용되었던 국제 노동절인 5월 1일이 올해부터 공무원 등 공공부문에도 확대 적용되어 사실상 1일이 추가되었다. 결과적으로 1인당 연간 공휴일 수가 기존 12일에서 16일로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법안은 원주민 부족들이 전통적인 의식에 따라 3일을 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법안의 통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초과노동을 하고서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실질 급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사와 공무원들은 노동절에도 쉬지 못했다. 특히 교사들은 스승의 날에도 쉴 수 없었다. 전국교사노조연맹(NFTU), 전국교육연합연맹(NFEU) 등은 이러한 불평등에 맞서 수년간 시민단체들과 함께 싸워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5년 2월, 국민당(KMT)과 인민당(TPP)이 과거에 감축되었던 공휴일을 복원하고자 입법안을 제안했다. 같은 해 5월 1일 노동절 시위에서 노동권 단체들은 주4일제,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공휴일 연장을 포함한 7개의 주요 요구안을 내걸었다. 대만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에 맞선 삼십여 년간의 투쟁이 만든 하나의 성과이다.
대만 노동운동은 독립노조를 형성하고 민영화 반대 투쟁을 벌이며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다. 2014년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파괴적인 전망을 인지한 청년학생들이 ‘해바라기 운동’으로 알려진 노학연대를 실현했다. 해바라기 운동은 2014년 3월에 약 24일간 이어졌던 입법원 점거 시위이다. 당시 여당인 국민당이 중국과의 ‘양안서비스무역협정(CSSTA)’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였고 이에 맞서 학생과 시민단체가 입법원을 점거한 것이다. 이 시위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 간 운동이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과 저임금 문제 등을 언급하고 총파업을 촉구하는 등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하는 광장 정치로 나아가고자 했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최저임금이 10년 동안 동일하게 유지되었을 정도로 노동운동이 위축되어 있던 상황에서 학생운동은 2014년에 해바라기 운동으로 절정을 맞이했고, 노학연대로써 노동운동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노동부의 ‘공휴일 7일 축소 및 40시간 근무제’ 도입 계획안에 맞선 공휴일 감축 반대 시위 및 주 40시간제 개혁 투쟁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 5월, 이주노동자들은 계약기간 상한선 폐지와 함께 5월 1일 노동절의 공휴일 적용 범위 전면 확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5월 9일 국민당(KMT)과 인민당(TPP)이 법안을 공동 발의하였고, 57:50의 표결로 통과된 것이다. 다만 여당인 민진당(DPP) 의원들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공휴일 확대는 단지 ‘쉬는 날’이 늘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0년간 이어져 온 노동자 투쟁과 이에 연대해 온 민중의 여론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공공부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도 공휴일 및 유급휴가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등, 더 많은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쟁취한 것이다. 이를 위해 10년 동안 대만의 노동자와 시민은 여러 차례의 토론회, 지지 기자회견, 서명운동, 행진, 시위를 이어 왔다. 대만노동조합총연맹은 이번 입법안을 대만 노동자들이 간신히 얻은 승리이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가장 약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한국도 대만과 마찬가지로 공휴일을 둘러싼 노동운동 역사가 있다. 한국의 공휴일은 오랫동안 노동법상 휴일이 아니었다. 사업장에 따라 공휴일은 유급휴일이 되기도 하고, 노동일이 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노동부가 내놓은 표준취업규칙(2008년)을 기반으로, 사용자들은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제외하거나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하는 등 편법적인 작업을 벌였다. 2023년에 와서야 5인 이상 사업장에 공휴일 유급휴일 적용이 의무화되었으나(‘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의 단계적 민간 적용),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은 휴업수당 없이 무급으로 쉬거나 가산수당도 받지 못한 채 근무해 왔다. 이렇듯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과로와 저임금의 위험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있었다.
2014년 민주노총의 ‘노동절 유급휴일 권리찾기 운동’, 2017년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 운동’ 등을 비롯한 노동시간 단축 요구 투쟁에도, 2025년인 지금까지도 한국 공휴일에는 쉬지 못하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당장 250만명 가량의 5인 미만 사업장 임금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공휴일에도 법적 유급휴일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만 상황은 더 열악하다. 한국보다 평균임금이 낮고, 노동운동 역시 한국보다 취약하며, 점점 길어지는 노동시간과 높아지는 노동강도에 더불어 급여는 3년 연속 줄어 왔다. 또한 평균적으로 8일마다 한 명의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등 초과노동 문제가 심각하다. 많은 자본가들이 실적평가제나 책임제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수당조차 지급하지 않고 초과근무를 요구한다. 노동시간이 가장 높은 제조업에서, 노동자들은 매달 18.1시간 초과 근무한다. 이 외에도 의료산업과 배달 산업 등에서도 초과노동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초과노동 문제는 일자리 감소에 따라 실직을 두려워하는 노동자들이 야근을 감내하며 극심해졌다. 이는 7.6%에 불과한 대만 노동조합 조직률과 직결되어 있다. 실업의 공포로 노동자를 규율하며 초과노동으로 이윤을 짜내는 대만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고 거둔 이번 승리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만 노동자들의 승리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의미가 깊다. 한국 자본주의는 각 산업 노동시간 연장으로 이윤축적의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특별법추진과정에서 이미 반도체산업 연구개발인력 특별연장근로 허용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2025년 3월 서일준 등 20인이 발의한 ‘조선산업 지원 특별법안’ 역시 주 12시간을 초과한 연장노동을 당사자 합의로 가능케하자고 명시했다. 전 세계 자본가들은 늘 ‘대만 노동자들은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산업의 생존을 위해 더 오래 일한다’, ‘한국 노동자들은 산업경쟁력 확대를 위해 수당도 없이 일한다’며 자국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를 억누른다. 노동시간 연장과 착취 강화 시도를 노동자의 국제연대로 끊어내야 한다. 심화하는 위기, 착취 강화로 연명하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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