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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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번역]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5

  • 최종현
  • 등록 2025.10.19 09:58
  • 조회수 1,203

 

[편집자 주]

2023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히메나 베르가라의 이 글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이론에 입각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계급적·국제주의적 전략을 제시한다. 본 번역은 글의 분량상 총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전편 읽기]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1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2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3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4 
 

2024년 10월 5일 집단학살 1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집중집회

 

연속혁명과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 미국 사회주의해방당(PSL)과의 토론을 위한 노트

 

팔레스타인 해방의 성격, 역학관계, 그리고 주체에 대한 논쟁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과 민족해방운동 사이에서 벌어진 전략적 논의의 일부였다. 이는 동시에 트로츠키주의와 스탈린주의 간 논쟁의 중심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정치적 세대가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전 세계 피착취·피억압 민중의 해방투쟁을 재검토하는 지금,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사실상 지도하는 인사들이 제시하는 일국 수준의 정치노선은,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그들의 국제전략에 의해 규정되며, 또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기초한다. 사회주의해방당(PSL)은 미국 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내 주요 조직 중 하나다. 이 조직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직후부터 즉각 운동을 조직하였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는 이유로 탄압과 박해를 받아왔다.

 

PSL의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대한 정치적 방침은 전국적 대규모 거리 시위를 조직해 휴전을 요구하고,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에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조치를 촉구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데 집중되어왔다. 국제적으로는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결의안을 활용해 미국에 맞서 팔레스타인에 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압박하는 데 의존해왔다. 이는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들, 그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에 유리한 정책을 관철하는 데 있어 이러한 기구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궁극적으로 PSL의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일반적 관념과 부합한다. PSL의 조 타셰(Joe Tache)는 “팔레스타인 운동이 민족해방 투쟁인 이유 Why the Palestine Movement is a Struggle for National Liberation”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러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잔혹행위는 유례없이 끔찍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식민 관계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민족이 민족적 억압을 받았다. 어떤 경우에는 민족적 억압이 한 국가의 국경 안에서 나타난다. 미국 내 흑인과 원주민에 대한 오랜 억압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경우 식민 세력이 식민지를 완전히 장악하면서도 식민지를 식민 지배국과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 취급하는 사례도 있다. 식민주의 시대의 민족적 억압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주로 이런 형태를 취했다. 팔레스타인에는 두 역학관계가 혼재되어 있다. 이스라엘 국경 내에 거주하는 16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보유했음에도 시온주의 정권에 의해 체계적으로 억압받는다.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등 점령지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자(이스라엘 국경 내 팔레스타인인)의 경우, 이스라엘이 동등한 국적과 지위를 부정함으로써 제도화된 차별과 배제를 겪는 한편,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토지 강탈, 주택 철거, 이동 제한, 대규모 체포, 정치적 반대에 대한 가혹한 탄압 등을 포함한 다양한 억압에 시달린다.”

 

위 문단은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물론 이스라엘은 타셰가 묘사한 대로 내부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가진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이며, 일란 파페 등 다른 역사학자들도 이를 상세히 기술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주의의 예외성은 단지 '내부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타셰는 이스라엘의 이중적 성격, 즉 이스라엘은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이자 동시에 제국주의의 거점(enclave)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누락하고 있다.

 

2023년 11월 4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팔레스타인 연대집회 (사진 : Celal Gunes / Anadolu via Getty Images)

 

이전 세기, 특히 19세기 식민열강과 달리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주도한 세계질서 재편 시도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은 아랍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지역적 군사동맹을 설립하는 데 일조했다. 이는 아랍 지역의 자원을 차지하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아랍 지역에서 계급투쟁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제국주의는 시온주의 국가 이스라엘과 사실상 공생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 공생관계는 군사·정보·기술자원 공유에 기반할 뿐만 아니라, 미국 양당체제의 윤곽, 그리고 공공·민간 제국주의 기관들의 윤곽 자체를 형성해왔다.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에 관한 타셰의 글과 사회주의해방당(PSL)의 다른 글은 이스라엘과의 동맹에 있어 바이든과 미국 제국주의의 역할을 올바르게 규탄한다. 이들은 10월 7일 성명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대한 미국의 모든 지원을 중단하고 모든 팔레스타인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의 예외적 성격을 제국주의적 거점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하지 않았으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의 국제적 차원을 지우고 있다. 이는 PSL이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을 그리는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남아프리카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아파르트헤이트는 무너질 것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타셰는 남아공과 팔레스타인을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비유한다. 비록 타셰가 이 두 사례 사이의 중요한 유사점을 지적하지만, 이 두 체제는 각 투쟁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 비교는 PSL이 민족해방과 제국주의 자체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경우, 타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즉 쇠퇴하는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와는 달리, 이스라엘이라는 인공적 국가를 창조한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목적이 중동 지역에서 부상하던 미국 제국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러한 전략적 목표는 제국주의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아랍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억제하고,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치명적인 군사력을 지역에 세우는 것이었다. 이 측면을 간과하면, 이스라엘을 창조한 바로 그 체제를 문제 삼지 않고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타셰는 아래와 같이 썼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지원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을 유지하는 핵심 세력이다. 따라서 미국 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은 특별한 책임이 있다. 이 운동의 역할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이념이나 전략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이 식민주의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 자신의 사회를 어떻게 조직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5개월간의 대규모 시위, 가장 최근에는 미 공군 병사 아론 부시넬의 충격적인 희생이 보여주었듯이, 시온주의자들의 선전과 미국 정부의 확고한 이스라엘 지지는 점점 힘을 잃고 있다.” (강조는 필자)

 

PSL의 운동에 대한 관점은 바이든 행정부의 네타냐후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전략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를 조직하는 동시에, ‘언커미티드(Uncommitted)[1] 캠페인과 같은 움직임을 통해 2024년 대선에서 바이든의 재선을 위협해 바이든에게 휴전을 명령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이다.

 

궁극적으로 PSL은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본질과 시온주의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전략적으로 오해하고, 따라서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거대 양당제에 압력을 가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식민주의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도록 보다 관대한 정책을 채택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온주의 식민주의는 미국 제국주의에 의존하며, 동시에 미국 제국주의 역시 시온주의 식민주의에 의존한다. 이는 두 국가가 이해관계 충돌을 전혀 겪지 않거나, 바이든이 네타냐후와 대립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는, 두 체제의 구조적 관계가 너무나 깊기 때문에, 미국 지배체제는 이스라엘이 미국을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전쟁에 끌어들이고, 그 전쟁 과정에서 이미 흔들리는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을 이스라엘 자신이 산산조각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어떠한 의미에서, 미국의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실존적이다. 이 반동적인 미국-이스라엘 동맹을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부르주아적 관점의 국제주의 전략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관점을 발전시켜야 한다. 팔레스타인 해방과 제국주의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 공동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은 아랍 노동자계급과 농민, 도시빈민 등 중동 전역의 피억압 민중이다.

 

2025년 4월 20일 모로코 탕헤르항에 이스라엘행으로 의심되는 전투기 부품을 실은 선박 입항에 항의하며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사진 : AFP)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 지역 민중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제국주의의 경제적·군사적 공세가 아랍 민중에게 안긴 모든 불만, 폭력, 절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에는 그들의 정부가 행한 억압 또한 포함된다. 자본주의적 ’민족해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랍 국가들은 그들이 아무리 제국주의에 부분적으로 반대하더라도 미국 패권의 균열을 피하고자 대중을 억눌러 왔다. 무엇보다 아랍 국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 계획을 도입하며, 자본주의적 사회와 생산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려 했다.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단계로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단순히 ‘팔레스타인 민족의 독립투쟁’으로 축소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PSL에게 있어서 이 ‘민족’의 계급적 성격은 불분명하며, 그들이 시온주의 국가의 해체를 명확히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국가가 이스라엘 국가와 공존할 수 있을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타셰는 가이아나 출신 역사학자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를 인용하며 아래와 같이 썼다.

 

“민족적 억압은 한 민족을 그들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배제한다. ‘역사로부터의 배제는 식민주의가 가져온 권력 상실의 논리적 귀결이다.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력은 역사에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보증이다. 식민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가장 수동적인 의미를 제외하면, 역사로부터 배제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팔레스타인 사례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군홧발 아래 있는 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사회적·경제적 발전 문제를 온전히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 주택, 병원이 언제든 폭격되거나 파괴될 위협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팔레스타인인들이 기반시설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겠는가? 매일이 생존을 위한 투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적·문화적 발전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일상적인 이동과 기본적인 권리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의해 철저히 제한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정치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팔레스타인 경제의 거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이 개발과정을 시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PSL의 구성원들은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 내 여러 조직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는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그들의 지도부와 기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PSL 자신은 팔레스타인 해방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견해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마치 역사적 법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먼저 하나의 국민국가로 스스로를 구성해야 하며, 그 이후 남아공의 탈아파르트헤이트 시기처럼 경제적·문화적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접근의 한계는 남아공의 사례에서 이미 명확히 드러난다. 그 나라는 여전히 제국주의의 멍에 아래 고통받고 있으며, 흑인 노동자계급에 대한 극단적 착취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상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실존하는 아랍 지도부의 정치적 강령, 입장, 전략의 맥락 속에서 실현되고 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경우, 이들은 명시적으로 투쟁을 벌이지만, (1967년에 설정된 국경을 암묵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존재 또한 사실상 인정하면서) 이란식 근본주의 국가, 즉 종교적 권위주의 체제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체제는 결국 자본주의적 계급 구조 위에 세워진 종교적 독재 정권일 뿐이다.

 

즉, PSL과 민족해방운동 지도부 모두에게 팔레스타인 해방은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존재론적 의미와 모순된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저발전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유일한 해결책은, 두 국가 체제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본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PSL은 명시적으로 두 국가 해법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팔레스타인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처럼 탈식민적 자본주의 국가를 세워 지역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정치적 지향은 앞서 설명한 스탈린주의 정책과 중요한 유사점을 가진다. 스탈린주의는 1920년대 말 공산당들로 하여금 ‘반제국주의 공동전선’(anti-imperialist united front) 전술을 추진하게 만들었다. 이는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 민족해방운동 지도부와의 정치적, 때로는 군사적 협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한 의미에서 PSL의 반제국주의는, 미국 제국주의에 비판적으로 맞서는 한 그들의 계급적 성격에 상관없이 어떤 지도부나 국가라도 지지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국가들이 자국의 노동계급을 억압하고, 민족해방 투쟁을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우리가 제국주의를 단순한 대외정책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특정한 역사적 단계로 이해한다면, 제국주의를 철저히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주의 뿐이다. 트로츠키주의 분파로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민중과 하마스를 포함한 그들의 저항운동이 식민점령에 맞서 군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지지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그 조직을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방법, 정치, 전략과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PSL이 민족주의 지도부에 대해 무비판적인 정치적 지지를 보내는 태도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오로지 민족적 투쟁으로 이해하는 그들의 관점과 일관성을 이룬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시온주의 국가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불명확하게 남긴 채) 팔레스타인인들은 독립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으며 지역적 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고도 점진적인 자본주의 발전의 고유한 리듬을 따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정을 주도해야 할 세력이 (근본주의와 세속주의를 막론하고) 아랍 세계의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지도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을 비판하려는 시도는 곧 ‘억압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 내 운동의 역할은 이러한 투쟁의 결과를 지도하려 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 즉 그들이 독립적인 역사적 발전 과정을 되찾고 집단적으로 미래를 형성할 권리를 지지하는 것이다. 진정한 국제주의는 서로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이 서로 존중할 때만 형성될 수 있다. 제국주의 국가에 사는 노동자들이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지시하려 든다면, 그것은 그 존중을 훼손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노동자들에게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 정부는 자신을 ‘세계의 경찰’로 자처하며, 미국 노동자들은 피억압 민족의 일에 개입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선전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직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에만 봉사하며, 우리의 운동을 해친다.”

 

이러한 고찰들에서 ‘반제국주의’나 ‘노동자계급’과 같은 개념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및 지역의 노동자, 무산 농민 대중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들 대중에게는 시온주의에 맞선 반제국주의적 정치와 동시에, 아랍 국가들이나 어떤 부르주아 국가에도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즉, 중동 전역의 프롤레타리아가 자국 정부들에 맞서 연대와 동맹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조직이 아니다. 그들은 레바논, 카타르, 이란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에 정치적·군사적·경제적으로 의존한다.

 

2025년 9월 2일 이집트에서 열린 다국적 군사훈련 브라이트스타25에 참여한 미국, 이집트, 사우디라아라비아 군대. 군사훈련은 미국과 이집트가 공동 주관했다.

 

이런 유형의 ‘반제국주의’, 즉 계급적 관점이 아닌 ‘국가적’ 관점에서 기초한 반제국주의는 현 세계질서에 대한 PSL의 국제적 전망의 일부다. PSL에게 있어 중국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세력으로 비춰진다. 그들에게 중국은 ‘진보적인 대안’이다. 이러한 관점은 PSL이 중국공산당을 평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중국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China is not our enemy)’라는 글에서 중국공산당의 최근 당대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실제로, 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다룬 사안들은 중국 인민의 복지에 깊이 관심을 가지며, 여러 분야에서 실질적인 개선을 이루려는 집권당의 진지한 의지를 반영한다. 이러한 작업은 미국 상원 회의장이나 민주당-공화당 양당의 전국위원회 회의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진지함과 성실함으로 수행되었다.”

 

그러나 PSL은 두 가지 사실을 완전히 누락한다. 첫째, 중국 사회는 오늘날 극도로 위계화된 계급 사회로 변모했으며, 사치스러운 부르주아지와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인종적 억압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탄압을 당하고 있는 거대한 프롤레타리아층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국제적 무대에서 중국은 점점 더 제국주의적 특성을 갖춰나가고 있으며, 반(半)식민지 세계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을 억압하고 수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각은 또한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벌어진 계급투쟁의 현실을 무시한다. 중국의 노동자들과 청년들은 공장과 사회 전반에서 더 나은 생활조건을 요구하며 중국공산당의 정책에 맞서 싸워 왔다.

 

PSL이 중국을 미국 지배의 ‘차악(lesser evil)’ 혹은 ‘대안’으로 여기는 태도는, 그들의 중국공산당의 강압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열렬한 지지 속에서도 드러났다. 이 정책은 결국 노동자 민중의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계급투쟁을 촉발했다. 마찬가지로, PSL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평화 협상’ 노선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NATO에 대해 올바르게 비판하면서도,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서는 ‘반미 블록’의 일원으로서 사실상 러시아를 두둔하며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국제 노동자계급은 쇠퇴하는 미국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적 성격과 야망을 지닌 중국 국가 사이의 충돌 속에서 그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다. 우리에게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군국주의적·호전적 경향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해방을 포함한 모든 피억압 민중의 자결권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이다.

 

이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자브라 니콜라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연속혁명의 관점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의 계급적 역학을 요약한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모든 민주주의적 투쟁과 분리될 수 없는)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은 지역 내 모든 지배계급과 정권에 맞선 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들 계급은 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이며, 제국주의는 그들을 통해 지역을 지배한다. 그들의 정권은 이러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정치적 형태이다. 반제국주의 투쟁과 민주주의 투쟁은 오직 빈농의 지지를 받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으로서, 지주, 종교적 매판 계급, 신흥 부르주아지를 상대로 아랍 세계에서 시온주의에 맞서야만 가능하다. 아랍 동부[2]에서의 연속혁명은 해당 지역 전체를 기반으로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 이 지역의 불균등 발전으로 인해, 혁명적 상황 혹은 준혁명적 상황은 서로 다른 시점과 장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 투쟁은 반드시 전체 아랍 혁명의 일부로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전 지역 대중투쟁이 직접적으로 결합되어야 함을 의미하며, 이러한 전략은 대중의 요구를 지역 전체의 문제로 통합해 ‘권력’의 문제를 아랍 동부 전체에서 제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오직 이러한 방식으로만, 특정 시점에서 가장 진전된 투쟁들을 아랍 국가들의 군대, 시온주의 국가의 군대, 그리고 잠재적인 제국주의 개입으로부터 가능한 최대로 지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만, 어떤 한 나라에서의 권력 장악이 반동 세력들에 의해 분쇄되지 않고 다른 나라로 확산될 수 있다.”

 

PSL이 제시하는 미래의 반제국주의 투쟁 전략은 매우 다른 그림을 그린다. 벤 베커(Ben Becker)는 PSL이 “노동자계급 속에서 반제국주의 정치의 토대를 세우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반구 국가들)와의 연대를 지향하는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싸운다”고 썼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반제국주의 정치와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가 어떤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PSL과 큰 차이를 가진다. 우리에게 있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은,  그 국내적·지역적 표현이건, 국제적 무대에서건 (특히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 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서) 노동자계급, 빈민, 학생, 피억압 민중의 독립적 행동이 필요하다.

 

국내적·지역적 수준에서, 이러한 투쟁은 시온주의 국가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모든 정당한 요구, 특히 자결권 요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는 곧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인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직접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다. 이 투쟁, 즉 시온주의 국가의 해체를 향한 투쟁은 오직 아랍 노동자계급과 함께하는 팔레스타인 대중이 주체가 되어, 그 투쟁을 주도하고 물질적·정치적 지원을 제공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이는 곧 아랍 프롤레타리아가 자국 정부에 맞서 봉기해야 한다는 것을 함의하며, 이집트 같은 국가들에서 그 요구는 즉각적인 국경 개방이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현재 젊은 세대와 노동자계급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거대 양당제가 무기, 기술,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적 공격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와 벨기에의 노동자들이 무기 선적을 막았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미 미국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거리에 나선 수십만의 대중들, 대학의 이스라엘 투자 철회를 요구하며 싸우는 대학생들의 정신을 받아 미국 노동운동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가자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실물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무기 수송을 차단하고, 전쟁 물자 생산을 거부하며, 제국주의 전쟁기구가 학살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집단학살을 멈추고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에 맞서 실질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사회적 세력이다. 지역에서,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특히 미국에서 그러하다. 또한 국제 노동자계급은 피억압 민중, 농민, 도시빈민, 청년과의 동맹을 통해 시온주의 국가에 맞설 수 있다. 이러한 단결을 통해 단일하고, 세속적이며, 대중의 자기조직화에 기반한 다민족 국가를 건설할 힘을 가질 수 있다. 그 국가는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해방된 사회주의 팔레스타인이다. 그곳에서는 아랍인, 유대인, 그리고 중동의 문화적 다양성을 구성하는 모든 민족·종교 집단이 시오니즘과 제국주의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투쟁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팔레스타인은 국제주의적 지지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그 구체적 형태는, 젠더·인종·종교적 억압의 토대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모든 토대를 허무는 사회 조직체제 안에서 지역 간 경제적·문화적 연대를 발전시키는 중동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다.

 

2025년 9월 말부터 이어지는 모로코 반정부 시위에 팔레스타인 연대 상징인 쿠피예를 두르고 참여한 시위자.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은 각국 민중의 자국 지배체제를 향한 분노와 연결되고 있다 (사진 : BBC)

 

[1] (역자주) ‘지지후보 없음’, 2024년 미국 대선 및 민주당 당내 경선 진행 과정에서 아랍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친이스라엘적 행보를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 말고 '지지 후보 없음'에 기표하자는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2] (역자주) 마그레브(해가 지는 땅)의 반의어로써 마슈리크(해가 뜨는 땅). 이라크, 레반트, 이집트, 수단, 아라비아반도에 이르는 아랍 동부 지역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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