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담산업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냉각수를 순환시켜 엔진 과열을 막는 자동차 핵심 부품, 임펠러 불량이 대량 발생해 대체품을 만들고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전체 생산라인에서 잔업·특근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현담 1공장에서 잔업·특근을 거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유를 알아보니 모듈라인은 회사의 재고 축적에 대한 거부감과 높은 피로도로 잔업을 하지 않았고, 아마추어(armature, 회전자. 보다 익숙한 용어로 ‘로터’)와 펌프라인은 현장관리자 생산 투입에 따른 구체적 운영방안을 회사 측에 요구하며 잔업·특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군림하는 관리자들
현담산업에는 현장관리자로 라인장, 조장, 반장이 있다. 이들 모두 생산 라인에 투입되지 않는다. 단지 설비가 고장나면 조치할 뿐이다. 중간관리자들은 노동하지 않는 특권을 누리는 것은 물론, 현장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군림하며 현장을 통제해왔다. 이것이 사측이 의도했던 바이다.
하지만 현재 생산량이 발주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자 사측은 관리자들에게까지 라인 투입을 명령했다. 관리자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사측에 관리자 현장투입에 관한 구체적 운영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관리자들의 요구와 현장노동자들의 요구
그런데 관리자 현장투입을 관리자들만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현장노동자들도 관리자 현장투입에 대해 구체적 운영방안을 내놓으라고 사측에 요구하며 잔업·특근 거부에 들어간 것이다. 어찌 보면 현장노동자들과 관리자들의 요구가 같다. 하지만 그 속내는 사뭇 다르다.
관리자들은 자신이 일하기 싫어서 사측 방침에 반대하고 현장노동자들은 관리자들과 같이 일하기 싫어서 반대한다. 관리자들과 같이 일하면 더 억압적인 현장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아마추어와 펌프 라인의 잔업·특근 거부는 관리자들과 현장 노동자들이 함께 행동에 나서는 희한한 광경을 연출했다.
결국 회사는 라인에 2명 이상 결원 발생 시 해당 라인 전체 관리자가 아니라 라인장 1인부터 투입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고, 현장의 잔업·특근 거부는 끝을 맺었다.
자발적 잔업·특근 거부, 2018년 싸움을 돌아보며
현담산업 현장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잔업·특근 거부는 처음이 아니다. 현담산업지회는 2018년 2월 8일 기업노조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조직을 전환했다. 조직 전환 후 사측은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고자 노조파괴 컨설팅회사와 손잡고 탄압을 자행했고, 노조는 144일간 투쟁을 전개했다.
투쟁이 시작되기 전 금속노조 충남지부는 현담산업지회에서 지부 운영위를 개최했는데, 현담 사측이 회의장을 물리력으로 막으면서 한여름 뙤약볕 아래 주차장 바닥에 앉아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 모습에 현장노동자들은 분노했다. 당시 사측은 파업에 대비해 재고를 쌓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잔업·특근 거부에 나섰다.
이렇듯 2018년의 자발적 잔업·특근 거부에는 명확하고 절박한 노동자들의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잔업·특근 거부는 그러지 못했다. 관리자들은 전원 현장투입 대신 2인 이상 결원 시 투입된다는 합의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사실상 관리자 투입 인원을 줄인 것뿐이다.
현장의 주인은 노동자다. 중간관리자들은 현장에서 노동해야 하고 작업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런데 현담산업에서 중간관리자들은, 동료들의 표현을 빌자면 ‘그냥 담배 피우러 다니고 노는’ 잉여인력에 불과하다.
한걸음 나아가기 위하여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잔업·특근 거부가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리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집단적 단결과 투쟁을 통해 요구를 관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집단적 분노가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싸움이다.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상황을 살펴 보자. 관리자들은 늘 그랬듯 일하기 싫어하고,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런 관리자들과 일하기 싫다. 그리고 현담산업 사측은 주력제품인 연료펌프가 사양산업인 내연기관 부품이라는 이유로 여유인력 확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며, 신규채용 역시 최소화하고 있다. 결국, 현장노동자들의 노동강도만 강화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관리자들을 여유인력으로 전환하고 신입사원을 채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생각해 보자. 관리자들이 문제인 이유는 그들이 노동자들을 억압하며 상전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즉, 현장노동자의 생산현장 통제력을 강화해야 할 문제이지, 억압적인 관리자들을 그대로 두고 그들의 노동을 면제하는 것이 우리의 대안일 수는 없다.
이제 앞으로가 중요하다. 일상 활동을 통해 현장의 힘과 의식을 키우고, 이번과 같은 집단적 투쟁을 조직하고, 확대하며 올곧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전투적인 노동자들을 발굴하고 집단화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잔업·특근 거부 투쟁이 던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