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사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해당 지역 재투표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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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투표용지 부족 사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해당 지역 재투표를 요구한다

국민주권의 허구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대안은 무엇인가

  • 백종성
  • 등록 2026.06.10 21:35
  • 조회수 7,396

필요한 것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도,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는 대중의 요구를 분명히 옹호하는 것이다. 국가는 선거 때마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말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말하던 국가가 상당수 대중의 참정권을 침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지역의 선거무효와 재투표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해당 지역 선거무효와 재투표 요구를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권리 요구로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나 권리는 규정의 존재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용지 부족’이라는 직접적 사태에 대한 개선과 재투표를 넘어, 근본적 대안은 참정권의 실질적 확대, 곧 노동자 민중의 정치주체화다. 우리의 요구는 모든 노동자가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지 않고 투표소에 갈 권리, 장애인이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모든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언제라도 소환할 권리,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선출할 권리, 선관위를 포함해 베일에 싸인 국가기구를 노동자 민중이 통제할 권리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초유의 사태

 

6월 3일 전국 곳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서울 송파구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된 문제처럼 알려졌지만, 6월 8일 발표에서 투표용지 부족 투표소는 91곳으로 늘었다. 그중 26곳에서는 실제로 투표가 일시 중지됐고, 투표용지가 추가 배부된 투표소도 140곳에 이르렀다. 투표 마감이 연장된 곳도 있었고, 투표용지 부족이 발생한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 상당수는 장시간 대기해야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사태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는 점이다. 선관위 역시 높은 예상 투표율을 알고 있었다. 선관위는 심지어 전체 유권자의 110% 수준으로 투표지를 인쇄하겠다며 예산을 편성하고도, 실제 투표용지 인쇄 지침은 ‘투표소별 유권자의 50% 이상’이라는 낮은 기준으로 결정했다.

 

이번 사태로 중앙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사의를 표명했으나 ‘참정권 박탈’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책임자 사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당연하다. 우선 필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투표가 중단되었고, 유권자들이 기다려야 했으며, 일부 유권자들이 돌아가거나 투표하지 못했다. 이는 선거의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문제다. 국가는 선거 때마다 ‘국민주권’을 말하지만, 그 주권 행사의 최소 조건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특검까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선관위의 관리 부실과 현장대응 실패, 선거관리제도 개혁 문제로 규정하며 국정조사를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여기에 더해 투·개표 동시 진행, 투표함 반출, 출구조사 발표, 선거 효력 문제까지 조사 대상으로 삼아 선거 전반의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송파구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알려진 직후 ‘재투표’를 외쳤으나, 오세훈 당선 이후 특검과 국정조사를 중심으로 걸며 사실상 재투표론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6월 7일,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잠실 집회 여론에 편승해 ‘재선거’와 ‘사전투표 폐지’를 요구한 이후 당론이 명확하지 않은 모양새다. 물론 장동혁의 동기는 지방선거 패배 및 자신이 제명한 한동훈의 당선 등으로 위태로워진 본인의 정치생명 연장일 뿐이다. 재선거를 요구하는 장동혁의 목적이 ‘국민주권 회복’이 아닌 만큼, 장동혁은 재선거 요구가 오세훈 시장의 당선 무효를 뜻하는지에 대해서도 얼버무렸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분노를 극우세력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이후 서울 송파구 잠실 개표소 앞에서는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 집회를 단지 극우 집회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실제로 잠실에 모인 상당수 대중은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명백한 선거관리 실패와 참정권 침해에 분노해 나온 사람들이었다. 특히 초기에 일부 참가자들은 ‘부정선거가 아니라 부실선거’라며 극우적 부정선거론과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현장의 정치적 주도권이 극우세력과 부정선거 음모론 쪽으로 상당 부분 넘어가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봐야 한다. ‘재선거’ 요구는 점차 부정선거론, 사전투표 폐지론, 계엄 옹호와 윤석열 복권론, 성조기와 MAGA 피켓 등과 뒤섞이고 있다. 잠실에 모인 대중 전체가 극우세력이 아니라는 점도 진실이지만, 집회의 헤게모니가 극우세력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는 점도 진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운동은 이 사태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침묵은 참정권 침해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극우세력이 독점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교훈이 있다. 촛불 정부를 자처하던 문재인 정권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불평등 심화와 부동산 폭등이었고, ‘조국사태’였다. 그 실패와 위선이 낳은 대중적 분노 앞에 노동자 민중운동이 독자적 대안을 내세우고 조직하지 못했을 때, 그 공백을 차지한 것은 윤석열과 극우세력이었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분노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민중운동이 이 문제에 침묵한다면, 그 분노를 장악하는 것은 결국 극우세력이다.

 

필요한 것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도,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는 대중의 요구를 분명히 옹호하는 것이다. 국가는 선거 때마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말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말하던 국가가 상당수 대중의 참정권을 침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지역의 선거무효와 재투표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해당 지역 선거무효와 재투표 요구를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권리 요구로 다시 세워야 한다.

 

사태가 드러내는 진실

 

첫째, 이번 사태는 국가기구가 얼마나 관료적·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기관’이라는 명목으로 하등의 대중적·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었다. 선관위의 실제 운영은 해당 기관 상층이, 기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지침을 만들고, 책임은 아래로 떠넘기는 관료적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중앙선관위는 자기 편의를 위해 낮은 인쇄 기준을 정했고, 지역선관위는 그 하한선에 맞춰 물량을 줄였으며, 실제 항의와 혼란은 현장 선거사무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했다. 투표 과정에서 이미 용지 부족 징조가 나타났으나, 신속한 추가 공급과 유권자 안내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무엇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정한 선거 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잔여 용지 관리부담 감축’이라는 행정편의주의에 좌우된 결과다.

 

둘째, 그렇다면 국가기구는 왜 관료적·편의적으로 운영되는가. 이번 사태는 그 이유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면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대중의 정치 참여를 권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뿐이다. 오히려 국가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수동성을 전제하고, 나아가 겹겹의 봉쇄장치로 수동성을 조장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바로 그 운영원리가 드러난 사건이다. 국가는 '국민주권'을 말하면서도, 유권자들이 높은 투표율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을 예외 상황으로 취급했다.

 

자본주의 선거의 본질적 한계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같은 한 표를 보장한다고 말하지만, 그 정치적 자유는 몇 년에 한 번 자신을 지배할 대표를 고르는 순간으로 제한된다. 그렇게 구성된 정부와 의회는 대중의 통제 밖에서 지배계급을 위해, 지배계급에 의해 작동한다. 노동자 민중은 ‘주권자’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지배권력의 객체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자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과 비교해보면, 자본주의 지배권력의 본질은 더 분명해진다.

 

노동조합 선거의 예를 들어보자. 노동조합 임원선거는 적어도 재적 조합원 과반수 투표와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즉, 노동조합 안에서는 형식상으로라도 조합원 다수의 참여와 동의를 지도부 선출의 최소조건으로 삼는다. 선출된 임원 역시 조합원 투표로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허락하는 민주주의는 대중 다수가 지지하지 않아도, 심지어 투표조차 하지 않아도,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 사이에서 권력을 창출하고 배분하고 유지한다. 그런데도 국가는 그 결과를 ‘국민의 선택’이라고 부르며 정당화한다.

 

물론 지배계급 내부에서도 격한 분쟁은 벌어진다. 이 분쟁에 피지배계급 일부를 동원하기도 한다. 예컨대 검찰이 수사권을 가질 것인가, 경찰이나 별도기관으로 이관해야 하는가의 논쟁이 그렇다. 그러나 자신을 탄압하는 권력을 검찰이 휘두르건, 경찰이 휘두르건 피지배계급에게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을 검찰이 탄압하건 경찰이 탄압하건 탄압기구의 계급적 본질은 같다.

 

이렇듯 자본주의 국가는 보편적 참정권을 말하지만, 권력의 재생산과 운영은 대중의 낮은 참여와 비개입을 전제한다. 지배권력에게 대중은 관리와 동원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국민주권’이라는 형식상 명분과 실제 권력의 작동 방식 사이의 간극이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형태로 폭발한 사건이다.

 

셋째, 이번 사태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관료적, 행정편의적 대응이 음모론을 어떻게 확대재생산하는지를 드러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선관위가 투표용지 인쇄를 줄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잔여 용지가 많을 경우 부정선거 음모론 세력이 이를 투표 조작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음모론에 대응하는 방법은 음모론의 논리구조 내에 갇혀 투표용지를 줄이는 행정편의적 방식이 아니어야 했다. 필요한 대응은 더 공개적인 운영과 민주적 통제로 음모론의 존재근거를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전에도 대중적 불신을 키워왔다. 2023년 5월 불거진 대규모 채용비리가 대표적이다. 2025년 2월, 감사원은 2013년 이후 선관위의 경력경쟁채용 291회를 전수조사해 878건의 규정위반을 적발했고, 고위직부터 중간간부에 이르기까지 가족·친척 채용청탁, 면접점수 조작, 인사 관련 증거 서류 조작·은폐 등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선관위도 채용비리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자 징계와 임용을 취소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대중적 감시와 통제를 수용하기보다, 헌법기관이라는 독립성을 방패 삼아 폐쇄적 운영 구조를 유지해왔다.

 

넷째, 이번 사태는 형식적 참정권과 실질적 참정권의 간극을 드러냈다. 물론 이 간극은 이번 사태로 드러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표권은 형식적으로 모든 유권자에게 주어져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할 조건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장시간·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등은 투표권을 갖고 있어도 실제로 행사하기가 어렵다. 나아가 이주민의 압도적 다수가 이 사회에서 노동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애초에 투표할 권리 자체가 없다.

 

다섯째, 이번 사태는 정당한 분노가 우익에게 흡수되는 경로를 드러낸다. 참정권 침해는 실제로 있었다. 그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이를 민주적 권리 확대로 이끄는 노동자 민중운동의 세력 부족으로, 극우는 그 분노의 방향을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틀고자 한다. 이 분노를 극우세력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극우가 이 문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로 명백히 발생한 대중의 참정권 침해를 덮어서는 안 된다.

 

대안은 무엇인가

 

실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가 발생했다면, 해당 선거에 대한 재투표 요구는 정당하고 또 정당하다. 이는 참정권이라는 민주적 기본권에 대한 요구다. 독일 베를린 재투표 사례 역시 있다. 2021년 9월 26일 베를린에서는 연방의회·주의회·구의회 선거에 더해 주민투표(부동산기업 ‘도이체보넨’ 몰수 여부)가 동시에 치러졌고, 같은 날 베를린 마라톤까지 겹치며 선거관리가 혼란에 빠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잘못된 투표용지가 배부됐으며, 투표 지연이 발생했다. 그 결과 베를린 주의회 선거는 2023년 2월 전면 재실시됐고, 연방의회 선거 역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베를린 2,256개 투표구 중 455곳에서 다시 치러졌다.

 

재투표 요구는 음모론과 무관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관해야 한다. 재투표 요구의 원천 근거는 실제로 벌어진 참정권 침해다. 그렇기에 노동자 민중운동은 재투표 요구를 ‘일부 극우세력의 주장’으로 일축해서는 안 된다. 그 요구가 극우세력의 음모론으로 흡수되지 않도록,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필요한 지역과 선거 단위에서 재투표를 요구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투표용지 부족이었기에 용지를 충분히 준비하고, 용지 인쇄와 배정 등에 관한 규정을 공개하고 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권리는 규정의 존재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용지 부족’이라는 직접적 사태에 대한 개선과 재투표를 넘어, 근본적 대안은 참정권의 실질적 확대, 곧 노동자 민중의 정치주체화다. 우리의 요구는 모든 노동자가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지 않고 투표소에 갈 권리, 장애인이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모든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언제라도 소환할 권리,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선출할 권리, 선관위를 포함해 베일에 싸인 국가기구를 노동자 민중이 통제할 권리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이 모든 조치는 ‘국민주권’이라는 공허한 말을 실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만들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참정권은 노동자 민중이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다. 국가가 그 권리를 침해했다면, 그 침해에 맞서고, 그 침해가 벌어진 근본 원인을 진단하며,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해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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