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거제 한화오션 사내하청 우즈베키스탄 여성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생긴 정신적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2011년에서야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인정된 한국 사회이기에, 언론은 이중삼중의 차별에 노출된 이주여성 노동자가 얻어낸 이번 산재 인정 판정을 비중 있게 보도[1]했다.
구조적 젠더차별 사회에서 남성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이자 ‘사장님’에게 삶이 묶인 이주노동자가, 일터의 성희롱과 괴롭힘에 맞서는 싸움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부당해고로 ‘적응장애’라는 큰 병을 얻었지만, 자신의 일터를 지켰고 산재를 인정받았다.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의 용기와 힘겨웠을 투쟁에 존경을 표한다.
사용자의 손에 이주노동자의 고용과 생계가 달린 고용허가제 이주여성 노동자가, 재직 중 성희롱 피해를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는 아마 처음이 아닐까. 이 투쟁에 함께한 거제노동안전보건활동가모임 김정열 사무국장은 “그 업체와 관리자 문제만이 아니라 고용허가제도가 이렇게 해도 되게끔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실상 이주노동자 고용이 원청의 필요에 의한 것이니 한화오션 측도 이 문제를 조사해야 한다”고 문제를 짚었다.
성희롱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번에 산재를 인정받은 이주여성 노동자는 2018년부터 고용허가제(E-9)로 일하고 있는 용접사다. 한화오션 사내하청에서 잔업도 특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2025년 8월, 직속 상급자인 반장이 가한 성희롱을 거부하면서 그는 웃음을 잃게 되었다. 관리자는 성희롱, 야간 전화, 사생활 추궁 등 성폭력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그에게 큰 충격과 공포,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가 성희롱에 맞서자, 관리자는 위계적 괴롭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욕설, 공개적 모욕, 지속적 부당지시, 장비 은폐와 반환 거부, 금전 요구, 절도 유도, 블랙리스트 협박, 일자리와 비자 협박 등 괴롭힘이 3개월 넘게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그는 소장, 부장, 대표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조치를 호소했다. 하지만 아무도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용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대신 12월 엄동설한에 사측이 내린 결론은 ‘해고’였다. 사측은 그가 사용자의 조치를 기다리다 지쳐 외부기관에서 상담받은 일조차 해고 사유로 들었다. 성희롱도 모자라 해고까지, 이는 해당 사내하청 업체에 한정된 일이 아니라 많은 일터에 만연한 구조적 폭력이다.
고통과 용기
“직업환경의학과 초진 기록지에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 노출 기록, 근로계약 해지 등으로 실신할 정도의 큰 충격을 받은 사실”[2]. 그는 회사에서 해고를 통보받고 실신하고 말았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로 인정한 ‘적응장애’라는 질환은 그동안 이주여성 노동자가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불면, 우울, 어지럼, 구토, 실신, 안면마비, 오른쪽 편마비 등 그의 고통은 온몸으로 발현됐다.
“더욱이 피해자는 E-9 비자를 취득한 여성 이주노동자로서, 현대판 노예제도라 불리는 고용허가제로 인하여 체류 자격·사업장 변경·고용 유지 전반이 사용자에게 종속된 구조적 약자의 지위를 감안하였을 때, 평균적인 사람보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더욱 크다고 할 것입니다[3] ” -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로, 여성노동자로, 조선소 하청노동자로 켜켜이 쌓인 차별 위에서 존엄을 짓밟힌 고통은 배가된다. 이 폭력의 책임은 가해자, 하청업체, 원청 한화오션, 정부뿐 아니라 노동자계급을 젠더차별과 인종, 고용형태, 장애 등 갖가지 기준으로 분열시키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한 동지를 통해 ‘거제노동안전보건활동가모임’과 연결된 후 외롭게 버티던 그의 저항은 ‘불의’에 맞선 투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진정서 접수를 결심했다. 올해 2월 적응장애를 진단받고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사장 손아귀에 고용과 생계가 저당잡힌 고용허가제와 비자제도의 문제로 노동부 진정은 취하했지만, 그는 복직해서 당당히 용접기를 잡았다.
산재 판정이 났을 때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산재가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정말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가장 기뻤던 것은 돈이 아니라, 제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고 제가 겪은 일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아무도 저를 믿어주지 않는 것 같았고,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처음부터 저를 믿고 곁에서 도와주신 노조오빠의 응원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산재가 승인된 날, 제 마음속에는 ‘드디어 내 말을 믿어주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제 몸과 마음은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산재 승인은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제 진실이 인정받았다는 의미였습니다.”
‘노조오빠’로 불린 거제노동안전보건활동가모임 사무국장 김정열 동지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고강도·저임금 노동착취를 위해 이주노동자를 대거 부르는 한국 사회다. 조선소 현장에서 이주여성 노동자가 젠더폭력을 산재라고 인정받고서야 ‘진실을 인정받아서 기쁘다’고 말하며 안도하는 현실은 노동자운동에 많은 과제를 안겨준다.
'노조오빠'와 이주여성노동자가 2026년 7월 5일 HD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해 나란히 행진하고 있다.
정의로, 연대로
산재 판정이 나기까지 치료받으며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측은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를 해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정의의 편에 서 있었다. 연대의 힘을 배운 그는 7월 5일 HD현대중공업 앞에서 열린 제1차 이주노동자공동행동대회에 참여해 HD현대중공업의 이주노동자 차별을 규탄했다. 다른 우즈베키스탄 여성 노동자가 겪는 직장 내 성희롱을 어떻게 도울지도 상의했다. 9월 13일에는 거제지역 노동자들과 서울로 향했다. 청와대로 행진한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프리 잡 체인지(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이주노동자 노동권, 인권 보장’을 힘차게 외쳤다.
이주노동자 2백만 시대에 이주여성 노동자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주여성 노동자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등 젠더폭력과 차별 실태에 관한 변변한 통계조차 없다.[4] 그가 이주여성 노동자로서 투쟁한 모습은 다른 이주여성 노동자뿐 아니라 많은 이주·정주 노동자에게 일터의 차별과 폭력, 불의에 맞설 용기와 단결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는 오는 10월 18일 3차 전국이주노동자공동행동대회를 앞둔 울산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제가 겪었던 일을 다른 이주노동자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혼자 참고 침묵하지 마세요. 서로를 지켜주세요. 함께해 주세요. 우리는 낯선 나라에 와서 살고 있지만, 우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투쟁!”
그의 용기와 연대를 배운다. 정부와 자본의 차별과 착취에 함께 맞서자! 서로를 지키자, 투쟁!
[1] 경향신문은 영어판 기사도 발행했다. https://www.khan.co.kr/en/article/202609070742017
[2]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의 ‘업무상질병판정서’
[3] 2025년 12월 9일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진정서’(진정인 : 거제노동안전활동가모임 사무국장 김정열)
[4] 국제노동기구(ILO)는 ‘직장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경험: 첫 번째 세계적 조사’ 보고서(2022년)에서 전 세계 노동자 5명 중 1명이 직장에서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과 괴롭힘을 경험했고 특히 청년, 이민자, 여성, 임금노동자 등의 피해가 더 두드러진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