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프랑스 고교생 봉기, 청년들의 노란조끼 운동인가?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라인신문

[번역] 프랑스 고교생 봉기, 청년들의 노란조끼 운동인가?

  • 강성윤
  • 등록 2026.10.11 18:46
  • 조회수 531

노동자계급 밀집지역 학교들에서 시작된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투쟁이 한 세대 전체의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대학생 운동과 무엇보다 노동운동 안에서 적극적인 동맹을 찾아낼 수 있는지에 따라 이 운동의 영향력이 결정될 것이다.

 

사진: AFP

 

소박해 보이는 요구가 폭발적인 힘을 가질 때가 있다. 그 요구 안에 수많은 경험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사를 충원하라, 교실을 제대로 관리하라,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라, 합리적인 시간표를 보장하라. 이런 요구는 한 학교만의 갈등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요구가 학교에서 학교로 번지고, 요구를 내건 이들이 지금껏 만난 적 없는 다른 청소년들의 분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국가가 잔혹한 탄압으로 대응하자, 투쟁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한 세대가 자신들에게 강요된 열악한 삶의 조건과 미래를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고등학생들의 봉기는 한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투쟁의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이 운동에 완성된 강령이 존재한다고 여기거나 운동의 결말을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운동의 초기 역학은 당면 요구, 불평등에 대한 생생한 경험, 기존 질서에 대한 (아직까지는 산발적인) 문제 제기를 하나로 묶어 내고 있다. 운동의 정치적 힘은 바로 이 결합에서 나온다. 노란조끼 운동과 비교하면 이런 구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운동이 같은 사회적 쟁점을 다루고 있어서도 아니고, 2018년 11월 17일에 시작된 흐름이 그대로 되풀이되려 하기 때문도 아니다. 둘을 비교하면 공통의 확산 원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구체적인 물질적 쟁점을 둘러싸고 아래로부터 시작된 저항이 그동안 어떤 조직도 묶어 내지 못했던 불만을 표출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부가 주도권을 쥘 때

 

파리 교외의 취약 지역 고등학교들에서 투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윌리스 라바테가 지적하듯, 이번 투쟁은 운동이 처음 시작된 센생드니와 발드마른의 학교들이 겪는 “특수한 불평등의 경험”을 가시화했다. 이곳의 청소년들은 관리 대상인 문제아 취급받으면서 국가 인종주의에 시달려 왔는데, 이들이 교육을 위한 투쟁의 주체로 등장했다. 스스로 행동할 능력이 없다고 여겨져 온 공동체에서 정치적 주도권이 나타난 것이다.

 

분노의 핵심은 ‘평등’이라는 약속과 물질적 조건이라는 현실 사이의 충돌이다. 어떤 학교에는 교사가 부족하고 건물은 낡아가며 학생을 지원할 자원도 모자라는데, 모든 청소년에게 똑같은 학업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학습 환경이 이토록 불평등한데 어떻게 실패를 개인의 행동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

 

문제는 한 학교의 울타리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는 노동자계급 가정 아이들이 계층 상승이라는 약속과 약속의 실현을 막는 장벽 사이의 모순을 체감하는 곳 가운데 하나다. 이 모순이 더 이상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집단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할 때, 개인의 실패처럼 보였던 것이 실은 함께 겪는 부정의였음이 드러난다.

 

라바테는 이 청소년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역시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들이 쓰는 말과 옷차림, 말하자면 동네의 코드가 이번 투쟁의 미학을 만들어 낸다.” 문화적 코드, 표현 방식, 소셜 미디어가 모두 투쟁의 자원이 된다. 자기 동네에 대한 강한 소속감은 이들을 하나로 묶고 목소리 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이런 맥락에서, 운동이 도심 학교들로 확산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9월 29일 보르도, 9월 30일 렌, 10월 1일 파리가 그렇다. 운동 초기의 모습을 보면 노동계급 밀집지역 청소년들과의 연대, 국가의 탄압에 대한 거부가 고등학교들 간의 사회적 차이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국가는 이번 투쟁과 그 방식을 사회 전반과 동떨어진 존재처럼 묘사되는 노동자계급 밀집지역 청소년들만의 문제로 국한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교육 문제를 넘어서는 불만

 

맞서 싸울 단일한 개혁안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운동은 다른 주요 청년 투쟁과 구별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학교 일과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 학습 환경 문제 등 공통 요구도 있지만 요구의 조합은 학교마다 서로 다르다. 이런 다양성은 투쟁을 하나로 모으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청소년이 저마다 운동에 함께할 이유를 찾게 해 준다. 이는 노란조끼 운동의 경험과도 닮아 있다. 당시에 제기된 다양한 요구는 기존의 경로로 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불만이 쌓여 있음을 보여 주었다.

 

최근 며칠 동안 각 학교는 저마다의 구체적인 문제 때문에 투쟁에 합류했지만, 봉쇄 규모를 보면 공통 조건이 분명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교사 부족은 공공 서비스의 방치를, 시간표와 규율은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처지를, 학업 선발 과정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2018년과 마찬가지로 투쟁은 지금까지 따로따로 경험하던 문제들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고, 구체적인 요구는 삶의 조건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10월 1일 목요일자 『르몽드』가 전한 증언들은 이렇게 시야가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기사는 이렇게 전한다. “릴의 페데르브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 11학년 학생은 학교 옆 도로 한가운데에서 대형 쓰레기통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악화되는 학습 환경, 과밀 학급, 보수가 필요한 건물’ 문제가 당연히 가장 먼저 제기된다. 그러나 곧이어 또 다른 불안이 드러난다. 이제 열일곱 살이 되는 파니는 일상을 짓누르는 걱정들을 하나하나 꼽는다. ‘기후 재난, 모든 일자리를 빼앗아 갈 AI, 국민연합이 선거에서 이길 위험…’ 그는 ‘부모님 두 분 모두 일하시고 넉넉히 버시니 꽤 특권층인 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몇몇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여러 봉쇄 현장이 팔레스타인을 향한 지지를 강하게 표출한다. 9월 25일에 등장한 한 피켓에는 “그들은 나라를 재무장시키고, 우리 미래를 무장해제시킨다”라고 적혀 있었다. 노동자계급 밀집지역의 청년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유가 인상 반대 시위도 10월 17일로 예정되어 있으며, 이제 많은 고등학생이 이 시위를 이야기한다. 이런 사례들은, 학교와 관련된 요구가 학생들의 분노를 이끄는 동력임은 분명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청년층 곳곳에 불안이 깊이 퍼져 있다.

 

이번 봉기의 특수성은 이러한 긴장에 있을 수 있다. 즉, 청소년들은 존엄을 지키며 공부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동시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는 생각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는 이 모순이 집약되는 곳이다. 청소년들의 미래가 일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편 개인의 노력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마크롱의 약속은 신뢰를 크게 잃었다. 최근 몇 년간 신자유주의가 특히 노동자계급 밀집지역 청소년들에게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요소를 감안하면 저항이 왜 이토록 격렬한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운동의 정치적 급진성을 고정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제도에 대한 기대, 지역적 요구, 서로 모순되는 생각과 분노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운동의 향방은 권력의 대응, 다른 피착취·피억압 부문과의 연계, 운동이 쌓아 갈 집단적 경험에 달려 있을 것이다.

 

탄압은 대립을 격화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10월 1일 하루에만 1,949명을 체포한 경찰의 대규모 폭력 진압은 새로운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교육 불평등에 더해서, 이에 맞서는 민중에 대한 국가 탄압이 자행된 것이다. 학교 앞에서 벌어진 폭력 진압, 체포, 부상당한 학생들에 대한 증언은 투쟁에 나선 이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최근에는 투쟁할 권리를 지키는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탄압의 당면 목표는 시위대를 흩어 놓고 겁주고 참여 의지를 꺾는 것이지만, 탄압은 정치적 기능도 수행한다. 논쟁의 초점을 시위대의 행동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정부는 늘 그랬듯 교육의 쇠퇴에 대해 책임 있게 설명하는 대신, 이제 투쟁에 나선 이들에게 그들의 방식을 해명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세바스티앵 르코르뉘가 퍼뜨린 ‘염산 공격’ 가짜 뉴스에서 보듯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을 이용한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나 ‘극좌’가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비난도 같은 전략의 일부다. 이런 비난은 10대들이 자기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분명하게 설명할 능력이 있음에도 투쟁에 나서기로 스스로 결정할 능력은 없다고 전제한다. 이 논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깎아내리고 사회적 갈등을 정부와 반대 세력 사이의 다툼으로 바꿔 놓는다. 위협이 효과를 발휘하고 탄압이 운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특히 참여자들이 고립될 때 그렇다. 하지만 탄압은 오히려 연대를 강화하고 학교와 관련된 요구를 민주적 권리를 둘러싼 대결로 바꿀 수도 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투쟁이 ‘정당하다’고 인정받는 학생들과, 탄압자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탄압할 수 있는 노동계급 밀집지역 청소년 혹은 ‘폭도’들 사이에 분열이 뿌리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투쟁에 나선 고등학생들을 위한 방어 조치는 모든 학교로 확대되어야 하며, 시위가 끝난 뒤에도 가족들을 지원하고,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 징계를 공개적·집단적으로 규탄하는 방식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동시에 운동을 꺾기 위한 수백 개의 학교 폐쇄 역시 맞서 싸워야 할 또 다른 형태의 탄압이다. 고네스 르네 카생 고등학교 교사들의 사례에서 보듯, 교사들은 원격수업을 거부함으로써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고등학생들에게서 손 떼라!” 대학생 운동이 응답해야 한다

 

이번 운동과 노란조끼 운동은 닮은 점이 있지만 중요한 차이도 있다. 고등학생 투쟁의 자율적 성격이 곧 정치세력의 개입 자체에 대한 적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윌리스 라바테는 이번 투쟁이 일부 정치인들을 유용한 동맹자로 환영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LFI 소속 하원의원 루이 부아야르나 생드니 시장 발리 바가요코가 그렇고, 아나스 카집, 엘사 마르셀, 생타볼드의 크리스티앙 포르타 등 ‘연속혁명’(Révolution Permanente)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개방성은 동맹을 찾으려는 바람을 반영한 것일 수 있으며, 교사들의 지지에 학생들이 호응하는 모습도 이를 보여 준다.

 

이제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 지지를 확장해야 한다. 생드니 거리에서 폴 엘뤼아르 고등학교 학생들과 파리 8대학 학생들이 만나 환호하던 장면이 그 첫걸음이다. 대학을 멈추고 고등학생들과 함께하자는 렌 2대학의 호소, 파리 시테대학과 파리 1대학 라샤펠 캠퍼스에서의 유사한 움직임 등 대학생 투쟁의 초기 신호도 드러난다. 더 나아가 대학생들이 참여하면 경험을 나누고, 모일 공간을 제공하고, 총회와 민주적 조정을 통해 고등학생들과 함께 조직적 수단을 발전시킬 수 있다. 정치조직과 노동조합은 ‘르 푸앵 르베’(Le Poing Levé, ‘치켜든 주먹’)의 경우처럼 이런 수단을 갖추도록 돕고 그 방향에 부합하는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노동운동의 지지가 전략적으로 필요하다

 

또 하나의 쟁점은 노동운동이다. 10월 1일 르아브르의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은 프랑수아 1세 고등학교 앞에서 경찰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인간 띠를 만들었다. 이 모습은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는 동맹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준다. 따라서 이 행동은 지역적 의미를 넘어 전략적 전망을 제시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청소년들에 대한 방어를 자기 임무의 일부로 여길 때, 청소년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이 연대에는 물질적 토대도 있다. 노동자계급 가정 아이들의 교육환경과 교육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공유된 자원, 인력 수준, 예산 결정에 달려 있다. 폴 엘뤼아르 고등학교에서 이 인간 띠를 처음 시작한 교사와 교육보조 노동자들은 학생들이 고발하는 문제를 직접 겪어서 안다. 부모들은 고용, 주거, 공공서비스 문제와 함께 무너져 가는 학교 체계의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그러나 공통의 토대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공동의 투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대가 투쟁을 전진시키려면 학교와 대학 바깥에서의 실질적인 참여로 이어져야 한다. 공동 총회, 다른 부문 노동조합과의 연계, 집단적으로 결정한 행동이 필요하다. 경찰로부터 학생들을 지키는 것에서 더 지속적인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 대표단을 꾸려서, 이를테면 10월 5일부터 행동주간을 열자는 푸앵 르베의 호소, 10월 6일 고등학생·대학생 시위를 조직하려는 여러 청년단체의 계획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할 수 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최초고용계약(CPE) 반대투쟁은 중요한 선례다. 당시 고등학생·대학생들의 투쟁, 총회 및 학생 조정기구는 파업과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이 참여하면서 힘의 균형을 만들어 냈고, 결국 빌팽 정부가 해당 조치를 철회하게 만들었다. 이 경험은 청년들의 봉기가 노동운동 안에서 적극적인 호응을 얻을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10월 1일 릴의 페데르브 고등학교 정문에는 “우리를 엿 먹이면 68년 5월로 갚아 주겠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 도전장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전망을 제시한다. 그것은 청년들의 투쟁이 노동운동의 힘과 만나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청년들의 주도적인 행동은 최근 몇 년간 패배를 겪었거나 투쟁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부문들에 자신감을 되찾아 줄 수 있다.

 

힘의 분출에서 반격하는 조직으로

 

이 운동은 처음부터 분명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프랑스 전역은 물론 벨기에까지 자생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특징 덕분에 운동을 가두어 두기가 어렵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봉쇄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연결망만으로는 수백 개 학교를 조율하고, 공동의 요구를 발전시키고, 공세로 나아갈 계획을 준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소셜 미디어는 경험을 빠르게 공유하게 해 주지만 토론과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조직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총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조정기구는 각 고등학교의 구체적인 요구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예컨대 교육자원 확충, 파르쿠르쉽(Parcoursup, 프랑스 대학 입학 플랫폼) 폐지, 탄압에 맞선 투쟁 같은 공동의 요구를 하나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연속혁명과 르푸앵르베의 혁명적 활동가들, 이들을 지지하는 모든 동지들의 과제는 구체적 거점에서부터 이 전망을 실현하는 것이다. 학생, 교육노동자, 다른 부문 노동자들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본보기가 될 만한 실천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 고등학교들에 번지고 있는 분노가 조직과 지속적인 연대로 바뀔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새로운 계층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가 핵심 물음이다. 학교 정문 앞에 늘어선 노동자들의 인간 띠가 전략적 전망을 보여 준다. 즉, 청소년을 지키는 것은 그들의 교육, 부모들의 노동조건, 우리 모두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정책에 맞선 공동 투쟁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는 처음 맺은 연대를 반격에 나설 수 있는 조직된 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2026년 10월 2일 LeftVoice에 게재된 글을 번역함 

글쓴이: Juan Chingo

번역: 강성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