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다음날 낮에는 로마로 이동. G 동지와 만날 장소를 모색하며 메시지를 나누다 '좋은 데'로 데려가 주겠다기에 로마 구도심에서 강 하나 건넌 트라스테베레 지구로 나설 채비를 한다. 짐을 줄일 겸 모자에 조끼를 바로 걸치고 나서면 문득 조끼는 여행 중 도난방지에 유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파란 모자에 머리띠는 합류할 때도 눈에 띄고 말이지. 박물관에서 일어를 할 줄 아는 C 동지를 데리고 오느라 좀 늦는다고 해 젤라또 가게도 들르고 공원이며 유적지를 가로지르며 구경도 하다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사이에도 이런저런 그래피티와 스티커와 심볼들이 눈에 들어와 넋을 놓고 셔터를 눌러대고, 한 시간 남짓 경로의 어디를 둘러봐도 존재하는 팔레스타인 연대의 메시지가 전날 시위에서의 환대를 떠올리게 한다.
트라스타베레로 넘어가는 강둑
성당 앞 작은 광장에서 두 동지와 만난다. C 동지는 일어를 3년, 한국어를 1년 정도 공부했다고 한다. 간단한 의사교환이 큰 지체없이 일어나는 것에 감사한다. C 동지의 첫 마디는 역시나 “한국에도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단체가 있어?”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에 가입된 단체 숫자와 좌파 운동에서의 팔레스타인 문제의 중요도에 대해 말해 주었다. “다행이다”라는 반응도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향한 바의 입구에는 팔레스타인기 스티커가 붙어있으며, 옆의 벽에는 울고 있는 수박과 다양한 메시지들이 쓰여있었다. 바에 자리가 없어 크래프트 콜라를 한 손에 들고 바로 앞 분수대 계단에 C 동지를 중간에 두고 셋이 나란히 앉아 번역기로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긴 호흡으로 좀 더 길고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번역기 입력창에서 최근 한국의 정세를 축약하다 보면 모든 걸 담았지만 건조하고 맥락 없는 문장이 넷플릭스 프로그램 소개문을 닮아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트라스타베레는 '로마의 홍대'라고 한다. 그러니까 동지는 정말로 외국인을 '좋은 곳'에 데려가 준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안 외에도 어떤 투쟁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4B 운동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해외에 한국발 페미니즘으로 대표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4B 운동에 대한 질문을 받을 줄이야. C 동지는 한국의 페미니스트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보여준다. 기존의 좌익운동과의 분리, 해당 의제를 주로 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의 배제주의 노선, 여성-재생산 파업이라는 개념에 대한 공감의 존재 등으로 설명한다. 더불어 우리야 뭐 이것저것 한다, 기후정의, 장애인이동권, 노동권, 젠더/성소수자 이슈 등등…정도의 맥아리 없는 대답을 돌려주자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탈리아는 2023년경 임신중절 범죄화와 같은 여성과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백래쉬가 있었으며,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항하는 연대의 물결에 동참했다.” 전날 시위에서 남성 동지의 백팩에 달려있던 '임신중단은 자연스러운 것이다'라는 인상적인 뱃지와, 벽에 적혀있는 임신중단권을 옹호하는 문구에 대해 납득한다. 이 이전에도 후에도 본 수많은 여성과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 심볼이며 문구이며 인클루시브 프라이드 플래그 등등에 대해 이 설명이 없었다면 많이 혼란스러웠으리라. 동시에 이탈리아는 한국에 비해 중심적인 거대담론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멜로니 정부가 저출생에 대한 대응으로 이주민 유입을 일부 확대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는 G 동지에게, 한국의 극우들 사이에서 북풍몰이를 대신해 확산되고 있는 혐중정서나 이주민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국의 저출생 대응에는 그러한 정책적 흐름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왜곡된 페미니즘 이론을 우파적 선전에 이용하는 이들도 있으나 주류 정치에서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의제는 여전히 주변부적 위치라거나, 그런 대답을 늘어놓는다.
C 동지가 G는 역사지리학 교수라고 소개하며,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의 사회에 대해 궁금하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묻는다. 10월 초 우정국 파업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이탈리아는 지금까지 방문했던 국가들 중에서 비교적 설명하기 힘든 방식으로 감성적이고 고맥락적이라 한국(아시아권 국가)과 약간 닮은 부분도 있다. 친절하고, 타인과의 거리감이 가깝고, 아주 강하게 조직될 수 있는 사람들로 여겨지며, 동시에 그것이 정반대의 진영에서도 일어나리라 예상된다고 답하자 나름 수긍하는 표정을 한다. 이야기가 길고 복잡해지자 G 동지가 잠시 난감해하다 스마트폰을 수평으로 들어 올려 번역기에 음성인식으로 입력하는 것도, 그것이 제법 잘 인식-번역된 결과물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G 동지가 건네오는 질문은 ‘한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 엄청난 주어이다. 기대에 서툰 성격 상 평소에 너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부분이라 뭐라 답할 수 없어, 대신 근 1년여간 봐온 것들, 만나온 사람들, 좌파 운동과 그 안에서의 사회주의 의제,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탄압의 현주소를 이야기한다. 나는 내 생애 그것이 가능할지 너무 기대하지 않고, 나의 노조와 함께 '내 일한 만큼 받는 세상', 더 나아가 '능력껏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세상'을 위해 힘쓸 뿐이라는 말과 함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 미사를 시작하기 전의 성당을 구경하러 간다. 입구로 들어서기 전, 오면서 여러 번 보며 신경 쓰였던 원과 화살표의 심볼을 떠올리고 사진을 보여준다. “자율주의Autonomism. 노조나 정당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가까운 방식을 추구하는 노동자 운동.” 혼란에 빠진다. 일주일 안 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노조 바깥의 사회주의자들을 만나며 세계관을 넓히고 있었지만 여전히 현장중심적 노동운동에서 노조운동 외를 좀처럼 떠올리지 못하는 나는 기존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나 냉소 같은 안티-테제적인 개념만을 한참 더듬다가, 일종의 아나키즘적-노동자 운동이라는 결론을 제시하고는 적당한 수긍을 듣는다. 그렇다면 그만큼 급진적인 사상이라는 거겠지. 트랜스 심볼과의 결합이며 함께 그려져 있던 서클 A들을 떠올리며, T 동지의 ‘뒤숭숭한 세상에서 극좌가 부상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탈리아는 정말로 어떤 곳일까. 답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질문이 시작된다.
따뜻한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회랑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C 동지와 실없이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크리스천이냐는 질문에 “크리스천적인 인간이지만 더이상 종교로서 믿지는 않는데, 나 같은 사람을 냉담자라고 하더라”고 답하자, C 동지는 “나도 그렇다”고 말한다. 예상 외의 대답이었기에 그 한마디가 어떤 의미일지 곰곰히 생각하면서 크지 않은 회랑에서 빠져나온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직전에 한국의 연대시민들이 만든 팔레스타인이나 노동 의제 스티커를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C 동지에게 넘겨준다. C 동지가 “티켓을 살 필요는 없다”고 한 버스에 올라타면 피렌체의 트램에서 본 것과 같은 티켓 리더기가 있어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도덕의 기준이나 문화적 규범은 유동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간다.
트라스테베레의 로마 최고最古의 성 마리아 성당
다음 날에는 사람에 치이며 바티칸을 관광한다. 시스티나 성당 예배당 천장의 '천지창조'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적 세계관 속의 인간과 신의 도달 불가능한 간극에 대해 듣는다. 기념품점에는 새 교황의 호쾌한 얼굴이 마치 슈퍼스타처럼 늘어서 있다. 가족을 위해서는 삼중관과 열쇠가 그려진 묵주를 산다. 희년(禧年, Iobeleus)을 맞은 베드로 대성당은 성당은 고사하고 광장 바깥에서부터 사람으로 가득 차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티칸 바로 옆의 집값은 로마의 다른 곳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가이드로부터 듣는다.
구글 지도의 경로 안내가 버스 파업으로 갱신되고 우체국이 점심때 닫는 것을 보며 로마 구도심의 유적들로 다시 향하면, 이 성당에서는 라테라노 조약이 체결됐고 저 성채에는 교황님이 피신하셨으며 저 성당의 성문(聖門, Porta Sancta)을 통과하면 죄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들이 발에 채일 듯이 널려있다. 우리나라의 극우 컨트롤 타워 중 하나는 개신교와 해당 계열 컬트라고 했을 때 G 동지는 “억압적인 사상의 가톨릭 국가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 비율이 80퍼센트인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것은 더 이상 나의 믿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C 동지의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해방신학에 대한 흥미를 표했을 때 별 답을 듣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저 허공에 매인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일지도.
일기예보를 본다. 변경된 일정에 따른 기상 악화의 가능성으로 고심 끝에 인터라켄 방문을 취소하고 로마에서 하루를 더 보낸다. 이런 일정을 짤 때는 앞으로는 주말을 동지들과 보내는 것을 염두에 두기로 한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찾아간 국립 미술관에서 팜플렛 표지서부터 나오는 적장의 목을 따는 유디트는 결국 찾지 못하고 대신 인상적인 그림을 본다.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여행 속에서 나름 기독교 예술을 질리도록 접한 뒤라 흔치 않은 시점과 구도라는 설명에 공감한다. 고통에 찬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유대인들의 왕'과, 만면에 띄운 조롱의 미소이며 가시관을 씌우는 우악스러운 손길이 생생하게 대비된다. 이 그림의 감상은 '이 이야기의 올바른 편'이 어느 쪽인지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완성되리라.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나이다.' 부담도 주저도 없는, 반성도 사과도 들을 수 없는 탄압과 살해에 스스로 용서를 주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아닌 '사람의 아들'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야간열차로 로마를 떠나 새벽에 베네치아에 떨어진다. 역을 나서자마자 바닷물이 보이는 도시에서는 자동차의 역할을 모두 배가 한다. 경찰 보트가 넓은 운하를 가로지르고 운구-선이 관을 공동묘지-섬으로 옮기며 정비소 역할을 하는 아주 작은 조선소에는 아주 작은 크레인이 있다. 잘못 탄 수상 버스 차창 너머에서, 바닷물 한가운데에 뻗은 기둥에 멋들어지게 적힌 'Free Palestine'이 눈에 들어와 잠을 깬다. 사람 없는 시간에 자기 배를 몰고 온 누군가는 이것을 그리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벽에 이것저것 쓰여있다거나 심볼이 있다거나 물가에 면한 가정집 창가에 팔레스타인기를 걸어놓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오히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것들의 종류며 빈도가 로마보다 더욱 밀도가 높은 느낌도 든다. 로마의 '관광객은 집으로'에 이어 '베네치아를 베네치아인에게'라는 문구를 벽에서 찾는다. 그린피스 스티커나 관광객 안내도의 금지사항들을 보며 기후위기의 국면을 맞은 수상-관광도시가 처할법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Stecco: 본명 Luca Dolce. 25년 4월에 3년 6개월의 징역을 구형받은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활동가. 현재 복역 중.
이 사람들에게 축구 팀이란 무엇일까 (‘1312’는 ‘ACAB’(모든 경찰은 후레자식이다)의 은어로 쓰인다.)
'Venezia FC 파이팅'
아담한 크레인. 구글 지도에 조선소라고 적혀있는 이곳은 아마 자동차 정비소 정도의 개념인 듯 하다.
여섯 색 무지개는 물론 인클루시브 프라이드 플래그가 어엿하게 자리잡은 사회가 신기하다
관광도시의 주민이 드러내는 정치적 실천은 세계를 향한 스피커로 기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밤늦게 출발하는 열차로 베네치아를 떠나, 볼로냐 중앙역에서 짧은 밤을 보낼 숙소로 이동한다. 역 인근에서 10여 분을 걸었을 뿐인데도 아주 많은 말, 지금까지의 명료한 단어나 심볼을 넘어서는 난해한 문장들이 사방에 펼쳐진다.
런던에서의 익숙한 폰트와 재회한다. 영국에 비하면 이탈리아의 '혁명 공산당'은 상당한 신생정당인 것으로 보인다.
Camp Unil Palestine: 스위스 로잔의 대학교 UNIL–Géopolis를 거점으로 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 보이콧 활동을 하고 있다.
A Foras: 사르데냐 군사점령 반대 단체. 사르데냐에는 이탈리아와 NATO의 군사시설이 집중되어 있으며 분리주의 의제의 정당(사르데냐 행동당)이 존재한다.
Rami Elgaml: 이집트계 19세 청년. 24년 11월 밀라노에서 친구와 스쿠터 운전 중 고의적 경찰폭력으로 추락사. 해당 사건에 대한 재판은 현재까지 진행 중.
인터라켄의 예정이 사라졌으므로 마지막 날은 볼로냐 중앙역에서 밀라노 중앙역으로, 거기에서 스위스의 취리히 중앙역으로, 다시 취리히 공항역으로 이동. 밀라노 중앙역에서 탄 국제선 교통약자 칸에서는 뒷좌석의 할아버지들이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드문드문 들려온다. 국경을 넘기 직전에 잠시 정차한 기차 안에서 이것저것 돌이켜본다.
햇살이 뜨겁고 사람들이 정열적인, 국가 단위의 거대담론이 건재하고 강하게 조직된 동지들이 살고 있는 음식이 맛있는 나라. 동시에 전체주의와 조직폭력단을 일컫는 일반명사가 태어난 나라. 축구 경기에 관심이 많고, 거리감이 가까워 처음 만난 이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튀는 사람으로 살기에는 고생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되는 나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하게 이행하는 불연속점이 시스템 전반에서 눈에 띄는 나라. 더운 날씨 때문인지 방문했던 다른 국가들에 비해 확연하게 밤이 늦은 나라. 카톨릭과 가부장제가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나라. 고생하시는군요, 서로 힘냅시다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프랑스에서 느꼈던 서러움과는 정반대의 어딘가 익숙하고도 가까운 기분이 드는, 어딘가 지금의, 혹은 좀 더 이전의 한국에 대한 기억과 닮은 나라. 아직 다 해석되지 않은 한 무더기의 사진들과 함께 나는 한동안 이 땅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위스
기차에서 내리면 언어와 화폐와 물가가 다른 땅. 마지막 식사를 위해 역을 나선다. 강풍주의보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강을 따라 내려가며 느낀 첫 감상은 '표백된 것 같다'였다. 풍요로운 마트와 맛있는 간식 가게와 예쁜 경치가 있고, 큰길을 따라 내려가면 별 눈에 띄는 낙서도 스티커도 없이 평화로운 광경. 여러 곳에서 본 여러 선전물들이 있을 법한 자리의 공백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여섯 색깔 무지개와 환대의 표현이 종종 보이는 것 정도가 두드러지는. 그러나 역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음식점을 찾아 몇 걸음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금이나마 익숙한 문구들이 보이고, 인근 거주자들이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쓰레기 수거함은 좋은 선전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탈리아에 이어 다시금 깨닫는다. 하여튼 어디든 경찰 싫어하는 것만큼은 똑같은 것 같다.
짧은 시간 체류했지만 산지가 많고, 문화적 특징보다는 청정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자부심이 두드러지고, 물가가 인근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고, '일단은' 중립국인 작은 이 연방공화국으로부터 자의적으로건 타의적으로건 어딘가 고립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식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에게 자연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다양한 사회의 형태를 접하고 그것이 운영되는 방식을 엿보는 것은 언제나 경이롭다.
대한민국: 그리고 남은 이야기
공항 구석에 있는 국적기 카운터의 직원이 수하물 위탁은 받지만 체크인은 모바일로 해오라고 하거나(영국이라면 이런 건 무인-기계-위탁으로 돌렸을 텐데!), 기껏 이탈리아어에 익숙해졌더니 독일어에 당황하거나 하는 일들을 거쳐 열 한시간을 날아 인천으로 돌아간다. 손가방에 배인 러쉬 워터멜론(수익의 70%가 팔레스타인의 절단장애인 의료지원에 사용된다고 한다)의 강렬한 향이 눈빛이 부드럽고 색소가 옅은 검역견과의 짧은 만남을 주선한다. 아뇨, 과일은 없어요. 가방에 든 음식은 과자랑 파스타 뿐입니다.
세관을 통과해 공항 로비로 나오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인천공항 재파업을 목전에 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의 조끼 위의 몸자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고민을 하고 돌아온 여행의 마무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나의 삶과 운동의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느껴진다.
날짜를 확인하면 빌려왔던 하루가 사라진 것이 묘하게 손해 본 기분이 든다. 여행 내내 셔터를 눌러 댄 필름 여섯 통분의 사진이 수동카메라의 조작 미숙으로 찍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현상소에서 깨닫고 절망한 다음(내 베스트 컷들이!) 사진을 기대한 L 동지 일행에게 그 사실을 전하고, 대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중 괜찮은 것들을 보내준다.
아직 시차에 고통받고 있는 동안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감상평 하나가 눈을 끌어 심야 티켓을 끊는다. 초반부터 '아나키스트 활동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반정부 투쟁을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동시에 T 동지의 '너희 나라 아나키'의 취급에 대한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도, 우리나라에는 '극좌'가 존재하지 않는다던 누군가의 평가마저도 이해한다. I 동지가 고공농성과 도크 점거를 보고 감탄한 다음 “그 사람들은 감옥에 갔어?”라는 물음부터 꺼냈던 것이 어떤 논리에서 온 것인지도 생각한다. “감옥은 안 갔어. 우리가 안 가게 탄원했어. 가끔 조사는 받았어.”라는 대답에 얼굴에 번지던 미소도.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혁명의 전운을 느끼고 앞으로의 세계가 어디로 나아갈지, 이 역동이 한국에는 언제 어떻게 다다를지 상상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길거리며 시위 한복판을 걷는 동안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는 현재진행형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혁명은 한순간의 커다란 완결이 아니라 작은 변화들이 만드는 흐름에 대한 정의라는 것. 매일매일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들이 서로 연결되어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다다르는 발걸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자리한 곳이 아닐 이유는 없으며, 오늘 우리의 집회도 몇십 년 후에는 혁명의 흐름 위에서 이야기될지도 모른다는 것.
'연속혁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러시아 혁명이며 한국 노운사 따위의 성공과 실패, 반복되는 진전과 퇴보를 떠올리며 '말이 쉽지. 혁명이란 순간 같아도 전후 몇십 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그런 큰일을 연달아 터뜨릴 기반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좌파 운동이나 체제전환에 대한 이해 없이 장엄한 수사로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냉소도 커져만 갔다. 세계가 나빠져만 가는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라는 무력감에 짓눌려왔다. 지금은 안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이유는 사실은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할 때조차 언제나 같은 적과 함께 싸워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혁명이란 연표 위의 한 점이 아니라 시공간적인 연속성이 만들어내는 흐름 그 자체이며, 역사라는 이야기의 모든 사람들이 연루되고 또 구성하는 것이며, 오늘 나의 한 걸음 또한 돌아갈 수 없는 변화를 만드는 데에 가담하였다면 나는 이미 '라 비바 레볼루시옹'의 일원이라는 것을. 말 그대로의 투쟁, 영원한 투쟁One Battle After Another.
여행을 떠나는 길에는 막연하게 '집회에 나간다'거나, '활동가를 만난다'라는, 마치 세상 어디서든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인의 심정으로 내가 평소에 해 오던 것을 하러 가리라고 생각했다. 막상 현지에서 만난 동지들은 어엿한 사회주의 단체에 소속되어 공통된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회상이나 운동의 양상, 방향성의 차이 등을 감안하더라도 스스로의 이론적 토대의 부실함에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 간극을 곱씹는 동안 '사회주의자 동지들의 관심사를 듣는 것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지만 어쩌면 나는 노조활동가를 만나서 노조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다음 목적지는 독일의 금속노조 사무실이 될지도 모르겠군' 같이 자신의 관심사의 좌표가 점차 선명해져가고,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 운동, 사회주의 운동에서 노조운동의 범주 바깥에 존재하는 다양한 방향성에 대해 시야에 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즐겁고도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얻게 된 의문과 해답들을 좀 더 이해하거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전체상 위에서 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운동의 목표와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연결될 필요성을 느끼거나, 누군가에게 여러가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개념과 언어를 가지거나 하고 싶은 마음이 사회주의의 이론과 역사를 공부하는 일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좀 더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 먼 나라의 먼 시대의 사람들이 해왔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전진의 교육은 새로 조직된 이들에게 지식과 통찰을 제공하였다'고 T 동지에게 스스로가 한 말을 믿는다면, 한국과 세계의 운동사에 대한 개괄적 이해가 실제로 먼 나라의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러므로 이 모든 게 강단 위의 헛소리가 아니라 실재하는 역사이고 삶이며 운동의 실천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식이고 누군가를 키우고 또 연결하는 일이라면 조금만 더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다양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은, '어딘가에서 당연하지 않은 것은 어딘가에서는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또 어딘가에서 당연하다고 믿는 것도 다른 곳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 골목길의 가게나 마트의 진열대에 수많은 종류의 햄이나 치즈가 밑반찬처럼 늘어서 있는 풍경, 몇백 년씩 된 낯선 모양의 건축물들. 혹은 터무니없이 들릴 만큼 강력한 총파업과 봉쇄 행동, 관광지 한복판에 나타난 트랙터와 그에 대한 경찰의 태도, 거리를 메운 상징과 포스터의 전쟁. 좌파 정치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아나키스트와 마오주의자가 있는 나라. 우리가 쿠바의 미군정과 혁명에 대해 아는 만큼만 북한의 정세에 대해 아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열 몇시간을 날아가면 옛 왕궁 근처의 빌딩에서 사회주의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중국과 북한은 가짜 사회주의'라는 챕터에 한 강 전체를 할애하는 분단국가가 나온다. '멀리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인지도와 동의도의 차이. 우리가 물리적인 세계를 산다는 것이 빚어내는 간극들. '지정학'이라는 개념의 무게에 대해 새삼 느끼며 역사지리학자인 G 동지가 수업에서 할 법한 이야기들도 생각해본다. 다음에 그를 만날 때엔 좀 더 괜찮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면 좋겠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결국 동화 속 공주님이 뾰족한 성에 사는 것도, 에펠탑이며 모나리자도, 선진국에서는 허구한 날 파업으로 지각한다는 소문도, 사회주의 혁명을 삶의 목표로 삼고 내다보며 준비하는 사람들도, 어떤 이야기나 메타포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손을 거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나에게 그건 정말로 그곳에 가서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어쨌거나 직접 보고 만 이상 다시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고, 이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진짜인' 모든 것들이 나의 삶이며 결정 같은 것들과 이전에도 앞으로도 상호작용하리라는 진실이리라. 떠올릴 때마다 심란해지는 사실이지만 이론에 선행하는 경험을 부정할 재간은 없다.
이따금 피렌체 시위에서의 영원한 돌림노래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에서 찬바람 부는 이태원을 행진하며 만난 외국인들의 환대에 이어진 하늘 너머 어느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의 그것을 떠올린다. 다른 장대한 목표들과 함께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것'을 사회주의자의 현시점에서의 중요한 과제라고 하는 강의자료를 보며 바다 건너 '제국'의 동지들의 진지한 고민들을 떠올린다. 돌아온 곳을 새로운 눈으로 마주하며 여행은 다시금 이어진다.
일곱 시간 뒤에서, 혹은 두 세기를 넘어서, 사십 오 년 전으로, 어쩌면 바로 지금. 바다를 건너서, 철조망을 넘어서, '제국'이 그은 금에도 신경 쓰지 않으며, 우선은 이 손이 닿는 곳에서부터. 백만 가지의 모습으로 서로에게 손을 뻗고 그렇게 누구도 선 뒤에 남겨두지 않아야만 비로소 내일이 찾아온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혁명은 시작된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인터내셔널'일지니, 기립하는 것 외의 선택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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