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스1
트럼프가 이재명에게 소위 ‘백악관 황금열쇠’를 보냈다고 한다. 각 언론에서 앞다투어 지난 이재명 대통령의 '금관' 선물에 대한 보답과 신뢰의 의미라는 해석을 내놓았고, 대통령 비서실장은 "양 정상 간 최고의 협력관계가 형성됐"다는 증거라 밝히기도 했다. 이 열쇠를 받은 다른 사람들을 보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태반이 트럼프 정부의 제국주의 행보에 앞장서 가담해 온 인물들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따르면 ‘황금열쇠는 오직 다섯 개만 제작됐다’고 하나, 열쇠는 황금도 아니고 5개만 제작된 것도 아니다. 자본가 정부 사이의 우애가 노동자 민중에게도 이롭다는 번지르르한 선전의 허구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한미 정부가 양국 자본가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한 협상을 마친 지금, 노동자 민중은 국제주의적 단결로 양국 정부와 자본가계급에 맞서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한-미 자본주의 체제의 약탈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국제적 단결을 추동할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지난 11월 8일 ‘2025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전국노동자대회는 ‘열사 정신계승’이라는 이름답게, 열사의 외침을 되새기는 자리, 자본의 탄압과 착취에 짓밟히면서도 싸우는 우리 곁 수많은 ‘전태일’을 호명하는 자리여야 했다. 그러나 전국노동자대회에는 ‘트럼프의 국가 수탈 저지’라는 공허한 구호가 국가주의의 망령을 부르고 있었다.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난 지 두 달여가 지난 지금을 살펴본다. 국가의 이익을 노동자 민중의 이익인 양 여기는 국가주의가 운동사회를 휩쓸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이 결성되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학생사회에서도 ‘트럼프의 경제 수탈을 막아야 한다’는 대자보가 사방에 붙고, 관련한 서명운동 등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 정세를 ‘국가 수탈’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옳은 진단이 아니다.
트럼프의 국가 수탈을 저지해야 한다는 구호가 공허한 이유는, 트럼프 정부가 수탈하는 대상을 모호하게 만들 뿐 아니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수탈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 즉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국익’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인가? 트럼프 행정부의 수탈은 한-미 자본이 양국 노동자 민중을 상대로 저지르는 행위이다. 따라서 트럼프를 저지할 힘 역시 각국 정부가 아닌, 한국과 미국, 나아가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투쟁에 있다.
물론, 미국의 약탈적 행위는 실존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폭력적 재편에 나섰다. 트럼프는 세계 각국을 상대로 일방적 관세 부과를 경고하며, 관세를 인하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요구했다. 한미 관세협상 역시 마찬가지다. 협상의 주요 골자는 상호 관세율을 15%로 유지하는 대신, 국내 주요 자본의 대미 투자를 확대해 결과적으로 10년에 걸쳐 총 2,0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익’에 대한 약탈이 아닌, 노동자 민중에 대한 약탈이다. 트럼프의 ‘수탈’의 짐은, 한국 자본가계급이 아닌, 노동자 민중이 진다. 한국 정부는 관세협상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사회복지 예산 축소와 공공부문 민영화로 해소하고자 할 것이다. 한국 자본가들 역시 미국 생산시설 증축에 따라 국내 일자리를 축소, 구조조정할 것이다. 결국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의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국 자본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청년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청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 중 하나가 일자리 문제다. 한국 자본이 대미 투자가 아니라 국내 투자를 확대한다면 청년들의 삶이 나아질까?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현실에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청년들이 사라질까? 트럼프 정부 집권 이전에도 청년들의 삶은 악화 일변도를 걷고 있었다. 국내 투자가 확대되면 노동자 계급에게도 그 열매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은 자본가계급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아 이 나라가 비정규직 천국이 되었는가? 자본은 축적한 이윤을 노동자에게 돌려준 적이 없다.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계급투쟁, 국가재정과 기업 이윤을 통제하기 위한 계급투쟁일 뿐, ‘국내에 투자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또한, 미국 노동자 민중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트럼프 정부의 미국 투자 유도 목적은 미국의 전쟁수행 능력과 직결되는 제조업 기반 확대일 뿐, 미국 노동자 민중의 복리가 아니다. 관세정책의 결과 미국 가계부담은 2025년 2월부터 11월까지 1,200달러나 늘었다. 2025년 11월 미국 실업률은 코로나 시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노동자 민중은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트럼프 정부 지지율은 급락했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조란 맘다니의 뉴욕 시장 당선은 트럼프 정부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쌓여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2025년 10월 18일 700만 명이 참여한 NO KINGS 시위 사진: getty images
결국 노동자 민중이 겪을 수탈을 ‘국가’, 혹은 ‘국익’ 수탈로 둔갑시키는 것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한미 자본의 결탁을 교묘하게 가린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국가주의가 아닌, 노동자 국제주의에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을 뒷배로 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시대, 이주노동자 구금과 강제 단속이 난무하는 시대, 노동자 국제주의는 그저 이상적 선언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해방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 공개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재벌의 이익을 위하여 노동자의 생존권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국가의 이익은 국민을 향한다는 점에서 이번 한미 협상은 원천 무효’라며 국가의 이익과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동일시했다. 심지어 노동자대회 석상에서 특정 발언자는 "코쟁이", "오랑캐" 등 혐오를 담은 단어를 대거 사용했다. 설령 이 발언이 트럼프나, 미국 자본가를 겨냥한 발언이었다고 한들, 외모와 신체 등에 대한 혐오적 표현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발언을 듣고 모욕감을 느낀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코쟁이’라고 폄하된 외국인과 이주노동자였다. 어찌하여 이러한 발언이 민주노총 차원에서 자정되지 않았을까? 왜 집회가 끝나고 두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주노총 사과문은 게재되지 않았을까? 해당 발언을 둘러싼 경과는 건설현장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 조장 등,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적 단결에 눈감는 노동조합 운동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국익을 강조하는 국가주의, ‘국민’이라는 경계 바깥의 이들을 배제하는 민족주의가 ‘비국민’, 즉 이주민에 대한 배제로 귀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민족주의 선전은 미국 노동자 민중과 단결해 한미 정부와 자본가계급에 맞설 가능성에 눈감으며, 나아가 차단한다.
스물세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며, 인간 해방의 불꽃으로 스러지며 싸웠다. 지금 전태일이 살아있다면 누구의 곁에 있을까. 정부의 과잉 단속으로 ‘숨을 쉴 수 없다’며 공포에 질린 채 추락사한 이주노동자 고(故) 뚜안의 곁,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령으로 다시 교섭창구 바깥으로 내몰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곁, 노동조합조차 만들 수 없는 미조직 노동자의 곁이 아닐까. "오직 국익만이 영원하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발화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수십, 수백 명의 '뚜안'을, 한국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입장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심화하는 착취와 수탈에 맞서,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노동자 민중과 손을 잡자. 이주민에 대한 혐오를 단호히 거부하고, 함께 어깨 걸고 투쟁할 때, 비로소 우리 모두의 삶은 변화할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노동자 국제주의로 단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