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을 만나다#6]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먹고사니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 요지경 동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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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말벌을 만나다#6]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먹고사니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 요지경 동지를 만나다

  • 유지원
  • 등록 2025.08.04 13:53
  • 조회수 5,249

12.3 내란 이후,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는 많은 '말벌동지'들을 만났다.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된 뒤에도 많은 ‘말벌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노동조합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기도 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을까? 그 전에 이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왜 광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대오에 섰을까?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2025년 여름의 초입이던 5월 14일, 한 말벌동지를 만났다. 금속노조 조끼를 당당히 입고 서대문 인근의 카페에 나타난 그는 바로 요지경 동지. 요지경 동지는 지난 윤석열 퇴진 광장을 통해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거통고지회가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 자신의 삶과도 너무나 맞닿아 있다고 느껴 선뜻 민주노조에 발을 들였다고 했다. 자본주의 위기가 격화하는 지금, 2030 청년의 삶에 맞닿는 민주노조의 투쟁이란 무엇일까? 민주노조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까? 여러가지를 묻고 들었다.

 

 

Q1. 12·3 내란사태 이전에도 사회의제나 활동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주로 어느 방면에서였나요? 처음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지경: 계엄령 직후의 시위부터 나가기는 했어요. 초반에는 열심히 나가지는 못했는데, 시위 장소가 바뀌고 나선 퇴근하고 나갈 시간이 생겼거든요. 그때부터는 안 놓치고 나가려고 노력했고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뭔지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 나왔냐라고 물어보면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는 게 제일 맞는 대답인 것 같아요. 많이는 아니지만 이전에도 시위를 나가긴 했었거든요. 내란 직전 마지막 나갔던 시위는 딥페이크 규탄 집회예요. 그때 지혜복 선생님 발언을 듣고 A학교 문제를 알게 되기도 했고요. 그 밖에는 기후 의제, 장애인 인권, 퀴어 퍼레이드 나가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계엄 당시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계엄령 자체가 먼 과거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계엄이 터졌다'고 하니까 너무 막막하고 당황스러웠어요. 당장 ‘내일 출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잠을 한숨도 못 잔 채로 1시간 일찍 출근했어요. 밤 새고 출근했는데 신문사 사람들은 미리 나와서 대응 준비를 했더라고요. 제가 기사를 쓰는 사람은 아니었어서, 저를 일찍 부르지는 않았는데 기자들이나 조판 작업하시는 분들은 일찍부터 나와서 새벽 내내 일하셨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계엄에 대한 첫 인상은, "너무너무 무서운데 동시에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계엄 세력이 우리를 얕잡아봤을 가능성도 있지만요. 계엄이라는 게, 역사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발동되면 돌이키기 어렵다고 하잖아요. 생각해 보면 박정희 때도 그렇고. 그런데 윤석열이 계엄 포고를 하니까 당일 제압되는 거예요.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벌어졌을 억압과 탄압에 관한 증거는 굉장히 많이 나왔지만, 계엄군 측 손발이 안 맞았던 부분들이 저를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위협을 크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런 게 대통령이냐"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원: 그렇군요. 언론사에서 일하셨다고 하니 내란 전에도 사회 문제에 관심은 있으셨겠네요.


지경: 네. 인권 문제라든가. 저는 주로 관심있는 이슈가, 사실 동생이 발달장애인이어서요. 장애인 관련 의제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것 같아요. 직접 집회에 참여하진 않았어도 소식을 챙겨 본다든지, 뉴스에 대해 의견을 낸다든지 했어요.

 

Q2.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고 난 후 스스로 가장 변화했다고 느끼신 지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혹시 그것이 사회를 보는 관점이나 정치적 입장과도 연관이 있다면,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지경: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한데, 따지자면 많이 안 변한 것 같기도 해요. 애매한 부분이에요. 제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이런저런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의제에 대해 직접 말하기 시작하면서 "'급속꿘화(급속 운동권화)' 됐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저를 알던 사람들은 "넌 원래 그랬다"라는 이야기도 꽤 하거든요.

 

그러니까, 내란 직후에 표현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내란 전에는 공개적으로 의견도 잘 내지 않았고, 아직도 제가 광장에 나와 직접 발언해 본 경우는 손에 꼽거든요. 원래도 무대를 좀 힘들어 해서, 발언도 잘 안 하고 얘기도 잘 안 하고. 트위터로 따지면, 비공개 계정에서만 이야기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젠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인터뷰를 하거나, 기획이 있으면 참여를 하고. 이렇게 표현하게 된 것이 저한테는 크게 바뀐 지점인 것 같아요. 더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게 된 거죠.

지원: 사람들이 쳐다봐도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나가는 것도 '더 드러내게 됐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지경: 그런 점도 있지만, 사실 저는 제 옷차림이든 남의 옷차림이든 많이 신경 쓰지 않기도 해요. 원래도 저는 논 바이너리로 정체화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외향에 집착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그게 실제로 잘 되든 안 되든 그렇게 생각하고 다니기 때문에. 게다가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노조 조끼를 입고 다니는 것도 큰 저항감은 없었어요. 주변에서 약간 신기하게 보긴 하죠. 많이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러니까요.


사실 제가 정의당 당적이 있어요. 2022년 대선 직후 가입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 당 지도부에 대한 회의감이 컸거든요. 그때 당에서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보였고, 동의할 수 없는 점이 많았어요. 이 사람들이 대선에서 보여줬던 모습이랑 실제로 국회에서 활동하는, 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습 간의 괴리가 저한테는 너무 큰 거예요.


그래서 지도부가 반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원외로 나오고 지도부가 바뀌면서, 제가 원하는 '아스팔트 위에서 시작하는 정치'라는 느낌으로 어느 정도 당이 굴러가기 시작한 거죠. 탈당 고민을 해왔었는데, 남아 있기 잘했다라는 생각을 탄핵 정국 동안 조금 했거든요.

 

사실 저는 막 '사회주의'를 원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를 사민주의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과 별개로 당시 정의당이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고 보니까요. 자꾸 '제3지대'로 가려고 하고, 이준석과 함께 하는 해당행위(害黨行爲)자들까지 나타나고. 정의당 세력도 줄어들었지만, 사실 당에 대한 신뢰가 많이 깨진 거죠.


그런데도 남은 사람들이 나름 열심히 해서 대선 운동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그러니까 지금 권영국 대표가 말하는 의제들을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Q3. 윤석열 퇴진 광장 속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요. 개중에서도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좀 더 이끌리시게 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지경: 제일 큰 계기는 남태령이에요. 전농 트랙터 시위가 없었다면, 1차 남태령 시위가 없었다면 저도 노동 의제에 뛰어들겠다고 생각 안 했을 것 같아요. 남태령에서 밤새우면서 인상 깊었던 게, 양곡법 의제를 거기 있는 2천 명의 사람들이 다 알진 못했지만 어떤 염원을 보여준 거거든요. ‘대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고, 이 사람들이 말하는 의제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합해서 한 목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잖아요. 저는 그 이후 한강진이라든가, 여러 연대투쟁을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인지 남태령과 한강진, 두 사건이 크네요.


그러니까 노동자, 그들의 정치적인 목소리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시위 방법을 더 이해하게 되고,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주고 싶다…. 도와주고 싶다기보단 나도 노동자고. 당시에 저는 비정규직, 하청업체 소속으로 원청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거든요. 거통고 투쟁에 많은 관심이 갔던 이유가 그거였던 것 같아요. 나도 같은 하청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내가 느낀 것들을, 이 사람들은 이미 표현하고 있었구나!’ 이 사람들의 투쟁에 힘을 더 실어서 비정규직의 현실을 바꾸면, 내 처우도 개선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비정규직이 문제라는 의식은 저도 있었으니까요.


지원: 거통고 투쟁에 많은 관심이 간 데에는 동지의 비정규직 노동과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의 노동과 투쟁이 실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겠군요.


지경: 그런데 남태령과 한강진이 없었다면 생각을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징검다리 같은 거죠. 남태령과 한강진 경험이 있어서 노동자 투쟁에도 결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사실 한화 앞까지 오는 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어요. 트위터에서 봤는데 5분 거리인 거예요. 그때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커피 한 잔이랑 허니브레드를 시켜놓고 명동에서 먹고 있다가, 빵 절반을 남겨두고 뛰쳐나갔거든요. 갔더니 천막도 못 치게 하고, 용역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어 욕하고 드잡이하려고 하고. 내가 여기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Q4. 혹시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은 파면 이후 조직된 노동자 운동에 바라는 점, 또는 민주노총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길이 있으시다면?


지경: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요? 사실 퇴진 시위를 하면서 아쉬운 점을 많이 느꼈는데, 당시 아쉬웠던 점들이 파면 이후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고 느껴요.


비상행동에서 ‘사회대개혁’을 걸었으면, 민주당 사람들도 그 기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자기들 원하는 대로 가버렸잖아요. 혐오 단어도 그대로 쓰고요. 눈치도 보지 않고 투쟁 성과를 독점하려는 행동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것도 있지만, 사실 너무 무서웠거든요. ‘이 사람들이 2017년의 악몽을 반복하려고 하는구나’ 싶어서요.

 

2017년도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민주당은 '촛불 혁명'이 자기들 공인 것처럼 말했어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도 자기들이 다 주도해서 이끈 양, 그렇게 이야기해 왔거든요. 그런 과거가 이번 광장에서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이번에 촛불행동이 박원순 성폭력 2차 가해를 저지른 자기 대표를 비상행동 공동대표로 올리려고 하는 과정도 있었는데, '아, 이거 정말 많이 삐거덕거리겠구나. 차라리 그냥 갈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또 촛불행동이 자신들 집회 끝내고 비상행동 집회로 와서 뭔가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들이 연이어 생겼고, ‘대선 지나면 다시 민주당이 자기들 공으로 돌리겠구나,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겠구나’라는 걸 진짜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17년 제가 청소년이었을 당시에는 퀴어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 강해서, 성소수자 의제가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컸어요. 그때보다 훨씬 많은 의제에 관심을 가지는 지금, 이런 상황을 마주하기가 겁나요. 거대한 백래시가 어떻게 다가올지 안 봐도 알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그 과정에 민주노총이 일조하고 있다는 게, 저한테는 큰 문제인 거죠. 2017년 당시에는 민주노총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아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총연맹 중앙은 이재명을 지지하고 싶다는 의사를 계속 내비치는데, 그런 입장을 정말 민주노총에 밀어붙이면 ‘이 사람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본인이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많이 생각했어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정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어느 노동자 개인 권력을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정치가 노동자 위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이 일조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서 일어나는 문제들, 그리고 그로 인해 투쟁사업장 현안이 뒤로 밀리는 모습들에 화도 많이 나요.

 

그리고 간혹 민주노총에 속한 노조들이 민주적이지 못한 모습들, 혹은 혐오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상황도 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민주노조 혁신운동을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노동조합에 있고 싶은 건데, ‘이런 운동까지 신경써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에도 제가 한국노총에 가서 민주노조 운동할 거 아니잖아요. 무슨 MZ노조 가서 새로운 계파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원하는 운동의 공간을 만들려면, 민주노총 안에서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보고만 있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총파업 공동행동에 들어간 것이기도 해요.

 

Q5. 민주당 지지 여부를 둘러싼 민주노총 중집 대선방침 논의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의 민주당 단일화가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보수양당과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원: 부연하자면 노동자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당연히 보수 양당 자장에서 벗어난다는 거잖아요. 노동자 정치라는 게 뭔지 대중에 피력해야 하는 건데. 민주당과 진보당의 단일화 자체도 문제지만, 세부적으로 봐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일화 합의문에서 차별금지법 추진도 빠졌고요. 그래서 SNS에서 진보당 지지자들이 “그래도 필요한 거 다 챙겨갔다”라고 했을 때 정말 화가 났어요. 어떻게 그걸 보고 "아, 그래도 우리 할 만큼 다 했다.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지경: 그렇죠. 그리고 이번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선 단일화 비판에 대해 ‘내란세력 청산이 다 안 됐는데 퀴어 권리 주장은 이기적이다’, 노동을 강조하면 ‘노동자만 강조하는 건 이기적’이다, 이런 말들을 하는 걸 봤거든요. SNS에서 주로 그런 논리로 대응하더라고요. 소수자 권리에 대한 폄하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이 드냐면,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당신들에게는 퀴어의 권리가 '먹고사니즘'이 아닐 수 있지만, 저한테는 '먹고사니즘'인 거예요.

 

차별금지법을 예로 들면, 사실 차별금지법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트랜스 의제가 과대표되는 경향이 있는데, 장애인 차별 금지, 노동자 차별 금지가 다 들어가 있잖아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게 없으면, 소수자들의 생계가 위협받기도 하고요. 단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여성은 그만큼 못 번다는 건데, 그러면 생활 수준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이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여성 차별이 강화되겠죠. 이게 여성 탄압이 아니라고 볼 수 있나요? 그런데도 기독교에서 싫어하니까 차별금지법 안 된다,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았다면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저지하려는 행보는 그냥 자신들이 권력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싶어요. 내란 청산? 저는 내란 청산 안에 차별금지법 입법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실제로 제 삶이 소수자 의제에 많이 닿아 있다고 예전부터 생각했어요. 당장 제가 트랜스젠더퀴어고, 제 동생은 장애인이고, 제 어머니가 암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러다 보니 한부모 가정이고. 그러니까 저는 환자의 보호자였기도 하겠고. 그리고 제 주변에 다문화 가정이라든지, 이런 다양성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생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게 차별이란 말이죠. 그럼 ‘차별을 없애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돼?’가 되는 거예요. 최근에 집중적으로 보는 게 전장연의 탈시설 관련 의제인데. 제 동생이 높은 등급의 발달 장애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더라도 그 친구가 시설에 가게 될 확률이 너무너무 높아요. 제가 데리고 살자니 저는 비정규직이고, 지금은 해고당해서 고용도 되게 불안정한 상태기도 하고요. 이 사람을 개별로 부양하면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하면, 그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다고 제 동생을 시설에 보내기에는, 그건 사실 사람이 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노동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한데 없단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먹고사니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절대 동의가 안 돼요.


사실 민주당이 광장에 나올 때부터, 민주당이 말하는 ‘광장의 연대’는 한계가 명백하고 그래서 한시적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장에는 윤석열 퇴진을 외치니 마치 같은 걸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광장에서 애국가 부른 거 가지고도 그랬었잖아요. 이렇게나 지향이 다르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어느 순간에 민주당 세력은 광장의 대다수를 버릴 텐데. 민주당에 대한 문제제기나 토론, 이런 게 하나도 조직되지 않는 거예요. 민주당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원: 맞아요. 민주당이 말하는 진보는 허위이고, 광장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재편집하는 것 같아요. 필요한 의제만 취사선택해 진보적으로 포장하고, 그게 대선 단일화에서도 많이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경: 노란봉투법도 문재인 정권 때부터 나왔는데,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마음대로, 편한 대로 말한다 싶어요. 저는 오히려 문재인 정권 때 민주노총이 더 적극적으로 민주당을 규탄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주당 정권 아래 우리 삶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더 적극적으로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너무 못해서 지금 이렇게 된 점도 있다고 생각하고, 참 안타깝네요.

한국 대의민주주의라는 게, 지역에 기반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있어서 가능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점은 부각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직 총선, 지선, 대선을 위주로 정치시스템이 굴러가는 걸 보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 민주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거기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지역 노조를 통해 민주노조 운동과 함께 정치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지원: 지역과 현장에 기반한 운동을 정치세력화의 기틀로 삼으면 좋겠다는 취지죠?


지경: 네. 사실 수도권에서는 약간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그런 부분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Q6. 모두 ‘사회대개혁’을 이야기합니다. 윤석열 퇴진 이후를 그리는 상도 각기 조금씩은 다른데요. 윤석열 파면 이후 ‘사회대개혁’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점 또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려주세요.

 

지경: 사실 이 점이 제게 비어 있던 부분 중 하나예요. 그렇지만 저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계속 말해왔듯이 차별 철폐인 것 같아요. 계급에 따른 차별, 성별에 따른 차별, 타고난 무언가에 대한 차별이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문제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법들. 그러니까 차별금지법과 같은 취지의 법을 계속 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운동이 없다면, 앞으로도 내란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죠. 차별을 철폐하지 않으면 사회 문제들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보니까, 저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쪽인 것 같아요.

금속노조 조합원으로서 말하자면, 사실 거통고지회가 광장에서 평등한 지향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도, 말벌 동지들이 함께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잖아요. 평등수칙도 만들고. 무지개 조선소 때 다들 열심히 활동해 주셨고. 그런 활동들에 다들 감동받고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참여하면서 정말 좋았거든요. 물론 문제가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문제 해결 과정도 굉장히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이었어요. 기존에 학교나 다른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던 것이죠. 그런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민주적으로 만나는 계기가 계속 필요할 것 같아요. 부딪히라는 소리가 아니라, 살포시 다가가서 악수하는 느낌으로.

지원: 특히 차별 문제에 대해, 주변 노동자 동지들을 비롯해 투쟁하는 동지들과 토론할 때 말씀하시는 거죠?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엄중한 투쟁은 엄중하게 해 나가면서. 함께 싸우는 동지들의 내부 혁신과 정치적 논의도 열심히 해 나가자. 그런 말씀으로 이해했어요.


지경: 그렇죠. 그렇죠.

 

Q7.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동지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나 소감이 있다면, 남기지 말고 전부 들려 주세요.

지경: 인터뷰를 처음에 해달라고 하셨을 때 흔쾌히 허락했어요. 근데 허락하고 생각을 해 보니까 제가 당적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전진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사회주의정당 건설 목표로 나아가는 분들인데. 제가 정의당 얘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은데 이런 얘기를 꺼내도 될까,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몇몇 전진 동지들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해 주셨었어요. "지경 씨는 조곤조곤하게 빨간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당적이 있지만, 마음만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같은 속도일 순 없지만 같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것 같고요.

 

사실 총파업 공동행동 초반에 학생 동지들이 연명 받으면서 총파업 하자고 얘기했을 때, 되게 회의적이었거든요. 그때는 해고되기 전이라서 일하고 있기도 했고요. 일하지 않는 상태가 나에게 어떤 위협으로 다가올지 알기 때문에 어떻게 파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자꾸 헌재 선고 기간이 길어지고 민주노총에서 좀 어영부영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었잖아요. 그때 총파업 공동행동에 대한 인상도, 총파업 자체에 대한 인상도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96·97 총파업처럼 강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정말로 어려울 수 있겠다’, 그렇게라도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그래서 총파업 공동행동에도 가입 의사를 밝히고, 말벌 동지들도 조직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었거든요. 제 생각이 이렇게 변하게 된, 그러니까 약간 좌로 가게 된 그런 터닝포인트들에, 전진 동지들이 항상 같이 있어줬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지원: 말씀하신 연서명은 저랑 청년 학생 동지들이 초동 연명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아직 기억이 나거든요. 그때가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했을 때잖아요. 어떤 대의원은 되게 유심히 보기도 하고, 나눠주던 학생 동지한테 이런 거 뿌리지 말라고 얘기했던 대의원도 있고. 그리고 양경수 위원장도 와서 받아 갔었거든요. 그 대의원대회에서 여러 수정동의안이 나왔고 총파업 제기가 있었는데도 그걸 책임지지 않으려고 피해간다는 인상이 되게 컸어요. 그런 걸 보면서 ‘중대한 국면에서 투쟁으로 보여주는 게 필요할 때, 집행부가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면 이런 불상사가 생기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경: 7월 총파업을 시작으로, 새로운 정권에 우리의 목소리와 의제를 강력하게 표출하는 투쟁을 이어가며 정치적 지진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금속노조 기자회견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이야기 하는 걸 보면서, ‘일단 뭔가를 하면 그 큰 노조 내부에서도 변할 수는 있구나’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는 있거든요. 긍정적인 신호인데 그것보다 더 해야죠. 더 가야죠.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고, 사람들이 조직된 노동자 운동 속에서 더 활동하는 것도 필요하겠고요. 그리고 노동자성 자체를 확장해야 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지원: 특고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요.

지경: 그것도 그렇고, 전장연 투쟁 중에서 권리중심일자리 해복투라고, 서울시에서 해고한 장애인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잖아요. ‘이것도 노동이다’라는 슬로건을 들고나오는 걸 보면서, 우리가 노동의 범위를 많이 넓혀야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과 연대하고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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