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2) 이탈리아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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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2) 이탈리아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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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6.01.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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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아침에 출발한 비행기가 약간의 연착을 거쳐 피렌체 공항에 도착한 것은 정오 남짓. 작은 도시의 작은 공항인데도 바로 앞의 정류장에서부터 군인들을 마주쳤다. 아, 지금 온 트램은 시내로 안 간다고요? 파리에서 런던으로 넘어갈 때의 영어가 이렇게나 친근한 언어였던가 하는 기분과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어는 한 문장 중에 한 단어만 정도 귀에 들어온다. 이후 이탈리아 여행 내내, 어쩌면 경찰보다도 많은 군인을 길에서 마주친다. 밤에는 검문에 걸린 듯 군인에게 둘러싸인 사람들도 본다. 마지막 날 들른 볼로냐 중앙역에는 군용 인식표를 만들 수 있는 기계까지 있었다. 관광도시라서? 혹은 착륙하자마자 외교부가 칼같이 보내온 ‘치안과 마약에 주의하라’는 문자와 같은 맥락으로? 

 

캐리어와 함께 매장된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건너와 체크인을 하고 시간을 보니, G 동지가 연결해 준 오늘 시위에 참석하는 L 동지를 미리 만나 설명을 듣겠다는 계획은 물 건너간 듯하다. 시작 전까지는 도착하겠다는 연락을 보내고 간단한 세부사항을 묻는다. “공장을 점거하여 집단해고된 노동자들이 친환경적이고 자주적인 공장 운영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으며, 이는 시민사회의 큰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며, 대개 경찰과의 충돌은 없다.” 좋군요, 우리도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이 드물지만 존재합니다. 첫 끼로 햄과 치즈가 든 피자-빵(아마도 파누오초)을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해치우고는 버스에 오른다. 숏폼으로 시위 영상을 보는 승객의 옆자리에서 금속노조 조끼를 입는다. 10월인데도 아직 여름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햇살이 따갑고 날씨가 더워서, 노조 모자도 가져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 Collettivo di fabbrica GKN 주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는 다비드 상이 전시되어 있다.

 

버스에서 내려 대학 뒤편의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경찰이 둘쯤 보이고, 가방에 여러 개의 퀴어 플래그 뱃지를 달거나 쿠피예를 걸치거나 노란색 깃발(나중에 현장의 동지에게 유명한 반군사 단체의 깃발이라고 듣는다)을 든 사람들이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걸 보고 안심하고 따라붙는다. 졸업 시즌이라 붐비는 대학교 앞을 돌아 샛길로 들어가면 광장에 도착한다. 집회 시작 전부터 투쟁 굿즈 가판대며, 동지들이 선전물을 나눠주는 작은 테이블, 모금함을 든 사람이며 책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아나키즘이나 반-시온주의 상징 등과 함께, 한 손에는 팔레스타인기를, 한 손에는 투석구를 든 유명한 시위대의 사진이 뱃지로 판매되는 것을 보며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동시에, 그 모습이 오늘 시위의 테마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매대 앞에서 가진 현금을 가늠하다 슬로건이며 핀버튼이며 마그넷 같은 것을 몇 종 산다.

 

 

배포대를 접을 준비를 하는 동지들과 인사하고 유인물을 받아든다. 동지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는 'Solidarlity' 한 단어만이 귀에 꽂혀온다. 다양한 단체의 깃발들이며 행진을 위해 길게 펼쳐진 현수막들은 붉은색과 흰색이 주된 색조로, 천 위에 손으로 쓰고 그린 것이 생각보다 많다. 확성기를 들고 행진 내내 노래를 부르게 되는 영어를 잘하는 동지가 '우리를 잃어버리면 이 못생긴 깃발을 따라오면 돼'라고 했던 오늘 함께하게 될 조직의 깃발도 붉은 천 위에 손으로 쓰여있다. 크기가 크거나 깃대가 길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의 깃발이 마치 손깃발을 키워놓은 양 흰색 플라스틱 깃대에 천 전체가 걸려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다비드가 붉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 노동 의제 시위이겠거니 한 것 치고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상징들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행진이 시작되면 동지들이 내내 부르는 노래들 또한 그러하다. 필름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누르고 있자니 행진이 시작할 때쯤 '저런 걸 찍어야지'라며 한 동지가 앞쪽을 가리킨다. 손가락이 가리킨 끝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저게 뭐냐고 기겁하자 '스포츠 경기 응원 등에서도 사용되는, 근사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덕덕고(DuckDuckBot. 구글 등과 달리 개인정보 보호를 모토로 계정 기능, 검색어 수집 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일부-오픈소스 검색엔진)로 'Fumogeno'의 이미지 검색 결과를 보여줘서 에펠탑 앞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납득한다. 한편으로는 화기로 오인되지는 않는 것인가? 경찰에게 제지받지 않아? 하고 한국에서 온 연대자로서는 머리가 멍해진다.

 

Insorgiamo: '기립하라, 봉기하라'. 시위의 주최단위인 GKN 피렌체 공장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사회적 운동. 기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르티잔 저항운동의 구호.

 

 

눈부신 햇살 아래 어느 단위든 씩씩하게 행진하지만, 나의 일행들은 한눈에 봐도 작은 단위인데도 쉼 없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고 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대오 안에서도 존재감 있게 느껴진다.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클라이맥스. 영원히 불나비를 부르며 진격하는 말벌부대를 상상해보라. 탄핵 정국의 '축제 같은 시위'에 대한 누군가의 엄중한 지적이 한층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잠시 대오가 멈추고 노래가 잦아드는 쉬는 시간에도 지치지도 않고 서로 장난치고 입을 맞추고 방금 전까지 부르던 네타냐후를 규탄하는 노래를 어깨에 힘을 빼고 흥얼거리는 것을 보며 그 활력에 감탄한다. 동시에, 시위의 행선지도 종료 시간도 모르고, 불리우는 노래도 구호도 평소와는 모두 다르고, 몇 시간 전에 처음 밟은 땅의 말은 제대로 알아듣지도 외치지도 못해서 동지들의 성량에 뒤지지 않기 위해 조끼 주머니의 '응급용 카주'를 꺼내 열심히 불던 입장에서는 '나도 저런 동지들이 있는데, 저런 거 할 줄 아는데' 하고 약간의 쓸쓸함을 느끼고, 동시에 내가 광장에서 만나온 동지들을 하나씩 겹쳐보며 나름대로 마음으로 다가서 보기도 한다.

 

파리와도 런던과도 다른 직선적인 건축양식.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오래된 건물들 위로 맑은 날씨의 빛과 그림자가 드리우며 풍경을 만들고, 몇 시간에 걸쳐 걷다 보면 해가 기울어 감에 따라 시가지는 점차 얼굴을 바꾸어간다. 통일감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은 평범한 가정집에 내건 팔레스타인 깃발이며 인클루시브 프라이드 플래그, 낯익은 배색으로 늘어놓은 빨랫감, 무심하게 난간에 걸쳐진 쿠피예, 때때로 육교 위에서며 가게 위층이며 열린 창 너머로 환호를 보내오는 사람들. 생각 이상으로 대오는 컸고, 경찰은 보이지 않았고, 퀴어문화축제나 퇴진광장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종류의 환대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와 빈도로 접해서 얼떨떨해진다. 여기서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좌파 운동 바깥에서도 이렇게나 지지를 얻고 있단 말인가?

 

 

대오가 잠시 멈추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모자의 머리띠는 무슨 의미인가?” 단결, 투쟁, 노동조합 내셔널 센터 로고입니다. “어디서 왔나?” 한국입니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어떤가?” 어, 오늘 열린 2주년 집회에 천명 정도 왔습니다. “좋군. 오늘 뉴욕에서 열린 No Kings 시위에는 10만 명 이상이 모였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인터내셔널?) 그래, 인터내셔널, 당신은 이 이야기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시위에 나와 우리를 지지해줘서 고맙다.” 

 

'이 이야기의 올바른 편'이라는 단어가 서정적으로 들림과 동시에 아주 높은 곳에서 스스로를 내려다보는 듯한, 유럽에서 내내 느껴왔던 오늘의 나의 운동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연결된 거대한 흐름 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얼마쯤 지나자 같은 노래가, 같은 구호가, 반복되는 단어가 점차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이며 이스라엘이며 팔레스타인이며 평화이며 종식 같은 단어들을 '고맙습니다'나 '미안합니다'보다 먼저 익히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시위대의 기세도 약간은 잦아들어 대오가 잠시 멈추면 차도에 앉거나 담배를 말아 불을 붙이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프랑스도 한국에 비해 흡연에 관대하기는 했지만, 행진 한복판에서? 전노대며 결의대회 때마다 들리는 사회자의 '흡연은 대오 밖에서'라는 잇따른 고지와, 대오가 멈추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옆으로 빠졌다가 어느새 돌아오는 금속노조의 아저씨들을 떠올린다. 운동의 실천과 면면에서는 의제만 조금 바뀌어도 언제나 새로움을 느껴왔지만, 정말로 함께 걸으며 무언가를 외친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낯설다.

 

Scuola per la Palestina: '팔레스타인을 위한 학교'.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이탈리아 교사 네트워크

 

Società operaie di mutuo soccorso (SOMS): 이탈리아 노동자 상호부조협회. 1848년 혁명의 영향 하에서 탄생함.

 

'마르완 바르구티를 석방하라'

 

'투쟁하는 GKN 노동자들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FLC-CGIL Università di Firenze: '피렌체대학교 이탈리아 노동총연맹(Confederazione Generale Italiana del Lavoro, CGIL) 지식노동자연맹(Federazione Lavoratori della Conoscenza , FLC)'
 

'공공재 수호를 위해 단결'

 

'누구든 경찰을 싫어한다(프랑스어)'

 

몇 시간씩 걸어 슬슬 지쳐갈 때서야 하루 동안 그다지 먹은 게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조금 긴 휴식 이후 행진이 다시 출발하기 시작하자, 기운을 찾은듯한 시위대와 대조적으로 나이든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인도 쪽으로 빠져나와 대오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눈에 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언제 끝나는지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점차 시가지를 벗어나, 해가 기울어 서늘한 색으로 변한 하늘 아래 아스팔트가 깔리고 근처에서 차가 다니는 황량한 국도 같은 곳을 걷고 있었다. 가드레일을 몇 번 넘다 보니 일행들과도 흩어지고, 그럼에도 여전히 앞뒤에서 한 방향으로 걷고 있는 대오를 따라간다. 걷다 보면 머리 위에 걸린 표지판의 공항 마크가 눈에 들어와 불현듯 오늘의 목적지를 깨닫는다. 아, 공항. 사람도 많고 좋지. 뭔가…선전전이라도 하는 건가? 한참을 걷다 보면 예상대로 오늘만 두 번째 보는 낯익은 공항이 보이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상상 이상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은 도시의 작은 공항의 유리문을 들어서자 모든 곳에 사람이 차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접한 새로운 전략, '주요시설 점거'. 이 정도의 시위대가 이 정도의 공간에 들어가면 물리적으로 공항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밀집한 사람들의 냄새와 열기. 쉼 없이 공간 안을 울리는 구호와 노랫소리에 맞춰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거나 가끔 양 주먹을 쥐어 보이는 일종의 항의행동을 한다. 주최단체의 긴 현수막이 공간을 만들며 선전물의 역할을 한다. 드문드문 나갈 길을 찾지 못해 당황한 이용객들이 보인다.

 

시위대를 따라 앞으로 나가다 보면 공항의 반대쪽 끝에 가까워진다. 한쪽 끝에는 한 무리의 세룰리안 블루 색의 헬멧과 검은 슈트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아마도 이 나라의 기동대가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젠더를 인식할 수 있는 기호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다고 느껴 약간의 의문에 빠진다. 머잖아 그들이 삼단봉으로 나보다 조금 앞 열에 있던 참가자들을 구타한다. 순간 얼어붙기도 잠시 곧이어 사람들이 기동대 쪽으로 움직이며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이 사람들에게 밀집 사고 트라우마는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 반, 항의 반의 생각을 머릿속에 띄우면서도 앞뒤의 사람들에 섞여 속절없이 한 사람분의 부피를 보탠다. 얼마지않아 압력이 사라지고-대치가 풀리고-저지선을 넘는 데에 성공해 그때까지 기동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오른쪽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 걸음을 옮긴다. 기동대 몇몇만이 2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난간 너머로 삼단봉을 휘두르며 때늦은 저지를 시도한다.

 

 

2층에는 탑승 게이트가 보이고(도착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정말 작은 공항이다), 여전히 팔레스타인 깃발 한 쌍이 시위대의 머리 위에서 힘차게 춤추고, 1층보다 더 좁은 공간에서 여전히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 영상을 촬영하자 몇몇이 저지하는 제스처를 건네 스마트폰을 내리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는걸 보고 눈치를 보며 다시 카메라를 켠다. 넋이 나간 상태로 아직 본 적 없는 채증 카메라를 뒤늦게 염두에 두고 구호가 적힌 슬로건으로 얼굴을 가리자 누구는 손짓으로 내리라고 하지만('테러리스트'를 연상해서?) 막상 해산할 때 보면 여러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원이 공유하는 명확한 룰은 성립하기 힘들다. 갑자기 누군가가 큰 소리로 선언하고 사람들이 중간중간 환호한다. 한층 기세를 얻은 노래와 구호가 이어지고, 그것이 잠잠해지면 대오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올라온 계단으로 천천히 질서 있게 내려온다. 이 많은 인원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사고가 없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기동대의 저지선 뒤쪽에 있던 작은 카페의 진열장 유리가 산산조각 나 계단 앞부터 쏟아져 있다. 아마도 충돌에 휘말려 부서진 거겠지. 혹은 시위대에 대한 반감을 염두에 두고 기동대가 부쉈거나.

 

'Sigfrido Ranucci(이탈리아의 언론인. 이 시위가 있기 이틀 전 마피아에 의한 차량 폭탄테러의 표적이 되었다.)는 우리들 중 한 사람이다. 기립하라!'

 

부서진 진열장. 바닥에 유리조각이 쏟아져 있다.

 

나가는 길은 들어올 때와는 반대쪽 출구라 내려오면 머잖아 자동문을 마주친다. 공항을 나서기 직전 인파 속에서 L 동지가 나타난다. 나의 얼굴을 보며 걸어온 첫마디는 “나는 몰랐다”. 생각지 못한 강도의 현장을 맞닥뜨린 충격과의 간극에 뭔가 따지고 싶어졌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게릴라 행동이 모든 참가자들에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주차장에서 다시 북소리와 음악과 구호를 발산하며 대오가 모이기를 한동안 기다리고, 공항을 나와 아스팔트 도로 위로 오르면 먼 하늘에서부터 희미한 저녁노을이 번져온다. 아까의 선언 같은 것으로 힘을 얻은 모양인지 시위대는 다시 목청껏 노래하고, 이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는 나는 동지들 곁에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터덜터덜 걸으며 이제는 뇌리에 지져진 돌림노래를 카주로 따라 연주한다. 그런 와중에도 하늘은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어가고 공항을 나오면서부터 심심찮게 피어오르던 붉은 색과 녹색의 연기며 때때로 쏘아 올리는 불꽃 또한 허공을 가르며 감색으로 깊어져 가는 배경을 점차 아름답게 수놓는다. 여러 가지 생각은 들지만 역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처음 출발했던 곳 인근에서 대오 정비를 하고 해산할 즈음엔 이미 밤이 깊어 사위가 어둑하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네 명 정도의 동지들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나서다, 행진 진행 방향의 끝에서 경찰 밴 몇 대와 삼단봉과 방패를 들고 있는 십수 명의 기동대를 찾아내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상상 이상의 현장이었음에도 아무도 연행되지 않은 것에 새삼 안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2층의 열린 창 너머로 환호하며 인도를 걷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가족(아마도 아래층 가게를 운영하는)들과 거기에 응답하는 동지들의 대화가 퍽 다정하게 들린다.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다 창 아래의 피자가게로 별 고민 없이 들어선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나에게 돌아온 첫 마디는, “그 옷은 무엇인가”. 우리 노조 유니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조끼가 노조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매번 설명하면서 다시 놀란다. “한국의 전쟁무기 수출은 팔레스타인 학살에 기여하고 있다” 어, 우리 '진짜 사장'은 한화인데, 한화는 '한국 화약'의 약자이고 당연히 전쟁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있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어느 정도인가” 음…오늘 2주년 집회에 천 명쯤 왔다. 그래도 작년보단 많아진 것이다. “괜찮네, 잠깐, 몇천? 아니면 일천?” 일천(현장의 동지로부터 시작 시에 집계된 인원만 들었다). “적군…. 하지만 거긴 머니까 말이지”

 

이 대답에 새삼 지정학적 요건이라는 변수를 상기한다. 지중해의 맞은 편. 가자행 선단을 출발시킬 수 있는 위치. 수무드 선단의 안전에 따라 파업을 결의한 바다 위의 항만노동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정말로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었으리라.

그리고 대체로 번역기를 사용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행동력이나 언어나 IT능력과 같은 교섭력이 좋은 비교적 젊은 동지 한 명이 소통을 맡고, 연장자로 여겨지는 차분한 인상의 한 명 정도가 토의의 중심이 되어 의견을 내거나 취합하거나 하는 흐름으로, 이와 비슷한 모습은 다음날 로마에서도 보게 된다. 골판지 상자 위에 무심히 올려져 나온 나폴리 피자에서는 앤초비의 짠맛이 두드러진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람 하나당 피자 한 판으로, 일행과 나누거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접시의 튀긴 공 같은 것 중 붉은 색은 아란치니.

 

“삼성 노조가 파업한 것은 팔레스타인 연대의 의미인가?” T 동지도 전국삼성노동조합의 파업 이야기는 알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새삼 삼성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놀란다. 더불어,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서 현재 이들에게 팔레스타인 문제가 얼마나 주된 담론으로 여겨지는지를 체감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의 파업은 아니라는 대답에 이어 겸사겸사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이나 전삼노 간부들의 비리며 한국에서는 정치파업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를 거쳐 노조 간부들의 총파업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흘러간다. 노조관료주의는 아직 국적과 소속을 불문하고 어느 테이블에서도 실패한 적 없는 주제로, 대화를 통해 이탈리아 또한 비슷한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다.

 

“오늘 시위는 마음에 들었나?” 마음에 들었지만,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공항 점거는 사전에 계획된 건가? 우리는 오늘 시위에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퇴각했나? 왜 공항 2층에서 사람들이 기뻐했나? 일단 나는 이 시위를 공장 자주관리를 시도하는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의제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계획되었지만 고지되지는 않았다. 기뻐한 것은 아니고 점거를 통해 우리의 강력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동의의 의미로 환호했다. 오늘 우리가 옹호한 공장의 노동자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 위한 파업을 했기 때문에 해고되었다. 평소에는 이 정도까지 하진 않지만, 최근 몇 주간 교착된 정세로 인해 가중된 압력이 터져 나온 것이다.” 요컨대 위력 행사이군. 왜 해고노동자를 지지하는 시위가 동시에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인지 납득했다고 전한다. 점거현장의 분위기와 대답을 겹쳐보며 '데모'가 무엇의 약자인지 새삼 깨닫는다.

시위에서 나온 구호나 노래들을 정확하게 알려주면 감사하겠다고도 말한다. “'멜로니 정부는 물러가라, 모든 것을 봉쇄하자, 파업하라, 파업하라' 같은 반정부 구호를 많이 외쳤다.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제국주의에 맞서 '강에서부터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같은 구호도 외쳤다.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들을 위한 구호도 많이 외쳤다.” 이탈리아어 원문을 훑어보며 그게 이런 뜻이었군. 하고 끄덕인다. 나는 이제 이탈리아어로도 '파업하라'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감사합니다'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른다.

 

말이 나온 김에 좋아하는 민중가요도 물어본다.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 부른 'Fischia il vento'를 제일 좋아하지만 인터내셔널도 좋아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 고민 끝에 임정득 가수님의 '벨라 차오' 번안이나 금속노조가, 팔레스타인 정기집회에서 자주 듣던 'Leve Palestina, krossa sionismen' 등을 답한다. 한국에서 '파르티잔(빨치산)'은 과격파 좌파 운동가를 통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금속노조가의 가사에 흥미를 보이기에 영상을 찾는 김에 나온 김형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의 고공해제 영상도 보여준다. 내친김에 2022년 파업 당시 부지회장의 사진도 보여준다. 눈빛이 형형한 다박수염의 남자가 올라간 이유를 대답하다 보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거쳐 한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 이야기까지 넘어간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좌파 전반의 통일에 대한 희망, 우파의 전쟁 위협과 매카시즘의 수단,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 이북에서 온 조부의 이야기는 이 땅에서 드물지 않다는 설명을 한다.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이 주변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한국인으로서는 의외의 접근에 잠시 멍해진다. 오늘만 몇 번을 이렇게 되는 것인지. 북한이 기근과 빈곤을 거치며 퇴보한 이유 중 하나로 소련의 붕괴를 꼽을 수는 있겠으나, 북한에 이미 자유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았으며 돈이 있다면 외국의 문물도 어느 정도 접할 수 있다는 것, 나의 관점에서 현재의 북한은 단순한 세습독재국가에 가까우며 매체에서도 자본주의의 영향보다는 내부의 모순이나 병폐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나면 저쪽에서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심화된 질문이 들어온다. “그 사람들이 굶고 있는가?”

 

북한 내에서 외국 통화가 더 가치가 높은 현상이며, 외국 친지로부터의 송금이나 외국 주재 요리점, 단속을 피해 중국으로 일하러 다녀오는 등이 GDP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한 다음, 음식이 아예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으나 가치체계의 붕괴와 불평등이 결과적으로 인민의 배를 고프게 한다고 말한다. 국가보안법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몇 년에서 몇십 년이 지나서야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참고하므로 현재 정세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고도 말한다. 동지들이 접하는 주류 언론에서는 북한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자,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은 나에게 어릴 적부터 좌우를 막론하고 이야기되어온 익숙한 이미지이지만, 어쩌면 저 동지들에게는 오늘 새롭게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뒤늦게 생각한다.

 

한국에는 사회주의자 K-팝 스타가 있는지도 물어온다. 표정을 보니 이전보단 격의 없는 질문이라고 느껴져 짧은 대화 속에서도 거리감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정치적 지형 때문에 가수가 자신의 정치신념을 밝히기는 쉽지 않으며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없지만 부적절한 노동환경에 대해 고발하기 위해 국회에 출석한 아이돌은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어 해산할 때가 다가오고,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전략에 대해 묻는다. 피로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한국의 분단이 미-소의 대리전에서 왔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며 사회주의의 국제주의적 측면,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확실하다고 말하자 좌중은 일제히 환호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돌아가는 길에 천과 깃대가 분리되지 않은 깃발을 말아쥐고 어떻게 할지 의논하다 누군가가 받아들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어딘지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져, 다음에 또 봐요, 하고 인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돌아가는 길에 신나서 셔터를 눌렀지만 이 정도는 서막에 불과했다

 

두어명의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검문(같은 것)을 겪고 있는 장면을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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