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교사노동자 남정아 동지는 윤석열이 내란쿠데타를 획책한 뒤 “비상계엄 해제하고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가 적힌 등자보를 입고 출근했다. 대한민국 헌법 1조(“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구호가 적힌 피켓 등을 교실에 부착했다. 남정아 동지의 실천으로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학교에서는 곧바로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며 남정아 교사를 압박했다.
그러나 교사도, 공무원도 모두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권리가 있으며, 교육현장은 정치의 무균실이 되어선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정치로부터 배제된 채, 일만 하기를 강요당한다. 자본가계급은 정치의 무균실이 된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일’만 할 것을 강요한다. 그 일이 어떤 방향으로, 누구를 위해 쓰일지는 자기들끼리 결정한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을 자본가계급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하겠다는 뜻이다. 곧 일터에서 사라진 ‘정치활동’을 되찾는 일이다.
일터가 정치의 무균실이 되어선 안 되듯이, 교육현장도 그렇다. 이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만을 ‘강요’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울 속에, 학생들에게 자본가계급의 사상과 입장만을 편향적으로 전달한다. 학생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교육현장에서 활발한 정치적 토론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의견을 정립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를 추동하는 것은 교사노동자의 권리이자 역할이다. 학생, 교사, 양육자와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를 실천해가고 있는 남정아 교사의 이야기를 전한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어마어마한 폭력으로 민중을 짓밟겠다는 대통령의 급발진 선언, 그 덕에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고민을 나누며 ‘민주가 무엇인지’, ‘민주주의는 어떻게 지키는 것인지’ 진지하게 배우고 있다. 눈으로 목격하고 직접 들은 이야기들로 생생하게 토론하고 협의하며 작은 광장들을 펼쳐간다.
‘비상계엄 해제하고 윤석열은 퇴진하라!’ ‘헌법유린 국민우롱 윤석열은 퇴진하라!’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규탄하고 퇴진을 촉구하는 글귀의 몸자보를 입고 교실, 도서관, 급식실, 교무실, 체육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교무실 게시판에도 붙였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등에 붙은 글을 읽고 질문도 하고, 멋지다며 엄지척도 보여주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간혹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된다며 우려를 전하는 학생도 있다. 우리반에도 경찰이 담임교사 잡아갈까봐 한걱정인 학생이 있다. ‘계엄’은 그렇게 ‘선언’만으로도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공포와 불안에 떨게 만든다. 목소리, 행동, 실천을 지우고 ‘민주’를 삼켜버렸다.
전국 곳곳에서 ‘윤석열 탄핵! 윤석열 퇴진!’ 외침이 불타오르고 있다. 비상계엄은 강제해제되었어도 우리의 놀란 마음과 분노는 가라앉지 않는다. 광화문은 물론 지역별 촛불광장에도 대중의 발걸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어수선한 시국, 정국에 교육노동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중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소통방에 누군가 현장에서, 삶터에서, 일터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을 제안했다. 우리는 자본의 이윤에만 부역하고, 노동자, 장애인, 여성을 비롯 소수자를 차별과 혐오로 끊임없이 갈라치기해온 정권 아래 힘겨운 시간을 보내왔다. 우리도 이 시간을 정리하는 데 ‘힘을 보태자’, ‘목소리를 내자’, ‘행동해 보자’는 말은 학생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배우는 교육노동자로서 가슴이 뛰고 설렜으며 부끄러움을 떨칠 수 있었다.
‘몸자보’ 하나 입었을 뿐인데, 생각과 의견을 붙였을 뿐인데, 다양한 반응을 마주한다. 열렬하고 강력하게 응원하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고마운 마음들도 있지만, ‘정치적 중립의무’를 꺼내며 침묵을 강요하기도 한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횡포에 대한 침묵은 절대 중립일 수 없다. 삶은 정치의 연속이며, 정치는 대중과 민중의 권리이다. 정치는 ‘정치인’으로 규정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없다. 민중을 무시하고 대중을 탄압하는 행위에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는 일은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저는 이 문제가 정치적 색깔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상식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불법계엄 내란범 윤석열 탄핵 강릉비상행동’에서 진행한 12월 15일 강릉촛불집회에서 발언한 학생의 말은 여운이 길다. 고개가 숙여진다. 숙연해진다. 침묵을 강요하고 요구해 온 학교가 답답하고 부끄럽다.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간 초심을 잃었다 비판받던 전교조도, ‘윤석열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더 이상 정의를 가르칠 수 없다!’며, 12월 6일 '반헌법적 계엄 선포' 윤석열 즉각 퇴진 촉구 교사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민주주의라는 교실이 무너졌고 교사들은 침묵하지 않고 저항할 것이라고 널리 알렸다.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이윤보다 생명!’을 외치며 지금도 자본의 개발과 환경파괴로부터 삶터, 일터, 평화를 지키는 수많은 사람이, 투쟁이 생각난다.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며 노동착취에 맞서 처절한 투쟁을 벌였고 손배가압류에 맞서 또 다시 투쟁에 나선 거통고 조선하청노동자들. 먹튀자본에 맞서 불탄 공장을 지키며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 사학자본 착취에 맞서 투쟁하다 사법부가 벼랑끝으로 몰아도 질기게 싸우고 있는 세종호텔 노동자들. 학생성폭력사안 해결 위해 나섰다가 부당전보부터 해고까지 당하며 교육청 행정폭력에 맞서 성평등한 안전한 학교 만들기, 여성해방을 외치며 힘차게 싸우고 있는 지혜복 교육노동자. 죽음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던 건설노동자 양회동. 물류를 멈추며 세상을 바꾸려 했던 화물노동자들…
교육노동자로서 학생들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함께 보고, 겪고, 느끼며 또 함께 바꾸고 싶다. 지난 촛불, 박근혜퇴진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 여전히 우리 삶을 어렵고 팍팍하게 만들고 있는 그들을 향해 이제는 더욱 단호하게, 양보없이, 유보없이 우리의 요구를 더 크게 끝까지 당당하게 알리고 이루어야 한다 말하고 싶다.
내 목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우리 학생들에게, 그들의 보호자들에게, 우리 모두를 향해 총과 칼을 겨누겠다는 대통령과 그 부역자, 추종자들에게 민중의 한 사람이자 노동자로 내 입에 물린 재갈을 뱉어내고 싶다.
담임교사의 시끌벅적 행동이 신기했는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서 얘기나누었더니,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고 불편한 거야’라고 우리반 학생보호자께서 학생에게 해주셨다는 얘기, 수업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더 궁금해 역사공부를 하고 싶다며 한국사 책을 샀다는 학생 이야기, 모두가 감동이다.
계엄이다. 비상계엄. 공포, 불안, 억압, 폭력으로 민중을 통제하겠다는 끔찍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정치적 중립의무’라는 굴레, 악법을 깨고 스스로 침묵에서 벗어나고 싶다. 탄핵, 퇴진 외침은 시작일 뿐이다! 노동자, 민중의 삶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비상계엄 상황이었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고용불안 없는 세상, 노동착취 없는 세상, 차별없는 세상을 향해 함께 외치고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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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나의 마을이 좁다고 해도 단 한 사람도 마을에서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규칙을 마음대로 정해 토끼를 잡아먹고 쫓아내어 자기 혼자 남아버린 하얀 늑대처럼 살지 않고 욕심부리지 말고 차별하지 않는 토끼처럼 살겠다’
‘차별하는 친구가 있으면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음식을 공평하게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거다’
‘욕심부리지 않고 평화롭게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늑대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 다른 사람한테 안 좋게 보일 수도 있고 모든 걸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럽다. 우리나라랑 비슷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하얀늑대처럼 얼른 퇴진하면 좋겠다’
‘우리 상황이랑 비슷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책 같다. 비상계엄이랑 똑같다.’
- <하얀 늑대처럼>을 읽은 학생들 감상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