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사업계획에 대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체회의를 앞두고,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사업계획에 포함된 OSF 기금 수령의 건에 대해 반대 연서명을 받았다. 이는 논의를 보다 폭넓게 촉진하고, 나아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더욱 폭넓게 조직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연서명과 같은 수단들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이며,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매개다.
'압박'과 '동원'은 민주주의의 불가분한 요소다
2024년 3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장,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련의 대의원들, 그리고 이에 동참하는 대의원 자격이 없는 평조합원들과, 조합원도 아닌 ‘외부인’들이 모여 현수막을 펼치고 피켓팅을 하고 구호를 외치며 선동발언을 한다. “회계공시 거부하고 자주성을 지킵시다!” “국적과 인종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 민주노조가 지켜야할 원칙입니다!” 한 대의원은 조합원 3명과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대의원들 바로 앞에서 피켓팅을 하며 말을 건넨다. 어떤 이들은 대의원대회 좌석 하나하나마다 준비한 유인물을 배치한다.
이는 당시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민주노총에서 벌어진 논쟁적인 사건들에 관한 행동이었다. 당시 윤석열 정부가 민주노총에게 회계공시를 강요하였는데, 민주노총 집행부 다수, 일부 산별노조는 이를 불가피하게 수용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이에 반대하는 동지들이 ‘회계공시를 받는 것은 민주노조의 자주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또 당시로부터 얼마 전인 2023년 12월,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가 ‘불법고용 이주노동자 단속 촉구’를 내걸고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했었다.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 설립의 한 계기가 되기도 했던 해당 사안을 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함께 조직하고 싸워야 할 단결의 대상이 아닌 추방의 대상으로 보는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의견을 담아, 175개 단체와 894명의 개인이 1월 19일 공동성명을 발행했고, 그 연장선에서 대의원대회 앞에서 피켓팅을 진행했다.
이러한 피켓팅을 보면서 민주노총 집행부, 건설노조 집행부, 회계공시 수용이나 건설노조의 이주민 단속촉구 집회에 찬성하던 대의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나갔을까? 아마도 적잖이 불편했을 것이다. 아무리 대인배라도 자신의 결정과 입장을 반대하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반대파들의 존재가 썩 편하기는 어렵다. ‘저 구호 하나에 담기지 않는 어려운 사정들이 얼마나 많은데…’ 회계공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을 촉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도 있는 것인데, 그런 본인들의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아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대의원대회장에서 선동하는 모습을 보고 대의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추진하려던 안건이 부결될까봐 걱정이 되고 압박을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예를 보자. 지난 윤석열 탄핵 정국 이후 대선 시기, 민주노총 집행부는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즉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결정하고자 하는 입장을 가졌었다. 이는 중집 내부에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이에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노총 지지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이에 민주노총 내 일부 단위에서는 ‘민주노총이 즉각 지지후보를 결정해야한다’는 취지의 연서명을 받았고, 349명의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연서명을 모아 발표했다.
이 모든 행위는, 회의장(대의원대회, 중앙집행위원회 등)을 벗어나, 해당 사안에 대해 대중들의 참여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대중동원(mobilization)’ 행위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상기하였듯 반대입장을 가진 단위들에게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닌가?
이것은 민주주의다. 정확히 이러한 동원과 압박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들이며,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매개다.
노동자 민주주의
계급투쟁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확대해온 역사였다. 운동 내부에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이를 체화하는 과정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를 계급으로 조직하는 과정의 정수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자계급은 늘 자본의 독재 아래 살아간다. 자본가가 통치하는 모든 작업장의 기본 원리는 상명하복이며, 이런 환경 속에 보통의 노동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표현하는 법조차 잊어버린채로 살아간다.
노동자계급이 ‘쇠사슬에 묶인 노예’에서 ‘세상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시키는대로 일하고 주는대로 받고 살라’는 자본가의 독재에 맞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내린 결단에 따라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은 바로 노동자계급을 그런 존재로 조직해가는 운동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단결의 기구인 노동조합은, 그것이 민주노조라면, 의사결정에 있어 자본가들의 방식과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해야한다. 그 핵심은 아래로부터의 자유로운 의견표현이 전면적으로 보장되고, 서로 다른 의견이 끊임없이 경합하는 가운데 총의를 모아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적 시기의 단위노조부터, 혁명적 시기에 등장하는 노동자평의회까지, 일정한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운동기구는 불가피하게 대의제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대의제 형식은 민주주의의 전면적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여러가지 필연적 약점을 가진다. 예컨대 간부(집행부, 대의원 등)와 평조합원 간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간부들의 의견으로 수렴되지 못하는 평조합원의 의견이 토론에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노조 운동은 대의제의 약점을 보완하고, 직접 민주주의에 근접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수단들을 발전시켜왔다. 그런 기술적 수단들의 핵심은 논의가 상층 대의제 기구에 머물지 않고, 각 단위현장으로 퍼져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노총 중집을 구성하는 단위들 중 전국결집 정파에서는 매 중집 때마다 ‘중집 스케치’를 SNS 채널에 발행한다. 중집에서 어떤 안건이 다뤄졌으며, 그 중 특히 주목해서 봐야하는 안건이 무엇인지 소개한다.
예컨대 얼마 전 발행된 ‘0319 민주노총 중집 스케치’ 글에서는, 민주노총 정책실이 국회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잠정합의해 온 합의안의 승인 여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소개한다. 앞면에서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AI’와 관련한 협의 내용에 대해, 이것이 자본에게 원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라며 격렬한 반대의견들이 제출되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뒷면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 선거방침을 둘러싼 양측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신문’은 논의가 중집으로만 축소되지 않도록 하는 훌륭한 대의제의 보완물이다. 중집에서 진행되는 논의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다수 조합원 대중으로 하여금 논쟁의 구도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피켓팅, 현수막, 연서명, 공동성명 발표, 안건발의 등도 그러한 기술적 수단의 일부이다. 심지어는 집행부를 상대로 항의농성을 하기도 한다. 이런 수단들은 특히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때 활용되곤 한다. 예컨대 2020년 당시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가 문재인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를 통과시키려고 했을 때, 여러 단위가 민주노총 건물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중집 회의장에 들어가 피켓팅을 하며 사회적 합의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해당 사회적 합의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매출 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등, 계급의 이익을 저버리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현장 영상] 민주노총 강경파 ‘노사정 합의’ 반대…김명환 위원장 ‘사실상 감금’ - 한겨레 신문
결국 노사정 합의안은 대의원 과반의 반대로 부결되었고, 김명환 집행부는 사퇴했다. 당시 자본가 언론들은 ‘직선제로 뽑힌 위원장’의 결단을 ‘방해한다’며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당시 논쟁은 자본가 언론들과 민주노조 운동 사이 노동자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시각 차이를 드러낸다.
자본가 언론은 김명환 위원장의 말을 활용해, “지금 반대파들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 오후까지 ‘노사정 합의안 폐기 및 대대 안건 부결’ 성명에 서명한 대의원은 전체 1,480명 중 과반인 810명에 달한다. 또 민주노총 부위원장 7명 중 6명, 16개 산별노조 중 9개, 16개 지역본부 전체가 반대하고 있다. 수많은 현장 간부들과 현장조직들이 여기에 합세하고 있다. 과연 누가 민주노총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는가? 다수 간부들의 의지를 거역하고 대대를 강행해 야합안을 밀어붙이려 발악하고 있는 김명환 위원장인가, 아니면 다수의 의지를 모아서 민주노총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인가?
자본가 언론들은 말한다. “김명환 위원장은 직선제로 뽑힌 사람이다. 그런데 ‘꼬리’들이 이 ‘몸통’을 뒤흔들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꼬리’에 불과한 김명환 집행부가, ‘몸통’인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의 의지를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논쟁적인 안건에 따라오는 피켓팅, 연서명, 심지어 항의농성과 같은 행위들은 표면적으로는 상층 대의기구에 속한 이들을 향한 호소이나, 본질적으로는 운동을 구성하고 있는 대중들을 향한 호소이다. “우리는 이 안건이 이렇게나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동지들, 이 운동의 주인으로서 우리 운동이 이렇게 가도 되는지 판단해주십시오”라고, 대의기구에 속한 이들에게는 물론 전체 조합원 대중에게, 좀 더 넓게는 (노동조합 조직여부를 떠나) 계급 전체에 호소하는 행위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주인은 노동자계급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너르고 단단해지려면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서 OSF재단 기금을 받아 수입의 77%를 충당하는 내용을 포함한 사업계획 건을 올렸을 때,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연서명을 추진한 것은 이런 운동의 민주주의 전통 위에서 택한 행동이다. OSF재단의 기금을 받자는 제안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중대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논쟁적인 안건이라면 그에 걸맞게 격렬하게 논쟁하는 게 민주주의다.
우리의 논쟁은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전체회의로 축소될 수 없다. 우리의 관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주체는 차별받고 억압받는 모든 피억압민중들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그리고 그 법이 미국에서처럼 트럼프의 집권을 막지 못하고 각 주의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을 불법화하는 걸 막지도 못하는 유명무실한 법이 아니라, 진정한 효력을 가진 법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차별금지법 운동을 향한 노동자민중들의 전면적 자기조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논의가 집행위, 또는 전체회의 구성원들을 넘어 대중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연서명이란 방식을 통해 이 논쟁에 입장을 정할 것을 호소한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진심으로 염원하는 여러 단위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주도해온 집행위원회가, 전진이 연서명을 받아 제출한 것이, ‘전체회의에서 여러 맥락의 의견개진을 어렵게 했으며’ 차제연의 ‘의사소통 체계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감의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차제연 집행위 단위들이 그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투쟁해온 헌신과 노고를 존중한다. 특히 여러 성소수자 운동 단위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선봉으로서 온갖 탄압을 앞서서 견디며 투쟁해왔다. 그 운동의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운동의 역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 운동이 자본이 자신의 지배를 감출 도구로 쓰이도록 두지 말자고 호소하는 것이며, 이 논쟁을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대중들과 함께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연서명한 개인과 단위들, 그리고 연서명을 추진한 전진을 ‘운동의 외부’로 호명하는 여러 입장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 27개 연서명 공동발의단체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차별에 맞서 헌신적으로 투쟁해왔다. 예컨대 27개 공동발의단위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바로 지금도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전진의 활동가를 포함해, 연서명에 참여한 많은 퀴어 당사자들도 있다. ‘OSF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손을 잡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 또한 성소수자 운동의 일부다. 차별금지법이 '차별에 맞선 운동'이라면, 비록 그것이 직접적으로 법안을 제정하기 위한 투쟁의 형태를 띄지 않았을지라도, 차별에 맞선 투쟁을 해온 이들 모두 이 운동의 일부이다. 그래서 "지금은 점으로 흩어져있는, 차별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의 레퍼런스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선으로 이어낼 선전과 선동. 전술이 필요하다."
혁명과 민주주의
1917년 러시아혁명의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 르포 ‘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작가 존 리드의 생애를 다룬 영화 ‘레즈’에서는 아래와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존 리드가 1920년 9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동방민중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갔는데, 존 리드의 동의 없이 지노비예프가 연설문을 감수하며 ‘계급전쟁(Class war)’을 ‘성전(Holy war)’로 고쳐쓴 것이다. 존 리드는 지노비예프에게 자기 글을 동의없이 고치지 말라고 요구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견이 없어지면 혁명은 죽는겁니다. 이견을 제기하는 게 혁명이니까! (when you purge the dissent, you kill the revolution. revolution is dissent!)”
지노비에프와 리드가 논쟁하는 이 장면은 영화적 재현일 뿐 실제 사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이 기사에선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에 대해서만 얘기해보려 한다. 해당 장면에 뒤이어 곧바로 열차는 백군의 습격을 받아 탈선한다. 해당 장면은 나에겐 러시아혁명이 당과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후퇴와 함께 어떻게 좌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메타포로 여겨진다.
이 시기 러시아혁명의 심장이던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가 점차 열리지 않게 되었고[1], 볼셰비키는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을 겪은 뒤 당내 분파활동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통과시켰는데, 이는 이후 영구화되어 당내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무기가 됐다. 즉 혁명이 스탈린 관료체제로 변질되고 퇴보하는 과정은, 곧 반대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자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전면적 개화는 어떤 모습일까? 상층 대의기구의 깔끔한 합의 아래, 대중들이 통일되고 절제된 요구를 내거는 모습일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수백종류의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유인물이 광장에 휘날리고, 평의회와 같은 중요한 대의기구의 결정을 앞두고서는 대회장에서 오만가지 이견이 충돌하며, 그 혼란 속에서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판단을 내리는 것.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다수파의 의견이 결정되고, 그럼에도 소수파가 그에 반대할 선전선동의 자유를 잃지 않는 것. 그래서 경험과 실천 속에서 다수파는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는 시험대에 오르고, 사태의 전개에 따라 소수파가 더 큰 동의를 얻으면 언제든 다시 다수파가 돼 집행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혁명의 모습이며,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노동자평의회 다당제의 모습이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그런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는 것. 그것만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능케할 것이고, 나아가 착취와 차별, 억압을 철폐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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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창기 전러시아소비에트 대회는 1년에 1회 이상 개최되었다. 그러나 1922년부터 2년에 한번 꼴로 개최되다가, 1931년 이후에는 4년 뒤인 1935년에 한번 열리더니, 그 다음 특별대회를 통해 해산돼버렸다. 1920년대 말 이래 소비에트 대회는 모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단 하나의 기권표도, 반대연설도 없었다. 스탈린이 주도하는 공산당이 경제 5개년 계획을 이미 집행하기 시작한 뒤, 소비에트는 이를 사후 승인하는 기구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