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1) 프랑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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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1) 프랑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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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6.01.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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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가족의 개인전으로 10월 초 파리 방문 예정이 잡혔다. 유럽 여행에 대한 생각은 전부터 있었지만 급하게 계획을 시작해, 가이드 북 한 권에 기대어 파리-런던-로마-인터라켄 루트로 일정의 개요만 정한다. 마침 9월의 파리는 한창 총파업으로 떠들썩했다.

 

9일 아침에 출발해, 태양의 운행을 거슬러 열 네시간을 날아가면 현지 시각으로 같은 날 오후에 착륙한다. 줄곧 밝기만 한 창 옆에서 내내 졸면서 마비된 시간감각까지 더해져 하루를 득본 기분을 느낀다. 시내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가족과 함께 시내에 머무르며 숙소와 갤러리가 있는 파리 3, 4구역 위주로 움직였다. 남쪽으로 강을 끼고 상대적으로 도시의 부가 집중되는 지역으로, 관광지나 미술관이나 브랜드 매장, 그리고 실외기도 설치되지 않아 에어컨이 없는 오래된 건물들이 잔뜩 있었다. 3구의 퀴어 씬에 관심이 있어 LGBT 센터에 방문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허락하지 않고, 대신 인근의 문 앞에 프라이드 플래그를 다섯 개쯤 건 성인용품점이나 횡단보도의 무지개 정도만 눈에 담는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커다란 그림 곳곳에는 프랑스 국기의 모티프가 산적해 있다. 이 사람들에게 예술과 혁명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파리 3구 인근에서 찍은 사진.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에 자유를), EAT The Rich(부자를 잡아먹자), ACAB(모든 경찰은 후레자식이다), Fuck le macronisme(마크롱주의 엿먹어라) 같은 낙서들이 눈에 띈다.

 

13일 오후에야 혼자가 되어 런던행 유로스타가 있는 10구의 파리 북역 근처 도미토리로 이동했다. 이전 일정에서도 가끔 경찰에 대한 반감이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표시하는 그래피티나 스티커를 보긴 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역(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승을 기리는 의미라고 한다)에서 내려서 도미토리로, 또 거기에서 북역이며 생드니의 무역노조 사무실 등을 오가는 이 하루 저녁 동안에는 그동안 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의 좌파적 색채의 포스터나 연대의 슬로건을 볼 수 있었다.

 

파리 북역에서

 

파리 북역은 '이민자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는', '치안이 나쁜' 지역이라는 인터넷의 '경고'를 떠올린다.

 

파리 북역 인근은 세계요리점이나 수입 식료품점, 전통의상점 등이 있는 서아시아계 이민자 거리로, 담배 같은 물건들을 파는 행상인들이 종종 있었다. 도미토리에 도착할 무렵 다음날 북역 인근에서 만나게 될 T 동지에게 저녁의 집담회 일정을 추천받아, 일정을 변경해 체크인 후 바로 출발한다. 목적지는 북역에서 고속열차로 한 정거장을 가면 나오는 93번 지역인 생드니. 역에서 무역노조 사무실까지는 북역보다 피부색이 어둡고 아프리카계에 가까워 보이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고, 파리 중심가보다는 좀 더 현대적이고 개량된 건축양식의, 길에는 트램이 다니고 통속적인 품목이 늘어선 슈퍼나 저렴한 빵집 등이 있는 한적한 주택가였다. 교통이나 입지,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파리 시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위성도시로 느껴졌다.

 

생드니에서

 

역에서 주택가로 들어가자 T 동지가 연결해준 집담회 참가자 I 동지가 근처까지 나와 같이 올라갔다. 긴장한 탓에 동지의 유창한 영어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사무실을 향했지만, 무역노조 사무실을 보고 웃으며 카메라를 꺼내 들자, 시선을 따라간 끝을 보고 같이 웃는 것으로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한다.

 

생드니의 무역노조 사무실. 이탈리아에서도 종종 보게 될 스프레이로 그린 낫과 망치를 이때 처음으로 보았다.

 

 

집담회가 이루어진 공간은 작고 조명이 약했다. 참가자들은 철제 테이블을 ㅁ자로 두고 둘러앉았고, 문이 열려있어 방 안으로 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입구 쪽에 의자를 두거나, 비치되어 있는 남은 책상에 걸터앉았다.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사회자가 노트북을 보며 긴 이야기를 끝마친 다음 다른 동지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통역 앱을 켜거나 I 동지에게 묻거나 하면서 포착한 개념들: [9월 사회운동과 그 결과 | 노조관료화(투쟁을 꺼려하는 간부들) | 마크롱의 재선 요구와 제도권 좌파 정당들의 선거만능주의 | 투쟁을 통해 급진 민주주의 요구를 제시할 필요성 |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이탈리아의 총파업 | 9월 운동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로 조직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의 조직의 사후전략 | 마린 르펜에 대한 비판(이베리아 포퓰리즘(스페인 복스당)과의 연관?) | 제5공화국의 끝 | 마크롱에 대한 반감(탄핵이라는 단어가 나옴) | 2019년의 영향(체념? 소진?) | 학생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파편적인 정보들이었지만 시위와 총파업을 기대하고 도착한 파리가 생각보다 조용해서 의아했던 부분들이 어느정도 정리되었다. 그들은 지난 정국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계획하고, 9월에 조직된 사람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요컨대 나는 4월 20일의 서울에 도착해 비상행동 시위를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6시 반부터 시작된 집담회는 8시 반 정도까지 이어졌고, 우리 이후에는 다른 팀이 회의실을 이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뒤풀이는 인근의 프렌치프라이가 맛있는 노천 바. 프랑스는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 많다. I 동지와 번역기로도, 또 영어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부르주아지bourgeoisie'나 '레짐Régime'과 같은 단어들이 프랑스어의 발음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느껴지는 혁명의 나라라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22년 도크게이트 점거와 25년 고공농성을 포함한 거통고의 투쟁 이야기를 하자 멋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감사와 함께 따라오는 석연찮음을 말로 만들어, “그러나 우리는 선진 노동자와 후진 노동자 간의 간극이 크다. 프랑스처럼 다 같이 안전한 총파업을 하고 싶다. 당신들은 어떤 강력한 투쟁을 해왔는가?” 하고 되물었다. 단어를 고르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는 동지에게 “Dangerous?” 하고 묻자 “위험한” 투쟁은 아니라고 하며 예시들을 들어 보였다. “이를테면 연료를 수송하는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한다면 경찰차도 도로 한복판에서 서버린다”는 말을 하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결정적 액션'으로 주요 도로나 식료품점을 봉쇄하는 것을 언급했다.

 

한국의 노조운동에 결합한 관점에서 '봉쇄'라는 개념에 의아함을 느끼고 되묻는다.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점거할 수 있어? 실패한 총파업 같은 건가?” 하고 물으니 I 동지는 조금 난감해하다, “9월과 같은 정치, 경제적 요구가 결합한 대규모 운동에서는 수십만명 규모의 대규모 시위와 기업 봉쇄 등이 연계되어야 하며,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내일 동지들과 만나서 더 나은 설명을 듣도록 하라”고 이야기한다.

 

자리를 정리하며 건넨 “마지막으로, 당신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동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철도노동자인 A동지(모로코계 프랑스인으로 철도노조 파업을 포함한 다양한 캠페인을 주도했다.), 변호사인 E동지(노동 변호사이자 운동가.), 고등학교에서의 T와 대학 시절의 동지” 같은 사람들을 언급한다. “T 동지와 고등학교 동기였어요?” 하고 되묻자 어떤 체제나 구조와 관련된 것 같은 전부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문장의 의미는 다음 날 T 동지와의 만남에서 대략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다음 날, T 동지와 만나기 전에 에펠탑과 마르스 광장을 구경한다. 마르스 광장 쪽으로 발을 옮기자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색의 큰 슬로건 현수막, 뭔가 타는 냄새와 회색의 연기. 이어지는 환호성. 이것은…트랙터? 그리고 멀찍이 서 있는 방패를 든 경찰들…. 구경하느라 약간 늦을 것을 고할 겸, 연기와 타는 냄새에 놀란 마음으로 T 동지에게 “마르스 광장인데, 트랙터가 있다. 무언가의 데모인가?” 하고 설명하니 ‘좌파 농민단체의 데모’라고 했다. 발언 사이사이에 “oui(프랑스어로 ‘그렇다’라는 뜻)” 같은 화답을 들으며, 파리에도 전봉준투쟁단과 ‘맞습니다!’가 있군…같은 생각을 하며 떠나려는 찰나 시위대는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곧이어 EDM이 나오며 몸을 들썩이거나 바닥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 T 동지는 “이들이 파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최근 조직된 한국의 젊은이들은 다들 트랙터를 좋아한다”고 말하니 “우리 쪽에는 농민 의제 시위에 그렇게 쿨한 이미지는 없어서 의외”라 한다.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지요.

 

방패를 들고 각반을 찬 경찰(기동대?)들. 검은 베레모를 쓰고 있다.

 

 '유기농 식품이 암을 예방한다'

 

농민연맹Confédération paysanne의 EU와 메르코수르 4개국의 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북역 근처의 소박한 알제리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T 동지에게로 서둘러 향한다. T 동지는 일어가 유창한 일본계 프랑스인으로, 대화하는 동안 다른 프랑스 동지들의 질문도 일어로 번역하여 전달해주었다.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언급하며, 아프리카에 가지 않는 한 이런 제대로 된 알제리 음식을 먹어볼 일은 없으니 가족이나 친지들이 파리를 방문할 때에는 데려온다는 설명에서 연속혁명의 반제국주의적 지향이 생활속에 녹아서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패스트리로 고기나 야채 등을 감싸 튀긴 알제리 요리 부렉Bourek

 

자리에 앉아 들은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은 수험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들었는데, 이에 대응하는 당사자 단체가 있어?” 예상을 벗어난 질문에 얼떨떨하며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뒤이어 도착한 다른 동지의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의 소자고령화(저출생 고령화의 일본식 조어) 문제는 수험압박과 관련이 있어?” “물론, 당연하게도.”라고 답했다.

 

이날 자리한 동지들은 (기억하기로는) 조직 산하 학생단체의 학생 운동가들로, 대학 내에서의 활동이나 조직화는 물론이고, “우리는 고등학생들을 조직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의' T. 간밤의 I 동지의 이야기의 퍼즐이 맞춰지는 동시에 고등학생 운동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조어였다.

 

“한국의 대학생 운동은 어때? (일본의 전학련과 같은) 관련 단체들은 있어?” 라던가, 일본의 6,70년대 학생운동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의 전국 대학 단체 선거에서 동지들이 속한 조직 쪽의 사람들이 많은 득표수로 당선되어 대학 사회에서의 약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곧 올 동지는 파리 8대학에 버금가는 우수한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것과 같은 '대학 이름이 정체성이 되는' 설명을 들으며 여기에서조차…라는 생각과 동시에 우리 쪽에서 대공장노조의 이름이 거론되듯 학생운동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활과 운동의 주된 무대가 곧 정체성이 될 수 있으리라는 묘한 납득을 얻기도 하였다. 내가 나온 대학은 재학 당시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는 행렬의 선두에 있었기에 소속감이나 주위 환경등의 영향으로 당사자로서의 대학생 운동은 참가한 경험도 아는 바도 관심도 많지 않았으므로,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지와의 만남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동시에, 관심사가 명확한 동지의 질문들에 '좀 더 잘 아는 사람이 설명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사회가 뒤숭숭해지며 마린 르펜과 같은 극우가 지지를 얻음과 동시에, 아나키스트나 마오주의와 같은 극좌(이 단어를 건조한 지칭으로 들은 것은, 살면서 사회주의 기초학습을 포함해 세 번째였다) 사상 또한 힘을 얻고 있으며, 우리 조직 또한 그들을 고려하여 활동의 전략을 짜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범좌파 자체가 세가 적어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극좌라는 구분조차 잘 안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마오주의자 개인과 아나키스트 단체를 본 일이 있다”고 답하자, 한국의 '빨갱이' 탄압의 설명을 들은 T 동지는 놀라며 “그 사람들은 경찰이나 국가로부터 탄압받거나 하지 않아?” 하고 물었다. “딱히? 아나키스트라니, 그게 뭐야? 라는 느낌이지. 애초에 아나키스트라 긴밀하게 조직되지도 않고.”라고 답했을 때 그가 느꼈을 황당함에 대해서는 귀국 후 한 영화를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회원 규모가 몇 백명에 달하지만 파리의 물가 때문에 올해 말에야 사무실을 얻게 되는, '고등학생을 조직하고' '극좌를 염두에 두며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 이야기를 잔뜩 나누고 여러 가지를 알게 되어 즐거웠으며, 지구 반대편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일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 설레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회에서 보이는 진보적 단면들이며 프랑스의 정치지형과 그 위에서의 생각치 못한 운동의 방식 등은 여러 가지 통찰과 스스로를 깨치는 경험들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험한' 투쟁과 '강력한' 투쟁은 같은 단어가 아니라는 깨달음이며, “정치파업은 금지되어 있으며, 경제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교섭과 조정을 거치고 국가기관에 신고 후 심사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거나, “아이가 셋 이상이면 출국할 때 줄을 안 선다는 것 따위가 우리의 저출생 정책이다”라거나 “우리나라 극우는 기독교와 그 계열 컬트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식민지배의 영향인지 통상의 자국우월주의보다는 미국과 일본을 숭상하는 경향을 보인다” 같은 부분을 들을 때마다 T 동지와 그 일행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서글픔을 느끼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고 열 네시간을 가면 당연하다고 여긴 것은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 당연하게 되는 곳이 있다는 것.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영국

 

프랑스를 뒤로하고 유로스타를 통해 육로로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프랑스 동지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의 동지들이 생각나 실례를 무릅쓰고 런던에 계시는 아는 동지께 연락 해봤다. 체류 기간 중에는 아쉽게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결합할만한 단체나 시위를 추천해달라고 말하니, 영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 인스타그램 계정(@palestinesolidarityuk)과 더불어 '영국 정부가 시위자들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경찰력을 동원해 대규모 체포가 이루어졌다. 신변 보호를 위해 집회 참가를 추천하지 않는다.'라는 답을 들었다. 계정을 둘러보니 현재 가장 가깝게 예정된 시위는 토요일로 참가일정이 맞을 것 같지 않고, 프랑스에서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과 팔레스타인 총파업이 강력하다는 이탈리아의 정세에 대한 기대를 안고 현지의 활동에 결합할 방법을 찾다 이탈리아의 한 사회주의 조직의 동지들과 연락이 닿게 된다.

 

런던에서는 특별히 예정된 만남이 없으니 짧은 일정동안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생각한것도 무색하게, 아침의 찬 공기를 가르며 킹스 크로스 역 인근의 숙소에서 빨래방으로 가는 길에 심상찮은 외관을 한 서점과 마주친다.

 

'1945년부터 영업한 급진적 서점' Housmans

 

세탁이 끝나고 둘러본 내부는 외관 이상으로 굉장해서, 한국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담론들도 아동/청소년 도서나 그래픽 노블 등의 낮은 접근성을 가진 매체로 비치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과 관련된 유인물을 배부하고 굿즈를 장식하거나 판매하고 있었고, 직접수유 친화/반-인종차별적 '안전공간'으로서의 명시나 청소년을 위한 할인이나 다른 손님이 책값을 대신 내주는 시스템 등 여러 방식으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었다. 남아있는 인칭대명사 뱃지가 He/Him밖에 없는 것에 아쉬워하는 동시에 좌파 서점 고객의 성비에 대해 생각해보며 이런저런 뱃지나 '래디컬 플레잉 카드(역사의 진보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나 작은 책자를 사서 나온다.

 

 

이후에 목적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 저녁 만에도 거리에서 메시지 카드 전문의 문구점이며 크고 작은 서점과 다양한 문구류들을 마주치고 그때마다 즐거워했지만, 다음 날 영국박물관을 나와 세인트폴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의도도 노력도 없이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아무리 서점이 많다고는 해도 이게 이 도시에서는 얼마나 일반적인 일일지 가늠해보며 혼란에 빠졌다. '사회주의 서점' 이라고는 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쉽고 짧은 이론서 등이 눈에 띄고, 입지 때문인지 좀 더 가게가 작고 구성이 간결하며 현대적인 인테리어라는 것 외엔 범좌파적 의제의 폭이나 내용의 관점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한눈에 봐도 좌파언론 같은 제목에 뒤표지까지 기사가 적힌 잡지들을 둘러보다 작은 '붉은 별' 뱃지와 책 몇 권을 구매한다.

 

'사회주의 서점' Bookmarks

 

 

런던의 성이며 사원 같은 관광지들은 4시 반이면 영업을 종료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아 의아해한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갈 곳은 없어도 중랑천을 닮은 템즈강도 보고, 저녁 하늘에 불을 밝히는 빅 벤도 보며 거리를 방황하다 보면 다양한 스티커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지나간 시위나 기후위기 관련 서적의 북 토크 홍보 전단 같은 것들이 고전적인 방식의 조직화가 아직도 유효하게 여겨진다는 놀라움을 준다. 파리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세속적이고 고도화된 이 도시가 왕과 서점과 메시지 카드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적 문화 속에 있다는 것은 이런 부분에도 적용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충분한 의료복지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런던에서 항상 보였던 영국 혁명 공산당(RCP.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의 선전물은 대부분 QR코드가 훼손되어 있었다.

 

칼 마르크스 워킹 투어. 매주 일요일 출발.

 

코비드 19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벽.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상징들. 하마스에 구금된 인질의 귀환을 바라거나, 팔레스타인의 행동들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족히 20여 종은 될 팔레스타인 연대의 스티커와 곳곳에 보이는 공산당의 선전물. 동시에 그중 절반 이상은 뜯겨나가거나 덧칠되거나 다른 스티커로 덮혀 있었고, 방문한 나라들 중 이스라엘 측을 대변하는 메시지 또한 가장 구체적이고 다양했다. 래쉬와 백래쉬 모두 강하고 그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국지적으로 퍼져나가는 장과 장이 거리 곳곳에서 부딪히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영국 정부가 시위대를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반영하는 이 도시의 정세를 상상해본다.

 

근위병 교대식을 관람하러 버킹엄 궁을 향했을 때, 금요일 낮치곤 유독 붐비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같은 역에서 다 같이 내리고, 전철 안에서 코스프레를 닮은 검은 정장에 높은 실크햇을 쓴 남성이 생활감 넘치는 비닐봉지를 든 것을 목격한다. 의아해하던것도 잠시 열차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몇몇 남성들, 심지어 겉보기 남성이 아닌 사람까지 '영국 신사'의 차림을 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며,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경찰의 통제가 필요할 정도로 인근을 가득 메워 정작 교대식은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대다수가 전형적인 코카서스계 백인의 인상에 유아차를 끌고 나온 생활감 넘치는 가족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마냥 관광객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행사가 끝나고 바로 옆의 버킹엄 궁 정원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익숙하게 무시하는 수많은 새들과 다람쥐에 둘러싸여서도, '왕실 납품' 티 브랜드의 매장 맨 위층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이 차갑고 세속적인 도시에서 이토록 존중의 대상이 되는 고루한 개념, '이 사람들에게 왕이란 무엇인가'라는 얼떨떨한 의문은 가시지를 않는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군중들. 비수기의 유럽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았던 장소이다.

 

무지개들. 축구 팀 이름으로 여겨왔던 단어들이 전부 런던의 지명이라는 것에 놀랐는데, 지지하는 팀의 이름으로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모습도 신기하다.

 

방문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영국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대도시 특유의 개인주의와 영어권-제국의 다문화적인 배경의 구성원들을 고려한 것인지 식이지향에 대한 고려를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것. 고통받는 생명으로서의 동물을 묘사하며 비거니즘을 촉구하는 스티커들, 맥도날드의 비건 메뉴 탭, 식당에서의 알러지 여부를 묻는 질문 같은 것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미식으로 유명한 나라들에서는 도리어 찾기 힘든 광경이었다. 포장은 물론 상품에서도 콩기름 잉크나 재생지, 혹은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이 비교적 보편화된 것도 눈에 띄었다. 재료를 전부 선택할 수 있는 파이브가이즈의 탄생이며 써브웨이의 패스트푸드 점유율 1위, 비거니즘이나 생태주의를 필두로 하는 진보적 가치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 러쉬(Lush)가 만들어진 토양 등에 대해 나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맥도날드의 비건 메뉴. 병아리콩으로 만든 너겟 같은 것Dipper과 소스에서는 커리 맛이 난다.

 

런던의 거리를 걸으며 마주한 시위 선전물의 날짜가 모두 주말인 것을 보아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순서를 바꾸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반쯤 도달한다. 마침 이탈리아 조직의 G 동지로부터 '18일 피렌체 시위가 볼만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지막 날 로마에서 취리히로 가는 환승편을 취소하고 대신 18일 아침에 출발하는 런던발 피렌체행 항공편을 예약한다. 시위 장소까지의 경로를 찾다 '피렌체 공항은 시내와 가까워 도보로도 접근이 가능하다'라는 정보를 보고 무슨 효용이 있는 건지 고민하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밤을 새워 다시 짐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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