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공기업 ‘1사 통합’은 발전산업 분할이 낳은 중복과 비효율을 바로잡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발전산업 분할 이후, 관리조직의 중복적 비대화 등에서 기인하는 추가비용은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돼 왔다. 또한, 발전공기업의 재생에너지 직접 건설 역량은 약화되고 민간사업자와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구매에 대한 의존은 커졌다. 발전통합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희생 없는 정의로운 전환,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와 기후위기 대응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2월 의뢰한 발전통합 관련 연구용역 ‘에너지전환기 전력공기업들의 새로운 역할 연구’에 대한 중간보고회에서 ‘발전공기업 1개사로 통합이 최적’이라는 권고가 나왔다. 보고서가 ‘1사 통합을 최적’으로 제시한 이유는 ‘재생에너지·해상풍력 등 대형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 가능’하고 ‘단일 법인 내 직무 전환‧인력 재배치 가능 등 정의로운 전환에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사 통합’이 재생에너지 건설 및 정의로운 전환에 용이
연구용역을 수행한 삼일회계법인은 ‘△에너지 전환 실행력 확보(투자 자본력 결집) △리스크 저감 구조 형성(좌초자산·단일전원 리스크 해소) △운영 효율성 제고(중복 제거, 규모의 경제) △정의로운 전환 용이(고용 및 지역사회 충격 흡수) 등 4대 원칙을 통해 발전공기업의 개편 방향을 검토했다’며 ‘권역별 2~3사로 통합’이나 ‘지주+권역별 2~3개 자회사 구조’보다 ‘1사 통합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연구용역 중간보고회에는 학계(5명)와 노조(3명), 시민단체(1명), 경영계(1명) 등 10명의 패널이 참가해 대체로 찬성과 환영의 입장을 표명했다.
당연한 결론
사실 ‘1사 통합’은 당연한 결론이다. 2001년 한수원을 포함한 발전 6사가 한전으로부터 분리된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 발전노동자들이 벌인 38일간의 강고한 투쟁으로 발전소 민영화는 저지했지만, 6개로 나눠진 발전소의 문제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우선 연료구매비가 크게 늘었다. 연료비는 전력 생산 전체 비용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런데 발전산업이 분리되기 전에는 한국전력이 연료를 한꺼번에 사들여 가격을 낮출 수 있었지만, 분사 이후 각 발전 회사가 따로 연료를 구매하면서 발전사의 구매 경쟁이 심해지고, 연료 가격이 오르게 되었다.
이에 더해 분할된 발전사별로 부두를 공유하지 못해 선박이 항구에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에 따라 ‘체선료’(배가 하역을 기다리는 동안 선주에게 지불하는 비용)도 늘어났다. 발전산업 분할 이후, 체선료는 2002년 당시보다 100배 가까이 급증했다. 2020년 국정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체선료는 1,054억원으로 뛰었다. 2002년 12억원에 불과하던 체선료가 2008년 100억원 이상으로, 다시 1,000억원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2008년 국정감사 당시에는 발전사들이 따로 연료를 사면서 발생한 구매 비효율과 운송 지연으로, 유연탄 구매 비용만 해도 매년 5,000억 원 이상이 추가로 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불필요한 전력거래시장 개설과 관리조직의 중복적 비대화로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비용이 발생했고,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전기요금에 전가되었다.
발전사 분할은 에너지 전환을 추진할 역량도 약화시켰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발전공기업이 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를 자체 건설로 이행한 비중은 2014년 54.4%에서 2025년 18.7%로 크게 떨어졌다. 발전공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설비를 직접 건설하기보다, 민간사업자가 생산한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는 방식에 의존해 온 것이다. 이처럼 공공의 직접 투자와 건설 역량이 약화되면서 민간 의존도가 높아졌고,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왔다.
그간 명백히 드러난 발전산업 분할의 문제로, 발전 5사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민간자본을 대변하는 정부관료들의 방해로 무산됐다.
안심은 No!
발전통합 연구용역 결과는 당연한 결론이지만 자본과 이들을 대변하는 정부관료의 방해를 뚫고 만들어낸 커다란 성과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용역보고서를 정부가 그대로 따를지도 불투명하고 이어지는 통합과정에서 애초 취지와 다르게 변질될 수도 있다. 또한 25년 넘게 다르게 유지됐던 조직 체계와 노동조건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은 인력구조조정과 노동조건 개악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가만히 기다려서는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시작!
발전 5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는 더욱 커다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시작점에 불과하다.
민간과 공공의 재생에너지, 특히 해상풍력 개발의 장단점은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충분히 드러났다. 민간 주도 재생에너지 개발은 공공 주도에 비해 비용도 많이 발생할 뿐 아니라 안정성도 많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민간사업자들은 금리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사업을 지연하거나 철수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기업은 이윤이나 시장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건설계획을 추진하기 때문에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간자본과 정부관료들은 언제든지 민간 주도의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이미 민간자본이 90% 이상 장악한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민간자본과 정부관료의 방해를 뚫고 공공주도 재생에너지를 확장해야 한다.
2025년 12월 태안화력 1호기를 시작으로 발전소 폐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 발전 5사가 하나로 통합된다고 자동으로 해결되지도 않고 정부관료의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발전소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만이 단 한 명의 해고도 없는 정의로운 전환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발전통합을 통한 공공 전력산업 확장이 필수적이다. 자본과 정부가 주도하는 이윤 기반의 대책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만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
발전통합은 발전소 노동자의 총고용을 보장하고 기후위기를 막는 출발점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